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처음 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병풍바위 → 깃대봉 → 왕자봉 → 형제봉 → 송낙바위 → 동문 → 광덕산 → 옥호봉 → 관리사무소'의 12km, 7시간 구간을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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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剛泉山]
높이: 584m
위치: 전북 순창군 팔덕면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군의 도계를 이루는 강천산은 비록 산은 낮아도 깊은 계곡과 맑은 계곡물, 그리고 기암절벽이 병풍을 치듯 늘어선 모습으로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강천산은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룬다. 특히 강천산만의 자랑인 아기단풍이 곱게 물들 때 더욱더 장관이다. 등산로가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다.
등산로 초입부터 병풍바위를 비롯한 용바위 비룡폭포 금강문 등 명소들이 즐비하고 금성산성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오밀조밀한 산세에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관광자원에 힘입어 1981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강천사와 삼인대 사이를 지나 홍화정 옆길로 들어서면 50m 높이에 걸린 구름다리(현수교)가 아찔하게 보인다.
강천산은 최근에 벚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개 4월 초 피기 시작해 10일께 만개한다. 자연생 「산벚꽃」으로 꽃이 잘고 빛깔이 희고 맑다.
벚나무는 강천산 입구 강천호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등산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강천계곡 6㎞ 구간을 지나 정상에 이르면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산 아래 흰빛 벚꽃 물결을 감상할 수 있다.
강천산에는 신라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 강천사가 있다. 강천사는 신라 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 한때는 1,000여 명의 승려가 있던 큰 절이었다고 한다. 절 뒤로 치솟은 암벽과 강천산 암봉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지다.
인기 명산 [21위]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단풍 명산으로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룬다. 단풍 테마 산행으로 10~11월,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순 순으로 많이 찾는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군립공원(1981년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강천계곡 등 경관이 수려하고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신라 진성여왕 때(887년) 도선국사가 개창한 강천사(剛泉寺)가 있으며, 산 이름도 강천사(剛泉寺)에서 유래.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이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10월 마지막 주 산행은 오랜만에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이자,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 하나인 강천산에 가기로 했다. 물론 마지막 주 토·일 모두 현재 진행 중인 해발 1,000m가 넘는 산행을 진행하는 안내산악회가 없어서다. 물론 내가 아직 오르지 못한 봉우리 27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해서 차선인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에서 대상을 찾아보니, 토요일 전북 순창 강천산 단풍산행과 충남 예산 가야산 두 산이 있었다. 두 산 중 처음에는 가야산을 다녀올 생각으로 8월 14일 신청했었는데,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단풍이 좋다는 강천산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어 9월 14일 강천산으로 변경했다. 애초 계획한 건 아니나, 지난주 가칠봉, 목포 유달산, 흑산도 칠락산, 홍도 깃대봉을 연달아 오른 상태라,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야유회 산행으로는 최상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행 신청할 당시만 해도 서너 자리가 비었었는데, 대기자가 늘어나더니 어느 순간 버스 두 대가 출동하는 산행으로 바뀌었다. 단풍의 남하를 고려하면 좀 이름에도 신청한 이유가 조용한 산행을 위함인데, 조용한 산행은 틀린 거 같다. 갑자기 조용한 산행일 수도 있겠다는 예상이 되기도 하는데,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안내산악회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하여 이번에 동행하는 산악회는 웬만한 산은 다 버스 두 대 이상을 동원하는 반면, 성원을 채우지 못해 취소하는 산악회가 대부분이다. 즉 한정된 등산객이 한 곳으로 집중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럼 서울에서 강천산으로 내려가는 이 산악회의 버스 두 대가 다일 수도 있다는 얘기라, 한가한 산행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을 쓰며, 갑자기 궁금해 내가 아는 모든 안내산악회 카페에 들어가 확인해 본 결과 4개 산악회가 강천산행을 계획했으나, 3개 산악회는 성원 미달로 취소했고, 이 산악회만 두 대의 버스가 출동한다. 그런데, 다른 안내 산악회는 회비가 17,600원이고 이 산악회의 회비가 36,000원으로 배가 넘게 비쌈에도 그 산악회는 성원을 채우지 못해 취소하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도에서 검색해본바 날머리인 강천산 주차장 부근에 서너 개의 식당이 있는 걸 확인했으니, 빠른 산행을 위해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준비하기로 했다. 