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에는 외로움이, 결혼에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5월의 네 번째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노후준비를 망치는 6가지 착각’ 중 다섯 번째는 ‘자녀가 노후를 책임져줄 걸로 생각한다.’입니다. 소위 자식 농사에 올인 한 후, 자녀를 ‘노후대비책’이라 여기는 것은 큰 오류랍니다. 장성한 자식들 역시, 그들의 2세를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부모까지 책임지기엔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결혼생활이 힘든 사실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말한 사람은 코미디언 ‘크리스 록’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결혼은 힘든 거야. 넬슨 만델라도 이혼했다고! 27년간 감옥에서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그도, 출소 후 6개월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고!” ‘알랭 드 보통’은 ‘독신에는 외로움이, 결혼에는 괴로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 어느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녀가 만나 한평생을 함께 살았다면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산책하는 공원에서, 청춘남녀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노부부의 모습’입니다. 해질 녘에 그 모습을 보면, ‘사람도 좋은 풍경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곤 합니다.
언젠가 북 콘서트에서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좋을지?’를 묻는 분을 만났습니다.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사람마다 ‘좋음’의 기준이 다르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저는 거창한 말보다는 ‘그 사람의 작은 행동을 본다.’고 말합니다.
운전할 때 양보해주는 사람, 문을 열 때 뒷사람이 오는지 확인하는 사람, 식당에서 일어설 때 의자를 밀어 넣는 사람, 비 오는 날 상대에게 우산을 더 기울여주는 사람, 약속시간에 5분 먼저 오는 사람, 헤어질 때 한 번쯤 뒤돌아봐주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잘하는 사람.
그러나 나에게만 잘해주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나에게만 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팁을 더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감(感)’을 잡을 수 없을 때는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오직 그 사람의 ‘행동’만 보라고 충고합니다. ‘나쁜 행동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질 때라야, 좋은 사람에 대한 안목이 생기는 법입니다.
오래전에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배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거대 담론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합(合)’이 우리의 인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출처; 백영옥의 말과 글, 백영옥/소설가)
오늘의 제목이 ‘독신에는 외로움이, 결혼에는 괴로움이 있다!’인데, 결혼과 독신의 성격을 아주 잘 표현준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녀사이를 연결해주는 사람이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요컨대, 누구를 막론하고 ‘좋은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좋은 상품이라면 굳이 선전하지 않아도 찾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이라면 서로가 나서서 중매하려고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러니, 결혼하기 전뿐만 아니라 결혼한 후에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이젠 내 사람이다’ 싶으면, 결혼 전에 상대방에게 기울이던 노력과 정성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실패의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잖나 싶습니다. 외로운 것도 싫고 괴로운 것도 싫다면, 글쓴이가 열거한 그 몇 가지만이라도 조심스럽게 실천한다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물맷돌)
[내가 진실함으로 너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 그러면, 너도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호2:20,쉬운성경) 남자는 그의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다.(마19:5-6,현대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갖고 살면 안 될까요?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가요? 5월의 세 번째 주말 아침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빕니다. ‘노후준비를 망치는 6가지 착각’ 네 번째는 ‘자녀를 돕는데 큰 비중을 둔다.’입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장년층이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의 65.4%가 ‘자녀의 교육비와 결혼지출’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노후대비까지 함께 고려해서 균형적인 지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지금 20평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칫솔질을 하고 있다가 미처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벨이 울리기에 전화를 받았더니, 다짜고짜 친구가 저를 야단쳤습니다. “아니, 그것도 집이라고! 그 코딱지만 한 집에서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 거야?”
친구의 말이 맞습니다. 그 친구는 천 평도 넘는 넓은 전원주택에 2층과 3층, 그리고 별관까지 있는 집에서 살고 있으니, 전화가 와도 빨리 받기가 힘들 겁니다. 그런데, 저는 책상부터 싱크대와 화장실까지 한눈에 다 보이는 20평에 살고 있으니, 그 친구 눈에는 정말 코딱지만 하게 보일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래, 너는 코딱지도 참 크다. 그 큰 코딱지 붙이고 사느라 고생이 많다. 그러니, 날마다 냄새는 얼마나 나니?”
저는 그렇게 비꼬듯이 대꾸했습니다. 화가 나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 친구를 부러워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말이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큰 집에 남편과 둘이만 살고 있는 그 친구가 너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늙은 부부 둘이 그 넓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이 정말로 안 돼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한눈에 다 보이는 이 집이 조금도 좁아 보이지 않습니다. 청소하기도 수월해서, 제 마음에 쏙 드는 집입니다.
분당 사는 친구가 있는데, 혼자 69평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 집에서 자고 와야 할 일이 있어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늦은 시간이라 집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쓰레기통에서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목욕탕 하수구를 막을 듯 쌓여있고, 싱크대는 10년은 안 닦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실만 조금 좀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산이 보이고, 뒤로 봐도 경치가 천국인데, 집구석 안은 쓰레기통이었습니다. 하룻밤 묵은 값으로 화장실부터 싱크대까지 닦아주느라 4시간을 중노동 했습니다. 여관비치고는 정말 비싸게 먹힌 겁니다. 집에 돌아와 그대로 뻗어버렸습니다. 다시는 안 가고 싶은 집이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갖고 살면 안 될까요?(출처; 어른공부, 양순자 / 30년간 사형수 상담가로 봉사, 저서로는 ‘인생 9단’과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가 있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그동안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실용성(實用性)보다는 ‘과시와 자랑’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잖아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리라 생각하고,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넓고 큰 집을 선호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사실대로 말하기가 곤란하니까, 그런 집에서 살고 있는 이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기대했던 바였기에, 그런 빈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곧, ‘실용을 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리라고 봅니다.(물맷돌)
[네 입으로 네가 잘났다고 뽐내지 말라. 네 입술로 ‘이만하면 되지 않았소!’하고 떠벌리지 말라. 다른 이가 너를 칭찬하고 치켜세워 주어야 보기에 좋을 것이 아니냐?(잠27:2,현대어) 누구든지 자기를 자랑하거나 업적을 내세우는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주께서 인정하시는 사람만이 참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고후10:18,현대어)]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당신에게도 봄은 꼭 올 겁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가요? 5월 19일 금요일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노후준비를 망치는 6가지 착각’ 세 번째는, ‘연금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입니다. 노후준비를 하더라도 ‘연금의 중요성’은 제쳐두는 경우가 많답니다. 하지만, 노후엔 생활비와 의료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돈이 많으므로, 항상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반드시 필요하답니다. ‘연금을 통해서 노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하네요.
