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장편 소설>
대은 변안열의 소설 불굴가(大隱 安烈의 小說 不屈歌)
소설가 김용채
1. 청석령(靑石嶺)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이 된 강릉부원대군(江陵府院大君)의 환국 행렬은, 하얀 눈밭에다 굵고 긴 획을 그으면서 심양(瀋陽)을 떠난다. 공민왕의 곁을 지키는 승의공주(承懿公主)는 공민왕의 제1정비가 되어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라는 칭호를 얻었다.
호위군배행수장(護衛軍陪行首長) 변안열(安烈)이 맨 앞에 섰다. 좌우로 장수 두 명이 여남은 걸음 떨어져서 그 뒤를 따라간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는 가마를 타고 앞뒤로 줄을 지었고, 다시 그 좌우를 여덟 명의 군사가 호위하며 선두에 나선다. 가마 옆에는 각각 두 명의 시녀도 끼어 있어 선두는 모두 열일곱 명이 되었다. 노국대장공주의 애마도 안장만 얹은 채로 어린 망아지를 데리고 뒤를 따랐고, 또 다른 하얀 말 한 마리가 역시 안장만 얹은 채로 공민왕이 탄 가마 뒤를 따라간다. 그 뒤로 쉰 걸음쯤 되는 거리를 두고 두 대의 빈 가마가 따라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군가가 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텅 빈 가마였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안전을 위한 비책이다. 다만, 공민왕 내외가 쓰는 간단한 소장품만을 실었다. 이 위장된 가마에도 앞서가는 가마와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인원이 배치되었다. 그 뒤로는 비상식량, 몽골식 간이 주택인 게르(Ger)를 세울 수 있는 재료, 말이 먹을 건초, 비상용 무기와 기타 전투 용품, 비상 상비약 등을 실은 마차가 길게 줄을 이었다.
삼장육학사(三將六學士)가 이 행렬의 중심이 되었다. 변안열과 다른 두 장수를 3장이라 하고 공소・변숙・황보영・감규・독고억・황석기를 육학사라 했다. 환국 행렬 가운데 특히 이목을 끄는 여인이 한 명 끼어 있다. 훤칠한 키에 빼어난 미모를 갖춘 열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다. 그 소녀는 고려국의 시인 이조년(李兆年)의 손녀인데 몇 해 전에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왔다가 승의공주의 시녀가 되었다. 그 승의공주가 노국대장공주가 되어 고려국으로 가는 행렬에 끼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소녀를 이소저(李小姐) 라고 불렀다. 이어서 원나라 왕자들이 그들의 휘하를 거느리고 배웅차 뒤따라왔다.
환국 행렬은 결국 일백 명을 훌쩍 넘어서게 되었다. 행렬을 이루고 있는 사람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삼장육학사 아홉 명, 호위무사 서른 명, 시녀 여덟 명, 마부 여덟 명, 의원 두 명 등 주축부대만 예순한 명으로 구성되었고 배웅하는 원나라 왕자 열 명과 그들의 수행원 스무 명을 합하면 아흔한 명이 되고, 조리사 가마꾼 등 잡역부까지 합치면 일백여 명을 훌쩍 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말을 탔다.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행원 모두가 말을 타게 한 조치는 변안열 호위군배행수장의 특별한 조치였다. 유사시 민첩한 기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노국대장공주는 원나라식 여인 복 외에 장수복을 별도로 더 준비하였다. 그러고 보니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사람 간의 짝이라면, 변안열이 탄 말과 노국대장공주가 별도로 데려가는 말도 한 짝이었으니, 사람과 짐승이 이상하게 어우러져서 마치 신혼여행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노국대장공주는 변안열의 짝이 되어야 했다. 두 사람은 아주 어려서부터 단짝 친구였고 사랑을 키워 온 사이였다. 느닷없이 불쑥 나타난 공민왕이 국혼이라는 이름으로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이 아니었던가? 청춘은 그 덫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저 가슴팍 깊숙이 흐르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이 종주먹질을 해댈 뿐이었다.
호위군배행수장 변안열은 5명의 날랜 군사를 선발하여 좌장수를 우두머리로 한 첨병 조를 편성하고, 행렬의 맨 끝에도 다시 우장수와 군사를 배치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행렬을 이루고 있는 전원에게 비상체계와 그 가동 방식을 주지시켰다. 심양을 출발하기에 앞서서 실전 같은 훈련을 몇 번이고 반복, 실시하는 등 준비에 치밀함을 보였다. 특히 호위 군사를 고려국 말을 할 수 있는 군사와 원나라 말을 할 수 있는 군사로 구분하고 군사의 복장도 원나라 병사 복식과 고려국 병사 복식으로 각각 다르게 갖추어 입도록 했다. 고려국 군사의 복식은 옆트임 부분에 털을 댄 투구와 검은 군화를 착용하고, 원나라 군사의 복식은 목 앞을 가리는 투구와 무늬 있는 꽉 끼는 군화를 착용하여 서로 달리 보이게 했다. 노국대장공주는 원나라식 여인 평복 외에 장수가 입는 갑옷을 한 벌 더 준비시켰다. 변안열로서는 일생일대의 호기인 동시에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출세의 가도를 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아차 하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고려국의 국운까지도 걸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기도 하였다. 어찌 한 치의 소홀함이나 착오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 임금과 왕비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함께 모시는 길이 아닌가?
