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웹진 <공생공락> 제7호에 실린 밝은누리 소개글입니다.
*원문 바깥고리 ==> https://conviviality.andong.ac.kr: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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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소박한 삶 짓는 벗들과 함께
올해 1월, 마을에서 소박하게 혼인잔치를 했다. 더불어 사는 삶 꿈꾸며 밝은누리로 함께 걸음한 옆지기와 한몸 이루는 날이었다. 코로나19 돌림병으로 마을 벗들 모두 초대하진 못했지만, 가까운 둘레 벗들 사랑 듬뿍 받으며 부족함 없는 잔치 누렸다.
혼인하기 전 옆지기와 나는 청년 공동체방에서 살았다. 밝은누리에는 여성/남성 청년 공동체방이 있다. 적게는 세 명, 많게는 다섯 명이 한 지붕 아래 살며 살림 꾸린다. 청년들 가운데는 직장 다니는 사람, 창업한 사람, 마을밥상·찻집에서 일하는 사람, 마을배움터에서 학생들 만나는 사람, 삶에 여유 두며 마을에 필요한 일손 채우는 사람,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 산다.
낮에는 저마다 맡은 몫 살뜰히 해가면서도, 저녁이나 주말에는 함께 모여 새참 만들어 먹고, 공부하거나 수련하며, 어울려 놀기도 한다. 함께하는 시간에는 자본이 거느리는 힘이 아닌, 소박하고 정겨운 문화가 자리 잡는다. 태어난 날 정성 담은 밥상을 차려주거나, 마을 울력을 함께하거나, 마을 아가들을 초대해 품앗이한다. 함께 마을텃밭에서 농사짓고, 겨울철에는 김장잔치도 한다. 필요한 물건은 서로 나누어 쓰고, 함께 쓰는 공간을 가꾸는 일에 마음 기울인다.
옆지기와 나는 공동체방에서 익힌 몸·마음가짐 덕에 혼인 준비하면서도 단순소박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허리를 조이는 드레스 대신 마을 언니에게 빌린 고운 생활한복을 입고, 마을 나눔터에서 물려받은 가구들과 마을 벗들이 선물해준 살림살이들로 집을 채웠다. 텔레비전 들이지 않고 청소기 대신 손걸레질하며 마음 닦듯 청소했다. 혼인 준비하느라 바쁘지 않냐며 손수 만든 밑반찬과 새참 가득 챙겨주는 벗들 덕에 속까지 든든했다. 청소하고 밥 짓고 잠자리 들 때마다 선물로 받은 마음들 보며 고마운 이들 얼굴 하나하나 떠올린다.
혼인 잔칫날에도 공동체방, 두레 벗들이 알뜰살뜰 마련해준 잔치를 고맙게 누렸다. 잔치공간 꾸미는 일부터 부모님 맞이, 순서 이끔과 노래 선물까지, 모든 대목마다 벗들 정성과 사랑을 한가득 느꼈다. 옆지기와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마을 언니는 돌림병으로 마을 벗들 모두 함께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며 마을 어린이, 푸른이(청소년),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가 축복하는 마음 대신 전해주었다. 특히 이날 들은 어린이, 푸른이들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마음에 소중히 새기고 있다.
“오래 살아가며 깊은 관계를 만들어가려면 무작정 다가가지 말고 서로의 차이, 공통점을 알아가며 차근차근 순서와 예의를 지켜 상대를 헤아리면 돼요.”
“마음을 열고 서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좋은 이야기 나누세요. 서로에게는 따뜻하게 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솔직하고 반듯하게 살면 더 사이좋게 살아가실 거예요.”
“같이 하고 싶은 놀이가 있을 때 동무가 하고 싶다는 놀이를 먼저 하고, 말도 자주 걸면 더 사이좋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사이좋고 행복하려면 맛있는 거 나눠 먹으면 돼요.”
더불어 밝게 차오르는 빛알찬배움터 꾸리며
한몸살이 하다보면, 생기 넘치는 변화들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공동체방살이 지나 혼인하는 때가 그러했고, 그즈음 밝은누리가 새로워지는 때를 마주하면서도 그러했다. 홍천·인수마을에서 양평 옥천으로 새로이 마을 일구러 나서는 이들이 생겼고, 초등 대안교육까지만 있었던 인수마을에는 중등 배움터가 꾸려질 기운이 움텄다. 혼인과 맞물려 마을에 여러 변화가 일어나면서 내 마음도 떨림과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보통 한몸살이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는 두 흐름이 나타난다. 하나는 변화 물결을 타고 자기를 더 성숙하게 하는 배치로 나아가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벗들이 더 힘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맡은 몫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모습이다. 든든한 밑바탕이 있어야 그 변화를 지탱하면서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너와 나를 다른 존재로 본다면 이런 일이 어렵겠지만, 한몸 된 관계로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때 나는 마을에서 신문과 책 만드는 일을, 옆지기는 마을밥상에서 밥 짓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둘 다 중학교를 꾸리면서 푸른이들 만나는 교사로 함께하게 되었다.
