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 27
영국에 와서 한동안 한국에서 ‘주워듣고 배워서 아는 것’과 다른 것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런던 하면 생각나는 것이 비와 안개였다.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영국 신사들이 우산 없이는 외출을 안 할 정도이고, 워낙 안개가 많이 끼여 ‘런던 포그(fog)’ 또는 공해와 합쳐진 ‘런던 스모그(smog)’가 런던을 표현하는 단어라는 선입관과 통념이 있었다. 그런데 살아 보니 런던에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나 안개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4월부터 10월 말까지의 날씨는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겨울에 거의 안개를 볼 수 없고 비마저 별로 안 오고 날씨도 따뜻하다. 날씨에 대한 불만이 하나도 없다. ‘영국 신사’라는 말 때문에 영국인은 모두 신사인 줄 알았는데 문자 그대로의 영국 신사는, 특히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는 정말 찾기 어려웠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국인은 모두 ‘퀸스 잉글리시(Queen’s English)’를 쓰고 특히 BBC 아나운서는 모두 ‘표준(Standard)영어’를 쓴다고 듣고 왔는데, 웬걸 실제 길거리에서 만나는 영국인 중에는 표준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말에는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특히 놀란 것은 BBC 아나운서들 중 사투리 억양이 들어간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각종 프로그램 사회자들 중에는 사투리가 하도 심해 처음에는 짧은 듣기 실력으로 이해하지 못해 입만 쳐다볼 정도였다.
▲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 요즘 인기를 얻기 위해 표준발음 대신 서민 영어를 흉내 내다 국민적 놀림감이 되고 있다. / ⓒ 연합
영국의 표준영어는 ‘런던 부근 잉글랜드 남동부 지방인 홈카운티의 고급교육을 받은 중산층이 쓰는 영어’라는 규정이 있다는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영국에는 표준영어라는 정의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방의 말이 저 지방에 가면 사투리가 되는데 왜 표준말이 있어야 하느냐고 영국인은 생각한다. 맞춤법은 존재해야겠지만 그것도 강제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영국인은 생각한다.
물론 영국에서 학교, 공문서, 언론에서 쓰는 문법, 단어, 철자, 구두점 규칙은 분명 있다. 그러나 이도 일종의 불문법같이 옛날부터 내려온 전통에 의해 쓰이는 것이지, 누가 혹은 어느 기관이 정해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법체계가 불문법이라서 그런지 영어마저도 그렇다. 영어는 ‘관습에 의해 만들어지지 공식 규정으로 다스려지지는 않는다(English is governed by convention rather than formal code)’라는 말이 영어를 잘 나타낸다. 영어에도 수많은 사전이 있지만 이는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단어를 수록할 목적이지 이런 단어를 이런 규칙 내에서 사용하라는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 사전들과 다르다. 영국인의 생각에는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관념이 확실히 있다. 살아 있으니 변화는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인식이다. 자연적인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하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지난주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제목부터가 거슬렸다. ‘표준말 쓰던 아이들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 기사는 혁신도시로 내려간 공공기관 직원 아이들이 사투리를 쓴다고 엄마들이 난리를 친 사건을 다루었다. 흡사 지방 사투리가 완전히 불가촉(不可觸)천민이나 쓰는 말처럼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조금 과장하면 기가 막혔다. 왜 이렇게 표준말에 강박관념이 생겼는지, 어쩌다 지방 말이 그렇게 천시당하는 신세가 되었는가 하는 생각에 영국과 한번 비교해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한국의 유별난 표준말과 맞춤법 타령이 좀 편하지 않아서였다. 표준말과 맞춤법에 대해 시비를 걸면 많은 사람들이 ‘아니 그러면 표준말과 맞춤법이 없어도 된다는 말이냐’고 질문을 해 오겠지만 내 대답은 ‘예!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데요’이다. 물론 상당한 수준의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내 주장이 귀에 들어올 수 있겠지만 한번 영국식으로 생각해 보자.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다시 말하지만 영국 영어에는 한국말과는 달리 표준영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 물론 불문의 합의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대놓고 이 말은 맞는 말이고 저 용법은 틀리다는 공식 규정이 없다. 그렇다면 영국인이 비꼬듯이 말하는, 그러나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표준영어의 정의를 하나 소개해 보자. ‘표준영어는 비록 원어민들이 읽고 쓰기 위해 배우기는 하나 그들 대부분이 실제 쓰지 않는 종류의 영어를 말한다.(Altough Standard English is the kind of English in which all native speaker learn to read and write, most peoples do not actually speak it.)’
이상하지 않은가. 표준영어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도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있다는 표준어마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니 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면 다음 답을 한번 들어 보라. ‘분명 표준영어는 있다. 학교에서 배우고 공문서에 사용되는, 쓰고 읽기 위한 표준영어는 있다. 그런데 표준발음은 없다.’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진실에 근접한 답이 된다.