“마마. 소장 변안열이옵니다.”
공민왕의 수레 앞에서 변안열이 예를 갖추면서 나지막하게 아뢴다.
“오, 배행 수장 어서 오시오.”
공민왕이 수레에 드리운 휘장을 들추며 반긴다.
“출발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아뢰옵니다. 마마.”
변안열이 출발 준비 상황을 아뢴다.
“그래요? 수고하셨소. 배행수장.”
변안열은 환국 행렬의 구성과 운영방식 등 준비 사항을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아뢴다.
“오, 그러시오? 그런데 환국의 장도에 오를 인원이 일백 명을 넘는다니… 너무 과하지 않소?”
공민왕이 세간의 이목을 의식하여 걱정스럽게 묻는다.
“예, 마마. 그런 면도 없지 않습니다. 보통의 사신 행렬보다는 규모가 약간 크다 할 수도 있사오나 대 고려국의 임금님과 왕비님의 환국 행차이옵니다. 지나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옵니다. 마마.”
변안열이 애써 타당성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배행수장이 어련히 잘 알아서 준비했으리라고 믿지마는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오.”
공민왕의 걱정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배웅 나온 몽골 왕자들의 시선을 가볍게 지나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공민왕의 환국 행차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표면에 내세우고는 있으나 그 속내는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공민왕의 원나라에 대한 심경의 변화 같은 징후를 포착하는 일 등이다.
“과히 심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듯하옵니다. 마마.”
변안열은 자신 있게 아뢴다.
“행도의 사정은 어떻소?”
공민왕은 환국행렬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해 계속 묻는다.
“환국 행렬의 행도 상태는 양호하옵니다. 소장이 일차 순시하였사옵고 여러 가지 돌발 상황 등에 대비하여 호위하는 군사들에게 충분한 사전 훈련을 시켰사옵니다. 환국 행렬의 구성원은 호위 병사뿐만 아니라 모두가 무예에 숙달된 충성스러운 자들이옵니다. 소장이 철저히 준비하고 점검하였사오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마마.”
변안열은 환국을 준비하면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인원 선발에서 장비 준비까지 모두가 완벽하다는 확신이 섰다. 1351년 공민왕 원년 12월, 드디어 환국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마침 그날은 아침부터 함박눈이 쏟아져, 온 세상은 묵은 때를 벗고 태초의 그날처럼 천지가 열려 태초의 순수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초원의 유목민인 몽골족은 족보개념이 희박하다. 따라서 원나라와 고려국의 근친결혼은 원나라 입장에서 보면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국으로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러나 어쩌랴, 고려국이 약소국인 것을….
노국대장공주는 고려국 공민왕과 혼인함으로써 왕가진(王佳珍)이라는 고려식 이름을 얻는다. 공민왕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성씨인 왕(王)은 고려국 왕통을 잇는다는 뜻이고 이름, 가진(佳珍)은 아름다운 보배’라는 뜻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의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관계없이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히 세기의 사랑이라고 칭송할 만하였다.
이 무렵 고려국의 왕세자 또는 왕자들은 뚜루게(禿魯花)라고 불리는 볼모가 되어 원나라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심지어 고려왕에 즉위한 뒤에도 일반 백성들이 처가에 들리듯 외가 나라인 원나라를 수시로 드나들어야만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강릉 부원대군은 뚜루게가 되어 1341년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원나라로 건너가서 성장기를 보냈고 승의공주와 혼인한 뒤에야 강릉 부원대군은 공민왕의 이름으로, 승의공주는 노국대장공주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조국을 떠나온 지 11년 만에 고려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변안열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 임금의 행차가 얼마나 뜻깊고 중대한 행차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고려가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어 내정을 간섭받아 오는 그 무렵 중원에서는 이상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북경을 도읍으로 정하고 건국된 몽골족 혈통인 원나라와 남쪽에서 한족을 주축으로 하여 건국된 명나라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서로 각축했다. 드디어 명나라가 원나라를 북쪽으로 쫓아내면서 북경을 차지한 뒤 원명(元明) 교체기에 돌입한다. 원나라는 심양(瀋陽)을 거점으로 하여 가까스로 북원(北元) 시대를 열기는 했으나, 국력은 점점 쇠퇴해 갔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챈 고려국 조정에서는 반원의 기류가 싹터 흐르기 시작했다.
