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DMZ 250km 통일걷기
1일차 06/27(월)
09:00 정각에 45인승 대형 관광 버스는 잠실 종합운동장을 출발하여 홍천에 잠시 쉼을 가진 후 12시 정각에 군인시설인 화진포 콘도에 도착했고 이어 점심으로 단가 12,000원 짜리 성게미역국을 먹었다.
13:00에 화진포 콘도를 출발한 일행은 13:45에 통일 전망대에 도착하여 관계자에 의하여 브리핑을 받고 이어 광장에서 통일부 남북협력과장이 참석하여 발대식을 가졌다.
통일걷기는 남북의 정세 및 군사 동향에 따라 변수가 심한듯 해마다 프로그램이 바뀐다고 했다. 즉 .민통선 이북 지역의 걷는 노선이 중단되거나 변경된다고 한다.
이어 남북 출입국 사무소와 동해북부선의 제진역에 들러 남과 북의 교류 및 관광시에 출입국 관리하는 이모저모를 둘러보며 관계자들에 의해 설명을 들었다.
특히 제진역에서 5량으로 구성된 평화통일열차를 타고 객실 안에서 평양까지 가는 주변의 광경을 멋진 화면으로 보여 주었고 이어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유럽 런던까지 가며 63빌딩 아이맥스의 대형 화면처럼 자금성 베를린 에펠탑 템즈강 등을 사실감 넘치게 역동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곳에서는 남과 북을 오가며 출국 입국이 아닌 단순히 국경을 넘나든다는 의미로 북으로 가는 것을 출경 남으로 오는 것을 입경으로 하여 ㆍ출경 하는곳 ㆍ출경 신고서ㆍ등으로 표시를 하며 모든 문서도 사용을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우리만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15:30에 모든 행사와 관람 및 견학이 끝나고 이제 남은 일은 오직 걷는 일만 남았다. 명파해변을 거쳐 배봉리에 이르니 농로를 지나는데 언제 사람이 지나 다녔는지 콘크리트길은 푸른 이끼로 덮혀 내리는 비에 미끄럼틀로 변했고 녹음은 우거져 아까시나무는 길을 막았다.
첫날부터 첫 시작부터 된통으로 비를 맞았다. 신발은 물론이고 온몸 온통으로 젖었고 객실에 바치된 드라이기로 등산화를 교대로 말렸다. 나는 이참에 등산용 샌달을 구입해 그런 군일에서 벗어났다.
17:30에 금강산 콘도에 도착하여 석식을 먹고 6개조에 의한 편성과 조직을 끝내고 전체 12박13일에 대한 일정 소개를 받았다.
212호에 4명이 배정을 받았는데 잠만 잔다면 8명도 자겠는데 빨래할 곳이 마땅치 않아 싱크대에서 하기도 했고 세면대에 물을 틀어 놓고 대충 헹구어 널었다.
내일 아침 식사는 07:30분이며 걷기 출발은 08:30이다.
통일부에서 지원하는 행사이기에 앰블런스가 24시간 뒤를 따르며 대기하고 관광버스도 동행을 한다.
감사!
2022'
DMZ통일평화걷기
2일차 06/28(화)
08:30 정각에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16에 위치한 금강산 콘도 광장에 집결한 일행은 2일차 걷기를 출발했다. 목적지는 화진포를 거쳐 건봉사를 지나 소똥령 체험 마을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데 코스가 해파랑길과 겹친다고 한다. 30분 후 대진항에 도착하니 어판은 파장이라 항구는 한산했고 50여명의 일행을 보고 흔드는 손에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걷기는 50분을 걸은 후 10분 휴식을 잘지켜 군대보다 더 빡빡한듯 했다.
어제 지나온 길에 백두산로를 지났는데 오늘은 금강산로를 지났다. 09:30에 현내면 화진포 마을에 도착했고 11:10분에 화진포 호숫가 테크에서 점심 식사와 휴식 시간이 있었다.
점심은 인스탄트 즉석식으로 소고기 덮밥으로 박스의 윗면을 뜯고 줄을 당기면 내부 발열체에 의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며 양념된 밥이 뜨겁게 데워지고 양옆에 소고기가 담긴 비닐봉투와 김치볶음이 담긴 비닐봉투가 있어 함께 익어가며 데워진다. 10여 분후 가운데 비닐봉투를 들면 닭이 알을 낳듯이 파란봉투가 뚝 떨어지며 그안에 양념된 익은 밥이 들어있다. 동봉된 종이를 접어 도시락을 만들고 밥과 소고기 김치를 버무려 먹게끔 되어있다. 뜨거운 김이 예상 외로 고열이라 주의를 해야한다.
처음 접하는 즉석 음식의 뜨거운 열에 깜짝 놀라며 배를 채운 후 12:00 정각에 화진포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13:30에 숲길로 접어들며 송강리라는 마을을 지나고 건봉사 지역으로 진입하였다.
13:50에 민통선 검문소에 도착하니 초병은 저멀리 있는데 군용 짚차가 와서 인솔 대장과 협의를 한 후 일행을 통행하게 했고 일행 중 한명이 낙오를 하게 되자 진행용 차량을 타게했다.
민통선 내 도로를 30여분 지나자 고개 마루에 올라서고 호수가 나타나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다시 군용 찦차가 왔고 한군데에서 15분 이상 휴식을 취하지 말라고 했다며 우리의 규정은 10분이라고 했다고 한다.
15:10에 금강산 건봉사 경내에 들어섰고 30분간 경내 자유 관람을 하는 중 비가 내렸고 경내에 대기 중인 버스를 타게 하고 일행 모두는 버스로 목적지인 소똥령 체험마을로 향했고 그때까지 30,800보를 걸었고 거리는 23km였다.
소똥령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석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내일을 준비하는데 일실에 8명이 자고 생전 처음으로 2층 침대에서 잠을 되었다. 내일은 난이가 쎈 소똥령을 넘어 진부령미술관까지 20km를 걸어 갑니다. 감사!
2022'
DMZ통일걷기
3일차 - 29일(수)
하룻밤을 보낸 이곳의 마을 이름이 소똥령입니다. 동네 이름에 똥자가 들어간 마을이 또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암튼 재미있고 아주 토속적인 이름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간성과 인제를 오가는 규모가 작은 동쪽의 고개라 하여 소동령(小東嶺)이라고 조선지지자료에 있다고 합니다.
전해 나려오는 이야기로 고개 마루에 주막이 있었던 바 장에 팔려고 주인따라 나섰던 소들이 주인이 주막에서 쉬자 같이 쉬던 소들도 고개를 넘기에 너무 힘들어 똥을 많이 누게 되자 고개 아래의 마을 이름도 절로 소똥령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산산골골 아주 깊은 산속 오지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건봉산 아래에 건봉사가 있는데 금강산 건봉사라고 합니다. 건봉산과 백두대간 마산봉 사이의 높은 고원지대인 흘리지역을 지나 진부령을 넘어 인제지역으로 가는 길에서 백두대간 지계의 맨 위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그러나 정식 마을 이름은 고성군 간성읍 장신리로 마을 자체는 엄청큽니다. 가구수는 30가구가 채 안되고 인구도 60명 안팎입니만 농경지는 약 70,000평에 이르는 땅으로 보면 부자 마을입니다.