▲ 영국 영어의 지리적 방언 분포는 크게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네 분류로 나뉜다. 여기서 잉글랜드는 남부와 북부로 다시 나뉘며 이 안에서 세부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표준발음이라고 볼 수 있는 발음은 있느냐’고 물으면 이것도 물론 ‘있다’고 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국 표준발음(British Received Pronunciation·약어 RP), 비비시 영어(BBC English), 퀸스 영어(the Queen’s English), 사립기숙학교 영어(Public School English), 옥스퍼드 영어(Oxford English)’를 표준발음이라고 보면 된다. 모두 같은 말이다. 사투리가 전혀 들어있지 않은 ‘중립적인(neutral·general)’ 영국 일반인들이 보통 ‘고급 발음(posh accent)’이라고 부르는 발음이다. ‘또박또박 끊어서 분명하게 힘주어 말하듯이(clipped accent)’ 하는 발음이다. 잘못 들으면 독일어 같은 발음의 영어가 영국인이 말하는 고급 영어다. 미국식 발음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처음 접하면 중학생 영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단어 철자 그대로 발음하고 딱딱 끊어서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영국인이 말하는 표준발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국인의 겨우 3%만 이러한 발음으로 말한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97%는 자기 지방 억양으로 말을 한다. 한국에서 ‘표준말 쓰는 서울 사람’들이 멸시하듯이 말하는 ‘시골 사투리 영어’로 말을 한다.
그렇다면 왜 영국인 3%만 쓰는 말이 영국 영어를 대표하는 발음이 되었느냐는 의문을 풀어 보자. 표준발음은 200년 전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생겼다. 대영제국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왕족과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과 사립기숙학교 학생, 정부 관리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영국 식민지로 퍼져나가 결국 대영제국의 말이 되어버렸다. 거기다가 1920년 BBC가 첫 방송을 시작할 때 이 표준발음을 BBC 공용어로 쓰기 시작해서 그렇게 알려졌다. 1950년대까지 중산층 사람들은 가능하면 이 표준발음을 하려고 노력했고 BBC 아나운서들도 거의 표준발음을 사용해 실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다. 그래서 아직도 BBC 방송을 제대로 안 들어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BBC 아나운서는 모두 표준발음만 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1970년대 들어와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물결을 일으키던 사회주의와 자유, 민권 같은 정치·문화 시류의 영향으로 “지방 말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BBC가 지방 발음을 많이 사용하라고 정책을 과감히 바꾸면서 영국인의 영어가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2010년 BBC 사장은 “BBC 방송에서 지방 영어가 아직도 귀하므로 더 많이 사용하자”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결국 1900년대 들어와서부터는 겨우 3%의 인구만 표준발음을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전국에 산재한 기숙사립학교를 가면 모든 학생들이 그 지방 말이 아닌 표준발음으로 말을 한다. 결국 표준어가 사립학교 출신들이 쓰는 말이라는 정의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영국에서 기숙사립학교 학생들 숫자가 학생 전체 비율로 보면 딱 3%라는 점이다. 3%만이 쓰는 영어가 표준어라는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영국은 계급사회라고 한다. 계급을 가르는 가장 큰 척도는 부나 지위가 아니다. 바로 이 영어이다. 길거리에서나 상점에서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표준발음으로 말을 하면 한 번 더 돌아보는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영어는 계급에 맞게 써야 한다는 뜻이다. 고위 정치인 중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표준어를 쓰고 있는데 요즘은 이를 바꾸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 의해 차차기 총리감으로 언급된 현 내각 실세 서열 2위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이다. 그는 요즘 괜히 발음을 바꾸려고 해서 방송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언론 만평에서 놀림감이 되고 있다. 표를 가진 대다수의 유권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피나는 노력의 일환이다.
요즘 나온 신조어로 ‘머머세트(murmer -set)’라는 단어가 있다. 일반인과 친근해지려고 시골 사투리로 말하는데 제대로 안 되어 티가 확 나는 경우를 머머세트라고 부른다. ‘중얼거리다(murmur)’에 영국의 시골 이름인 ‘서머세트(Somerset)’를 합쳐서 만든 조어이다. ‘모크니(Mockney)’도 마찬가지다. 런던 동부 부두 노동자들이 쓰던, 거의 범죄세계의 은어 같아 런더너들도 전혀 못 알아듣는 런던 사투리 ‘코크니(Cockney)’를 ‘흉내(mock)’ 낸다는 조어이다. 영국 중산층이 멋으로, 혹은 정치인이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시도를 놀리는 말이다. 자신의 계급(상급 중산층·upper middle class)을 벗어나 서민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오스본 장관의 노력이 성과를 낼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국가적 놀림감(national sport)’이다.
이런 추세는 심지어는 여왕의 손자이자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그들이 쓰는 말이 전통 왕실 영어와 상당히 달라 국민에게 훨씬 인기가 있다. 여왕, 필립공이나 찰스 왕세자가 쓰는 거만한 영어보다는 상당히 평균적인 영어에 가까운 발음을 하고 있어 일반인이 친근감을 느낀다. 이들은 어머니 다이애나 공주의 뜻에 따라 일반 학교를 다녔고 일반인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영어를 배웠다. 전통적으로 왕족은 어릴 때는 집안에서 개인교습을 받고 고등교육만 밖에서 받게 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선견지명이 당시는 전통을 깨는 철없는 짓이라고 난리가 났지만 이제 빛을 발휘하는 셈이다.
