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무대의 엑스트라 (연작 2/8 중)
허 종구
줄거리 요약
1. 그해 2월 말 지우는 3년간 병영무대(사병)의 엑스트라 연기를 마치고 집 인근 근무지 예비군교장을 떠나 귀향하면서 군 생활을 반추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2. 입영열차 안에서 호송병들은 폭행으로 군기를 잡고, 수용연대에서는 우영의 조언에 따라 신검후 분류과 완결 신고를 지체하여 안경을 빌려 쓰고 가 하사관학교 대신 신병훈련소 입교한다
3. 중대향도로서 중대장에게 강압적 교육의 시정을 제기하다가 집단 폭행 등 고충을 겪고, 후반기 자동 소총훈련소에서는 동창 친구 서훈의 주선으로 야간에는 의무실에서 내무생활을 한다
4. 고향의 사단에 배속되어 시내 관할 연대의 수색중대에 행정병으로 근무하며, 말년병장과 시외 경계지 파견 소대 병사들의 일탈, 군부대 내의 공개 국민투표 등의 부조리를 목격한다
5. 예비군훈련단의 행정병과 조교로 근무 중 교관과 예비군중대장의 담합●부정, 야간사격과 각개전투 훈련의 무질서와 부조리를 목격하고, 신설 지단으로 배속되어 병사들과 일탈을 경험한다
6. 장년의 지우와 우영이 만나 각자의 전방 철책선 부대와 예비군 조교근무를 비교해 회상하면서, 병영무대의 엑스트라 연기가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나, 군생활을 연기로 여기는 경우 무의식중에 후임에게 가학행위를 하는 것 까지 자기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1
그해 새 생명의 움싹이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2월 말 어느 날의 쌀쌀한 아침 지우가 3년간 병영과 예비군훈련장 무대에서 행한 엑스트라로서의 연기도 오늘로서 막을 내렸다. 그는 자신과 기간요원 십여명이 관내 예비군과 방위들과 더불어 터닦고 돌 쌓아 이룬 비슬산록의 정든 예비군훈련장의 간이 막사와 연병장, 전우들을 뒤로 하고, 앞산 둘레길을 따라 귀향 길을 걷고있다. 일장춘몽의 지난 3년간 엑스트라 역할의 연기를 반추해보고, 내일부터 자신의 자유의지로 펼칠 세상의 주연무대를 그려본다. 시야를 자욱히 가린 안개 너머 대구 시내를 어슴프레 내려다보니, 다가올 내일처럼 앞이 아득하기만 하다. ‘반정부 학생’ (Anti-Student Power)이라는 주홍글씨로 인해 학업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대학 학부 졸업과 동시에 긴 동면을 거친 그가 앞을 가린 운무를 뚫고 저 잎새의 움싹처럼 조만간에 부활할 수 있을까 거듭 자문자답해본다.
2
3년전 입영통지서에 적힌 집결지 고모역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지우도 고향과 학교 후배 우영이와 함께 도착했다. 아직도 따가운 8월 하순 햇볕 아래 거슬리고 땀에 젖은 입영 장정들이 속속 모인다. 헌병과 조교 모자를 쓴 논산훈련소 관계자들이 이들을 이열로 줄세워 인솔해서 역에 주차된 군용열차에 태워서 떠난다. 한참을 가다가 열차 안에서 끼리끼리 수다를 떠는 와중에 헌병모자가 특별히 유난스런 수다꾼을 일으켜 세워 사정없이 얼굴과 배에 훅을 내지른다.
"모두 대가리 쳐 박아!"
일부가 고개를 쳐들자
"저 뒤에서 둘째 좌석 대가리 쳐든 청색 모자 나와!"
도리깨로 곡식 낟알 내려치듯이 온몸을 난타한다. 이런 공포 분위기가 계속되자 쪽지 한 장이 등 뒤에서 넘어온다.
'우리 1인당 1만원씩 갹출해 편안하게 갑시다. 앞으로 전달!'