국제정세가 이상징후를 보이고 고려조정 안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어, 변화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차를 호위한다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변안열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더욱더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동 벌을 중심으로 할거하는 비적들과의 충돌은 물론이고 고려국 자체 내에 숨어 있는 불순세력과의 충돌에도 대비해야 했다. 행렬 속에 위장된 가마를 더하는 일, 호위 군사의 복장을 원나라식과 고려국식으로 나누어 착용시킨 일, 호위하는 병사는 원나라 말과 고려국 말에 두루 능통한 자를 선발한 일, 원나라 왕자들이 굳이 먼 곳까지 배웅을 나선 일 그리고 노국대장공주가 남장으로 변신해야 할 경우까지를 대비하며, 호위군배행수장 변안열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직접 챙기고 몇 번이고 확인을 거듭하였다.
고려국이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었던 기간에는, 많은 고려사람들이 원나라로 건너가서 정착하거나 벼슬을 하다가 그 자손들이 다시 고려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호위군배행수장 변안열이 그러한 경우였다. 그러나 변안열은 여느 고려국 사람들처럼 공물로 바쳐졌거나 살기가 어려워서 유민의 신분으로 국경을 넘었다거나 삼별초 난 이후 더욱 극심해진 원나라 군사의 약탈을 피해 역설적으로 원나라로 건너갔다거나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부노(浮虜), 항민(降民)이 되어 원나라로 건너간 경우와는 달랐다.
변안열의 할아버지 순(順)은 1247년 고종 34년에 고려에서 태어나, 1268년 원종 9년에, 원나라 사신 탈타아(脫朶兒)를 수행하여 원나라로 건너가게 되었고, 심양의 천호(千戶)를 지내다가 후(候)에 봉해진 명문 집안이다. 변안열 자신도 1348년 15세의 나이로 원나라 순제(順帝) 때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지낸 탈탈(脫脫) 밑에서 무예를 사사하여 1351년 봄 18세에 무과인 호방(虎榜)에 수석 합격하고 같은 해 공민왕이 환국할 때 호국 배행수장이 되어, 할아버지의 나라, 고려국의 땅을 밟게 되는 것이다.
변안열은 원나라에서 나고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는 고려국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라났기에 원나라 말은 물론 고려국 말에도 두루 능통하였으며 출중한 무예는 물론 손색없는 문예까지 갖추었으니 호국 배행 수장이라는 중차대한 직책을 맡기에 손색이 없는 적임자였다.
“배행수장, 해가 저물어 가고 있지 않소?”
“네, 금방이라도 어둠이 내릴 것 같습니다, 마마.”
“인가도 없을 것 같은데 배행수장은 어떻게 할 셈이요?”
“야영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살펴보는 중입니다. 마마.”
“이 허허벌판에서 말이요?”
“네, 마마. 다행히 눈발이 그쳤고, 이곳이 분지라서 바람이 심하지 않으니, 소장의 생각으로는 하룻밤 지내기는 괜찮을 듯하옵니다만, 마마께서는 달리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배행수장이 잘 판단해서 결정하기 바라오. 오늘은 첫날인 데다가 거센 눈바람을 맞으면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걸었으니, 모두 지쳐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려.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소”
“마마께 다른 생각이 없으시다면 삼장이 상의하여 아뢰겠사옵니다, 마마.”
공민왕은 무척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변안열은 삼장회의(三將會議)를 연다. 변안열은 이곳에서 야영할 것을 제안했고 다른 두 장수는 배행수장의 제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변안열은 공민왕에게 삼장의 합치된 의견을 아뢰며 하교를 기다린다.
“삼장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하시오.”
공민왕은 삼장회의에서 결정한 대로 시행할 것을 허락한다. 환국행렬이 그 첫 번째 야영을 준비한다. 준비물은 모자람이 없다. 다만, 밤새워 모닥불을 피울 땔감은 현지에서 따로 준비해야 했을 뿐 다른 애로점은 없었다.
“길이 고르지 못한데 눈까지 쌓여서 행차가 매끄럽지 못했사옵니다, 마마. 공주마마께서도 피로하실 텐데 오늘은 일찍 침수 드시기 바라옵니다. 그러면 소장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이번 일정에 대하여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과 같은 침소에 들기로 되었기에 마침 배석하고 있던 변안열은 공민왕 부부와 같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되었다.
“하문하십시오, 마마.”
