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fm: 그대와 여는 아침: 아침공감- 참외는 참 외롭다]
참외의 ‘외’는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아들·외딴집 할 때의 그 ‘외’다. ‘슬기’가 ‘슬기-롭다’가 되고,
‘지혜’가 ‘지혜-롭다’가 되는 우리말 구조를 따져보면,
‘외-롭다’는 ‘외’로부터 나온 게 확실하다. 왜 참외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들은 ‘외로움’이란 의미를 홀로 열매가 굵어가는,
저 보잘것없는 초본식물로부터 만들어 냈을까.
오이와 수박도 외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박목-박과’에
속한 식물들이지만, 다른 성질들이 우세해서 모두 제각기 다른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참외만은 ‘참’이라고 진짜임을 강조하는
모자까지 척 쓰고, ‘외로움’의 절대강자가 되어 오랜 시간을
버텨오고 있다. 참외가 단순히 단물 가득한 과일이 아니고
‘외로움’을 표상하게 된 비밀을, 나는 한 학자에게 처음 들었다.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 다른 식물은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박과 식물만은 홀로 꽃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홀로 피어야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다.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 몸 안에 단맛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외’가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또 누리는 것은, 그 길만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롭다’의 ‘외’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다.
현대의 외로움엔 원래의 의미 대신 상당량의 ‘당분’과
‘센티멘털’이 가미돼 버렸다. 시장과 매스미디어는 외로움을
달달하게 과잉포장해서 흔하고 값싸게 유통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린 진정한 외로움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외꽃이 하나인 건 원래 둘이었던 것의 결핍이 아니라,
홀로됨을 기꺼이 선택해 성숙에 이르기 위함이다.
자라는 아이의 함량을 키우려면, 남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그리하여 고요하게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좇아가려면
홀로 견디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저 홀로 단단히 익어가는 참외, 전철역 입구에, 세운 트럭 안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참외, 참외의 참 외로움을 본받아야 한다.
온 세상에 땡볕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건 내게 단물을 들이기 위한 시간일 뿐인 것이다!
* 국어교육자이자 칼럼니스트였던 故김서령의 책
<참외는 참 외롭다>에서 따온 글이었어요.
첫댓글 처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