구름이 많이 낀다는 예보니, 조망이 좋지 않을 걸 고려해 카메라는 작고 가벼운 거로, 먹거리는 평소와 같이, 나머지도 상황을 봐서 산악회 버스에 두고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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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상해 점심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등 등산 준비를 마치고,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5시 55분경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오랜만에 마을 버스를 타는 것으로 불광역에서 6시 6분 양재행 열차를 타야 하는데,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이 5시 58분경으로 만약 신호라도 한번 걸리면, 차를 놓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모든 신호등을 무사히 통과해 6시 3분, 열차 도착 3분 전에 불광역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광역에서 열차를 타고 양재로 향해 6시 48분경 도착해 12번 출구로 나와서 보니, 마을버스 정류장부터 국립외교원 앞까지 단풍을 즐기기 위해 각지도 떠나는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이제 코로나는 우리 생활의 일부라, 생업이나, 여가 생활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징조다. 반가운 일이다. 이전 몇 번의 산행과 주변의 얘기를 통해 올해 단풍은 기대 이하라는 건 알고 있었었고,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나. 단풍을 기대하고 가는 산행은 아니었다. 그런데 국립외교원 주변이 지난 몇 번의 산행에서 본 단풍보다 더 좋아 보였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안내 산악회 버스를 기다렸는데, 6시 59분 백두대간 금대봉, 매봉산으로 향하는 차를 선두로 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해 출발 예정 시각이 7시 정각에 강천산으로 떠나는 2호 차가 도착했다. 옆자리가 비었으니, 배낭을 멘 채 버스에 타 옆자리에 배낭을 벗어두고 내 자리에 앉았다.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가장 편한 자세로 패드로 음악을 감상하며, 책을 읽었다. 그러는 중에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죽전, 신갈에서 남은 승객을 태웠는데 그 과정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산악회에 따라서는 '빈 좌석이 있는 경우 버스가 정차하는 현지에서 탑승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산행 안내에 포함하기도 하는데, 실제 그런 경우를 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신갈에서 한 등산객이 인솔 대장에게 현금을 지불하고, 버스에 탔다. 그 모습을 보고, 여차하면 그냥 등산인의 성지 양재나, 사당으로 달려가 아무 차나 타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현지 승객까지 태운 버스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예상대로 천안, 논산 고속도로의 정체로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 잠이 들어 인솔 대장의 필요한 사람만 지도를 받으라는 말에 깼다. 고로 버스는 휴게소에 들렀다가 다시 들머리로 향하고 있었다. 휴게소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잤다. 지도가 필요하지는 않았으나. 산악회 산행 계획에 있는 지도가 너무 혼란스러워 혹시 다른 부분이 있는가 해서 지도를 받아 자세히 살폈으나, 역시나 다를 바가 없었다.
병든 닭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들머리 도착 10분 전이라고 했다. 이어서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마감 시각은 예정대로 16시 30분 즉, 4시 30분 그대로 하겠다고 했다. 고로 산행에 주어진 시간 5시간 30분에 20여 분이 더 추가됐다. 10시 40분에 들머리인 금성산성 주차장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가 타고 온 1, 2호 차 외에 버스가 한 대 더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자가용이 많이 주차해 있었다. 분위기로 봐선 조용한 산행은 틀린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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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도착하기 직전 버스 안에서 추위에 대비한 여벌 옷을 배낭에서 꺼내 버스에 두는 등 등산 준비를 마친 상태라 차에서 내려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100여 미터를 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지금까지와 같은 포장도로로 직진하는 길과 우회전 하는 길인데, 당연히 우회전해야 할 거 같은데, 직진하는 부류, 우회전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우나, 우회전 길목에 있는 이정표의 '금성산성'을 믿고 우회전하는 길로 갔다. 역시 대나무의 고장 담양답게 우로는 거대한 대나무 숲이었다. 대나무 숲을 지나, 임도를 따라 위로 올라가자 주변의 산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좌로 높이 솟은 암봉이 보였다. 주변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산인데, 추월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도 끝부분에 도착하자 수십 대의 자가용이 주차해 있는 게 보였고, 담양군 공무원으로 보이는 두 명이 등산로 입구에서 환영 인사를 했다. 무언가 당황스러운 장면인데, 어쨌든 답례를 하고 생각해보니, 좀 전의 갈림길에서도 한 사람이 안내했었던 게 떠올랐다. 해서 그 사람에게 등산로가 어딘지 물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 뭐지? 어쨌든 임도 끝 동학농민혁명군 전적비를 지나자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됐고, 바로 보국문 갈림길이 나타났다. 당연히 보국문을 향해 좌회전해 200여 미터를 가자 나무에 무언가 달린 게 있어 가서 보니, "사랑바위"이란다. 해서 다시 바위를 보니 하트 모양이기는 하다. 등산로를 따라 다시 300여 미터를 가자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났는데, '담양 리조트'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처음 만난 갈림길에서 직진한 후 리조트에서 올라오는 길로 보였다. 그리고 산성까지 남은 거리는 800m! 20분만에 1.5km를 왔다. 평지다.