깊은 산골 옹달샘 같은 화전민의 마을이 아니라 마을 이름에 넓음을 뜻하는 장"자가 들어 있는 소똥이 아니라 소잔등처럼 넓은 밭과 대형 트랙터로 논농사를 짓는 아주 커다란 마을입니다.
숨터는 넓은 공터를 끼고 계곡가에 지어진 2층 건물로 군에서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마을에 제공한 게스트 하우스로 주민들이 운영을 합니다.
숨터는 지은 지 3년 밖에 안된 신축 2층 건물로 2층은 숙소 1층은 식당과 매점 등 부속시설입니다. 방 하나에 2층 침대가 3개있어 6명이 잡니다. 방에 딸린 샤워장이 너무 작았으나 공동으로 최신 세탁기가 비치되어 세탁물을 넣으면 거의 건조가 되어 나와 우리네에겐 맞춤으로 어제 흠뻑 맞은 비에 덜 건조된 세탁물도 해결하였습니다.
부속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식당에서 제공한 주먹밥과 사이다 한병씩과 7명 조별 당 배당된 페트병 생수를 받아 배낭에 넣고 08:40에 집결 후 집단 체조로 몸을 풀고 오늘의 목적지인 진부령 정상을 향해 09:00에 출발을 했습니다.
마을 가운데를 지나 좌우측에 논과 밭이 약한 경사로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이어진 임도를 따라 백두대간 트레일로 향해 걸었습니다.
계곡은 흐르는 물소리로 가득했고 골짜기 모퉁이를 돌때 시원한 골바람을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꺼 없이 동시에 와~ 하는 함성이 한 여름의 녹음 우거진 백두대간 산야에 울려 퍼졌습니다.
한 시간 가량 오르니 오른쪽 계곡 저멀리 아래로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 마을이 보였습니다.
오늘 목적지인 진부령 정상 아래의 마을입니다.
오늘은 30분을 걸어 오르고 10분을 쉬며 걸었습니다. 오르막이 심하면 각 조별로 함성을 질러 서로 힘을 북돋우며 걸었습니다.
11:00에 백두대간 지계의 임도 삼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출발한 장신리 마을이 5.3km 가야할 방향의 흘리가 6km 어천리라는 마을은 16km 라고 쓰여진 이정표가 서있는 곳입니다.
각 조별로 앉아 배급된 주먹밥을 사이다로 목을 축이며 먹었고 가야할 우측 흘리 방향의 길은 남기고 지나온 길쪽은 여자가 좌측 어천리 방향의 길은 남자들이 각자 알아서 생리현상을 해결하였습니다.
이길은 만해 스님이 설악산 백담사에서 금강산 건봉사로 가던 길로 산간지역이라 지원차량도 없고 앰블란스도 따라 오지 않았고 따로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12시에 다시 출발하여 한 시간쯤 가니 흘리 지경의 넓은 공터에 이르렀고 잠시 쉬었습니다.
그때 지원 차량에서 여기까지 3일을 동행한 통일부 남북협력 과장의 선물이라며 차게 냉장된 설레임이란 빙과를 지급받아 정말 달게 맛있게 빨아 먹었습니다.
흘리에 들어서며 맞이한 것은 마을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와 대규모 태양광 발전이었습니다.
마산봉이 3km 라는 이정표가 서 있었고 좌측으로 높고 장대한 능선이 뻗어 있었습니다. 백두대간 마산봉입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고원지대인 흘리지역에서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어갔습니다. 백두대간 종점인 진부령 고개의 마루턱을 향해 내려 가는 길입니다.
한강오백리진원지 라는 큰 비석이 서있는 흘리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주변은 길 옆의 집인데도 빈집이 많았고 알프스콘도는 텅텅 비어 있었고 길가의 상점도 닫은 곳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출발을 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소똥령 마을에서 9시에 길을 나선 이후 흐리고 해가 쨍쨍 뜨고 흐리고 비가 내리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등 변하기를 열두번은 하였나 봅니다.
15:00에 백두대간 기념공원을 지나며 바로 "백두대간 진부령" 큰 글씨의 커다란 비석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습니다. 드디어 3일차 통일걷기를 우중에 마무리 했습니다. 약 28,000보를 걸었고 18km의 거리를 지나 왔습니다.
일행은 대기중인 관광버스를 타고 동국대학교가 운영하는 만해마을의 문인의 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정비를 하고 마을 내의 청소년수련원 식당에서 석식을 하고 7시에 1층에 위치한 문인의 강당에서 국악 계통의 민속 음악 공연을 8시20까지 함께 어울리며 즐김을 끝으로 3일차의 공식 일정이 끝났습니다.
내일은 진부령 고개 마루에서 향로봉으로 향합니다. 완전 통제된 군사지역으로 어느 길을 걸을지 기대가 큽니다. 힘듦은 별개입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동에서 서로 휴전선을 따라 두 발로 걸어서 횡단하기는 쉽지 않은 기회입니다.
만해 스님이 걸어 만해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오늘 걸은 길도 비록 땀은 흘리나 보이는 경관의 아름다움은 땀의 가치 그 이상으로 결코 셈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나이 70 나의 삶에 가장 큰 선물이고 횡재라 생각합니다. 정부의 지원하여 다양한 프르그램으로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여름 휴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2022'
DMZ통일걷기
4일차 - 30일(목)
길이 막혔습니다. 전국이 장마철에 들어섰고 이곳 백담사 만해마을도 밤새 비가 내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던 식당에서 인솔대장이 긴급 조장회의를 했습니다. 오늘 예정된 진행로가 밤새 내린 장대비로 훼실된 도로가 많아 관계기관에서 우려의 문의전화가 밤새 왔다고 합니다.
DMZ 250km 통일걷기 프로그램은 통일부가 주관하에 지원을 하지만 현지 작전 지역의 지휘관의 절대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고 산림청 관계자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우기에는 산림청이 수해 복구를 직접 관장하기에 산림청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점심 식사로 목적지인 서화리 이장의 협조로 주민들이 식사를 추진한다고 했으나 길이 훼실되고 비가 내려 진흙길이라 가려고 해도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진부령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어렵게 동의를 받은 향로봉 코스를 걸으려 했던 계획은 장마비로 인한 도로 유실과 악천후로 취소 되었습니다. 어떻든 걷는 행사이기에 걸어야 했습니다. 미시령 고개마루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미시령 옛길을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09:00에 정각에 일행은 광장이 아닌 우중 걷는 태세를 갖추고 버스로 집결을 했고 코스 변경에 대한 이해를 다시 구하고 미시령을 향해 출발을 했습니다.
09:30에 미시령에 도착하니 얼마나 비바람이 쎈지 눈을 뜨기가 어려웠습니다. 단체 사진 촬영을 하는데 우비가 강풍에 미친개 날뛰듯하니 모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사진을 찍는둥 마는둥 버스로 올라간 길을 꺼꾸로 걸어서 내려갔습니다.
결론은 만해마을에서 미시령까지 버스로 갔던 도로를 꺼꾸로 걸어서 만해마을까지 걸어 왔습니다.
