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동 경로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점심 배식은 12시부터인데 11시 30분 쯤에 어떤 할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시며 식당안으로 들어오셨다.
"밥 좀 주세요''
할머니는 다급하게 배식을 요구하셨다.
나는 그 할머니를 처음으로 보았지만 상근하는 분들은 그 분을 잘 알고 있었다.
정해진 배식시간과 상관 없이 그 할머니에게 식사를 차려드렸다.
할머니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그야말로 허겁지겁 드시기 시작했다.
"아이고 할머니,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는데 천천히 드세요. 체하시겠어요"
나는 나중에서야 그 분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분은 아주 심한 '당뇨병'을 앓고 계셨다.
'혈당수치'가 떨어지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중증 환자라고 했다.
그 분은 겨울 날씨임에도 제법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분이 '무료 급식소'까지 뛰어와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혈당수치'가 내려가 몸의 균형이 깨지면, 움직이지 않아도 저렇게 '식은땀'을 흘린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심각한 수준'인 듯했다.
손발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를 때, 빨리 식사를 하지 못하면 '저혈당 쇼크'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일상이 평온치 않았고 항상 비상사태를 염두해 두어야 하는 분이셨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기력을 회복하신다고 했다.
나는 본격적으로 배식준비를 하면서 속으로 기도했다.
"오, 주여. 저 분의 건강을 지켜주소서"
정신 없이 드셨다.
그래서 식사는 금방 끝났다.
식사 말미에 할머니는 푸념섞인 말씀을 쏟아내셨다.
"몸뚱아리는 멀쩡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나의 증상이 꾀병인 줄 알아요. 심지어는 가끔씩 가족들까지도 그런다니까요. 나이 먹고 늙으니 얼마나 서글프고 서운한 지 몰라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 아이고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이게 무슨 짓인지...."
"......."
평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우리의 어르신들.
연로하시거나 병들어 이젠 정상적으로 거동하시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분들이 많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세상의 괄시와 무관심 속에서 급기야 마음까지 점점 닫혀 가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이 더욱 아렸다.
지금 정신 없이 살아가는 베이붐 세대들.
어쩌면 우리들의 노후가 현재를 살고 있는 어르신들의 상황보다 더 형편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힘 있고 능력 있어 매사에 자신감에 넘치지만 과연 속절없는 세월 앞에서 어느 누군들 끝까지 '독야청청'할 수 있을까.
불가능 할 것이다.
그렇다.
어느 누구도 '생노병사'의 길을 비켜 갈 순 없으니까 말이다.
"더 겸손하고 넓은 마음으로 내 주변을 보듬으며 살아야 한다."
마음 속으로 내내 그렇게 기도했지만 손발은 여느 때처럼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많은 어르신들께 배식하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끝내야 했으니까.
세계 최고의 고령사회를 향해 빠르게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보험, 국민연금, 복지자금 등 각종 기금은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들은 점점 더 오래 살 것이다.
그렇기에 '장수'가 정말로 '최고의 축복'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대낮에 '파고다 공원'이나 온양, 춘천으로 가는 전철을 타보면 딱히 할 일은 없는데 시간을 때우기 위해 '무임승차'하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 그 숫자는 가파르게 늘 것이다.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복지도 계속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개인이 준비할 영역이 더 크다.
그 분야를 잘 준비하지 않으면 '장수'가 오히려 '형벌'이나 '재앙'이 되어 노후를 더욱 힘겹게 할 수도 있다.
그런 부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늙어봐야 '늙음'을 알 수 있고 죽어봐야 '죽음'을 알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생각이며 서글픈 인생이겠는가.
현명과 지혜로 각자의 인생 후반전을 단단하게 예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선택이 아니라 당위다.
수년째 무료 급식소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노인들이 오고 있다.
대부분 노후준비가 안 된 분들이라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냉혹하고 준엄한 현실이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오고 있음을 본다.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경로식당에서 봉사를 마치고 다시 신림동으로 컴백했다.
다시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느라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편안하고 복된 저녁시간 보내시길.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2011년 2월 24일.
퇴근 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