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짐의 목적 / 민 16:4-11, 마 26:17-25
어린이들이 하는 그림 맞추기 퍼즐놀이가 있다. 그림 조각이 하나하나 떨어져 있을 때는 그 그림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지극히 작은 조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다 맞춰 놓으면 아주 크고 멋진 그림이 된다. 만일 그 그림조각을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끼워놓으면 그 그림은 원래 의도한 모습대로 완성될 수 없다. 작은 것이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그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조각이 다 자기 자리에 들어가야만 큰 그림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맡은 자리를 찾아서 그 자리에 그림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임무를 주실 때에는 그 나름의 분명한 목적과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 2:4절에서 ‘각각 자기 일을 먼저 돌보라’고 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같은 레위인일지라도 모세에게는 모세의 직분이 있고, 아론에게는 아론의 직분이 있고, 다른 레위인에게는 그들대로의 직분이 있다. 그런데 고라는 자기 자리를 찾아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기를 거부하고 남의 자리를 넘겨다보고 있다.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하면 그 결과는 멸망뿐이다.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성경이 바로 민수기 16장이다. 민 16장에는 레위 사람인 고라의 반역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제사장의 직분에 욕심을 내다가 결국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에게 맞는 직분을 주셨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질서에 순종하면서 맡겨진 그 직분에 충실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5%라고 했다. 100사람 가운데 다섯 사람 정도 성공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리거나 권세를 잡아야만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서 충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고라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것 이상을 탐내고 다른 사람의 직책을 넘보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사람들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한다.
고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의 분량을 깨닫지 못하고 허망한 욕심 때문에 주제넘은 행동을 했다. 그토록 이기적이고 교만한 의도를 가지고 욕심에 의해서 지은 죄는 어디서도 용서받을 길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범한 실수나 죄는 하나님께서 쉽게 용서하시고 감싸주신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짐짓’ 짓는 죄는 하나님께서 그 지은 죄의 대가를 그대로 갚으신다. 하나님은 ‘죄 있는 자를 그냥 두시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갚으시는 방법은 철저하고 무섭다. 그 죄악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시 19:13절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고범죄가 무언가? 삼행시를 지어보겠다. 고 - 고의적으로, 범 - 범한, 죄 - 죄로 인해 발을 받아 마땅하다. 여기서 고범죄라고 하는 것이 바로 고의적으로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다. 특히 고범죄를 짓는 마음에는 반항하는 마음이 있고, 반역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어쩌다가 잘못하는 것은 너그럽게 용서하면서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대들면 그것을 그냥 용서하지 않는다.
지난 일인데 제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제 동생이 대학교 졸업하고 방위를 받던 때에 어머니에게 대들고 행패를 부림. 어머니에게 대드는 것을 보니 내가 화가 나더라. 그런데 나보다 키가 10cm 이상 컸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꽉 붙들고 무릎으로 한방 먹였다. 그런데 코를 맞았는지 피가 줄줄 흐르는데 데리고 나가 닦아주고, 전주 천변에 앉아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주면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냥 대들고 행패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조심하겠다고 하다러고요. 아마 이런 문제 곧 부모에게 대드는 자녀의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된 문제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그저 그때마다 용서하는 것으로 해결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인간들의 죄악을 사랑으로 인내하시는 하나님도 고의적으로 권위에 도전하고 악을 행하는 것은 엄히 다스렸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 왜 고라가 당을 지어 패역한 일을 하였는가? 평소의 생각이 ‘나도 같은 레위 지파인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어찌하여 모세와 아론만 제사장이 되어 우리 위에 군림하느냐? 모세야! 너는 어째서 스스로 높이느냐?’ 이런 불만이 많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계획을 위해서 한 세람을 세우셨다. 그리고 그에게 그 일을 수행할 자격을 부여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일하게 하시는데 우리가 자격이 있다 없다 못한다 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모든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이다. 제사장 아론이나 성막의 기구를 운반하는 고라나 다 동일한 것이다. 다 하나님 앞에서 임명받은 것을 안다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 각자 자기 위치를 알아서 그 위치에 들어가고, 자기가 해야할 일을 알아서 그 일을 행하는 자가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기의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이나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자기 일은 무시해 버리면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하는 것을 유치원생이 보고 동네 아줌마라 그런다고 한다.
