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부동산 경매 관련 글을 읽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블로그에 있는 댓글을 보고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닉네임을 클릭하여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경매와 관련된 글이 가득 넘쳤다. 워낙 오래전부터 경매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어, 읽는 데도 한참 걸렸다.
경매하는 사람들은 큰돈을 거래하면서 겉멋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자유롭게님의 글에는 그런 뉘앙스도 없고, 하나같이 솔직담백하고 진솔한 글들로 넘쳐났다. 거창한 영웅담이나 화려한 명도를 한 글은 없지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다지면서 자신만의 시선을 통해 부동산 경매에 대해 설명하는 글들이었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되어 서로 댓글을 주고받으며, 경매 법원에서 우연히 지나가며 만나기도 했다. 자유롭게님은 투자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라 여겨진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처음으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을 잡고는,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미팅을 하게 되었다.
핑크팬더: 경매는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가지신 거예요?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 잠시 자산관리를 했었어요. 회사의 채권관리를 하는데, 돈을 안 갚는 사람이 있잖아요. 회사에서는 그런 채무자를 대상으로 변제 요청을 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법적인 조치를 하게 되죠. 채무자의 자산에 대하여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경매로 넘기려면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한미 합자회사였는데 한국 측 파트너와 인척 관계인 채무자가 있었어요. 갚아야 할 금액이 꽤 많았어요. 미국 측 대주주가 좋아할 리 없겠죠. 한국 측 대주주에게 해결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한국 측에서는 입장이 참으로 곤란했어요. 고의로 안 갚는 것이 아니라 IMF 외환위기로 그렇게 되었거든요.
암튼 차일피일 미루자 미국 대주주는 화가 날 대로 난 거죠. 당시 부사장이 미국인이었는데, 한국 측 대주주의 묵시적인 동의하에 직접 추징에 나섰어요. 한국 실정을 모르니까 변호사를 고용한 후, 그 변호사가 모든 조치를 다해서 경매가 진행됐어요.
그 사건이 진행될 때 제가 자산 관리 담당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대리해서 경매를 신청하고 배당을 받고 그러면서 경매에 대해서 알게 됐죠. 채무자의 집이 청담동에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곳의 집값이 굉장하잖아요. 정원에 기암괴석과 조경용 소나무가 있는 그런 고가의 저택이었어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드나들었어요. 그때는 지금과 약간 분위기가 달랐어요. 아마 1999년으로 기억하는데, 지금보다 경매 물건이 적었고 입찰자도 많지 않아서 경매 법정이 한산했어요.
집행관이 입찰자의 이름을 부르면 입찰자는 법대 앞으로 나와서 나란히 섰어요. 총원이 맞는지 이름을 부르면서 인원수를 확인했죠. 그래서 법정에 앉아 있으면 누가 누군지 이름을 알 수 있었어요.
집행관이 최고가 낙찰자를 호명하면 탈락한 경쟁자들은 직접 눈으로 입찰서류를 확인했는데, 사건마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때 경매를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놀랐어요. 낙찰받은 분들이 기쁜 환호성을 지르는 거예요. 환희에 찼다고나 할까요? 그 정도의 기쁨이었어요. 무척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회사와 관련된 사건이 끝난 뒤에도, 끝까지 남아서 지켜보았죠. 낙찰자가 지인들과 악수하면서 대화 나누는 것을 엿들었더니, 오늘 낙찰받아서 한 3년 먹을 걸 벌었다고 하는 거예요. 뭔데 한 번 낙찰받아서 3년 먹을 게 해결되나 궁금할 거 아니에요?
계속 옆에서 귀동냥했더니, 일단 애들 데리고 유럽 여행을 갔다 오겠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어요. 그리고 또 놀란 사실은 그 당시 저만 해도 경매는 깡패나 브로커가 하는 걸로 알았거든요.
우리 같은 보통 시민들은 경찰서 앞만 지나가도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움츠러드는데, 법원이라니! 그것도 깡패가 온다고 하는데 얼마나 위축이 되겠어요. 나 빼고는 다 깡패인 거죠. 모든 사람이 조폭 같이 보이는데, 여자도 있어서 요즘은 여자 깡패도 많구나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완전 어리버리 그 자체였죠.
그런데 그 깡패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그냥 저처럼 일반인인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경매는 조폭이 하는 게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후 부사장은 유사 흥신소를 이용하여 채무자의 재산내역을 파악했고, 그 재산에 대하여도 추징 절차를 진행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1년 정도 법원에 왔다 갔다 하면서 경매에 대한 대략적인 개념이 정립되었죠. 경매란 것이 예상외로 시스템이 간단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회사 그만둬야 할 텐데 그때는 경매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그런데 진짜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게 될 일이 생겼어요. 미국 자본이 철수하면서 회사가 H자동차 회사의 계열사로 매각되었어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실사한다 어쩐다 하면서, H사 임원과 직원들이 들락거리면서, 우울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죠.
