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김포공항 국제선 제한거리 2000㎞ 완화’를 주장하고 나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장관 서승환)의 반응이 주목된다. 한국공항공사는 인천공항을 제외한 김포공항, 제주공항, 김해공항 등 국내 14개 공항을 관할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다. 김석기 사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주(駐)오사카 한국총영사로 일했고 지난해 10월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됐다.
김 사장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토교통부가 금기로 삼던 김포공항 국제선 제한거리 2000㎞ 완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일본 하네다(도쿄), 간사이(오사카), 주부(나고야)와 중국 서우두(베이징), 홍차오(상하이), 대만 쑹산(타이베이) 등 동북아 3개국 6개 노선으로만 발이 묶인 김포공항의 국제선을 대폭 확충해 옛 국제공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인천공항은 국제선, 김포공항은 국내선이란 이원화 방침을 갖고 있고 이에 따라 김포공항의 국제선 기능 강화에 미온적 입장을 보였다. 김포공항의 기능 확대가 동북아 허브공항을 지향하는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잠식할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공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김포공항의 국제선 2000㎞ 제한 완화는 사실 국토교통부의 항공정책을 거스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지난 1월 14일 국토부에 대한 신년 업무보고 때도 김포공항 국제선 전세편 운영규정 개정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공항공사 업무보고에는 국토부 최정호 항공정책실장 등 핵심 관계자가 들어갔고 김 사장은 참석대상이 아니어서 불참했다. 한국공항공사 홍보실의 최찬섭 차장은 주간조선에 “국토부는 국제선 제한거리 완화를 요구하는 우리 입장을 잘 알고 있다”면서 “공항공사의 간판 하나를 바꾸려 해도 국토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 마케팅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공항공사가 국토부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고 국토부와 긴밀한 협의하에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김포공항의 2000㎞ 국제선 제한거리 완화가 안 되면, 현 규정으로도 취항 가능한 한·중·일 3국의 49개 도시만이라도 김포공항에서 취항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는 2000㎞ 내에 있는 한·중·일 49개 도시 중 6개 노선만 허용됐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주장에 표면적으로는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김완중 국제항공과장은 주간조선에 “5년 전 수립된 ‘1차 항공정책 기본계획’에 따라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육성하고 김포공항을 단거리 비즈니스 공항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에는 변화가 없다”라면서도 “만약 새로운 여건 변화가 있으면 올해 수립해 내년에 시행하게 될 새 항공계획에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정책 기본계획은 항공법에 따라 2009년 첫 수립된 우리나라 항공정책의 대계(大計)다. 항공 부문의 5개년 계획으로 2009년 수립돼 2010~2014년에 적용된다. 올해가 1차 항공정책 기본계획이 적용되는 마지막 해로, 내년부터는 2차 항공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사용한다. 김석기 사장은 이같이 5년 만에 한 번 찾아오는 정책변화 시점을 겨냥하고 있다. 김석기 사장은 지난해 오창환 전 공군작전사령관, 유한준 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항공기획관과 경합하다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행정학과 출신인 김 사장은 비(非)항공전문가로 항공·공군 출신들을 제치고 사장에 낙점됐다. 항공 관련 경력이 전무해 노조와 야당으로부터 ‘낙하산’이란 비난을 들었다. 일부 항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석기 사장의 김포공항 국제선 확대 의지는 일본 오사카 총영사 때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한다. 김석기 사장은 용산사태로 서울경찰청장에서 물러난 뒤 오사카 총영사로 일했다. 이때 오사카 간사이(關西)공항을 이용하며 도심과 먼 공항의 불편을 체감했다는 것. 오사카 남쪽 오사카만(灣) 인공섬에 있는 간사이공항은 오사카 도심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과 자동차로 1시간 이상 걸린다. 1994년 개항한 간사이공항은 일본 공항정책의 대표적 실패작이다. 간사이공항은 내륙에 있어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한 이타미(伊丹)공항의 대체 공항으로 구상됐다. 