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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봄들녘의 게시판 스크랩 퍼온 글 야단법석.... 진오 스님
봄들녘 추천 0 조회 31 09.08.26 12:02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    진오 (眞悟) 스님과의 인연

 

지난 봄, TV방송에 어느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타큐멘타리 형식으로 방영 된 적이 있었다

그는 경상북도 구미시 인근에 있는 대둔사 주지 스님인데 스님 신분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조금 넘는 시간에 완주하고

철인삼종경기에 참가해 완주 하는 등 만능 스포츠맨 이면서 한편으론 구미공단 일대의 소외되고 피해 받고 있는

 해외 이주노동자와 가정폭력 피해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봉사 활동을 왕성히 펼치고 있었다.

 

마라톤이 남녀 노소가 다 즐기는 대중 스포츠가 되어 버린 요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 했다거나 철인삼종경기에

참가 했다는 것이 세인의 관심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스님 신분이라는 사실과 지방의 중소도시에 산재 되어 있는 생산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해외 이주 노동자와

최근 급증하는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좋은 일을 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었다.

 

지난 12월 초 해가 바뀌기 전에 찾아 뵙고 인사 드리고 싶었던 평소 존경하는 지인(知人)과의 대화 중에

우연히 진오스님이 화제가 되었고 그 분이 진오스님과 함께 마라톤도 하시고 금년 진오스님이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정착과 복지를 위해 이번 여름에 설립한 사단법인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감사(監事)를 맡고 계시다는 말씀에

내심 이것도 인연이구나 싶어 대화 중에 지인께 진오스님을 한 번 뵙고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연말에 이런 저런 스케줄과 행사 때문에 하루 이틀 미루다 보면 또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이 되 버릴 것 같아

다음 날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진오스님이 계신 구미로 향했다.

 

2.    구미시(龜尾市)의 첫 인상

 

초 겨울 아침 640분 강남 터미널을 출발한 고속버스는 정확히 9 30분에 구미에 도착 했다.

오전 11시 경에 구미에 도착해 연락 주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오겠다는 진오스님과의 어제 전화 통화도 있었지만

난생 처음 가는 구미시 였고 고속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도 아니어서 조금 서두른 것이 너무 빨리 목적지인 구미에 도착한 것이다.

구미에 내려서 진오스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아직 시내의 사회복지관이 아닌 대둔사에 계신 모양이다. 

대둔사에서 터미널 까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라고 하는데 아침부터 너무 번거롭게 해드리기 싫어서 내가 택시를 타고

사회복지관으로 직접 갈 테니 터미널로 나오시지 말라고 청하고 택시를 타고 금오 종합사회복지관으로 향했다.

 

 

                      (터미널 앞 거리풍경, 양쪽 도로변에 늘어선 택시의 행렬이 심한 불경기를 설명하는 듯 하다.) 

 

 

대통령의 고향땅인 이곳 금오산(金烏山) 자락인 구미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와 후원으로

70년대 중반부터 공업도시로 성장한 역사가 짧은 도시이고 현지 토박이 보다는 공업단지 성장으로 유입된

외지인들이 더 많아 독특한 향토색 보다는 잘 정비된 신도시나 공단의 전형적인 모습 이었지만

일국의 대통령을 배출한 구미시의 모산(母山) 금오산을 한 번 보고 싶었었다.

 

구미가 초행이라는 내 말에 구미시 소개를 열심히 하시는 50대 중반의 기사 양반

그의 말에 의하면 구미시는 예로부터 풍해, 수해가 없는 고장으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기후가 온화해서

큰 물난리나 태풍이나 폭설에 의한 피해가 별로 없다고 한다.  또한 공업도시지만 도시 주위의 논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로 타지에서 생산된 먹거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살만한 도시라고 자랑이 대단 하다.

