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2)밤 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구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사연이 많은 가수 최백호씨는 인기곡도 많았지만 경제적으로는 한 때 궁핍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4년 "낭만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는데 전혀 가요계에서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 하지만 유명 드라마 작가 김수현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낭만에 대하여」를 듣게 되었고,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배우 장용의 대사에 이 노래를 삽입하자 대박이 나게 되었답니다. 최백호는 "낭만에 대하여" 덕분에 방송출연, 공연과 섭외가 많아지면서 비로소 경제적으로 안정을 얻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양주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6.25 동란 이후 미군부대 PX 등을 통해 소량이나마 위스키가 외부로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당시 위스키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유통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고, 대중들이 마시기에는 너무 비싸서 주로 부유층들을 중심으로 소량 유통되는 정도였습니다. 해방 후에 일본 산토리의 토리스 위스키가 인기를 끌게된 시기가 1949년 즈음이었죠. 부산경남지역의 항구는 그 토리스 위스키를 일본에서 싣고 온 밀수선들로 넘쳤는데 한국에서도 마치 미국이 금주법을 시행하던 시대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부산시 토성동에 있던 '국제양조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료와 색소, 주정을 배합하여 1956년 5월 일본 토리스 위스키의 이름을 그대로 베낀 "도리스"라는 짝퉁 위스키를 내놓았습니다. 말이 위스키지, 실제 위스키 원액은 단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았ㅅㅡㅂ니다. 물과 주정에다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과 식용색소를 첨가하여 만든 소위 '대중 양주'로, 이를테면 캪틴큐와 비슷한 술이었습니다. 다만 알코올 함량은 실제 위스키와 동일한 40%였습니다. 그러다 도리스 위스키를 만들었던 사장은 상품위조혐의로 구속... 그후 풀려나자 이 위스키의 이름을 도라지 위스키로 바꿨다고 ... 그것이 196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역시 위스키 성분과 도라지 성분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도라지 위스키는 부산에서 서울 월곡동으로 옮겨서 사세를 확장해 나갑니다. 나중에 국산 양주(위스키)들이 출시되면서 원액을 섞은 술이 출시되는데, 70년대에는 원액을 19.5%정도로 맞췄답니다. 원액이 20%가 넘어가면 세금이 200%로 오르기 때문에 고율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였지요. 다만 알콜은 40%였습니다.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도라지 위스키는 후발업체인 인삼위스키, 진로, 백화양조 등에서 진짜 위스키들을 출시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결국 1976년 보해양조에 주류제조면허를 매각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최백호씨의 회고담에 의하면 자신은 도라지 위스키를 맛본 마지막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궁핍하던 시절, 일반 서민들은 거피 한잔도 부담이 가는데, 술집에서 비싼 위스키는 엄두도 못냈습니다. 근데 다방에서는 공공연히 불법 영업을 하였으니 커피에 위스키를 섞어서 팔았던 것입니다. 메뉴의 이름은 "위스키 티" 또는 "위티"라고 불렀습니다. 위스키를 술집에서 마시는 것보다 다방에서 커피에 섞어서 마시면 휠씬 저렴하게 마실 수 있었지요. 그래도 비싼 위스키 커피였답니다. "여기 위티 한잔!"이라고 주문을 하면 주변사람들은 부러운 눈치를 보일 정도였다는데~여기에 들어가는 위스키가 '도라지 위스키'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