파킨슨병에 걸린 지 22년, 그동안 저는 크고 작은 수술을 다섯 번 받았고 병은 악화되었습니다. ‘조금은 나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이 아팠지만, 몇 시간 기다리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덜 아픈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누구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는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몰라’ 절망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좋은 시절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다르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면,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당신에게도 봄은 꼭 올 겁니다!
언젠가부터 환자들이 저를 보고 그랬습니다. ‘달라졌다’고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한결 편안해보이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는데, “도대체 그 비결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병이 제 스승이지요.”라고 말합니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이 조금은 커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내가 옳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애썼을 텐데, 지금은 기다립니다. ‘저 사람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 언젠가 저 사람도 준비가 되면 받아들이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예전 같으면 저의 한계도 모른 채 제가 잘난 줄 알고 살았을 텐데, 이제는 그 한계를 알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 실수도 쉽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제 실수입니다. 당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 제가 너무 서둘러서 당신이 상처를 받은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출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 정신분석전문의)
아, 한 구절 한 구절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읽어보면서 마음에 깊이 담아 인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좋은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가 최인호 씨가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고 하더니, 글쓴이는, 파킨슨병에 걸려서 22년 동안 투병하면서 다섯 번이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큰 고통을 겪어내야만 했기에, 그야말로 주옥(珠玉)과 같은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 이상 ‘첨언의 어리석음’을 이제 그치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한 번 더 소리내어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물맷돌)
[이 몸은, 그 어떤 스승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얻고, 나이 많은 이보다 더 깊은 주의 명령 따라 살고자 했기에 깨달음을 얻습니다.(시119:101,102,현대어) 우리가 잠시 받는 짧은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겁니다.(고후4:17,현대인)]
북유럽을 행복하게 만든 3대 조건(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샬롬!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5월 18일 목요일 아침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노후준비를 망치는 6가지 착각’ 두 번째는, ‘호상(好喪)을 맞이할 거라 생각한다.’는 겁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물론, 충분히 살다가는 호상(好喪)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때론 슬픈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들은 몰라도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아무튼, ‘불상사에 대비한 준비’를 사전(事前)에 구체적으로 해둬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첫째, 자기를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사는 이웃이나 친구와 비교하여 그보다 못 살고 있다’고 깨닫게 될 때,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북유럽에서는, ‘너도 나도 비슷하다 보니, 서로 안도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둘째,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입니다. 우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습니다. 봉급의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내지만, ‘정부가 나의 노후를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저항이 없습니다. 세금이 눈먼 돈이 되어, 몇몇 사람만 나눠 갖는 ‘한국식 부패’는 없습니다.
셋째, 과시적 소비 없이 알뜰살뜰하게 살아갑니다. ‘과시해서는 안 된다’는 ‘얀테의 법칙’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캠핑하는 식으로 바깥생활을 즐기지만, 한국처럼 ‘고기 구워먹는 게 주목적인 양’ 준비하는 게 아니고, 소박하게 떠납니다.
‘박노자’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에서, 북유럽 사람들의 소비행위를 ‘절약의 집념’으로 표현합니다. 교수들조차 거의 예외가 없이 모두 점심도시락을 싸 와서 먹고, 집에서 가져온 인스턴트커피에 공짜로 주는 물을 부어 마시면서 “오늘은 돈을 한 푼도 안 썼다”고 자랑합니다(얀테의 법칙에서도 그 정도 자랑은 허용되나 봅니다).
사업차, 30년 전부터 북유럽을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10년 전, 노르웨이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틀란틱 오션 로드(해안도로)’를 남쪽에서 건너가면, 작은 휴게소가 있었습니다. 제가 가져간 컵라면에 ‘뜨거운 물 좀 부어 달라’고 했더니, ‘차 한 잔 가격의 2배를 내라’고 했습니다. ‘동양인이라서 바가지 씌우나?’하는 생각에, “왜, 그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전기와 가스가 없어 집에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오는데, 커피나 차를 팔 때에 사용해야 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돈을 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에서도 뜨거운 물은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공짜가 없는 나라였습니다.(출처;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 기업가 겸 칼럼이스트)
※얀테의 법칙(후렴: 생각하지 마라) 1.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2.네가 남들처럼 좋은 사람이라고도, 3.남들보다 총명하다고도, 4.남들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도, 5.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도, 6.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7.네가 뭐든 잘한다고도, 8.누군가 너를 걱정할 것이라고도, 9.무엇이건 네가 가르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마라.) 10.남들을 비웃지 마라.
