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리(南井里)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 위치한 리(里).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남정리, 아랫말 등이 있다. 남정리는 소댕산 남쪽에 큰 우물이 있어 생긴 지명으로 남정골이라고도 부른다. 아랫말은 남정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남정리(南井里)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있는 리(里).
마을이 잘 정리된 논밭에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 남정천이 흐른다. 마을이 사무실 남쪽이 되므로 남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사무실, 쇠섬, 예정, 하정 등이 있다. 사무실은 사무실골에 있는 마을이라 생긴 이름이다. 사무실골은 남정리와 신상리에 걸쳐 있는 큰 골짜기이다. 예정은 마을에 물이 차고 단 우물이 있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바닷가 마을이었는데 1962년도 이후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논이 만들어져 현재까지 갯벌이 함유된 미네랄이 풍부한 쌀을 생산하고 있다.
남정리(南井里)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에 있는 리(里).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전면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남산리, 정동과 마사면의 월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산과 정동의 이름을 따서 남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남살미, 공수굴, 새양골, 안골마을 등이 있다. 남살미마을은 남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남산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수굴마을은 남살미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때 공수전(公須田)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새양골마을은 공수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좋은 샘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안골마을은 공수굴 안쪽에 자리잡았다 하여 칭해지는 이름이다.
남정리(南亭里)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에 있는 리(里).
남해 바닷가에 위치한 해안 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축동, 장전, 월등, 남당, 중산, 고정, 신흥이 있다. 축동은 마을 지형이 소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장전은 과거에 장씨가 매우 넓은 밭은 소유해 30리를 걸어도 장씨의 밭이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월등은 마을 앞에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있고 뒷산 해월봉에서는 달이 오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당은 남쪽에 해당되며 바다로 산줄기가 쭉 빠져나와 못 가운데 있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중산은 봉두와 취령의 맥을 이은 중령산이 있어 산맥의 중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고정은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신흥은 간척지에 새로 들어선 마을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남정리(南亭里)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법정리(里).
남정리는 북쪽으로 능주평야를 접하고 있다. 남정리는 능주 평야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비교적 넓은 평야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지석천이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농경지의 형성과 농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쪽에는 능주 평야가 펼쳐져 있어 대부분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남쪽으로는 남서 방향으로 비봉산[255m]의 산지가 이어져 있어 도곡면 대곡리와 자연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남정리의 북쪽으로는 도곡면 죽청리, 동쪽으로는 능주면 원지리, 남쪽과 서쪽으로는 도곡면 대곡리가 이웃하고 있다.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는 정자·교촌·남평거리·봉룡 등 4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남정 마을·종방 마을은 남정 1리, 봉룡 마을은 남정 2리이다.
남정리는 1789년 『호구 총수』에는 능주목(綾州牧) 주내면(州內面) 정자리(亭子里), 교촌(校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867년에 『대동지지』에는 능주목 주내면,
-1895년에는 나주부(羅州府) 능주군(綾州郡) 주내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능주군 주내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 주내면 정자리(亭子里)·교촌(校村)·남거리(南巨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3년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하면서 화순군 주내면 정자리·교촌·남거리,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변경에 의해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교촌·남거리·정자리 각 일부]로 개편되었다.
남정리(南亭里)의 지명은 남평거리마을의 남(南)자와 정자촌(정잿몰)마을의 정(亭)자를 각각 취하여 남정리라 하였다. 정자촌 마을은 정잿몰이라 하는데 마을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정자촌 마을이라고 부른다. 북문통은 능주목의 북문으로 가는 길이므로 북문통이라 하였다.
