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알려진 반야심경에는 온통 "공(空)"이란 단어로 가득합니다. 대승경전을 읽을 때 이 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그저 한글 뜻풀이에 의해서 "비었다" 라는 뜻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쉽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곰곰히 생각하여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어렵고, 공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슨 천재수준의 지적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공(空)"의 기본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모든 것은 항상 변화속에 있어서 고정되고 정해진 바가 없다"
이 뜻을 잘못이해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컵도 있고 책상도 있고, 돈도 있고, 나도 있고 너도 있는데 정해진 것이 없다니 이것이 무슨 말인가? 눈에 뻔히 보이고 만지면 알 수 있고, 냄새로도 알 수 있고, 형태가 있는데 정해진 바가 없다니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이 모두 허무한 것이 아닌가?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면 죄도 없다는 것이니 내가 무슨 짓을 어떻게 한다해도 상관없겠구나!"
실제로 공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여 떠올릴 수 있는 생각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비가 내린다"고 했을 때 "비"라는 것이 실제로 있어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물이라는 하나의 변화상태에 "이름"을 붙인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도 그저 세상을 인간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뿐 그 실상을 이름만으로, 또는 문장등의 언어만으로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 없다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살인자"라고 말했다 칩시다. 당연히 이 "살인자"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누군가 다른 사람을 죽였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그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사람을 죽였을 때 비로소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살인자"라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원래부터 있어서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행동을 했을 때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비"라는 것이 있어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물방울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내리기 전에는 당연히 "구름"이었거나 "수증기"같은 다른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였겠지요.
이것을 응용해보면 현실에서 "나"는 고정된 "나"일 수 없습니다. 내가 남자의 행동을 하면 남자가되고 여자의 행동을 하면 여자가 됩니다. 어머니의 행동을 하면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의 행동을 하면 아버지가 됩니다. 친구의 행동을 하면 친구가 되고 선생님의 행동을 하면 선생님이 됩니다.
따라서 원래부터 나는 악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니기에 악한 행동을 하면 악한 사람이 되고 천한 행동을 하면 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당시에 바라드와자라는 바라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처님을 향해 천한 사문이라며 욕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바라드와자에게 "당신은 무엇이 천하고 귀한 것임을 아십니까?"라고 반문하셨습니다. 바라드와자는 그와 같은 부처님의 질문을 듣자 잘 모르겠으니 부처님께 설명해보라 청을 합니다. 당시 인도에는 카스트계급이 있어서 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그 계급적 질서가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그 과보로써 각자의 계층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질문을 한 바라드와자에게 이런 대답을 하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공의 의미는 "고정된 모든 편견과 선입견"으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정된 편견과 선입견은 스스로를 해치고 남을 해칠 수 있기에 바른 견해로써 세상을 바라보고 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세상과 스스로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공"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