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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1] I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 I 마태 18,1-5 1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5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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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 및 복음 묵상] : 어린이 꽃 <제1독서 : 이사 66,19-14ㄷ / 제2독서 : 1코린 7,25-35 / 복음 : 마태 18,1-5>
가을이라 성당 마당 여기저기에 핀 코스모스며 국화꽃들이 예뻐 보입니다. 아마도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꽃을 좋아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딱 한 번 꽃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마태 6,28-30)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일 좋아하셨던 꽃은 무엇일까요? 저는 ‘어린이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엔 어린이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서 노래를 부르며 이런 놀이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데레사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시며 ‘어린이 꽃’을 좋아하셨음을 밝히십니다.
어린이는 헛된 것을 쫓지 않고 단순하면서 순박합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바로 그런 어린이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 겸손과 복음적 단순함으로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배우고 익히며 사셨습니다. 그렇게 ‘작은 꽃(小花)’이라는 이름으로 사셨기에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녀 데레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어린이 꽃’처럼 겸손하고 하느님을 믿는 단순한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줍니다.........◆ [말씀자료 : 이명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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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대축일 I 묵상기도방(사이버기도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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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ariasarang.net%2Ffiles%2Fpicture_cross%2FLamb_Of_God_2.jpg)
주님, 당신과 하나 되고 당신 말씀을 알아듣도록 저를 침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고요한 침묵은 저를 당신 안에서 쉬게 합니다. 하루 동안 때때로 당신의 온유한 손길에 내어맡기며 침묵에로 멈춤과 쉼에로 가도록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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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2015-10-01) I 복음묵상방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2.blog.daum.net%2Fimage%2F7%2Fblog%2F2008%2F08%2F08%2F23%2F22%2F489c56693dddb%26filename%3Dda_icon0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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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24년의 짧은 생애(1873-1897년)를 살았지만 겸손과 온유 그리고 꿋꿋하고 위대한 영혼을 지녔던 성녀이다. 그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오롯이 바쳤고, 그를 온통 휘감았던 어둠 가운데서도 순명 정신으로 주님께 충실하였다. 그러기에 그는 처음 각혈을 했을 때, 주님과 만날 때가 다가왔다는 예고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데레사는 믿음과 희망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면서 말하였다. "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는 이 사랑 때문에 그토록 열렬한 선교 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가 태어나 자란 알랑송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했던 리지외 시절과 15세(1888년)에 가르멜 수녀회에 입회하기까지 줄곧 따른 "작은 길"은 참된 복을 향한 참으로 힘겨운 발걸음이다. 겉으로는 맥 없이 보일 수 있는 데레사의 삶에서, 우리는 아주 강한, 그러면서도 성령의 활동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타고 하느님 아버지를 발견하고 황홀해하는 한 영혼을 발견한다. 데레사에게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날개를 펴 깃 뿌리에 어린 새끼들을 태워 데려가는"(신명 32,11) 독수리와 같은 분이시다. 데레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작은 길"을 따르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어머니 팔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작음을 깨닫고,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베푸시는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웃음짓는다.
하느님께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 끌어들이시는 날에, 통곡하던 자들은 젖먹이가 어미 품에 안겨 귀염 받으며 흡족하게 젖을 빨 듯이 위로받고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새로 돋은 풀잎처럼 싱싱하게 될 것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위한 동정을 말한다. 결혼 생활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동정을 지킴으로써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며 오로지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고 주님만을 섬길 수 있게 된다(제2독서).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인간의 기준과 하늘나라의 기준은 전혀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다(복음). |
<축일복음묵상-1> : † 한 어린아이의 작은 길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내어주실 만큼 세상을 사랑하신다. 또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다고 해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는다.
이것이 하느님사랑의 법칙이다. 사람은 세상을 사는 동안 누구나 이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겉으로 많이 받은 자는 속으로 허기짐을 느끼며, 속으로 충만한 자는 겉으로 아쉬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의 진가(眞價)를 깨닫는 자는 드물다. 아기 예수의 성녀 소화 데레사! 그녀가 바로 드문 선각자(先覺者) 중의 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허약한 몸 때문에 병석을 즐겨야 했던 성녀는 그만큼 속으로 옹골차졌던 것이다.