미시령 터널이 개통된지 어느덧 15년이 지났고 미시령을 넘나들던 옛길은 뜨문뜨문 한가한 드라이브족들만 이용하는 길로 변한듯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기는 하나 산등성이 아래로 계곡길을 걸어가니 바람이 잦아들어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위를 걷는 우리들은 오히려 수월하였습니다.
빗속의 설악산 계곡을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우비를 입고 열지어 걸어 갔습니다. 이미 아랫도리는 젖었고 신발도 다젖어 무거워서 설악산 계곡의 바람이 몰아치는 우중의 걷기는 그래도 쉽지 않았습니다.
설악산 산림수련관에서 잠시 쉬었고 이전한 군단 특공연대 앞 고가도로 아래에서도 쉬며 미시령을 걸어 내려온 지 2시간 반인 12시에 진부령과 미시령의 갈림길인 인제 삼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인제 삼거리는 황태 삼거리로 불러도 될만큼 대형 황태 식당들이 넓은 광장을 끼고 성업중이었습니다.
점심 후 미시령 옛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비도 계속 내렸습니다. 인제 삼거리에서 한시간 거리의 백담사 입구까지 도로 좌우측은 황태덕장이었습니다.
가로수는 마가목이었습니다. 해바라기가 익어 숙인 모습으로 마가목 열매가 다닥다닥 맺혀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 밑으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마가목으로 가로수를 조성한 지 꽤되었는지 마가목 밑둥이 제법 굵었고 이끼까지 끼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마가목 열매가 다치지 않도록 피해가며 걸었습니다.
저멀리 산중에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었습니다. 용대리 풍력발전단지입니다. 백담사 입구입니다. 도로 양측으로 마가목 가로수 넘어 쭉쭉 하늘을 향해 뻗은 붉은 금강송이 나타났습니다. 남자의 새벽같은 남성을 상징하는 붉은 금강송을 보니 나도 모르게 도로에 괴인 빗물을 힘차게 밟았습니다. 물이 튀었습니다.
덕장은 사라지고 펜션이 나타났습니다. 황태마을이라는 무지개 간판이 커다랗게 도로를 가로질러 설치된 아래를 지났습니다.
14:30 만해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미시령에서 걷기 시작한지 5시간 만에 23,000보 약 17km를 걸었습니다.
간식으로 따끈한 옥수수가 지급되고 잠시 휴식이 있은 후 버스를 타고 다시 출발을 하였습니다.
본디 걸어서 들어가야 했는데 버스를 타고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에 왔습니다. '평화생명 산촌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우비를 벗었습니다. 역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이곳 세탁기로 탈수를 하였습니다. 준비해온 빨래줄을 커텐줄과 이불장의 정첩을 이용하여 방을 가로질러 묶고 빨래를 널었습니다.
식사는 마을에 있는 식당 두곳을 이용하였습니다. 남자들은 마포갈비 라는 식탁 네개의 작은 식당에서 부페식으로 특별히 만든 저녁을 먹었고 아침은 여자들이 석식을 한 오동동이라는 식당에서 교체 이용하여 식사를 합니다.
예전에는 사단 본부가 주둔하여 제법 번성하였으나 이제는 본연의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나 군용품을 파는 군장 가게도 있어 전방 분위기가 남아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오늘 잠자리를 배정 받은 6명이 석식후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셋은 이미 숙소를 함께했으나 세사람은 처음으로 한방에서 잠을 잡니다. 1은 김포 2는 경북 영주 3은 서울 당산동 4는 인천 송도 5는 부산 6은 서울 여의도에서 참가하였습니다.
나이는 모두 60대입니다. 내가 좌장입니다.
대부분 소위 왕년에 한가닥을 했다는 말을 하듯이 걷기 뛰기에는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걸었고 어떻게 운동한다 등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다 일찍 9시 잠을 청하며 4일차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 DMZ
250km 통일걷기
5일차 - 7월1일(금)
어느덧 5일차 입니다.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출발한 50인의 원정대는 인제를 떠나 양구를 향해 걸어갑니다.
오늘 아침도 예외없이 출발 전에 넓은 공터에 집합하여 간단한 몸풀기부터 시작합니다.
인제군 서화리에 소재한 '평화생명 산촌체험' 숙소를 출발한 250km 통일걷기 50인의 원정대는 오랫만에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기분도 산뜻하게 통일 고 고 고를 힘차게 외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몇 발자국 옮겼는가 했는데 벌써 햇볕이 뜨거웠습니다. 며칠 계속 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완전 땡볕입니다. 햇빛이 얼굴에 뜨겁게 다가 왔습니다.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평촌교에 이르러 서화천의 맑은 물을 따라 걷다가 내린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서화천의 맑은물이 훍탕물의 내린천과 합류하며 흙탕물에 휩쓸리는데 물소리는 더욱 컸습니다. 오랜 가뭄 탓인지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심적리 군부대 옆의 내린천을 따라 테크길이 길게 설치되었고 아까시나무 그늘이 시원했습니다. 50분을 바삐 걸었고 첫 휴식이 있었습니다.
아스팔트가 깔린 언덕 길을 올라 갔습니다. 우측은 훼손된 군부대 정문 철망 뒤로 호박돌로 지은 오각형의 멋진 초소가 쓸쓸히 낡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걷고 걸고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었습니다. 언덕이 아닌 고개였습니다. 다니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고 중앙선도 없었습니다. 자전거 우선길이라는 흰색 글씨가 아스팔트 위에 새겨 있었습니다. 평화누리길 자전거 도로 표시입니다. 아마 가장 넓은 자전거길이라 생각합니다.
도로인데 배수가 없어 위에서 아래로 도로 가장자리로 흐르는 물들이 아래쪽에는 발목을 적셨습니다. 굽이굽이를 돌때마다 폭우가 내린 뒤라 곳곳에서 도로 위로 물이 넘쳤습니다.
고개를 중간쯤 걸어 올라 다락골 시험장이란 간판이 서있는 곳에서 휴식을 했습니다.
그늘도 별로였고 화장실도 안보였는데 숲속에 나무 사이로 건물이 보여 가서 보니 화장실이었습니다. 근처에 야전 전술훈련장이 있었던듯 옛날 4~50년 전에 사용했던 앞은 칸막이가 없이 남자들이 일렬로 서서 소변을 보고 뒤로 한칸식이나 큰거를 뚝 떨어뜨리는 형태의 화장실이라 여자들에게 선뜻 이용하라고 하기가 조금은 그러했습니다.
쉬라 했으니 한 시간 가까이 고개를 걸어 오른 것인데 정상은 감감했습니다. 도로 위를 흐르는 맑은 물에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샤워했습니다.
11:30 드디어 고개마루에 도착했습니다. 아스팔트 길도 끝입니다. 오르기도 끝입니다. 삼거리입니다. 꼭지점에 작은 블럭으로 지은 초소가 있고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좌로 휘돌아 내려 가는 길이 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을 삘삘 흘리며 2시간 30분을 걸어 올랐지만 대한민국 최고 청정지역의 높고 푸르고 맑은 하늘아래 주위는 울창한 숲에서 깨끗한 산소를 내뿜고 연 이틀간 비가 내린 탓에 배수구가 없는 아스팔트 위로 맑은 물이 곳곳에 흘러 시원함이 있어 걸을만 했습니다.