공장에 근무하는 생산직들은 H사가 고용승계를 하겠지만, 사무직은 알아서 나가주었으면 한다는 거예요. 게다가 회사를 지방으로 옮기고 현재의 위치엔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니까, 회사에 목을 맬 이유가 없더라고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마침 한창 확장 중이던 대기업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필이 꽂힌 와이프 덕분에 빵집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장사가 잘되었어요. 점포를 늘려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혈안이던 회사 측에서 점주들에게 이익을 많이 양보했거든요.
그런데 회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점포가 확장되자, 그 이후부터는 회사가 재료비 인상 등의 방법으로 점주를 쥐어짜기 시작하더군요. 게다가 제과점을 시작할 때 투자금이 부족하여 동업했는데, 그것이 자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동업자가 저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발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또 건물주의 아들도 빵집을 탐내더라고요.
결국 사업을 접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이어서 다음에 할 일을 고민했어요. 바로 떠오른 생각이 경매였어요. 1999년에 경매를 처음 경험하고, 퇴사 후 몇 년 빵집을 한 후에 결국은 경매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그때는 경매에 대한 책이 귀했어요. 몇 권 없었고, 있어도 책 내용이 어려웠어요. 경매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그런 책이 아니라, 경매계장들의 업무지침인 민사집행실무제요를 풀어 쓴 것 같은 내용에다가 권리분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초보는 읽어 봐도 뭐가 뭔지 모르는 그런 책이었어요.
이제는 모두 권리분석에 큰 비중을 두지 않지만, 그때는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권리분석이었어요. 그래서 경매 좀 한다고 폼 잡으려면 웬만한 배당은 계산할 줄 알아야 했어요.
그렇지만 뭐 아시다시피 권리분석과 돈 버는 거는 큰 상관 없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책을 붙들고 물어뜯어봤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죠. 책엔 법적인 내용만 있지, 경매로 돈 버는 방법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이러지 말고 경매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배우자. 그리고 경매로 돈 번 사람을 만나보자’고 결심했죠. 빵집을 운영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서초동을 기웃거렸어요.
당시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모든 부동산 전문 꾼들은 서초동에 모인다고 들었거든요. 그러다 A 부동산연구소란 곳을 발견했는데 간판 귀퉁이에 ‘경매’라는 단어가 있더군요.
거기에 들어갔죠. 경매를 배우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자 마침 경매과정이 개설되어 강의 중이니 등록하고, 중간부터 공부하다가 다음 강좌에 처음부터 들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개강의에 갔더니 수강생의 대부분이 남자더군요. 이마가 훤한 소장이란 분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법원 갈 일이 생겼다면서, 마침 경매로 부자가 된 지인이 놀러 왔기에 자기 대신 공개강의를 부탁했다면서 나가버리더군요. 그러고선 이마가 더 훤한 할아버지가 들어오셨어요.
모두 김빠져서 사람들이 심드렁한 얼굴로 쳐다보니까, 할아버지가 긴장했는지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에요. 땀을 얼마나 흘리는지 보기에도 민망했어요. 할아버지는 주저주저 망설이더니 용기를 내어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랬더니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손을 번쩍 들더니 경매로 부자가 되셨다는데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어요.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질문을 할 수 없잖아요. 사람들이 낄낄거렸어요. 할아버지도 빙그레 미소짓더니 바로 대답했어요. 대략 200억쯤 된다고.
뭐라고? 20억이 아니라 200억? 와! 반쯤 접고 들어도 100억이에요. 그렇게 바라던 바대로 경매로 부자가 된 사람을 직접 만났지요. 놀란 사람들이 마구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경매로 번 것이 200억이냐, 어떤 물건을 낙찰받는 것이냐, 경매는 어디에서 배웠느냐 등등 사람들이 와락 달려들자,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술술 풀어 놓았어요.
원래는 건설 현장의 벽돌공이었다더군요. 평생 벽돌을 쌓았는데, 환갑이 가까워 오도록 노후대책도 없이 가난했대요. 그런데 자기 오야지(공사 현장 책임자)는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친구랑 골프 치고 애인이랑 놀러 다니고 그러더래요. 사실 오야지라고 해야 얼마를 버는지 서로들 뻔히 아는데... 눈치를 보니 뭔가 다른 일도 하는 모양인데, 가르쳐주질 않더래요. 그 당시엔 경매 쪽이 그런 분위기였다는군요.