남정리의 자연마을로는 정자마을(정잿몰, 1반, 북문통 포함), 교촌마을(2반, 뒷밭에마을 포함), 남평거리마을(3반, 새터골 포함), 봉룡마을(2리)이 있다. 정자촌은 마을에 큰 정자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정자촌이라 불린다. 교촌은 1392년에 건립하였다고 전해오는 능주향교가 위치하고 있어 이곳을 향교촌이라 부르다가 줄여서 교촌이라 한 것이다. 남거리는 원래 남평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하여 남평거리라 하였는데 이것이 줄어 남거리라 부르게 되었다. 봉룡은 비봉산의 봉자와 용암산의 용자를 합쳐서 봉룡이라 하였다. 특산물로 참외, 멜론, 양돈이 있고 주소득원은 쌀, 보리, 양돈이다. 교촌 마을은 1392년에 건립했다는 능주 향교가 위치하고 있어 향교촌이라 부르다가 줄여서 교촌이라 했다. 뒷밭에 마을은 이전에 밭이었으므로 그렇게 부른다. 남평거리 마을은 원래 남평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이것을 줄여 남거리 마을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새터골은 새로 형성된 마을의 뜻이다. 비봉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종방 마을은 남정리에 속하지만 일부는 정남리에 속하는 마을이기도 한다. 종방 마을은 원래 일제 강점기에 종연 방적 주식회사가 잠업 생산 증진을 위해 뽕나무를 심으면서 후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봉룡 마을은 비봉산의 봉자와 용암산의 용자를 가져와 봉룡(鳳龍)이라고 하였다. 남정리는 능주면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2.8㎢이며, 총 170가구에 남자 175명, 여자 171명으로 모두 34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1년 12월 기준).
남정 1리[남정·종방] 산업을 보면 주산물은 벼, 특산물은 토마토이다. 벼와 토마토는 남정 1리의 주소득원이다. 남정 2리[봉룡]의 산업을 보면 주산물은 벼이며, 특산물로 고추와 토마토를 재배한다. 주소득원은 벼·토마토·고추이다. 교통을 보면 능주면 정남리와 만나는 지점에 국도 29호선이 지나고 있어 광주광역시를 비롯해 춘양면과 이양면을 최단 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비봉산성, 능주 향교, 명륜당[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 124호],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 북문터, 삼효사, 현령 선시중 선정비, 현령 임옥산 청덕 선정비, 현령 이언양 영세 불망비, 현령 윤수 청덕 선정비, 현령 한여직 청덕비, 관찰사 이호준 선정비, 관찰사 이근호 불망비, 목사 금원립 청덕 선정비 등 목사 선정비 15기와 행목사 이호철 휴밀 선정비, 군수 이범구 선정비, 군수 손린용 영세 불망비, 행군수 박용훈 영세 불망비, 군수 금병숙 숭유흥학비, 군수 문병우 공적비, 능주 향교 중수비, 아석 문형태 장군 기적비, 전교 이병근 공적비, 고 거사 박공유 주시혜 추사비, 전 참봉 주형창 선기공비, 주내 김성 상옥 보시재 불망비, 김 진사 덕희지녀 상옥 보시 불망비, 애국지사 인봉 조준기 선생 기적비, 전 면장 근포 주기준 선생 순국 영모비, 은행나무[수령 600년], 능주 향교 소장 문서[1849년~1864년], 대림원 터, 청흥정 터, 당산나무점, 원님 부임 환영 풍악, 주막 터 등이 있다.
남정리(南亭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법정리(里).
남정리는 마을 주변으로 고도 100~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동쪽은 강구면 삼사리 천제봉(天祭峰)[77m]의 남쪽 사면이 골프장 시설로 개발되어 남정리까지 이르고 있다. 마을 앞으로 남정천(南亭川)이 굽이쳐 흘러 인접한 남호리에서 동해로 빠져나간다. 남동쪽은 남호리, 북서쪽은 중화리, 남서쪽은 우곡리, 북쪽은 강구면과 접하고 있다.
남정리는 본래 영덕군 외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정동이라 해서 영덕군 영덕면에 편입되었다.
-1934.4.1 군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정면에 편입되었다.
-1988.5.1 군조례 제972호에 의해 동을 리로 개칭하여 남정리가 되었다.