무슨 고개인줄도 이정표도 없는 고개마루에서 일행은 달콤한 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개는 하천이나 고개마루가 있는 산의 능선이 지역간 경계를 이루나 고개마루인데 아직 인제입니다.
좌로 휘돌아 내려갑니다. 막길입니다. 장대비에 흙이 쓸려 내려가 주먹만한 돌들이 서로 나서고 월남전의 정글 영화 속을 걸어가는 양 나무가지가 시야를 가려 오직 눈을 내리깔고 걷기에 집중합니다.
다시 좌로 꺽이지는 곳에 양구 0.8km 원통 36.2km 라는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양구군 동면 지석리입니다. 양구입니다.
그늘지역에 진창도 있고 뻘같이 푹 빠지기도 하나 시원합니다.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길이 끊어졌습니다. 껑충 건너 뛰기가 좀 겁나는 도랑이 생겼고 물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건너야 했습니다.
넓은 굽이에 정자가 있고 양구 경계에 들어서며 길 양쪽의 철조망과 걸쳐있고 지뢰지대를 표시하는 삼각형 팻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자 앞에 앉아 쉬며 양구지역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나온 고개가 예전에는 양구와 인제를 있는 유일한 통로로 양구 사람들은 아리랑 고개라 불렀다고 합니다.
드디어 막길을 벗어나 아스팔트로 나섭니다.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입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1시10분입니다. 양구통일관에 도착했고 추진해온 점심을 광장에서 배급받아 뒷편 그늘막 휴게소에서 먹었습니다.
양구통일관 너른 광장 중앙에 있는 파란색의 그리팅맨 앞에 집결하여 단체 사진을 찍고 14:30에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해안읍내를 가로질러 좌로 해안 성당 앞을 지나 만대저수지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농로를 따라 걷다가 만대저수지 앞 오르막 좁은 농로에서 10분간 휴식을 했습니다. 농로는 차들이 자주 지나갔고 휴대 의자에 앉아 그냥 쉬었습니다. 그늘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오르막 허허벌판 가운데 농로입니다.
저 앞 멀리 동행하는 빨간색 관광버스가 보였습니다. 거기가 종점입니다. 거기서 부터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거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익히 압니다. 그래도 아직은 30여 분간을 더 걸어 가야합니다.
만대저수지의 물이 콸콸 내려오는 배수구가 있는 다리 위에서 잠시 쉬며 생일을 맞은 대원 쏜 아이스께끼를 맛나게 시원하게 쭉쭉 빨았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걷기 종점인 만대저수지 위의 학사 바위가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삼거리입니다. 09:00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부터 걸어온 50인의 통일걷기 원정대는 출발한 지 7시간 30분을 만에 32,000보를 걷고 23km의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이로써 5일차의 250km 통일걷기 일정이 마감되었습니다.
버스로 30여 분을 이동하여 '청춘양구 농촌체험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부터 3일간 양구지역을 걷는 동안 잠과 밥을 해결하는 곳입니다. 이곳 분들이 점심때도 걸어가는 장소까지 점심 식사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1,312 고지 대암산 아래의 예전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앙구군 동면 팔랑리 주민들이 운영주체인 농촌 수익사업입니다.
감사합니다.
2022' DMZ 250km 통일걷기
6일차 - 7월2일(토)
08:30 통일걷기 원정대 일행은 동행하는 관광버스에 타고 만대저수지 위에 위치한 국립 DMZ 자생식물원 앞까지 갔습니다. 이곳은 어제 5일차 통일걷기의 종점입니다. 오늘 6일차는 이곳부터 이어걷기를 하여 피의능선 전적지 비가 있는 동면 월운리까지 걸어 갑니다.
공터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기념 촬영을 하고 원정대 구호로 대장이 통일이라고 외치면 대원들은 고~고~고 구호를 외치고 출발을 합니다.
만대저수지 위에서 보이는 해안면은 1,000m 고지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매우 넓은 분지로 화채수반처럼 생겨서 일명 펀치볼로 불립니다.
해안면의 면적은 약 62㎡로 분지인 한라산 백록담의 30㎡ 보다 두 배 이상 넓고 백두산의 천지 약50㎡ 보다 더 넓은 국내 최대의 분지로 해안면의 자연적 지형은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경이로운 장관입니다.
사방을 에워싼 1,000고지 이상의 능선을 둘레길로 만든다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리라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통일걷기는 양구군 해안면의 국립 DMZ 자생식물원에서 돌산령을 넘어 동면의 피의 능선 전적비까지 가는 것으로 도솔산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돌산령 이정표를 따라 453번 지방도 아스팔트 위로 걸어갑니다. 하늘은 맑고 푸르러 아주 높은데 하얀 구름이 그리는 그림은 평화입니다. 도로를 따라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절로 청량하나 이미 아스팔트는 구워져 있고 햇볕은 따가워 흐르는 땀은 가슴팍을 지나 배꼽을 점령할 태세입니다.
돌산령터널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진로를 틀어 걷습니다. 터널이 뚫리기 전의 옛 도로를 따라 돌산령 고개 정상을 넘어야 합니다.
터널로 들어가는 차도 별로인데 구비구비 돌아가는 옛길이니 정상부에 이르러 군용차량 세대를 본 게 다 입니다.
평지나 내리막길은 50분을 걷고 10분을 쉬었으나 오늘같은 땡볕에 돌고 돌아 올라가는 길은 40분을 걷고 10분을 쉬며 군대의 행군처럼 걸어 갑니다.
21살 여자부터 29세의 청년이 최연소이고 대개는 50~60대인 남자 21명 여자 21명 앰브런스 한 대 요원 2명 45인승 대형 관광버스가 동행을 하고 원정대를 인솔하는 대장과 2명의 남자팀장 2명의 여자팀장 총괄지원팀장과 다용도 차량 한 대 등 총 51명으로 꾸며진 DMZ 250km 통일걷기 원정대입니다.
땡볕의 아스팔트 도로를 주구장창 걷기는 고역입니다. 7명으로 조를 짜서 매일 선두를 바꾸어 가며 구령도 붙이고 조별 구호도 외치고 전체 구호도 외치고 때로는 동요도 부르고 때로는 국민가요인 사나이로 태어나서~를 부르기도 합니다. 쉬었다가 출발을 할 때는 반드시 조별 구호를 외치며 인원과 개인 소지품 등을 점검합니다.
오르막 중간에 있는 대암샘터의 물은 찬게 아니라 얼은물 그 자체였습니다. 호스에 입을 대고 들이키니 뱃속이 냉장고로 변한듯 했습니다. 그만큼 더웠고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호스 두 개에서 나오는 물의 량도 많았습니다.
돌산령 정상부에 다다랐습니다. 펀치볼 전망대입니다. 걷기 시작해서 2시간 반이 지났습니다. 사진도 찍고 본부에서 얼음과 아메리카노 복숭아 아이스티 칸타타 헤이즐넛향 음료를 제공하여 맨발로 휴식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입니다. 내리막이라 해서 걷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빠진 기운을 북돋운다고 대장이 통일을 외치면 일동은 고 ~고~고를 세번 외침니다. 가요도 부르나 힘솟는 행진풍의 노래를 하기에는 이미 때를 넘긴 나이테들입니다.
