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바다의 아들!
①
쏴아아아.
억수같은 빗줄기가 밤바다를 난타하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빗줄기는 수도 없이 퍼부어지는 검은 작살로 화하여 천지를 사나운 혼돈 속에 빠뜨렸다.
수평선도 부서져 버렸는가. 그 빗속에 하늘과 바다의 구분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를 휘감는 거대한 악마의 검은 옷자락처럼 무서운 어둠만이 질식할 듯 넘실거리고 있었다.
한 점 번개의 섬광조차 비치지 않는 광란의 어둠!
칼바람이 불어오는 겨울밤의 망망대해였다.
이때 바다 저편에서 기음이 터지며 한 검은 물체가 빠르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사(象士)! 이상하군요. 이 해역에 들어서자 갑자기 주위가 더욱 어두워지는 것 같습니다."
"흠, 그렇군."
비바람 소리에 섞여 칼끝같은 음성과 육중한 음성이 엇갈려 들려왔다 싶은 순간 번쩍! 하면서 한 줄기 금광(金光)이 검은 물체에서 쏘아져 나와 방원 육, 칠 장의 바다를 쪼개버렸다.
촤악!
바다가 갈라지면서 물결이 비산(飛散)하며 한 떼의 고기가 퉁겨지듯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솟구쳤던 고기떼들이 피와 내장을 쏟으며 바닷속으로 다시 떨어졌다.
갈라진 배를 허옇게 까뒤집은 물고기들이 해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불쑥! 거대한 손 하나가 검은 물체 속에서 튀어나오며 떠오른 물고기를 집어 들었다.
허나 이내 그 물고기는 바다로 내던져졌고, 손은 또 다른 물고기를 집어올리고 있었다.
철벅! 풍덩!
그러기를 수십 번을 되풀이 했을까?
"분명 흑해능치(黑海 )떼! 확실하다. 흑해능치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심해에만 서식하는 어종, 흑해능치가 잡히기 시작하고 주위의 어둠이 한층 짙어질만큼 시커먼 바닷물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흑해에 들어선 것이 틀림없다."
거대한 손이 튀어나온 곳에서 육중한 음성이 울리고 칼날같은 음성이 반갑게 받았다.
"이곳이 흑해?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군요."
고기떼가 떠 있는 일 장 밖쯤의 해상에는 검은 물체가 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일엽편주를 연상케 하는 소형(小型)의 검은 모피선(毛皮船)이었다.
모피선에는 한 흑포노인이 폭우를 맞으며 앉아 있었다.
거칠게 다듬은 육중한 둔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심장이 그대로 짓눌려 터져나갈 듯 엄청난 중량감을 발산하는 산악같은 거구의 노인이었다. 가슴에 수놓아진 금빛 코끼리의 문양이 거대한 체구와 너무도 잘 어울려 보였다.
헌데 섬ㅉ하게도 그의 목젖에는 한 마리 구렁이 같은 흉터가 시퍼렇게 변색된 채 휘감겨 있었다.
그는 흑포 속에 한 겹의 황금빛 갑주(甲胄)를 받쳐 입고 있었다.
"그렇지, 분명 마지막 관문이네. 이 흑해를 건너기만 하면 우리의 목적지인 해란주(海蘭洲) 앞바다, 그 죽음의 해안선까지는 눈을 감고도 도착할 수 있지. 허나 문제는 두 눈을 뜨고 건너야 할 이 흑해에 있네."
흑포노인은 물고기를 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후훗! 말해 봤자가 아닙니까? 상사와 저는 청도를 떠나서부터 무려 한 달 보름을 파도와 싸워 왔습니다. 이까짓 흑해 쯤이야."
흑포노인의 한 옆에서 노를 젓고 있는 또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흑포노인의 장대한 체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흑포노인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가슴에는 황금코끼리 대신 핏빛 한 송이 매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는 무거워 보이는 철립을 쓰고 있었다.
그의 철립 아래로 드러난 창백한 용모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떨리게 하였다. 특히 그의 종잇장처럼 얇고 새빨간 입술에서는 탕녀와 같은 사악한 색기가 풍기고 있었다.
헌데 그의 몸에서 풍기는 체취는 백 팔십 도 달랐다. 그의 몸에서는 섬ㅉ한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흡사 피를 먹고 날을 세운 칼날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기괴한 양성(兩性)의 기운을 가진 사내였다.
흑포노인이 들고 있던 물고기를 사내의 발치 아래로 던졌다.
"보게, 이 흑해능치의 몸을."
사내의 눈이 흑철립 속에서 반짝 빛났다.
"호, 아주 특이한 물고기로군요. 눈은 야명주에 가깝고, 몸은 거의 완전히 나선형으로 휘어져 있으니."
"잘 봤네. 그 흑해능치는 원래 펑범한 물고기와 다름이 없는 놈이었지. 헌데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흑해의 어둠과 발 밑에 흐르고 있는 폭풍와류가 놈을 기형적으로 만들어 버렸네."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의 현장!"