 

한가지 문제라면 요즘 같은 경기 불황에는 경기에 민감한 제조업의 생산기지인 만큼 도시 전체가 분위기가 침체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문제라고 하는데 터미널 앞의 빈 택시 행렬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요즘 경기 불황이 대단한 모양이다.

 

3.    금오(金烏) 종합사회복지관

 

 

구미시 도량동 대로변에 위치한 금오 종합사회복지관. 각 각 화강암과 벽돌로 마감처리한 깔끔하고 아담한

3층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건물의 규모나 디자인이 주위 경관과 잘 조화 되어 아주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설립하여 조계종과 경상북도, 구미시 등 지자체의 지원과 많은 후원자들의 소액기부와 성금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무료 봉사로 운영 된다고 한다.

.

 

 

시설 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직원인지 자원봉사자 들인지 단순히 시설의 혜택을 받는 지역 주민인지 몰라도

모두 어쩌면 그리 표정이 밝고 인상이 좋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모두 좋아 보인다.

혼자 시설 이곳 저곳을 사진 찍고 있었더니 직원 한 사람이 알아보고는 다가와서 진오스님의 연락을 받았다고

나를 사회복지관 부관장 직함의 진오 스님 방으로 안내를 한다.

 

 

 

 

4.    진오(眞悟) 스님과의 다담(茶談)

 

마침내 나타나신 진오 스님.  아침부터 공연히 바쁘게 해 드린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대에 뛰고 철인삼종경기를 완주하는 건강체절의 스님 이신데 

진오 스님의 첫인상은 기대 했던 것 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약간 자란 스님 머리는 귀밑머리가 모두 백발이고 이마에는 깊이 주름 자국이 자리를 잡아 간다. 

속세 나이로 두 살 위인 내가 오히려 젊어 보인다고 할까

일인삼역을 하시는 요즘 생활이 많이 힘이 드시는 듯 했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

 

( 아단 법석..... 진오 스님 )

 

직접 차를 끓여 내어 주시며 인사와 덕담으로 대화를 시작 하였는데 서로 처음 대면 하는 사이였지만

워낙 활달 하시고 친화력이 있는 성격이시라 곧 오랜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 처럼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그 동안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 결혼 이주 여성들은 위해 애써온 이러저러한 이야기 애로사항들

그리고 문제점들..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스님, 어떤 계기로 이러한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

 

허허사실 창피한 이야기 입니다. 

10년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구미시 카톨릭 교회 신부님이 구미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인솔 해서

경주 불국사를 관광 시켜 주려는데 사찰 입장료를 면제 또는 할인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 하니까 불국사에 전화 한 통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신부님과 동행해서 해외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경주 불국사를 다녀 온적이 있었습니다. “

 

카톨릭이나 기독교 단체에서는 벌써 10년 전부터 그런 사업을 하고 있었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날 인솔한 해외노동자들 대부분이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출신들 이었는데

불교계에서 해야 할 일을 카톨릭 교회에서 하는 걸 보고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맞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 해도 우리 불교계가 이런 부분에 대한 관심이 좀 부족한 듯 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

 

우리나라는 다른 불교국가에 비해 현재 까지 선()을 매우 중요시 해서 다른 나라에 없는 엄격한 계율과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으로 인해 선승(禪僧)을 우대해서 자기 수행과 정진에 힘쓰는 스님들을 우러러 보는 반면

일반 대중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 삶의 아픔과 고단함을 보듬으며 제도하는 일에는 좀 소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 다시 말해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구보리와 하와중생이 분리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 같아서 한쪽이 소홀 하다거나 고장이 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는다 하면서 사람들과의 삶을 소홀히 한다면 진리로 향하는 길은 요원해 집니다. 

한편 깨달음을 얻기 위한 피나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또한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두가지 수래바퀴로 나아갈 때 우리는 불국토의 나라로 도달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진오 스님의 말씀에 공감 하면서 시설 안내를 해 주시겠다는 진오스님을 따라 나섰다.

