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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루 법문 요약> 우학스님의 五 淨 行 論(五佛子行論) 1. 受而不留(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2. 生而不持(생이부지) -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3. 開而不偏(개이불편) - 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 4. 統而不拘(통이불구) - 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 5. 樂而不着(락이불착) -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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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1면 하단에 ...
<초하루 법문 요약> 우학스님의 五 淨 行 論(五佛子行論)
있습니까?
“네”
이 정행(淨行) 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정행
따라해 보시겠습니다.
정행(정행). 정행(정행).
이 정행이라고 하는 말은 글자 그대로 깨끗한 행위, 깨끗한 행위는 산뜻한 행위다.
산뜻한 행위는 멋있는 행위라. 멋있는 행위는 진리적 행위라 해서 이 정행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말하는 정행과 우학스님이 말하는 정행을 잘 한번 같이
비교해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것을 오불자행론(五佛子行論)이라 해 놓았습니다.
우학스님의 오불자五佛子, 다섯 가지 불자행에 대한 론論이다 이거지요.
그래서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까지 있는데 1번과 2번은 아까 말씀
드렸던 대로 이미 강의가 되었어요.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受而不留(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受而不留 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生而不持(생이부지) -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生而不持 생이부지 -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혹시 안면이 있습니까?
“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受而不留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受而不留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그러면 여기서 복습을 좀 해보면 무엇을 받아들이느냐? 무엇을...
오정행론 1.【受而不留(수이불류) -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첫째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돼요.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예문은 제가 이미 법문을 통해서 말씀을 드렸고 그걸
상세히 보실 분들은 다음까페 불교인드라망에 들어가서 저번 달, 저번 달 초하루
법문을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부족함을 받아들이라 했어요.
부족함을 받아들여야 되고...
셋째는 사람을 받아들이라 했습니다.
필연 속에 인연들을 받아 들여라.
네 번째는 자기 잘못함을 스스로 받아 들여라.
받아들이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받아들이고 대신에 그 뒤로 절대 머물지 마라.
일단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거기에 머물지 말고 튼튼한 부처님 백을 믿고
이가 깨어지도록 한 번 붙어보자. 그런 얘기를 했어요.
기도하면서...그렇잖아요.
우리가 병이 들었으면 일단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돼요.
그런 뒤에는 거기에 머물면 안 되는 거지요.
바로 그러한 얘기들입니다. 受而不留(수이불류)
아주 중요합니다.
물론 이 용어들은 제가 다 지어 낸 말이니까 “우학스님 특허품”이다. 이게
아무나 쓰면 안돼요. 쓰려면 나한테 허락 맡고 써야 돼요.^^
디시 읽어 보겠습니다.
受而不留수이불류 (受而不留수이불류)
받아들이되 (받아들이되)머물지 않는다.(머물지 않는다.)
生而不持생이부지 (生而不持생이부지)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이 “생이부지”라 했어요. “불지”라 해도 되는데 뒤에 지읒 때문에 한글법칙
때문에 그래요.
오정행론 2. 【生而不持(생이부지)-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生而不持생이부지 (生而不持생이부지)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그때도 자세한 설명을 드렸는데...
첫째는 사람을 만들되..아이를 만들되 가지지 마라. 그랬어요.
두 번째는 도량을 세우되 가지지 마라. 그랬습니다.
도량에 텃새 지우지 마라 그 뜻이고..
세 번째는 법회나 단체를 만들되 가지지 마라.
법회나 단체를 만들되 더러 보면 단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것을 전부 자기 소유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네 번째는 아이디어를 창조하되 가지지 마라. 그랬습니다.
아이디어...이걸 생각을 잘 해보셔야 됩니다.
다섯 번째는 재산을 만들되, 재산을 창조하되 혼자 가지면 안된다.
그래서 우리 한국불교대학 이러한 모든 재산이 조계종에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걸 개인으로 가지게 되면 나중에 분쟁이 생기고 제가 죽고 나면 ...
“스님, 언제 죽습니까?
“나는 120살까지 살 겁니다. ㅎㅎ”^^
언젠가는 죽겠지요.
그 분쟁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공공재산으로 묶어 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기도하는 마음을 내되 결과를 탐닉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生而不持생이부지입니다.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여섯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어요.
이것도 다음까페.. 까페이름이 뭐라 했지요.
<다음까페 불교인드라망.>
적어도 엘리트 불자라면 이 까페 정도는 들어갈 수 있어야 됩니다.
다음까페 불교인드라망에 접속을 좀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를 시간이 나는 데로 가겠습니다.
開而不偏(개이불편)이라 했습니다.
오정행론 3, 【開而不偏(개이불편)-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
읽어 보겠습니다.
開而不偏개이불편 (開而不偏개이불편)
열어놓되(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치우치지 않는다.)
이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이 아주 중요해요.
우리가 모든 것을 사방 다 열어 놓아야 돼요.
닫아 놓고 있으면 망합니다. 안에 썩습니다. 일단 열어 놓아야 돼요.
열어 놓되 치우치면 안된다.
즉 중정, 가운데 中자, 바를 正자. 중정을 잃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중정을 잃지 않는다는 말 속에는 아주 필요할 때는 육친의 정에도 끄달리면
안된다. 그런 말까지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낙양에 가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중국 낙양
옛날 중국 낙양에 “백마사”라고 하는 중국의 최초의 절이 거기에 섰을 겁니다.
중국 낙양에 “두자춘”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두자춘
대구사람으로 구자춘씨라는 사람이 있지요. 그 사람 죽었습니까?
돌아가셨지요. “네”
그 분이 부인이 좋은 일도 많이 했고 그 부인이 만든 장학회가 있었는데
그 장학회가 동국대학교 다니는 스님들 1등하는 사람에게 주는 그런 장학금이
있었습니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장학금을 제가 좀 많이 탔지요.^^
그래서 제가 이 구자춘씨를 늘 기억을 해요.
제가 다른 책을 보다 보니까 “두자춘”이라는 사람이 있어.
자춘이라는 이름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두자춘은 너무 가난하고 또 인연복도 없어서 부모, 형제도 없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얻어먹는 거지였어요.
한 번은 낙양의 변두리, 옛날에는 낙양이 수도였거든요.
낙양의 변두리 아주 허물어진 폐가 비슷한데 그 담벼락에 붙어 서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서산의 해를 쬐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겨울에 춥고 하면 양달을 찾아서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신세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 길 위에 서서 망연히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고 멍청하게 서있으면서 오늘은
또 어디를 가서 자나 하고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막 떨어질 때니까 그림자가 길게 쫙 섰을 거 아니요. 자기 그림자가...
그림자도 보면서 태양도 보면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서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는
수염이 하얗고 머리가 하얀 노인네가 앞에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을 보더니...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고?”
“저는 지금 아무 할 일 없이 제 신세를 한탄하고 있습니다.
저는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고 오늘 저 해가 떨어져도 어디 들어가서 잘 때도
없습니다. 제 신세가 참으로 한탄스럽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이 노인네가 “ 아, 그래 참으로 안됐구나, 그러면 네 그림자를 한번 보라.
저 길게 된 그림자의 배꼽 되는 부분을 한 번 파 보라.“
그러고는 노인네가 가버렸어요.
노인이 사라지고 이 사람은 별로 할 일도 없고 하니까 노인네가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저런 얘기를 하는 걸까 하면서 그냥 심심풀이로 그림자 배꼽부분에
해당하는 그 부분을 파 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만한 금덩어리가 나온 거요.
