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살다보니 30년이 채워지더군요, 그렇게 세월이 무섭더라고요. 그동안 만화를 그리면서 제대로된 궤적을 그리고 있었나 돌아보게 되고요.” 만화가 허영만(57)씨가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12월 31일 서울 광장동 화실에서 만난 그는 “주변에서 30년이 됐다고 평전을 낸다고 하고, 전시회를 하자는 말도 있는데 부담스럽기만 하고 축하해야 될 일인지 모르겠다”고 겸손해 했다. 그는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간지와 스포츠지에 요리만화 ‘식객’과 한 컷 만화 ‘‥‥’을 연재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허씨는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직접 찍은 사진들이 빼곡히 들어찬 자료집을 펼쳐놓고 부지런히 펜을 움직여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허씨는 “새해 첫날에 취재여행을 떠나려고 미리 연재할 분량을 그리느라 정신없이 바쁘다”며 “과메기가 유명한 포항에 내려갔다가, 간 김에 고래고기랑 울진 대게, 청송의 독굽는 가마까지 둘러 보고 나흘 후쯤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만씨는 지난 1974년 ‘집을 찾아서’라는 작품으로 한 소년신문 만화 공모전을 통해 데뷔했다. 고교시절 서양화를 전공하고 싶었던 그가 멸치어장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만화가 문하생 생활을 시작한지 8년만의 일이었다.
허씨는 늦은 데뷔를 만회하듯 석달만에 내놓은 ‘각시탈’을 크게 히트시키며 ‘허영만’이란 이름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뤘다. 그후 30년이 지나 한국 만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허씨는 “내가 미술을 전공했어도 전업화가는 안됐을 것 같은데, 환경이 나를 이쪽으로 가게 몰아낸 것 같다”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해온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영만씨에게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초창기 ‘각시탈’이랑 ‘무당거미’, ‘카멜레온의 시’를 정말 열심히 했고요. 근래의 ‘식객’은 내가 그리면서 재미를 느껴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허씨 스스로가 재미있는 소재를 찾아 나서다 보니 만화의 분야가 저절로 다양해졌다. 화투·포커 ‘꾼’들의 이야기인 ‘타짜’와 ‘48+1’, 경마 만화 ‘오늘은 마요일’ 당구 만화 ‘허슬러’, 오토바이 만화 ‘동체이륙’, 마라톤 만화 ‘2시간 10분’, 요리 만화 ‘식객’ 등과 같은 허씨의 작품들은 국내 만화계에서 드물게 전문적인 소재를 파고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허영만씨는 “요즘엔 만화가가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처럼 만화를 그려야 한다”며 “사람들이 다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엉터리라는 말이 한번 나오면 며칠 사이에 소문이 쫙 퍼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허씨의 성격도 누구 못지 않게 꼼꼼하고 치밀한 편이지만 취재만 담당하는 사람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그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좋은 스토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스토리 작가와 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전문성에 따르는 재미 이상으로 허영만의 작품이 지닌 매력은 영웅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다. ‘오!한강’처럼 사회성이 강한 작품 부터 학창시절을 현실적으로 그린 ‘비트’와 고졸 출신 주인공이 프로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세일즈맨’ 등이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대표적인 만화다. 이런 맥락에서 ‘비트’, ‘미스터Q’, ‘아스팔트 사나이’ 등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도 ‘날아라 슈퍼보드’, ‘망치’ 등 어린이 만화와 ‘48+1’, ‘카멜레온의 시’ 등도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한편, 최근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 1988년작 어린이 만화 ‘망치’는 지난 해 8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빅 애플 아니메 페스티벌’에 국내 최초로 특별 개봉작에 초청됐다. 또한 지난 1990년 KBS방영 당시 42%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날아라 슈퍼보드’는 이후 사회적으로 사오정 시리즈의 유행까지 불러왔다. 허씨에게 언제부턴가 어린이 만화가 뜸한 이유를 묻자 “한창 어린이 만화를 잘 그렸을 때는 우리 애들을 키우면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를 때였다”며 “이제 다시 어린이 만화를 그리려면 유치원에 가서 한동안 살아야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슬하에 2남매를 두고 있는 허씨의, 둘째딸은 아버지가 포기했던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화실 벽에 붙여 놓은 ‘隨緣樂命(수연낙명)’이라는 글귀를 가리켰다. 그는 “수연낙명은 닥쳐온 모든 일들이 나에게 인연이 되는 일이니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뜻”이라며 “저한테도 어려운 일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7~8년전쯤 저 글을 보고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를 그리는 일 자체가 두발 자전거와 같은 것이라 계속 안밟으면 넘어져요. 그림 그리는 사람은 계속해서 많이 그리는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새해에 로또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가벼운 질문에 “만화를 안그리고 싶다”는 폭탄발언이 돌아왔다. 그는 “사실 좀 적게 그리고 싶다”며 “대신 한페이지 한페이지에 최선을 다해서 더 열심히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로 언제까지 만화를 그릴 것인지를 묻자 허영만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벽에 똥칠할 때까지 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기 전에 스스로 그만둘 것”이라며 “만화를 접고 나면 인물 캐리커쳐를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고 말했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팬입니다. 어릴적에 저도 무수히 많은 만화 인물들을 그린적이 있는데 지금은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 한강', '세일즈맨' 같은 만화는 한번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