뭐랄까 담양인에게 있어서 금성산성은 서울로 치자면, 북한산성은 아니고 남한산성과 비슷해 보였다. 고로 접근이 쉬웠고,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였다. 군데군데 과거의 등산로 옆으로 우회로를 만들기도 하고. 당연히 산에 온 사람은 산책로가 아니라, 과거의 등산로가 보이면 주저 없이 그 길로 위로 올랐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날 따라오던 등산객은 갑자기 길이 없어지고, 관목 숲을 뚫고 가야 하는 상황에 당황스러워해 내가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앞을 바위가 가로막고 있고, 그 바위 위에 두꺼비로 보이는 조각상 3개가 올려 있었다. 뭐지 하고 좀 떨어져서 바위를 보니, 두꺼비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 옆 나무에는 그 바위에 대한 뭔가를 소개하는 글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바위에 가까이 다 가보니, 음각으로 뭔가를 새겨 놓았다. 다른 건 잘 안 보이고, 처음의 '行別'과 마지막의 '不忘碑'만 뚜렷이 보였다. 물론 중간중간 알아볼 수 있는 글이 있지만. 고로 옆의 나무에 걸려 있던 소개는 그 글에 관한 거로, 그 바위를 '마암비(磨巖碑)'라 부른다고 해서 두꺼비의 한자 중에 ‘마’나, ‘암’이 있나 하고 한자를 유심히 보니, 두꺼비가 아니라 바위를 갈아 만든 비석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내용은 '별장(別張)' 발령에 관한 거 같은데, 그 방면에는 무지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마암비를 떠나 2분 정도 올라가자, 성문이 보이고, 그 전에 이정표가 있었는데, 봉수대 갈림길이다. 당연히 지나칠 수 없어, 봉수대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들어가 보니, 어디에도 없다. 다만, 전망대로서는 괜찮았다. 해서 그 위치에 봉수대를 두었겠지만. 이정표에 "봉수대"가 아니라, "봉수대' 터'"라 적었어야 했다. 전망대에서 날이 흐려 잘 보이지 않는 담양의 모습을 몇 장 찍고 돌아 나와 보국문으로 향했다. 성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터다. 성벽에 바짝 붙어서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런 방해물 없이 조망할 수 있었다. 올라오며 봤던 봉우리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추월산'이다. 그리고 뒤로는 성문이 하나 더 있었다. 충용문이다. 그리고 무언가 싸한 느낌에 성루를 보니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애초 성벽으로 접근할 때 알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단지 등산객이 쉬고 있는 거로 생각해 무시했는데, 잘 보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두 줄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게 명상 중이었다. 명상 중인 사람들을 뒤에 두고 사진 찍겠다고 휘젓고 다닌 거다.
보국문을 떠나 충용문 가까이 접근하자,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중간중간 북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성루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모든 상황이 예닐곱 살 때 진주 촉석루가 떠올랐다. 촉석루에서 칼춤을 비롯한 행사를 신기하게 봤던, 당시에야 뭘 하는지 몰랐으나, 봄에 하는 '논개제'였다. 분위기로 보아 그 비슷한 제사나,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거 같았다. 성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돌탑 여러 기가 보이고 왼쪽에는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담양 금성산성제 큰잔치"란다. 아래에서 안내하던 사람과 임도 끝에 주차해 있던 차량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 옆을 지나쳐 갈 길을 가다 보니, 팸플릿이 보여, 한 장 집어 배낭에 넣고 다시 길을 갔다. 이후 이 글을 쓰며 팸플릿을 보니, 볼만한 구경거리를 놓쳤다는 사실에 당시에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후회막급이다.
행사장을 떠나 평지나 다름없는 곳곳에 서 있는 돌탑을 감상하며 등산로로 전진해, 11시 23분에 북문 갈림길에 도착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당시에는 몰랐으나, 산행기를 쓰며 산악회 계획, 애초 내가 만들었던 계획과 실제 진행한 코스를 비교하다가 발견한 사실. 인솔 대장이 끊임없이 반복한 A, B 코스의 갈림길인 '북문'이라는 말이 메모리에 박혀 있어 동문으로 가야 할 걸 북문 방향으로 갔다. 애초 계획은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거다. 고로 북문으로 직진하는 것보다는 빙 도는 코스나, 그 중간에 몇 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물론 혼자만 한 실수가 아니라, 앞선 두 산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평지의 길을 따라 주변의 울긋불긋한 숲을 구경하며 나아가 11시 30분경 보국사 터에 도착했다. 보국서 터 아래에는 ‘휴당산방(休堂山房)’이라 쓴 현판이 걸린 허름한 집이 있었고, 그 앞 평상에는 관광객 3명이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멀리서 그 장면을 봤을 때는 간이매점이라 생각하고 막걸리나 한잔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아니었다.
보국사 터를 떠나 조금 더 가자, 돌계단이 나타났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또 등산객이 오는 거 같지도 않아, 구석으로 가 작은 볼일을 보며 앞을 보니 사과보다 좀 더 커 보이는 열매가 있었다. 호박도 아니고. 해서 하나 따 갈까 하다가, 누군가 키우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사진만 찍었다. 이후 우리의 지식인에게 그 열매의 정체에 관해 질문했고, 돌아온 답은 "하늘수박"이란다. 이후 구글링해서 찾아보니, 뿌리와 열매를 약재로 쓴다고. 그 하늘수박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가자 길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관광객과 주민을 위한 산책로였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등산로다. 가끔 깔딱도 나타나고,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곳도 몇 군데 있고. 그 길을 따라 20분가량 가자, 길지 않은 깔딱이 나타나 올라가자 성루가 보였다. 문제의 북문이다. 깔딱을 다 올라 현판을 보니 "천왕문(天王門)"이라 칭하는 북문이다. 지도에는 북문 터라고 적혀 있으니, 최근에 복구한 성루겠지? 천왕문 앞에 있는 성벽으로 다가가 주변을 둘러보자, 추월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는 올라야 할 산이다. 그리고 다시 성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이정표를 확인했다.
