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취미는 아니지만 / 최종호
“내 꿈은 직장 생활을 몇 년 하고 당구장을 차리는 거야.” 대학교 3학년에 다니면서 여자 친구에게 한 말이다. 물론 그녀는 내 포부가 너무 한심하다고 여겼는지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좋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 참새가 방앗간에 들르듯,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좀이 쑤셨다. 주중에는 친구들하고 어울렸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집 근처의 당구장에서 주인이나 혼자 온 사람과 게임을 즐겼다. 그만큼 푹 빠져 있었다.
무엇이든지 그렇지만 당구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연애하면서도 약속 시간을 넘긴 일이 허다했다. 게임이 늘어지면 도중에 그만두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여자 친구가 당구장으로 찾아오늘 일까지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으니 자주 놀러 가는 곳에 있을 것으로 짐작했단다. 약속마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큰 실수였는데 어떻게 만회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일로 크게 티격태격한 기억은 없다.
더욱 황당한 일은 친구의 결혼식 날에 벌어졌다. 예식 시간이 조금 지나서 친구들과 급한 발걸음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다음은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예식은 사회자가 바뀐 채로 진행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뒤쪽에서 하객 틈에 끼어 있었다. 신랑이 얼마나 애가 탔는지 사회를 맡기로 했던 친구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세게 치고 입장했다. 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화가 단단히 나 있었던 것이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사회자가 먼저 가서 하객에게 안내 방송을 하고 주례도 맞이해야 하는데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속이 탔으랴.
아침부터 당구장을 찾은 것이 잘못이었다. 결혼식 전날 저녁, 친구들과 여관에서 함께 지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니 시간 여유가 생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앗간에 들렀다. 시간 안에 끝낼 줄 알았는데 유독 두 친구가 오래 끌었다. 예식 시간이 다가와 그만하자고 해도 한 친구가 “쳐서 먹어.”라는 말을 되뇌며 승복하지 않았다. 사회를 맡은 친구가 어렵사리 게임을 끝냈으나 결국 지각하고 만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이 얘기가 안줏거리로 등장한다. 아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요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카페만큼이나 당시에는 당구장이 많았다. 세월이 흐르자, 한동안 줄어든 듯 보였는데 요즈음은 다시 웬만한 중소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당구공이 그려진 간판을 찾을 수 있다. 텔레비전의 영향 때문이리라. 프로 당구가 생겨 생중계까지 한다. 가끔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데 절묘하게 쿠션을 치는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가 관심 있게 보는 프로 선수는 ‘스롱 피아비’다.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여성인데 당구로 인생을 역전했다. 남편 따라 우연히 당구장에 가서 큐대를 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프로로 활동한다. 큰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여러 번 했으며 상금도 많이 받아 고국에 학교를 세우고 불우한 학생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의 조국에서는 스타로 대접받는다고 하니 그녀의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고 했던가. 대학에 다니면서는 그렇게나 좋아하던 당구도 발령이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들해졌다. 주변에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보는 눈은 있지만 실력은 많이 줄었다. 강약 조절과 끌고 미는 감각이 예전과 다르다. 하지만 그때 익혀 두었기에 퇴직하고 당구를 좋아하는 동기생들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남들처럼 화려하게 골프채 들고 살지는 않지만 취미와 여가 생활로 탁구와 당구를 즐길 수 있어 인생 2막이 초라하거나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