“지금 우리가 환국하는 길 사정이 매우 걱정되는구려, 내가 심양으로 갈 때는 아직 어렸을 때라서 그저 가마 안에서만 있었지만, 굉장히 멀게 느껴졌고, 여름철이었는데도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던 것으로 기억하오. 그런데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더욱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오. 내가 배행수장을 익히 잘 알고 있기에 든든한 마음이기는 하지만 워낙 험한 길이라서…”
“마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환국의 경로는 육로로서 대략 2천 리 길이 됩니다. 심양에서 국경인 압록강까지가 1천여 리로서 동팔참이라 하옵고 압록강에서 개경까지가 다시 1천여 리로서 이곳으로부터는 고려국의 영토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초겨울인지라 가끔 눈바람은 거세게 몰아칠 수 있으나 여름철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모기에 물린다거나 돌림병 따위의 걱정도 없사옵니다. 더구나 비적들까지도 그들의 산채에 꼭꼭 틀어박혀 있을 때이옵니다. 오늘은 폭설 때문에 조금 힘든 행차가 되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사옵니다.”
“그런가요? 그러면 다른 애로사항은 없나요? 가마를 여벌로 준비하고, 내가 입을 옷으로 군사들이 입는 옷을 따로 준비하는 것 같던데 ….”
노국대장공주가 대화에 끼어든다. 역시 예리한 관찰력이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잘 알고 계시듯이, 현재의 국제정세나 고려국의 국내 사정이 안정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옵니다. 환국 중에 도둑 떼를 만날 수도 있고, 험한 고개가 있어서 마차로 이동하기가 힘 드는 구간이 있을 것에 대비하려는 것입니다. 마침, 공주님께서 무예를 익히시고 높은 경지에 도달해 계신지라 군사로 위장할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하여 준비한 것이옵니다. 가장 걱정되는 구간은 회령령과 청석령이옵니다. 이곳을 제외하면 요동 벌은 평지가 대부분이고, 특히 고려국령으로 들어서면 그다지 험한 길은 없사옵니다. 지나는 길목마다 고려국 관아에서 행차를 영접하고 안전하게 모시게 될 것입니다. 환송 차 동행하는 원나라 왕자 일행이 국경지대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하니, 너무 심려치 마옵소서. 소장이 목숨을 걸고 소임을 다하겠사옵니다.”
변안열은 환국 행렬의 행로와 숙박할 곳 등을 소상히 아뢴 뒤, 날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한 달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두 분 마마, 침수 평안히 드시옵소서.”
변안열이 예를 갖추고 물러 나오니, 군사들이 피우는 화톳불이 하얀 눈밭을 녹이며 빨갛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공민왕의 침소가 그렇게 따뜻했다고 생각하면서 번을 서고 있는 병사들을 위로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려국 시인 이조년의 손녀 이소저(李小姐)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힘든 길에 피곤할 텐데 일찍 주무시지 않고 이곳은 웬일이요?”
변안열이 적이 놀라면서 묻는다.
“그렇기는 하오나, 고맙다는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여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소녀에게 귀국의 길을 열어 주신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장군님.”
이소저는 바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큰절을 올린다.
“이러지 마시오. 내가 무슨 한 일이 있다고…. 소장도 이소저의 귀국을 축하합니다. 이제 한 달 후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환국 행로가 끝날 때까지 건강 잘 챙기시고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밤도 늦었으니 어서 가서 주무십시오.”
“장군님, 잠시만이라도 눈밭에 부서지는 저 달빛을 보십시오. 흡사 배꽃에 내리는 달빛 같지 않습니까? 마침 소녀의 조부이신 조자 년자 쓰시는 분의 자규제(子規啼)를 소녀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밤, 이 애틋한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읊어 올리겠사옵니다. 구차하지만 소녀의 작은 정성으로 여기시고 부디 들어 주시옵소서.”
이소저는 자기 숙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그녀의 할아버지가 지어 읊으신 시조 한 수를 읊어 올리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
“오, 이소저와 처음 만났던 날 심양의 달빛 아래에서 불러 주신 그 노래 말씀이군요.”
변안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만 …. 내키지 않으시옵니까? 그만두오리까?”
이소저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묻는다. 눈을 들어 변안열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다.
“아니오, 당치도 않는 말씀이오. 자규제는 몇 번을 들어도 다시 듣고 싶어지는 노래지요. 더욱이 이소저가 불러 주신다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다시 듣겠습니다.”
이소저는 자규제를 읊는다. 조부님이 지은 노랫말에 고려국 풍의 가락을 얹어 부르는 노래다. 고려국에서는 이것을 시조창이라 하고 이러한 노랫말을 시조(時調)라고 부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변안열은 심양에서 듣던 노래와는 색다른 맛깔이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감흥이 솟구쳐 오른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랴마,
다정(多情)도 병인 양 여 못 드러 노라.