모세가 고라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그런데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라고 책망한다. 제사장직을 넘겨다 본다는 책망이다. 여러분,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고라가 주동이 되어 족장 250명을 선동하며 반역을 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모세와 아론이 우리 총회에서 스스로 높아졌다는 이유이다. 그런데 사실은 고라가 제사장이 되고 싶은 욕망에서 한 개인적인 야심이다.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정치나 교회나 사회단체나 어느 모임에서든지 단체를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무슨 일을 시작한다. 자유와 이익을 위해서 투쟁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의 존귀와 유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표면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한 개인의 유익을 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그 행위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진실은 금방 드러난다. 자기를 높이기 위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가치하다. ‘자아’가 깨어질 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와 닿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를 잘 지키고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여러분, 모세에게는 모세의 일이 있고, 아론에게는 아론의 일이 있고, 고라에게는 고라의 일이 있다. 태양의 빛, 달의 빛, 별의 빛이 다르다.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인가? 정해진 위치에서 자신의 빛을 발한다. 달이 해처럼 되면 뜨거워서 난리이고, 별이 달처럼 되면 지구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로 인해 물난리가 날 것이다. 고전 12장에서 은사의 문제를 우리의 몸에 비유하여 말씀한다. 우리 몸의 지체가 다 중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눈이라고 하여 우리의 온 몸이 눈이라면 듣는 곳은 어디이며, 냄새 맡는 곳은 어디이겠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몸에 각각 두셨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의 몸의 지체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여 손이 발을 고발하여 발을 제명시키하고 하고, 눈이 손을 향하여 너는 왜 그렇게 하느냐고 하면서 손을 잘라버리라고 하고, 심장이 눈을 향하여 시기하여 눈을 빼버리라고 하여 그대로 한다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벧전 2:9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이다. 히 13:15-16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기를 잊지 않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나누어주고 구제하며 섬기는 제사장이다. 우리가 남보다 위에서 군림하며 계급적인 차원에서 제사장이라고 생각하면 고라의 잘못을 범하게 된다. 교회의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다. 모두 섬기는 직분이다. 모세는 8-9절에서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라고 말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가 된 것,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게 된 것, 이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된 것이다. 성도가 된 것, 이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광야교회에서 고라와 족장 250명이 합세하여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때에 모세가 엎드렸다. 폭도가 된 반역자들에게 대항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다. 이것이 대적자를 대하는 좋은 방법이다. 모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항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사실상 저들이 투쟁하는 것은 하나님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너는 왜 불평하느냐 하면서 징계하거나 제명하면 안된다. 조용히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우리는 저들의 공격에 패하였습니다.’ 하고 엎드려 있으면 공격이 우리를 넘어서 하나님과 대항하게 된다. 시 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의 논에는 해결책이 없어도 하나님께는 느ᅟᅮᆼ핮비 못함이 없다. 우리에게는 길이 없어도 하나님께는 길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힘도 지혜도 없다. 렘 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모세는 엎드렸다가 고라의 무리에게 말한다.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맡겼다. 여호와께서 보시고 여호와께서 택하실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 의뢰했다.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인간의 권위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우리는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자신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사람이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삼켜버릴 때에 주위 사람들이 도망하게 되고,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 250인을 소멸하였다. 초자연적인 진노였다. 히 12:29절에서는 우리 하나님을 소멸하시는 불이라고 했다. 땅이 갈라지고 불로 태우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왜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나? 세우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아론의 위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나 지도자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다. 자신의 계획과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각자에게 적당한 임무를 주셨는데, 자기 직무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남의 것을 시기하여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감사함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거룩하게 보존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광야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심판하셨다. 살다가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불평이 나오고 탄식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때에도 사람에 따라 불평을 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하나님께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 누구에게 하는 불평이 더 좋을까요? 사람에게 하면 불평이지만 하나님께 하면 기도이다. 그래서 같은 불평을 해도 사람들에게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나쁜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함으로써 해결책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심판 전에 회개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고라와 그의 무리를 단번에 죽인 것이 아니다. 성막에 향로를 가지고 나오라고 할 때가 회개할 기회이다. 회중에게 이들에게서 떠나라고 할 때가 두 번째 기회였다. 결국 고라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진노하셔서 땅이 갈라져 죽었지만 다 죽은 것이 아니다. 대상 6:31절 이하를 보면, 후에 고라의 자손들이 성막에서 찬양을 맡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회개한 가족들은 하나님이 살려주셨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족한 줄로 알뿐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의 자리를 옮겨주시는 그날까지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충성을 다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이런 귀한 모습을 보여 승리하는성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0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