집에 돌아가셔서 저녁에 해질 때쯤 되어 가지고 그림자 배꼽부분을 파 보세요.
뭐 나올련지..ㅎㅎ^^
그런데 금덩어리가 나왔어요.
금덩어리가 얼마나 컸든지 아주 큰집 짓고 요즘 말하면 백 평쯤 되는 아파트 하나
사고 온갖 사람을 불러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흥청망청 쓰다 보면 3년이면 동나잖아요.
3년쯤 지나자 또 거지가 되고 말았어요. 무일푼이 되고 말았어.
그래서 또 거지차림으로 이 고을 저 고을 찾아다니다가 또 어느 날 3년 전에
그 담벼락에 서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노인네가 또 나타났어요.
“왜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
“사실은 제가 노인께서 3년 전에 저에게 그런 행운을 주셨는데 3년간 쓰다 보니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이랬어요.
또 길게 늘어선 그림자를 보고는 “이 그림자 보이지. 전에는 어느 쪽 부분을
팠더냐?“ 어느 쪽 부분을 팠다 했어요. ”배꼽“
배꼽부분을 팠다 했어요.
오늘은 배꼽이 아니고 저 위에 그림자 가슴부분을 파 보라고 했어요.
그러고 노인네가 가버렸어요.
노인네가 가고 난 뒤에는 필시 거기에 금덩어리가 나올 거라 생각했어요.
그걸 파 봤어요. 뭐가 나왔겠습니까?
진짜 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그 금덩어리를 가지고 3년을 잘 살았습니다.
술도 마시고 온갖 유흥을 즐기면서 3년을 잘 살았습니다.
3년을 잘 살고 난 뒤에 보니 또 거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떠돌아다니다가 또 그 담벼락에 갔어요. 갈 때도 없고 폐가 앞에 있다가
밤이 되면 마루에 들어가서 자고 나오고 그랬던것 같아요.
거기서 허름한 옷을 입고 서 있었는데 노인네가 또 나타났어요.
노인네가 “또 가르쳐 줄까?” 그래요.
그런 사람 우리 앞에 좀 나타나면 안될까?
그런데 이 사람이 철이 들었어요.
이제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돈을 써보니까 참으로 허무합니다.
돈이 있을 때는 별사람이 다 붙어서 찾아왔는데 돈 떨어지고 나니까 나한테
국밥 한 그릇 사주는 사람이 없더라는 겁니다.
이제 돈 같은 것 안할렵니다.
내가 보니까 노인께서는 공부도 많이 하신 것 같고 선견지명이 계신 것 같은데
제가 할아버지를 따라 가서 공부를 좀 하면 어떻겠습니까?
공부를 좀 시켜주십시오. 이랬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철이 든거지요. 그러니까 노인네가...
“정녕 공부를 하고 싶으냐?“
“예,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럼, 나를 따라 가자. 그래서 데리고 간 곳이 아미산이라는 산이었어요.
혹시 아미산에 가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어디 가 본데가 없네요. 낙양에도 안 가보셨고 아미산에도 안 가보셨고..
이 아미산은 중국의 아주 유명한 산인데 보현보살이 거주한다는 산입니다.
문수보살이 거주한다는 산이 뭐지요.
“오대산”이잖아. 오대산
우리나라에도 오대산이 있지만 중국의 오대산이 유명하지요.
그러면 관세음보살님 진신이 거주한다는 산은 뭐지요?
“보타락가산” 보타산이잖아요.
어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
여하튼 이 보현보살이 좋아하신다는 아미산으로 데리고 갔어요.
아미산 꼭대기로 가서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여기 좀 앉아 있어라.
내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 갔다 올테니까 내가 갔다 올 때까지 여기 앉아 있되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절대 말을 하면 안된다고 했어요.“ 말
기도할 때 말하면 안되잖아요. 4층 법당에 제가 붓글씨 쓴다고 있어보면
말을 너무 많이 해요. 기도를 할 때는 입 다물고 하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이상한 주문을 하나 가르쳐 주고 이것을 외우고 가만히 있어라 했습니다.
절대 말을 하면 안된다. 여기는 산꼭대기이기 때문에 상황이 많이 닥칠거라.
절대 그 상황에 놀아나면 안된다. 고 지시를 하고 그 노인네는 자기 볼일을
보러 가버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쯤 있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군인이 몇 명이 나타났어요.
군인 중에서도 장군처럼 보이는 큰 군인이 나타나서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채 큰 칼을 차고는 나타나서 “네 이놈아 어디서 네가 여기 앉아 있느냐?
이곳은 내 곳인데 어디서 내 땅을 밟고 있느냐? “ 하고 고함을 질러대요.
군인이 그렇게 하니까 얼마나 겁이 났든지 눈을 찔끔 감고 스승이 가르쳐 준
우리로 말하면 관세음보살 같은 거겠지요.
우리 불자라면 당연히 관세음보살을 불러야 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서 눈을 감고 소리 지르든지 말든지 스승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열심히 했어요.
그랬더니 좀 조용해진 것 같아요.
또 조금 있으니까 뭐가 으르릉 하고 나타나요.
호랑이 두, 세 마리가 내려와서 호랑이가 앞발로 잡아먹을 듯이 할퀴듯이
그러고 있는 거요. 이러다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겠다. 하고 뒤를 돌아다
보니 어디서 또 왔는지 이런 구렁이가 구렁이는 기어 오는 거잖아요.^^
구렁이가 기어 왔는지 머리는 독사머리에 몸통은 구렁이예요.
그것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네 이놈” 하고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상황을 한 번 생각해 봐요.
앞에는 호랑이가 덤벼들고 뒤에는 독사, 구렁이가 덤벼들고 하마터면 윽 하고
소리가 나올 뻔 했어.
그런데도 그것을 참고 스승이 시키는 대로 말을 안 한 겁니다.
꽉 참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고함을 냅다 지르면서
말은 하지마라고 했지만 주문은 외워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억지로 참고 있는데 조용해졌어요.
눈을 살며시 떠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졌어요.
이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나타났어요. 염라대왕이 나타났어요. 염라대왕이
염라대왕이 나타나서는 그 무서운 눈을 부라리면서 “네 이놈, 네가 누구냐?”
이랬어요. 말을 하면 안되잖아요.
염라대왕인데 말을 안하면 안되는데 그런데 염라대왕이 말을 자꾸 시키는 겁니다.
“네 이놈, 누구냐? 여기 뭐 하러 왔느냐?”
“네 이놈, 누구냐? 여기 뭐 하러 왔느냐?”
계속 다그치는 겁니다.
염라대왕한테 잘못 보이면 큰일인데 그렇지만 지금은 스승이 더 중요하지요.
스승이 절대 말을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겁니다.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은 거지요.
그러니까 염라대왕이 나졸을 자기가 부리는 신하를 불렀어요.
나졸을 부르더니 “아무데 가서 아무 것을 좀 데리고 오너라”그래요.
잠시 후에 그 나졸이 무엇을 끌고 왔는데 그것이 말라빠진 말 한필이었어요.
말라빠진 말 한필을 끌고 와서는 그 말을 마구잡이로 막무가내로 가죽, 작대기
같은 것으로 말을 사정없이 막 치는 거요.
말이 가죽이 터지고 말 그대로 유혈이 낭자한 거요.
한 번 생각해 봐요.