오늘 대축일의 주인공 마리아-프랑수아-데레사 성녀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알랑송에서 아버지 루이 마르탱과 어머니 젤리 게랭 가족의 아홉 번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성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반고아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마리아를 데리고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리지외로 이사 온 마리아에게 펼쳐진 시간들은 매번 새로운 영적 체험들이었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에 큰 병을 앓았으나 “미소의 성모 마리아”의 전구에 힘입어 치유되었다고 한다.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이 때 성녀는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여 명상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누이들이 극구 반대하였고, 리지외의 주교도 어린 나이 때문에 그녀의 입회를 거절하였다. 1886년 성탄절에 그녀는 전격 회심의 은총을 체험하였고, 이 체험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었고, 사랑의 삶을 그녀는 소명으로 깨닫게 된다. 1887년 아버지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고,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을 알현한 자리에서 수녀원 입회를 간청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드디어 성녀 데레사가 15살이 되던 1888년 4월 9일, 그 해 성주간과 부활대축일로 인해 이동된 성모영보대축일에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겉으로는 아주 단순한 수도생활의 삶 속에서 그녀의 영성은 급상승하고 있었으니,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구체적으로 십자가 추종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죄인들의 불쌍한 영혼의 회개를 위해 스스로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가 보여준 “완덕의 길”에 정진하기 위해서도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녀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모범삼아 수도명을 데레사로 정한 것이다. 성녀는 하느님께 대한 내적 헌신으로, 마치 한 아기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그런 아이처럼 ‘작은 길’을 걷게 된다.
이는 단순하고 작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절감하고, 유아적 신뢰를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도움에 내어 맡기는 아이처럼 사는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성녀가 걸어가는 ‘작은 길’의 핵심 사상이었다.
1895년 부수련장이 된 데레사는 원장수녀의 요청으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였다. 복음적 겸손과 단순함과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심을 익히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이 같은 덕행을 수련자들에게 가르쳤다. 육체의 병고와 내적 충만함으로 죽기까지 영혼들을 구하고, 교회의 쇄신과 사제들의 성화, 그리고 선교사와 선교지역을 위해 기도하는 소임만이 성녀의 일상(日常)이 되어갈 무렵, 성녀는 성서를 유일한 독서로 삼았다.
폐결핵 진단이 떨어지고 1896년 성금요일에 첫 각혈을 쏟아냈던 성녀는 주님과 만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그래도 아직 난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리며, 믿음과 희망으로 사랑의 주님과 만남을 준비하였다. 중병 가운데서도 자서전 기록은 계속되었고, 1897년 9월 30일 저녁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했다.
1898년 성녀의 자서전 ≪한 영혼의 이야기≫가 출판되자 영성서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50개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작은 길’을 좋아했고,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던 데레사는 1925년 피우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1927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와 나란히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되었다.
1997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녀에게 교회학자의 칭호를 부여했다. 소화 데레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자로 세우시는 ‘한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말씀자료 : 박상대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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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복음묵상-2> :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 성녀 데레사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성녀 소화 데레사가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의 알랑송이란 작은 마을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과 젤리 게랭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인데,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다.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앓았는데,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성녀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성녀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수녀원에는 이미 성녀의 두 언니, 마리와 폴린느가 입회해 있었다.
수녀원에서는 그녀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지만, 수녀원에 입회할 열망이 가득한 그녀는 로마에 순례하여 교황 레오 13세(Leo XIII)를 알현하고,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그리하여 1888년 4월 9일, 15세의 어린 나이로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그녀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며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누렸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누리며 일치했으며, 작은 일을 통해서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녀의 삶은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가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짐으로써 드러났다. 이 자서전은 많은 이들의 요구에 따라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백만 권 이상이 전세계에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데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웠는데, 교황 비오 11세는 이를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하여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데레사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시성하였다.
데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리지외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또한 1944년 5월 3일, 프랑스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일생 동안 병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 앓았던 병은 그녀를 일생동안 허약하게 했으며, 잔병치례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녀는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수녀원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하며 지냈다. 그녀가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되는 가운데에서도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울지 않았다.
오히려 허약함과 병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희생으로 봉헌했고,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의 힘으로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그녀의 숨은 희생으로 많은 영혼이 회개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고통에 동참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웠던”(골로 1,24) 것이다.
우리는 크고 화려함, 병이 없는 건강함, 고통이 없는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하느님과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기 쉽다. 그러나 성녀는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삶을 살았고, 허약함과 병고를 짊어지고 고통 속에서 살았다.
