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도 제40차 산행]
1. 일자: 2013. 10. 05~06. (1박 2일)
2. 날씨: 첫날 맑았다가 오후 5시부터 흐림, 다음날 흐리고 비 되풀이
3. 대상: 새봉(1,322m) / 경남 산청군 금서면 소재
4. 코스: 오봉리-새봉-외고개-오봉리 (도상 10.3㎞, 28시간 50분)
오봉리(10:00)-계곡첫번째횡단지점(10:20)-독가경유-계곡두번째횡단지점(11:00~15)-독가(11:25)-<12:40~14:30/점심>-싸립재(14:55)-곰샘(15:25)-새봉(16:05~11:25/야영)-새재(13:00~15)-외고개(13:40)-임도만남(13:55)-기도터(14:25)-오봉리(14:50)
5. 후기
지리산에서 야영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작년 가을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과 제석봉 아래 향적사지에서 하룻밤 보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리산 야영산행'이 로망이긴 한데 안팎으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올 해도 서너 차례 계획하였다가 날씨 등의 이유로 접은 바 있다. 이번에도 이튿날 강수확률 30%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나약하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오봉마을 중심 원점산행으로 동부능선 새봉에서 하룻밤 지내기로 한다.
오봉마을. 경남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에 속한다.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의 재실인 덕양전이 있는 화계리에서 엄천강을 따라가다 함양∙산청 추모공원과 공개바위 입구인 방곡리를 지나면 나오는데 지리산에서도 대표적인 오지 마을로 해발 500~600m에 숨바꼭질 하듯 숨어 있다. 이름의 유래는 다섯 봉우리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는 것과 다섯 개의 산줄기가 마을로 뻗어 내린다고 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왕등재와 왕등습지, 새봉, 독바위, 공개바위, 함양독바위, 상내봉 등의 산행이 가능하다.
오봉마을.
나는 2009년 10월 태극능선 구간종주 때 이 마을을 들머리로 잡은 적이 있다. 첫 방문이었다. 당시 새재로 올라 왕등재와 깃대봉을 거쳐 밤머리재에서 야영한 다음, 웅석봉 찍고 달뜨기능선 마근담봉에서 안마금담으로 떨어졌다. 어두운 밤 마근담농업학교 한 선생님의 배려로 덕산까지 편하게 왔던 기억은 잊지 못한다. 그 분은 나를 덕산에 내려주고 다시 안마근담으로 되돌아갔다. 안마금담을 지키고 선 ‘敬天愛人’이 새겨진 표석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두 번째 방문인 오늘은 오봉계곡 본류인 우측 골을 따라 싸립재로 올라섰는데 급한 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산길은 뚜렷하고 헷갈리지 않았으며 길 상태도 양호한 편이었다. 즉, 옛길의 부드러움이 살아 있었다. 싸립재는 상내봉과 새봉 사이 안부로써 오봉리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를 잇는 고개다.
10시 정각, 제법 묵직한 배낭을 메고 산행에 나선다. 임도 차단기를 통과하자 감을 주렁주렁 단 감나무가 힘겨운 듯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고 쑥부쟁이와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의 환영인사가 끝날 무렵 정면으로 새봉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첫 번째 계곡 건너는 곳에서 계곡 바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니 곧 외딴집이 나타난다. 주인은 없고 지난 여름 영업했던 흔적과 기도 터가 눈에 띈다. 그러나 길은 여기까지다. 배낭을 내려놓고 계곡을 건너 옛 논밭 터를 헤치고 나오니 수풀이 무성한 임도다. 물탱크가 있는 곳이다. 바로 되돌아가 골치기로 두 번째 계곡횡단지점까지 갈수도 있으나 정확한 길 잇기를 위해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배낭을 메고 다시 선 임도의 끝은 두 번째 횡단지점이다.
임도에서 본 새봉.
오봉계곡 첫 횡단지점.
계곡변의 독가.
계곡 두 번째 횡단지점.
계곡을 건너 막걸리로 입산을 알리고 잠시 쉬었다가 본격적인 산길에 든다. 앞으로 본류를 건너는 곳은 없다. 이미 두 번 다 건넜기 때문이다. 산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아마도 곧 나타날 독가 주인장의 보시가 아닐까. 감사한 마음으로 오른다. 10분도 채 안 걸려 독가가 나왔으나 역시 주인은 없다. 그냥 지나친다. 비스듬히 누운 노거송을 지나 점점 깊은 산중으로 파고든다. 계곡은 우렁찬 소리를 토해내고 수명을 다한 통나무다리는 우회로를 내어 놓았다. 계곡을 좌측에 둔 산길은 계곡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햇살에 빛나는 연초록 숲이 나를 상춘객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합수점을 지나 물통을 채우고 얕은 산죽지대를 벗어난다. 경사도가 높아질 무렵 점심상을 펼친다. 되도록 천천히 ‘숲 속의 성찬’을 즐기면서 맘껏 여유를 부린다. 야영지가 새봉이라 더 그렇다. 설사 곰샘이 말랐더라도 독바위를 거쳐 청이당터까지만 가면 된다. 만약을 위해 청이당터 인근을 2차 야영지로 정했기 때문이다.