북문에 있는 이정표 어디에도 다음 목표인 강천산의 정상인 왕자봉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하려는 순간 앞섰던 산꾼이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순간 전체 지도의 영상이 머리에 떠오르는데, 강천산의 주 능선은 성 밖에 있어, 나가는 게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에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했다. 틀림없었다. 금성산성에 이르는 길이나, 산성 내의 길은 관광객이나, 주민을 위해 잘 다듬은 산책로였으나, 북문을 나서는 순간 원래 알고 있던 등산로로 바뀌었다. 물론 다른 산에 비하면 대단히 양호했지만. 기복은 있으나, 높지가 않아, 거의 평속 3km에 가깝게 가다 보니, 앞선 등산객이 보였다. 이 코스에선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별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앞에 봉우리가 보이는데, 길은 우회하고 있었다. 흔적으로 보건대 과거에는 봉우리를 넘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길을 차단하고 우회로를 만들었다. 누구 말대로 요즘 등산객은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는다고, 과거의 등산로는 관목이 우거져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디로 갈지 잠깐 망설이다가, 단독 산행이나 다름없어 그냥 상태 좋은 우회로로 갔다.
다시 그 등산객을 따라잡아 그 뒤를 따라가자, 그의 배낭에 달린 리본이 눈에 띄었다. 흰 천으로 만든 리본에 자필로 쓴 글이다. 그 글에 감탄하며, 자세히 보니 남들이 스틱이라 부르는 문명의 이기를 지팡이로 사용하는데, 그는 손수 만든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한때 내가 구례 화엄사에서 주운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던 거와 비슷했다. 그럴 정도로 산에 익숙한 산꾼인 거 같은데, 멜빵의 길이가 달라 배낭을 거의 왼쪽으로 치우치게 메고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뒤에서 따라가며 보는 내가 불편할 정도다. 본인이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거라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라, 뒤만 졸졸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건다. 혹시 북문에서 나온 이후 추월한 등산객이 있는지 물었다. 분명 자기를 따라오던 등산객이 있었는데, 그가 어디쯤 오는지 궁금하다고. 나에 앞서 성문을 나간 산꾼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아니어서, 난 당연히 그가 이 사람을 추월했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기를 추월한 사람은 없고, 자기와 나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모를 산꾼 얘기로 대화의 물꼬를 튼 둘은 이후 왕자봉까지 동행했다. 어느 정도 친해지자, ‘하얀리본’의 산꾼이 진심을 밝혔는데, 금성산성 안에서는 인파로 붐비다가, 왕자봉으로 향하는 등산로에 접어든 이후 앞뒤로 아무런 인적이 없어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깃대봉이 왕자봉에서 가깝다고 하니, 깃대봉에 같이 가자고도. 인솔 대장이 코스 소개를 할 때 깃대봉에 관해 언급해, 당시 지도를 보며 코스를 연구했었다. 대장은 거리가 얼마되지 않으니, 왕자봉에서 깃대봉까지 왕복 후 현수교 방향으로 하산하라고 권했으나, 갔던 길 돌아오는 왕복을 싫어하는 인간이라, 깃대봉에서 하산하는 코스가 있는지 확인했었고, 예상대로 있었다. 그런데 강천산 최고의 관람 구간인 계곡 지대를 우회해 거의 주차장 부근으로 하산하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왕복 시 가장 중요한 하산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가 확실치 않았다. 해서 일단 왕자봉 도착 시각을 보고 결정하자고 대답했다. 그런 얘기를 나누며 가 12시 42분에 형제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990m!
형제봉 삼거리에 가까워지자 여성의 고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형제봉 삼거리에서는 뚜렷이 들렸다. 분위기로 봐서는 구장군폭포 방향 어딘가 흥겨운 대화를 나누며 점심을 먹고 있는 팀이 있는 거 같았다. 이미 12시가 넘은 시각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배도 고팠던지라, 삼거리에 쓰러진 고목도 있고 해서 거기서 뭐 좀 먹고 가자고 하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조금 더 올라가자고 했다. 해서 왕자봉 방향으로 50여 미터를 가자, 적당히 앉을 수 있을 만한 너덜지대가 나타나, 거기에 자리를 잡고 각자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북문 방향에서 등산객 한 명 나타나, 삼거리에 앉아서 잠깐 뭘 하는 듯하더니, 우리를 지나쳐 왕자봉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모든 인적을 인멸하고 마지막 깔딱일지도 모르는 고개를 향해 올라 1시 정각에 ‘형제봉’이란 팻말이 있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팻말을 보고 형제봉이라 여기지, 봉우리보다는 고개다. 왕자봉까지의 거리는 750m로 아래 삼거리에서 고작 200m 올라왔을 뿐이나, 그 동안 하산하는 한무리의 청춘을 만났다.
