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비 순량 순절비(忠婢順良殉節碑)
여기 곡강(曲江)은 신라 국가가 중사(中祀: 중간 규모의 제사)를 지낸 4방 하천 중 동쪽의 토지하<吐只河, 일명 참포(槧浦)>로 비정된다. 1719년 4월 24일 흥해읍 흥안리의 이씨 아가씨 몸종이던 순량이 북미질부성(北彌秩夫城)의 절벽 위에서 곡강의 관소(官沼) 물웅덩이에 빠져 자살한 주인의 주검을 안고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순량이 자결 전에 칭얼대며 따라오는 자식을 달래어 집으로 돌려보낸 사연은 눈물짓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1766년 8월에 흥해군수 조성(趙峸)이 순량의 충절과 의리를 기리기 위하여 비문을 글씨 쓰고 적었다.
이 비는 임진왜란 이후 해이해진 신분제와 사회 윤리를 다잡기 위하여 조선 국가가 충비(주인에게 충성한 여자 종)를 표창하였고, 조선 후기 사회에 노비 인구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포항에는 형산강에서 주인을 구하고 죽은 충비 갑련(甲連)을 기리기 위하여 왕명으로 1830년에 세운 비도 있다.
이씨 낭자의 자살 사유는 알 수 없지만, 그와 관련된 설화가 '영일읍지(迎日邑誌, 1929)', '일월향지(日月鄕誌, 1967)'에 실려 있다. 설화에는 화씨벽(和氏璧)과 선비가 등장하지만, '영일읍지'에는 순량의 주인이 기생 초옥(楚玉)이라고 하였다. 낙동강이 있는 의성 지역에도 동일한 설화가 전하고, 판소리 ‘변강쇠전’에는 화씨벽 사설이 나온다.
실무자: 색리(色吏: 아전) 정창신(鄭昌臣), 석수(石手) 윤탕이(尹湯伊), 야장(冶匠: 대장장이) 김기원(金起元).”(안내문 작성: 대동중학교 김희준 2012. 11. 15.)
******************
충비 순량이 순절한 물웅덩이
순량은 흥해군 북쪽 흥안리 이씨 아가씨의 몸종이다.
아가씨에게 남모를 원한이 있어서 이 물웅덩이에 빠져 죽었다.
여종이 뒤따라 뛰어내릴려고 하였는데
민망(난처)하게도 그 어린 자식이 뒤따라오므로
달래어 집에 돌아가게 하고서는
물웅덩이로 와서 주인 아가씨의 시신을 끌어안고 떨어져 죽었으니
곧 기해(숙종45, 1719)년 4월 24일의 일이었다.
그 48년 뒤인 숭정기원후 3째 병술(영조42, 1766)년 8월 일에
행 흥해군수 조 성이 글을 쓰고 그 일을 적는다.
順良 郡北 興安里 李娘婢也 娘有幽恨 沒
于是淵 婢欲下從 憫其稚子隨後 誘使歸
家 卽赴淵 抱娘屍而死 乃己亥四月二十
忠婢順良殉節之淵
四日也 後四十八年
崇禎三丙戌八月 日
行郡守 趙 峸 書而識之
*원문은 우에서 좌로 세로행으로 새겨짐.
*장소는 흥안리 뒷산 북미질부성 절벽 아래 흥해군 관아에서 배를 대는 곳으로 쓰인 곳의
곡강 참포 관소(曲江 斬浦 官沼)가 몸을 날려 죽은 연소이고
그 맞은편 바위벽에 비문이 새겨져 있음.
