소지장(所知障)과 8식법집
먼저 8식과 소지장에 대해 호법의 견해를 본다.
'법집 무명은 오직 제6의식과 제7말나식에만 있다... 추구성이기 때문이다. 8식과 5식은 추구성이 아니다.'라고 했다. <섭대승론>에서 '의식의 일체는 아뢰야식에 통하지 않는다.'함과 같고, <유가설>에서 '아뢰야식은 번뇌와 상응하지 않는다.'함과 같은 뜻이다. 또 만약 8식에 법집이 있다면 훈습을 받는 곳이 없게 되며 응당 생각들이 찰나 찰나 유실되어 대치함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니 그것은 곧 큰 허물을 이룰 것이다. 또 법집이 8식에 있다면 법공관이 처음 현전할 때에 이 8식은 응당 단멸하게 됨으로 유루종자가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수행공덕의 훈습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법집이 8식에 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3성(三性)과 소지장에 대한 호법의 견해이다. 법집은 불선과 무복무기에만 있다. 2승(二乘)의 성도(聖道)는 염오(染汚)하지 않지만 보살의 도를 덮어 염오하기 때문에 염오의 성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유복(有覆, 보살의 도를 장애)라 하기도 하고 또한 무부(無覆, 2승의 아공(我空) 성도는 장애하지 않는다.)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또한 법집은 반드시 무치의 선근[선악을 간택취사하는 혜력은 없으나 자연히 우치를 대치하는 작선위업(作善爲業)의 힘]과 함께 한다.
원효는 호법설의 당위성을 만약 법공관이 초지 이전 3현위(三賢位) 가운데 법집이 있다고 하면 곧 인공관[수다원과] 전의 4선근에도 응당 아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법공을 깨닫고 나서]에 그런 일[법집이 남아 있는 일]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저[아뢰야식] 가운데에 법집이 없음을 알 수 있다.'고했다. 법공을 처음 증득한 초지에서 이미 법집은 떨어진다. 그러나 아뢰야식이 아직 남아 있어 대원경지는 얻지 못했으니, 이로부터 법집의 차원이 아니라 아뢰야식 대치만이 있을 뿐이라는 요지였다.
원효의 결론은 호법의 8식 무집설을 긍정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와 반대 입장에 있는 안혜의 8식법집설의 타당성을 또한 강조하여 양설의 회통을 보여 주고 있다. 종래 이른바 '58무집호법종 58법집안혜종(安慧宗)'이라 하여 안혜의 경우에는 전오식(前五識)과 제8식(第八識)에도 법집이 있다는 것이다. 호법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2장은 전7식(識) 모두에 통하고 아집, 법집의 2집(二執)은 오직 제6, 7식에만 상응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안혜설은 소지장과 법집은 제8, 5, 6식에 통하고 아집은 오직 제7, 6식에만 상응하며, 번뇌장은 전7에 다 통하고 법집은 제8, 6, 5식과 상응한다고 한다.
고인(古人)들이 암송해온 다음의 게송은 이 뜻을 잘 보여 주고 있다.
二障相應前七轉 二執相應唯六七 五八無執護法宗 所知法執五六八 法執相應唯六七 煩惱相應前七轉 五八法執安慧宗
법집이 8식에 두루 통한다는 첫째의 논거로 안혜(安慧)는 '아뢰야식은 법공을 요달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고 취상분별(取相分別)이 있기 때문임.'을 든다.
원효는 그 성언량(聖言量)의 증거로 해심밀경소에서 '8지(地) 이상에서는 일체번뇌가 끊어져 없지만, 미세한 수면이 있어 소지장이 의지를 삼는다.'한 것을 들어, 이로써 '아뢰야식에 미세한 소지장이 현행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유가설에서 '일체의 번뇌장이 없기 때문에 번뇌와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뿐이며 소지장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원효는 아뢰야식에 망상이 있는 만큼 그것의 분식(分識)이라고 할 수 있는 5식(識)에도 법집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논증을 한다.
<열반경>에 '5식은 비록 순수한 정신활동[一念]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는 유루이며 이는 전도해서 모든 번뇌를 증익하기 때문에 정신적 유루이다. 그리고 체성(體性)은 진실하지 못하여 허위적인 상(相)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도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5식에도 전도의 집착이 있음을 말한 것인데, 그러나 5식은 단지 5진(五塵)에만 집착할뿐이며 두루 사고[計度]하지 못하고 명언에도 취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루 사고하고 헤아리는 것은 오직 의식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글에 의하여 5식 가운데에 법집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면 어떻게 법집이 없다는 뜻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5식에 법집이 없다는 성언량(聖言量)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이상은 안혜의 58법집설을 적극 긍정한 원효의 논증이다. 앞에서 이미 호법의 58무집설의 타당성을 술회한 바 있으므로 원효의 이 양설의 양가적 양면적 입장은 다음의 회통을 위한 대전제라 하겠다.