형제봉을 떠나 다시 깔딱을 어느 정도 오르자, 왕자봉이 있을 거로 생각하는 위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길의 모습이나 방향으로 보아, 직진해서 위로 올라가는 건 정규 등산로, 오르막 없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길은 왕자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앞서가던 '하얀리본'이 어디로 갈까 하고 뒤로 돌아보자, 직진 방향을 가리켰다. 평소라면 지름길로 갔을 테지만, 왠지 직진하는 게 정답이라는 순간적인 감이 있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버리고 급경사는 아니나, 50여 미터의 경사를 올라가자 이정표가 나타났다. '왕자봉삼거리'다. 깃대봉 1.39km, 왕자봉 0.2km, 그때 시각이 1시 8분이다. 그걸 보고 하얀리본이 어차피 돌아와야 하니 깃대봉을 먼저 다녀오자고 했다. 당연한 얘기나, 왕복 2.78km의 기복을 전혀 알 수 없는 봉우리를 다녀와도 하산주 할 시간이 있을까로 잠깐 고민했다. 아무리 험해도 그 거리면 한 시간 내에 갔다 올 수 있고, 그럼 2시, 하산에 넉넉잡고 1시간 30분이면 한 시간 정도는 확보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해서 그에게 "그렇게 합시다!"라고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페이스를 높여서 깃대봉으로 향했다.
깃대봉으로 향하는 길은 기복이 거의 없고, 과장을 조금 보태 경차 정도는 다녀도 문제없었다. 고로 속도는 더 빨라져, 뒤를 따라오는 하얀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도로나 다름없는 길을 따라가며 좌우를 둘러봤는데, 외쪽은 전혀 보이는 게 없고,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숲 사이로 가끔 왕자봉의 모습이 보였다. 숲 사이로 보이는 모습은 특별할 게 없이 그저 해발 584m의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불과했다. 가끔 보이는 왕자봉의 모습을 감상하며 평지와 다름없는 속도로 걷다 보니, 앞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십여 명의 등산객이 등산로 한쪽 평지에 둘러앉아 한잔하며 점심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 옆을 지나 50여 미터를 가자, 등산 앱이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 50여 미터를 더 가자 이정표가 보이고 그 뒤로 또 10여 명이 넘어 보이는 등산객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봉우리 같지 않은 곳이 봉우리임이 틀림없어 정상석이 있나 둘러보았으나, 예상대로 없고, 다만 이정표 기둥에 깃대봉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 시각이 1시 18분으로 10 분만에 도착했다. 그런데 깃대봉에 있는 이정표는 왕자봉까지 1.16km란다!
그들 일행 중 한 명이 이정표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어 그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기고, 바로 뒤로 돌아, 올 때와 같은 속도로 왕자봉으로 향했다. 와중에 추월했던 같이 온 여성 등산객을 다시 만났고, 하얀리본도 만났다.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벌써 다녀오냐는 거였고, 내가 한 답은 50m 정도만 가면 정상이다는 말이다. 그와 교차해 왕자봉으로 향하며 앞을 보니, 아까 봤던 그 일행이 점심을 다 먹고, 짐을 싸고 있었다. 다시 그들을 지나쳐 이제는 왼쪽에 있는 왕자봉을 감상하며 달려 1시 29분에 왕자봉 삼거리로 돌아왔다. 1시간을 예상했는데, 20 분만에 다녀왔다. 애초 이정표의 거리가 잘못됐고, 기복이 전혀 없는 길이라 가능했다. 해서 인솔 대장이 반복해서 다녀오라고 권했을 거다. 삼거리를 지나 1시 33분에 이번 산행 처음 보는 정상석이 있는 왕자봉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예닐곱의 등산객이 점심을 먹거나, 인증을 찍거나,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먼저 정상석을 사진으로 찍고, 다른 등산객이 인증을 찍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례가 돌아와 정상석 앞에 있는 돌탑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인증을 남기려는 순간 하얀리본이 도착해 서로 인증을 찍어 준 후 다시 주변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고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급경사의 암릉 또는 너덜을 조심조심 2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전망대가 나타났다. 당연히 전망대에 서서 아래를 둘러보니 저 멀리 조그마하게 현수교가 보였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급경사의 너덜길로 하산하며, 올라오는 것 중 어느 게 힘들까 하는 전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강천산 관람 포인트가 계곡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인솔 대장이 계곡이 주 구간인 B 코스를 추천하며 아쉬운 사람은 계곡에서 왕자봉을 왕복하라고 권했었다. 물론 벌써 다녀간 등산객도 있겠지만, 하산하면 거꾸로 올라오는 사람이 몇 명인지 헤아렸다. 현수교 사거리에 도착할 때까지 4명이다.
원래 하산에는 자신 있어 거의 평지와 다름없이 내려가니, 어느 순간 하얀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앞서 내려간 대부분 등산객과 관광객을 추월해 1시 59분에 현수교 사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잘 보이지는 않으나, 군중의 웅성대는 소리, 물소리로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조용한 산행을 원했건만. 어쨌든 직진은 현수교, 좌는 날머리, 우는 구장군폭포다. 하산주 한잔할 1시간을 제외하고도 마감까지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절경이라는 계곡과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계곡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어디에나 있는 다리는 거르기로 했다. 우회전해 폭포 쪽으로 가니, 계곡에서 올라오는 가파른 철계단이 보이고 현수교로 가기 위해 몇 명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철계단 직전에 이정표가 있었는데, 직진하면 '용머리폭포'로 간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철계단으로 계곡으로 내려갈 거냐, 아니면, 용머리 폭포를 보고 돌아올 거냐 잠깐 고민 후 직진해 용머리로 갔다.
