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味적인 시장-10]-[전남 구례 오일장(4,9)] -2019. 05. 28. 금. 경향신문(김진영 작성) 기사-
■ 구례는 최고의 배산임수 명당, 수산물·임산물 모여 제법 큰 장터 뒷동산은 지리산, 마을을 지나는 실개천은 섬진강인 전라남도 구례의 오일장. 그곳은 사라지던 우리밀 불씨를 끝까지 지켜낸 곳이다. 자동차를 가지고 구례에 갔다면 구례읍내에서는 무조건 구례여성문화회관에 주차할 것을 권한다. 주차하기도 편리하거니와 오일장까지 빠른 걸음으로는 3분, 천천히 걸어도 5분이면 닿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회관 주변으로 구례에서 이름난 노포들이 호위하듯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구례 오일장은 식당가와 장터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식당가 간판 중 [38점빵]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이 하나 있다. 38선이나 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구례 장날인 3일과 8일에만 문을 여는 식당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십여년 전에 귀농한 부부가 SNS 교육장 겸해서 문 연 식당으로 국수나 비빔밥 중 하나만 판다. 가을에 능이 같은 버섯이 나오면 버섯국수를 팔고, 그 외 계절에는 산나물비빔밥을 판다. 산나물이 십여 가지 들어가면 8000원. 그보다 적은 가짓수가 들어가면 7,000원. 가짓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미나리, 죽순, 쑥부쟁이, 엄나무 순, 오가피 순 등 맛난 나물에 텃밭에서 키운 상추까지 갖출 건 다 갖추었다. 구례에서 나는 유정란과 쌀 그리고 직접 담근 고추장까지 좋은 재료로 꽉 채운 비빔밥이다. 38점빵(061-781-1471). 구례장에서 반드시 구매해야 할 품목 중 하나가 제피다. 제피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향신료 중 하나다. 제주도의 자리돔 물회를 먹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파리가 제피다. 비린내 없애는 데 제피만 한 것이 없다. 잎은 생으로 매운탕이나 물회에 넣어서 먹는다.
장아찌 담글 때도 한여름에 전을 부칠 때도 부추 대신 제피 잎만 넣고 전을 부치면 씹을 때마다 입안을 감싸는 제피의 향이 아주 좋다. 제피 열매는 갈아서 추어탕이나 어죽에 넣기도 하는데, 지리산 인근의 함양, 남원, 구례 등지의 식당에 가면 후추보다는 제피가 많이 놓여 있다. 제피는 후추나 산초와 같이 아린 맛이 있으면서 둘과 달리 상큼한 맛이 있다. 그런 제피가 구례장터에서는 한 바구니에 5000원이면 살 수 있다. 부각은 찹쌀풀을 재료에 바르고 말린 것이다. 김에 바르면 김부각, 가죽나물(참죽나물)에 바르면 가죽나물부각 등 주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제피에 바르면 제피부각이 된다. 8개 1만원이다. 가죽부각은 이보다 훨씬 비싸다. 먹는 방법은 프라이팬에 살살 굽는다. 그러면 조금 부풀어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먹는다고 한다.
■ 장터 초입엔 상설 뻥튀기 점포 ■ 향신료인 제피는 필수 구매 품목-후추처럼 아리면서도 상큼한 맛
여느 장터처럼 초입의 만두와 호떡, 도넛 파는 점포에 사람이 붐볐다. 다만 뻥튀기 장사는 여느 장터와 달랐다. 보통은 차에 뻥 튀기는 기계와 가스를 싣고 왔다가 장이 파하면 떠나는데, 구례는 세 집이 나란히 점포를 열어 놓고 뻥튀기를 팔고 있다. 말하자면 상설 뻥튀기 점포인 셈이다. 할머니 두 분, 그리고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 한우 내장탕과 다슬기수제비 식당-해장 능력으로는 우위 가리기 힘들어 ■ 참게탕 국물은 꽃게보다 한 수 위
주차를 여성문화회관에 하면 좋다고 했는데 회관 주변으로는 내장탕, 다슬기수제비, 육회비빔밥 식당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찍듯이 회관 주변을 감싸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식당 근처에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전문점도 두 군데나 있어 이래저래 좋다. 구례의 주된 음식 품목 중 하나가 육회비빔밥인데 육회비빔밥집 기준으로 오른편에 목화식당이 있다. 맑은 한우내장탕을 내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내장탕을 주문하면 맑게 끓인 탕이 나온다. 살짝 내장 특유의 향이 나지만 양념장을 넣는 순간 사라진다. 잘 삶아 부드럽고 고소한 내장 맛이 일품이다. 목화식당(061-782-9171).
