戒心箴 幷序(마음을 경계하는 글, 서문 병기)
-정암 조광조(1482~1520)
사람이 천지자연으로부터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받아 형체를 이루고
굳셈과 유순함을 받아 성품을 지녔는데, 기는 네 계절 춘하추동에 어울리고, 마음은 네 가지 덕, 효제충신을 갖추었습니다.
이렇듯 천지의 기운은 크고도 넓어서 감싸 안지 않은 것이 없고
마음은 신령스럽고 오묘하여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임금님의 한 마음은 하늘과 땅의 큰 것을 본받았고
천지의 기운과 만물의 이치가 모두 우리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쓰는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니 단 하루의 날씨와 한 물건의 성질인들 가히 우리 사람들의 헤아림을 따르지 않겠고, 어그러지고 뒤틀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발동한다면 이른바 그 신령하고 오묘함이 가라앉아 버려서 사사로운 정에 짓눌리어 그 마음은 흘러 통하지 못하고, 하늘의 이치는 어두워지고, 자연의 기운도 또한 막혀 버려서 떳떳한 인륜이 깨져 버리고 만물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임금님은 고운 소리, 예쁜 여인, 좋은 향기, 맛있는 음식의 유혹이 날로 심해지고 권세는 드높아져서 쉽사리 교만해지지 않겠습니까? 성상께 오서는 이것을 염려하시고 두려워하여 臣에게 戒를 지으라 명하시니 아~ 지극하오십니다. 臣은 감히 뜨거운 마음을 펼쳐내어 만 분의 일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나이다.
천지기운 왕성하고
자연조화 참되도다
기운 통해 형체가 되고
참된 이치 이어받았네
한치 마음 모두 감싸
삼라 만상에 뻗어 있고
온전하여 밝게 비쳐
신묘한 작용 의심이 없네
은밀한 곳 드러난 곳
인륜의 도리 펼쳐 보여
온 세상에 법칙을 넓혀
모든 만물 제자리에 있네
위대하고 신령함이 하늘로 통했고
높고높은 요임금의 위업도
이와 같은 마음일세
그렇지만 만사 본질은 살아 있고 비어 있어
사물이라 느끼지만 종적은 없네
(중략)
오호라 마음을 붙잡고 붙잡음이
선과 악으로 갈라지니
성인께서 물려주신 것을
마음 다해 받을 뿐
법은 밝히기 어렵고, 이치는 흐르기 쉬우니
정성스레 마음 다져
덕의 보전 바란다네
성상께선 체득하시어
조심하는 맘, 두려워하는 맘 지니소서
옳지 않은 것 이겨내길 원수처럼 하시고
인의예지는 싹이 움터 나오듯 하소서
살피시고 지키시고
중도를 잡아 이어가시고
태극을 마음에 보존하시어
영원토록 보존하시고 싫어함이 없으소서
戒心箴 幷序
人之於天地。稟剛柔以形。受健順以性。氣則四時。而心乃四德也。故氣之大浩然無所不包。心之靈妙然無所不通。況人君一心。體天之大。天地之氣。萬物之理。皆包在吾心運用之中。一日之候。一物之性。其可不順吾度。使之乖戾邪枉耶。然人心有欲。所謂靈妙者沈焉。梏於情私。不能流通。天理晦冥。氣亦否屯。彝倫斁。而萬物不遂。況人君聲色臭味之誘。日湊於前。而勢之高亢。又易驕歟。 聖上是念是懼。命臣述戒。嗚呼至哉。臣敢披割丹衷。冀補萬一。
天地絪縕。大化惟醇。氣通而形。理承其眞。斂括方寸。萬象彌綸。渾然昭晢。神用不忒。充微著顯。式揭人極。擴準四海。功躋位育。偉哉靈妙。於穆天通。巍巍堯業。亦此之衷。然體活虛。物感無從。
(情熾紛挐。潛移厥志。闒然沈昏。蕩乎奔駛。眇綿晷刻。衆慝恣萃。彝倫旣斁。天壤易位。生意隨遏。群品不遂。自絶速禍。癸辛之喪。君子是懼。動靜有養。敬以內持。義以外防。惺惺介然。視聽有常。祇栗室幽。上帝臨赫。凜然自守。神明肅肅。涵濡勿替。循循允修。涓涓其澄。浩浩其流。發揮萬變。卓然曒日。義形於事。仁溥於物。沖融和粹。盎然兩間。)
嗚呼操舍。善惡攸關。故聖授受。只傳心法。難明者理。易流者欲。惟精惟一。庶存其德。願 上體躬。戒懼翼翼。克非如敵。發端若茁。察守惟密。中執屬屬。存心太極。永保無斁。
[출처: 靜菴先生文集卷之二 / 箴]
[愚按]
정암 조광조(1482~1520)의 글이다. 향년 37세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생을 마쳤다.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과 부정적 내용은 연구된 것들이 많아 참고하는 게 좋을 듯하다. (나무위키의 내용들이 자세하고 다양해서 종종 참고하게 된다.)
