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먹으러 가요
이형국
“동구시장에 나가 칼국수나 사 먹자.” 아내가 저녁으로 뭘 해줄까 며 묻는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다.
“칼국수라고!. 낮에도 라면 먹었잖아?” 아내는 참으로 가련해 보이는 듯 반문했다.
아침 식사는 10년 이상 불변의 메뉴다. 누룽지 삶은 것에 달걀 하나를 먹거나 떡국에 생멸치, 아니면 수프다. 하지만 점심·저녁 시간에 집에 있는 날은 달라진다. 아내는 나의 끼니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는가 보다. 점심과 저녁 끼마다 아내와 나누는 진지한 대화는 ‘무엇을 먹느냐’에서 시작한다. 아내의 물음에, 나의 대답은 천편일률적으로 “먹기 싫다.” 아니면 “아무거나.”이다.
왜, 밥 먹기가 싫을까. 솔직히 밥 먹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같은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입이 까탈스럽다고 보면 된다. 아내는 긴 세월을 살면서, 내 습성을 꿰차고 있다. 결혼 이후 아내는 나 때문에 스트레스가 대단했을 것이다. 오십 킬로 겨우 넘는 체구로 하루에 12시간에 가까운 근무에 늘 파김치가 되어 퇴근했으니까.
된장찌개, 콩 조림을 빼고는 두 끼 이상 상 위에 올리지 않는다. 고기반찬이든 로스구이든 한두 끼를 거친 음식물은 다 아내가 먹어 없애는가 보다. 물론 된장찌개와 콩 조림도 짜다느니, 딱딱하다느니 하며 밀어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즐겨 먹는 편이다. 그런 습성이니, 밥 두어 숟갈만 뜨면 상을 밀어내기 일쑤다.
밥을 밀어내니, 속이 허전해진다. 그때부터는 냉장고 사냥이다. 그것도 시들해지면 외식을 떠올린다. 칼국수나 낙지 복음, 육회 비빔밥 먹으러 나가거나 반점에 전화하여 세트 음식을 시키기도 한다. 회사에 다니던 예전에는 외식보다 집밥을 좋아해서 아내가 즐거운 잔소리도 해대었던 적도 있다. 사람의 입맛은 바람난 여인처럼 사시사철 달라진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칼국수만은 변함없이 구미를 당긴다.
그렇다고 일찍부터 칼국수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아니, 칼국수를 엄청 싫어했다. 왜냐하면, 어릴 적과 청소년기에 ‘늘인 국수’와 잔치국수라 불리는 ‘외국수’에 질려서였다. 저녁 끼만 되면, 김치밥국 색깔의 멀건 국수나 콩나물국밥에 괜스레 울화통이 올라오곤 했다. 다시는 먹기 싫은 음식이었고 ‘성인이 되면 절대로 먹지 않겠노라.’라고 마음속에 다짐조차 했다. 그래선지 콩나물국밥은 아직도 먹지 않는다.
그렇게 싫어하던 칼국수에 먹기 시작한 건 한 십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내가 국수류를 즐겼다. 가끔 주말에 한 번씩 아내를 위해 손칼국수 집을 들렀다. 아내는 칼국수를, 나는 수제비를 주문했다. 변함없는 선택메뉴였다. 아내는 집요하게 나를 공략했다. 나의 메뉴는 서서히 수제비에서 칼수제비로, 결국은 칼국수로 바뀌었다. 아내에게 두 손을 들어서이기도 하고, 나이가 드니까 어릴 때의 음식에 대한 향수이기도 했다.
칼국수는 묘하게도 세월 따라 변해버린 내 입맛에 안착했다. 수시로 먹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다. 이름난 칼국수 맛집도 여기저기 확인했다. 육수나 면발, 조리법에 따라 맛이 달랐다. 다들 독특한 맛으로 한몫하고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내 구미와 완벽하게 합치되는 가게가 있어, 이후 그쪽으로만 이용하고 있었다. 주인 부부 나이가 나와 연배쯤 되어 보이는데, 솜씨가 좋아서인지 손님이 많았다. 불행히도 요즈음은 가게가 휴업 중이다. 안주인이 손을 다쳤다는 소문이었다. 몇 번을 찾았지만, 번번이 허탕이다. 그 집 국수 먹지 못하게 될까 봐 내심 안달이 난다.
세상을 살 만큼 살다 보니, 이젠 다른 욕심은 없어졌다. 그냥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 보고, 적당한 운동으로 몸이나 추스르는 세월을 가져서면 한다.
(2023.06) (9.5매 1372자)
첫댓글 동구시장 칼국수 맛있는 집이 어디예요?
국수 좋아하는데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