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청 (山淸)
방송일시: 2010. 5. 17(월) ~ 2010. 5. 21(금)
기획: 류 재 호
구성: 안 영 하
촬영: 정 석 호
연출: 강 대 국 (박앤박 미디어 070-6280-5970)
지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1915m 천왕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지리산 동쪽 마을,
산이 많아 뫼 산(山)에 그늘 음(陰) 산음이라 불렸던,
산의 그늘로 가득한 땅, 산청이다.
산청 사람의 삶은 산 안에 그리고 산 둘레에 응축되어 있다.
그 옛날 산속에 밭을 일구고 벌목해 숯을 만들었던 화전민들이 살던 곳에서는
차가운 지리산의 기류가 만든 당도 높은 감들이 익어가고,
해발 600m 고지의 오지마을 약초꾼은 40여 년 동안
오랜 세월 산그늘 아래서 자라나는 지리산 야생약초를 찾아 나서고 있다.
지리산 야생화의 꿀을 먹고 마을로 돌아오는 벌들이 모아둔 토종꿀을 키우는 사람,
산을 타고 내려온 맑은 물에 사는 다슬기를 잡으며
사는 사람까지 모두 산에 둘러싸여 산다.
산에 모여들고 산그늘이 내려앉는 산 둘레에서 사는 산청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1부> 지리산 둘레를 걷다.
백두대간을 걷는 ‘대간꾼’, 제주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에 이어
지리산 길을 걷는 자들을 ‘둘레꾼’이라 부른다.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수철 마을을 시작으로 함양 동강에 이르기까지. 약 11.9km.
지리산 둘레길 제 5구간인 산청 구간은 금서면의 수철, 쌍재, 방곡 마을을 아우른다.
지리산 산골짜기. 사람들이라곤 마을 사람들 밖에 보이지 않았던 산청군 금서면의
마을에 최근 둘레꾼들이 찾아오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팽이나무와 삼나무 숲으로 우거진 지리산의 청명함과 싸리꽃, 금낭화 같은
아름다운 야생화들은 지리산 둘레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30여 가구가 살았던 쌍재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한 집.
석재규, 최윤미 씨 부부는 그 옛날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절.
주막이 많았던 그 터에 다시 주막을 열어 막걸리 한 사발과 손두부로
둘레꾼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지리산 산청 구간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상사폭포에 발을 담그면
어린 시절 옛 추억들은 저절로 떠오른다.
그 옛날 고단했던 시절, 나물과 먹을 것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다녔던
박정선 할머니의 길은 50여 년이 흘러 새로운 주인에게 또 다른 길을 내어주고 있다.
지리산의 산죽과 흙을 재료로 해 아담한 토담집을 만들고 있는 할머니는
지리산 둘레길의 품 안에 오래도록 살고 싶은 꿈을 꿔 본다.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쉬어가는 길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 옛날 수도 없이 걸어야만 했던 둘레길.
오늘도 지리산을 찾은 둘레꾼과 지리산 산청 사람들은 그 길을 걷는다.
<2부> 약초 찾아 산으로 들어왔네.
지리산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부를 만큼 해발 600여 미터의 고지에 위치한 오봉마을.
산 깊고, 물 맑은 산청에서도 대표적인 오지로 손꼽히는 산골 오봉마을에는
40년 약초꾼 인생을 마다하지 않고 살고 있는 민대호 씨가 살고 있다.
집 안팎으로 가득 채운 꾸러미들에는 40여 년 동안 산청의 지리산을 수도 없이 오르며
하나하나 모은 민대호 씨 부부의 귀한 약초들이 한 가득이다.
그 옛날 산음(山陰)이라 불리었을 만큼
숲이 잘 우거져 일조시간이 짧고 일교차도 큰 지리산 자락.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 번식하고 성장한 지리산의 야생 약초들은
40년 약초꾼의 눈길, 손길을 피할 수 없다.
영산의 기운을 품고 자란 10년은 족히 넘은 백작약,
그 옛날 사약으로 쓰였던 초오 뿌리며.
고무장화를 신고 20m 나무 위로 성큼성큼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추운 겨울을 이겨낸 겨우살이를 찾아낸다.
송아지 나물 위에 밥과 된장만 얹어 지리산 능선을 보며
먹는 점심은 그 어떤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한나절 내내 캐온 모든 산나물과 약초를 정리하고
지난봄부터 수확한 산나물과 약초를 모두 팔러나가는 날.
약초꾼 부부의 1년 농사 날인 산청의 한방약초축제 현장이다.
