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송신送信
김형진
뻐꾸기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눈을 뜬 채 누워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바로 창문 앞인 듯 가까이서 들렸다. 우리 집이 아파트 맨 꼭대기 층이라 가끔 옥상 턱에 앉아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 서로 어르며 날아 발코니 앞으로 지나는 까치 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뻐꾸기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뻐꾸기 소리의 진원지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거실에 나와 바깥을 둘러보아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발코니에 나가 길 하나 사이에 있는 공원 쪽을 살펴보았으나 푸른 숲뿐 뻐꾸기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요즈음 공원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를 자주 들어오긴 했다. 그러나 그때 듣던 숲 속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리와는 달랐다.
아름다운 목청이라기보다는 있는 힘을 다해 고함치고 있는 듯한, 무엇엔가 한이 맺혀 절규하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발코니 창문을 열었다. 낡은 집이라 찍지직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며 창문이 열리자 "뻐어…" 끝마무리 못한 울음소리를 남기고 비둘기만한 새 한 마리가 앞 동 옥상에 세운 안테나에서 날아올랐다. 가슴 안에서 파문이 일었다. 뻐꾸기가 날아오른 안테나에 눈길을 준 채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숲속에서 울어야할 뻐꾸기가 시멘트를 부어 지은 아파트에서, 그것도 옥상에 설치한 안테나에 앉아 울었다는 게 예사로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방송국을 차릴 수 없는 새라서, 전파를 잡아 사람들에게 그림과 소리를 전달하는 안테나를 통해 자기의 존재를 알리면서 속 깊이 품고 있던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타지에서 울어야할 뻐꾸기가 시멘트를 부어 지은 아파트에서, 그것도 옥상에 설치한 안테나에 앉아 울었다는 게 예사로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방송국을 차릴 수 없는 새라서, 전파를 잡아 사람들에게 그림과 소리를 전달하는 안테나를 통해 자기의 존재를 알리면서 속 깊이 품고 있던 말을 했는지도 몰랐다.
타지에서 3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여 돌아온 고향, 문명의 소음과 분진粉塵 피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헤매다가 찾아낸 곳이 공원과 언덕 사이에 있는 이 아파트였다. 다 낡아 삐걱거리는 집이긴 하지만 맑은 공기와 한적한 분위기와 계절 따라 변하는 숲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게 즐거웠다.
이 아파트의 터는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산이었다. 숲이 우거진 산 중동을 깎고 뭉개어 터를 닦았다. 나무를 베어내고 흙을 파 내려가다 보니 거대한 바위산이었단다. 사람들은 폭약을 쑤셔 박아 바위를 깨뜨렸다. 폭음이 진동하고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고, 원래 살던 새들은 혼비백산하여 삶의 터전을 버렸겠지. 그렇게 닦은 터에 거대한 기계가 들어와 쿵쿵 쾅쾅 시멘트를 들어부어 벽을 치고 천장을 짓고….
인간의 횡포에 쫒겨난 새의 후손들이 아파트 바로 옆 좁은 공원에 살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참새는 '짹짹' , 꿩은 '퀑퀑 ', 꾀꼬리는 '꾀꼴꾀꼴' 뻐꾸기는 '뻐꾹뻐꾹' 울었을 테니 그 새끼의 새끼들이라 해서 어미의 어미들이 놀던 곳이나 살던 곳을 모르쇠할 수 있었겠는가. 옥상 안테나에서 울다 창문 여는 소리에 놀라 날아간 놈도 그 어미의 어미가 살던 곳에 와 자기들을 쫒아낸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뻐꾸기가 날아간 안테나에서 눈을 떼고 창문을 닫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쇠와 시멘트와 페인트뿐 나무 하나, 풀 하나, 흙 한 줌 없는 실내였다. 이런데 살면서도 문명의 소음과 분진을 피해 자연 가까이 사는 양 즐거워했다는 게 황당했다. 아니, 부끄러웠다.
공원 숲속 어디선가 "뻐꾹뻐꾹" 구슬피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날카롭게 가슴을 후비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