지금 눈앞에는 분명히 배꽃이 피어 있지 않다. 그저 눈에 덮여 있는 허허벌판일 뿐이다. 그러나 달빛에 젖어가는 요동벌은 이소저의 고향, 고려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그 배밭일 거라고 변안열은 생각한다. 휘영청 밝은 달빛, 하얗게 반짝이는 끝없는 벌판은 굳이 배밭인가 눈밭인가를 가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둘 다 매한가지로 하얀 세상을 이루고 있었으니 이 시조가 그 진가를 발휘하기에 딱 알맞은 풍경이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나란히 서 있는 한 쌍의 젊은 남자와 여자, 가히 세기의 명화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변안열이 벼슬길에 올랐던 초창기에 심양의 한 누각에서 이소저를 만나 처음 듣던 노래가 아닌가. 감흥이 새로웠다. 이어서 변안열도 즉흥시 한 수를 읊어 화답한다. 자규제를 줄기로 하여 시조 형식을 취한 노래다.
요동벌 달빛 차고 눈빛 저리 새하얀데
한 조각 붉은 마음 가지 끝에 펄럭인다
옷고름 하나로 묶어 저 가지에 걸고저
심양 호수 은빛 물결이 눈 덮인 요동 벌과 겹쳐진다. 심양을 떠난 지 겨우 하루, 차디찬 눈밭에 세운 게르(Ger), 번을 서는 병사가 피우는 화톳불, 아직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젊은 피는 뜨겁기만 했다. 이들이 어우러져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요동 벌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굳이 화톳불을 피우지 않더라도 몸이 얼어붙지는 않을 것 같다. 할아버지 이조년의 시조를 읊는 동안 눈꽃이 흐드러지게 핀 벌판, 바람칼에 마른 껍질을 에이는 아픔을 견디다 못한 나뭇가지가 자규의 사연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슬픈 노래를 대신 불러 주고 있었다. 요동 벌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낮 동안 휘몰아치던 눈발이 언제 그쳤는지, 휘영청 밝은 달은 언제 떠올랐는지 젊은 남녀는 알지 못했다. 바람 끝이 소맷자락을 잡아 흔들어 댔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두칠성이 한 뼘도 더 넘게 꼬리를 틀고 시샘하는 눈빛으로 이 젊은이들을 흘끔거리고 있다.
쏟아지는 달빛에 함께 젖었던 이소저와의 시간 속에 할아버지의 조국, 고려 땅으로 한 발씩 다가간다는 설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변안열은 먼동이 트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야영지를 순시하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야영 중 특이한 사항은 없었는지 세세하게 점검을 한 다음,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침전을 방문하여 아침 문안을 드리고, 간밤 야영에 이상 없었음을 아뢰었다.
“이 모든 것이 배행수장의 덕이요, 남은 장도도 잘 인도해 주기 바라오.”
공민왕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변안열이 소임을 수행하는 모습에 흡족해하며 더욱더 무거운 믿음을 가진다.
햇살이 드넓은 평원에 쌓인 눈 위에 떨어져 망아지처럼 뒹굴기 시작할 무렵, 환국 행렬은 두 번째 날의 행차를 시작하였다. 이소저는 밤을 꼬박 새운 티를 감추지 못했다. 얼굴에다나, 어제 한잠도 못 잤어.’ 라고 크고 또렷한 글씨를 써 붙이고 반은 졸면서 힘겹게 행렬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어제 같지 않음을 눈치챈 노국대장공주의 배려로 이소저는 빈 채로 가고 있는 위장 가마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위장 전술 훈련의 일환이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서 내린 조치였다. 당사자인 이 소저는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이를 지켜보는 변안열 또한 노국대장공주의 넓은 아량과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변안열과 이 소저가 어젯밤을 고스란히 뜬 눈으로 새웠음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던 노국대장공주, 또한 눈치가 10단을 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충가와 부다시리라는 이름을 가졌던 소년과 소녀는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고, 지금은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러나 마음만은 늘 가까이 서 있는 그 아름다운 시절을 한 포기 고운 풀꽃으로 가꾸고 싶은 심정이었다. 변안열이나 노국대장공주 모두의 숨김 없는 마음이다. 한때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 달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들어온 충가, 그 충가 옆으로 소리 없이 다가갈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여인 부다시리, 승의공주 아니 노국대장공주가 된 부다시리는 변안열과 이소저 사이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사랑을 질투할 법도 하지만, 이들 둘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열매 맺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소저를 이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도, 변안열의 청을 노국대장공주가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이었으니, 사랑하는 이에게, 그 사랑을 위하여, 그의 옆자리에 모셔 앉힌 것이다.
