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상주 청리 수명당(水明堂) 우물
kkhn54 ・ 2022. 6. 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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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청리 수명당(水明堂) 우물
소재지: 상주시 청리면 새기1길 179
덕산리(德山里)는 상주군 청남면의 지역이었다. 서산(西山, 512.9m)의 북동쪽 끝자락인
마을 뒷산이 둔덕으로 되어 있어 덕산(德山)이라 했다고 하며 또한,
성주 이씨(星州李氏) 입향조(入鄕祖)인 학령(鶴齡)의 호(號)가 덕봉(德峰)이라
그의 호 德峰에서 德을 西山에서 山을따서 덕산(德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신전리(薪田里)를 병합하여, 덕산리라 하고 청리면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마을에는 수명당 우물과 청동초등학교(지금은 폐교 됨), 동시 꽃피는 마을 비,
동제 단, 송로 비, 西山화장 바우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서산(西山24世 종손 소유 - 가천리 산 11번지 91636m2 )
성주 이씨(星州李氏) 입향조(入鄕祖)인 학령(鶴齡) 선조 산소 (山所)는 서산(西山)
등선(登仙) 우측 중간 바로 아래에 合葬墓
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청동로 약 2.0km 지점에 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지나는 길손을 반긴다. 명문(銘文)은 「忠孝 마을 德山里」이고,
뒷면에는 마을의 내력을 열거하고 있다. 마을은 나지막한 산줄기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 주택은 동향이고, 마을회관은 웅장하고,
마을 앞 도로가 깨끗하고 넓으며 아주 조용하고, 인심이 순후한 부자 마을이다.
먼저 물맛이 아주 좋은 수명당 공동우물이 있는데, 전해오는 전설(傳說)이
퍽 재미가 있어 소개해본다.청리면지(靑里面誌) 설화(說話) 편을 인용하면
「마을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모진 병에 걸려 죽게 된 어느 날,
아내는 건너 마을로 약을 지어오도록 보내고 아들을 불러 이르기를,
“내가 죽거든 내 머리를 잘라 우물 속에 넣고, 시체는 따로 장사 지내도록 하여라.”
모기소리 같은 음성으로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끔찍한 유언이었다.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찌 아버지의 목을 벨 수가 있습니까?” “너의 어머니가 알면 절대로 안 된다.
이 비밀을 아는 날에는 다 허사가 된다.” “아버지, 그게 무슨 … 다 허사라니요?”
“우리 가문이 잘되고 못 되는 것은 여기에 달렸다.”
“그럼 아버지 제가 불효자식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잘 듣거라, 내 말대로 해야
우리 가문이 삼대 안에 정승이 난단 말이다. 더구나 여자는 입이 가벼워 방해가 되니 …,
내 말 명심해서 어기지 않도록 하여라.” … 중략 … 하지만 좋은 기대보다는 자기가 불효를 저질렀다는
중압감이 몸을 떨게 했다. 몸은 마르고 얼굴은 검게 타들어 갔다. … 중략
… “애야 무슨 근심이라도 있느냐?” 속 시원하게 툭 털어놓아 보려무나.“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니다, 불효라니 효자로 소문난 네가 아니냐?“
아들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일을 밝혔다. … 중략 …
발설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아들의 당부도 듣지 않고 그날 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우리 영감 머리가 동네 우물 속에 들었데요.“ 라고 외쳐대었다. … 중략 …
우물 밑에 햇무리가 환하게 일더니 선풍옥골(仙風玉骨)의 귀인이 솟아올랐다.
사모관대를 하고 말을 타려고 하는 순간 안개처럼 사라졌다. 모두들 몸을 움찔하며 물러섰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더라면 … 아들은 자기의 경솔함을 탓했지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았다.」
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물 명당은 풍수지리의 민담(民譚)에 많이 등장하는 얘기로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얘깃거리가 풍부한 이러한 우물에 대하여는 표지석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마을에 있었던 청동초등학교는 1949년 9월 15일 덕산리 320번지에 청동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인가 받아 10월 11일 덕산리에서 기증(李基彦19世 토지純祖)한 몇 평의 뽕나무밭에
천막을 치고, 면내 어른들과 신입생들이 모여 개교식을 한 것이 시작이다.
