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사리(瀉痢)의 분뇨(糞尿)의 색(色)을 논(論)하다
고인(古人)은 소아(小兒)의 사리(瀉痢)의 분(糞)이 황(黃)하고 산취(酸臭)하면 모두 위열(胃熱)로 작(作)하여 논치(論治)하니, 이는 큰 잘못(:誤)이다. 음식(飮食)이 위(胃)에 들어가 화(化)하면 분(糞)이 되니, 황(黃)하지 않음이 없고 취(臭)하지 않음이 없다. 어찌 황색(黃色)에 산취(酸臭)하는 것이 열(熱)이겠는가?
지금 대인(大人)의 분(糞)으로 증험(:驗)하자면 위(胃)가 강(强)하고 분(糞)이 실(實)하면 그 색(色)은 반드시 심황(深黃)하면서도 노창(老蒼: 힘이 없다)하니, 이것이 양(陽)이 온전(:全)한 정색(正色)이다.
만약 순황(純黃)하고 창(蒼)하지 않으면서 분(糞)에 눈색(嫩色)이 있다면 위(胃) 중의 화력(火力)이 곧 이르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이다.
또 만약 담황(淡黃)하여 백(白)에 가까운 경우도 있는데 백색(白色)에 가까우면 반(半)은 황색(黃色)이니, 분(糞)의 색(色)이 반(半)이 황(黃)이면 곡식(穀食)의 반(半)만 화(化)한 색(色)이다.
분기(糞氣)가 산성(酸腥)하면 곡식(穀食)이 반(半)만 화(化)한 기(氣)이니, 곡식(穀食)이 반(半)만 화(化)하면 위(胃) 중의 화력(火力)의 성쇠(盛衰)를 알 수 있다.
만약 반드시 분(糞)이 청(靑)하거나 분(糞)이 백(白)하고 기미(氣味)가 취(臭)하지 않아야 한(寒)이라고 한다면 깨달음이 너무 느린(:遲) 것이다.
따라서 단지 분색(糞色)의 천심(淺深)과 분기(糞氣)의 미심(微甚)으로 곧 위기(胃氣)를 별(別)할 수 있다. 양화(陽和: 겉으로만 좋다)로 이루어진 색(:成色)이라도 지혜로운(:智) 자는 미연(未然)에 알 수 있는데, 하물며 현연(顯然)하다면 어떠하겠는가? 따라서 내가 이르기를 "고인(古人)들이 분(糞)이 황(黃)하고 산취(酸臭)가 있는 것을 화(火)라고 말한 것은 큰 잘못이다."고 하였다.
만약 소수(小水)의 색(色)의 경우, 대변(大便)이 사리(瀉痢)하여 청탁(淸濁)이 불분(不分)하면 소수(小水)가 반드시 불리(不利)하고, 소수(小水)가 불리(不利)하면 그 색(色)이 반드시 변(變)하니, 곧 청(淸)한 것도 항상 있지만 황(黃)한 경우가 80~90%를 차지(:居)한다.
이처럼 사(瀉)로 인하여 망음(亡陰)하니, 망음(亡陰)하면 기(氣)가 불화(不化)하고, 기(氣)가 불화(不化)하면 수(水)가 후(涸)하며, 수(水)가 후(涸)하면 색(色)이 황(黃)하여 청(淸)하지 못하니, 이는 자연(自然)의 이치(理)이다.
임(淋) 열(熱) 통(痛) 삽(澁)의 증(證)이 아닌데도 단지 황색(黃色)만으로 바로 화(火)로 보고 치(治)하면 이 또한 크게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