북유럽국가가 그처럼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복지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미 읽어보셨듯이,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들 국가의 국민들은 자연스레 절약이 몸에 배여 있는 것입니다. ‘교수들조차 점심도시락을 준비해서 출근한다.’고 하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남미국가들처럼, 돈을 찍어 복지를 확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물맷돌)
[굶주린 사람에게는 네 음식을 나누어주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고, 입을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입혀주고, 어려운 처지의 동족을 보고서 모른 체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아니냐?(사58:7,현대어) 그러기에, 성경에서도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나누십시오.(고후8:15,현대어)]
“얼음을, 그렇게 씹어 먹다가는 이 다 나간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5월 17일 수요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빕니다. 오늘부터 ‘노후 준비를 망치는 6가지 착각’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경제적 안정이 영원할 줄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은퇴와 함께 소득은 사라지고, 그동안 모아온 자산으로 여생을 꾸려나가야 하지만, 자산은 한정적이며 소비를 줄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고로, 보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합니다.(출처; 마음 건 길)
그날도 여느 때처럼 동네 목욕탕에서 사우나를 하며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를 마셨습니다. 다 마신 후에는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깨뜨려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할머니가 호통을 치셨습니다. “얼음을, 그렇게 씹어 먹다가는 이 다 나간다!” 말투라도 다정했으면 괜찮았겠지만, 할머니는 아주 큰 목소리로 야단을 치셨습니다. 옆 사람과 대놓고 저의 흉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소리가 목욕탕에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졸지에, 저는 아주 어리석고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한 말이겠거니…’하고 이해하려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혀를 차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쯧쯧, 저러다 나중에 큰일 나지!” 무안한 나머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나쁜 뜻은 아닐 거야!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일 거야!’
좋은 의도로 한 말이라도, 듣는 이에게는 다른 의미로 가닿을 수 있습니다. 언어에 ‘무엇이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은 물론,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섞여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타인에게 말을 건넬 때엔 ‘세심한 머뭇거림’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거나, 타인에 대한 차별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말입니다. 좋은 뜻으로, 혹은 농담으로 한 말일지라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상처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가끔 혼자 생각하곤 합니다. ‘외국어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처럼, 비난이나 편견이 담기지 않은 바른 말을 점수로 채점하는 시험이 있으면 어떨까?’하고 말입니다. 자신이 어떤 말을 사용하고, 어떤 식으로 상대에게 전하는지 검증하는 제도가 있다면, ‘모두가 말을 더 신중하게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평소 쓰는 말에서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만약 이를 바꾸고 싶다면, 자기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만큼, 말을 다르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출처; 좋은생각, 김항심/작가)
사실, 타고나기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오지랖이 넓은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글쓴이에게 목욕탕에서 ‘얼음을 씹지 말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대신 그 할머니도 ‘진정 글쓴이를 염려해서’ 하신 말씀일 겁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처럼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염려의 말씀이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여력이 있으면 몇 번이고 거듭 합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씀하는 것은, 할머니 귀가 어두워져서 그처럼 큰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건망증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런 말씀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듣는 사람이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일 때, 그처럼 거듭 말씀하십니다. 아무튼, 젊은 분들은 이런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노인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언젠가는 늙어서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입니다.(물맷돌)
[물론, 내 말이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한번 찾아와 들어봐라!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애써 보아라! 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속마음을 다 드러내 보이고 싶구나!(잠1:23,현대어) 부모들에게도 한마디 당부하겠습니다.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엡6:4,현대어)]
이제부터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5월 16일 화요일 아침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빕니다. 뉴스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난12일, 프란체스코 교황이 로마에서 ‘출산율 하락’을 주제로 한 회의를 마치고, 그 2주 전쯤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바티시국의 일반인 알현에서, 한 여성이 가방을 열며 “내 아기를 축복해주세요”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개였습니다. 이에, 교황께서는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나에게 개를 데려왔느냐?”고 하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그 여성을 나무랐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황께서는 지난 1월 일반인 알현 행사에서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않거나 한 명만 갖기를 원하나, 개와 고양이는 두 마리씩 키운다.”면서 “이는 이기주의의 한 형태”라고 말씀한 바 있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삼 신기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끄무레한 안개에 휩싸인 듯,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하여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던 일,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며 밥그릇만 봐도 헛구역질 하던 일, 그런 일들은 의도적 기억상실증처럼 제 기억 한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 있어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회생되는 파편일 뿐입니다.
그 세월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가슴 뻐근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집니다. 사방이 회벽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 세상과 단절된 채 있었기에, 저는 참 많이 바깥세상이 그리웠습니다. 밤에 눈을 감고 있으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습니다. 그런 모든 일상(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을 끝없이 질투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제 본래 자리로 돌아온 겁니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고, 아침에 자꾸 감기는 눈을 반쯤 뜬 채 화장실에 갔다가 밥 먹고, 늦어서 허겁지겁 학교로 가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젠 목젖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보쌈도 먹습니다. 그리고 상추쌈도 먹고 갈비찜도 먹습니다. 김종삼 시인은 ‘어부’라는 시(詩)에서 말했습니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 날마다 출렁인다. /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 사노라면 / 많은 기쁨이 있다.
맞습니다. 지난 3년간 제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하고,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서 잘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제 옆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함께 동일한 배를 타고서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 (출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 서강대교수로 재직 중인 2009년 5월에 암으로 작고)
장 교수님은, ‘3년간 암 투병을 한, 그 나날들이 기적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암 투병 하는 동안, 병실 바깥에서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질투하며 부러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그때 장 교수가 질투하며 부러워했던 일들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장 교수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미 감지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만, 우리는 진정 많은 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상(日常)이 축복인 것입니다. 고로, 반복되는 일상을 지겨워하거나 허무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하루, 늘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물맷돌)
[항상 기뻐하십시오. 언제나(쉬지 말고) 기도에 힘쓰십시오.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살전5:16-18,현대어)]
자칫 ‘진짜 모습’ 대신에 ‘보고싶은 모습’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샬롬! 어저께 주일은 은혜로이 잘 보내셨는지요? 5월 15일 스승의 날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 중, 마지막은 ‘병원치료’입니다. 진실로 마음이 너무 힘들고, 또한 그것이 신체로도 나타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에는, 정신과를 찾아가서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단, 병원의사도 천차만별이랍니다.