우영이가 귓속말로 ‘형! 같이 갹출하자’고 하고 지우가 ‘조심해!’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교들이 쪽지 작성자의 수색에 나서 범인을 잡아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개 패듯 사정없이 때린다.
어둠이 내려 깔릴 무렵 지우와 장정들은 논산 신병훈련소 수용연대에 도착해 내무반별로 배치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 내무반장이 무료한지 각자가 뭣을 하다가 왔는지 애기하라고 한다. 돌아가며 애기하던 중에 세련된 하늘색 티셔츠와 곤색 줄무늬 차림의 한 명이 탈렌트를 하다가 왔다고 하니, 관심이 많은 내무반장과 문답이 시작된다.
“출연한 영화 중 상영한 것도 있느냐?”
“제가 주연급 배우로 나오는 영화가 곧 시중에 상영됩니다.”
“상대 주연 여배우가 누구냐?”
“양정화가 나옵니다.”
“요즘 뜨는 미년데, 키스도 해봤어?”
“백번도 더 해봤습니다.”
내무반장과 대기병들 모두가 부러워하며 입을 짝 벌린다. 며칠 후 유명 메리야스 제조회사 오너의 아들이라던 그는 귀향 조치되었다.
이튿날부터 대기병들이 차례로 각 병과를 돌며, 신체검사를 받는다. 지우는 금방 각 병과 모두에서 이상 없는 것으로 검사받는다. 이때 2년전 여기에서 귀향 조치받은 경험이 있는 우영이가 넌짓이 알려준다.
“형! 다들 군대는 요령이라고 하더라구. 각 병과의 검진이 끝나도 내주 수요일 하사관학교 차출하고 나서 '완자'* 받으러 가. 거기 가면 훈련 중 사망자도 상당히 나온다 하더군.”
지우는 잠시 어떻게 할 것인가 망설이다가, 이내 체중이 50kg 가까운 쇠약해진 몸으로 그 힘든 교육을 이길 수 있겠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 3년간은 내 자유의지가 아닌 각본에 따른 병영무대의 엑스트라 연기로 내 몸 하나 움직인다고 여기면 거꾸로 매달려도 3년은 지나가겠지 하니 마음은 편했다. 그래서 그는 우영의 권고대로 각 병과 검진이 끝나도 수요일까지는 분류과에 '완자' 받으러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목요일 오후 내무반 방송에서 그를 포함한 '완자' 분류 지체자 네 명을 호명하며, 분류과로 즉시 오라고 한다. 그 옆에 있던 우영이가 자신의 안경을 빌려 주면서 코치한다.
“안경 착용자는 대졸에 신체검사 갑종이라도 하사관학교 안 팔려간다. 끼고 가!”
도수가 꽤 있는 안경이라 지우는 머리가 약간 어지럽다.
분류과에 도착하니 의무관이 네 명을 ‘엎드려뻗쳐’ 시키고, 일갈한다.
“이놈들 하사관학교 차출 피하려고 여태껏 여기 안왔지? 내주에 모두 하사관학교 보내줄게.”
이어서 각자 신상명세서를 작성토록 해 지우도 쓰고 있는데, 의무관이 그의 대학 동기 이름을 대며 묻는다.
“너 내 전고 동창 임득순과 대학 동기이지? 걔 지금 전주 헌병대에 근무하고 있어.”
갑자기 생명줄로 연결된 실타래 하나를 잡은 기분이 된 지우가 이 때다 싶어 넌지시 물어봤다.
“저도 하사관학교 가야지요?”
의무관이 지우에게 유리창 너머 각 병과 명 간판을 가르키며 묻는다.
“저기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읽어봐.”
“검진받으며 봐서 각 병과 명인 것은 아나, 여기서 저 글씨는 하나도 안보여요.”
그는 지우의 신상명세서에 커다란 검정 사인펜 글씨로 '안경 착용'이라고 기재하며, 결론내린다.