철계단을 지나, 좁은 등산로로 100여 미터를 가자 아래는 소고, 물이 흐른 흔적인 검은 암벽이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메마른 폭포다. 그리고 소가 끝나는 널찍한 평지에는 긴 나무 의자가 있었고, 거기에 앉아 한사람이 쉬고 있고, 그 옆에는 폭포 소개 글이라는 생각되는 것이 서 있어 다가가 내용을 봤다. 용머리폭포라 불리는 이유를 설명한 글인데, 아무리 봐도 용이나 용머리로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러려니 하고 등산로를 자세히 보니, 철계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직진하는 길이 있어 보여, 쉬고 있는 관광객이 아니라, 수많은 단풍 인파 때문에 휴일에 끌려 나온 안전요원에게 계속 가면 계곡으로 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직진하자,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다 내려가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도로다! 그나마 포장을 안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산책로 수준의 계곡 길이라 생각했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
계곡?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찍기 위해 돌다리로 건너며 상류로 오르자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폭포가 멀지 않았다. 그리고 폭포에 도착해서 보니, 쌍폭이다. 그 시각이 2시 10분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물어 용머리폭포는 폭포의 역할을 한 게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인데, 이렇게 풍부한 수량의 폭포라니. 번뜩 떠오르는 게 인솔 대장이 폭포에 관해 설명하다가 인공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혹시 이게 인공폭포가 아닐까? 그런데 주변 어디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명칭에 관해 설명한 글에도 폭포의 근원은 언급이 없었다. 그나마 그 글에서 하나 건진 건 구장군폭포가 옛 구(舊) 자의 구장군, 즉 옛날 장군이라 이해하고 있었는데, 옛 구가 아니라, 아홉 구(九), 즉 아홉 명의 장군 폭포라는 거. 이후 이글을 쓰며 구글링을 통해 인공폭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무 생각 없이 폭포를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긴 후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뒤편에 전망대가 따로 있었고, 상류에 폭포가 하나 더 있는 걸 발견했다. 그 폭포까지 가기는 귀찮아, 멀찍이 떨어져서 사진 한 장 찍고 계단으로 전망대로 올라가다가 계단 양옆 화단에서 의외의 꽃을 발견하고 놀랐다. 봄에 피어할 꽃이 가을 그것도 얼마 전 영하의 날씨를 기록한 이후에 꽃을 피웠다. 지난 가칠봉 산행[산행기]에서는 활짝 핀 개나리에 놀랐는데, 강천산은 철쭉이다. 사진으로 남긴 주변의 단풍과 (이론적으로는) 안 어울려야 하는 꽃임에도 썩 괜찮아 보였다. 어울리든 아니든, 피지 말아야 할 타이밍에 꽃을 피운 건 치명적 실수인데, 계절을 착각한 건 누구의 잘못일까? 그런데 전망대를 오락가락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수좌굴' 소개 글을 발견했다. 수좌굴에 관해서는 인솔 대장이 코스 설명 시 언급했는데, 최근에 개방했다며, 가능하면 들러보라고 했었다. 시간상 현수교는 거르기로 했으니,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수좌굴은 가보기로 했다.
구장군폭포(九將軍瀑布)에 대한 기대가 인공폭포가 아닐까 하는 의심 덕에, 대폭락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볼거리 수좌굴을 찾아 계곡 아니 개울 주변의 단풍을 구경하며 하류로 내려갔다. 물론 수좌굴의 위치와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와중에 우연히 고개를 들어 왼쪽 절벽을 바라보다가 절벽 중앙으로 향하는 데크 계단과 그걸 따라 한 줄로 늘어선 인간 띠를 발견했다. 정황상 수좌굴이다. 문제는 아래서 올려다보기에는 최소 300여 미터가 넘어 보인다는 거. 해서 살짝 고민하며 수좌굴로 향하는 들머리를 찾아 내려가 2시 18분 이정표가 있는 수좌굴 갈림길에 도착했다. 굴까지 70m! 200m가 넘으면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70m라 망설임 없이 바로 수좌굴로 향하는 급경사의 돌계단에 발을 디뎠다.
수좌굴로 향하는 돌계단은 산사태로 무너지고 떨어진 바위를 이용해 만든 거였다. 고로 최근에 개방했다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불안한 그 돌계단에는 나보단 앞선 한 떼의 아이가 오르고 있었다.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 6학년 정도로 보이는. 딱 봐도 단체로 온 건데,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하며 그 뒤를 따라가는데, 바로 내 앞에는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자기 반만 한 가방을 메고 올라가고 있었다. 해서 가방을 유심 살펴보니, 경희대 태권도장이다! 예상대로다. 힘들어 보임에 씩씩하게 잘 올라가는 그 녀석 뒤를 따라 수좌굴에 도착했는데, 그 친구를 끝으로 일행이 다 도착한 거 같았다. 젊은 원장은 이미 도착해 원생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친구가 도착하자 단체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내려갔다. 애들이 빠지고 난 한가한 굴을 둘러본 후 소원도 빌고 사진도 찍고 그들을 따라 내려갔다.
