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Dalaras (조지 달라라스)
그리스 음악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바실리스 찌짜니스의 <렘베티카> 연성화 작업으로 렘베티카는 대중성 있는 음악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마노스 하지다키스의 <엔테크노>에 이르러 고도의 서정성을 획득하였다. 테오도라키스와 하치다키스같은 음악을‘엔테흐노(enteknno)’음악이라고 부른다. 고유명사라기보다는‘예술적(artistic)’음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들은 클래식 음악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의‘예술’은 서양음악의 어법과 그리스의 음악적 전통을 융합시키고, 나아가 그리스의 풍부한 시적 전통을 음악에 융합시켰다. 그래서 그리스의‘순수 음악'은 서양 음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여타 나
라들과는 격이 다르다.. 그 점에서 테오도라키스와 하치다키스 모두 렘베티카(Rembetika)의 팬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렘베티카(Rembetika). 지금은 그리스를 대표하는 음악이지만 박해받은 역사를 가진 이 음악이야말로 가장 그리스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렘베티카의 본질인 블루스적이면서 동양적인 특유의 선율과 리듬은 무디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여 탄생한 음악이 ‘라이코(Laiko)’이다. 라이코는‘대중적인’이란 뜻으로 렘베티카를 현대화한 장르이며, 엔테크노와 달리 서구적인 멜로디와 화성보다는 그리스적인 선율과 리듬을 강조함으로써 ‘렘베티카의 적자’로 불리고 있다. 요르고스 달라라스는 이러한 라이코의
최고 뮤지션으로 그리스의 '스팅', '부르스 스프링스틴'이라고 불리며 그리스 최고의 대중가수이면서 그리스적인 렘베티카 선율을 세계 음악계에 알린 가수이다. 스팅과 함께 <Mad about you>를 부르기도 하였으며 '라이코의 제왕' 또는 '그리스의 목소리'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노래는 부주키 선율을 기본으로 하는 면에서는 렘베티카와 비슷하지만, 좀 더 대중적으로 가벼워지고 상업화 되어 있다. 그리스 전통 사운드에 기반을 두면서 록의 영향을 수용하고 중동풍의 동양적인 리듬과 서구의 음악요소를 혼합한 음악을 들려준다.
George Dalaras & Sting - Mad Ab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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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
달빛 아래 홀로 외로이 걸어가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지만
내 마음은 4월의 싸늘한 달을 휘감아 도는
머나먼 별에 갈 곳을 잃었다네.
내 모든 왕궁이 모래로 변해 바닷물에 허물어질지라도
난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네.
난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네.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에서
태고적 그 애달픈 음악소리를 들었네.
하지만 걸어가는 발걸음 내내 그대만을 생각했네.
걸어가는 발걸음 내내 그대 생각만을...
모든 별들, 수많은 모래알들...
바짝 타버린 바다가 남겨놓은 것들...
내게 말해주오...이 세상이 얼마나 오래 갈지...그 얼마나?
사람들은 사막 속에 자리한 한 도시...
고대 황제의 허영심으로 가득하다 하네.
신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떠다니고
탐욕스런 사람들이 노래한다네.
이런 모든 게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문화...
이것이 우리들 욕망의 결과물...
내 삶을 감옥처럼 무겁게 만들어 버리네.
그대가 모든 감옥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되었다고 해도
내 적들이 자유로이 걸어다닌다고 해도
난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네.
난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네.
내 삶에 지금처럼 외로운 적은 없었네.
내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이 내 영토라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리...
승리의 희열이라고는 없네.
이 모든 우리의 역사에는, 사랑 없이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
달빛 아래 홀로 외로이 걸어가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지만
내 마음은 4월의 싸늘한 달을 슬픔으로 휘감아 도는
머나먼 별에 갈 곳을 잃었다네.
그대 없는 난 어찌할 바를 모르네.
그대가 내 모든 세상을 폐허를 해결할 수 있다 해도
그대가 모든 감옥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내 적들이 자유로이 걸어 다닌다고 해도
내 모든 왕궁이 모래로 변해 바닷물에 허물어질지라도...
난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네.