“인마! 안경 쓴 사람은 하사관학교 못 들어가!”
대기병 지우는 이튿날 신병훈련소의 어느 중대로 배치되어 훈련병으로서 8주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3
먼저 연병장에서 입고 온 사복을 훈련병 옷으로 갈아입고, 사복은 각자 보자기에 싸서 고향집 주소를 적어 보냈다. 이 과정에서 교관이 땅에 떨어져있는 혁대를 들고 주인을 찾자 지우가 자기 것이라고 한다. 그는 버클을 보면서 말한다.
“너 이 대학 출신이구먼. 이건 내가 압수한다. 네가 중대 향도해라”
졸지에 군대에 와서까지 감투를 쓴다. 그러나 이로써 그에겐 고생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지우가 수용연대에서 훈련중대로 늦게 배속되는 바람에, 그의 고향 출신 병력과는 대부분 떨어져 어느 도서지역 출신의 병력들과 한 중대원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듵은 대부분 중졸 이하 정도로, 막일을 하고 온 사람들인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언동하고 각자도생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중대원간의 언쟁은 다반사이고, 때때로 몸싸움도 불사하였다. 짜증이 난 교관과 조교들은 교육 중에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기합은 물론이고 무차별 폭행도 예사로 하고, 그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다.
중대장이 당직을 서는 어느 날 밤 고충사항이 있는 훈련병은 중대로 오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지우는 중대 향도인 자기가 총대를 메서 훈련 분위기를 바꾸도록 하겠다는 생각으로 중대장과 면담을 하면서 직언을 주고 받았다.
“잘 몰라서 못 따라오는 훈련병들에게 때려서 가르치기 보다는 알아듣게 잘 설명하면서 지도해주십시오”
“알았어.”
이제 분위기가 달라지나 생각했다.
그런데 잠결에 이웃 조교 내무반에서 중대장의 고함 소리와 함께 발길질●몽둥이질 하는 소리가 들려 지우는 내심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 '비상! 중대 훈련병 전원 팬티 차림으로 연병장에 집합!' 소리에 따라, 늦여름 비가 조금씩 내리는 한밤의 연병장에 모두 모였다. 이어서 아무런 얘기도 없이 한 시간 가까이 부동자세로 서있게 한 후 취침하게 했다.
우영이가 귓속말로 ‘왜 그러지?’ 라고 했지만, 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우는 불안한 생각에 선잠을 설치다가 기상 나팔소리에 깼다. 조회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려는데, 내무반장이 조교 내무반으로 가자고 하여 따라갔다. 들어가 보니 조교 5명이 자신을 둘러싸고 돌아가며 얼굴●가슴●배에 훅 지르기, 발로 얼굴 올려차기, 바닥에 넘어뜨려 지근지근 밟기, 목 조르기 등 온 몸을 무차별적으로 난타하기 시작한다.
"너 대학 때 반정부 데모꾼이었지? 군대가 누구 장난인줄 아냐? 오늘 제대로 군대 맛을 한번 봐, 이 자식아!“
”미꾸라지 한 마리 땜에 우리들 밤새 기합받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무슨 죄가 있냐? 대답해봐 이 새끼야!“
얼굴에 코피가 터지고, 전신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해 온다. 내심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올라와 ‘이 놈들 모두 영창 집어넣어 훈련소 뒤집어 놓아야지’ 결심한다. 그는 향도로서 훈련병을 대변해 무자비한 훈련 분위기를 개선해달라는 읍소를 했을 뿐인데, 이렇게 ‘내리갈굼’하는 것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마음을 돌린다.
‘나나 쟤들이나 다 병영무대의 엑스트라야. 앞으로 이 정도의 일은 수없이 당할 테고, 거꾸로 매달려도 3년간만 버티면 나의 주연무대가 기다리고 있어!’
