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 - 13세가 되었을 때 매우 영특하여, 여섯 마을의 왕으로 삼고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 전(全) 박씨의 시조. 휘 혁거세. 왕호(王號) 거서간(居西干). 비(妃)는 알영부인(閼英夫人). 《삼국사기》에 따르면, 일찍이 고조선의 유민(遺民)이 지금의 경상도 지방 산곡간(山谷間)에 흩어져 살면서, 양산촌(楊山村) ·고허촌(高墟村) ·진지촌(珍支村) ·대수촌(大樹村) ·가리촌(加利村) ·고야촌(高耶村) 등 여섯 마을을 형성하였다
광개토대왕 - 즉위 초부터 대방(帶方) 탈환전을 개시하여 백제의 북쪽을 진격하여서 석현(石峴) 등 10성을 함락하였고, 396년(광개토왕 6: 백제 아신왕)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으며, 왕제(王弟)와 대신 10인을 볼모로 삼아 개선하였다.
이사부 - 신라시대 장군. 541년(진흥왕 2) 병부(兵部)의 책임자이자 당시에는 상대등(上大等)·시중(侍中)을 겸할 수 있던 병부령(兵部令)이 되어 562년까지 실권을 장악하였다. 545년에는 국사 편찬을 제안하여 거칠부(居柒夫) 등이 《국사》를 편찬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백결 선생 -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다. 몹시 가난하여 어찌나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던지 세상에서는 “현순백결(懸百結:가난하여 입은 옷이 갈가리 찢어짐)”의 문자를 빌려 백결선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백결선생은 한점 흔들림이 없이 오직 거문고만을 사랑하여 모든 희로애락을 거문고로 풀었다. 어느 해 세모(歲暮)에 집집마다 울려나오는 떡방아 소리를 듣고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過歲)를 합니까”라고 근심하자 거문고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하였는데, 그 곡조가 후세에 전하여 《대악(樂)》이란 이름이 붙었다.
의자왕 -
의자(義慈)는 휘(諱)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允忠)으로 대야성(大耶城: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黨項城: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唐)나라로 가는 입조(入朝)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계백 -백제 말기의 장군. 일찍이 사로(仕路)에 나가 벼슬이 달솔(達率:제2품)에 이르렀다. 당시 신라가 한강 유역을 강점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나제동맹(羅濟同盟)이 결렬되자 백제는 고구려 ·일본 등과 친교를 맺고 신라에 대항하였다.
관창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의 화랑(花郞). 신라의 좌장군(左將軍)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수련을 쌓았으며, 15세 때 이미 말 타고 활 쏘는 데 능하여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에게 천거되었다.
김유신 -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장군. 본관 김해(金海). 아버지는 소판(蘇判)·대량주도독(大梁州都督)을 역임한 서현(舒玄), 어머니는 숙흘종(肅訖宗:葛文王 立宗의 아들)의 딸 만명(萬明). 본래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
통일 문무왕 - 신라의 제30대 왕(재위 661∼681). 성 김씨. 이름 법민(法敏). 태종무열왕 ·문명왕후(文明王后)의 맏아들, 비(妃)는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智略)이 많았다
원효대사 - 신라 때의 승려.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아명 서당(誓幢) ·신당(新幢). 압량(押梁:慶山郡) 출생.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648년(진덕여왕2)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혜초 -신라의 고승. 723년(성덕왕 22) 당나라 광저우[廣州]에 가서 인도의 승려 금강지(金剛智)의 제자가 된 뒤, 그의 권유로 나신국(裸身國)을 경유하여 인도 동해안에 도착, 불교 성적(聖跡)을 순례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감
장보고 - 신라의 무장. 일명 궁복(弓福)·궁파(弓巴). 일찍이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君小將)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奴婢)의 비참한 처우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귀국했다.
대조영 - 발해의 시조(재위 699~719), 고구려 유민. 본명 대조영(大祚榮). 고구려 멸망 뒤 당나라의 고구려 유민 분산정책에 따라 요하(遼河) 서쪽 영주(營州) 지방으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다.
강감찬 -고려시대의 명장. 본관 금주(衿州: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 은천(殷川).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서희 -고려의 외교가 ·문신. 본관 이천(利川). 자 염윤(廉允). 시호 장위(章威). 960년(광종 11) 문과에 급제, 광평원외랑(廣評員外郞)에 이어 내의시랑(內議侍郞)이 되었다
정중부 -고려시대의 무신. 본관 해주(海州). 인종 때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고, 의종 초 교위(校尉)를 거쳐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최무선 -고려 말, 조선 초의 발명가. 본관은 영주(永州:永川)이다. 왜구(倭寇)가 창궐하자 화약제조법의 필요성을 절감, 원나라 이원(李元)에게서 그 제조법을 배웠다
김부식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본관 경주. 자 입지(立之). 호 뇌천(雷川). 시호 문열(文烈).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경주의 주장(州長)인 위영(魏英)의 증손자.