그 친구들 뒤를 따라가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었는데, 한 애가 친구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가족의 행복을 빌었다!'라는 그 친구의 말에 동생으로 보이는 녀석이 ‘난, 형이 날 괴롭히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애다운 소원이다! 돌계단을 다 내려와 꼬마 친구들과 헤어져 현수교 삼거리, 즉 용머리폭포를 향해 갈 때 아래로 뻗어 있었던 철계단을 지나 날머리인 주차장을 향해 미련 없이 갔다. 단풍과 잘 어울리는 윗용소를 지나자 미처 생각지도 못한 현수교 제2 갈림길이 나타났다. 현수교까지는 100m! 와중에 올라가는 길은 앞의 제1 갈림길 철계단과 달리 완경사의 데크 계단이다. 해서 시계를 보니, 2시 39분. 하산주 1시간을 제외해도 1시간이나 남았다. 밑으로 더 내려가 봐야 시간을 소비할 만한 게 없을 거 같다는 생각에 현수교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2시 39분 다시 현수교 사거리에 도착해 이번에는 구장군폭포가 아닌 현수교 방향으로 좌회전했다. 현수교에는 단체로 관광 온 노인네로 줄 서서 가야 했고, 당연히 일방통행이었다. 계속 밀려오는 관광객 덕에 현수교 중간에 서서 뭘 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 남들이 사진 찍느라 주춤하는 사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무섭기도 하고 뭐 볼 게 있을까 해서 아래는 보지도 않았는데, 현수교 중간에 있던 안전요원이 사진 찍는 노인네를 향해 '아래를 보세요, 꽃으로 꽃을 만들었어요!'라고 외치는 소리에 아래를 봤다. 그리고 몇 장 찍었다. 시간에 쫓긴 탓도 있겠지만, 현수교가 전망이 좋지는 않았고, 그저 공포심을 주는 용도라고 느껴졌다. 물론 내가 보고 싶었던 강천산 정상 왕자봉은 볼 수 있었지만. 현수교 끝에 도착해 철계단으로 위로 올라가 뒤돌아서서 현수교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500m 위에 있는 전망대는 버리고 데크 계단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주변을 둘러보며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거의 끝부분에 도달할 즈음에 반대편에서 남녀 한 쌍이 오고 있었다. 해서 그들에게 '일방통행입니다!'라고 친절하게 한마디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뒤를 보더니,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출입금지, 일방통행"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 나갔다. 사실 아까 구장군폭포를 구경하고 내려올 때 철계단이 아니라, 반대편으로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살폈는데, 그때 그 플래카드를 발견한 게 당시 현수교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다. 현수교까지 건넜으니, 강천산에서 즐길 건 다 즐겼다는 기쁨에 들떠 하산주가 기다리는 주차장을 향해 신나게 내려갔다. 와중에 순창 삼인대[기사]를 지나, 2시 58분에 강천사에 도착했다. 먼저 본존불에게 신고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늘 그렇듯이 절의 물맛을 보고 강천사를 떠났다.
계곡? 개울가에 펼쳐진 단풍을 구경하며 단풍 인파에 밀려 날머리를 향해 내려가, 3시 7분에 아랫용소를 지나, 메타세쿼이아 통로를 통과해 비가 오면 폭포가 된다는 '천우폭포'를 지났다. 당연히 현재는 용머리폭포와 같이 물이 흐른 검은 흔적을 자랑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3시 23분에 병풍폭포에 도착했다. 아무리 봐도 수원지가 있을 만한 곳이 없어,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역시 이것도 인공폭포다! 고로 최상류에 있다는 비룡폭포도 다르지 않을 거 같은데, 자연 폭포인 용머리, 천우는 메말라 있고, 구장군, 병풍은 인공이라 그나마 줄기차게 물을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어쨌든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구경하고 3시 27분에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는 거로 강천산 단풍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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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자 바로 주차장으로 3시 27분이면 늦었다면, 늦은 시각임에도 들어오는 차량과 나가는 차량, 와중에 통행 인파까지 일대 혼잡으로, 이게 코로나 시대의 국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애초 나야 코로나든 뭐든 원했던 바지만. 어쨌든 내게 중요한 건 예의상 5분 전에 버스에 도착하기로 하고, 그럼 50분 정도 하산주를 마실 수 있는 현지 맛집이다. 그런데, 유원지에서 맛집은 과분한 요구이고, 그저 떨어지지 않는 안주면 만족할 상황이라, 소형차 주차장을 벗어나, 대형차 주차장으로 가는 도로 양옆의 먹거리 거리에서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그중 문도 없이 내부가 환히 보이는 식당에 등산객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게 보였다. 물론 다른 식당은 내부가 보이지 않아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해서 망설임 없이 내부가 훤히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먼저 차림표를 들고 음식을 살펴봤는데, 애초 고추장의 고장 순창답게 고추장을 재료로 한 음식을 기대했는데, 없었다. 해서 어디를 가나 배신하지 않는 도토리묵 무침과 더덕구이를 놓고, 고민하다가 더덕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냉장고로 다가가 술의 종류를 살펴봤다. 소주야 당연한 거고 '순창 강천산 쌀막걸리'와 특히 '더덕 동동주'가 눈에 띄었다. 순간 묵무침이 아니라 더덕구이를 시킨 걸 후회했으나, 다시 동동주의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더덕 가루 0.099%라는 걸 보고, 목록에서 지워버렸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먼저 잎새주를 달라고 했으나, 잎새주는 전남 술이라 전북인 순창에는 없고 이슬이만 있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잔은 잎새주다! 하긴 지난 홍도 관광 때도 잎새주는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 조만간 대한민국에서 이슬이 외에 다른 소주는 마실 수 없을 듯.