그후로는 교관이나 조교들이 자신과 훈련병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달라져, 걸핏하면 욕설과 폭행이 이어지고 지옥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그는 또다시 앞길을 감안해 스스로를 달래는 것으로 자신과 화해했다
이윽고 8주간의 훈련이 끝나 우영이를 포함한 대부분은 전후방의 자대로 배치되고, 지우는 백 여명의 훈련병과 함께 자동소총 후반기 훈련소로 배속되었다. 그들 일행을 데리고 병력 인계장소로 가던 내무반장이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동안 심하게 대해서 미안하다. 조금 있으면 감찰부대에서 나와 훈련 중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있으면 소원을 내라고 한다. 이를 내면 불평분자로 낙인 찍혀 군복무 중 내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라”
지우는 후임 훈련병들을 위해 소원을 제기할까 하다가, 혹시 군생활 중 자신에게 뒷 탈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포기했다.
4
후반기 훈련소는 신병훈련소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익산의 금마에 있었다. 저녁 식사 후 병력 이동의 보안 차원인지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 완전 군장 차림으로 가끔 도보, 대부분은 구보로 이동했다. 지우는 오는 잠을 깨우느라 아랫도리를 꼬집으며 뛰다가 보니, 생애 처음 깜빡 졸면서 뛰는 자신을 여러 차례 발견했다.
그곳은 자동소총의 기계적 구조, 사격법과 함께 이를 소지한 각개전투** 등을 훈련하는 곳이라, 제식훈련***, 총검술 및 체력훈련 위주의 전반기 훈련보다는 몸이 덜 고되고, 훈련병들의 수준도 높아서 훈련 분위기가 휠씬 좋았다.
게다가 지우가 저녁 식사 후 취사장 옆 식기 세척장에서 식기를 씻고 있는데, 맞은 편 병장 계급의 기간병이 안면이 있어보여 명찰을 보니 고교동창 서훈이었다. 그도 자신을 알아보고 소속 중대와 내무반을 물어 가르쳐주니, 이따 내무반에 들리겠다고 한다. 저녁 점호가 끝날 무렵 그가 지우의 내무반에 와서 내무반장과 애기를 나누고 나니, 내무반장이 ‘관물을 챙겨 의무실로 따라 가라.’고 한다. 그는 주간에는 함께 훈련을, 야간에는 의무실에서 보내게 되었다. 내무반 생활이 면제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입실 일주일쯤 지난 저녁 내무반의 점호시간에 당직사관이 지우를 찾는다고 하여 내무반 점호석에 서자 마자 당직사관의 점검이 시작되었다.
“어디가 아파 입실했냐?”
“피부병입니다.’‘
“어딘지 그 부위 한번 보자.”
’여기 배 주위입니다.“
”멀쩡한데 꾀병 아니냐?“
지우는 순발력을 동원해 잔뜩 긴장해서 대답했다.
”속으로 간지러워 견디기 힘듭니다. 특히 야간에 고생이 심하고, 옆자리 동료들에게 전염시킬까봐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내 그러면 의무실로 돌아가라고 한다. 지우는 한동안 그가 실제로 납득이 되어 넘어갔는지 알면서 속아준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군대가 이런 곳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5
후반기 교육이 끝나는 날 다들 어느 자대로 배치되는지 궁금했지만, 이를 사전에 아는 훈련병은 아무도 없었다. 훈련소에서는 근무할 부대의 소재 지역별로 그룹을 나누어 야간에 열차로 이동하게 했다. 지우의 그룹을 태운 밤 열차가 북상하여 대전역 가까이 오니 모두가 긴장한다. 대체로 직진하면 1군 내지 전방, 우회전하면 2군 내지 후방 근무로 결정된다. 지우네 그룹을 태운 열차는 거기서 우회전해 경부선 하행선을 따라 계속 가다가, 이들은 새벽에 동대구역에서 내렸다. 고향 가까운 곳 어디에 배치되는가 보다 생각하니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어서 트럭으로 갈아 타고 간 곳은 우연히도 그의 집에서 멀지않은 사단의 보충대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들중에 누군가 센 동아줄 잡고 있는가 봐. 덕분에 우리 전후 군번의 훈련병들이 함께 잘려 배치되다 보니 덤으로 여기 왔나 보다.”