요동 벌 칠백 리, 꿈결같이 피어나는 사랑과 사랑의 물결로 흘러, 열흘이 지나서야 건널 수 있었다. 틈틈이, 요동 벌에 널려 있는 화표루, 요동백탑, 관제묘를 구경하며 때로는 바람을 맞고 때로는 눈보라와 싸우고 또 때로는 겨울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서두르지도 않고 늑장 부리지도 않으면서 길고 긴 행렬은 유유히 흘러갔다. 태자하를 건너 신요동을 지나 호피역참에 들어서서는 그 유명한 요동 벌의 석양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고려총, 냉정참, 대석문령, 왕산령, 낭자산참을 지나자 변안열은 전진을 멈추고 공민왕을 뵙는다.
“마마, 오늘은 이곳에서 숙영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하루쯤 더 푹 쉬었다가 갈런 지도 모르겠사옵니다. 두 분 마마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청석령 서쪽 고개 밑에 이르기 너덧 마장쯤 앞에서 변안열이 공민왕에게 고하며 뜻을 묻는다. 마침 노국대장공주도 곁에 있었다.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았는데, 이곳에다 짐을 풀겠다니, 무슨 연유라도 있는 것이오?”
공민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네, 아직 해가 저물기에는 이른 시각이옵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곳에서 짐을 풀고자 하는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변안열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잠깐 생각을 가다듬고 진중한 자세로 다시 말을 잇는다. 눈앞에 보이는 고갯길이 청석령의 서쪽길인데, 이 환국 행렬이 가는 길 중에서 가장 험준한 구간이며 그만큼 넘기 어려운 고개라는 것이다. 길도 넓지 않을 뿐만아니라 길 가운데에 날카로운 청석이 촘촘히 박혀 있어 지나다니기가 지극히 불편하다고 한다. 산세가 험하여 도둑 떼가 자주 출몰하기도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바로 고려국과의 경계 지점에 이르게 된다. 책문이나 압록강 어구에서부터는 고려국에서 영접할 사신과 군마를 보내게 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 고개를 넘는 일이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고비가 된다. 그만큼 어려운 구간이기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아뢰었다.
“이런 연유로,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는 것이옵니다.”
변안열이 길고 긴 설명을 마치자, 노국대장공주가 끼어든다. 성미 급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려고 갑옷을 별도로 준비시킨 게로군요. 가마도 이중으로 준비하고, 행렬의 모든 사람이 말을 타게 한 것도 그렇고요.”
“그러하옵니다, 마마. 환국 행렬을 짓는 모든 사람에게 말을 타게 한 것은 만일의 경우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굳이 숙영지를 고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다 마련하려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사방이 탁 트인 곳이 적의 침공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우리 진영을 지키기에도 편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알았소, 배행수장께서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잘 챙기셨는지 보지 않아도 잘 알 것 같소.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다른 두 장군을 대동하고 이곳에서 다시 만났으면 하오.”
“네, 마마. 그렇게 준비하겠사옵니다.”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변안열은 다른 두 장수와 함께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숙영하는 막사를 찾았다. 다섯 사람이 격의 없는 토론을 거친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다.
하나, 숙영지는 이 지점을 이탈하지 않고, 1~2일간 머물면서 청석령을 넘을 호기를 살핀다.
둘, 척후병을 파견하여 청석령 고개를 일차적으로 넘어 보고 주변 상황을 살핀다.
셋, 휴식을 취하는 동안 군사들에게 훈련을 꾸준히 시키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장비를 점검한다.
넷, 짐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상황에 따라 마차를 버리고 말 등에 실어 운반이 가능하도록 준비한다. 척후의 결과에 따라 왕과 왕비도 가마에서 내려 다른 행렬 참가자들과 같은 복장으로 위장하고 호신용 무기를 휴대한다.
다섯,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하고 가능하다면 청석령과 회령령을 쉬지 않고 당일로 모두 넘도록 강행군한다.
여섯, 식사는 초간편 식으로 1~2일 분량을 미리 준비하고 두 고개를 완전히 넘을 때까지는 연기나 불빛이 나지 않도록 취사를 하지 않는다.
일곱,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는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제반 위장 조치를 취한다.
여덟, 두 고개를 모두 넘을 때까지는 배행수장이 독자적인 지휘권을 가진다.
이 결정에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도 흔쾌히 동의했고 사후에도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며 설혹 착오가 발생하더라도 죄를 묻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사뭇 비장한 기류까지 감돌았다.
청석령 고개에서 너덧 마장쯤 떨어진 곳에 여장을 푼 일행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모두 음식을 배불리 먹게 하였다. 이 소저가 변안열의 막사로 찾아왔다.
“이제, 고국의 땅을 밟아 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책문까지만 가면 안심해도 된다면서요?”
“그렇소. 책문까지만 도달한다면 안심이지요. 그러나, 지금부터는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답니다. 우리가 여행하는 길 중에서 가장 험하고 위험한 구간이지요. 이 소저는 어디 몸이 불편한 곳은 없겠지요?”
변안열의 표정과 말소리에는 진정성 가득 찬 걱정과 애정이 넘쳐흘렀다.