독가.
합수점 부근의 신록.
싸립재.
2시 55분, 싸립재에 올라선다. 동북부 능선이자 산청∙함양 군계 능선이다. 상내봉 삼거리 오뚜기바위까지 다녀올까 하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연하(煙霞), 즉 아침 연기와 저녁 노을을 보는 것이 야영하는 이유가 아닐까. 능선은 추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짐작대로 샘은 마르지 않았다. 물줄기가 탄탄하다. 흐뭇하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황홀한 가을 분위기에 녹아 든다. 박 짐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바위비탈을 척척 올라간다. 정상이다. 우선 배낭을 멘 채 상내봉과 서북능선 끄트머리 바래∙덕두봉 사이의 조망을 챙긴다. 하늘과 구름과 산이 만들어낸 정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곰샘.
능선 단풍 풍경.
새봉 전망대.
새봉 전망대에서 본 상내봉과 법화산, 그리고 삼봉산.
바래봉과 덕두봉, 금대산, 백운산, 투구봉, 삼봉산, 법화산 그리고 벽송사능선.
고스락에 배낭을 내려놓고 더 나은 야영지가 있는지 살펴보면서 동쪽 너럭바위에 간다. 조개골을 비롯한 지리산 동부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써레봉능선과 두류능선이 실루엣을 그리며 양편으로 펼쳐진 가운데 독바위를 만들어 놓고 하봉으로 올라 붙는 동부능선이 부드러운 듯 근엄하게 다가온다. 한편 ‘지리산 행랑채’인 왕산과 필봉산은 구름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하다.
텐트를 치기엔 너럭바위보단 배낭을 놔둔 고스락이 낫다. 설상(雪上)이 아니라면 하늘이 열린 곳보다 숲으로 둘러싸인 야영지를 나는 더 선호한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집을 짓고 나자 바람을 대동한 구름이 바싹 내려앉았는데 석양은 그 속에서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새봉 고스락/정상.
너럭바위.
너럭바위에서 본 독바위와 하봉, 중봉 그리고 써레봉능선과 두류능선.
왕산과 필봉산.
다음날 아침, 눈을 떠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배수로를 내지 않았는데 거기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간간이 천막에서 기관총 소리가 난다. 바람이 나무의 물방울을 떨어뜨려 천막을 때리는 소리다. 독바위에 다녀오려던 생각은 자연스레 뭉개지고 텐트 안에서 아침밥과 커피를 해결한다. 그리고 비 그치길 기다리며 눈을 붙이고 떼길 거듭한다.
야영지.
오전 11시 20분, 야영지를 떠난다. 하산이다. 주의를 요하는 두 군데의 바위구간을 벗어나면서 새봉과 작별한다. 따지고 보면 새봉도 큰 바위들이 옹립하고 있는 것이다. 새재 직전 일부 산죽구간을 제외하면 외고개까진 부담 없는 능선길이다.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깐 비 그친 틈을 타 철수준비를 했지만 완전 그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빗줄기는 더 굵어진다. 지도 상의 독도주의지점에서 무심코 직진하다 암봉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실수를 범한다. 직진방향이 제법 뚜렷한 걸 보면 나 같은 산객이 많았던 모양이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죽지대를 지나 보릿똥(뽈뚝)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새재에서 빨갛게 익은 뽈뚝을 따 먹으며 잠시 동안 휴식한다.
새재.
완만한 산등성이 두 개를 넘어 외고개에 닿는다. 오봉리와 삼장면 유평리 외곡마을을 잇는 족보 있는 고개다. 지난날 삼장이나 덕산에서 함양이나 산청으로 넘어가거나 혹은 그 반대일 경우에 주로 동부능선의 다섯 고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쑥밭재와 새재, 외고개, 왕등재, 밤머리재가 그것이다. 그 중 밤머리재만 도로가 뚫려 웅석봉 산행의 등산구(登山口)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외곡마을 일대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지난 65년부터 70년까지 5년 동안 면양 시범목장으로 조성되었던 곳이다. 한국 최고로 면양사육의 적지로 본 것인데 교통이 불편한 이유로 면양목장은 남원군 운봉면의 운봉고원 즉, 바래봉 일대로 옮겨간 것이라고 한다.
외고개.
족보 있는 길을 따라 오봉리로 내려간다. 길 상태를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하게 이어지는 것 같다. 반가운 일이다. 급한 곳 하나 없는 옛길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15분쯤 걸려 임도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바른편 임도는 4년 전 오봉리에서 새재로 오를 때 경유했던 길이기에 이번엔 반대편 임도를 택한 것이다. 그런데 말짱하게 이어지던 임도는 계곡을 건너자 사라져버린다. 눈을 의심해 다시 지도를 꺼내보니 분명 포장된 도로로 표시되어 있다. 귀신 곡할 노릇이다. 하산이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복병을 만난 것이다.