*(참고 https://namu.wiki/w/%EC%A1%B0%EA%B4%91%EC%A1%B0)
보통은 급진 개혁파의 한 사람으로 조광조를 떠올린다. 일을 추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 듯하다. 물론 왕좌에 앉은 중종의 신임을 입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말이다. 일을 급하게 많이 처리하려다 보면 반대 세력이 생기게 마련이고 시샘을 받게 된다. 자기가 누리는 권익에 손상과 손해를 입힌다면 누가 좋아하겠느냐 말이다.
조광조가 생각하는 군자의 모습과 마음의 작용을 위 글을 통해 배워 본다. 조선의 성리학이 아주 무르익었을 때의 학자요, 관료인 조광조가 생각한 마음에 대한 글이다. 태도와 모습, 자세, 몸가짐, 마음가짐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성리학자 혹은 유학자들의 공부를 보면 한결같이 그러하다. 知와 行이 나란히 붙어 간다. 마음을 설명하고 이해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는 몸을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나의 자세와 태도, 용모와 손동작, 걸음걸이까지도 함께 얘기를 한다. 아마도 소학 공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조광조가 생각한 ‘心’에 대한 글이다. 마음에 대한 경계의 글, 새겨 들어야 할 글 정도이겠다. 임금에게 바치는 글이니 얼마나 신중을 기하였을까 생각해 본다. 읽어 보고 또 읽어 보아도 또 그 소리인가 싶다. 그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심드렁하고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글 같다. 내 마음이 무디어진 걸까. 세상이 바뀌어서 내 마음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있어서일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조선시대 다르고, 지금 우리 시대 다르겠는가. 보고 듣는 것이 다르고, 먹고 입는 것, 타고 사용하는 도구와 기구가 달라서 우리 마음도 달라진 걸까. 이 마음의 작용을 잘 알고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조선의 선비와 학자들이 생각이 짧았을까? 마음에 대해 깊이 궁리하고 연구한 이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양의 학자들의 마음 연구와 이론과는 색과 결이 다르지만 유학자들의 마음 연구가 서양에 비해 뒤진다고는 생각을 못 하겠다.
이 마음을 잘 붙들어 잡으라고 당부한다. 선과 악이 이 마음에서부터 나온다고 한다. 한치밖에 되지 않는 마음이 온 세상의 이치와 조화를 다 담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음의 이치와 원리만 온전히 파악해서 밝게 알아낸다면 내 앎이 극대화될 것이다. 이 마음을 잘 알아서 펼쳐 낸다면 온 세상 만물이 제자리에서 어긋나지 않고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잘 돌아간다고 한다. 마음을 잡는다는 말이 늘 이해하기 어렵고 실행해 내기 어렵다. 도무지 마음이란 것이 알기 어려워서일 테다. 내 마음이 가장 어려운데, 남의 마음을 어찌 알까 싶다. 내 마음 잘 잡아 보존하여 어디로 달아나지 않게 하며, 내 마음을 좋아하여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선한 것들이 되도록 하자.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영원히 보존하며 싫어하지 말자는 조광조의 글이 다시 읽히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