다음 이야기는 한두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여겨집니다. 시각장애인 여섯 사람이 코끼리를 만져본 다음, 각자 자신이 경험한 느낌을 가지고 코끼리 생김새를 말했습니다. 몸통을 만져본 사람은 ‘넓은 벽 같다’고 했고,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뾰족한 창 같다’고 했으며, 긴 코를 만져본 사람은 ‘굵은 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크고 둥근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큰 기둥과 같다’고 했는가하면, 커다란 귀를 만져본 사람은 ‘부채 모양 같다’고 했으며,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굵은 밧줄 같다’고 했습니다. 이 설명을 다 종합해볼 경우, 코끼리는 마치 ‘외계에서 날아온 변신 괴물’처럼 여겨집니다.
하나의 부분은 전체를 보여주는 작은 단서에 불과합니다. 크고 넓게 보려는 의지가 없으면, 그 하나의 사실로 어설픈 결론을 내릴 염려가 많습니다. 자칫 ‘진짜 모습’ 대신에 ‘보고싶은 모습’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에는 그저 ‘눈뜬장님’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분과 전체의 모습이 비슷할 때도 있지만, 전혀 다를 때도 많습니다. 참모습을 알고 나면, 똑같은 사실도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어제까지 김 대리는 훤칠한 키의 너무나 ‘멋진 훈남’이었지만, 어느 순간 허우대만 멀쩡한 ‘속 빈 강정’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대리의 작은 키가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감 넘쳐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낡은 티셔츠는 빈티지룩 같고, 웃을 때마다 보이는 덧이마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한 가지 면만 보게 될 경우에는 속을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전체의 모습도 괜찮겠지~’ 속단하면 안 되고, 한 가지가 별로라고 해서 ‘전부 엉망일 거’라고 섣불리 넘겨짚어도 안 됩니다. 부분을 모아놓은 전체의 모습은 자신의 눈이 좋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만 볼 게 아니라, 100m 상공까지 공중부양해서 독수리의 눈으로 전체 숲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자동차를 보더라도, 첫눈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체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제한된 정보만으로 확신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내 마음속 선입견의 농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평소 지니고 있던 막연한 기대나 허영, 과거 어느 시점에 겪었던 아픈 상처의 기억은 ‘지금 자신의 눈을 가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출처; 월간 에세이, 권영구 / 한의사)
그렇습니다. 어느 한 부분만 보고 판단하는 ‘단편적(斷片的)인 사고(思考)’를 멀리하고, 전체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전적(統全的)인 사고(思考)’를 가져야 합니다. 전체윤곽을 알아야 어느 한 부분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전체만 알고 부분을 몰라도 ‘사고(思考)의 흐름’이 원활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전체를 제대로 알아야 성경 각권에 대한 이해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異端)들이 성경전체의 흐름을 무시하고 성경의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하거나 중요하게 여김으로써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물맷돌)
[인간이 어떻게 높으신 하나님을 세상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저 드넓은 하늘 전체가 성전이라고 해도 주께서 계시기에는 오히려 좁을 텐데, 제가 지은 이 성전으로 어떻게 주님을 모시겠습니까? 오직 주께서 이 성전에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고 이곳에 사시는 것을 기뻐하시길 빕니다.(왕상8:27,현대어) 한 사람이 잘못되면, 여러분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갈5:9,현대인)]
우리 아이가 ‘언어폭력’이라는 독극물을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5월 들어 두 번째로 맞이하는 주말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빕니다.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 중, 여섯 번째는 ‘상담’입니다. 병적인 상태는 아니나 마음이 계속 힘들면, 평가가 좋은 심리상담사를 찾아가 상담 받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마치 친한 친구에게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듯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심적 고민의 원인이나 치유법’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먹고 살아갑니다. 부모가 어떤 언어를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자녀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뜻하고 격려하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인격적으로 풍요롭습니다. 그리고 포용력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폭력적이고 신경질적인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는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여섯 살 된 딸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딸이 짜증을 잘 내고 말도 밉게 해서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뭐든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울고불고 화를 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가르치면 좋겠느냐?’고 저한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이가 짜증내면서 말할 때, ‘같이 화를 내지 말고 가만히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듣던 말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그 젊은 엄마를 다시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이가 그랬습니다. 딸이 화가 나서 아빠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바로 자신이 남편한테 하던 말을 그대로 하더라는 겁니다.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보고들은 그대로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는 내 자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물을 마시듯 부모의 언어를 매일 마시면서 자랍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언어폭력이라는 독극물을 마시면서 내적으로 망가져가고 있다면, 그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생각 없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그 누군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알게 모르게 언어폭력 속에서 상처 받으면서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살다가, 결국은 범죄까지 저지르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야만 했습니다.(출처; 어른공부, 양순자 / 30년간 사형수 상담가로 봉사, 저서로는 ‘인생 9단’과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가 있음)
그렇습니다. 저도 ‘언어폭력은 독극물과 같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언어폭력은, 칼에 찔린 상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영원히 치료가 불가능한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폭력으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사람은 세월이 흘러도 그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언어폭력을 행한 사람은 그런 사실을 아주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어떤 경우는 아주 심한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 자신이 ‘말을 거칠게 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면, ‘언어폭력은 독극물과 같다’는 글귀를 써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 놓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쪼록, 곱고 부드러운 말을 쓰도록 힘써야겠습니다.(물맷돌)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절망에 빠지지만, 격려의 말은 그를 다시 일으켜 준다.(잠12:25,쉬운성경) 남에게 행한 못된 짓이 도로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남에게 휘두른 폭력에 제 몸이 상하리라.(시7:16,현대어)]
그냥 걸었습니다. 설렁설렁!