이러한 가운데 그녀는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통하여 하느님과 일치하였고, 하느님과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봉헌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자신이 당하는 모든 허약함과 병고를 십자가로 짊어지며,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으로 봉헌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오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을 맞이하여 병고와 허약함 속에서도 하느님께 충실했던 성녀의 신앙을 본받자. 작은 것을 통해서도 하느님께 희생으로 봉헌하는 신앙을 본받자. 자신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신앙을 본받는 하루가 되자.............◆
[말씀자료 : 이회진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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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강론-3> : 소화 데레사의 작은 길
데레사는 프랑스의 비교적 부유한 중산층 가정의 9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19세기가 저물던 무렵입니다. 언니 두 사람이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자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입회하여 수도생활 9년 만에 스물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다섯 살에 수도원에 입회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 시대에 어쩌다 있었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나고 1년 후 그 언니들이 그의 자전(自傳)적 수기를 출판하였습니다. 그 책은 교회 안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데레사 수녀 자신이 ‘작은 길’이라 부른 신앙생활에 대한 그 수기는 그 시대 신앙인들에게 신앙을 새롭게 이해하는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16세기 소위 종교개혁이라 불리는 유럽 교회의 분열은 그리스도 신앙에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신학은 다분히 논쟁적이고 방어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개신교가 자유스런 성서 독서를 신자들에게 권장하는 반면, 가톨릭교회는 로마 교황청의 해석에 준한 독서를 요구하였고, 엄격한 통제로써 신앙의 정통성을 지킨다고 믿었습니다. 개신교와 같은 분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장치였습니다.
‘은총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개신교의 주장에 맞서서 가톨릭교회는 ‘은총을 얻는 방법’으로 공로의 중요성을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은총은 우리가 쌓은 공로에 대한 대가(代價)와 같이 오해되었습니다. 신앙은 행업(行業) 위주의 엄격한 윤리로 흘렀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행업에 따라 상과 벌을 주는 절대자로만 이해되었습니다. 통회, 보속, 희생 등으로 표현된 신앙이었습니다.
데레사 수녀에 대해 연구한 어떤 학자는 그의 ‘작은 길’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로마서의 다음 구절이었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며 오로지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9,15-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8,39).
이 두 구절은 인간의 행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고 그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데레사 수녀는 자기가 성서를 읽고 깨달은 대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이들을 생각하는 것은 그들을 영웅 혹은 우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신앙의 역사에 새로운 언어와 실천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서의 문자 안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 신앙 체험을 판독하여 자기들의 삶 안에 창의성 있게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실천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남긴 언어와 실천은 우리에게 새로운 빛으로 다가오고 역사 안에 살아가는 우리의 창의력을 자극합니다. 데레사 수녀는 복음서 안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어린이’라는 주제를 잘 조명하여 자기의 삶 안에 독창적으로 실천하여 새로운 언어를 발생시켰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린이처럼 미성숙하게 살라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집안의 우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어린이는 약자였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거나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어린이는 자기의 행업에 따라 부모가 베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부모가 베푸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고, 부모를 신뢰합니다. 부모의 은혜로움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부모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아버지는 사랑하고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대들을 사랑했다.”(요한 15,9). “내가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15,17).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랑을 쉽게 믿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불안한 사람들이라 우리를 위해 보장된 것을 찾습니다. 사랑에는 보장이 없습니다. 주고받는 상거래에는 준만큼 받는다는 보장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에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해타산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 자기의 우월함을 과시하면서 안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우월함이 긍정되고 우리 자신이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중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죽어서 만날 분으로 우리의 삶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주제가 의미하는 바와는 다른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린이가 되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자기 위주로 살지도 말고, 자만자족하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하느님에 준해서 새로운 시야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고 벌주기 위해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른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 당신의 공로를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자녀와 함께 있는 부모와 같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믿으셨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자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 않고, 신뢰와 기쁨에 젖어서 살게 합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짓누르는 잡다한 근심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인간 본연의 평화와 자유를 체험하게 합니다.
부모가 함께 있으면 자녀는 평화와 자유를 누립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자각은 그 자녀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배우면서 사람 노릇을 합니다.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시듯이 우리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이 베푸셨듯이 우리도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의 몸짓 안에 그 형체를 나타냅니다. 우리 자신만 생각하던 우리의 몸짓이 하느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일을 행하는 몸짓으로 변합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좀 더 기쁘고 신뢰로 가득 찬 것이 될 것입니다. 지키고, 바쳐서 더 많이 얻어내고 더 잘 되고 싶은 속물근성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흔연하게 참으로 자유롭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 자녀의 진리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베푸시는 하느님 생명의 진리를 예수님 안에서 읽어내어 그것을 자기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나타나게 하면서 하느님 자녀의 생명을 삽니다...◆
[말씀자료 : 서공석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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