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으로 모임을 시작합니다.
첫번째 [몸과 마음을 돌보는 학교] 김하준 씀
쇼규모 학교 보건교사로 재직중이신 선생님께서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며 겪은 보건실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본문 내용을 공유하고 싶어 일부분을 발췌하여 올립니다.
코로나 팬더믹 상황에서도 친구들과의 신체 접촉을 최소화하는 지침을 권장하는 와중에도 방과후교실, 신체 활동, 교내 체험활동이 이루어졌다. 쇼규모 학교의 특성과 교직원들의 노력으로 한명 한명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출발하여 돌봄이 이루어지고, 교실과 학교 시설 어디든 배움이 이루어졌다. 아이들 안전을 위함의 지침들이었지만 때로 어떤 방역수칙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지침이 아니였나 생각이 들었다.
[학교의 주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김현희 씀
모든 교육적 시도와 상상이 '그러다 감염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한마디에 무력화 된 3년의 기록입니다. 본문 내용을 공유하고 싶어 일부분을 발췌하여 올립니다
코로나 방역 지침으로 공간을 폐쇄하거나, 동선을 최소화 시켜 감염병으로 부터 안전을 위함의 지침이 학교의 주인인 학생과 교사의 상상
력, 창의력, 배려심 등이 발현될 가능성을 배제 시켰다.
학교는 방역의 최전선이 아니다.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들의 집합소도 아니다. 학교는 학습과 생활의 공간이다. 배움과 성장의 장소이며, 성장은 사회적 관계적 경험을 통해 발생한다. 물론 방역은 중요한 과제이고 학교 공간의 물리적 구획은 앞으로도 당분간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지침이 학교의 장소성, 학교의 진정한 주인, 교육의 본질까지 조각내어서는 안된다.
학교의 실종된 장소성은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특히 큰 타격을 입혔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여유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사교육, 사설 놀이시설, 스포츠클럽, 각종 캠프 등을 경험했다. 학습격차만 벌어진 게 아니다. 생활, 놀이, 쉼, 관계 형성등 학교의 장소성이 희미해지마, 취약계층 아이들의 삶의 서사는 더욱 납작해졌다. 광활한 민주주의는 작고 친밀한 장소들에서 시작된다 학교 벤치, 운동장의 나무그늘 아래서 시작되는 '관계'가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장소에서 시작되고 신체에서 자란다.
6월 13일에는 남해에 계시는 조영님께서 보내주신 [작은학교 이야기]를 읽고 소감 나누기를 합니다.
매주 10:30시에 진행되었던 민들레는 5월부터 10시로 변경됩니다. 민들레가 궁금하신 분은 월요일 10시에 숲으로 언제든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