남정리는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의 북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남정리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남정·역마·남역, 서낭골, 갈미봉, 푸나무젓골마을 등이 있다. 남동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으로, 수산업과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조선 때 청하(淸河)의 송라역(松羅驛)에 딸린 남역(南驛)이 있었으므로 남역 또는 역마라 하다가 변하여 남정리라 하였다. 남정리(南亭里)는 조선시대 성종대인 1480년경 마을이 개척될 때 마을 남쪽에 정자를 지었다고 하여 '남정'이라 칭하였다. 또는 조선시대 청하현(淸河縣)의 송라역(松羅驛)에 딸린 남역(南驛)이 있었으므로 남역 또는 역마라고도 하였다.
역마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남정리의 그것과 같다. 서낭골마을은 서낭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갈미봉마을은 갈모처럼 생긴 산 앞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푸나무젓골마을은 풀나무가 많았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남정리의 면적은 3,349,528㎡이며(2020년 말 기준), 총 95가구에 148명[남 64명, 여 84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2021년 6월 기준).
논농사 중심의 농촌마을로, 마을 앞을 흐르는 남정천을 따라 유역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 산기슭에서 평야지대로 내려오면서 상당한 규모의 집촌이 형성되어 대부분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남정리와 중화리에 걸쳐 남정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어 남정리뿐만 아니라 남호리 들판까지 농업용수를 공급해준다. 마을 동쪽은 강구면 삼사리와 남정면 남정리·남호리에 걸쳐 조성된 오션비치골프앤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남정리는 조선시대까지 역로의 역참 중 남정역이 있었던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 마을 동쪽으로 강구면 중심지까지 도달하는 도로망이 개설되어 있어 동해선 철도의 강구역이나, 강구버스터미널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고, 남정리와 인접한 남호리 해안에 이르면 동해안을 종단하는 국도 제7호선이 통과하여 남쪽으로 경상북도 포항시, 북쪽으로 영덕군 강구면과 영덕읍으로 연결된다.
남정리(南亭里)
황해북도 금천군 북동부에 있는 리.
동쪽은 토산군 송천리(松川里)·석봉리(石峰里), 서쪽은 백마리(白馬里)·백양리(白陽里), 남쪽은 현내리(峴內里), 북쪽은 토산군 백화리(白花里)와 접한다.
금천군 우봉면 남정리·대오리가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통합되어 남정리가 되었다.
-1954년 10월 황해도가 황해남·북도로 분리되면서 황해북도에 속하였다.
전체적으로 야산이 군데군데 솟아 있는 구릉지대이며 중앙으로 구연천의 지류인 미당천이 흐른다. 산림은 전체면적의 79%이며 야산들은 8·15광복 이후에 조성된 잣나무숲으로 덮여 있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참나무·잣나무 등이다.
경작지 중 논이 12%, 밭이 71%, 과수원이 10%, 뽕밭이 4%를 차지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팥 등이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인민학교와 병원이 있다. 군소재지인 금천읍까지는 24㎞이다.
남정리(南井里)
황해남도 안악군 북부에 있는 리.
동쪽은 구와리(九瓦里), 서쪽은 판륙리(板六里), 남쪽은 복사리(伏獅里)·평정리(坪井里)·안악읍, 북쪽은 금강리(金岡里)·유성리(楡城里)와 접한다.
안악군 안악면 남정리·용석리(룡석리)·해창리가
-1952년 12월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통합되어 남정리가 되었다.
-1954년 10월 황해도가 황해남·북도로 분리되면서 황해남도에 속하였다.
남서부에는 돈짐산·삼서산 등의 야산들이 솟아 있고 그밖의 대부분 지역은 평야이다. 북쪽으로는 재령강의 지류인 직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직천 연안 남쪽 골짜기를 막아 건설한 관개용 저수지인 남정저수지가 있다. 산림은 전체면적의 19%를 차지한다.
경작지 중 논이 72%, 밭이 21%, 과수원이 3%, 뽕밭이 1%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 등이다. 주요 기관으로는 고등중학교·인민학교와 병원이 있다. 군소재지인 안악읍까지는 4㎞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