행군을 한 지 4시간이 지난 1시에 돌산령 산채골 이라는 농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숙소인 청춘양구 농촌체험관에서 점심을 날랐습니다. 조별로 신발 벗고 발을 딲고 그늘을 찾아 뷰페식으로 차려진 점심을 맛있게 편하게 먹었습니다.
나의 발바닥도 열기가 심하여 물집이 생길 조짐이 있어 발을 씻고 양말을 갈아 신었습니다.
조금 내려오니 돌산령터널을 지난 차량들과 만났고 일행은 도로를 따라 조성한 테크를 걸었습니다. 도로를 건너 숲길로 접어들자 벌통이 길을 막았고 난생 처음으로 수많은 벌들이 날아다니는 벌촌의 가운데를 숨죽이고 지났습니다. 옆에서 벌에 쏘인 여성 대원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아픔을 호소했습니다. 바로 사격장 옆 공터라 불가피하게 쉬었고 따라 온 의료팀이 치료를 했습니다.
흙길이 비에 패여 도랑이 생기고 물에 잠겨 어쩔수 없이 발목까지 빠지는 흙길을 한참 걸어가니 평화의 길 표지판이 붙은 정자가 제대로 쉼터의 기능을 했습니다. 휴식 소리가 나오면 이제는 대원 대개가 무조건 신발을 벗고 때로는 양말까지 벗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세시를 지나고 있었고 철조망 넘어로 물이 보였습니다. 월운저수지입니다. 저 멀리 뚝이 끝나는 지점에 동행하는 빨간 관광버스가 보였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이고 종점입니다. 피의 능선 전적비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기념 촬영을 하고 수십의 계단을 올라가 전적비 앞에 거수 경례로 예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26,000보를 걸었고 거리는 18km였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세탁기로 탈수까지 하여 각 숙소에 널고 석식 먹습니다. 식후 의료팀이 치료를 하는데 반 이상의 대원이 물집 치료를 했습니다. 나의 발은 아직 건재합니다. 내일은 모르지만.
감사!
2022' DMZ 250km 통일걷기
7일차 - 7월3일(일)
일정이 바뀌었다. 어제 종착지였던 양구군 동면 월운리의 '피의 능선 전적비' 앞에서 출발하여 민통선 북방 지역인 비득검문소를 지나 하야교 (금강산 가는 길)를 거쳐 이목정 안내소를 지나 두타연갤러리까지 걷는 것이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꺼꾸로 두타연갤러리 앞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는 다른 길을 택했다.
'청춘양구 농촌체험마을' 숙소에서 원정대를 태운 버스는 두타연터널 앞 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에 있는 두타연갤러리 앞에 섰다. 예외없이 준비체조로 몸을 풀고 '오미리 산촌 생태체험관'을 향해 송현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정표는 두타연 3.6 km와 직연폭포 5.8 km를 나타내고 있다. 가칠봉에서 발원하여 북한강으로 합류하는 수입천을 따라 걷는다. 평화의 댐 22km 화천 75km 라는 대형 이정표를 지났다.
일요일이라 바이크족들이 한가한 도로를 질주한다. 가죽 잠바를 입은 오토맨들이 우리 일행을 보자 관객 앞에 묘기를 부리듯 핸들에서 두 손을 놓고 달린다. 그들은 신이 났고 우리들은 손을 들어 반가움에 답례를 보내며 스스로를 격려한다.
아스팔트 도로의 가장자리에 설치된 안전로를 따라 걷는다. 하늘은 높고 맑고 푸르고 햇볕은 쨍쨍이다. 길 건너에 편의점인 GS25 양구 백두산점이 있다.
그 앞에 있는 송현교 다리를 건너 하천을 따라 물길을 따라 평화의 댐쪽으로 뚝위를 걸어가다 밤하늘 캠핑장 뒷편에서 휴식을 했다.
수입천을 따라 물길을 따라 물가의 길을 따라 걸으니 하천에 다리가 놓여있고 물소리가 크게 들리며 흰물결이 휘둘아친다. 직연폭포다. 보통 폭포는 계곡에 있으나 직연폭포는 하천에 있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신선함은 있다.
다시 아스팔트를 따라 보행로인 평화의길을 걷는다. 태양은 머리 위에 있고 아스팔트에서 뿜는 열기가 얼굴을 데우고 목은 타들어 간다.
방산초교 앞 보행로인 평화의길 테크 위에서 휴식을 한다. 지원차량이 곁에 오더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파는 얼음이 든 컵과 비닐팩에 든 각종 음료를 나누어 주었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의 주농산물은 수박인듯 걷는 내내 비닐하우스는 수박이 주종인데 그도 더위에 지친듯 잎새가 힘이 없다.
하천을 건너려고 대장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배낭에 매달았다. 하천의 폭이 족히 20m는 넘는데 평소에 차가 다닐 수 있게 콘크리트를 깔아 길을 만들었으나 수량이 많고 물결이 세어 되돌아 섰다.
뒤돌아 방산면 금악리의 각시교를 건너 바로 앞의 방산면 오미리에 위치한 오미막국수에서 막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바로 옆에 오미리 산촌생태체험관이 있다. 아침을 먹은 지 6시간이 지난 한시 반이었고 걸은 지 4시간 반이 지났다.
버스를 타고 위험한 구간을 이동한 후 다시 걸어야했으나 날씨가 너무 덥고 물길을 건너려다 잠시 지체하며 물에 들어갔던 많은 대원들이 물놀이를 원하자 일정을 바꾸어 시원한 물길을 택했다. 근처 하천에서 즐거운 휴식을 보냈고 7일차 일요일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저녁은 각 조별로 식사 이외에 부침개를 직접 조리하여 만들어 먹는 체험의 시간도 있었다. 만보기에 27,000보와 20km 의 거리가 표시 되었다.
감사!
2022' Dmz 250km 통일걷기
8일차 - 7월4일(월)
양구군 동면 팔랑리는 대암산과 도솔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 분지로 유명한 해안면과 돌산령을 경계로 한다. 그곳에 '청춘 양구 농촌체험마을'이 있고 "2022 250km DMZ 통일걷기 원정대는 3일밤을 잤고 이제 통일을 기원하며 또 다시 파주 임진각 종착지를 향해 길을 나선다.
버스는 460번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이상을 달려 평화의 댐을 통과하여 바로 이어진 해산터널을 지나 해산령이라는 커다란 비석이 서있는 해오름 휴게소에 09:45에 도착했다.
해산터널을 지난 460번 도로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바로 우측 산등성이에 길을 막는 차단기가 있다. 차단기는 비수구미 계곡을 따라 비수구미로 가는 들머리인데 막혀있으니 옆에 나있는 개구멍 길을 통과한다.
해산령은 남쪽의 해산(1,140m)과 북쪽의 재안산(1,060m) 사이의 고개로 해발 702m이고 해산터널(1,986m)이 있다.
개구멍 들머리를 통과한 일행은 군용트럭이 지나갈 정도의 넓은 자갈 돌길을 바삐 내려간다. 경사는 심하지 않으나 들려오는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에 홀리거나 처음보는 들꽃에 한눈을 판다면 바로 미끄러지는 화를 당할만큼 흙이 없는 모래 자갈 돌로 이루어진 걷기에 험한 길이다.
