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날의 장면이 선합니다. 92년 겨울이었습니다. 친구를 이끌고 교동 전자상가에서 포터블 CDP 샀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일극장 쪽에 있던 킹레코드에서 샘플 CD를 2장 샀습니다. 한장이 David Lanz, Return to the heart 라는 거였고, 다른 하나가 N.EX.T 1-Home 이었습니다. Home을 듣고 얼마나 신해철에 열광했던지요.
이 즈음엔 새로운 음악을 듣는거에 시큰둥해서 찾을 생각도 않고, 있어도 지나치기 때문에 귀에 익을 새가 없습니다. 익어도 효과가 긴 것도 아니고. 그 때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즈음에 귀에 익었던 노래들은 요즘도 자주 듣습니다. 그냥 귀에 박혀 버린 것 같습니다. 기억이 윤색하면서 어릴 적 기억들은 이상하게 모조리 낭만적인 것 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한 시절 강하게 충격을 주고 그 뒤로도 자주 듣게 되는 음악 중에 Angelo Branduardi와 Lacrimosa도 있습니다. 첫째거는 몇해 전에 음악감상화를 주관했던 K가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해준 바도 있어 혜윰인에게 익숙할겁니다. 잠깐 서울에 살 때, 4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넘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방 바닥에 드러누워 게으름의 바다 속을 헤엄치며 듣곤 했습니다.
둘째거는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꽤 오랫동안 귀에 붙여두고 살았습니다. 놀 때나, 일 할 때나, 페리 타고 작은 아버지 뵈러 영종도 가는 배 위에서나. 얘길 하고 보니 지금도 무척 듣고 싶습니다만, CD는 대구 부모님 창고 바닥에 깔려 있고, mp3로 만들어놓은건 이사하는 통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가사가 조금 음침하고 유치한 면이 있긴 하지만 칙칙하고 음산하지만 화려하고 강한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