샬롬! 어젯밤 좋은 꿈 꾸셨는지요? 오늘도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 중, 그 다섯 번째는 ‘약물 복용’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에는 수면제, 진정제, 항우울제 등이 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것은 약국에서 의사처방 없이 파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가끔 이용할 수도 있잖나 싶습니다(마음건강 길 대표 함영준).
그 흔한 물집 한번 잡히지 않고, 파스 한 장 붙이지 않고, 어떤 부상도 없이 순롓길을 완주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고 하니…, 역시 별것 없습니다. 오래 달리기의 기술을 오래 걷기에 적용했을 뿐입니다. 절대 잘하려고 욕심내지 않고,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걸었습니다. 설렁설렁!
돌이켜 보면, 애초에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았던 게 완주 할 수 있었던 이유 같기도 합니다. 걷는 게 너무 힘들어 욕할 기운조차 없다가도, 이따금 눈을 들어보면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완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날그날의 바람과 햇살과 풍경을 충분히 느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종 퍼붓는 세찬 비까지도~.
오래 매달리기, 오래달리기, 오래 걷기……. 쓰고 보니, 저는 별다른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 버티는 것들을 주로 잘하는 듯합니다. 이처럼 폼 나지 않는 특기라니, ‘어디 가서 굳이 이야기하지 말아야지…’싶으면서도, 어쩌면 인생을 사는 내내 유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확실히, 맞는 말입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참아야 했던 일, 사람 관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해왔는지 싶습니다. 무조건 참거나 버티는 것은 제 삶에 대한 유기나 다름없기에, 언젠가부터 저도 저에게 자주 묻습니다. ‘지금 혹시, 무리하고 있지는 않아?’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질문을 바꾸게 됩니다. ‘그런데, 버티는 시간 없이 삶의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타인의 어깨너머로 살짝 구경만 하고 온 것 말고,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라는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버텨 보고싶을 때가 있습니다. 끝의 끝까지 닿고서야 돌아 나왔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그것은, 길을 ‘돌아’ 나온 것이 아니라 ‘뚫고’ 나온 쪽에 가깝습니다. 그 느낌을 감각했을 때에만, 저는 미련 없이 이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간에!(출처; 좋은생각, 이세라 /한겨레출판)
우리나라 국가번호가 ‘82’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서 82라는 번호를 채택했는지, 다분히 의도성이 보이는 숫자입니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빨리빨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빨리빨리’라는 민족성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익도 많이 보고 손해도 많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조급성’ 때문에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범했습니다. 서두르다가 한두 번 아픈 경험을 했으면 그 다음에는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나 저의 조급성은 변함이 없어서 번번이 후회되는 일을 거듭하곤 합니다. 이제는 은퇴를 했는데도, ‘하루’라는 시간이 짧다는 느낌이 드니, 아무래도 병(病)인 듯합니다.(물맷돌)
[이 몸은 힘이 없습니다. 가진 것 없어서 서러움 당합니다. 하나님, 어서 오소서. 주님은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를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여, 서두르소서!(시70:5,현대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으며,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미련한 사람은 어리석게 일을 처리하여 망쳐놓고는 여호와를 원망한다.(잠19:2-3,현대어) 주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의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시간을 주고 계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벧후3:15상, 현대어)]
인생은 성공에 취해버렸을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빕니다. ‘우울할 때 마음 다스리는 법 7가지’ 중, 그 네 번째는 ‘명상(묵상기도)’입니다. 마음을 지금 여기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미움 분노 불안 회한 등은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평정 안정감 기쁨으로 메워갑니다. 그러나 명상(묵상기도)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과 훈련이 좀 필요합니다. 신앙인의 묵상기도는 성경 한 구절을 거듭 암송함으로써 시작하면 좋습니다.
‘줄리어스 카이사르’는 52세에 자신의 개선식을 열었습니다. 최고로 영예로운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군단병들은 짓궂었습니다. 그들은 백마 네 필이 끄는 개선장군의 마차 뒤에서, 바람둥이였던 카이사르를 대놓고 놀려대며 외쳤습니다. “로마시민이여, 대머리 난봉꾼이 납신다! 부인을 숨기시오!” 카이사르가 화를 내도, 군단병들의 놀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을 깎아내리는 것도 개선식의 일부였던 까닭입니다. 왜, 로마인은 영광스러운 행사에 초를 치는 듯한 퍼포먼스를 벌였을까요?
인생은 성공에 취해버렸을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자신은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으며, 모든 성과를 자기가 뛰어나서 거두었다’고 믿는 순간, 주변은 질투와 시기로 가득 차버립니다. 남의 잘남은 자신의 못남을 일깨우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나가는 자가 무너지길 바라는 마음’탓입니다. 그이를 둘러싼 뒷담화 또한 무섭게 피어납니다. 그래서 겸손과 겸양은 어느 문화에서나 강조합니다. 로마의 개선식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신(神)과 사람들의 질투를 사지 않도록’ 주인공을 무시하고 낮추는 연출을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과시와 자기 자랑’은 어느덧 국민 스포츠(?)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있어 보이려고, 멋진 장소와 명품, 고급스러운 음식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요? 한 세대 전만 해도, 사회분위기는 지금과 아주 달랐습니다. ‘재벌회장이 다 떨어진 구두를 고쳐 신고, 그의 부인은 달력종이를 잘라 메모지로 쓴다.’는 식의 검소함을 강조하는 미담이 적지 않았습니다. ‘부유함은 감추고, 근면과 검약함을 강조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퍼져있었던 셈입니다. 이는 경제성장기에 불거지기 시작하던 빈부격차 갈등을 줄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표정에는 분노와 무기력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요? 욕구는 채울 수 있어도, 비교 탓에 생기는 탐욕은 채울 길이 없습니다. ‘겸손과 겸양의 미덕(美德)’을 자랑하던 문화를, 이제 다시금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출처; 일사일언, 안광복 / 중동고 철학교사)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있는 척 가진 척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그런 행동을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은 부지런히 드러내고 싶어 하면서도 상대방의 그런 행동은 못마땅해 하는, 이중적인 사고구조가 늘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렵게 살다가 이제 조금 살만해지니까, 기죽어 움츠렸던 마음을 맘껏 활짝 펼치고 싶은 욕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결국은 자기만족입니다. 누가 좋게 보아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 만족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잖나 싶습니다. 아무튼,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던 일은 이제 하나도 남은 것 없습니다. 우리가 죄지은 까닭이지요. 이런 불행이 밀어닥친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지요! 사람마다 마음 아파하지 않는 이 없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애5:16,현대어)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덕분입니다.(중략) 그러므로 성경에도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만을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고전1:29-30상,31,현대어)]
3가지 ‘H’를 움직여라
아시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된 국내 한 기업의 근무 환경입니다.
