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계 2:8-11)
요한계시록 일곱교회 중에서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은 교회가 두 교회 있는데 그 하나가 서머나교회, 다른 한 교회는 빌라델비아교회가 되겠습니다. 오늘 살펴볼 서머나는 주전 290년경 안렉산더에 의하여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개발이 되어 부자들이 많았고, 따뜻한 기후, 아름다운 바다와 풍경 때문에 유대인들과 로마 귀족들의 휴양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뭐냐, 서머나 지역의 상권을 이미 장악하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로마 귀족들사이에 서머나 지역의 상권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 황제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로부터 유대교를 인정받기 위해 로마 귀족들과 싸울 수는 없으니까 기독교를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황제에 대한 반역’이라고 고발했고, 로마 귀족들은 기독교인들이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박해를 했습니다. 서머나교회는 이 두 세력으로부터 무섭게 핍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역사가 제롬)주후 115년 서머나 교회의 담임목사인 폴리갑을 비롯한 12명의 지도자가 잔혹하게 처형을 당했습니다. 폴리갑은 죽을 때 로마 총독에게 말했습니다.“예수님은 86년 동안 나에게 단 한 번도 잘못 대해주신 것이 없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계2:10-11)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세에 서머나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1)서머나 교회는 가난하고 작은 교회였지만 믿음은 크고 굳건한 교회였습니다.
(계2:9)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했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서머나 지역은 금융과 경제가 풍부한 항구 도시였습니다.그러나 서머나 교회 신자들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 때문에 매매를 금지당하고 불신자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약탈을 당했고 유대인들의 악평과 선동으로 로마의 탄압까지 받았습니다.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때문에 장사도 못하지,취직도 못하지, 경제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먹고 살기가 어렵고 그래서 교회가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난을 의미하는 단어가 프토케이아(Ptocheia)가난하다 못해 찢어지는 가난을 말합니다. 꼭 우리가 6,25 전쟁때 이런 찢어지는 가난을 경험을 했습니다. 부산까지 피난가서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했어도 십일조를 하고 헌금을 하고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분들의 헌신으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기초생활 수급이라는 것이 있어서 정부가 기초생활이 힘든 국민들에게 병원비도 주고 기본 생활비라도 줍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좋은 대한민국입니까?.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가난 속에서도 오히려 부자보다 더 마음이 평안했으며 행복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바 못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롬8:18). 궁궐같은 집에서 밤낮 분쟁하며 재산 싸움으로 부모 형제가 갈라서고 살인 나는 경우가 오늘날 얼마나 많습니까?. 초가삼간도 마음이 평안하고 화목해야지 행복인 것입니다.
(지금도 이북에는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있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고전10:13)감당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으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하셨다.
여러분,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고 힘들고 가난했습니다. 그들이 나가는 교회마저 작고 가난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서머나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내가 다 안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의 이 말 한마디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7:2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도무지 내가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했어도 불법을 행하고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을 주님이 안다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가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서머나 신자들처럼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뉴스에 경남 은행의 간부가 5년 간 은행 돈을 빼돌렸는데 699억원을 횡령했다고 합니다.여차하면 도망 갈려고(1㎏짜리 골드바 101개, 현금 45억원, 미화 5만 달러)를 오피스텔 3곳에 보관한 것까지 밝혀졌습니다.
도망가서 어떻게 삽니까?. 요즘에는 세계 인터폴이 다 되어 있어서 다 잡혀 옵니다.부정한 방법으로 아무리 많은 금이 있고 돈이 있어도 평안히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돈은 하늘나라 이외에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해주며 행복 이외에 모든 것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하늘나라로 인도할 수는 없고 행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돈돈돈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9절에“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고 예배하거나 봉사를 했다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섬긴 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회사에서 진급할 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아파트 당첨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영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자였습니다.
(히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눈에 보이는 것은 없어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큰소리 칠 수 있어야 합니다. 병 들었어도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했어도 잘될 것이라고 큰소리 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 큰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쳐서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 웃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임을 내가 믿기 때문에 큰소리치고 웃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믿음의 부요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2)서머나 교회는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였습니다(계2:10-11).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①지금까지 잘했지만 앞으로 더 잘하라②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③드러나지 않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④내가 맡은 일에 충성하라⑤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으로 알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중간에 포기하면 면류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선수가 힘들다고 누가 옆에서 갈군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축구선수 안정환이 하는 말을 보니까 2002년 월드컵 할 때 펜티에 똥을 쌀 정도로 뛰고 뛰었답니다. 그러니까 승리하고 4강을 하고 유명인이 된 것이지요.
공부하는 사람이나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힘든 것을 다 겪고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신앙은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며 자기 기분 좋은 대로 옮겨 다니는 분들은 절대 인정받을 수도 없지만 좋은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기왕에 옮겼으면 거기가 내 평생 교회라고 결심하고 충성해야지 중간에 또 옮기고 그러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직장도 옮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옮겨 다니면 절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여러분, 어디서든지 죽도록 충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운동장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승리한 자에게 월계관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생명의 면류관”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빼앗긴 생명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찾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3)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지옥)를 받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서머나 교회가 보여주는 것처럼 때로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신앙을 포기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믿음에 굳게 서서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망(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의 영생복락을 얻게 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사망은 요한계시록에 여러 차례 언급되며, 이 용어는 불못과 동의어입니다. 이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점에서(죽음)입니다. 육체적 죽음 이후에 오는 죽음이기 때문에(둘째)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21:8,계20:14-15)둘째 사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6을 보시면, 둘째 사망에 대해 말합니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빌3:7)바울도 고백했습니다.“어찌하든지 내가 부활에 참여하기를 원하노라”
우리도 바울처럼 서머나 교인들처럼 부활의 날까지 믿음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