그러다 전화 통화하는 것을 엿듣고 경매로 돈을 번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조르고 졸라서 그 오야지가 조금 가르쳐준 것을 바탕으로 경매를 시작한 것이죠. 그분이 경매를 할 때만 해도 도제식으로 전수해주지 않으면 경매와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가 없었대요. 암튼 환갑이 다 되어서 노인네가 경매에 눈을 뜬 거예요.
그분이 국졸이었거든요. 국졸이고 평생 벽돌만 쌓다가 경매에 도전한 거죠. 그때 강의하러 왔을 때가 일흔 넘었다고 했으니까, 십수 년 사이에 200억을 번 거예요. 어떻게 벌었는지 세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노인네의 이야기는 이거예요.
부동산으로 먹고 사는 방법이 30가지래요.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해주고 먹고사는 법, 소유권이전등기 쳐주고 법적인 문제 해결해주고 먹고사는 법, 공인중개사로 물건 소개하고 먹고사는 법 등등. 경매도 그중의 한 가지래요.
그분이 두 가지를 강조했는데, 첫째, 경매는 반드시 돈이 된다는 것이에요. 자신이 부자가 되었으니 검증된 진실이라는 것이죠. 단! 자신이 할 때는 진짜 땅 짚고 헤엄치기였지만, 앞으로는 그리 쉽지 않을 거라고 했죠. 듣고 있자니 막 흥분되는 거예요. 국졸이 200억을 벌었는데 가방끈 더 긴 나는 그 두 배인 400억인들 못 벌겠냐고요.
둘째, 경매는 학원이나 책을 보고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실감을 못했지요. 나중에 알았지요. 발로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는 것을요. 지금은 발이 버는 게 아니고 엉덩이가 벌잖아요.
암튼 그날 그 할아버지 강의는 되게 임팩트가 강했어요. 가능성이 보인 거죠. 국졸이 벌었는데 나는 할아버지보다 젊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가능성 있다. 엉덩이든 발이든, 책이 벌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들었죠.
그래서 입찰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한번 제대로 배워보자고, A부동산연구소에 등록했어요. 강의료가 제법 비쌌어요. 덕분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죠. 아마 그 당시 경매 강의는 서울을 통틀어서 두세 군데에서만 했을 거예요.
우연치고는 제대로 찾아 들어간 거죠. 거기는 주로 실기 위주로 가르쳤어요. 임장하는 법, 입찰서류 작성법, 시세조사 하는 법 등.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가 있었어요. 중간중간 공법이나 배당 같은 이론도 공부했지만, 사례 위주로 진행해서 큰 도움이 되었죠. 그만큼 강사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그런데 문제는 요즘과 같이 체계가 잡힌 학원이 아니다 보니, 선생님들이 위험한 사람이었어요. 일부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강사 월급을 제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벌어가는 식이었어요. 덕분에 부동산 투자는 절대 남과 같이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죠. 거기에서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때 저랑 같이 배운 사람 중 상당수가 사기당했어요. 그것도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한테요. 그리고 최근에도 그런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공동투자 유도해서 제자들 등을 치지요. 안타까워요. 다행히 저는 사기 안 당했어요. 사기당할 돈이 없었거든요.
그때 제 수중에 돈이 있었다면 저도 똑같이 당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돈 있는 사람들은 경매를 배워 부동산에 발 담그자마자 사기당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가르쳐 준 스승이자 선배들한테 먹잇감이 된 거죠.
어쩌면 그 사람들도 한 번 털리고 난 후 그것을 경험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털었는지 모르지만요. 암튼 운 좋게도 초창기에 핵심적인 사항 몇 가지를 체험하고 배웠어요. 이후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죠.
첫 번째는 경매가 진짜 돈이 된다.
두 번째는 책이나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부동산은 절대 혼자 해야 한다.
실제로 제 주변에 공동투자하는 사람, 친척이나 친구와 어울려서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실패했어요. 돈 앞에는 사람들이 못 견디더라고요. 결국은 누군가 돈에 눈이 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를 가르쳤던 선생은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고 나섰다면, 아버지 외엔 다 믿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때 여자분들이 항의했거든요. 어째서 엄마는 빼냐고요. 선생님 왈, 엄마의 바람은 아빠의 바람과 달라서 믿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남자는 마음을 주어도 챙길 건 챙기는데, 여자는 마음을 주면 전부를 주기 때문이라더군요. 물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일반화된 모순이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믿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이후 공개강의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비슷한 분을 또 만났지요. 이런저런 소문이라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략 집을 250채 소유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분도 나이 많은 할아버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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