 

5.    시설 견학

 

진오 스님을 따라 복지관 별관에 들어서니 1층 로비에 70~80대의 노인들이 약 100명 정도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인근의 독거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1층 현관을 통해 진오 스님이 들어서니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이 모두 인기 연예인을 기다리던

박수 부대 언니들 처럼 모두 박수를 치면서 반긴다.

 

 

스님은 이에 화답이나 하듯

 

왜 밥 빨리 안나와~~? “ 너스레를 떨면서

좋아 졌네 좋아 졌어~~ 몰라 보게 좋아 졌어~~”

 

박수를 치며 노래를 시작하니 그 자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인기 가수 콘서트장에 온 소녀들 처럼

스님의 노래와 박수를 따라 합창을 한다.

이번엔 한 템포 빠르게 다시 한 번 노래를 시작 한다.

스님의 박수, 노인들의 노랫소리가 함께 빨라 지면서 여기 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모두 즐겁고 행복해 본인다.

 

2층으로 올라가니 다문화 가족 지원센타 였다.

방문을 여니 결혼 이주 여성들이 후덕해 보이는 60대의 한국인 자원 봉사자와 함께 아이들은 돌보고 있다. 

무료 유치원, 탁아소인 것이다.

 

 

옆 방은 요리 강습을 하는 주방 시설이다.  인근에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한국 요리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모두 20대 초로 모이는 새댁 들인데 마치 재미 있는 놀이를 하듯이 다들 표정이 밝고 즐거워 보인다.

한국에 시집와서 한국인의 아이를 낳아준 그네들

그들은 분명 한국의 며느리 임은 물론 우리의 누이이고 우리의 딸이고 한국인의 어머니인 것이다.

 

 

 

또 한층을 올라가니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강좌, 취미생활 지원센타 였다.

방문을 여니 지역의 어르신들이 서예 삼매에 빠져 있다.

 

 

 

옆 방은 금년에 구미지역에 기반을 둔 어느 대기업의 지원으로 개국(開局) 하게 된 인터넷 방송국 이었다. 

나 역시 인터넷을 통해 불교방송을 열심히 듣고 있지만 방송이야 말로 대중 포교에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툴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대중 포교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또 많이 변신 하고 있음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이번엔 지하실로 안내 받았는데 지형을 이용해 지하실 인데도 자연채광이 되는 20~30평의 공간에 마련한

치매노인 요양 시설이다. 십 여명의 치매 노인이 자원 봉사자의 보살핌 속에 밝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6.    이주 노동자 쉼터와 죽향쉼터

 

 

    (좌측이 이주노동자 쉼터이고 우측이 금년 8월에 새로 개소한 죽향 쉼터이다.)

 

이번엔 차를 타고 이주 노동자 쉼터와 가정폭력 피해 결혼이주 여성을 위한 죽향 쉼터로 향했다. 

금오 종합사회복지관은 진오 스님이 부관장의 직함을 갖고 있지만 대한 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경상북도,

구미시가 운영 주체로서  공적 기관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주 노동자나 결혼 이주 여성을 위한 사단법인 꿈을 이루는 사람들 

진오스님의 순수한 열정과 자비행의 실천 의지로 오늘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주 노동자가 현재 불법 체류자의 신분임을 감안 하면 공적 기관에서 공적으로 지원을 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점도 있고 이주 여성근로자의 경우 한국에서 출산 하였을 경우 또는 가정 폭력의 피해를 입었을 경우

또는 해외이주민이 관련 된 형사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당 부서가 어디냐를 놓고 노동부, 행정안전부, 여성부, 법무부 등이 책임 소재를 따지기 시작 하다 보면

언제 일이 해결 될지 끝이 안 보이고 

그 동안 보호 받아야 할 이주민들은 피해 위험 속에 그냥 노출 내지는 방치되고 있는 실정 이었다.