우리가 동물들도 사람이 다 그 마음가운데 비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너무 비참하게
죽어가는 동물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이 말이 얻어터지면서 고함을 질러대면서 피를 흘리면서 다리가 뿌러지고 하는
것을 보니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 사람은
아까 이름이 뭐라 했지요.
“두자춘”
두자춘이라 했지요.
이 두자춘이 이해가 안돼요.
그런데도 사정없이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나졸들이 말을 치기 시작해요.
거의 죽기 직전이야. 말이 신음을 하면서 쓰러지고 그래요.
그때 뜻밖에도 아주 다 죽어가는 말이 말을 해요.
“자춘아, 자춘아 네가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절대로
말을 하지 마라. 이 어미는 죽어도 좋다.“이랬어
이미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 목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는 분명히 생전의 자기 어머니 목소리였어요.
그 상황을 생각해 봐요.
말라빠진 얻어터지고 있는 그 말이 자기 어머니예요.
자식 된 입장에서 그 어머니를 그렇게 만났을때 말로는 어떻게 형용할 수
없잖아요.
“어머니”하고 불러 버렸어.
그래서 두자춘의 공부는 끝이 나고 말았어요.
노인네가 나타났어요.
“정에 치우치면 공부 못한다.” 하고 노인네가 사라져버렸어.
여기서 지금 치우친다. 그랬잖아요. 치우친다.
이 치우치면 안돼요.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開而不偏(개이불편) 開而不偏(개이불편)
스님들이 가족을 떠나서 공부하는 것도 인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인정에
끄달려서 공부를 망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염려해서 출가도 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 開而不偏개이불편이라는 말이 간단한 것 같아도 아주 중요합니다.
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열어놓되(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치우치지 않는다.)
오늘처럼 기도한답시고 여기 나오다 보면 가족들 때문에 방해가 되고 기도가
안되는 수가 많지요.
그게 다 치우침, 육친의 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開而不偏개이불편, 개이불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는 귀를 열어놓되 편견 갖지 않는다. 고 말해요.
開而不偏개이불편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開而不偏개이불편 첫 번째
첫 번째는 귀를 열어 놓되 편견 갖지 않는다.
읽어보겠습니다.
開而不偏개이불편 (開而不偏개이불편)
이거 누가 지은 말이라 했지요?
“우학스님”
네, 우학스님이 지은 말입니다.
보살은 귀를 열어 두어야 돼요. 보살은 늘 귀를 열어 두어야 됩니다.
중생의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은 보살이 아닙니다.
중생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소승입니다.
보살의 귀는 언제나 열려져 있어야 됩니다.
부처님 32상 80종호에도 보면 부처님 귀가 크게 만들어진 이유가 우리 부처님
께서는 뭇 중생의 소리를 다 들으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이 있으면 다 절에 와서 부처님한테 하소연을 하잖아요.
부처님 귀는 크니까.
요즘은 세월이 이래서 그런지 남자들이 crazy 정신이 좀 어떻게 된 사람이 많아요.
우리 법당에도 그런 사람 요즘 자주 나타나더라구요.
어제 그저께는 1층에 종무소 저녁시간에 일이 있어서 확인을 하고 마당에 나갔더니
대원력 관세음보살 앞에 어떤 남자가 부처님 앞에 주절주절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 봤지요?
더러 보셨나 보다. 막 얘기를 해요.
그래서 내가 도감거사에게“저사람 왜 그러느냐?” 했더니
“스님, 조금 갔습니다.” 그래^^ 좀 맛이 갔다 이거요.
우리 부처님은 그런 사람의 소리도 다 듣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귀가 크지.
우리 대보살들은 중생의 소리를 다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소리 듣는 것을 별로 안좋아 해요.
나는 스스로 생각해봐도 저는 어쩔 수 없이 소승수행자입니다.
난 남 얘기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여하튼 저는 소승수행자라도 우리 신도님들은 대승보살이 되어야 돼요.
귀를 열어 둬야 됩니다. 귀를 열어 두어야 이웃들이 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무슨 고민이 있을까? 좀 거들어 주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런 거지요.
중생들은 보면 귀를 열어 두는 것은 좋은데 보살들이 귀를 열어두는 것은
괜찮은데 중생들이 귀를 열어두면 나중에 헷갈립니다.
귀가 얇다. 그런 말을 하지요.
귀가 얇다는 소리는 뭡니까?
흔들린다, 는 거요
보살들은 남의 말을 많이 들어주되 절대 중심을 잃지는 않습니다.
치우치지 않는다. 중정을 잃지 않는다. 그랬어요.
“효봉스님이란 분 들어보셨습니까?”
이 효봉스님, 얼마 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은사되는 분이 효봉스님이고
또 구산스님, 그 다음에 송광사에 계셨던 일각스님 이런 분들이 다 효봉스님의
상좌입니다.
효봉스님이 평양인가 이북쪽에서 판사를 하셨는데 어쩌다가 누구를 사형언도를
내릴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스님께서는 독립유공자 자식인가 그런 얘기도 하고 그래요.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자격이 있느냐?
그런 양심의 가책을 받고 나중에는 떠돌이 엿장수가 됩니다.
엿을 팔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자기 신분을 숨기고 사는 거지요.
그러다 나중에 출가를 하게 돼요. 금강산 유정사 이쪽에서 출가를 했다고 그래요.
출가를 했는데 사회에서 큰 그릇이다 보니까 출가를 해서도 큰 그릇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 효봉스님하면 대단히 유명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자 효봉스님이 종정도 하시고 큰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자리 하려고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와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겠습니까?
자기 소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깎아 내려야지 자기가 올라가는 거니까
계속 남 얘기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스님은 듣기는 다 들어요.
한참 듣다가는 한 서너 시간도 들어요.
“야야, 너나 잘해라.”
단 한마디예요. 그럼 그 사람은 보내버려요.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한참 얘기를 해.
효봉스님은 대승보살이기 때문에 남 얘기는 들어요.
한참 듣다가“야야, 너나 잘해라.” 그러고 보내요.
이 대보살은 남의 얘기를 듣되 절대로 치우치는 법이 없다.
중정을 잃지 않는다. 이 말이요.
開而不偏개이불편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귀는 열어놓되 편견 갖지 않는다.(귀는 열어놓되 편견 갖지 않는다.)
開而不偏개이불편 두 번째
두 번째는 마음은 열어 놓되 중심을 잃지 않는다.
마음을 열어 놓아야 돼요. ofen mind가 되어야 된다 이거지요.
중심을 잃지 않는다 이 말은 주인공을 놓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자기 주인공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종교인을 만나든지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내가 불자다. 내 마음 가운데 있는 불성종자”이런 것은 절대
놓치면 안돼요.
마음을 확 열어놓고 누구를 만나든지 좋은데 삼보에 대한 믿음, 부처님에 대한
믿음, 믿음이라는 것이 중심이거든. 이것을 절대 잃으면 안되는 겁니다.
마음은 열어 놓는 것이 좋아요.
뭐든지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고 그러지요.
정녕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자기 주인공, 자기 주인공이요.
불자로서는 자기중심 이런 겁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하면 하도 잘나가지고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소리
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냥 듣기는 들어요. 해명할 것은 해명해야 되겠지요.
그러면서도 듣기는 듣되 내가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학생신도로서 중심,
주인정신을 놓치면 안돼요. 주인정신이 언제나 살아있어야 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자각自覺이라는 말을 쓰요. 자각
주인정신, 자각이 늘 되어야 돼요.