- 4일 근무하면 4일 휴무
- 전 직원 평생 고용 보장
- 육아 휴직률 90%
- 일하면서 대학생과 비슷한 수준의 교육시간 보장
- 은퇴 이후를 책임질 교육 기회 제공
- 사원뿐 아니라 가족들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상담 프로그램
일반적인 회사보다 훨씬 여유로운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더 높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직원들의 3H’를 움직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직원들의 손(Hands)을 움직이게 했을 때는 능력의 20%가 발휘되지만 머리(Head)를 움직이게 하면 50%의 능력이 발휘되고 마음(Heart)을 움직이게 하면 100%에 가까운 능력이 발휘됩니다.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좋은 환경과 복지가 손해가 아닌 몇 배의 이득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나의 헌신은 손과 발과 마음이 모두 드려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니기에 항상 나의 최선의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억지로 의무감으로 행하는 헌신이 아니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는 제자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손과 생각과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찬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다시 초심으로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38세에 은퇴를 했습니다. 실력 못지않게 인기도 뛰어난 스타였지만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많이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티나는 6년 뒤에 돌연 다시 코트로 돌아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살벌한 프로의 세계에서 6년의 공백을 깨고, 그것도 40대 중반의 나이에 왜 돌아왔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성적이나 거두다 곧 코트를 떠날 것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었지만 그녀는 이런 예상을 비웃듯이 3년 뒤인 47세에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우승으로 끝내고 싶어서 다시 돌아왔다는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다시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초심의 자세만 잃지 않는다면 인생의 어느 때든 반드시 기회는 옵니다.”
많은 나이도, 떨어진 기량도, 막을 수 없었던 부활의 비결은 바로 ‘초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릴 때, 신앙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뜨거운 열정을 다시 품게 하소서.
가장 뜨거웠던 때의 신앙생활을 떠올리며 열정을 회복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모든 가족의 복음화
『귀국 후 한국선교의 첫걸음은 가정복음화였다. 나는 어머니와 모든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오래지 않아 기회가 왔다. 큰형이 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했다. 음식과 술이 차려졌다. 절을 해야 하는 순서였다.
“저는 절을 할 수 없습니다.”
당황한 형이 그 이유를 물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버지 산소 앞에서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분위기는 다소 서먹해졌지만 처음 듣는 복음에 호기심을 갖는 가족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밤에 셋째 형이 나를 찾아왔다. 직장을 잃고 방황하던 형의 상처를 주님께서 부드럽게 어루만지셨다. 한국선교의 첫 열매가 맺혔다.
얼마 후 아버지 제삿날에 내가 큰형에게 부탁했다.
“이번 제사는 기독교식으로 한번 인도해 보겠습니다. 예전 방식과 비교해 좋은 편을 택하십시오.”
형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제사 대신 추도예배가 드려졌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가족을 위한 기도, 아버지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추모사가 이어졌다. 그날 이후, 큰 형은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믿어온 상징물인 터줏자리 3개를 모두 불살랐다. 그리고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 김장환 목사 3E인생에서 발췌
사람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먼저 간절히 기도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합시다. 아멘!!
주님! 사랑하는 형제와 가족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들의 전도를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위대함을 만드는 반복
한 음악가의 하루 일과표입니다.
오전 06:00 - 직접 준비한 커피를 마심
오전 06:30 - 오후 02:30: 작곡
오후 02:30 - 오후 03:30: 점심 식사
오후 03:30 - 오후 05:30: 악보와 연필을 챙겨서 산책
오후 05:30 - 오후 10:00: 간단한 식사와 독서, 휴식
오후 10:00 - 수면
무언가 특이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규칙적인 생활의 이 음악가는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을까요?
위 일과는 모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악성 베토벤의 일과입니다.
베토벤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언제나 위의 일과에 따라 하루를 살았습니다.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로 만들고 장애도 극복하게 만든 것은 하루 8시간의 꾸준한 작곡과 충분한 휴식이었습니다.
좋은 습관은 위대한 성과를 이룹니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 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쌓고 있습니까?
매일 반복해야 할 좋은 믿음의 습관을 만드십시오. 아멘!!
주님! 가장 귀한 시간도 주님을 위해 드리게 하소서.
경건을 위한 시간과 재충전을 위한 시간을 반드시 지킵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랑이 만든 빨대
한 병원에서 아들을 간병하는 주부가 있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다가 우유를 마시기 위해 힘들게 몸을 일으키는 아들을 보며 주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빨대가 꼽혀 있어도 몸을 일으켜야 하다니 너무 불편해. 누워서도 먹을 수 있는 빨대를 만들 수는 없을까?’
주부는 이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아들이 퇴원한 후에도 직접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발명한 것이 지금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주름이 있어 접히는 빨대’입니다.
빨대는 5,000여 년 전 이집트에서 개발되어 지푸라기에서 플라스틱으로 재질만 변했을 뿐 기능과 구조는 그대로였습니다.