 

 대로변의 아담한 2층 양옥집.  지난 봄 방송에 소개 되었을 당시 비가 새서 곰팡이로 얼룩져 있던 벽지를 보며

서러움에 복받쳐 울먹이시던 진오 스님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초라하고 허름하기 그지 없던 그 곳이 구미지역의 기업과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말끔히 새 단장을 하고

집 뒷면 공간을 활용 해서 증축 까지 한 상태 였다.

더욱이 지난 8월 옆에 식당 영업을 하던 같은 규모의 건물을 한 채 더 매입 해서 가정 폭력 피해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죽향(竹香) 쉼터를 개소 하였다.

크게 발원 하고 간절히 기도 정진 하면 그 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였던가?

진오 스님으 그 발원 하나 하나 성취되고 현실화 되어 가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머리가 숙여질 정도 였다.

 

      ( 진오 스님과 죽향쉼터 시설장 이정순 님.  본인이 이 곳 이주여성들의 친정 엄마를 자처하는 분이다.)

 

쉼터에 머물고 있는 여성들이 한국어 교육을 받기 위해 모두 출타 중이어서 그 분들을 직접 만나 볼 수는 없었지만

아주 잘 정리된 깔끔한 시설과 인상 좋은 한국인 직원들을 보니 그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본인이 죽향 쉼터에 머물고 있는 여성들의 친정 엄마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는 인상 좋으신 이정순 시설장님과

스리랑카에서 직접 한국에 파견 되어서 이 시설에 상주 하면서 통역은 물론

동남 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시는 산뜨시리 스님을 뵙고는 마음 든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주노동자 숙소 3층에 마련된 법당 - 마하붓타사.  스리랑카 승려 산뜨시리 스님, 진오 스님) 

 

 

죽향쉼터에서 진오 스님과 이 정순 시설장님께 점심 공양까지 대접 받고는 바쁘신 분 너무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이만 서울로 돌아 가겠다고 했다.

스님께 조심 스럽게 지금 내가 도울 일 뭐가 있을까 여쭤 보았다.

 

스님께서는 이번에 새로 개소한 죽향쉼터 건물을 매입 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서 지금 보다 많은 후원자들의 후원이 필요 하다고 하신다.

만원짜리 소액후원자가 1800명이 되는게 현재 목표라는 말씀을 하셨다.

거액의 기부나 후원도 좋지만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동참하는 것이 좋은 모습이라고 강조 하면서

나에게도 동참 하고 싶으면 월 만원의 후원금 자동이체 신청서를 하나 작성해 달라고 청하신다.

 

그 자리에서 월 5만원씩 후원 하기로 후원금 자동이체 신청서를 작성 하고

서울로 돌아 가서 뜻을 같이 할 친지들에게도 적극 권하기로 하고 신청서를 10장을 더 청했다.

 

그리고 준비해 간 보시금을 스님 필요 하신데 쓰시라고 내어 놓았다.

감사히 잘 받고 좋은데 쓰시겠다고 약속 하시면서

문 밖에 계시던 이정순 시설장에게 서울서 오신 처사(處士)님께서 후원 하신 보시금 이라고 소개 하고

봉투채 전 하신다.  이정순 시설장님은 그 자리에서 금액까지 확인 하시며 민망하게도 연신 감사 하다고

인사 하신다.  옆에 계시던 진오 스님은 이 후원금은 소득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는 말씀을 추가 하신다.

잠시 좀 당황 스럽고 쑥스러운 분위기가 연출 되었지만

큰 일을 하려면 매사 이렇게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싶어 진오 스님이 잘 하고 계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향 쉼터에서 스님과 이정순 시설장님을 비롯한 직원 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기왕에 구미 까지

내려 왔으니 도리사에도 한 번 가 보고 가능 하면 구미 종합사회복지관장이신 법등스님도 뵙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스리랑카에서 오신 산뜨시리 스님이 도리사에 들러 법등 스님을 뵐 일이 있으니 동행 하라신다.

