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하의 철원 경찰서 노동당사
3 ~ 4 년전만해도 민통선 내부 마을이라 출입이 용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완전개방되어 백마고지 앞에까지 갈수가 있습니다 한때는 어려운 시절도 있어지만 지금은 모두다가 부농을 이루어 집집마다 승용차가 한대이상 추럭이 한대 트럭터가 한대씩 필수인 최북단마을 대마리 마을입니다 철원 오대쌀중에서도 대마리, 월하리 오대쌀이 최고 상품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차를 세우길래 태워준일이 있는데 월하리에 사신다고 월하리까지 데려다 달라 하시기에 멀지만 돌아서 모셔드린적이 있습니다 농사를 얼마나 하십니까 했더니 조금합니다 얼마나 하시는 데요 한 삼만평 합니다 작게 하시는 집이 이정도입니다 많이 하시는 집은 오만평에서 이십만평을 농사합니다
노동당사 이건물은 1945, 8, 15 해방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통제 목적으로 건립하고 6, 25 전까지 사용한 북한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면을 떨친곳입니다 북한은 이건물을 지을때 성금이란 구실로 마을마다 백미200 가마씩을 착취하였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동원했고 건물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만 출입했습니다 시멘트와 벽돌 조적으로 지은 3 층 건물인데 당시는 이건물일대가 철원읍 중심 시가지였는데 6, 25 전쟁당시 건물들이 모두 파괴 인멸 되었는데 유독 이 건물만 남아있는것은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짐작할수 있는것입니다
공산치하 5 년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 고문, 학살, 등의 소름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 하였으며 한번 이곳에 끌려오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서 나올만치 무자비한 살륙을 저지른 곳이기도 합니다 이 건물 뒤편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 많은 실탄과 철사줄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해마다 육, 해, 공군 군악대와 KBS 교향악단이 동원된 평화음악회가 해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 근대문화유산등록 문화제 제 22 호로 지정 관라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하의 철원경찰서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위치한 철원경찰서는 건립년도는 알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의 식민통치기구에 의해 간행된 철원읍지에 의하면 1937, 당시 경찰본서의 인원은 34 명이었으며 철원역전 주재소를 비롯하여 관내 10 개 주재소와 한개의 출장소가 설립되어 있으며 주재소당 4 명의 경찰력을 배치하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광복후 일본이 물러간 후에는 소련군이 주둔하여 사령부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인공치하에서는 군내무서로 사용했습니다 6, 25 전쟁당시 노동당사와 더불어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었으나 후에는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는 경찰서 터만 남아 있습니다 .
그전에는 검문소있는 곳에 있었는데 건물을 새로지어 이동해 왔습니다
철원군에서는 안보관광코스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수와 정비 확장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평화음악회를 위하여 마당이 좁아서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진행중입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께 영광을 !!! 주님께 감사를 !!! 주님께 찬양을 !!! 주님 참으로 가사 합니다 !!!
국군횃불교회 담임목사 김 시 종 군선교사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