*2008년 4월 13일 박창원, 장태원, 김병례, 이순영, 윤종희, 김희준 현장 재차 답사.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64/5_cafe_2008_04_13_22_45_48020e5eca1f9)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64/10_cafe_2008_04_13_22_45_48020e080fbc6)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64/12_cafe_2008_04_13_22_45_48020e314771d)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67/1_cafe_2008_04_21_20_45_480c7e5b86fdd)
色吏-鄭昌臣
冶匠-尹湯伊
石手-金起元
첫댓글 어제 이 걸 본 후로 이 비의 사연이 자꾸 맘에 걸렸습니다. 그 짧은 비문의 글귀에서 어쩌면 그 아가씨보다 더 많은 한을 안고 죽은 순량의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200여년 전 사건의 흔적만으로 그 시대를 다 알수는 없겠지요. 미국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이라던가 하는 인권차원에서의 이야기를 그려 봤습니다. 집으로 돌려보낸 그 어린 자식을 두고 순량이 그렇게 시퍼런 강물로 몸을 던진 사연도 뭔가 더 있을 듯 하구요.. 여기서 이야기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릅니다... 어쩌면 그 순량이와 죽은 이아가씨는 그저 그런 주종 관계는 아닐거라는 나름은 추측과 상상을 하자 종의 몸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야 했던 순량의 인생
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잡힐듯 했습니다. 홍길동을 낳았던 그 노비 어머니... 길동이 호부호형을 못했던 것만 진정 신분사회의 아픔이었겠습니까. 조선이라는 나라는 여성에겐 이슬람사회보다 더한 억압을 강요한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비순량순절지연' 의 그 강물 색은 제게는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차라리 김희준 선생님이 이처럼 명확하게 밝혀주기 전, 박창원 선생님의 프린트물에서 저는 좀 다른 매력에 빠져있었습니다.
흥해군수가 자신의 친구라는 그 빽을 믿고 눈에 들어온 아가씨를 희롱해보려던 그 경주 서생에게 흥해아가씨의 드높은 자존심을 느낄 수 있어 좋았거던요. 일개 경주의 썩은 선비와 어울릴소냐! 진나라 열다섯 개 성과도 바꿀 수 없이 보배로운 내가... 하는... 얼마나 맹랑하고 깜찍한 답시던지... 나는 곧바로 그 이씨 아가씨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너는 석자 칼이 아닐진데, 몇 장부의 간장을 끊느뇨 >위의 시는 그 경주 선비가 여자가 뭘 알까 하고 던졌다던 시지요. 이 시를 보면 위 이씨 아가씨는 흥해에서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끓일 정도로 대단한 여자라는 게 증명이 됩니다. 이정도만 해야지요. 제게는 마지막 이 답사에서 오늘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참 눈에 새길수록 알면 알수록 흥해는 흥미롭고 매력있는 곳입니다. 흥해에 이십년 가까이 살았던 일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점 흥해를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 답사를 계획하시고 좋은 곳을 안내해주셨던 신, 구 회장님과 장선생님, 음료와 다과를 준비하신 총무님. 동행한 무울님.. 두루 감사드립
니다~~ 글자가 끊겼어요.^^ 좋은 계절에 문우들과 (사실은 모두 선생님들..) 의미있는 답사를 했던 일을 오래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가씨의 답시 이야기는 일단 사실이 아니고 날조이니 그 부분은 배제하셔야 하고, 순량은 시대 정신의 희생물이겠지요. 시대 정신의 희생물인만치 우리시대 여성들이 위령제라도 올릴만하고요. 낭자는 아마도 우울증이나 상사병 같은 남모를 원한이 맺힌 것일테고요. 상상력을 동원하여 좋은 소설 한 편 써 보세요. 참으로 묘한 현장으로 저두 이성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역사와 문학이 교차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조선시대는 사회사적으로 보아 노예제 사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집집마다 노비들이 있었을 정도였어요. 안타까운 것은 그 물이 맑았더라면 포항이 가진 둘도 없는 정신적 명소가 될 수 있는 곳인데....하수처리장을 위쪽
여인들도 말타고 남녀관계가 자유롭고, 이혼도 자유롭고, 재산상속도 남녀별로 동등하고, 족보에 아들 딸이 나란히 올라가고 하였던 고려-조선 전기 사회가 점차로 성리학 유교 사회가 되면서 남녀 내외 분별이되고 주거공간에 사랑채도 생기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이후로 오면 대외적으로 소중화주의에 매몰되고 대내적으로 성리학적인 세계관이 확고히 자리잡으면서 부계 직계 사회가 되어 집안엔 적서차별 사회적으론 반상차별, 남녀차별이 심해지지요. 본래는 구별(분별)이었지만 결국 차별화 되고 만 것인지요. 그런데, 조선만 이러한 것이 아니고 이슬람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도 영국도 마찬가지였어요.