 

초행길에 택시를 타고 갈 일이 좀 걱정이던 차에 진오 스님의 배려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뜨시리 스님은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작고 하셔서 임종도 지켜 드리지 못한 아버님의 제사에 참석하러

며칠 후 스리랑카로 귀국하는데 귀국 하기 전에 법등 큰스님께 귀국인사를 드리러 간단다.

 

7.    도리사 (桃李寺) 법등(法燈) 스님

 

불자임을 자처 하면서도 사실 도리사는 생전 들어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사찰이다.

그러나 도리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서기 417)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러 고구려에서 온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 포교를 위해 세웠다는 해동 불교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라 한다. 

하지만 당시의 전각이나 유물은 찾아 볼 수 없고 조선말에 중창 불사가 있었으나

6.25 전란 당시 많이 훼손 되었을 것이고 1980년 대 중반 법등스님이 주지를 맡으시면서

다시 크게 중창 된 느낌이다.

 

법등 스님은 현재 도리사의 주지와 금오 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을 맡고 계시면서  

대한 불교 조계종 호계원장을 맡고 계신 한국 불교의 큰 어른 중의 한 분 이시다.

 

               (법등스님 /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산뜨시리 스님과 함께 도리사의 법등스님 시봉스님의 안내로 법등스님이 계시는 후원의 큰 스님의 처소를 방문 했다.

큰 스님을 뵙고는 스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려 했으나 일 배 후 그만 하시라고 마다 하시면서 자

리를 권하시고 직접 물을 끓여 다구를 갖춰 차를 대접해 주신다.

 

큰 스님을 이렇게 직접 뵙게 돼서 영광 입니다.

진오 스님의 안내로 금오 종합사회복지관 시설과 이주 노동자 쉼터를 돌아 보았습니다. 

아주 짜임새 있게 운영 되고 있는 모습에 크게 감동 했고 불자로서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허허  자 차 드세요.”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과는 달리 큰 스님의 음성과 다구(茶具)를 다루시는 손 놀림은 너무 부드럽고 다정 하시다.

 

스님, 사실 우리 불교계가 이러한 사회복지 활동에 있어 그동안 타 종교에 비해 좀 부족 했던 감이 없지 않은데

우리 불교계에 금오 종합사회복지관이 아주 좋은 모델 케이스가 될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생각 하시는 앞으로의 큰 그림은 어떤게 있으신지요? “

 

허허허, 큰 그림이랄 건 없고….”

 

사실 우리 불교가 유구한 역사 속에 사회복지활동을 등한시 했다거나 소홀 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많은 사찰에서는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을 자연 스럽게 일반 대중들과 함께 생활 하게 하였고,

또한 많은 고아들을 데려다가 아무런 대가 없이 먹이고 가르치고 사회인으로 성장 시켰으며

그 중 인연 되는 사람들은 스님이 되기도 했지요.

다만 이러한 자비행, 보살행이 거창하게 봉사다 사회사업이다 포장 하지 않았던 것 뿐이지요.”

 

오늘 둘러 보신 사회복지 활동은 수 많은 재가불자(在家佛子)들의 시주물로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수행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자리이타 (自利利他)의 실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우쳤으나 열반에 머물지 말고 중생구제에 앞장 섰던 대승(大僧)이신 원효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주열반 자리이타 중생구제 (不住涅槃自利利他 衆生救濟)

를 말씀 하시는 것 이다.  자리이타행이야 말로 불교의 본질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제는 자연히 복지관에서 해외이주 노동자와 결혼이주 여성으로 옮겨 졌다.

 

우리나라도 60년대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독일에 간호사로 탄광의 탄부로 파견 되어

독일인 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 그 돈을 고국으로 송금 해서 오늘날 경제 발전에 이바지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당시 독일에 파견 되었던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지금 까지도 당시 현지의 독일인 들을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입니다. 