라고도 하였으나, 알 길이 없었다.
거기에서는 지우네 훈련소 동기 이병 10 여명과 하사관학교 출신의 신임 하사 5명이 함께 대기했다. 하사들은 훈련소에서 자기들이 당해보기만 한 ’엎드려뻗쳐', ‘앞으로 기어’, '원산폭격' 등 기합을 이병들에게 주면서 처음 해보는 상급자 행세를 신기한 듯 즐기고 있었다. 이병들은 내심으로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벌써 잊었나 하고 웃었다.
이튿날 아침 지우가 취사장으로 가면서 눈을 들어 뒷산 와룡산을 올려다보니, 예전에 그곳에 놀러다니던 추억이 아스라히 스쳐 지나가며, 자대 근무를 위해 고향에 돌아온 실감이 비로소 난다. 한편, 그들은 소속 예하 부대 배치 전에 사단 본부 각 부대의 사역에 수시로 동원되었다. 지우가 사단 본부 인사과에 사역 중에 소위가 아는 체를 한다.
“저 금년 행정학과 출신인데, 아시겠습니까?”
여기에서 하늘 같은 인사장교가 동기라며 존대말로 먼저 인사한다. 며칠 후 지우와 몇명은 사단 본부와 같은 경내에 있으면서 대구시를 관할하는 연대의 수색중대에 배치되었고, 여타의 대다수는 동해안 경비가 주 임무인 해안가의 다른 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중대는 지역 내의 주요 경비시설 보호가 주임무로서 중대원은 중대본부, 팔공산, 낙동대교에 각각 3분의1 씩 배치되었다. 지우는 행정실 선임 사수가 조수로 찍어 거기에서 한동안 일했다. 그는 처음 보는 신기한 일들을 수시로 접하게 되면서, 아무리 후방 지역의 부대라도 ‘당나라 군대’에 버금 가는 모습들이 휴가 나온 지우에게서 듣던 최전방 부대와는 너무 달라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엑스트라 연기한다 생각하고 거꾸러 매달려서라도 3년간만 버티면 되겠지’ 하던 대로 병영무대에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먼저, 제대 말년 가까운 병장들은 일체의 업무, 조회, 훈련에 열외가 인정되어 주로 메트레스와 벽 사이의 공간에서 낮잠 자는 일이 주 일과이었고, 이를 장교들도 용인하는 분위기이었다. 그리고 중대본부에서 일하면서 보니, 중대장이 낙동대교 분대에 전화해서 말년 함 병장을 찾아 둘이 통화내용을 엿들으니 가관이었다.
“너 함 병장 아니잖아?
“함 병장 맞심더.”
“그러면 내가 지금 거기로 확인해보러 나간다.”
“그렇게 하세요.”
중대장이 지프차 타고 출발하니, 중대 행정병이 대구 시내의 집에 있는 선임에게 바로 전화해 알려준다
“중대장님이 분대로 나갔으니 지금 먼저 가 있으세요.”
함 병장은 시 외곽 고속도로변에 긴급히 나가 군복 차림으로 손 드니, 비상소집에 응하는 군인으로 안 운전자가 낙동대교까지 태워줘 중대장 보다 먼저 도착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중대의 고참 병장 한 명이 주말에 대구 시내로 외출했다가 복귀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중대장이 수소문해 애인의 변심으로 실망해서 탈영한 그를 찾아서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워 부대 가까이에 왔다. 병장이 ’저 할 말 있습니다. 잠간 세워주세요‘ 하자 중대장이 ‘들어가서 애기하자’ 하였고, 병장이 ‘그러면 지금 뛰어내리겠다’ 고 하여 중대장이 세워 ‘말해봐’ 하자 병장이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하였고, 중대장은 또 ‘들어가서 애기하자’고 하였다. 결국 중대장은 탈영보고를 하지 않고 불문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부하의 탈영은 육사 출신인 자신의 행로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 였다.
