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베트남 북부여행 ⑧하노이 호안키엠호수 –
물속의 검을 받아 외세를 물리쳤다니
저에게 주신다면 통일한국 이룬 후에
반드시 돌려드릴 테니 잠시잠깐 빌려주
배달9214/개천5914/단기4350/서기2017/06/2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호안끼엠(還劍湖) 호수 : '되찾은 劍의 호수'라는 뜻으로 하노이 시내 한가운데의 공원과
함께 자리 잡아 하노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는 호안 키엠 호수
는 레 로이(LE LOI)라는 어부가 명나라 침략 시 명군을 물리쳐 주기를 간절히 빌면서 고기를
잡던 중 신비로운 칼이 올라왔다고 한다.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지지를 얻어 호수의 신인
거북이로부터 받은 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베트남을 승리로 이끌었단다. 이에 15세
기 여 왕조를 세운 왕이 되었고, 그 호수에서 제례를 올리며 승전 보고를 하던 중 호수 속에
서 황금거북이 올라와 그 검을 물고 들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베트남인들은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거대한 거북이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성스러운 동물로 여긴다고 한다.
덧붙임)
베트남 북부여행 - 8) 호안키엠 호수와 바딘광장 그리고 胡志明 - (8_1) 다시 하노이로 이동
오던 길 되돌아 다시 하노이로 가는길,
고속도로는 그대로인데
맑던 하늘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이른바 스콜현상이다.
점심은 분짜정식이었다.
운무 낀 들판 너머로 산이 보였는데
도로 옆 표지판을 보니 "옌뜨"라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바로 우리가 못 간 "옌뜨사원"이 있는 산인가 보다.
(8_2) 호안키엠(還劍湖) 호수 주변
다시 홍강을 건너는 철교를 지나
하노이 시내를 한없이 달리다 보니
호안키엠('되찾은 劍의 호수'라는 뜻) 호수인데
여기가 스트리트카 관광 출발점으로 "36거리"를 돌아다닐거라 한다.
"36거리"는 36개의 상공인 조직이 36개의 거리 별로
정해진 상품을 만들어 팔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비슷하게 생긴 골목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100년 넘은 건물들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트리트카에 올라 인파가 넘실대는
골목을 여기저기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공자묘가 나타나고
"성요셉성당"이라는 형태만 로만틱한
우중충한 콘크리트 성당이 나타난다.
그나마 스트리트 카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는데
수많은 오토바이들 사이를 40여분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와
아무런 사고없이 다시 호안끼엠 호수로 돌아와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자에 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노인,
서로 스킨십을 한는 청춘남녀들... 모두 자유롭다.
배달9214/개천5914/단기4350/서기2017/06/2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베트남 전통 쌀국수-분짜(Bun cha)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분짜(bun cha)는 잘 익힌 숯불돼지불고기를 야채 및 상추에 싸서
쌀국수 면과 함께 느억맘(nuoc mam)이라는 베트남 전통 멸치젓갈로 만든 특유의 소스에 담궜다 먹는
하노이지역 고유의 음식. 숯불돼지갈비와 함께 먹어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이기도 함.
2. 호안끼엠(還劍湖) 호수('되찾은 劍의 호수'라는 뜻) 주변
3. 응옥선 사당
호안끼엠 호수 가운데는 있는 응옥선 사당은 13세기 때 몽골군을 무찌른 베트남의 영웅
쩐흥다오(Tran Hung Dao)를 비롯해 문(文)·무(武)·의(醫)의 세 성인을 기리는 사당이다.
* 호치민시티 (Ho Chi Minh City)
위치 베트남 남부
인구 8,224,400명 (2015 추계)
면적 2,095.5㎢
요약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가장 큰 도시. 옛 이름은 사이공[西貢].
1862~1954년에 프랑스 보호령 코친차이나의 수도였고,
1954~75년에는 남베트남의 수도였다.
메콩 강 삼각주 북쪽 사이공 강 연안, 남중국해에서 약 80㎞ 떨어진 곳에 있다.
오늘날 호치민시티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오랫동안 캄보디아 왕국의 일부였으며,
17세기에 처음으로 베트남인들이 들어왔다.
18세기부터 프랑스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프랑스 상인들과 선교사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859년 프랑스에 점령되었고,
1862년에 베트남 황제 투 두크[嗣德]가 맺은 조약으로 공식적으로 프랑스에 넘어갔다.
코친차이나의 수도가 된 사이공은 주요항구도시로 변모하여
아름다운 대저택, 인상적인 공공건물, 가로수와 잘 닦인 대로를 갖춘 대도시로 성장했다.
시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철도도 건설되었다.
1940년 일본에 점령되었으나 프랑스 식민정부가 1945년 일본군에 억류될 때까지
프랑스 관할하에 있었다. 이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 호치민을 주축으로 하는 하노이의 베트남 독립동맹이
베트남의 독립을 선포했지만, 이곳에서 열린 축하행사는 폭동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결과 프랑스 군대가 시를 장악했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1954년 제네바 회의로 종식되었으며, 베트남은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졌다.
베트남이 분단되자 이곳은 남베트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북베트남에서 피난민들이 몰려오면서 정치와 문화가 풍부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초에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즉 베트남 전쟁 동안에는 미국의 군사작전 본부였다.
1968년 전투로 도시 곳곳이 파괴되었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1976년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호치민시티로 개명되었다.
공산주의의 지배를 받으면서 호치민시티는 행정기능을 잃어버렸다.
공산 정부는 인구를 감소시키고 외국 수입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민간기업들을 국영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1975년 이후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가동을 중지한 반면,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새로운 투자사업들이 시도되었다.
오늘날 영화사들은 지역 영화를 만들어 수입에 대체하고 있으며,
국영 수공업체에서는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재료들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한다.
수출품으로는 가구, 양탄자, 옻칠 그림 및 그밖의 예술품 등이 있다.
한때 주점과 음식점이 번성했으나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1912년에 세워져 서양 사람들의 사교 중심지가 되었던
케르클 스포르티프 건물은 오늘날 시민을 위한 박물관이 되었다.
20년 동안 국회 건물로 쓰였던 오페라 하우스는 국립극장으로 바뀌었으며,
사이공대학교와 반한불교대학교가 합쳐져 국립호치민대학교가 되었다.
번화했던 탄손나트 항공은 1975년에 사실상 문을 닫았고,
지금은 베트남 항공이 국내 다른 도시들로 정기운항하며,
에르프랑스가 파리로 정기운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