마음은 늘 열어놓아야 돼요.
마음은 열어놓되 중심을 잃지 않는다. 즉 주인공을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그것이 開而不偏개이불편의 두 번째 항목이고
開而不偏개이불편 세 번째
세 번째는 주머니를 열어 놓되 편애하지 않는다.
주머니를 열어놓되 편애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족들이 있다면 요즘은 남자, 여자 가릴것 없이 재산도 공동분배
하잖아요. 그런데 부모들이 유산을 물러줄 때는 편애하다가 문제가 일어나고
그러잖아요.
자식들한테도 돈을 줄때도 편애하면 안된다.
우리가 불우이웃 돕기 할 때도 편애는 안된다. 이 말입니다.
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에서도
제 같으면 상좌들을 공부시킨다. 이러면 공부시키고 돌보되 상좌들 한 명당 돈이
엄청 많이 들어요.
편애하면 안되는 거요. 편애를 하면 다른 상좌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겠지요.
또 그 사람이 편애해서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잘 되란 보장도 없는 거요.
똑같이 두고 보는 거요. 내 입장에서는
개인이 필요한 만큼 돈을 주는 거요. 그게 편애하지 않는 거지.
강원에 들어가면 강원에 들어가는 돈이 있고, 대학에 가는 상좌가 있으면
대학에 가는 필요한 돈이 있겠지요.
대학원에 간다면 대학원에 가는 만큼의 돈이 필요하겠지요.
또 선방에 가면 선방에 가는 만큼 돈이 필요하겠지요,
그에 상응하는 학비, 그에 상응하는 용돈만 주면 되는 거지요.
너무 많이 주어도 안되고 부족하게 주어서도 안되는 거지요.
적절하게 부족함도 없이...넉넉함도 없이 잘 주는 것.
그것을 주머니를 열어놓되 편애하지 않는다.
초등학생 애들한테 용돈을 수 만원씩 주고 그럴 필요는 없는 거지요.
이 생각을 잘 하셔야 돼요.
우리 절에 와서 공부하는 스님들은 제 상좌들은 저한테 미움을 받는다거나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제가 똑같이 하거든요.
세속에서 살기 힘든 사람은 저한테 다 출가를 시키면 돼요.
그러면 적당한 자기 그릇만큼 자기가 택해서 공부하는 만큼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절에는 출가자가 많습니다.
지금도 조계종에서 백 명쯤 교육을 받고 있는데 우리절에서 올라간 교욱자가
열 명도 넘어요.
전체 조계종 25계 교구 본사인데 교구본사가 우리보다 행자나 교육자가
많은 데는 없어요.
여기가 큰 역할을 하는 거지요. 편애할 이유가 없는 거요.
자기가 필요한 만큼 딱딱 주는 것 그것이 바로 開而不偏개이불편입니다.
주머니를 열어놓되 편애하지 말아야지 나중에 문제도 없어지고 그 사람도
제대로 키운다 이거지요.
開而不偏개이불편 네 번째
네 번째는 경험을 열어 놓되 욕심에 기울지 않는다.
한번 따라 해 보십시오.
경험을 열어놓되(경험을 열어놓되) 욕심에 기울지 않는다.(욕심에 기울지 않는다.)
애들이라도 경험의 개방성이 있어야 돼요.
많은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이 좋아. 그래야 장차 큰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꼭 온실 속에 화초처럼 그렇게 키우면 안됩니다.
군에도 보내고 이래야지 억지로 군에 안가게 하려고 빼내고 그럴 필요 없어요.
요즘은 채 2년이 안되거든요. 그 정도는 가서 살아도 세월이 그리 아깝지
않습니다. 경험을 쌓게 하는 거지요.
또 여행도 보낼 만하면 보내야지 애들 움직이는 것을 걱정을 하고 그래요.
애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야 됩니다.
여하튼 경험을 많이 시켜야 됩니다.
온갖 경험은 자기 인생을 살찌우는 것이 되는데 그 경험이 돈이나 명예나
이런데 기울면 안된다. 이 말이지요. 욕심에 기울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시키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욕심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면
안된다. 이 말입니다.
경험을 즐기도록 할 일이지 욕심을 쫒아서 그런 경험을 우리가 강요받아서는
안된다 이거지요.
그래서 이 경험은 어떠한 경험이라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아이들의 경험은 아주 중요하지요.
경험은 열어 놓아야 됩니다. 아이들의 경험을 자꾸 막으면 안돼요.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해줘야 돼요.
그래야 나중에 큰놈으로 성장을 하는 겁니다.
경험도 간접경험이 있는데 그 간접경험이 책보는 겁니다. 이 독서야, 독서
그래서 애고 어름이고 간에 책을 많이 읽어야 돼요.
책을 읽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책을 통한 경험이 중요해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됩니다. 그것도 다 경험이거든
간접경험이지만 경험이야.
그런 사람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책을 많이 읽지 않고 훌륭하게 되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어요.
우리 불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법정스님이 지은 책.
법정스님하면 아마 문서포교, 책을 통해서 제일 포교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
바로 법정큰스님이 아닌가 생각이 돼요.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법정스님 책 안읽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적어도 법정스님 책을 읽은 사람은 불교를 욕하지는 않거든.
그것만 해도 큰 포교가 된 거지요.
여하튼 책을 많이 좀 읽으셔야 됩니다.
특히 우학스님 책 많이 읽어주세요.^^
제가 책을 경전을 비롯해서 100권은 냈을 거요.
그 가운데서 책을 잘 냇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
일일명상록, 빛깔있는 법문“그런 책들은 그대로 나온 책 같아요.
그것 좀 읽어 주세요.
開而不偏개이불편 다섯 번째
다섯 번째는 사람을 많이 만나되 치우치지 않는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돼요. 대승보살은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야 포교도 하고 사람을 만나야 봉사도 하고 하는 거지.
사람을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그 속에서 선지식도 만나게 되고
공부도 돼요. 공부도 돼
혼자 틀어 박혀서 혼자 자폐증 환자처럼 사는 사람 있지요.
그게 다 병입니다.
인간관계를 좀 폭 넓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절대 치우치면 안돼요. 편애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부분도 제가 잘 안되는 부분입니다.
나는 사람자체를 만나길 싫어해요.^^ 성격이 좀 고약하지요.
우리 법정스님도 사실은 그런 편입니다.
사람을 잘 안 만나. 피곤하게 하니까
그래서 저는 편애해서 치우치고 말 것도 없어요.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우리 대보살은 만나야 돼요. 어차피 세속을 살아가면서 만나야 돼요.
내같은 경우는 일가친척이 없으니까, 처자식이 없는 입장이니까 안만나도 관계
없는 거야. 그렇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친척이 있고 시댁이 있고 친가가 있을
것 아니요. 그 사람들 안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거지요.
아주 골고루 평등심을 가지고 만나야 돼요.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는 늘 평등심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평등심을 가지고 만나야 되고 또 선입견을 버리고 만나야 돼요.
남의 말을 들은 것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절대 안돼요.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당한 것 이 외에는 말을 하면 안되는 거지요.
근데 사람들은 남이 어떻더라, 어떻더라 들은 것을 가지고 중정심, 말했지요.
이 중심을 잃어버리는 수가 많아요. 그래서는 안되는 겁니다.
동서지간에도 그렇고 자기가 천하 사람이 다 그 사람이 밉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아닐 수가 있어요. 인연관계가 다 그런 것입니다.