지눌-고려의 승려. 조계종(曹溪宗) 개조(開祖). 속성 정(鄭). 호 목우자(牧牛子). 시호 불일보조(佛日普照). 서흥(瑞興) 출생
의천 -고려시대의 승려.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 자 의천. 시호 대각(大覺).
이종무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본관 장수(長水). 시호 양후(良厚). 1381년(우왕 7) 아버지와 함께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고 1397년(태조 6) 옹진만호(甕津萬戶) 때 왜구가 침입, 성을 포위하자 이를 격퇴하여 첨절제사(僉節制使)에 올랐다
정몽주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 연일(延日). 자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초명 몽란(夢蘭)·몽룡(夢龍). 시호 문충(文忠). 영천(永川) 출생.
문익점 -고려시대의 학자 ·문신. 본관 남평(南平). 자 일신(日新). 호 삼우당(三憂堂). 시호 충선(忠宣). 초명 익첨(益瞻). 강성현(江城縣: 경남 산청) 출생.
최충 -고려의 문신. 본관 해주(海州). 자 호연(浩然). 호 성재(惺齋) ·월포(月圃) ·방회재(放晦齋). 시호 문헌(文憲). 1005년(목종 8) 문과에 장원, 1011년(현종 2)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1013년 국사수찬관(國史修撰官) 때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칠대실록(七代實錄)》 편찬.
일연 - 고려시대의 승려 ·학자. 속성 김(金). 이름 견명(見明). 자 회연(晦然)·일연(一然). 호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 보각(普覺). 탑호 정조(靜照). 경상북도 경산(慶山) 출생.
최영 -고려의 명장 ·충신. 본관 동주(東州). 시호 무민(武愍).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 휘하에서 수차 왜구를 토벌, 우달치[于達赤:司門人]가 되었으며 1352년(공민왕 1)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하고, 호군(護軍)에 올랐다. 1354년 대호군(大護軍) 때 원(元)나라의 요 ...
황희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 장수(長水). 자 구부(懼夫). 호 방촌( 판 村). 초명 수로(壽老). 시호익성(翼成). 개성(開城) 출생.
맹사성 -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 본관 신창(新昌). 자 자명(自明). 호 고불(古佛) ·동포(東浦). 시호 문정(文貞). 온양(溫陽) 출생
장영실 -조선 전기 세종 때의 과학자. 본관 아산(牙山). 기녀 소생으로 동래현(東萊縣)의 관노(官奴) 출신. 과학적 재능이 있어 제련(製鍊) ·축성(築城)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나서 1423년(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발탁, 상의원(尙衣院) 별좌가 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었다.
신숙주 - 조선 전기의 학자 ·문신. 본관 고령(高靈). 자 범옹(泛翁), 호 보한재(保閑齋) ·희현당(希賢堂). 시호 문충(文忠).
한명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청주(淸州). 자 자준(子濬). 호 구정(鷗亭) ·사우당(四友堂). 시호 충성(忠成).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 ·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의 아버지
이율곡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이퇴계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 본관 진보(眞寶). 초명 서홍(瑞鴻). 자 경호(景浩). 초자 계호(季浩). 호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 문순(文純). 경북 예안(禮安) 출생
신사임당 -조선중기의 여류 서화가(書畵家).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사임당(師任堂:思任堂:師妊堂)·시임당(媤妊堂)·임사재(任師齋)이다.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이며,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곽재우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 현풍(玄風). 자 계수(季綏). 호 망우당(忘憂堂). 시호 충익(忠翼). 의령(宜寧) 출생.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조헌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 백천(白川). 자 여식(汝式). 호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시호 문열(文烈).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하생
김시민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 안동. 자 면오(勉吾). 시호 충무(忠武). 목천(木川) 출생.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 훈련원판관이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판서에 건의한 것이 채택되지 않아 관직을 버렸다
이순신 -조선시대의 명장. 본관 덕수(德水), 자 여해(汝諧), 시호 충무(忠武), 서울 출생이다. 임진왜란때 그 위세를 떨쳐 한산도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육신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악형(惡刑)에도 굴하지 않고 순사(殉死)한 조선 전기의 6총신
생육신 -조선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하자 세상에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사람.