홀로 또는 대 여섯이 산천경개를 유람하는 길이라면 한걸음 한걸음을 띄울 때마다 계곡은 한폭의 동양화를 그리니 감탄사로 노래하며 느릿느릿 걷겠다만 군대식으로 행군하는 원정대이니 행여 미끄러질새라 넘어질새라 집중 또 집중하며 걸어간다.
계곡을 건너니 휴식이란 소리가 앞에서 들리나 바로 서지 않고 조별로 그늘을 찾아 계속 간다. 걸은지 50분이 지났고 앉아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잠시나마 편히 쉰다.
일렬로 줄지어 가는 등산로가 아닌 대 여섯 명이 옆으로 가도 남을 넓은 길이다 보니 비록 첩첩산중을 걸어간다 하나 길이 워낙 험한 돌길이니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도 계곡의 물소리는 그저 소리일뿐으로 걸음을 멈추니 젖은 옷으로 몸이 차다.
내리막도 구비구비를 얼마나 돌았는지 모르겠고 돌때마다 계곡에 난 다리를 건넌다. 다리에서 보는 계곡은 그림이다. 물은 돌을 때려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바위를 비끼며 이슬로 날린다. 내려가서 그림 속에 몸을 담아 시원함에 묻히고 싶다.
700고지의 해산령을 만만치 않은 길로 내려 가자니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린다. 두 시간을 넘겨 비수구미에 도착했고 바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한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로 방송에 몇 번 오르내렸다. 오늘의 비수구미는 오지가 아닌 화천의 명소로 장터가 되었다. 대형 천막형 건물 아래에 한 번에 200명 이상이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식탁이 있고 대형 선풍기 네 대가 쌩쌩돌고 정수기 옆의 명함판에는 칼라 명함이 수 백장이 놓여있다.
식사를 하며 파로호 호수 위에 늘어진 구름다리를 감상한다. 12,000원 산채정식은 산채가 12가지 정도 나오는 맛집이다. 막걸리도 소주도 맥주도 파는 잘나가는 대중음식점이다.
몇몇은 야전식 긴 의자에 드러누웠고 모두는 양말을 벗고 콸콸 나오는 물에 발을 씻어 피로를 풀었다. 한 시간 넘게 점심시간의 휴식을 갖고 한 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그곳을 떠났다.
호수 주위에 설치된 철조망을 따라 산길을 조금 걸으니 파로호 호수 옆으로 비포장 도로가 나있고 도로를 따라 평화의 댐 아래에 조성된 세계평화 아트파크에 도착하여 휴식과 세계평화의 종을 조별로 타종을 함으로 8일차의 통일걷기를 마무리했다. 22,000보에 15 km를 걸었다.
4시 정각에 원정대는 버스로 화천의 평화의 댐을 떠나 철원을 향해 이동을 했다.
두 시간 이상을 달렸다. 버스에 오르니 눈이 먼저 잠겼다. 마주오는. 차량도 없는 한가한 전방도로는 구비가 너무 심해 간간히 서있는 이정표도 볼 수가 없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아 살펴본들 화면은 커져도 글씨는 커지지 않으니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낯설은 길을 돌고 돌아 꾸불꾸불 헤매며 달려 귀에 익숙한 지명인 다목리 삼거리를 지나도 한참을 달리더니 철원 갈말읍 문혜리의 "철원 병영체험 수련관"으로 들어선다. 3층 건물의 최신 시설로 겉도 안도 깔끔하다. 내무반은 분대용으로 개인 관물대에 큼직하고 에어컨도 빵빵하여 오늘은 최고의 잠을 잘 것 같다.
감사!
2022' DMZ 250km 통일걷기
9일차 - 7월5일(화)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위치한 "철원 병영 체험 수련원"은 3층 건물로 1개 내무반에 10명이 사용할 수 있다. 내무반 천장에 에어컨이 있는데 나는 아직 열대야의 밤에 이렇게 시원한 밤을 지샌적이 없다. 10명이 동시에 사용할 샤워실도 있고 화장실은 비데도 있어 고속도로 휴게소를 능가한다. 10명이 사용할 침상에서 4명이 잠을 잤으니 지금까지의 숙소 중 최고의 시설에서 가장 널널하게 최상의 쾌적한 밤을 보냈지 않았나 싶다.
철원 오대쌀로 지은 밥에 돼지고기찜을 얹은 맛있는 아침을 먹고 원정대는 또 다른 길을 걷기 위해 동행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철원군 서면 와수리 김화교 근처의 화강쉬리공원에 9시쯤 도착했다. 체조로 몸을 풀고 다리 아래를 지나 흐르는 화강 물길을 따라 걸어갔다. 김화교를 건너기 직전은 쉬리 휴게소라 하여 유원지 시설이 있고 일대는 철원군에서 종합적으로 개발하여 노천풀장을 비롯하여 축구장 등 각종 체육시설이 있다.
화강은 철원 일대를 흐르는 강으로 김화 수리봉에서 발원하여 김화읍, 서면을 지나 북으로 흘러 한탄강에 유입되는 하천이다.
김화교에서 화강의 둑을 따라 평화의길이 이어져 있고 둑길따라 남대천교까지 느티나무를 가로수 심어 놓아 대낮의 체감온도 32도의 땡볕을 피해 아름다운 느티나무 그늘길을 여유롭게 걸어갔다.
남대천교에서 화강을 건너 강둑을 따라 걸어갔다. 잡초가 무성하고 아까시나무가 울창하여 좌우에서 갈길을 막았지만 부드러운 흙길이 발바닥의 열기를 식혀서 좋았다.
도창리 민들레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식당에서 콩국수로 점심을 먹었고 이어 버스를 타고 전선휴게소에 도착하여 끊어진 금강산 철로를 보았다.
이곳은 북쪽의 1,062m 높이의 오성산이 인근 대한민국의 지형지물을 압도하고 있는 지역으로 백골 마크가 곳곳에 있다.
유곡리에는 서울시가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운영하는 철원 평화캠핑장이 있다. 그곳에서 주민들이 수박 화채와 찐감자를 제공하며 원정대를 반겼다.
남방한계선이 보이는 전방의 마을이라 50여 명의 일행이 한 곳에 머무를 숙소가 없었다. 각 마을마다 정부 지원하에 여러 형태의 사업을 하는데 대규모는 아니기에 오늘의 숙소는 여러 곳으로 갈렸다. 남자들은 "두루미가 자는 버들골 마을"의 남 녀 경노당과 팜스테이 주택에서 서너명씩 나누어 잤고 여자들은 10여 분 거리의 "금강산 철길 마을 체험관"의 독채를 숙소로 했다. 석식은 금강산철길 마을의 주민들이 주인인 마을 공동체가 제공했다.
통일걷기는 정부 지원하의 사업이기에 먹는 것은 다양하게 풍부하게 제공되나 숙소는 조금 열악한 편이다. 그래도 죽는 그날까지 붙어만 준다면 해마다 따라 다니겠다. 진정 꿈의 휴가라 나는 단언한다.
오늘의 만보기는 약 24,000보에 18km였다.
감사!
2022' DMZ 250km 통일걷기
10일차 - 7월6일(수)
DMZ 250km를 걷는다지만 실질적으로 걷는 길은 DMZ(DeMilitarizedZone) 즉 비무장지대가 아니다. 비무장지대는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절대 걸을 수 없다. 단지 허가받은 군인만이 관할하의 제한된 작전지역만을 걸을수 있을 뿐이다.