자기한테는 잘 해줄 수가 있는 거요.
재차 말씀을 드리면 사람은 당하는 그 순간 그대로 그 사람을 봐야 되지.
절대 다른 것을 개입시키면 안돼요. 내 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 그대로 보면
되는 겁니다. 절대 편애하면 안되는 겁니다.
사람은 많이 만나는 것이 좋은데 절대 치우치면 안된다.
만날 사람은 만나야 되지요. 피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이지요.
우리 대승보살은 사람은 많이 만나되 절대 불편, 치우치면 안된다.
開而不偏개이불편에 있어서 다섯 가지 항목이 있었고
오정행론 4.【 統而不拘(통이불구) - 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
그 다음은 큰 제목 네 번째
統而不拘(통이불구)라 했어요.
읽어 보겠습니다.
統而不拘(통이불구) (統而不拘(통이불구)
통統자는 다스린다는 말이고 구拘자는 구속한다는 말입니다.
統而不拘(통이불구)라. 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
재미있잖아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統而不拘(통이불구) (統而不拘(통이불구)
구속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면 우리가 스님들 법문을 듣다 보면 신심이
나고 그래야 되는데 오히려 마음이 구속이 돼요.
신심이 떨어지는 수가 있지요.
“세상사는 것이 별것도 아니네. 가다가 죽을까?”
이런 내용의 법문도 많아. 들어보면요... 그것은 법문이 잘못된 거지요
어떤 경우든지 법문은 그 사람을 구속하면 안되는 겁니다.
옥죄면 안된다 이 말이요.
옛날에 “세조”라는 사람 있잖아요. 세조대왕
나중에 대왕이라는 말도 듣게 되는데.
이 수양대군 세조 있지요.
이 사람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왕이 되었잖아요.
너무 미안하고 죄 밑이 많다고 생각이 되었든지 사육신을 좀 천도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파고다 자리에 대원각사를 짓게 돼요.
대원각사를 짓고 낙성식을 하는 날 천도재를 올릴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천도재를 하다보면 천도재 법문을 하잖아요.
그 법문을 하게 된 법사가 매월당 김시습이라는 사람이요.
매월당 김시습이 법상에 앉아서 내려다보니 법당 저 마당에 만주 백관들이
다 왔어요.
보니까 맨 앞쪽에 세조가 직접 거동을 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이 매월당이 입을 열었어요.
“이 법당 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이 법당 안에 피비린내가 가득 차 있다.”
그건 바로 세조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지요.
귀신의 울음소리도 너무 요란해서 내가 시끄럽다.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이 한마디에 세조대왕은 온몸이 오싹하고 머리털이 삐죽삐죽 섰어요.
세조가 본인인 느끼기에도 코끝에서 비린내가 나고 불단에 촛불이 일렁거리는
것을 봤을때 귀신들이 와서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마음이 심히 산란해졌어요.
법문이라 하는 것은 본래 그렇게 충격을 주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또 큰 목소리로 피비린내는 무슨 피비린내냐고..
내 코가 허망할 뿐이다. 그랬어.
지금은 마이크가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지 옛날에는 법당 안에서 저 마당까지
얘기가 들리려면 얼마나 고함을 질렀겠습니까?
피비린내는 무슨 피비린내 내 코가 허망할 뿐이다.
그리고 또...
귀신의 울음소리는 무슨 귀신의 울음소리... 내 귀가 허망할 뿐이다. 그랬어요.
허망할 뿐이다. 그러고 세조가 좀 마음이 안정이 되었어요.
우리가 그런 착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허망이라는 말에 위로를 좀 받았어요.
우리가 무안이비설신의 無眼耳鼻舌身意 그러잖아요.
내 코가 허망하고 내 귀가 허망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한 거지요.
한참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세조는 확 마음이 풀어지는 그런 법문을
마지막으로 하고 길을 떠납니다.
그 마지막 법문의 요지는 뭐냐 하면 한 번 들어보세요.
따라 하십시오.
“살면서도 사는데 정신을 팔지 말고(살면서도 사는데 정신을 팔지 말고)
죽으면서도 죽는데 충격을 받지 말아야 한다.
(죽으면서도 죽는데 충격을 받지 말아야 한다.)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오직 나의 조작일 뿐
조작이라는 말을 쓰지요. 조작 억지로 쓰는 것.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오직 나의 조작일 뿐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오직 나의 조작일 뿐)
언제나 고요히 머물러 있는 본 고향이로다.
(언제나 고요히 머물러 있는 본 고향이로다.)
세조의 마음은 비로소 구속을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뒤로 세조는 나중에는 선정을 베풀지요.
불교적으로 말하면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고 물론 이제 참회의 모습이기도
하고 자기 선정을 베풀려는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간경도감을 설치하고는 많은 경전들을 한글로 펴내기도 했던 그런 왕이죠.
불교의 한글화 작업에 크게 기여했던 왕이기도 했던 분이 세조입니다.
이 불구不拘라. 불구不拘 구속하지 않는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불구不拘(불구不拘)
구속하지 않는다.(구속하지 않는다.)
과거의 일들이 나를 구속하여 내 인생의 미래를 그르치는 일이 없는가를
생각해야 돼요.
과거의 일들이 내 인생의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고 또는 과거는
이미 흘러갔잖아요. 지금부터 잘 살면 되는 거지요.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지금부터 잘 살면 된다. 거기에 구속당하면 안된다.
과거의 어리석음에 현재와 미래의 그 자리를 맡길 수는 없는 거지요.
과거의 어리석음 때문에 현재와 미래의 그 성스러운 자리를 내주거나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잘 관리를 해야 합니다. 스스로
스스로 잘 관리를 하되 스스로 구속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들은 관리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옥죄고 구속을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統而不拘(통이불구)첫번째
첫 번째는 스스로를 챙기되 옥죄이지는 않는다.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스스로를 챙기되 옥죄이지는 않는다.(스스로를 챙기되 옥죄이지는 않는다.)
옥죄인다는 말 있잖아요. 완벽주의자들
완벽주의자는 스스로 불행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도 불행해요.
그런 사람이 나중에 소심증 오게 되고 우울증 오게 되고 그런 것입니다.
융통성을 좀 가지고 살아야 돼요.
統而不拘통이불구라. 자기 관리는 하되 너무 고집 피우지 마라 이 말입니다.
자기 관리는 하되 너무 고집 피우지 마라. 융통성 좀 가지면서 살아라.
이 말입니다.
어느 한 보살님은 백일기도 중에 모르고 가족들하고 밥을 먹다 보니까 계란이
나왔는데 계란찜을 먹었데요.
“ 아이고 스님, 제가 계란찜 먹어서 되겠습니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이미 계란은 소화 다 되어서 흔적도 없어졌는데..^^
계속 그 계란냄새를 맡고 있는 거야.
그것은 자기 자학입니다. 자학
자학 내지는 자기 홀대라는 거라. 그것이 바로 자기 스스로를 옥죄는 거지요.
거기 또 보면 어떤 사람들은 아이고 내가 무슨 죄를 이렇게도 많이 지어 가지고
나는 죄인이야. 나는 사는 것이 왜이래. 나는 업장이 두터워서 이래.
나는 전생부터 지은 복도 없는가봐. 괜히 그러고 있어.
이 중에서도 그런 사람 더러 있을 거야.
일이 안되면 내가 무슨 전생부터 업을 지어 가지고 이러냐고...
다른 종교인들 보면 “ 내가 죄인이야, 내가 죄인이야.” 이러면서 기도를 하잖아요.