다음은 3성(三性)이 소지장에 통한다는 안혜의 설이다.
(1) 2승(二乘)이 깨닫는 인공의 무루로는 법집의 분별을 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견도하여 인공진여를 깨달아 비록 명언에 취착하지 않지만 괴로운 일에 대하여 고(苦)라는 상(相)을 취하게 된다. 이는 법공진여를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법아의 상(常), 낙(樂), 아(我), 정(淨) 등 덕성에 대해서 전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2) <보성론>에는 '이 4종전도를 대치한 까닭에 4종 비전도법(非顚倒法)이 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물질계 같은 무상한 사물에 대해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4종전도의 대치를 말한다. 그러나 만약 대승의 법신에 기준한다면 또한 전도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비록 인공(人空)을 증득한 까닭에 전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법공에는 미혹해서 전도가 이루어짐을 나타낸 것이다. 또 법공관(法空觀) 전의 방편도 가운데에도 법집이 있다. 그러나 오직 미세한 하나의 지(智, 慧)의 작용이 해(解)를 나타내기도 하고 집착하기도 할뿐 한결같이 미혹하고 뇌란케 하는 다른 무명 등의 집착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법공관전(法空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는 무치(無癡) 선근이 치심소(癡心所) 등과 함께 일어나는 과실은 없다.
(3) <대법론>에 이르기를,'미혹하고 뇌란하는 것은 집착하는 주관과 그 객관의 대상이 있음을 말하며, 미란(迷亂)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것들을 초월한 출세지(出世智)와 후소득미란(後所得迷亂)을 말한다. 곧 불미란(不迷亂)이란 출세간의 문혜(聞惠) 등 선근에 수순해서 법공의 소지경(所知境)을 분별하는 것이며, 무분별지의 수순이다.'라고 하였다.
미란은 곧 법집으로서 법진관(法眞觀)에 들기 전에 일체심 가운데에는 망상이 있고 모두 미란이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미란과 망상이 어찌 법집이 아니겠는가? 호법설 대로 인공관전(人空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 무인집(無人執)이므로 법공관전(法空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도 무법집이라면 아관전(我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 아(我)를 취하지 않을 것이니 무상전(無相前)의 방편도 가운데에도 불취상(不取相)이다, 이것이 옳지 않으므로 호법설도 옳지 않다.
제3설은 원효가 본 8식과 3성에 대한 소지장의 견해이다.
호법설은 별문추상도리(別門麤相道理)에 맞으며, 안혜의 설은 통문거세도리(通門巨細道理)에 맞는다. 이러한 두 가지 진리의 문이 있기 때문에 모든 글이 서로 어긋나지만 모두 잘 통한다. 그러나 별상(別相)의 법집무명이 8식과 3성(性)에 모두 통한다고 하거나, 통상(通相)의 법집무명이 제6, 7식에 국한되어 있으며 선(善)에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면 저 양설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또한 성인의 말씀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호법과 안혜의 설은 통문(通門)과 별문(別門)에 의해 올바르게 밝혀진 도리이므로 양설 모두 도리가 있는 정설이라 하겠다.
이상을 모두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호법설 : 법집은 제6, 7식(識)에만 통하며, 3성 가운데 불선(不善)과 유복무기(有覆無記)이다.
제2안혜설 : 모든 식에 2집(二執)이 있으며 3성(三性) 모두에 통한다. 즉 전5식, 제8식은 법집에 통하고, 제7식은 아집(我執)만 통하며, 제6식은 아집, 법집 모두에 통한다.
제3원소설 : 번뇌장은 7전식(七轉識)에만 통하나, 8식에 연계돼 있으며, 소지장은 8식 모두에 통한다. 그리고 안혜설과 호법설이 모두 도리가 있다고 하였다.
거세통문도리(巨細通門道理, 安慧說): 8식에 모두 집(執)이 있다는 설로서, 다시 제5식, 제8에는 법집 제6, 7식에는 아집이 있음을 별문(別門)으로 설명했다.
별문추상도리(別門麤相道理, 護法說): 제8식에는 집(執)이 없고, 제6, 7식에만 집(執)이 있다는 별문으로 설명한다.
원효는 이러한 학파간의 문제점들을 제3사(師)[원효]의 설을 제시하여 유가유식이라는 하나의 물줄기를 흐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원효의 유식에 대한 화쟁의 입장은 어느 일정한 학파에 편향되지 않고 유식의 핵심에 접근하려는 유식에 대한 이해방식이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소지장을 제8식의 종자로 해석하므로 제8식에도 법집이 있다는 설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원효가 안혜설인 통문도리(通門道理)를 방법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장번뇌에 대한 연구/ 김수정 동국대 불교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