“네, 이상 없습니다. 배행수장께서는요?”
이소저도 변안열을 올려다보면서 다정스럽게 묻는다. 눈에는 노을 같은 불꽃이 소리 없이 타오른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고 남은 장도에서 서로의 안전을 기원한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척후를 나갔던 병사 중의 한 명이 돌아왔다.
“배행수장님, 청석령 고개까지 갔다 왔으나 이상징후는 없었습니다. 나머지 두 병사는 회령령까지 돌아보고 내일 새벽까지는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수고했소, 어서 가서 좀 쉬도록 하시오.”
척후를 나갔던 세 사람 중 나머지 두 사람은 자정을 살짝 넘길 무렵에 숙영지로 돌아왔다. 듣던 대로 청석령의 고갯길은 험난하였으나 회령령 고갯길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요즈음 며칠간 날씨가 좋았던 탓인지 노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였다고 보고한다. 다만, 고갯길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비적의 출몰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척후병들이 오고 갈 때는 이상이 없었으며 날이 어두운 탓인지는 모르지만 단 한 사람의 행인조차도 만나지 못했다는 보고였다. 변안열은 이 사항을 다른 두 장수에게도 알려 주고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에게도 아뢴 다음 야영 상태를 직접 점검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이튿날 먼동이 트기 전에 환국 행렬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청석령 너덜겅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출발에 앞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그리고 삼장은 그저께 세웠던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첨병의 정찰 보고를 바탕으로 다소 과감하게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배행수장, 차라리 장사꾼으로 위장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공민왕이 조심스럽게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안전을 위한 위장술을 꺾으려 들지 않는다.
“마마께옵서 걱정하시는 바를 모르는 바 아니옵니다. 그러나, 이 행렬은 고려국의 임금님이 환국하는 행렬이온데 척후병의 정찰 보고에 따르면 행로가 극한적으로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도 상인으로 위장하여 이 고개를 넘는다면 훗날 마마께 불어닥칠지도 모르는 세간의 조롱이나 비난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소장은 생각하옵니다. 혹시라도 위험도가 극한상황이라면 고려해 볼 수도 있는 방안이기는 하오나 그보다는 훗날 마마의 존엄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장 등이 목숨을 다 바쳐 안전하게 모시겠사오니 너무 심려치 마시고 소장을 믿어 주시기 바라옵니다.”
변안열의 간곡한 충정을 공민왕은 모르는 체할 수 없었다.
마침, 희미하게나마 새벽달 빛이 비치고 있어서 따로 횃불을 밝히지 않아도 길을 열어 갈 수 있었다. 역시 청석령 고갯길은 험했다. 환국행렬의 진군 속도가 거북이처럼 느리다. 가마를 비워둔 채로 두 분 마마도 말을 타고 고개를 올라갔다. 변안열은 배행수장으로서 전체를 살피느라고 앞장을 섰다가 뒤처졌다가를 반복하였고, 두 사람의 장수는 각각 선두와 후미를 맡았으며, 다른 장수들은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주위를 에워싸고 길을 잡았다. 이소저는 노국대장공주와 밀착된 상태를 유지하며 말을 몰았다. 말방울은 모두 제거되었거나 소리가 나지 않도록 특수한 장치를 했다.
동이 틀 무렵, 환국 행렬은 드디어 청석령 고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일행은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행렬은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고개를 내려갈 때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가마를 탔다. 드디어 달빛이 없어도 길을 잡아갈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았다. 그렇게 고개 중턱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에서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달빛을 등지고 시커먼 그림자 대여섯이 질풍처럼 달려 내려온다. 반갑지 않은 손님, 불청객이다. 변안열은 재빨리 행렬의 선두 쪽을 중심으로 주변 상황을 살폈다. 불청객은 뒤쪽에서만 쫓아오는 것임을 확인했다. 변안열은 즉각 작전을 펼친다. 그와 동시에 환국 행렬은 각자의 말에게 힘찬 박차를 가하였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는 가마에서 급히 내린 다음 말로 갈아타고 선두 그룹의 중심으로 끼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변안열은 공민왕 옆으로 이소저는 노국대장공주 옆으로 달려갔다. 마침 두 분의 차림새는 다른 사람과 똑같았다. 튀는 모습이 아니었다. 심양에서 변안열이 탈탈의 제자로서 무술 수업을 받던 동안, 두 분 마마도 틈틈이 무예를 익혀 둔 것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민첩한 행동을 보여 준 것이다.
변안열은 다음 명령을 내린다. 그와 동시에 선두 그룹 앞으로 병사 서너 명이 나서서 달리는 속도를 최대치로 높였다. 그와는 달리, 이십여 명의 병사는 속도를 늦추면서 뒤쪽으로 모인다. 중간 부분은 예닐곱 명의 군사가 행렬 사이에 끼이면서 자연스럽게 호위 대열을 갖추었다.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전열을 가다듬은 것이다.