난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네.
그리스를 대표하는 최고 뮤지션이며 지중해 최고의 남성 싱어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요르고스 달라라스" 1950년 피레우스 항구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부즈키 연주자이며 렘베티카 음악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 속에 부즈키를 연주하며 중동풍과 동양적인 음감을 터득할수 있었다. 15세 때부터 어쿠스틱기타를 능숙하게 다루게 되고 18세에 일찌감치 첫 앨범을 발표해 성공적인 뮤지션으로 성장하게 된다.
1973년 군부 정권이 몰락하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녹음작업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는다.자신만의 새로운 사운드를 발전시키면서 "그리스의 목소리" 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며 그리스의 전통 사운드에 록의 색갈을 입혀 그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이어나간다. 플라멩꼬의 전설적인 기타 리스트 "빠코 테 루씨아" 와 재즈 기타 리스트 알 디 메올라 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서 중동풍의 리듬과 서구의 음악요소를 혼합한 음악을 펼쳐나가며 달라라스 음악은 강한 사회적인 메세지를 담으면서도 아름다운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로인해 그에게 붙혀진 이름이 그리스의 "밥 딜런"이라 불리며 무엇보다 달라라스의 성공과 1980년대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그리스 록의 운동'이 점화되어 그리스 음악에 뿌리를 둔 록 그룹이 출현할수 있게 되었다.
George Dalaras - Yiğidim Aslanım Burda Yatıy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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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음악인들로서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인물은 영화 [희랍인 조르바]의 음악을 작곡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라든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Aphrodite"s Child)를 이끌다가 전자음악가로 변신한 반젤리스(Vangelis)일 것이다.
어느 이름모를 네티즌의 시 한수
새벽에 내 혼은 칸다하르 황량한 사막을 지나네
나는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혼이 나를 거역하네
팔레스타인에서 칸다하르까지
차라리 이 세계를 거역하라 나의 혼이여
둥둥 북소리 울리며 반도를 떠난 혼이 지나는 길
화염과 먼지폭풍사이에 언뜻 보이는 네 얼굴,
너무도 참혹하여 차마 바라 볼 수 없는
어린 소녀의 눈망울을 보았네
차라리 나는 이 세계를 떠나고 싶네
나의 혼이여
더는 눈 뜨지 말아라
결코 이 세계의 아픔에 개입하지 말아라
보라
이 세계의 그 누가 자유롭다 할 수 있는가
이 세계의 그 누가 떳떳하다 할 수 있는가
공인된 폭력,정당한 살륙앞에
이 세계의 그 누가 죄인이 아닐 것인가
새벽에 내 혼은 칸다하르 황량한 사막을 지나네
차마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하고 달빛 망망한 고원위를 떠도네
Giorgos Dalaras - Sto 'pa Kai Sto Ksanaleo /I told you and I'm telling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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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을 이용해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함
I told you and I'm telling you again don't go down to the seaside, 'cause the seaside may roughen it may take you away and you'll cross (the sea) And should it take me where does it get me? Down in the deep waters, I'll turn my body to a boat, my hands to oars, my neckerchief to sail, I'll be coming on and off land I told you and I'm telling you again don't you write letters to me, because I don't know any letters and I'm bursting into tears | 내가 너에게 말했고 또 너에게 말하고 있어 해변으로 내려가지 마세요. 해변이 거칠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것은 당신을 데려갈지도 모르고 당신은 (바다를) 건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가? 깊은 바다 아래로, 몸을 배로 바꾸겠다. 내 손은 노를 젓고, 항해를 위한 내 목도리, 난 육지로 왔다 갔다 할 거야 내가 너에게 말했고 또 너에게 말하고 있어 나한테 편지 쓰지 마세요. 왜냐하면 나는 어떤 글자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