또한, 1975년 2월 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있어, 지우의 부대에서도 연대 행정실에 부재자 투표장이 설치되어 투표가 실시되었다. 지우가 투표소에 들어가니 중대장이 투표 가림막 위에 서서 ’최 일병, 찬성 기표한 투표지를 자신에게 들어서 보여주고 함에 넣어‘라고 한다. 다른 병사들은 모두 그 지시에 따랐으나, 지우는 이를 거부하고 기표지를 투표함에 바로 넣었다. 그는 전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실상 공개투표가 자행되는 무법 천지의 모습이 군의 조직적인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고 생각하니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밖에 특이한 일은, 사단장이 영내를 지나가다 보니 겨울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병이 많다고 하면서 군복 호주머니를 모두 실로 꿰매도록 지시하여, 한동안 호주머니 없는 바지를 입는 일도 있었다. 그는 호주머니에 손 넣지 않고 다니기를 훈련시키면 될 일을 가지고 호주머니를 없앤다면, 앞으로 귀 시라다고 손으로 귀막고 다니면 귀를 짜르라고 시키겠다는 반발심이 들기도 하였다.
6
대구시의 예비군훈련을 전담하는 예비군훈련단이 연대 내에 창설되면서 지우는 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는 예비군 교육계를 맡아 예비군 훈련 계획 수립(연간, 월간, 주간계획), 교안 작성 및 시범강의 계획 수립, 교육결과 및 평가 점검, 교육 자재 등 조달, 무단 불참자 고발 등의 실무를 총괄 담당하였다. 교육과장 장교가 있었지만, 행정실무 경험이나 관심이 별로 없고 교관을 겸임하고 있어 사실상 그가 실무를 전담하다 시피했다.
당시 예바군 훈련행정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가 보기에도 허점이 너무 많았다. 먼저, 예비군훈련을 한 후 예비군중대별 참석현황표에 불참자 명단을 첨부하여 예비군중대장과 교관이 연명으로 확인하고, 불참자에 대하여는 1차●2차의 보충교육을 실시하고, 그래도 무단불참자는 검찰에 고발하는 수순을 거친다. 그런데 교관이 지우에게 제출한 참석현황표를 수시로 수정해, 처음에 고발대상 무단불참자가 10명 이상이다가 나중에는 1~2명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때 교관이 예비군중대장의 요청에 따라 지우가 피우지도 않는 담배 한갑을 그가 야근하는 사무실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고, 참석현황표를 갈아끼워 달라고 재촉하곤 했다.