그게 다 자기구속 하는 겁니다. 그것은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잘 해야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챙기되, 스스로를 다스리되 절대 옥죄이지는 말아야 한다.
統而不拘통이불구 두 번째는...
두 번째는 계는 받되 너무 얽매이지 마라.
통이, 이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계를 말하는 점도 돼요. 계를 받되 너무
얽매이지 마라.
한 번 따라해 보십시오.
계는 받되(계는 받되) 너무 얽매이지 마라.(너무 얽매이지 마라.)
우리가 계를 받아서 불자가 된다는 것은 뭡니까?
더욱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더욱 많은 사람을 용서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하고
활달하게 살려고 계를 받고 불자가 되는 거지.
거기에 얽매여 가지고 꼼짝달싹 못하게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론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길을 만들어 놓았지요. 그게 계지요.
제약조건은 있지. 뭐도 하지마라, 뭐도 하지마라 그렇지만 그 계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재미를 빼앗아 가면 안 되는 거요.
그 계戒를 잘 받았으면 법명을 받았으면 그 계를 잘 운용해가야 돼요.
그것을 지범계차(持犯戒遮) 라 그러지요. 지범계차
“지범계차” 다 들어봤지요. 천수경 시간에.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지(지) 범(범) 계(계) 차(차) 지범계차(지범계차)
그러니까 계를 지키기 위한 계는 소용없어요.
계에 보면 술마시지 마라. 해 놓았어. 술마시지 마라
부부간에 크게 싸웠어요.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때는 술 한 잔으로 풀리는 거요.
어제 절에 계를 받고 왔어. 지금 4월 둘 째 주에 수계하는 날 있지요.
수계를 어제 했는데 부처님 계법에 보면 술 마시지 마라 했는데 옛날에는
술을 한 잔하면서 풀었는데 술도 못마시고 큰일인거요.
그때는 술을 마시는 것이 좋아요? 안 마시는 것이 좋아요?
그 까짓거 한 잔 마시면 어때요.ㅎㅎ^^
그때는 한 잔 마시는 것이 계를 지키는 거요.
둘이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한 잔하고 화해하면 그 때 그 술은 술이 아닌 겁니다.
그걸 지범계차, 지범계차 운용을 잘 한다. 이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극단적인 것은 안 된다. 는 말입니다.
극단적인 것은 안 된다. 완전 고집불통은 안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극단적인 고행주의... 극단적인 금욕주의 이런 것은 다 사양합니다.
그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것은 저 니칸다 자이나교도 들이나 하는 짓이지.
무소유 그러잖아요.
법정스님의 무소유...법정스님이 스스로 풀어 놓은걸 보면 뭐라고 했느냐면...
필요 없는 것을 소유하지 않은 것, 그것이 무소유이지요.
필요 없는 것은 가지지 마라 이 말이지. 필요한 것은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필요 없는 것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럴때 무소유라는 말을 쓰는 겁니다.
계도 마찬가지로 계도 땟목에 비유됩니다. 땟목을 타고 건넜으면 버릴 때는
버려야 되는 거요. 그렇지만 땟목은 필요하잖아, 우선에는
계는 우선은 받아야 돼요.
법명이 없고 아직 수계를 안 한 사람들은 4월 둘 째 주에 있는 계를 다 받으셔야
돼요. 그래야 삶의 기준이 생기는 거지요.
그래서 계는 받되 얽매이지는 말아야 된다.
계는 어찌 보면 부수기 위해서 있는지도 몰라. 살아가면서
그래서 옛날부터 말하기를 돌아서서 파하더라도 계는 받아야 된다. 이렇게 말해요.
우리 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더욱 보람되고 재미나게 하는 하나의
사다리입니다. 계를 잘 운용해 가면..
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더욱 보람되고 재미나게 하는 것이고 그 길로
가는 촉매가 되는 역할입니다. 촉매의 역할을 하는 거지요.
그런 것이지 계가 우리 인생을 무기력하게 하고 우리 인생을 재미없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를 잘못 받아들이면 그렇게 되기 쉽다 이거지요.
그래서 계는 받되 너무 얽매이지 마라 이 말입니다.
계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사는 것이 신이 나고 그래야 되잖아요.
다 그렇게 될 겁니다.
그래서 계는 다 받으시되 너무 억매일 필요는 없다.
바로 땟목 다루듯이 해야 되고 지범계차를 잘해야 된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계는 받되(계는 받되)
너무 얽매이지 마라.(너무 얽매이지 마라.)
그 다음에 세 번째 예문인데.. 統而不拘통이불구의 세 번째
세 번째는 영역을 통제하되 자율을 존중하라.
영역을 통제하되 자율을 존중하라.
가정에는 가정의 영역이 있어요.
가정의 영역이 통제가 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렇지만 자율마저 빼앗으면 안돼요. 가정에 룰이 없어 봐요.
완전히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지요. 통제는 있어야 됩니다.
너무 엄한 아버지는 안 됩니다.
너무 엄한 아버지 밑에 자란 애들은 기가 죽고 말더듬이 아이들도 생기고
소심증이 있는 애들이 많아요.
또 너무 완벽한 잔소리꾼 어머니. 너무 완벽한 잔소리꾼 어머니 있지요.
하나하나 지적해서 시키는 거요. 안 해 놓으면 난리가 나요.
그 밑에 자란 딸, 아들 크게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잔소리꾼 어머니는 안 된다 이거지요.
요즘은 아이를 하나, 들 키우다 보니까 애도 감당이 안 되더라고.
이 통제자체가 안 돼. 통제는 하되 자율을 존중하라. 이것이 統而不拘
통이불구 아니요.
너무 엄하면 자기 개성을 살릴 수 없습니다.
자기 개성을 개발해 시켜주고 아버지, 어머니처럼 복제인간 만들면 안되지요.
자기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자율을 주라 이거지요. 자율
아이들 인격도 존중해야 된다 이 말이잖아요.
그렇다고 방치해라 이런 얘기는 아닙니다. 방치하면 안되는 거지요.
방치하면 어떻게 돼요. 완전히 방치하는 집안도 있어요.
법도가 없어. 애들도 노는 것을 보면 대충 알아. 저 집안은 법도가 있는지, 없는지
엉망진창이야. 무자식이 상팔자야.
나한테 신심이 나는 집안도 있어 보면...ㅎㅎ^^
애들이 엉망진창이야. 그걸 콩가루 집안이라 하잖아요
콩가루 집안이 되면 안 되는 거야.
어른도 모르고 예법도 모르면 그 가정은 무너지게 되어 있거든요.
내 분명히 봤을때는 김길태라는 그런 사람 있지요.
자기 부모가 방치한 것 같아. 중, 고등학교 다닐때 까지는 애를 잡아야 된다니까^^
학교 안간다면 안보내고 그러면 방치하는 거지요.
학교 안간다면 끌고라도 가야지요.
그래서 이 영역은 통제를 하되 자율은 어느 정도 줘야 된다.
가정에 살면서도 그래요.
부부간에도 남편한테 너무 심하게 통제하지 말아 이거지요.
마누라도 마찬가지지요. 마누라도 너무 심하게 통제하지 마라 이거지요
절에 나가는 것 까지 다 통제하는 남자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절에 못 오는 보살들도 많아요. 사실은
그런 남자는 뭐 하러 놔둬요. 차버리지..^^
심하게 통제하면 안 된다. 가정집도 그렇겠지만 이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절 집안에서 룰이 통제가 아주 강해요.