중세 서유럽 기독교 봉건 사회에서 농민은 인권이고 뭐고 없는 농노이고, 여자는 사제도 될 수 없고 교회에서는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쓰야 했고요. 갈릴레이나 잔다르크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화형당하거나 당할 뻔 하였던 모든 것이 신 중심인 암흑의 사회였지요. 이슬람 사회에 부토 같은 여성 수상이 나올 때 미국엔 이제 힐러리 같은 여성 대통령이 탄생될까 말까하고 흑인 대통령이 나올려고 하지만, 인권이니 민주니 자유니 이런 것은 백인 소수 지배자들에개나 해당되지 천만명의 아프르카 흑인 노예들에게는 전혀 해당치 않아요. 영국이 1960년대에 와서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허락되었어요.
링컨이 남북전쟁에서 북군(공업노동자가 필요했다)이 남군(농업 노예가 필요)에게 승리할 필요에서 노예 해방을 단행한 것에 비해 1860년 수운 선생은 집의 여종 둘을 해방해 하나는 며느리로 하나는 딸로 삼았고, 해월 선생은 어린이와 여인을 하늘님으로 존대하였지 않아요. 우리들의 역사관은 일제식민사관을 계승하고 미국화(개신기독교, 인권, 법, 가족제,개인주의, 민주, 교육, 자본주의...)되고 있는 이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함정에 빠지기 쉬워요. 미국의 백인 사회는 흑인을 얼마나 핍박했으면 엘에이 폭동이나 재즈음악이나 킹 목사 같은 사람이 나오겠어요. 역사를 단순하게 해석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문학이란 것도 결국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순량과 주인 아씨, 그리고 어린 아들의 그 실존적인 고뇌의 문제를 주제로 치열한 인간 삶의 한 모습을 언어예술인 문학으로 형상화하여 보세요. 김동리의 무녀도 배경이 된 곳이 경주 동국대 앞의 형산강 절벽 아래 애기청소인데, 아씨와 순량의 역사가 형산강 참포 관소에서 있었으니, 형산강 절벽에도 배를 정박하는 바위 시설이 있었는데 여기도 그렇고 형산강 절벽에 암각화가 있고 그곳에서 남녀가 데이드하다가 암각화를 발견했는데, 여기도 북미질부성이 있고 공동묘지와 바다와 곤륜산 암각화가 있으니....역사와 문학과 인간이라고 하는 영원한 주제들이 제 맘속에서
샘솟고 소용돌이치고 파도치니...아일랜드의 노린 본 아씨가 생각키고...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망하고 없는 명나라 마지막 활제 숭정제 연호를 쓰고 중화주의에 매몰되고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가 되고 극단적인 성리학 이데올로기 사회로 편협하게 되었듯이 한국은 일제의 대동아전쟁(2차대전인 태평양전쟁)과 냉전체제의 화약고가 된 한국전쟁을 겪으며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 사회로 경직되고 일본화에서 급격히 미국을 섬기고 미국화(북한은 급격히 중국의 손아귀에 장악되고)되고 있는 것이 많이 대비되어요. 아가씨는 마음의 불(홧병)을 시퍼런 참포 관소의 물에 뛰어들어 끄고, 신라의 선덕여왕을 사모하다 상사병에 걸린 지귀는 영묘사 절에가서 잠들고 가슴의 불이 타올라 절을 태우고....
틱낫한 스님은 정념수행으로 인간의 감정중에 우리 몸을 불태우고 마는 '화'를 잠재우고 우리에게 자유와 행복의 선물을 주시고..
흥안리의 연당을 시멘트 동회관으로 탈바꿈한 폭거에 한 숨이 나오고, 회관 앞의 우물물로 작은 위안을 받았어요. 근대의 이성과 자본이 파괴시킨 인간 존재의 원형질(집단무의식)과 신비로움을 담보한 연못과 우물물. 오호, 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