또한 프랑스의 "샹송 가수"이자 "뜨루바도르(음유시인)"인 조르쥬 무스타키(Gerorges Moustaki)도 그리스 태생이며 그의 음악에 "지중해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둘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도, 반젤리스도 "올림픽의 고향"인 아테네의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지는 못했다. 반면 1983년에 두 번에 걸쳐 스타디움에 80,000명의 청중을 모은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요르고스 달라라스다. 그는 그리스의 고유한 정신 세계를 대표하는 지중해 최고의 남성 싱어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Giorgos Dalaras - S'Agapo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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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을 이용해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함
It isn't passing, this night isn't passing Only one look of yours for a moment This love, oh God make this love be true From your breath I take a breath too You're for me, you're life I love you,everything seems to be a lie away from youI love you, I give my life for you I love you, you're a heartbeat at my own heart I love you,everything seems to be a lie away from you I love you, I give my life for you I love you, you're a wave that carries me away It isn't passing, this night isn't passing Away from your arms Don't betray me, stay here, don't leave for some other company I still feel the wet kisses on my lips I want you so much, only for me I love you,everything seems to be a lie away from you I love you, I give my life for you I love you, you're a heartbeat at my own heart I love you,everything seems to be a lie away from you I love you, I give my life for you I love you, you're a wave that carries me away | 지나가지 않아 이 밤이 지나가지 않아 잠시 너의 모습 하나만 이 사랑, 오 신이시여 이 사랑이 진실되게 하소서 너의 숨결에 나도 숨을 쉬어 당신은 나에게 있어, 당신은 인생이에요 사랑해 모든 게 다 거짓말인 것 같아 널 사랑해 나는 당신을 위해 내 인생을 바칩니다 사랑해요, 당신은 내 마음의 고동이에요 사랑해 너한테는 모든 게 다 거짓말인 것 같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내 삶을 바칩니다 사랑해 너는 나를 데려가는 파도 지나가지 않아 이 밤이 지나가지 않아 당신의 팔에서 멀리 날 배신하지 말고 여기 있어라 다른 회사로 가지 마 아직도 내 입술에 젖은 키스가 느껴져 너를 너무 원해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사랑해 너한테는 모든 게 다 거짓말인 것 같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내 삶을 바칩니다 사랑해요, 당신은 내 마음의 고동이에요 사랑해 너한테는 모든 게 다 거짓말인 것 같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내 삶을 바칩니다 사랑해 너는 나를 데려가는 파도 |
"그리스 음악"하면 렘베티카(rembetika)를, "그리스 악기" 하면 부주키(Bouzouki)를 각각 떠올릴 것이다. 류트의 일종인 현악기 부주키는 지금도 많이 사용되지만 그리스의 현대적 대중음악의 이름은 라이코(laiko: "popular"라는 뜻이다)라고 불린다. 요르고스 달라라스는 라이코의 제왕이자 지난 20년간 "동지중해 지역을 강타한 대중음악 중에서 가장 거대한 현상"이라는 칭호를 듣는다.
George Dalaras - Hidden Keys (숨겨진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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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유명한 뮤지션 요로고스 달라라스(George Dalaras)의 노래에 [숨겨진 열쇠] 라는 노래가 있다. 문이 닫혀 있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숨겨진 안타까운 상황을 그려주고 있는 노래인데 노래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우울한 서정이 깊게 드리워져 있지만 독특한 그리스적 선율 및 리듬과 어우러져 제법 맛깔스러운 화음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 요로고스 달라라스(George Dalaras) 특유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더해지면서‘희망의 노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목소리’ ‘그리스의 국민가수’ 등의 찬사를 받고 있는 요로고스 달라라스(George Dalaras)는 그리스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면서 록의 영향을 수용하여 독특한 그리스 록 음악을 탄생시킨 뮤지션이다. 이민자들의 슬픔과 애환을 담아내며 그리스 고유의 음악으로 자리 잡은 렘베티카가 서구음악의 영향으로 변질되고 있을 때 서구적인 멜로디와 화성보다 그리스적인 선율과 리듬을 강조하며 탄생된 것이‘라이카’라는 대중음악이다.‘렘베티카의 적자(嫡子)’라 불리는 이 라이카의 최고 음악가가 바로 요로고스 달라라스(George Dalaras)라 할 수 있다
가사
구원을 바라는 울부짖음이
그 문 너머에서 들려오지만
사람들은 말없이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삶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이 닫혀있는데
열쇠가 숨겨져 있으니.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희망의 출발점입니다.