2011년 3월 1일 청리초등학교로통폐합 때까지 58회 4,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명문이지만
지금은 폐교로 관리가 되지 않아 보는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좋은 활용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청동 동시 꽃피는 마을 비의 명문(銘文)은「靑東 동시 꽃피는 마을」이다.
1999년 청동초등학교 개교50주년 기념으로 시비(詩碑)를 세웠는데, 이는 전국 백일장에서
수많은 입상자를 배출한 이름 있는 학교였기에 김성도 선생님께서 “동시 꽃피는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돌에 새긴 것이다. 비(碑) 뒷면에는 맨 위에 청동 마크를 새기고
「이곳은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 아동문학을 꽃피운 곳이다. 세월이 흐르고 인심이 변해도
해와 달 꽃바람이 있는 한 푸른 새녘 청동 정신 영원하리.
1999년 10월 11일 청동 개교 50주년 기념 졸업생 일동 세움」이라 적었다.
동제 단(洞祭壇)은 마을 입구 서쪽 창고 앞에 선돌(立石)이고 동쪽에는 당목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당목(느티나무) 사이에 위치한다. 선돌은 판석형으로 둥근 편이고,
주변은 둥근 모양으로 시멘트로 단(壇)을 만들었으며, 매년 정월 보름날
국신(國神), 산신(山神), 동신(洞神)에게 차례로 제(祭)를 올렸는데,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송로비(頌勞碑)는 초등학교 입구에 있었으나
지금은 마을 표지석과 연자방아 등이 있는 곳에 있으며, 명문(銘文)은 「李漢奎頌勞碑」이다.
청동초등학교를 덕산리로 유치하고, 학교의 대소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이는 덕산 마을이 청리면에서 가장 큰 마을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므로
이를 기리기 위하여 1975년 12월 동민이 세운 것이다.
작금 농촌지역은 어디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이 없어 활력이 떨어지는 등 다 같은 실정이다.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덕산리도 예외는 아니다, 조용한 마을에 온화한 어른들,
마을 앞 언덕배기에 노송 숲[[덕산전안산(德山前案山) / 일명 -근네산-李基彦19世산소 와
震重[15世]조상 부터 종손 開白 22世까지 후손 위패를 모신 합장산소 장소로
시중공파[侍中公派]후손이 합동으로 매년 시제(時祭)를 올리는 案山]]은 너무 아름답다.
서산이 길게 늘어지고 한 봉우리가 뾰족하여 문필봉을 연상한다.
귀촌하기에 아주 좋은 아름다운 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어떠한 방도는 없는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마을 표지석
마을 전경
마을회관
마을 표지석과 연자방아, 송로비
수명당 우물
덕산 초등학교
'청동 동시 꽃피는 마을' 비
동신목
입석
이한규 송노비 뒷면
마을 바로앞 언덕백 노송 숲 명칭 덕산전안산(德山前案山)
일명 근네산소[고고조부基彦(19世소유 純祖)산소 - 모친산소(比安 朴氏)- 합장위폐산소 震重(15世)조상 부터
종손開白(22世)까지 임진왜란을 피해 성주에서 이주한 학령(鶴齡)후손 위패를 모신 합장산소로서
청리 덕산 마을 시중공파[侍中公派]후손이 합동으로 매년 음력 10월 12일 기준으로
해당 일요일에 합동시제(時祭)를 올리고 있음
마을 뒤산 과 언덕배기에 노송 숲[덕산전안산(德山前案山)] / 일명 -근네산 가는 입구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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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상주 청리 수명당(水明堂) 우물|작성자 kkhn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