풀어 줄 때는 풀어버려요.
가장 엄한 곳이 선방인데 선방에서도 자유시간이 있어요.
자유시간이 있고 해제기간이 있고 포행 할 때는 포행시간도 있고 그 때는
자기가 알아서 사는 거지요.
그 시간을 잘 활용해서 하는 거지 그 시간까지 통제하지는 않습니다.
전체 룰은 있되 자기한테 주어진 시간이나 자기한테 주어진 여건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요.
그게 바로 여기서 말하는 統而不拘통이불구 아닙니까?
저는 상좌들도 구속하지 않아요.
예불 잘 나오고 밥 먹을때 밥 먹는 시간에 잘 나오면 그 나머지는 자기 방에서
기도를 하든지 참선을 하든지 그것까지는 통제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또 요즘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교육이 여러 갈래입니다.
강원을 갈 사람은 강원을 갈 수 있고 중앙승가대학을 가고 싶은 사람은 중앙
승가대학을 가면 되고 동국대학을 가고 싶은 사람은 동국대학을 가면 되고
기본선원에 갈 사람은 기본선원에 가면 되고 그것이 전체 룰이라.
가야 된다는 것은 전체풀이고 꼭 은사가 “아! 나는 참선이 좋다.
넌 선방에 가야돼.” 나중에 가서 그 은사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아요.
선방만 다니다 보니까 경전을 알아야지.
불자가 물었을때 아무것도 모르고 참선만 한다 해서 경전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입력한 것이 없는데 출력이 되느냐 이거라. 경전을 본 것이 없는데...
그러니까 스님들도 전인교육을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참선, 기도 경전 보는 것 두루두루 팔방미인이 되어야 돼요. 스님들만큼은...
이런 붓글씨도 쓸 줄 알아야 되는 거요.
요즘 스님들 붓글씨 쓰는 사람 거의 없어요. 옛날에는 저희들이 은사스님 밑에서
시봉을 하면서 붓글씨를 어깨너머로 같이 쓰고 하다 보니 배운 것이 된 것이지.
어디 가서 배운 것도 아니요. 전생부터 좀 했는지는 모르지..^^
별도로 배운 것도 없어요.
스님들이 佛자는 저도 佛자는 몇 개 써 놓았습니다. 마는 관세음보살을 쓰는
사람이 없어요. 佛자는 쓰도 관세음보살은 쓰지 않아요.
우리가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붙여놓고 기도를 하면 기도가
아마 백배는 잘 될 겁니다.
여하튼 관세음보살 하나씩 다 가져가고 세 명씩 포교해요.
세 명 포교 안할 사람은 가져가면 빚 된다. 그랬잖아요.
저한테 빚져서 내생까지 따라와서 빚 갚지 말고..ㅎㅎ^^
그래서 저는 상좌들을 절대 구속하지 않습니다.
통제는 하되 구속하지 않습니다.
참선하고 싶으면 그리 가면 되고 경전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고 싶으면
스님으로 대학교수 하면 되고 저는 그것은 전부 자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율, 자기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애들 이리 다 출가시켜 달라니까요.
서울에 스티브 행자 서래스님도 내가 그랬어요.
“네가 젠 마스트 Zen Master가 되고 싶으면 젠 마스트, 참선을 가르치는
스님이 되고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해서 언어가 달통이 되면 대학교수가 되고
싶으면 대학교수 해라. 대신에 승복은 벗지 말고 해라. ^^
그러면 살아가면서 대단한 사람이 될거다. 그래서 그런 부분까지도 자기 개성을
존중한다니까요.
절에 있는 저도 그런데 집에 있는 가정에서 가정을 통제하면서 그런 자율을
잘 생각해줘야 돼요.
불교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대학에는 불교대학의 학칙이 있고 운영규정이 있고 그것이 다 전체규정이지요.
그 안에서는 단체를 구속 안합니다. 저는
저한테 어떤 단체가 구속받았다 소리는 없을 겁니다.
그냥 자기들 회비 거두고 사고 저지르지 말고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불교대학 본 모체에 대해서 거역하는 일이 없이 잘 자전하면 되는 거지요.
그래서 공전 속에 자전해라 이거지요. 공전
공전은 전체 룰이고 자전이라고 하는 말은 자율적으로 돌아가는것 아닙니까?
공전 속에서 자전을 잘 하면 그 단체는 잘되는 겁니다.
거기는 구속 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여기 단체장들도 많을텐데 잘 생각하셔서 저는 절대 공전 속에 자전하는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질서는 있어야 되는데 나 자신이 되었든지 단체가 되었든지 가정이
되었든지 융통성 있게 해야 한다. 그 얘기가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는 스스로에게는 엄하면서 남에게는 부드러워야 된다.
스스로에게는 엄하면서 남에게는 부드러워야 된다.
제가 법정스님을 뵙게 된 것은 직접 뵌 것은 송광사에서였습니다. 송광사
선방을 가면 도가 터진다. 그 말을 듣고 공부고 다 소용없다, 가서 참선해서
도를 트는 일이 중요하다. 해서 송광사가 승보종찰이고 해서 승보사찰이잖아요.
거기가면 큰스님 될까보다 싶어서 처음 거기 선방을 찾아 갔어요.
거기 살다 보니까 불일암이라고 하는 암자에 송광사에는 암자가 거의 없어요.
한, 두 개 있는데 거기에 스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스님이 성격이 깔끔해요.
장작을 패서 쌓아 놓은 것을 보면 장작이 두부를 칼로 자른듯이 잘라 놓았어.
성격이 얼마나 빈틈이 없는지 완전 말 그대로 칼이요. 칼
장작을 쌓아 놓았는데 장작이 들어가고 나가고 한 것이 없이 그대로 쌓아
놓았어요.
포행하다 보면 혼자 앉으셔서 냄비뚜껑을 닦고 있고 그래요.
그 연세는 냄비뚜껑 안 씻어도 되거든. 시자를 시켜도 되고, 공양주 한사람
들여도 될텐데... 그런걸 안하는 겁니다.
한 번은 송광사 종무소에서 관광객들이 요사채까지 들어오니까 그것을 막으려고
경고 표시로 “출입통제” 이렇게 해놓았어요.
출입통제를 빨간 글자로 해서 사선을 그어놓았어요. 군사보호구역처럼...
가끔 절에 다니다 보면 그런 곳이 있어요.
스님이 한 번은 내려오셔서 보시더니 “우리 절 집안에 이렇게 삭막해서 되겠나”
군사보호구역도 아니고 다 떼고 새로 달자.
송광사는 좀 가난한 절이었어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밥도 조금씩 주고 외국스님들은 많고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절마다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졌지요.
그 간판을 다 떼고 갈려면 돈이 엄청 들어. 종무소에서는 스님 말을 안 들을
수도 없고 들어보니 다 맞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시뻘겋게 해가지고 출입통제 사선 그어 놓은 것을 다 떼내고 단 것이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처라 많은 분들이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가능하면
들어오시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길게 써서 붙여 놓으니까 그것을 읽어
본 사람은 그렇게 완곡하게 표현을 해놓아도 다 알아듣고 안들어 오더라니까요.
출입통제 해 놓으니까 뭐가 있나 싶어서 더 들어오는 거라^^
그때 저는 생각했지요.