후미로 모인 병사들이 전투태세를 갖추자마자 벌써 불청객들이 바짝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청석령 고개의 돌밭 길을 잔디밭 달리듯이 숙련된 자세로 신속하게 뒤따라온 것이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칼날이 부딪칠 때마다 번갯불 같은 불꽃이 튄다. 변안열은 선두를 다른 장수에게 맡기고 급히 후미로 빠져서 불청객들과 맞붙는다. 순식간에 세 사람의 불청객이 변안열의 칼끝에서 이슬이 되어 떨어진다. 이제 네 명만이 남았다. 그들은 잠시 주춤한다. 그 순간 화살 몇 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선두 쪽에서 비명이 들려 왔다. 상황이 시급해지고 있음을 감지한 변안열은 다시 다음 작전 명령을 내린다. 그와 동시에 후미에 붙어 끌려가던 마차 두 대가 멈칫거리더니 군사들의 틈새를 빠져나와 차체를 구십 도로 꺾어 그 자리에 멈추면서 좁은 산길을 막아버린다. 이중의 방어벽이 삽시간에 설치된다. 마차를 끌고 가던 두 필의 말은 어느 틈엔가 그 마차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멋모르고 달려오던 불청객들의 말이 마차의 이중 방어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하나 같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등에 탄 불청객들을 사정없이 떨쳐내 버린다. 말에서 떨어져 나간 불청객은 모두 넷이었는데 그들이 머리를 처박은 곳은 수십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밑이었다. 뒤이어 불청객들의 말이 토해내는 비명이 계곡을 흔든다. 역시 수십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밑이었다.
변안열은 상황이 바뀌고 있음을 감지했으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상황의 변화를 살펴볼 틈도 없었다. 변안열은 전속력으로 진군할 것을 명령했다. 오직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안위에만 집중했다. 이 상황을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던 돌개바람이 청석령 고개를 휩쓸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 사이 날이 밝아졌다. 산길은 어둠을 걷어내고 환하게 밝아진 얼굴을 내밀었다. 변안열은 두 분 마마의 안위부터 살폈다. 무사했다.
“조금 전에 비명이 들렸는데, 무슨 일이냐?”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안전함을 확인한 변안열은 이제야 그 비명의 진상을 챙긴다.
“배행수장, 이소저가 변을 당하고 말았소.”
노국대장공주가 축 늘어진 이소저를 끌어안고 말했다.
“배행수장님, 병사도 한 명 전사하였습니다.”
정신없이 싸우는 중에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불청객의 화살에 두 사람이 그만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변안열은 의원을 불러 그 둘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병사는 급사하였사옵니다. 여인은 아직 숨을 쉬고 있으나, 화살을 맞은 곳이 심장 쪽에 가깝습니다.”
의원의 대답을 마저 듣기도 전에 변안열은 이 소저를 끌어안는다.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쏟아지는 눈물이 이소저의 핏기없는 두 볼을 적신다. 노국대장공주도 이소저의 차가워진 손을 잡는다. 그렇게도 고국 땅을 밟아 보고 싶어 하더니만, 그 땅을 눈앞에 두고, 저승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니…. ’ 변안열은 할 말을 잊었다. 그저 애틋한 눈빛으로 이 소저를 바라보며 오열할 뿐이다. 이소저가 안간힘을 쓰며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로 말을 한다. 핏기를 잃어가는 입술이 가볍게 떨릴 뿐 말소리는 또렷하지 않았다. 그 눈빛만이 변안열의 눈 속으로 파고들어 새로운 둥지 하나를 틀고 있을 뿐이었다. 변안열은 그 둥지를 틀 수 있도록 가슴 깊은 곳에 터 하나를 내어 준다. 그리고 이소저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는다.
“고마워요, 즐겁고 행복했어요. 나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나 먼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한 송이 두 송이 …. 이내 함박눈이 된다. 심양을 떠나던 날 아침처럼 온 세상이 하얗게 바뀌고 있다. 청석령 고갯길이 온통 함박눈으로 덮인다. 그 눈을 밟으며 이소저는 저승길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을까? 혹시 이승에 남겨 둔 정 하나를 잊지 못한 채 아직 허공을 맴돌고 있지는 않을까? 눈이, 함박눈이, 하얗게, 하염없이 내린다.(다음 호에 계속)
김용채:
- 시조시인(농민신춘), 문학평론가(문학과의식) 소설가(문학과의식)
- 행정학 석사(연세대학교), 공무원 정년 퇴임(서울특별시)
우리 시조 으뜸과 떡잎 총재
- 시조집 ‘숭어, 뛰다’, 시조시비 ‘예덕원’, 장편소설 소설 불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