섬진강에서 나는 것 중에서 가격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다슬기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경상도에서는 고디라 부르고, 어느 지방에서는 골뱅이라 하기도 하지만 다슬기가 맞다. 다슬기를 넣고 끓인 수제비는 푸른빛을 띤다. 맑은 국물이지만 청양고추를 넣고 끓여서 생각보다 얼큰하다. 밀가루 반죽을 두 번 치대고 숙성해서 뜬 부드럽고 쫄깃한 수제비와 얼큰 시원한 국물 맛이 좋다. 딸려 나오는 맨 김에 밥을 올리고 다슬기 장을 올려 먹는 맛도 별미다. 여럿이 간다면 매콤하게 무친 다슬기에 따스한 밥을 비벼 먹어도 좋다. 수제비 없이 국물만도 주문할 수 있다. 한우내장탕을 파는 목화식당과 아주 가깝다. 전날 술에 찌든 속을 달래려고 한다면 짬뽕이냐 짜장이냐의 골치 아픈 선택처럼 주차장에서 심한 갈등에 빠질 수 있다. 해장 능력으로 우위 가리기가 쉽지 않다. 부부식당(061-783-9113). 구례에서는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가 가깝다. 섬진강을 끼고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화개장터 앞 남도대교를 건너 왼쪽은 광양, 오른쪽은 구례다. 오른쪽 구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이내 식당 하나가 나타난다. 시원한 참게탕 맛이 일품인 곳이다. 섬진강 주변에서 나는 장어, 은어, 참게로 요리한다. 섬진강의 참게는 임진강의 참게와 종이 다르다. 국내에 서식하는 참게는 네 종류다. 참게, 애기참게, 동남참게, 남방참게다. 가장 작은 애기참게만 바다에 살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와 민물을 오간다. 남방참게는 멸종 단계이고, 기수역(강물이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곳)이 살아 있는 남쪽 섬진강에서는 동남참게, 북쪽 임진강에서는 참게가 잡힌다. 참게가 많이 소개된 까닭에 참게 제철을 가을로 알고 있지만, 종류에 따라 제철이 다르다. 지구도 남반구와 북반구가 계절을 달리하듯이 가을이 제철인 참게와 달리 동남참게의 제철은 여름 초입이다. 참게는 꽃게나 대게처럼 살이 많지 않다. 별로 씹을 게 없지만, 고소한 알과 된장을 풀어 끓인 탕국물은 꽃게나 대게보다 한 수 위다. 쉴만한물가(061-782-7628).
■ 구례 인근 지역에만있는 닭 숯불구이 ■ 우리밀로 만든 빵집도 인기 만점
구례 혹은 순천이나 하동에서 몇몇이 자리 잡고 먹기 좋은 음식 중 하나가 닭이다. 국내 유원지 어디를 가든 토종닭 파는 곳이 있다. 한 집 건너 하나일 정도로 많지만, 구례에서는 유독 숯불구이로 낸다. 닭 한 마리를 주문하면 두 달 정도 키운 토종닭의 살을 발라내 부위별로 구워 준다. 먼저 닭다리 이어 날개, 가슴살 순으로 준다. 껍질이 붙어 있는 다리 살을 한 번 먹어보면 지금까지 닭구이를 왜 안 먹었는지 자책하게 될 정도다. 푹 삶아 흐물흐물한 백숙의 껍질과 달리 숯불 향이 나는 껍질은 닭구이의 정수(精髓)다. 소금만 뿌리고 구웠을 뿐인데 씹는 맛이 압권이다. 잘 구운 날개를 먹으면, 닭 날개가 지네 다리처럼 많았으면 하는 상상에 빠진다. 마무리는 남은 닭뼈로 육수를 내 끓인 죽이 나온다. 닭요리야 어디서든 먹을 수 있지만, 닭구이는 구례, 하동, 순천에서 맛볼 수 있다. 당치산장민박(061-782-7949). 구례에는 우리밀이 나고 그걸 밀가루로 만드는 우리밀 전용 제분소도 있다. 우리밀로 만드는 수제비나 국숫집도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빵집이다. 막 구워낸 빵은 나오자마자 바로 사라진다. 3년 전 귀농해 구례읍사무소 인근에 빵집을 열었다가 최근에 대로변으로 이전한 목월빵집이다. 구례에서 나는 우리밀 중에서 금강밀과 진주에서 나는 토종밀인 앉은뱅이밀로 빵을 만든다. 근방에서 만든 곶감이나 과일에 크림을 넣은 빵, 제피와 수제 햄을 넣고 만든 빵이 인기다. 오전 11시 오픈이지만 문 열기 전부터 사람들이 모인다. 목월빵집의 빵은 단맛이 없다. 한참 씹다 보면 숨어 있던 단맛이 나타난다. 목월빵집(061-781-1477).
구례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고속도로, 4차선 국도,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 넘어 뱀사골로 가는 길이다. 천은사에서 성삼재를 넘어 뱀사골에서 남원 산내면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사시사철 아름답고 고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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