법정스님이 참 지혜로우신 분이구나. 억지로 완력을 해서 될 일도 아니고
강제적으로, 강압적으로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는구나. 라는
것을 제가 느낀 적이 있었지요.
상대도 생각해야지... 관광객이, 일반 국민들이 못들어 오게 한다고 해서
“출입통제구역” 이렇게 해서 달아 놓으면 오히려 거부감만 느끼지요.
스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거지요.
이곳은 수행처니까 가급적이면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잖아요. 상대에 대한 배려.
남에게 부드러운 면이지요.
스님은 스스로에게는 엄하시면서 남에게는 부드러운 분이 아니냐? 제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지요. 대화중에도 그런 말씀을 많이 듣고...
통제라고 하는 것도 더 큰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통제가 통제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統而不拘통이불구라 했잖아. 統而不拘통이불구
통제, 다스린다는 말은 통제라는 거야. 그래서 통제가 통제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스림, 이 통제는 궁극적으로는 이 구속을 꺼려합니다.
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
진정한 다스림, 진정한 통제는 구속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구속 벗어나려고 이 통제를 하는 것 아니요.
끝까지 구속하기 위해서 통제는 하면 안된다.
바로 우리는 늘 이런 점을 생각해야 됩니다.
통이불구라 스스로에게는 엄하면서도 남에게는 늘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다섯 번째 남았는데 樂而不着락이불착이라 그랬어요.
읽어 보겠습니다.
樂而不着락이불착 (樂而不着 락이불착)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
樂而不着락이불착에 대한 얘기가 좀 길어요. 제가 장시간 말씀을 드렸는데
한 만큼 얘기를 해야 됨으로 오늘 다 얘기를 못하겠네요.
제가 아까 서두에 시간이 다 되겠나 걱정을 했더니 결국에
다음 달 초하룻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오정행론 5.【樂而不着락이불착-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樂而不着 락이불착
읽어 보겠습니다.
樂而不着락이불착 (樂而不着 락이불착)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즐기다. 는 말을 씁니까?
쓰지요. 극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진짜 즐기는 것이 극락 아닙니까?
락樂자가 즐거울 락자거든. 극히 즐거운데...그러니까 극락이지요.
극락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려고 했더니 시간이 좀 부족하네요.
오늘은 세 번째, 네 번째 ...오늘만 날도 아니고 우리가 곧 죽을 것도 아니고
다음 달에 하면 되는 거요,
오정행론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受而不留(수이불류) (受而不留(수이불류)
生而不持(생이부지) (生而不持(생이부지)
開而不偏(개이불편) (開而不偏(개이불편)
統而不拘(통이불구) (統而不拘(통이불구)
樂而不着(락이불착) (樂而不着(락이불착)
거기 한글 보시면...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받아들이되 머물지 않는다.)
만들되 가지지 않는다.(만들되 가지지 않는다.)
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열어놓되 치우치지 않는다.)
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다스리되 구속하지 않는다.)
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즐기되 집착하지 않는다.)
이런 다섯 가지 정행, 말 그대로 이러한 깨끗한 행위.
그냥 나오느냐? 그냥 나오지를 않아요.
먼저 불교대학에 나와서 먼저 공부를 해서 나침반을 얻어야 돼요.
나침반이 있어야 길을 가는 거잖아요.
둘째는 나침반대로 노를 저어야 돼. 노를 젓는 것이 참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단은 나침반을 얻어야 되고 두 번째는 참선하고 기도.. 노를 저어야 돼요.
공부를 통해서 먼저 길을 알아야 된다는 거지요.
요즘은 네비게이션이 있잖아요.
서울도량에 삼문스님하고 가다보면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아도 돼요.
네비게이션을 달고 가면 어디를 다 찾아가요.
그 네비게이션을 따라 길 따라 가는 것.
네비게이션을 만드는 것은 경전공부고 경전공부 하면서 그대로 바로 찾아 가는 것.
행동으로 옮겨서 가는 것 있지요. 내면의 세계를 가꾸는 그 공부.
그것이 참선하고 기도 아닙니까?
오늘 여기 온 것은 참선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온 것 아닙니까?
그 길대로 가보는 거지요. 노를 저었으니까 여기까지 갑니까?
차로 말하면 네비게이션이 있으면 네비게이션의 지도의 끝은 불교공부고
내가 직접 차를 가는 것, 드라이버 해서 가는 것은 참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있어야 돼요. 불교공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면의 세계가 아름다워지고 내면의 힘이 갖추어지면 거기서 정행이
나오는 거요. 오정행론五淨行論 아닙니까?
그래야지 정행淨行 이 나온다. 이 말입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이거지요.
여기서 아무리 이론적으로 정행, 정행 하면 뭐해요.
불자행, 불자행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거지요.
여기에 따라서 불자행, 정행, 깨끗한 행 진리적인 행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일단 네비게이션을 가져야 되고 그 네비게이션 대로 운전해 가야된다. 이거지요.
그랬을때 정행이 되는 거지요.
바로 그 정행이 불자로서의 행이고 행복의 행이 된다. 이 말입니다.
행복의 행이오, 불자로서의 행이 정행인데 그 길을 위해서는 불교공부를 하고
아울러서 참선, 기도를 같이 해야지 내면의 세계가 밝아지고 내면의 세계가
아름다워지고 내면의 힘이 갖추어짐으로서 그것이 정행으로 연결되는 거요.
그 이해가 되지요?
다음 달에 또 하기로 하고 다음 달까지 절대 죽으면 안되요.^^
발원문을 한 편 더 읽겠습니다. 379페이지 전법륜서원 있지요?
우리가 정신 차려서 모든 도량 다 포교에 집중해야 됩니다.
집중...포교...,
포교...집중...
크게 읽어 보겠습니다.
전법륜(轉法輪) 서원
세상을 비추어 주시는 길잡이시여!
세간을 이익되게 하시는 어른이시여!
큰 영웅 용맹스러운 스승이시여!
부처님의 성스러운 진리의 등불이 어떻게 전하여 저 오늘을 비추나이까?
한국 불교 천 육백 년 어떻게 이어져 왔나이까?
누구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부루나’의 전법정신(傳法精神) 이 가슴에 등불 켰고,
한 젊은 ‘이차돈’의 뜨거운 순교(殉敎) 이 가슴에 맥박차옵니다.
장엄한 부처님의 광명이 전도와 전법의 거룩한 서원으로 비롯되어 빛나고
있사옵니다.
제가 부처님의 자식으로 크신 은혜 어이 갚으며.
불자(佛子)로서 최대의 영광이 무엇이며
최선의 수행, 최대의 서원이 무엇입니까?
견성, 해탈, 열반, 성불, 정토의 실현은 무엇으로 시작됩니까?
“전도(傳道)의 길” 이 뿐입니다.
부처님!
서원하오니.
묵묵히 부처님의 음성을 전하는 여래의 사도(使徒)가 되어.
마침내,
이 사바세계를 부처님 세계로 만드는 불제자가 되겠나이다.
저의 생애를 부루나의 삶으로
이차돈의 신심으로 가득 채우겠나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초하루 법회에 오신 공덕으로 가정이 늘 원만하고 가족들이 다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또 우리절에 다니다 보면 발전하고 승승장구하는 확 열린 도량에 다닌 공덕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기도 좀 더 열심히 하시고 재일기도, 재일법문을 절대 놓치시면 안되고요
자기공부도 불교대학에 와서 열심히 하시고 신입생 포교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세 사람 이상씩 포교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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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인연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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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마음으로..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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