이어서 그가 예비군 조교를 맡게 되면서 보니, 교육일 아침 모인 500 여명의 예비군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마치 연예공연장의 사회 보는 코미디언 처럼 조교 한 명이 사전에 교육안내와 함께 재담도 하게 하였다. 지우가 교육계도 해보고 재담도 잘 한다고 하여 이를 계속 맡았다. 그는 이를 위해 재미있거나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관심있어 할만한 소재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 책도 사서 보고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다. 그래서 대구의 예비군들 사이에서는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시내 중심가에 외출 나가면 ’최 상병, 술 한잔 하지‘ 하며 손을 잡아끄는 예비군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에 국군이 주간 전투에서 차지한 땅을 야간전투에서 패해 뺏기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예비군훈련에서도 야간 사격훈련을 주요 과목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훈련은 오후에 시작해 캄캄한 밤에 사격연습을 하였다. 통제가 힘든 예비군들의 위험한 야간훈련이라 엄청 신경이 많이 쓰였고, 훈련 중에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또한 당시 각개전투가 주요 교육과목으로, 와룡산 하단에서 시작해 산 중턱까지 여러 단계의 훈련코스를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고참 조교가 주로 철조망 통과 교육을 담당했는데, 철조망 통과 훈련 중에 예비군들이 주머니의 동전을 철조망 아래 모래에 잘 빠뜨리기 때문이었다. 주말에 교육이 없는 날 ’철조망 통과 코스‘ 아래 모래를 자석으로써 훓으면 조교 여러 명이 막걸리를 사먹을 정도의 동전이 모여서 조교들이 이런 장난을 쳤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야간 사격이나 각개전투 훈련이 있는 경우 이동주부들이 주로 그 훈련이 끝나는 지점의 수풀 속에 밥이나 막걸리전을 펴고 있어 예비군들의 식사판이나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느 직장 중대장의 경우 조교에게 소속 어느 예비군이 자기보다 회사 상급자이라서 자기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며 그 사람에게 좀 심하게 훈련을 시켜달라고 주문했다. 그 예비군이 ’위로 철조망 통과‘ 한 뒤에 조교가 ’동작 보소!‘ 하면서 그 예비군만 산비탈 아래를 향해 ’아래로 철조망 통과‘를 반복해서 시킨 결과 그가 철조망에 엎어져 다친 일도 있었다.
그후로 각 구별로 예비군훈련지단이 발족되어 지우는 그의 집이 있는 구를 관할하는 훈련지단에 배속되어 교관 장교 10명, 조교 사병 10명과 함께 앞산 기슭의 외딴 곳에 예비군교장을 만들어 교육하고 내무반 생활도 하게 되었다. 야간에는 장교 1명이 교대로 숙직근무를 하며 사병들과 한 방에서 잤다. 이들은 심심해하며 밤에는 거의 매일 함께 푼돈 따먹기 화투놀이를 했다. 하루는 당직장교가 일찍 판돈을 다 잃어 사병들의 노름을 구경하다가 자신이 잘 모포를 아무도 챙겨주지 않자, 갑자기 성화를 내며 ’비상! 전원 팬티 바람으로 연병장에 집합!’ 하고 외쳤다. 초겨울 싸락눈이 조금씩 내리는 쌀쌀한 밤이이었는데, 30여분 지나니 한 사병이 쓰러지자 모두 내무반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는 너희들과 노름 안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가 얼마 후 야간당직을 한 날 심심해하며 또 하자고 해서 계속 노름을 하게 된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 교장에서는 관내의 동사무소와 구청 소속 방위병들의 집체 교육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했는데, 그들 중에는 지우의 학교 동창이나 동네 친구, 아우뻘 되는 친척도 가끔 있어 고향이나 사회 소식도 접하게 되지만, 더러는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어 난감한 적도 있었다.
또한 지우는 여친 연서가 주말에 그 부대에 면회 오면, 면회실은 물론 담장도 없는 그 예비군 교장의 형편상 만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인근 식당 여주인의 배려로 그 집에서 오붓하고 은밀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입대하면 애인이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막아줄게’ 하면서, 먹거리까지 챙겨주는 그녀가 눈물겹게 고마웠다. 덕분에 군생활 중에도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고 끈끈하게 이어져 갔다.
7
군대 애기는 나이든 사내들의 술안주로도 최고의 메뉴이다. 이제 중년을 한참 지난 지우와 우영이는 지금도 가끔 만나면, 그들이 함께 보낸 신병 훈련소 시절 얘기부터 시작해 우영의 전방 전투부대 생활과 지우의 후방 예비군교장 생활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얘기꽃을 피운다. 피끓던 청년시절 병영무대에서 한 3년간의 엑스트라 연기가 자신의 실 사회 연기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도 서로 애기를 나눈다.
우영이가 말했다.
“전방 전투부대에 가서 휴전선 철책선 보초근무 반, 본대로 돌아와 전투훈련 반으로 보냈는데, 철책선 근무 때 인민군이 사후에 침투한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 등 위험하고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배짱은 더 편했지. 나도 본대 근무 때의 전투훈련에는 영 잼병이라 힘들었어.”
