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3)
2023년 2월 1일(수)
두 시간의 시차로 평상시보다 늦는 시각 침실로 향한 딸과 며느리, 손주들은 늦잠을 잘 것이다.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난 나와 아내는 1층 식당으로 향했다. 6시 30분부터 조식이 시작된다. 호텔 동편으로 넓은 수영장과 야자수가 남국의 아름다움을 수채화처럼 펼쳐놓는다. 이국 풍경이 둥실둥실 행복을 싣고 온다. 호텔 식당 음식은 풍성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빵, 치즈, 반미 등이 있다. 계란과 쌀국수는 요리사가 직접 만들어 준다. 식사 전 기도를 드렸다. 늘 고맙고 감사하다.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둘이서 여유를 두고 즐기는 식사다. 은퇴 후, 구멍가게 카페 ‘시월’을 운영한다고 함께 식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쌀국수와 계란 그리고 바나나를 조식으로 먹은 후 커피를 시켰다. 식당 직원이 원두에서 직접 뽑은 커피를 갖다 준다. 입가심으로 먹는 커피가 입에 짝 달라붙었다. 그 안쪽으로 베트남 과거 모습 몇 개가 달라붙는다.
‘……. 남베트남, 북베트남. 월남에 계신 국군 장병 아저씨께-. 호치민, 1975년 사이공 함락(남베트남 패망), 안남미, 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베트남 수교, 축구감독 박항서……. ’
달랏으로 가는 버스가 시내 코모도 호텔 앞에서 8시에 출발한다. 이미 한국에서 한국의 여행사를 통해 달랏 상품을 예매한 상태다. 코모도 호텔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달랏으로 향한다. 버스 속에는 가족 일행이 두 팀, 모녀 한 팀, 친구들끼리 온 팀에 우리 부부까지 20여 명 되었다. 1980년대 내가 결혼할 당시 대부분 신혼부부들이 제주도를 찾은 것처럼 달랏은 지금 베트남 신혼부부들에게 인기 있는 최고의 여행지다. 나트랑에서 1,500미터 고산지대로 달랏까지 가는 길은 고도를 높이며 가야하는 휘어지고, 늘어진 구불 길이다. 그래도 포장이 다 되었기에 여행을 즐기는 맘이면 불편하지 않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푸르름이 이어진다. 때론 가파른 절벽이고, 때론 첩첩 낮은 산들이 산수화로 머문다. 유독 눈에 띄는 나무가 있다. 쭉쭉 뻗은 소나무다. 창 밖 산으로 소나무는 계속 이어진다. 달랏은 소수민족 랏족이 살던 곳으로 ‘랏속의 시냇물’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프랑스 지배 밑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달랏에 정주하면서 프랑스풍의 건물이 여느 도시보다 많은 편이다.
차멀미를 심하게 할 줄 알았던 아내가 잘 버틴다. 가는 도중 2시간 달려 밤부(BAMBOO)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 뒷산에 대나무, 바나나 등 열대 식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도 즐비하다. 바닥 곳곳엔 쓰레기가 널려있다. 예전 여행에서도 느꼈던 일이었는데 쓰레기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아직도 쓰레기일 뿐이다. 분리수거란 개념이 부족해 보였다. 사람 사는 마을 길가에도 페트병, 비닐 등이 쓰레기로 그냥 굴러다닌다. 휴게소에서 다시 달린 버스가 달랏 첫 관광지 린푸억 사원(Chua Linh Phuoc)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였다. 나트랑에서 8시에 출발했으니 3시간 걸린 것이다.
린푸억 사원은 건물 외벽을 도자기 파편으로 꾸며놓아 더 유명해진 곳이다. 본당, 종탑, 부속 건물 내외벽이 전부 타일이다. 불자는 아니지만 그 정성에 감탄하며 불자들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7층 종탑 2층에는 8,500kg 짜리 청동종이 걸려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노랑 종이가 놓여있다. 그 종이에 소원을 적어 종 밑에 붙이고 종을 치면 소원성취 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성껏 글씨를 쓰고, 붙이고, 종을 친다. 올라갈 수 있는 종탑 위까지 둘러보고 나오며 종에 붙어 있는 노란 색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어본다. 한글로 쓴 글씨가 많이 보인다.
“2023년에는 이직해서 더 마음에 드는 직무, 더 보람 있는 일 하고 싶어요. 올해도 지난해처럼 건강하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항상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여행이길 기도합니다.”
불자가 아니기에 나는 쓰지 않았다. 가톨릭 신앙인(엉터리?)으로 살아오면서도 하느님을 향해 무엇을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다. 기복신앙을 멀리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대부분 여행객들 바람은 공통본모를 갖고 있다. 내가 쓴다 해도 방문객이 쓴 내용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종탑 건물과 이어진 옆 건물에는 꽃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대형 불상에 생화를 붙인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상에 황금종이가 아니고 꽃을 입힌다는 것 또한 기발한 발상이다. 많은 지역에서 꽃을 조형에 이용하지만 이렇게 부처상에 꽃을 입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지금은 꽃이 마른 상태로 부처의 형상을 덮고 있다. 모든 것이 정성이란 것을 깨닫게 하는 자리다. 40분 이상 그곳에 머물며 곳곳을 관람했다. 제일 마지막으로 찾은 지하 고가구 전시와 그 아래층 지옥모형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또 생각하게 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텅둥덴(Thung Lũng Đèn) 카페였다. 수많은 카페 중에서 이곳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망 때문이다. 음료를 테이블에 놓고 내려다보는 아래쪽 비닐하우스는 설산 위에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내와 난 따뜻한 불랙커피(Ca phe đen nong)와 연유커피(Bac xiu nong)를 시켰다. 카페‘시월(詩月)’를 운영하면서 매일 마시는 커피는 여라 나라 커피를 블랜딩(blending)한 것이다. 브라질,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에서 수입한 커피를 섞어 만든 신맛과 쓴맛 두 종류다.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나트랑에 있는 가족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 연락했다. 다섯, 일곱 살 손주들은 수영도 못 하고 종일 잠을 잔다고 하였다. 여행의 피곤함에 그럴 만도 했다. 카페 내부 한쪽에서는 현지 젊은이들 몇이 차를 마시며 포커를 즐긴다. 밖은 곳곳에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하늘로 오르는 계단을 비롯하여 다양한 포트존에 사람들은 몸과 얼굴을 디밀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후일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사진을 보면서 낮은 지역에 펼쳐진 비닐하우스 풍격과 그곳에서 마신 카피 맛까지 기억하며 미소 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