이는 비록 타국땅에서 거친 일들을 했지만 그 곳 현지인들에게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 하는 것 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난 11월에 불법 체류자를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검찰이 합동으로 경기도 마석에서 실시한 단속은 마치 짐승 사냥 하듯이 비인도적으로 이루어져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비록 불법체류자라 할 지라도 그래서는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인권유린의 현장 이었습니다.”

 

" 또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국제 결혼을 마치 상업적 매매혼(賣買婚) 처럼 사업화 하니 많은 문제점이 발생 했죠.

또한 한국인과 결혼 한 후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쉽게 적응 하지 못하는 결혼이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 때문에

한국에서는 물론 결혼 이주 여성들의 모국에서도 크게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몇 몇 국가에서는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은 일시 금지 시키기도 했다지 않습니까? " 

 

이런 일을 겪고 추방 되거나 나중에 귀국한 해외이주 노동자들이나 사회 적응에 실패한 결혼 이주 여성들이

한국에서 소외계층으로 전락해 버린 다면 그들의  우리 한국이나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어떨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들 모두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친근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잠시라도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려고 노력 하듯이 말입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한류(韓流)는 가수나 영화배우와 같은 연예인 몇사람이 만드는게 아닙니다.”

 

                                  ( 법등 스님.  주한 외교사절단과 함께  /  도리사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스님 말씀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께 너무 많은 시간을 뺏은 것 같아 좋은 말씀에 감사 드리고 스님 하시는 일에 미력이나마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돕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작별 인사를 드렸다.

 

큰 절을 올리려 했더니 이번에도 자리에서 일어 나셔서 손사래를 치시면서 마다 하시면서

악수나 한 번 하자고 손을 내미신다.  손이 따뜻하시다.

 

묵고 계시는 처소의 정원 밖까지 손수 배웅 하시는 스님께 합장하고 산뜨시리 스님과 함께 차를 타고

도리사 산문을 나와 시내로 나왔다산뜨시리 스님이 손수 운전하는 낡은 엑셀 승용차로 고속버스 터미널 까지 배웅해주셨다.

나중에 서울에 오실일이 있으시면 꼭 연락 한 번 주십사 청하고 스님과 헤어졌다.

 

 

8.    귀경길 차 안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보시행(布施行) 후에는 너무 마음이 편안하다.  남에게 도움을 준다고 가서는

오히려 얻어 오는 것이 더 많음을 항상 느낀다.

그래서 보시행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란 어느 스님 말씀에 공감한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명이 넘는 시대

100만명이면 우리 나라 주민등록인구의 2% 수준이다.

지난 해 외국인과 결혼한 결혼건수가 43천여건으로 전체 혼인의 13.6%를 차지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1960년대의 유럽의 상황과 흡사하다고 한다.

유럽국가는 2차 대전 이후 국내 출산율 저하 이에 따른 노동력 감소,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풍조 때문에

과거 식민지 출신의 젊은이들이 대거 입국해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다문화가정을 이루게 되고 아이를 출산하게 되고..

 

우리는 작년에 프랑스 파리 외각에서 벌어진 소외계층 청년들의 난동사건을 기억 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진행 되고 있는 다문화가정, 해외이주 노동자에 대한 노출된 문제점들을

빨리 치유하고 개선하지 않고 방치 한다면 30년 내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는

저명한 학자 루이스 램보 교수의 고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인구통계학적 예측이나 사회학적 예측 보다도

한국에 이주해온 외국인들에게 인권과 인격권

그리고 존중 받아야 할 한국인의 어머니로서의 지위,

무조건 사랑 받고 보호 받아야 하는 한국의 어린이로서의 권리를 생각해야 할 때 인 것이다.

 

                                                    2008.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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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8.26 12:05

    첫댓글 평소 다큐를 즐겨 보는데 EBS 다큐人에서 보고 너무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 스님이라...참 존경스럽습니다. 이런 스님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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