이어서 지우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도 소문난 ‘몸치’라서 전투부대에서 보병으로 훈련 위주의 군생활로 3년을 보냈다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같은 또래의 동향 예비군을 상대로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을 많이 해보는 교육과 행정일을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
그리고 우영이가 말했다.
“나는 전투부대에서 그래도 독한 정신력과 강한 체력을 체득해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는데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형은 반 사회생활 같은 군 생활해서 나중에 직접 도움이 되기도 했지 않나?”
이어서 지우가 말했다.
“나도 군 입대 전에는 밤 늦게 까지 책 보거나 놀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했지. 군에서 6시 기상하는 습관이 들어 이 고질병을 완전히 고쳤지. 제대하고 다음 고시일까지 6개월의 시간이 마지막 도전 기회라고 배수진을 치고, 아침 5시 50분에 일어나 앞산 중턱 약수터까지 뛰어서 다녀온 후 새벽에 도서관에 가서 문닫을 때까지 집중공부를 해서 바로 패스했어.
그리고 다음 해 초에 내가 군청의 과장 역할을 하는 수습행정관으로서 첫 1년 근무하면서, 소속 직원에 대한 지휘나 간부회의 때 보고 등을 눈여겨본 선배 간부들에게서 ‘촛자(beginner) 같지 않다’는 애기를 종종 들었어. 내가 사병생활하면서도 예비군 상대의 대민행정이나 교육업무 경험한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거지. 사병으로서의 엑스트라 병영무대 경험도 나중에 사회생활에 쓸모가 있는 경우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지”
우영이가 맞장구를 쳤다.
“나도 최근 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배우 젤렌스키가 ‘인민의 종’이라는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을 잘 연기하고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전쟁 대치 중인 나라의 대통령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연기도 사전학습의 한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1995년 6월 첫 전국 동시 지방선거 때 청와대에서 임명직 포기하고 시장, 구청장으로 나온 사람들 꽤 있던데, 형은 고향의 우리 동창이나 형을 아는 또래 예비군 출신들 믿고 그런 생각 안해봤어?
이어서 지우가 말했다.
“나도 잠시 망서린 적은 있었어. 그 길은 ’또 아니면 모‘이지. 결국 내겐 안정적인 전문.경력직이 맞다고 봤어”
우영이가 말했다.
“형도 현역시절 병영무대에서 엑스트라 연기한다고 생각하니까, 인내하기 어려운 고통도 지나가는 소낙비로 여겨 버티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
이어서 지우가 말했다.
“물론이지. 그런데 현역 고참이 되어 그 생각을 하면, 그동안 내가 당하고 학습한 가학행위를 무의식중에 ’내리갈굼‘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어. 이건 엑스트라 연기라고 자기 합리화하면서 말이야.”
두 세대 전에 잠시 상반된 병영무대에서 엑스트라의 길을 걸었던 두 전우는 오늘도 술자리에서 안주 대신 그날 얘기를 씹으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다.
<주>
* '완자(完字)': 입영 대상 장정별로 각종 신체검사가 모두 완료되었을 때 훈련소 분류과에서 신체검사서에 찍어주는 ’완‘자 도장에 유래한 군대 내의 속어. 신체검사 결과 합격자로 완자를 받으면, 훈련소 또는 하사관학교로 입소됨
** 각개전투: 분대 또는 소대 단위의 군인들이 약진과 포복을 하면서 적(훈련 시에는 그림이나 타이어로 갈음)을 가격해 목표고지를 점령하는 전투
*** 제식훈련(制式訓練): 집단적이면서 통일성이 필요한 군인에게 절도와 규율을 익히게 하는 훈련. 차려, 열중 쉬어, 좌.우.후향 전환 등 기본동작, 걸음과 행진, 총기휴대 제식, 부대 제식등이 포함됨
첫댓글 수고많으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