5,0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빨대를 새롭게 바꾼 것은 아들의 불편함을 그냥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간절한 사랑에는 지난 5,000년 간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이루어내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아들의 작은 불편함도 그냥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사랑처럼 죄로 죽어가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죄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떠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주님 안에 거하게 하소서.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립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1m의 법칙
미국 서부시대에 우연히 집 근처에서 금맥을 발견한 더비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더비는 광부인 숙부의 힘을 빌려 열심히 금맥을 따라 착암기로 채굴을 했습니다.
금맥의 상태가 좋았기에 주저 없이 대출을 받아 필요한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의 노력 끝에도 금광은 발견되지 않았고 금맥조차 사라졌습니다. 이미 큰 빚을 지고 있던 더비와 숙부는 채굴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더비가 채굴하던 광산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혹시?’하는 마음에서 광산을 저렴하게 구입한 고물상이 1m를 더 파자 엄청난 금광이 발견됐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더비는 크게 후회했지만 멈춰 서지 않았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더비는 1m만 더 파면 금광이 있다는 생각으로 어떤 고객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았고 1년에 백만 달러를 버는 보험업계의 전설이 됐습니다.
이 교훈은 ‘1m의 철학’으로 지금도 경영학계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번의 기도를 통해, 한 번의 전도를 통해, 한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구원에 관한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시도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주님! 영혼에 관한 일들의 중요성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안 된다 싶을 때도 한 번 더 시도하고 한 번 더 기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기도로 뭉쳐라
미국 프로농구팀인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와 새크라멘토 킹스가 경기 중이었습니다. 치열한 접전 끝에 맞은 3쿼터 종반, 골든 스테이트의 맥카우 선수가 공을 잡으려고 점프하다가 상대 선수와 부딪혀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의 큰 부상을 당한 맥카우가 들것에 실려 나가자 갑자기 양팀 선수들이 코트에 모여 서로 어깨를 감싸 안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경기가 재개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상을 당한 맥카우를 위해 양 팀 선수들이 기도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비록 라이벌로 만났지만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망한 선수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치열한 경기 중에 함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큰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맥카우는 선수들이 자신을 위해 경기 중 기도를 드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개인 SNS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나를 위해 기도드리는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누구보다 큰 축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같은 신앙으로 뭉친 참된 성도라면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는 기도로 하나 되어 뭉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자세로 서로를 인정하며 한 뜻으로 기도하십시오. 아멘!!
주님! 모든 악한 마음들을 기도와 말씀으로 내려놓게 하소서.
교제하며 함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임을 만듭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죽음 앞에 섰을 때
저명한 학자인 도널드 하우스 박사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업가의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박사는 장례식장에서 사업가가 박사에게 전달을 부탁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1년 전에 내가 적은 글입니다. ‘무덤가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읽어주십시오.”
박사는 장례식 가운데 양해를 구하고 고인의 바람대로 글을 읽어나갔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나의 장례식 가운데 나는 다시 한 번 복음을 증거하기 원합니다. 내 좋은 친구 맥, 자네는 지금 나의 관을 보고 있겠지. 내가 그동안 전하던 복음을 자네는 한사코 거부했네. 정말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자신이 있는가? 사랑하는 조지여,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겠는가? 사망의 죄에서 나를 구원하신 그분을 왜 믿지 않는가?”
편지에는 그간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을 향한 절절한 전도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사람은 복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로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반드시 구원의 주님을 믿어야 하며 또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삶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아멘!!
주님! 삶의 마지막까지 주님을 위해 살다 천국가게 하소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쥐와 독수리
은행원인 해럴드는 안정된 직장을 가졌지만 자신의 꿈인 심리치료사가 꼭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꿈을 위해 당장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먼저 몇 년간 돈을 저축하며 퇴직을 한 뒤에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밟아야 할 교육과정과 해야 할 일들을 철저히 숙고했습니다.
아울러 회사 일을 할 때와 출퇴근 시간을 통해 사람들의 모습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며 최신 논문과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전문 컨설턴트들은 해럴드와 같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독수리와 쥐의 시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2km 밖에 있는 물체도 볼 수 있는 독수리처럼 먼 미래의 꿈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눈앞 밖에 못 보는 쥐처럼 눈앞의 일들을 위한 계획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을 독수리의 시야로 바라보십시오.
또 주의 시야로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세운 분명한 목표가 보입니까?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선 독수리의 시야와 쥐의 시야를 같은 방향으로 맞춰야 합니다.
내 인생의 비전과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주님의 뜻을 향해 있습니까?
먼 미래뿐 아니라 주어진 오늘 하루도 주님을 위해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삶의 목적이 오로지 주님이 되게 하소서.
하루의 목표와 인생의 목표를 일치시키며 살아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여인들의 기도
예수님의 복음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생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연구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서 성별에 따른 종교성 비교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질문 세 가지의 응답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종교는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 남성 62%, 여성 72%
2.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 남성 72%, 여성 78%
3. 하루에 한 번 이상 기도한다. - 남성 60%, 여성 72%
전반적인 수치가 여성들이 훨씬 높았지만 그 중에서도 기도에 관해서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기도’는 유명 인사들의 수상 소감 중에 자주 등장하지만 ‘아버지의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듣기에도 살짝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기도는 믿는 모든 성도들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아무리 바쁘고 분주해도 기도의 시간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과 같은 기도를 향한 열망으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아멘!!
주님!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소서.
기도에 관해서는 어떤 핑계도 대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등불을 밝히는 사람들
옛날 어떤 의사가 한밤중에 13km나 떨어진 먼 시골로 죽어가는 환자를 왕진하러 가야만 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데다가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그 집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는 길목의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집에다 전화를 걸어 창문에 등불을 켜 둘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웃집에 전화를 해서 역시 창문에 등불을 켜 두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집에서 두 번째 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길에 차례로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환자의 집으로 가는 길목의 모든 집들이 창문에 등불을 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쏟아지는 폭설과 어둠을 뚫고 환자의 집까지 찾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므로 우리는 등이 되어 그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검은 것이 아름답다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는 어려서부터 자기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심한 열등감을 가졌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검은 얼굴을 비관했습니다.
