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학교
정명수
전화가 울렸다. 권 형사는 쉽게 잠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권 형사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간이침대에서 내려와 스위치를 찾았다. 순간 악을 쓰며 울리던 벨이 끊겼다.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적이 흘렀다. 전화는 형광등이 미처 다 들어오기도 전에 다시 울렸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실종팀....”
“반장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세요? 무전도 안 받고”
인사말이 끝나기 전 짜증 섞인 말이 수화기에서 튀어나왔다. 112지령실이었다.
“아 그게.......”
“어린이 실종 신고에요 무전기 들으시고 현장으로 나가보세요. 무전기 잘 받으시고요”
이번에도 자기 말만하고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구차하게 변명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스런 말투는 거슬렸지만 사소한 실수로 인해 그 동안 쌓아 왔던 성실한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매사 꼼꼼한 권 형사는 경찰서에도 성실한 경찰관으로 소문이 났다. 아무리 피곤해도 당직 근무 때는 졸지 않고 밤을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부모님도 우등상장 보다 6년 개근상장을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당직 근무를 앞두고 고향에 다녀오면서 장시간 운전을 한 것 때문이다. 몸도 피곤했지만 그 동안 골칫거리를 해결한 안도감 때문인지 마음이 느슨해진 탓일 수도 있었다.
어제 아버지를 요양원에 입원시켰다.
건강하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부쩍 늙어버렸다. 그래도 텃밭도 일구고 교회도 매주 빠지지 않고 나갔다. 하지만 재작년 겨울 뒷마당에서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고관절이 골절됐다. 아버지는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담당 주치의가 뼈가 굳을 때 까지 움직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도 간호사들도 힘들어 했다. 병원에서는 금방 유별난 노인이 되었다. 봄이 되자 아버지는 더 괴팍해져 갔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간호사를 불렀다. 같은 병실에 있는 분들도 견디지 못하고 다른 병실로 옮겨갔다. 병원에서도 아버지의 퇴원을 은근히 원하는 눈치였다. 뼈가 완전히 굳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아버지를 퇴원시켰지만 형제들은 모시길 꺼려했다. 권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고3이고 딸도 중3으로 집안 전체가 예민한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고향집으로 모시고 숙식이 가능한 요양보호사를 두기로 했다. 아버지는 몸은 굳어갔지만 정신은 맑았다. 귀저기를 차고 있는 것을 힘들어했다. 이런 저런 화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풀었다. 어렵사리 들어 온 요양보호사들은 두 달을 버티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부탁도 하고 겁도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더 이상 아버지를 돌봐 줄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최선책은 요양원으로 모실 수 밖에 없었다. 형도 누나도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몰라보게 마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쓰렸다. 요양원 말고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아버지는 집에 있겠다고 완고하게 버텼다.
“아버지 이젠 저희 생각도 해주세요.”
애원하며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도 그랬다. 그 누구도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모실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왔다. 도살장에 끌려가듯 들어가는 아버지 모습에 가슴이 쓰려왔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버지 말은 한 번도 거역하지 못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 뜻이 아닌 결정을 내렸다.
새벽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무전기에서는 10살짜리 초등학생이 실종되었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권 형사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십여 년 동안 제대로 된 납치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만약 납치가 되었다면 납치범들로부터 이미 연락이 왔을 것이다. 아마 PC방에서 게임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임대 아파트 초입에 있는 PC방 앞에서 실종 아동의 엄마를 만났다.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뒤로 묶은 머리카락에는 흰머리가 많이 보였다. 의외로 당황해 하지도 않았다. 여러 차례 이런 일을 겪은 듯이 담담해 보였다. 신고 경위도 차분하게 설명했다. 집을 나간 아이는 4형제 중 셋째라고 했다. 이름은 범석이고 구암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했다. 저녁 7시쯤 둘째 가 아파트 앞 PC방에서 보았는데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 주변 PC방을 모두 뒤졌지만 범석이를 찾지 못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수사를 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범석이 휴대폰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강력팀에서 아이 휴대폰의 최종 기지국을 확인했다. 천안 근처에서 휴대폰이 꺼졌다고 했다. 천안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다고 했다. 권 형사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가 넘었을 때 범석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가 있는 곳은 어떤 창고 같은데 어두워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범석은 어떤 아저씨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에 울먹이는 소리를 들으니 불안했다. 징조가 좋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아이에게 전화하지 못하도록 했다. 충북청과 천안경찰서에 공조 수사 요청을 하고 다시 휴대폰 기지국을 확인했다. 범석이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시 무전기가 소란스러워 졌다. 실종이 아닌 납치 사건으로 변경되었다. 관악경찰서 뿐만 아니라 서울청 전체가 술렁거렸다. 천안서에서 강력팀 형사들과 관할지구대 경찰관들이 급하게 움직였다.