외고개 내림길 풍경.
날머리 임도.
‘빨치산행’. 나의 산행에서 건너뛰면 안 되는 징크스일까. 되돌리기엔 너무 와버렸다. 헤치고 간다. 막바지 산죽을 헤엄쳐 나와 지계곡에 떨어지자 한결 낫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통나무다리가 걸려있다. 기도터로 연결된 길이다. 바로 옆 기도터에서 남은 막걸리를 처분하고 통나무다리를 지나자 갓 떨어진 다래가 널렸다. 손과 발이 고생한 끝에 입이 호강한다. 조립식 건물에서 제대로 된 임도를 만나 10여분 내려가 다리를 건너니 오봉리 비석이 선 삼거리다. 즉, 오봉계곡 좌, 우골이 만나는 합수점이다. 이곳에 배낭을 내려두고 차량을 회수한 다음 우골 초입 ‘알탕소’로 들어가 몸단장을 한다. 가을비는 아직도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잡목과 가시덩굴이 들어찬 '빨치 구간'.
기도터.
오봉계곡 좌, 우골이 만나는 합수부와 알탕소.
참고로, 지도상에 임도는 오봉좌골을 사이에 두고 순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1~#2 구간은 임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무성한 잡목과 산죽, 덩굴 등으로 무척 힘들게 운행하였다. 2009년 10월 오봉마을에서 새재로 오를 때 우측 임도를 경유했었기에, 이번에는 좌측 포장된 임도를 따랐는데 하산 막바지 편안하게 생각하고 들었던 길에서 복병을 만난 셈이다. 따라서 오봉마을에서 새재나 외고개, 혹은 그 반대로 산행할 경우 임도를 경유한다면 지도 상의 좌측 임도는 피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산행궤적.
기점: 오봉마을 주차장.
독도주의: 직진하기 쉬운 곳. 왼쪽 길을 따라야 함.
#1: 계곡 횡단지점. 실제 임도는 진행방향으로 볼 때 여기서 끝남.
#2: 임도 재개지점. 외딴 집인 조립식 건물이 있음.
종점: 오봉계곡 좌, 우골 합수부.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로 오봉리 표석이 있음.
첫댓글 산속에서 자면서 밤새도록 천막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 한번 들어봤으면....
방장님을 비롯 든든한 후배님들 대동하여 지리산에서 하룻밤 유하시는 것도 낭만적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후득이는 빗방울에 옷자락 적실 각오를 하셔야만 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귀한 산행기를 접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산 하십시오.
이번 산행은 단독산행이신지 아니면 동행이 있었는지요? 김현선배님께선 밤새도록 천막을 때리는
빗바울 소리를 들었으면 하시지만 현실과 이상은 분명히 다를 겁니다. 저 같으면 별로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듯 싶습니다. 더구나 비가 오면 아무것도 담을 수 없으니 더욱 그렇고요. 이젠 사진쟁이가 다 된것인지.. ^^;
방장님도 참..
빗소리를 들으며 텐트 속에서 마시는 술맛은 비교를 거부합니다. ㅎㅎ
오랜만에 동부능을 접하고 갑니다.
잔차로 한바꾸 하고 싶었는데...
좋은 정보 감사 합니다.
오랜만에 홀로 나서봤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천막 속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와 분위기는 참 좋습니다.
다만 전후 문제를 얼만큼 잘 소화 하느냐도 중요하겠지요. ㅎㅎ
방장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더라도 대선배님 모시고 함 다녀오십시오. ^^
@난테 비교 거부에 공감입니다.
그 구간만 빼고 한바꾸 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도를 보니 위치가 어디쯤인지 눈에 들어오네예!!
지리의 늦가을 제법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박을 하시고
말씀처럼 텐트속에서 빗방울소리 정말 좋은듯 하고요 난테님의 빗소리
들으며 텐트속에서 마시는 술맛 비교 불가에 강력 공감합니다.
아직은 지리에 대해 초짜이지만 지리 한자락 공부하고 물러갑니다.ㅎ
산행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목적(마음)으로 산에 드느냐가 가장 우선하겠지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다양한 산행을 해보는 게 좋다고 판단하여 한 번씩 야영산행에 나섭니다.
동료가 있어 별이 쏟아지는 밤에 술 한 잔 나누면 그만이지요. ㅎㅎ
아무래도 홀로보단 함께가 좋은 나이인가 봅니다.
즐산 하십시오. ^^
비박... 증~말 해보고 싶은데... 왕부럽게 또 보고 갑니다ㅎㅎㅎ
언제 함 하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