"왜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검은 사람으로 태어났는가?" 그는 비누로 하루 종일 검은 얼굴을 닦아 보기도 하고, 얼굴을 희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집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자신이 하나님의 값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검은 피부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를 괴롭혔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듭난 후 자신의 아팠던 과거의 삶으로부터의 새로운 변화를 책으로 썼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검은 것이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성령의 전
이냐시오라는 사람은 길을 걸어 다닐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무엇을 하더라도 마치 살얼음판을 걸어가듯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그러한 모습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이냐시오에게 물었습니다.
"이냐시오님, 답답하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냐시오는 웃음을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몸일세. 내 몸은 곧 성전이라는 말이네. 그러니 어떻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깨끗하게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B. Hevener는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몸은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전입니다(고전3:16). 그러므로 자기 몸을 건강하게 하고, 삶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싹이 난 버드나무
<술피시우스와 세배루스의 대화>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어떤 수도원에 한 남자가 찾아와 수도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복종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명령이라도 기꺼이 복중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말라버린 버드나무 막대기 하나를 땅에 꽃고는 싹이 날 때까지 물을 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는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지만 매일 2마일이나 떨어진 나일강까지 가서 물을 길어다가 마른 나뭇가지에 물을 주었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 3년째가 되어도 싹이 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쉬지 않고 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마른 버드나무 가지에서 싹이 났습니다.
월리엄 템플 경은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에서 유일한 도리는 복종이다"고 했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앵무새의 변화
남아공에 있는 키프로스 지역에는 125년 동안 살던 앵무새가 있었다고 합니다. 1898년부터 오랜 시간을 살았던 이 앵무새는 지역의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 인사 였습니다.
그런데 이 앵무새가 1918년도에 어떤 사람에게 팔려 카리브 호텔로 가서 살게 되었습 니다. 몇년이 지나고 앵무새는 술주정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앵무새가 술을 좋아했던 주인의 모습을 보고 그 말투를 똑같이 흉내를 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뒤 주인이 죽자 앵무새는 신앙이 좋은 한 사람에게 입양이 되었 습니다. 그리고 곧 그 앵무새의 별명은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주인이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앵무새도 똑같이 따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아는 것을 믿고, 주와 연합하여 따르고, 그분의 모든 것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삶QT>2022.11월호에서
프로방스
프랑스의 한 황무지에 부피에라는 양치기가 한 무리의 양을 돌보며 살고 있었습니다. 워낙 척박한 황무지라 양치기 외에는 아무도 그곳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양치기도 그런 곳에서 고작 3,40 마리의 양이나 지켜야 하는 자신의 삶이 비참하다 여겼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양치기가 황무지를 가꿔보면 어떨까라는 생각하고, 그날부터 하루에 100개씩 도토리나무를 심었습니다. 나중에는 밤나무, 단풍나무를 심으며 계속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그곳은 황무지가 아니라 아름다운 숲이 되었습니다.
전에 이곳을 방문했었던 한 여행자는 이런 변화를 보고 놀라 양치기에게 이곳이 프로방스가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네, 여기가 프로방스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황무지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황무지였던 곳이 환상의 숲으로 살기 좋은 남프랑스의 프로방스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황무지 같은 인생을 아름다운 숲과 같이 변화 시켜 주십니다.
<풍성한 삶QT>2022.10월호에서
나이팅게일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이 일어나자 싸움터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습니다. 부상병들은 그냥 버려져서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갔고, 전염병에 감염되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적십자사 창설의 초석이 된 나이팅게일이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이 처참한 전쟁터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를 종횡무진하며 부상병들을 간호했습니다. 따뜻한 손길과 동정어린 미소, 헌신적인 돌봄은 부상병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전쟁터의 암울한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부상병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그림자에 입 맞추었고, 평안과 기쁨중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오기 전에는 분노와 저주의 소리로 가득 찼으나, 이제는 교회와 같이 거룩함으로 충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순간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0월호에서
윌리엄 케리의 비문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케리는 열네 살 때부터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하다 열여덟 살에 회심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서재에서 성경 주석서를 발견하고, 헬라어와 라틴어를 독학으로 습득한 후 몰튼에서 침례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케리가 로팅엄에서 이사야 54장 2,3절을 본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고 설교했는데, 설교를 들은 12명의 침례교 목회자들이 감동을 받아 '침례교 선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캐리는 선교회의 후원을 받아 인도 선교사로서 놀라운 사역을 이루었습니다.
이 캐리가 임종할 때 한 사람이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디를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하고 묻자 그는 시편 51편 1절 말씀을 보여주었고, 이렇게 기 했습니다.
"월리암 캐리, 1761년생 죄많고 약하고 능력 없는 벌레인 나는 당신의 긍홀 하신 거룩한 손에 기대어 잠드나이다."
<풍성한 삶QT>2022.10월호에서
사랑을 얻는 방법
어떤 나라의 왕자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본 시골 처녀에게 첫눈에 반했습니다. 왕궁에 돌아온 후에도 그 시골 처녀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고, 몇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는 왕자의 권위로 그녀를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다지 좋은 방법 같지는 않아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녀를 왕궁으로 초대하여 왕자가 가진 모든 부귀영화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부귀영화 때문에 구혼에 응할 수 있어 포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왕자가 평민의 신분으로 돌아가 시골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같이 거하신 것은 사랑하시기 때문 이셨고, 또한 그의 성도들을 어린양의 신부로 맞이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풍성한 삶QT>2022.10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