2022년 봄, 인수마을 빛알찬중학교를 열었다. 푸른이 열일곱과 교사 넷이 함께했다. 빛알찬중학교는 “하늘을 공경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밝은누리움터 배움뜻 이어받아 홍천 생동중학교에서 분립한 중등 배움터다. ‘빛알찬’이라는 이름은 ‘밝은 씨알들이 더불어 환하고 밝게 차오름’이라는 뜻 담아 학생들과 함께 지었다. 배움은 자기 안에 이미 있는 생명력을 깨닫고 밝은 얼 지닌 생명으로 자라가는 일임을 푸른이들 만나며 알았다. 참된 나를 찾고 깨어난 그 힘으로 더불어 생기 지으며 온누리 밝히는 일이다. 그러나 빛알 하나로는 온누리를 밝힐 수 없듯이, 학교 하나, 마을 하나로도 품은 뜻을 지켜가기 어렵다. 밝은누리가 몸집을 크게 키우지 않고, 작은 단위로 마을·배움터를 꾸준히 분립하며 같은 뜻 품은 이들과 길벗(연대)하는 까닭이다.
인수마을 푸른이들과 오순도순 지내는 일도 좋지만, 길벗하는 작은 배움터들 소식을 들을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한뜻으로 배움길 걷는 수리산마을 푸른빛중학교, 양평 고운마을학교, 홍천 새빛들중학교, 양산 밝은덕중학교 벗들이 그러하다. 봄학기에는 이들 배움터 푸른이, 선생님들과 손편지와 작은 선물 나누며 마음 주고받았다. 양말목으로 손수 만든 냄비받침, 책과 노래집, 한 땀 한 땀 엮은 공책, 은은한 향초 같은 귀한 선물들이 오갔다. 돌림병으로 얼굴 마주하기 어려운 때였지만, 그래서인지 푸른이들은 더 애틋하게 서로를 반겨주었다. 이렇게 싹튼 우정이 함께 걸어가는 길에 든든한 밑바탕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배움터 일구면서 마을에서 받은 넉넉함은 혼인잔치 때 못지않았다. 마을 너른 품에서 많은 일이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배움공간을 알아보던 때, 마을 벗들은 함께 쓰는 서원(마을 도서관)을 선뜻 내주었다. 서원 아래층에서 마을찻집 운영하는 이모는 찻집 문 열기 전 오전 반나절을 배움 공간으로 쓰게 해주었다. 필요한 학교 살림살이를 나눔터에서 구하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채워졌고, 마을 이모삼촌들은 푸른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움터 곳곳을 살뜰히 살펴주었다. 홍천 고등대학통합과정 삼일학림 선배들과 마을 이모삼촌들은 저마다 갈고닦은 역량을 푸른이들과 나누기도 했다. 풋살, 바느질, 그리기, 풍물, 소리 모아 부르기(합창) 등 배움이 풍성하게 채워졌다.
여러 터전에 마을과 학교가 세워지면서 어린이와 푸른이들은 자연스레 작은 개척자들이 되었다. 큰 일을 이루어야만 개척자가 아니라, 새로운 삶터에서 자기 몫을 묵묵히, 일상과 다르지 않게 일궈내는 힘 지닌 이들이 곧 개척자라 느낀다. 그런 면에서 어린 생명들은 어른보다 훨씬 유리한 존재다. 변화를 즐길 줄 알고, 스스로와 곁생명을 부지런히 밝은 기운으로 바꾸어내기 때문이다. 새 길 나서는 아이들에게 옆 친구들은 더 이상 성적이나 입시로 경쟁해야 할 이들이 아니다. 함께 삶 일구어갈 소중한 벗들이다. 그 소중한 관계가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는 새로운 토대가 된다.
2022년 삶둘레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변화 돌아보며 뚜렷하게 남는 기억이 있다. 바로 한몸살이 벗들의 밝은 얼굴이다. 맑은 눈망울로 나를 비춰주는 아이들, 자기 안에 깃든 생명력 찾아 나아가는 아름다운 푸른이들, 따스하고 든든한 품으로 일상 지켜주는 고마운 마을 선배들 얼굴이다. 함께 살면서 지치고 힘든 일이 없을 순 없지만, 그 어려움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 또한 한몸에 있음을 느낀다. 새로움을 반기고 변화를 넉넉히 넘어설 수 있는 힘은 함께 깨어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에 있다.
성혜 - 밝은누리 인수마을 빛알찬중학교
서울 인수마을 빛알찬중학교에서 푸른이들과 우리말 공부하며 우정 쌓고 지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