당초 여객 수요가 집중되는 오사카와 고베(神戶) 사이 해상(현 고베공항)을 염두에 뒀었다. 하지만 소음 피해 등 고베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오사카, 고베, 교토(京都) 등 간사이 지역 주요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오사카 남쪽 해상에 인공섬을 조성해 들어섰다. 간사이공항의 먼 입지 탓에 오사카의 구 공항인 이타미공항은 국내선 공항으로 존치됐다. 하지만 간사이 지역 최대 항만으로 비즈니스 수요가 많은 고베와 지나치게 먼 거리이고, 일본 동서 교통의 주축인 산요(山陽)신칸센(오사카~후쿠오카) 노선에서 비켜나 있는 점이 문제가 됐다. 결국 이러한 교통 불편에 고베시는 당초 오사카신공항(현 간사이공항)을 두려던 고베 남쪽 해상에 또 다른 인공섬을 만들어 2006년 고베공항을 새로 개항했다. 결국 간사이공항의 애당초 잘못된 입지 선정으로 일본 간사이 지역의 공항 역량이 간사이, 이타미, 고베 세 곳으로 분산됐고, 거듭된 중복투자가 이어진 통에 일본 공항정책의 대표적 실패 사례가 됐다. 김석기 사장의 김포공항의 국제선 기능강화론도 인천공항이 간사이공항처럼 도심과 멀다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사실 도심에서 1시간 거리 공항은 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같은 방향에 있음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더 멀어 보이는 것. 그렇다고 이미 8조원을 투입해 키워둔 인천공항을 팽개치고 김포공항의 국제선 기능을 부활시킬 수 없다는 데 국토교통부의 고민이 있다. 김포공항은 2001년 인천공항 개항과 함께 국제선 기능을 인천으로 전부 이관했다.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는 컨벤션센터, 영화관, 아웃렛으로 활용했다. 상업시설이 입점해 있어 지금은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의 절반가량만 공항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상업시설의 입점 기간이 거의 만료돼 가는 만큼 이들 사업장이 철수한 자리를 활용하면 국제선 시설을 두 배로 확충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공항공사의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공항공사 마케팅팀의 한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국제선 2000㎞ 거리제한 규정만 완화해 주면 수요 창출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김포공항에 그간 국제선을 허가한 후 한 번이라도 수요가 문제가 됐던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문제는 김포공항의 국제선 시설을 두 배로 확충하고 아무리 수요가 많아져도 주거지와 가까운 입지조건 탓에 24시간 풀가동을 못한다는 것이다. 김포공항은 주거지와 인접해 있어 이착륙 시 항공사고에 따른 2차 피해 우려가 있고, 항공기 소음문제로 24시간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 같은 이유로 김포공항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를 항공기 운항금지 시간으로 설정해 ‘반쪽 공항’ 노릇만 담당하고 있다. 결정적 문제는 김포공항의 국제선 기능을 확대하면 인천공항에 취항하던 항공사가 김포로 발길을 돌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모두 다 고만고만한 변방 공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 일정 규모가 되지 않으면 외국 항공사들이 직항노선 개설을 꺼린다. 결국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는 것. 영국 브리티시항공과 미국 아메리칸항공 등 메이저 항공사들도 2012년과 2013년부터 비로소 인천공항에 첫 취항했다. 국적 항공사들의 노선 독점으로 비싼 운임도 고착화된다. 2011년 김포~서우두(베이징) 노선 개설을 허가할 때 이런 문제가 터졌다. 국토교통부는 김포공항의 베이징 국제노선 개설을 허가하면서 인천공항의 이착륙 슬롯을 김포로 돌리는 자충수를 뒀다. 결국 인천공항의 베이징행 이착륙 슬롯은 줄어들었고, 반대로 서우두공항만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2개 노선을 동시에 품게 됐다. 국토부는 당시 중국과 항공 협상에서 “김포공항 국제선 개설 시 목적지의 제2공항과 연결한다”는 원칙마저 깨뜨렸다. 인천공항의 허브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천공항과 노선이 겹치지 않는 제2공항을 우선 연결하는 방침이다. 이에 베이징 노선 개설은 베이징 시내의 제2공항인 난위안(南苑)공항과 노선 개설을 추진해야 했음에도 ‘난위안 불가’란 중국 항공당국 방침을 우리 당국은 저자세로 수용했다. 우리 국토부가 베이징 서우두공항의 노선 경쟁력만 키워준 꼴이 된 셈이다. 서우두공항은 여객처리량 기준으로 미국 애틀랜타의 하츠필드 잭슨 공항에 이어 세계 2위 공항이다. 지금도 대한항공의 경우 양국 대표노선인 인천~베이징 노선이 주 11회밖에 없다. 과거 주 18회 운항하던 것을 7회나 줄여 김포~베이징 구간에 돌려막기한 탓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김포공항은 미주나 유럽행 국제선이 없어서 중국 지방공항의 환승 수요를 흡수할 수 없다”며 “환승수요 없이 국내 수요만으로는 국적 항공사는 변방 항공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석기 사장은 올해 김포공항 리모델링에 착수하며 ‘김포공항의 저가항공(LCC) 허브화’도 추진하고 있다. 