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강
7-1-3. 은유(隱喩-metaphor)의 방법
암유(暗喩)라고도 하는 것처럼 숨겨놓고 하는 비유로서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조사를 넣지 않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비유입니다. 직유에서 본 바와 같이 ‘와 같이’나 ‘처럼’이라는 문법상의 부사나 조사를 붙여서 문장을 수식하지 않고 언어 자체를 추상화하는 문장법을 말합니다.
다음 작품들은 정독을 하면서 어떤 비유가 은유로 처리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김동명의 「내 마음」중에서
여기에서는 ‘내 마음’이 ‘호수’와 같다는 표현이 없이 ‘내 마음=호수’라고 바로 표현함으로써 시인 정서의 추상화를 통해서 표현의식의 묘미를 살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옥같이’라는 직유를 써서 이중적인 효과를 노리는 시법을 다루고 있어서 주복하게 됩니다.
하루가 천근의 추를 달고
가라 앉는다
빗발이 무수한 투석전을
벌이는 바다
--홍윤숙의 「변방에서」중에서
소주집은 강한 침묵이 잎사귀를 피운 수풀
소주는 서울에서 제일 사나이다운 잘난 사람들의 국어다
--김요섭의 「소주론」중에서
길들이다
잘못 세운 눈썹
--박진환의 「초승달」중에서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
--김남조의 「겨울바다」중에서
내 사랑도
꿈도
하얀 뒷모습만 보이며 떠가고 있다.
--김여정의 「뒷모습」중에서
돌아오는 길가 허물린 건물자리에 귀를 종긋거리며 어둠이 옹기종기 웅크리고 그쯤에는 보채던 바람들을 재우고 긴 머리칼로 늘어선 풀잎들
--노향림의 「小品」중에서
이와 같이 은유는 비유의 한 방법인 직유와는 달리 설명은 완전히 생략하고 비유할 목적을 숨기면서 표면에 직접 그 형상만을 꺼내어 독자의 상상력으로써 그 본질적인 상사성(相似性)을 알게 해 나갑니다.
이러한 은유와 직유를 연관시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얼음과 같은 얼굴’→직유
‘얼음의 얼굴’→은유
- ‘천사와 같은 소녀’→직유
‘그 소녀는 천사’→은유
- ‘나는 나무처럼 서 있었다’→직유
‘나는 나무로 서 있었다’→은유
이렇게 직유가 은유로 변하여 표현됨으로써 ‘같은’이나 ‘처럼’이라는 설명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직유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은유는 오직 그 사물을 제시하고 독자들에게 영상으로 느끼게 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인의 언어에 관한 인식과 대상에 대한 태도와 표현에 대한 정신의 긴박감 등이 문제가 됩니다. 만약 은유가 안이하게 사용되면 이미지가 아니라, 혼란만 야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얼굴’은 모두 냉혹한 ‘얼굴’로 나타나지만 설명이 들어간 직유보다는 은유쪽의 의미가 시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용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소녀’가 ‘천사’로 변한 의미도 마찬가지의 현상입니다.
다만, ‘나무처럼’이 ‘나무로’로 은유화한 것은 그 의미에서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는데 내(‘나는’)가 ‘나무와 비슷한’ 것과 ‘나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시적인 의미나 이미지의 감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유는 평범하게 수식이라는 산문적인 효과밖에 얻지 못하고 극히 해설풍이 될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나 문장의 수식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직유를 사용하여 상호간의 정서를 교환하고 있어서 시적 문장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김희보 문학평론가는 현대시에서 외부의 묘사보다는 우리 마음의 상태를 더 존중하는 한, 내부와 외부를 직접적으로 결부시킴으로써 마음 깊숙한 곳을 추출해 보일 수 있는 은유는 마땅히 중시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남용될 때의 폐해도 말합니다. 시인의 정신적 긴장이 부족할 때 내부의 빈약함을 숨기기 위한 무기가 되기도 하고 시에서 노래하려는 시인의 혼이 빈약하면 제3의 생명, 곧 종합된 생명은 생겨나지 않고 그 은유는 생명 없는 것이 되어 표현의 테크닉만 눈에 띄는 조작이 되고 말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고 말합니다.
7-1-4. 의인법(擬人法. personification)
의인법은 직유와 은유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비유법의 하나로서 활유(活喩)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 이외의 사물이나 추상개념에 인격적인 요소를 부여해서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서 은유의 특별한 형식입니다.
일찍이 수사학자들은 은유를 나누어 ,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표현하는 은유와 반대로 생명이 있는 것을 무생물로 만드는 은유의 두 가지로 구별했는데 이는 사실상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의인법은 대체로 신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외계의 생명 없는 사물에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고 자연을 정령화(精靈化 )하거나 자연에 생명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되는 태도로는 생명이 있는 것을 비정령화(非精靈化)하고 혹은 비인간화하는 것입니다. 모든 비유적 표현은 이러한 주관적 극치와 객관적 극치라는 두 극단 사이에 모두 망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박목월의 「산이 날 에워싸고」중에서
당신 앞에서
그만
눈물이 글성여요
--허영자의 「꽃」중에서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라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구 상의 「焦土의 詩」중에서
부끄러이 충혈한 꽃망울 터뜨리고
조금씩 키 높이면서 그대에게로 가는 길
--강계순의 「동반 . 8-나무의 노래」중에서
이 작품들에서는 주로 시적 화자인 ‘나’, ‘당신’, ‘그대’ 등으로 의인화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 이외의 것을 인간에다 비유하고 인간의 사고와 생활을 그것들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어떤 실감을 현현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얼굴을 붉히는 하늘이
풀빛 채를 들고
--김지향의 「풀빛의 비」중에서
자그만 고양이의 발자취로
안개가 들어온다
--칼 샌드버그의 「안개」중에서
잠든 나무의 고른 숨결소리
자거라 자거라 하고 자장가를 부른다
--이형기의 「돌베개의 詩」중에서
여기에서는 화자가 나타나지 않고 시적 상황이나 분위기에서 ‘하늘’과 ‘고양이’, ‘나무’ 등으로 생명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인법은 신(神)에서부터 돌맹이 등 작은 사물에 이르기까지 가능합니다. 의인법은 전문적인 시학(詩學)에서 감정적 오류(感情的 誤謬. pathetic fallacy)라고도 하는데 감정이 없는 무생물에 감정이 있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데서 오는 오류를 말합니다.
이러한 의인법은 예로부터 신화, 전설, 동화, 동요 등에 흔히 사용되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이솝』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시 창작의 현장에서 혼동하는 의인법은 ‘나’나 ‘너’라는 화자의 적용은 작품 제목이 사물이었을 경우에는 무난하게 그 사물이 의인화하여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만약에 제목이 관념인데 화자의 적용은 자칫 개인의 독백이나 넋두리에 머무는 효과의 축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시에서 의인법의 사용은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은 분석이 없이는 행해지지 않는 것이고 단순한 수사법보다는 상상의 세계 또는 엄격한 비평정신에 지탱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