권 형사는 일이 잘못될 경우 불똥이 자신에게 떨어질 것이 먼저 걱정됐다. 경찰조직 특성 상 비난성의 결과가 발생하면 책임은 늘 담당자에게 돌렸다. 곧 있을 심사 승진 회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어렵게 얻은 기회가 날라 갈 판이었다. 시간이 더디게 지나갔다. 차 안 분위기도 바다 밑 같이 우울하고 조용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뒷좌석에 있던 아이의 엄마도 처음과 다르게 감정이 드러나 보였다. 다시 범석이 엄마 전화벨이 울렸다. 급하게 전화를 받았지만 남편인 듯 했다. 남편이 지방 출장 중이었는데 범석이 실종 소식을 알고 급히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초승달이 서쪽으로 기울어 갈 즈음 범석이를 찾았다는 무전이 들렸다. 권 형사는 112지령실로 전화해 다시 확인한 뒤에야 안도했다. 천안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아이를 찾아 인근 지구대에 인계했다고 했다. 아이가 납치된 것은 아니었다. 아이 스스로 지하철을 타고 천안까지 온 것이었다. 범석 형이 학원에 가지 않고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범석을 우연히 발견하고 아버지에게 이른다고 하자 겁을 먹고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었다. 납치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범석을 데리러 천안으로 가기로 했다. 범석이 아버지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화가 난 모습이었다. 권 형사는 범석이 아버지의 얼굴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새벽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다들 말이 없었다. 차량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요란했다. 권 형사는 사이드미러를 보다 우연히 아이 아버지 손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 손가락 세 개가 없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를 ‘아버지 학교’에서 본 기억이 났다.
올해 초 새로운 경찰서장이 부임했다. 경찰서장은 며칠이 되지 않아 자주 보이는 직원들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화력이 있었다. 경찰관들은 위험한 직군에 해당된다며 가정이 먼저 안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아버지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프로그램이라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경찰서장이 지시한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따랐다. 계획서가 각 과에 하달되고 지원자를 모집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각 과로 인원이 할당되었다. 올해 경위 심사 진급 대상자인 권 형사는 마지못해 참가했지만 서장에게 잘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경찰서에 있는 수 백 명의 경사 가운데 단 두 명만 경위로 진급한다. 서장이 낙점해야지 가능한 일이다. 권 형사는 아버지 학교가 진행되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형교회에서 시작한 ‘아버지 학교’는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고 강조했다. 제일 먼저 그 동안 가정에 소홀히 했던 부분을 자아비판 하게 했다. 어릴 적 동네 교회 부흥회에서 느꼈던 분위기였다. 프로그램 마지막도 자녀와 아내에게 참회의 편지를 쓰는 것으로 끝났다. 편지 한통에 소통이 될까 의심이 들었다.
프로그램 보다 인상 깊은 강사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 폭행을 피해 중학교 때 가출해 공장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 세 개가 잘렸다고 했다. 그러다 교회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화해했고, 결혼을 했지만 자신들의 자녀를 낳지 않고 입양한 아이 4명을 기른다고 했다. 자신은 폭력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절대 혼을 내지 않고 사랑으로 기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강사들보다 가장 호응이 많았다.
권 형사는 부모를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고 먼저 범석을 만났다. 확인할 것이 있었다. 범석은 지구대 휴게실에서 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생각보다 차분했다.
“범석아 경찰관 아저씨야 몇 가지 물어볼게 있어 이곳은 누구와 왔니?”
“혼자 왔어요”
“서울에 혼자? 이곳에 누구 만나려고 왔니?”
“아니요 그냥 ..... ”
“말하기 곤란하면 안해도 돼?”
침묵은 얼마가지 않았다. 범석이도 자기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잘못했어요, 오늘 학원에 안가고 PC방에 갔는데 형이 보고 아버지 한테 이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무서웠어요 그랬어요”
범석은 아빠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워?”
“........ 네”
“아버지가 학원 안가면 많이 혼내지? 혼 낼 때 때리기도 하니?”
“............”
“말하기 곤란하니?”
“............” 범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 아저씨가 범석이 몸을 좀 봐도 되겠니?”
“............”
범석은 동의도 하지 않고 거절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가 좀 볼게” 권 형사는 급하게 범석이의 몸을 확인했다. 권 형사 예상대로 종아리에 옅은 멍자국이 있었다.
“아버지가 범석이 말 안들으면 종아리를 때리니?”
“.........” 범석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범석 부모에게 꾸중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도 모두 말하지 않았다. 새벽 동이 터오고 있었다. 긴 하루였다. 범석이는 잠이 들었다. 범석이 아버지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권 형사의 마음은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