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초등학교 정문앞 초대 육성회장(후원회장) 공적비 를 아시나요?
일제 시대에 운남면은 망운면인 관계로 초등학교를 먼 곳인 운남면 성내리 내리 사는 분들까지 14 ~16㎞ 이상되는 곳에서 새벽에 일찍 아침밥을 먹고 그 먼길인 망운면 목동리 소재의 망운초등학교까지 가서 신학문을 배우고자 학교를 다니신 어르신분들을 떠 올려 본다.
일제시대의 시대적인 배경은 여기에서 이야기 하지 않드라도, 윗대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하여 들었을 것으로 보여져 이번에는 운남초등학교 입구에 건립된 공적비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운남소재지는 그 당시 비석거리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초대 후원회장을 하신 정문명(鄭文明) 어르신의 공적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본명은 정원채(鄭元采)이며, 호는 묵헌(默軒)으로 조선시대 고종 을유(乙酉, 1885년, 단기 4218년)년에 저동마을에서 태어나셨다.
당시 공적비를 건립하기 위하여 공적비문 글을 지으신분들을 보면, 임오년(1942년) 4월 망덕양(望德陽) 기광연(奇光衍) 지(識)었다고 하였고,
다른 자료는 같은해 9월 광산 김재혁(金在爀) 지(識)었다고 하였음, 또 다른 자료는 같은해 중양지랑( 重陽之郞 일본인으로 창씨 개명으로 보임) 영양(潁陽) 천상식( 千相植) 근지(謹 識)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재 공적비에 기록된 내용은 위 3명의 글이 비문에 적혀 있는지 확인을 하지 못하였음을 밝혀둔다.
당시의 운남초등학교 교장은 강부번부(岡部繁夫 - 일본인 교장)이며, 후원회 대표는 박채진( 朴彩珍)으로 임오년 5월30일 공적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호 기대해 보세요
첫댓글 금시초문입니다
저동 정선채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볼렴니다
선배님 고향에 가시면 운남초등학교 정문 오른쪽에 있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