▲ 영국 고등학생들의 일상
보통 영국 학생들은 집에서는 사투리를 쓰다가도 학교에 오면 표준발음을 썼는데 이제 이런 경향도 사라지고 있다. 유명인사나 TV 사회자나 출연 연예인들이 사투리를 거리낌없이 쓰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사투리를 쓰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산층 사립학교 학생들마저 이제는 그런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립학교는 럭비나 크리켓을 하고 공립학교는 축구를 한다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운동만 봐도 계급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영국에서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고는 사람 취급을 못 받을 정도가 되었다. 고위 정치인들도 축구를 좋아하든 말든 팬으로 지지하는 축구클럽을 하나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영국인을 가르던 계급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데 가장 바꾸기 어렵고 자랑스러운 계급의 표상으로 통하던 표준영어마저 대중문화 물결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도 사투리로 말하면 인간적으로 보여 인기가 치솟으니 어쩔 수 없다. 스포츠 스타들이 사투리로 거침없이 말하니 젊은이들도 당연히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표준발음 혹은 고급발음이 줄어드는 것이 ‘누릴 자격 없는 특혜(undeserved privilege)’에 대한 반감이 대중들 사이에 팽배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진단한다. 과거에는 정치 사회 지도층이 나라를 잡고 흔드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별난 발음도 묵인하는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좀 다르다고 한다. 그들이 부모 잘 만난 덕에 그들만의 교육을 받아 저런 영어를 한다는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서는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을 비롯해 특히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상당히 조심을 하는 편이다. 이제는 영국도 자신과 같은 보통 사람이 끌고 가야 한다는 분위기이다. 그러다 보니 말도 특별한 말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말을 써야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서 영국인 사이에서 표준발음 비율은 더욱 더 줄어들 전망이다.
표준발음은 이제 영국에서 사라지고 있는 영어이다. 물론 아직도 그런 발음을 쓰면 굳이 이력서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출신계급과 학력을 짐작할 수 있어 출세에 도움이 된다. 또 그런 출신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일을 쉽게 하기 위해 자신들과 같은 출신을 선호하고 보호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대기업, 은행, 고급 공무원, 법조계 같은 고급 직장에서는 아직도 ‘자신들만의 발음’을 쓰는 직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이런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인터뷰할 때 발음과 억양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반 기업에서는 이제 아니다. 상당기간 동안은 표준발음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 기업에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과연 얼마나 갈지는 상당히 의문시된다. 특히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이나 인기인들이 표준발음을 구사할 경우 얼마나 살아 남을지는 의심스러울 정도다. 다니엘 크레그를 이어 다음 제임스 본드로 언급되고 있는 세 명의 영국 배우가 모두 이튼스쿨 출신이다. 그런데 그들을 써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강하다.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성공적인 크레그가 서민적인 노동자 타입의 터프가이 이미지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여론이 팽배한 데서도 보통 사람, 보통 언어를 중시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영국인이 자신들은 안 쓰는 표준발음을 영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에게는 권한다는 사실이다. 영어사전에 나오는 발음은 바로 표준발음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발음 사전’은 출간 목적을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이라고 밝혀 이 사전이 영국인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이 쓰는 발음은 자기들끼리만 쓰고 외부인인 너희들은 이런 우스운 발음만 쓰라는 게 영국인의 심보인 듯도 하다. 하긴 시골 사투리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을 보면 친근감이 가지만 좀 징그럽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나중에는 진짜 영국인은 사투리로만 말하고 외국인은 표준발음만을 쓰는 우스운 일도 발생할 수 있을 듯하다.
▲ 영어권 국가들
영국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 중에는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사투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사투리를 영국인은 자랑스러워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일부 상류층이나 고급교육을 받은 중산층 영어가 모든 영국인을 대표하는 영어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 영국에는 영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는 돈도 다르고 법도 다르고 공휴일도 다르듯이 말도 원래 달랐다. 영어에 밀려 인구의 겨우 5% 미만이 사용하던 웨일스어의 경우 그동안 되살리려는 노력을 펼쳐 이제는 20%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고 있다. 1%도 안 되는 인구가 알고(사용이 아니다) 있던 코니시어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영국 남서부 지방 콘월의 노력도 그런 것이다. 심지어는 표준영어가 잉글랜드 남동부 사투리라는 말도 있다. 발음·억양·단어 심지어는 문체까지 어떤 경우에도 표준말은 없다는 뜻이다.
한 지방의 언어를 표준말로 내세워 너무 강조하는 일은 또 하나의 줄 세우기다. 맞춤법은 분명 있어야 하지만 전 국민 모두가 똑같은 억양이나 발음으로 말을 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사투리에 대한 열등감을 가질 이유도, 표준말이라는 ‘서울 사투리’를 쓴다고 우월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자라는 세대에게까지 그런 고정관념을 심어 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영국의 주요 정부기관이나 대기업 본사가 대부분 지방에 있다는 사실도 사투리 중시 경향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권석하 /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