휴전선에서 각 남북 2km 구간을 남 북방 한계선이라 정했고 우리는 군의 작전상 남방한계선에서 각 지역 특성에 따라 민간인의 접근을 통제하여 휴전 상황하에서의 경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민간인통제선을 정하고 검문소를 두어 통제를 한다.
우리들 원정대가 걷는 길은 민간인 통제선의 안쪽 지역을 걸으며 통일의 의지를 다지며 평화의 의미를 새기는 상징적 의미로 DMZ 250km 통일걷기라 하였으나 군 작전상 많은 제약이 있어 버스로 이동을 겸하고 최대한 통제선 안쪽 지역에 평화의길이라 정하고 걷기를 하고 있다.
민통선 안의 철원군 동송읍 정연리의 금강산 철길마을에 숙소를 정했던 여자들과 옆 동네인 동송읍 이길리의 두루미가 자는 버들골 마을에 숙소를 정했던 남자들은 버들골 마을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로 통제선 검문소 밖으로 20여 분간 이동하여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 소재 철원노동당사에 도착하였다.
철원노동당사는 해방 당시 38선 이북 지역으로 김일성 정권이 1946년에 지은 건물로 6,25 한국전쟁의 상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3층 건물로 매우 견고하고 위압적이며 건축학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물이다.
철원노동당사를 둘러본 원정대는 9시 정각에 칩결하여 평화의 길을 따라 소이산 방향으로 통일걷기를 시작했다. 사요리를 지나 율이리 벌판을 거쳐 백마고지역에 이르렀다. 버스로 20분을 지나온 지역을 포함한 광대한 평야지역은 북의 오성산 그늘하에 있어 철원 평야를 빼앗긴 김일성이 몇 날 며칠을 배 아파했다는 전설이 있다.
철원읍 대마리에 소재한 백마고지역을 떠나 평화의길을 따라 경기도 지역인 역고드름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고 백마고지역을 출발한 지 한시간 만에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에 위치한 역고름에 도착했다.
휴전선의 동쪽 끝인 고성을 출발하여 인제 양구 화천 철원을 거쳐 드디어 10일 만에 경기도 땅에 들어왔다.
역고드름은 일제시 용산과 원산을 잇는 철도공사를 하다 중단한 폐터널로 북한군이 탄약창고로 사용하자 유엔군 폭격으로 무너진 폐터널로 역고드름이 생성되는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 다시 신탄리역을 향하여 평화의길을 걸어갔다. 자전거길인 평화누리길과 겹치는 구간이기에 길은 모두 아스팔트길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상황 속에서 포장된 길을 한낮에 걷는 것은 군대에서도 혹서기라 하여 피하는데 우리의 통일걷기는 날씨 불문 시간불문이다.
철도중단점을 지나간다. 예외 없이 각 조별로 기념 촬영을 하지만 물한모금을 편히 앉아 마실 시간도 주지않고 원정대 대열은 저 앞을 가고 있다. 한여름날의 한낮의 강행군이다.
인근 고대산에서 나는 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만든 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신탄리역에 도착하여 하였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대광리역 방향으로 평화의길 이정표를 따라 대열은 이동을 한다. DMZ 통일걷기는 그만큼 숙식에 제한적 요소가 많다. 어제밤도 두 군데서 나누어 잤고 밥도 아침 저녁을 다른 곳에서 먹고 오늘도 점심시간을 지나 대광리역으로 가는 것은 통제되는 민통선 또는 전방지역을 지나기 때문이다.
원정대는 계속 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차탄천 물길을 따라 하천둑 위에 표시된 평화의길 이정표를 따라 서쪽으로 걸은지 한 시간 여가 지난 13:40에 부대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도착했다. 걷는 도중에 제공되는 냉음료와 물을 많이 마셔 어느 대원은 아예 입을 대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콜라를 구입해 그것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탈진이 걱정되는 아침밥을 먹은 후 폭염 속을 6시간을 걸었으니 밥이 넘어가는 게 이상했다. 나도 찬물에 밥을 말아 부대찌개를 떠 먹었다.
점심 후 다시 걸었다. 신망리역을 목표로 역시 차탄천 물길을 따라 평화의길 이정표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온 몸은 땀에 쩔고 쩔어 팬티에 쓸린 허벅지 안쪽은 탱크가 지난간듯 하고 발바닥의 물집은 보통이고 발가락 사이의 물집이 터져 쓰라림에 저는 대원들도 속출했지만 서로를 응원하며 걷고 또 걸었다.
신망리 역이다. 휴전 후 수복지역에 들어온 새로운 희망의 삶을 표출한 역이름이다. 오늘의 행군이 끝났다. 5시다. 9시부터 걸었으니 9시간 동안 한여름에 아스팔트 위를 걸은 셈이다. 40,000 여 걸음에 거리는 30km를 넘게 걸은 한여름 낮의 강행군이었다.
감사!
2022' DMZ 250km 통일걷기
11일차-7월7일(목)
북삼교 건너 북삼사거리에 위치한 징파나루 수련원에서 아침식사로 삼이 빠진 닭탕으로 원기를 북돋은 일행은 버스로 군남 홍수조절지로 향했다.
군남 홍수조절지는 북한이 북한지역에 있는 황강댐을 새벽에 갑자기 방류하여 6명이 희생 당하는 사건이 있은 후 2013년에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만든 댐으로 물을 가두는 용도가 아닌 조절용으로 댐 아래에 두루미를 테마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9시에 댐이 위치한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를 출발한 50인의 통일걷기 원정대 일행은 임진강의 둑 아래에 조성된 평화누리길을 따라 걸어갔다. 목표는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의 숭의전까지 18km로 경기 평화누리길 11코스이며 경기둘레길 10코스이다.
북삼교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여 평화누리길의 자전거길로 걸어갔다. 보통 걷는다면 둘레길을 걸어 가는데 통일걷기는 평화의길이라 칭하며 자전거길과 둘레길을 필요에 따라 걷는다.
북삼교에서 임진교까지 둑위의 자전거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날씨는 흐렸고 바람도 간간히 부는 강둑위의 길을 6조로 편성된 50여 명의 원정대는 각 조별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며 행열을 이루어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시원하여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이대로 백두산까지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문득 가지 못함에 갈 수 없음에 열이 났다.
임진교를 건너며 임진물새롬센터가 보였고 대열은 점심 식사를 하러 센터 건물로 들어갔다. 센터는 걷는 사람들을 위하여 본관 1층 입구에 무인 점포와 휴게소를 운영한다. 휴게소는 편한 의자와 탁자가 있어 도시락 등 넣어간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음료와 커피도 준비되어 있고 무인 점포는 과자 등 몇 개 품목이 있으며 냉방이 잘 되어있고 화장실 시설도 훌륭한데 원정대는 그곳 휴게실과 잔디밭에서 화진포에서 먹었던 전투식량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일행은 다시 종착지 숭의전을 향해 발걸음 옮겼다. 임진강 주상절리길를 걸어갔다. 장마로 물에 잠긴 흔적이 키보다 높게 있고 길은 물에 휩쓸려 돌길로 변했고 뻘이 깔려 미끄러운 길도 많았고 진흙길은 지진이 난듯 갈라져 길이 없어지고 싱크홀처럼 꺼져있기도 하여 벗어나는 동안 한 줄로 걸었다.