열쇠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니
찾으면 되니까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움을 구하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
지나가 버리는 일일 것입니다.
열쇠를 찾아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요르고스 달라라스는 1949년 9월 29일, 그리스 피레아스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가수로서 일찌감치 음악인의 길에 들어선 유형에 속한다. 아버지인 루카스 엔타랄라스(Loukas Ntaralas)가 유명한 렘베티코 음악인이었기 때문이었다. 15살 되던 해인 1965년에 아버지의 음반에서 레코딩 데뷔를 한 그는 1968년 첫 솔로 앨범 [Expectations]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직업적 음악인의 경력을 밟았다. 그 결과는 약 30년 동안 50종에 가까운 음반의 발매와 700만장의 판매고로 나타났다.
이런 다산형 음악인의 음악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는 매우 힘들다. 어쨌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지아니스 마르코풀루스 같은 현대 그리스 음악의 거인들의 음악, 디모티코(Dimotiko)나 니시오티코(Nissiotiko)같은 그리스의 민속음악, 렘베티카(rembetika)와 스미르네이코(smirneiko)라고 불리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이 가져온 음악들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했다.
서구의 악기인 기타(guitar)와 (동)남구 악기인 부주키가 함께 연주되면서 현대적으로 프로듀싱된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자로부터 끓어올리는 듯한 그의 신실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달라라스의 음악은 그리스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결국 달라라스의 라이코는 렘베티코와 스미르네이코를 생동하는 음악으로 만들어 젊은 세대에게도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전세계의 대중음악 가운데 "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한 음악형식을 꼽으라면 인도와 더불어 그리스가 모범 사례로 꼽힐 것이다.
"전통"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94년 신축된 아테네 콘서트 홀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리스 음악의 역사를 추적하는 다섯 차례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이 공연은 무대에 오른 인물이 모두 225명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객석에서 박수를 친 인물 중에는 "정치 영화"로 저명한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Costa Gabras)도 앉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의 몇 차례에 걸친 공작도 그의 음악에 대한 신용을 더했는데, 특히 노벨상 수상자인 시인 오디세아스 엘리티스(Osysseas Elytis)의 시에 음악을 붙인 [Axin Esti](1988)는 국민음악의 거장의 작품에 신예 음악인이 참여한 명작으로 꼽힌다.
George Dalaras - Mi Mou Thimonis Matia Mou (내사랑 화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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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달라라스는 1949년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국민가수이다. 부주키 연주자이자 렘베티카 음악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부주키를 연주하며 동양적인 멜로디와 리듬속에 담겨진 렘베티카의 정수를 체득할 수 있었다 서구의 악기인 기타와 그리스의 민속악기인 부주키가 함께 연주되면서 현대적으로 프로듀싱된 사운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속으로 부터 끌어올리는 듯한 그의 신실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생동하는 요로고스 달라라스의 음악은 그리스 젊은이들을 사로잡았고 바로 뒤이어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전세계의 대중음악 가운데 '전통의 현대화'에 성공한 음악형식이라면 그리스가 모범 사례로 꼽힐 것이다. 달라라스의 삶과 음악을 듣고 있으면 군부독재의 통치에 시달린 나라에서 국민적 음악인이 되는 길은 그저 국제적 유행을 추종하는 것도, 전통음악을 고수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노래, Mi Mou Thimonis Matia Mou (내사랑 화내지 말아요)도 단순한 戀歌가 아니고 여기에서 내 사랑은 조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가사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먼 곳으로 떠난다고 해서
나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나는 새가 되어 다시 당신 곁으로
돌아올 거에요.
황금 나륵풀 같은 그대
창문을 열어 주세요
그리고 달콤한 미소로
나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세요.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당신 곁을 떠난다고 해서
나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당신을 볼 수 있도록,
당신께 마지막 인사를 청할 수 있도록
여기 잠시만 머물러주세요
황금 나륵풀 같은 그대
창문을 열어 주세요
그리고 달콤한 미소로
나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세요.