더덕구이 정식이 나왔는데, 더덕구이보다 멸치젓갈 고추무침과 다른 반찬이 더 구미를 당겼다. 특히 묵이 반찬으로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있다가, 그럼 1차는 소주로, 2차는 도토리묵을 안주로 강천산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정식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찌개나 국이 없어, 국물은 안주냐고 물어보니 지금 끓이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끓인다'라 뭘까? 청국장이다. 이 집 대단히 마음에 든다. 내게는 최고의 안주로 소주를 자작하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안이 시끄럽다. 이 식당에 문이 없는 이유가 도로에 접해 간식인 핫도그 등을 팔고 있어서다. 그런데 한 무리의 애들이 몰려온 거다. 수좌굴에서 만난 태권도원들이다. 위의 식당에서는 준비하는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내려왔다는 게 원장의 말이고, 이에 대해 10초 내로 만들어 주겠다는 게 주인장의 답이었다.
식당의 모든 화력을 동원해 핫도그 하나씩을 든 애들이 나가고 나자 다시 조용해졌다. 더덕구이보다는 멸치젓갈과 고추무침(아, 이게 고추장 무침이다)을 주 안주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물론 더덕구이도 다 먹고, 주 안주가 떨어져 더 달라고 할까 하다가, 더 요청했다가는 소주를 더 마셔야 할 거 같아 자재하고, 2차로 막걸리를 주문해 한 병을 마시고, 4시 20분경 식당을 나섰다. 물론 술을 마시기 전 대형차량 주차장 위치를 이미 확인한 상태라 버스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4시 24분경 버스로 다가가자, 막 전화를 하던 인솔 대장이 늦었다고 뭐라고 한다. 이미 다른 승객은 다 탄 채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꽤 오래 기다린 거 같다. 해서 뭔 소리냐 마감 4시 30분보다 5분이나 일찍 왔는데 라고 고함치려다가 여성 대장이 울까 봐 인상만 팍 한번 써주고 내 자리가 앉았다.
이 산악회가 코로나 특수로 거의 과점 상태를 만들더니, 산악회비를 올려 가성비를 떨어트리고, 인솔 대장까지 멋대로 구는 게 배가 아주 부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는 들어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인솔 대장이 한 시간 늦게 도착하거나, 승객이 5분 일찍 도착했음에도 늦었다고 뭐라고 하고. 앞으로 이 산악회 진행 산행에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한, 같이 할 생각이 사라졌다.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어, 휴게소에 도착했다는 말에 잠이 깨어 나가보니 이안 휴게소다. 볼일을 보고 찬 바람을 쐬고 돌아다니다가, 버스로 돌아오니,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하얀리본이 커피 한잔하라는데, 괜찮다는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잠이 들었다. 휴게소를 떠난 버스가 8시 8분 출발지인 양재역에 도착하는 거로 막판 인솔 대장의 반응이 옥의 티였던 대단히 즐거운 강천산행이었다. 볼 거, 즐길 거, 먹을 거 모든 걸 만족한!
처음 계획이나, 산악회 계획과는 달리 '금성산성 주차장 → 연동사지 → 사랑바위 → 남문(보국문) → 충용문 → 보국사 터 → 북문 → 형제봉 삼거리 → 형제봉 → 왕자봉 삼거리 → 깃대봉 → 왕자봉 삼거리 → 강천산 왕자봉 → 현수교 사거리 → 용머리폭포 → 구장군폭포 → 수좌굴 → 현수교 갈림길 → 현수교 사거리 → 현수교 → 현수교 갈림길 → 강천사 → 비룡폭포 → 강천사 주차장'의 15.15km(트랭글), 4시간 52분의 호남의 소금강 강천산 단풍산행이었다. 이동 4시간 41분, 휴식 11분!
주변의 얘기와 경험으로 올해 단풍은 일말의 기대도 없었는데, 고정 관념을 깨버린 강천산이다.
비룡계곡에서 미처 생각지도 못한 관광 인파에 약간 당황했으나, 코로나가 끝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야유회 산행으로는 적격으로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21위를 차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관광이든 등산이든 한 번쯤 가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