김석기 사장은 인천공항 개항 전까지 김포공항의 옛 국내선 터미널이었던 이마트(김포공항점)를 저가항공 전용터미널로 조성할 복안으로 알려진다. 김포공항 옛 국내선 청사에는 한국공항공사를 비롯해 이마트와 우리들병원 등이 입주해 있다. 문제는 김포공항이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탁월한 입지조건으로 지대(地代)가 비싸 “저비용 항공사의 허브로는 적절치 않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 세계적으로도 도심과 가까운 공항을 비용에 덜 민감한 비즈니스 승객들을 위한 공항으로는 사용해도, 비용에 민감한 저비용 항공사에 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까닭에 일본 도쿄도 자동차로 2시간 내외의 이바라키현의 이바라키공항을 저가항공 공항으로 낙점해 왔다. 이에 국토교통부도 인천공항의 허브화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김포공항을 ‘(20인승 미만) 자가용 항공기’의 허브로 염두에 뒀었다. 대신 국토부는 저비용 항공 허브로 서울에서 공항버스로 1시간40분 거리의 청주공항 카드를 만지작거려 왔다. 풀서비스 항공사(FSC·대형 항공사) 허브인 인천공항이나 비즈니스 항공 허브인 김포공항 등 수도권 소재 공항과 비교해 지대가 저렴해 공항사용료 인하 등 비용절감 여지가 충분해서였다. 한국공항공사는 “김포공항에 저가항공 터미널에 들어서면 저가 항공사에서 환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의 김제철 항공정책기술본부장은 “여객수요 면에서는 수도권이 맞지만 저가항공 자체가 지방공항의 사용료를 파격적으로 낮춰서 들어서는 개념”이라며 “김포공항 저가항공 터미널에 저가 항공사들이 초기에는 환영했지만 지금은 공항사용료 부담 우려에 일부 저가 항공사들은 꺼리는 편”이라고 했다. 김포공항 기능 강화는 국내선 기능을 남기고 국제선 기능만 떼내 인천공항에 넘기면서 예견됐던 문제다. 당초 일각에서는 “김포공항의 국내선 기능까지 인천공항으로 넘겨도 제주를 제외한 국내선은 KTX고속열차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하지만 도심과 가까운 김포공항을 존치시키고 KTX의 서울~부산 2시간 내 주파가 무산되면서, 김포공항은 2003년 김포~하네다(도쿄) 복항을 시작으로 되살아났다. 결국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역할 조정 논란이 계속되며 서울이 도쿄의 공항이원화에 따른 전철을 답습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은 1978년 도쿄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지바현에 나리타(成田)신공항을 지었다. 하지만 도쿄 도심과 가까운 도쿄만(灣)의 하네다공항을 존치시킨 탓에 공항 역량이 나리타와 하네다로 분산돼 동북아 허브 기능을 인천공항에 이미 상당 부분 잠식당한 상태다. “나리타와 하네다의 사례가 한국서도 재현될 것”이란 것이 국토교통부의 우려다. 지금도 부산~인천 환승 전용 내항기 투입 같은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것도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기능이 분산된 탓이다. 2월에 수천억원을 들여 인천공항에 KTX를 투입하는 것도 결국 김포공항에 국내선 기능을 존치시켜 불거진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홍콩 카이탁공항처럼 당시 김포공항을 과감히 폐쇄하고 국내선 수요마저 인천공항에서 통합처리했다면 환승전용 내항기도, KTX 인천공항 투입도 애초부터 불필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은 1998년 카이탁공항의 기능을 첵랍콕공항으로 이전하면서 기존 공항을 폐쇄하는 초강수를 뒀다. 카이탁공항과 첵랍콕공항의 역할분담론을 애당초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홍콩 항공당국의 판단은 적중했고, 첵랍콕공항은 동북아 최대 허브공항이 됐다. 국토교통부가 적시한 인천공항의 주요 경쟁공항들은 덩치를 더 키워가는 추세다. 동남아 최대 허브인 창이공항은 기존 3개 터미널에 1개의 터미널을 추가해 2017년까지 4개 터미널로 확대재편한다. 동북아 최대 허브인 홍콩 첵랍콕공항도 제3활주로를 신설할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인천공항은 지난해에야 비로소 연간 이용객 4000만명을 돌파해 국제공항협의회(ACI)가 인정하는 ‘대형 공항’ 반열에 올라선 후발주자다. 국제공항협의회는 연간 국제여객을 기준으로 공항 등급을 분류해 왔다. 연간 이용객 2500만명 이하는 ‘소형 공항’, 2500만~4000만명은 ‘중형 공항’, 4000만명 이상은 ‘대형 공항’으로 분류했다. 인천공항은 연간 이용객이 4000만명이 안 돼 ‘중형 공항’으로, 김포공항은 2500만명이 안 돼 ‘소형 공항’으로 분류됐다. 인천공항은 여객처리량 기준으로 세계 29위 공항이다. 경쟁공항인 홍콩 첵랍콕공항(12위), 싱가포르 창이공항(15위)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공은 결국 올해 안에 제2차 항공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할 국토교통부로 넘어갔다. 한국교통연구원의 김제철 항공정책기술본부장은 “논란의 핵심은 인천공항이 ‘동북아 허브공항’이라는 소기의 건설 목적을 달성했으냐 못했느냐라는 판단의 문제”라며 “인천공항이 3단계 확장건설을 끝내고 6200만명의 여객 수요를 달성할 때까지는 인천공항에 좀 더 무게를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