물론 10대 시절 비틀스, 롤링 스톤스, 존 바에즈, 밥 딜런 등의 국제적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이 모든 것이 내게 영향을 미쳤고 한 아이에게 불가항력적인 감정을 야기했다. 그 아이는 그가 태생적으로 음악인이라고 느낀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나는 뒤에 이 모든 영향들에 압도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영향을 나의 음악적 방향으로 변형시키고자 했다" 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 결과 그의 음악은 유럽과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점이지대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반영하듯 "내셔널" 하면서도 "트랜스내셔널"한 것이 되었다.
달라라스는 국민적 음악인일뿐만 아니라 국제적 혹은 범(凡)유럽적 음악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알 디 메올라(Al Di Meola)와 파코 델 루치아(Paco del Lucia)같은 플라멩꼬 기타 거장들과 함께 "라틴"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고란 브레고비치와의 공작도 비슷한 맥락에 속한다.
George Dalaras - Ola Kala(모든 것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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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a Kala는 '기요르고스 달라라스'의 잘 알려지지않은 곡이다 슬픈 멜로디인데도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음은 그들만의 절제된 감성을 엿볼수 있다. 영어 O.K.란 단어가 바로 그리스어인 Ola Kala에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가사
모든 것이 좋아요.
이제는 당신이
사람들의 무리속에 있었죠.
노래할수 있는 작은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추억들을 잃어버렸지요.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애기해주세요.
나는 어리석기에 당신이 두려워요.
나는 사람들도 소음들도 싫어요.
내일이면 실직상태가 될꺼예요.
내겐 영혼이 있어요.
나는 바위로 만들지않았답니다.
당신은 다시 한번
나를 혼자있게 만들고
발코니의 국기는 계속 색깔을
변해가며 나를 괴롭힙니다.
Giorgos Dalaras & Metropole Orchestra of Holland , Greece September 1995.
("Libertadores / America Insurrecta" Canto General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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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xion Esti
Axion Esti는 1940- 1941년 사이 전쟁의 기억에 의해 영감을 얻어 그리스 저항과 그다음 그리스 남북 전쟁을 통해 현대 그리스어 역사의 모든 중요한 단계의 살아있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고 독일의 공격 양상으로 그리스는 악의 세력에 의해. AXION ESTI는 노래로 만들어진 일반적으로 열정적으로 그리스 독자에 의해 비평 받으며 발전한 작품으로 출생-생활-고통과 죽음-불멸에 대한 그리스 사람들의 성경과 그리스 민속 음악의 요소를 결합하여 만든 작품으로 예술적 가치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근대 그리스 역사의 억압된 경험과 신화를 정교하게 함으로써 그리스 집단 무의식을 재정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의 영상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을 작곡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엑시온 에시트가 시를 뮤지컬로 완성한 유명한 작품이다.
Gothart Stier - Axion esti Concert in Germany (Leipzig,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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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xion Esti 』
In the beginning the light and first hour
when lips stillin clay
try out the things of the world
Green blood and bulbs golden in the earth
And the sea, so exquisite in her sleep.
빛과의 첫 시간에
입술에 찰흙이 묻어 있을 때
세계의 것들을 시험해 보라
지구 안에서 녹색 피와 황금의 구근은
그리고 바다는 절묘하게 그녀를 잠들게 한다.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Odysseus Elytis 1911-1996) 그리스의 시인으로, 그리스의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7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스의 전통을 배경 삼은 에게해의 시인으로 주요 작품은【가치가 있는 것(엑시온 에시티) · 기념제 · 동 쪽을 향하여 · 주인모를 물시계 · 스포라데스 諸島 · 하늘에 대한 유감 · 공개된 서류들 · 방향 · 모노그램 · 작은 마리너 ·】등이 있다
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시집. 그리스어로 "악시온 에스티 / 마땅하도다"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모 마리아(마리아의 이콘)을 뜻한다. "Axion Esti os Alethos Makarizin Se Tin Theotokon" 즉, "영원히 복되시며 지극히 깨끗하신 테오토코스이신 당신을 공경함은 마땅하도다" 라는 말의 첫 두 단어 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번역한 안정효씨는 이 제목을 [고귀하도다]라로 바꾸었는데, 안정효씨가 번역한 이 시집을 처음 읽었을때 무척 뭉클한 감동을 받았었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엘리티스의 시 세계는 "관능 성과 광명이 엘리티스의 시를 더욱 밝게 해주며 그가 감지하는 세계는 참신함과 놀라운 경험 속에 또렷이 내재해 넘쳐흐른다."라고 평했으며 또한 희랍 전통문화의 배경 속에 관능적인 힘과 지적인 관조로 자유와 창조성을 위한 현대 인간의 투쟁을 잘 묘사하고 있다며 극찬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빈곤한 시대에 시인들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지적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언어는 마술의 도구이기도 하며 의무를 수반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모든 예술은 유추를 통해 말합니다.