40년 약초꾼 부부의 지리산 약초를 닮은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본다.
<3부> 다섯 가구 외 출입금지
지리산 반달곰을 방사했던, 지리산의 숨어있는 마지막 비경이라고 일컬어지는 곳.
골짜기가 길고 깊다는 이름의 ‘장당골’이다.
그 옛날 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와 밭을 일구고 숯을 만들며 살았던
화전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기도 한 장당골.
한 때는 30여 가구 넘게 살았던 장당골 사람들이 아랫마을인 대포마을로 이주해와
살면서 10여 년 전부터는 장당골에 유일하게 한 집만이 남아 골을 지키며 살고 있다.
산청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장당골은 장당골 계곡 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고,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아궁이로 불을 지펴가며, 전기도 없이 촛불을 켜서 생활한다.
불편한 생활이지만 화전민이었던 부모님의 부모님 대대로 일궈왔던 밭에서
부부는 감나무를 키우고, 고추 모종을 심으며 장당골의 산과 계곡, 자연이 주는 산물로
자급자족의 생활이 가능한 비경 속의 비밀 터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단,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가구는 다섯 가구.
장당골의 유일한 집에 사는 김산옥 씨 부부와 함께
장당골에서 대대로 밭을 일궈와 지금도 그곳에서 감나무 밭을 일구어 나가는 집은
네 가구, 그렇게 다섯 가구만이 장당골에 출입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비밀의 화원에 올라가듯, 다섯 가구 다섯 개의 열쇠로 출입하는 산청 지리산의 장당골.
경상남도 산청의 숨은 비경 지리산 장당골 안으로 들어가 본다.
<4부> 경호강 80리
지리산 골골이 수많은 계곡물은 어디로 흘러들어 갈까.
지리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줄기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는 뜻의 경호강으로 들어선다.
산청을 관통하는 경호강은 다시 양천강과 덕청강 양 물줄기까지 받아들인다.
아침 6시. 물안개가 자욱한 덕천강에 그물을 올리는 강태공이 있다.
사람 혼자 올라설 수 있는 한 평 남짓한 조그만 함석 배에서
20년 째 강을 지키고 있는 김규환 씨다.
아버지의 업을 이어 2대 째 고기를 잡는 그에게 강은 삶의 터전이자 아버지와 같다.
산청을 관통해 흐르고 있는 거울 같은 호수,
경호강은 산청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였다.
여름이 다가오면 밭에서 일하고 난 뒤, 지친 몸을 강에 나가 천렵으로 고기를 잡아
그 고기로 만들어 먹던 ‘어탕국수’는 산청의 명물이 되기도 했다.
강은 고향 산청을 떠나 객지로 나간 사람을 부르기도 했다.
서울 청계천에도 방류했을 만큼 산청의 유명한 다슬기를 잡는 김수권 씨.
고향을 떠나 살다 8년 전 다시 산청으로 돌아와
맑은 경호강에서 어린 시절 잡았던 다슬기 잡는 일을 하고 있다.
80리 경호강의 물줄기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척박했던 땅,
산청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면서 세월을 만나고 가는 강물이다.
<5부> 산의 여자
‘어머니의 산’이라 부르는 지리산의 천왕봉 아래
자신의 삶 전부가 ‘산’이라 당당히 말하는 여자가 산다.
오로지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니다 만난 지리산 자락.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삶의 허망함을 지리산의
바람과 꽃, 나무들에게 기대어 살기로 했다.
16년째 지리산의 산사람이 된 그녀는 봄이 되면 산으로 산야초를 채집하러 다닌다.
3월부터 5월 동안 백 가지 산야초를 자연의 순리가 주는 대로 기다리면서 모아간다.
지리산 곳곳을 누비며 찾아낸 백 가지 산야초는 그녀의 간절한 기다림 끝에 말려진다.
그렇게 모은 산야초 백 가지를 함께 볶아 지리산의 향이
가득 담아 있는 백초차를 만들어낸다.
지리산 땅에서 얻은 황토로 손수 옷가지를 만들어 입는 전문희 씨.
지리산에서 나는 황토는 적토에 가까워 더욱 자연을 닮은 선명한 색을 낸다.
산야초를 채집하러 산을 탈 때 황토로 염색한 옷을 입고 산 벌레들의 소동을 지나가고,
어머니의 품이 그리울 때면 이웃 마을 노부부가 사는 파란 집을 찾아간다.
그 파란 집에 사시는 노부부와 산나물을 다듬으며 담소를 나누고
또 하루 산 속 생활을 보내고 산을 내려오는 산의 여자, 전문희 씨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