동이대교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고 본부에서 제공한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했다.
동이대교 앞 동이리에서 숭의전에 이르는 길은 지나가는 차량도 많은데 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가야 한다. 원정대장과 4명의 팀장 그리고 앰브런스와 의료진 2명과 지원스태프와 지원 차량은 안전을 위해 차량으로 길을 막고 동시에 건너갈수록 바삐 움직였다.
당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비가 올락말락 빗방울이 비치기도 했지만 빗속을 걷지는 않았다. 숭의전에 15:30에 도착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었고 며칠간 원정대의 뒤에서 조용히 함께 걸었던 통일부 고위 담당자의 인사가 있었다. 걷기는 오늘로서 끝나고 내일은 두어시간 모레는 한두시간 걷는다고 했다. 27,000보에 20km를 걸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였던 징파나루 수련원으로 왔고 석식 후 통일부 관계자가 남북문화교류에 대해서 강의가 있었다.
감사!
2022' 250km 통일걷기
12일차-7월8일(금)
6월27일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여 12박13일의 일정으로 DMZ 250km 통일걷기에 나선 원정대 42명은 원정대장 이하 스태프 8명의 지원을 받으며 드디어 목적지 파주 임진각을 코 앞에 두고 있다.
강원도의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을 지나 경기도의 연천 포천을 지나 드디어 12일 차인 오늘 파주땅에 들어섰다.
원정대를 태우고 징파나루 수련원을 출발한 버스는 황포돛대로 유명한 장남교 아래 적성면 두지리의 임진강 두지나루에 도착하여 대장의 통일 구호에 대원 모두는 고~고~고를 힘차게 외치며 통일걷기를 시작했다.
김포의 한강 하류에서 합류하여 서해로 빠지는 임진강 물길을 따라 자장리 쉼터를 거쳐 장좌리의 논길 진흙길을 지나 고랑포 나루를 스치고 장파리에 도착했다. 11,000보 8.2km였고 오늘의 통일걷기는 마침표를 찍었다.
장파리는 임진강을 건너는 리비교로 인해 판문점에 근무하는 미군들의 위락지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었으나 노후하여 철거중인 리비교처럼 지금은 그 당시의 흔적만
있는 마을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탄 일행은 리비교가 아닌 파평면 두포리의 전진교를 통과하여 임진강을 건넜다.
조선의 명의 허준의 묘가 있는 허준로를 지나 민간인 통제선 안쪽에 있는 목포와 신의주를 잇는 1번 국도를 따라 통일촌에 들어섰고 통일촌 휴게소 식당에서 장단콩으로 만든 순두부로 점심을 먹었다. 이 도로는 정주영이 소떼를 몰고간 도로이기도 하다.
점심 후 도라산 평화공원으로 이동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회담한 도보다리를 본떠 만든 다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개성 공단을 기념하여 공단에 세우려다 북의 엉뚱한 트집으로 세우지 못해 그곳에 세운 기념 조형물 등을 관람하였다. 평화공원은 코로나 사태 이후로 개점 휴업 상태였는데 몇 년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일행이 찾아왔다고 관리하는 통일부 직원이 설명을 하는 등 특별히 맞이하였다.
이어 경비대대의 버스로 갈아타고 JSA를 지나 남방한계선을 통과하여 비무장지대에 들어갔고 그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지나 미류나무 사건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미류나무가 잘려나간 밑둥 위에 기념판이 있다.
이어 아3 초소에 올라갔다. 판문점을 관할하는 JSA 지역내에서 가장 높은 고지이고 하얀 분사분계선 푯말이 20m 전방에 보였고 대한민국의 특별한 대성동 마을 북측의 기정동 마을 개성공단 등 북한의 땅이 바로 눈 아래에 펼쳐지는 대한민국 최근접 초소이다.
대성동 마을은 46가구에 183명의 주민이 살고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없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만 있으며 주민들은 년중 8개월 이상을 거주해야 한다고 한다.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100m 높이로 펄럭이고 있는데 북한의 국기대는 165m 라고 한다.
바로 아래의 판문점 지역에 도착했고 몇 년 전 귀순한 오청성 북한병사의 생생한 총격의 탄흔 등 흔적도 보았다. T1, T2, T3 숫자가 파란 건물 외벽에 표시된 중립국 감시위원회 회담 건물을 보았고 남북회담 장소로 사용되었던 중앙의 T2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군사분계선 북쪽의 상징적인 북한의 땅도 밟았고 회담장 내부의 모습을 세세히 흥분된 표정으로 직관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회담을 했던 푸른색의 도보다리를 직접 눈 앞에서 보았고 사진도 찍었다.
남방한계선이 아닌 바로 한발자국 건너면 휴전선 너머 북쪽땅인 판문점 지역에서 사진 촬영도 허락했고 모든 이동 및 설명에는 JSA 경비대대원들이 일행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에스코트하였고 초병들 일부는 미군이었는데 곁에선 한국군보다 왜소했다.
북측의 판문각 및 북측 초소는 철수를 하여 인적이 없었고 자유의 집과 평회의 집 JDO 등 판문점 일원의 모든 건물 및 구역 내에서 초병 및 경비대대의 보호아래 제한적인 그러나 폭넓은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다.
원정대 일동 모두는 방송으로만 접했던 역사의 현장이고 남북 분단의 현장이며 생과 사 갈림길의 현장인 판문점 일대를 직관하며 본인이 역사의 증인인양 놀람과 긴박감으로 휴대폰에 담기에 흥분으로 점철되었다.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휴대폰에 담긴 사진들을 공유하며 모두는 사진 속에 빠져드는데 일행을 태운 버스는 숙소인 캠프 그리브스 유스호텔에 도착했고 이어 잠시 짐을 정리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통일촌 부녀회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했다.
숙소 강당에 대원과 스태프 모두가 모여 12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는 화합과 여흥의 장기 자랑 시간을 갖고 힘듦과 어려움을 이겨낸 스스로에게 긍지와 자부심의 박수를 보냈다.
내일은 마무리 걷기를 짧게 하고 완주증을 받고 해단식이 오전 중에 있을 예정이다.
그간 하루 평균 30,000보 정도를 걸었고 거리로는 약 21km를 걸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
첫댓글 카페에 들어와 나의 글이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올린 나의 글을 읽어봅니다. 그간 통일걷기를 하는 매일매일
일과가 끝나면 홀로 휴대폰으로 통일걷기를 정리하여 경기평화누리길 카페의 방방곡곡 카테고리에 게시를 하고
이튿날 아침 7시에 '좋은 아침"의 안부 꽃사진과 함께 단톡방 친구들에게 보낸 2022" DMZ 250KM 통일걷기의
후기글을, 마지막날 버스로 집으로 가는 도중에 그간의 1~12차 글을 모아 단톡방으로 보낸 글입니다.
그글을 이 공간에 옮겨주신 대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피곤 속에 그 모두를 휴대폰으로 하였기에
많은 오류와 탈자 오자가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차 감사와 어떤 분에게 진정 도움이 되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