『 Axion Esti 』와 같은 위대한 작품에 직면해야 했을 때 나에게 일어난 것은 아마도 본능일 것입니다. 그 결과 작품의 비율과 원근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결코 내가 원하는 내용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태양을 태우지 않고 손에 들고 그 태양을 횃불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전이시키는 것은 고통스러운 행동이지만 축복받는 행동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그러한 행동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이상적인 海岸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Theodorakis & Children's Choir - To Doxastikon (AXION E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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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 엘리티스는 크레타의 부유한 알레푸델리스 가문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아테네에서 보냈다. 아테네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하다 프랑스 초현실주의, 특히 시인 폴 엘뤼아르에게 매료되어 1930년대에 그리스의 전위 잡지 〈네아 그라마타 Nea Grammata〉에 시를 발표하면서, 법학공부를 포기하고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네아 그라마타〉는 1963년 그리스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세페리아데스 등이 속해 있던 '30년대 세대'라는 영향력있는 문학파의 동인지였다. 그는 자신의 글과 가업이던 비누제조업을 분리시키기 위해 원래의 성 대신 엘리티스라는 필명을 썼다. 그의 초기 시들은 초현실주의 색채와 강한 개성을 보여준다. 그의 첫 시집 〈방향 Prosanatolismoi〉(1940)과 두 번째 시집 〈최초의 것 태양 Elios oprotos〉(1943)에서 햇빛 찬란한 그리스의 풍경과 반짝이는 에게 해에 대한 사랑을 그렸다.
1941년 나치 독일의 그리스 점령 당시 그는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에 대항하는 반(反)파시스트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장시 〈알바니아 전쟁에서 실종된 육군 소위를 위한 영웅 애가 Asma hhrniko kai penthimo gia ton chameno anthypolochago ths Alvanias〉(1945)는 자유를 위한 송가가 되었고, 그는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음유시인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끝난 뒤 거의 15년 동안 글을 발표하지 않다가, 휘트먼의 〈자아의 노래 Song of Myself〉를 연상시키는 장시 〈가치가 있다 To Axion Esti〉로 1959년 문단에 복귀했다. 자주 해외여행을 했으며, 1967년 그리스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4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살기도 했다. 후기 작품으로는 〈최고의 태양 Ho H lios ho h liatoras〉(1971)·〈의붓자식 Ta eterothal 〉(1974)·〈마리아 네펠레 Maria Nephele〉(1978)·〈작은 뱃사람 Ho milkros nautilos〉(1986)·〈옥소페트라의 애가 Ta elegeia tes oxpetras〉(1991) 등이 있다.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 칼린 지브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나는 당신의 행복을 소중히 합니다.
그대가 나의 행복을 소중히 하듯.
나에게 평화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대가 없이는.
내가 만약 어떤 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수 있다면,
그에게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인생 그 자체는 하나의 실제일 뿐.
환희나 고통, 행복이나 불행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증오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은 친구와 같습니다.
홀로 사는 삶을 사십시오.
바로 자신의 삶을.
그리하여 우리는 진정한 인류의 친구일 수 있습니다.
나는 나날이 거듭납니다.
내 나이 여든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변화의 모험을 계속할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행한 일은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일 따름입니다.
나에게는 껴안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삶의 한가운데.
Christos Santikai - Axion e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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