논개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성 주(朱). 전북 장수(長水) 출생. 진주병사(晋州兵使) 최경회(崔慶會)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
권율 -조선 중기의 명장. 본관 안동. 자 언신(彦愼). 호 만취당(晩翠堂) ·모악(暮嶽). 시호 충장(忠莊).
홍길동 -적자로 태어나 온갓 무술과 도술을 익혀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훗날 율도국을 세우고 나중에 왕이 되는 '홍길동전' 의 주인공
임꺽정 -조선시대의 의적(義賊). 일명 거정(巨正). 양주(楊州)의 백정(白丁)이었으나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1559년(명종 14)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관아를 습격, 관원을 살해했다.
삼학사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세 학사.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등을 말한다.
박문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고령(高靈). 자 성보(成甫). 호 기은(耆隱). 시호 충헌(忠憲)
한석봉 -조선 중기의 서예가. 본관 삼화(三和). 자 경홍(景洪). 호 석봉(石峯) ·청사(淸沙). 개성 출생.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익혀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김삿갓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본관 안동(安東). 본명 병연(炳淵). 속칭 김삿갓. 자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 경기 양주 출생.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다.
김정호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본관 청도(淸道). 자 백원(伯元) ·백온(伯溫). 호 고산자(古山子). 황해도 출생. 어려서 서울로 이주하였고, 미천한 가문의 출신이었으나 학문을 열심히 닦았으며, 정밀한 지도의 작성에 뜻을 품고 전국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영조 -조선의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휘(諱) 금(昑). 자 광숙(光叔). 숙종이 양성(養性)이라는 헌호(軒號)를 내렸다.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 1699년(숙종 25) 6세 때 연잉군(延 燥 君)에 봉해지고, 172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정조 -조선의 제22대 왕. 이름 산( 姦 ). 자 형운(亨運). 호 홍재(弘齋).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惠嬪)이다
정약용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 ·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 襲 翁) ·태수(苔 戒 )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
전봉준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의 지도자. 초명 명숙(明叔), 별명 녹두장군(綠豆將軍). 전라북도 태인(泰仁) 출생.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된 후부터 사회개혁에 대한 뜻을 품게 되었다
김대건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순교자. 성인. 본관 김해. 세례명 안드레아. 아명(兒名) 재복(再福)·보명(譜名)·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牛江面) 출생. 증조부 진후(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1814년 순교함
황진이 -조선시대의 시인 ·명기(名妓).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고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홍경래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난의 최고지도자. 출신 지역은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多美洞).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봉기 당시 42∼43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옥균 -조선 후기의 정치가. 본관 안동(安東). 자 백온(伯溫). 호 고균(古筠) ·고우(古愚). 시호 충달(忠達).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주도하였다
안중근 -한말의 독립운동가. 본관 순흥(順興)이며, 아명 안응칠(安應七)이다.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다.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윤동주 -시인. 북간도(北間島) 출생.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도일,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경에 피체, 19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지석영 -조선 후기의 의사ㆍ문신ㆍ국문학자. 자 공윤(公胤). 호 송촌(松村). 본관 충주(忠州). 서울 출생.
손병희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호 의암(義菴).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충북 청주(淸州)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鍊性修道)하였다
유관순 -독립운동가로, 충청남도 천안(天安) 출생이다.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일제 총독에 의하여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즉각 고향으로 내려갔다.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오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안창호 -호는 도산(島山)이다.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방정환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호 소파(小波), 서울 출생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보성전문(普成專門)을 마친 후 도요[東洋]대학에서 철학과를 수학했다.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 청년구락부, 소년운동협의회 등을 조직하였다.
이수일,심순애 - 조중환의 소설『장한몽』에 등장하는 가상인물.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후에 영화로도 나왔음.
김두한 -한국의 정치가. 호 의송(義松). 서울 출생. 3·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의 아들이다. 서울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면서 주먹왕으로 군림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이상 -조선 중기의 산림(山林).학자. 본관 우봉(牛峯). 자 운거(雲擧)·숙우(叔羽). 호 타우(打寓). 시호 문목(文穆). 송시열(宋時烈)을 통해 김집(金集)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날개,종생기 등의 작품을 남겼다.
이중섭 -서양화가. 호 대향(大鄕). 평남 평양(平壤) 출생. 오산고보(五山高普)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다른님들이 "이수일과 심순애는 왜 나오죠?"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그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조중환의 소설『장한몽』에 나오는 가상 인물입니다.
그 줄거리를 알려드리자면
줄거리
주인공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런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공세로 그녀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한 번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서기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