"그렇네. 흑해능치는 이 흑해의 어둠과 소용돌이에 적응하다 보니 눈과 몸이 진화, 지금의 형태로 살아가게 되었지. 허나 그런 흑해능치 조차도 흑해의 중심부에는 근접하지 못하네."
매화문양의 사내의 몸에 은은한 파문이 일었다.
"아니 도대체 소용돌이가 얼마나 거세길래 자연도태를 거쳐 진화된 물고기조차 접근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제법 무서운 곳이네. 물 속에서 태어나 물 속에서 생활하며 진화까지 된 물고기도 길을 잃으니. 아무리 수공과 자맥질의 일인자라 해도 적수공권(赤手空券)으로 이곳을 통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음."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은 생태계에 존재하는 가장 처절한 생존의 법칙이 아닌가. 생존 경쟁에서 적응하지 못한 형질의 개체는 도태되고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번식한다는 생명진화의 잔인한 섭리!
그 속에서 살아 남은 물고기조차 길을 잃는다는 흑해는 정녕 무서운 바다가 아닐 수 없었다.
헌데 단지 물고기를 잡아봄으로써 바다의 모든 것을 읽어내는 이 흑포노인은 대체 누구인가?
분명 어부는 아니었다. 어부가 갑주를 받쳐입고 고기잡이를 할 리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잡은 고기를 다시 바다에 버릴 리도 없는 일. 그렇다면 대체 이들은 어떤 인물들이란 말인가?
그때 매화문양의 사내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애석한 빛을 떠올렸다.
"실수했군요. 만자방반(卍字方盤)을 가져와야 했던 것을."
"허헛. 천일매(千日梅). 자네는 노부가 왜 모피선을 고집했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가?"
"예?"
"허허, 이 흑해에는 어둠과 소용돌이와 더불어 무서운 것이 또 하나 있네. 그것은 검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모래지. 웬만한 철선 쯤은 가볍게 끌어 당기는 엄청난 자력을 지닌 자철사(磁鐵砂)가 바로 그것이네."
"그럼 만자방반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만자방반이 비록 어떤 상황, 어떤 장소에서도 방향을 가르쳐 주는 나침반이지만 그 또한 쇠붙이가 아닌가? 이곳에서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네."
"훗! 우리가 철선을 타고 왔다면 이미 흑해의 물고기 밥이 되어 있겠군요."
매화문양의 사내는 실소를 짓다가 재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이 흑해를 건널 방법은 전무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흑포노인은 껄껄 웃었다.
"가세! 방법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매화문양의 사내는 잠자코 노를 젓던 손에 힘을 더했다.
촤아아아!
검은 모피선은 처음 나타날 때와 같이 빠른 속력으로 폭우 속의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이제 알겠군요. 해란주의 수인들이 왜 탈출을 하지 못하는지를."
"탈출? 허허허, 있을 수 없는 얘기지. 대양(大洋)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천연의 함정이 천년고목의 나이테만큼이나 에워싸고 있는 해란주를 탈출하다니. 차라리 지옥을 빠져나오는 것이 훨씬 편하지."
"그렇군요. 약간 모순은 있지만 말입니다."
'모순이 있다?'
흑포노인의 두터운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렸다.
"지금 자네의 말은 우리가 해란주에 들어가고 있으니 또 나올 수도 있음을 뜻하는가? 허나 그것은 우리의 경우일 뿐. 해란주의 수인들에게는 나오는 길이 없네."
"......?"
"우리는 벽곡단과 모피선, 해도(海圖)등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왔지. 하지만 불행히도 해란주에는 배를 만들 나무, 가죽 따위는 없네. 오로지 모래, 바람, 바위와 난초, 그리고 철새 뿐인 불모지대가 바로 해란주일세."
"음!"
그렇다. 해란주는 바로 악마의 수용소군도였다.
- 해란주!
육천마을 중 수인의 마을. 대역죄인과 이국포로들만을 수용하는 동쪽 머언 심해선 밖 아득한 해상의 불모지대!
패전국의 불모들이 많이 유폐되어 있어 이방의 천역이라 불리우며, 철새들의 고향 또는 물고기들의 무덤으로 대변되는 곳이었다. 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 난초림으로 인해 해란주라 칭해지는 곳으로서 한 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불귀(不歸)의 지옥도였다. 헌데 그 버림받은 땅을 향해 일엽편주에 몸을 실은 두 사람이 비와 어둠을 가르며 다가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노를 젓고 있던 매화문양의 사내가 무언가 의문을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
"후훗, 상사. 해란주가 가까워 올수록 저는 더욱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죄인도 아닌 그분께서 이 지옥의 섬, 해란주에 스스로 뛰어드셨다니."
흑포노인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딱딱하게 대꾸했다.
"생사지우이신 주군께서도 뜻을 알지 못하는 분일세."
그 악마의 섬에 죄인도 아니면서 스스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매화문양의 사내가 의혹이 가득한 시선으로 물었다.
"상사. 도대체 그분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이시길래 주군께서 그토록 엄청난 대업을 맡기시려는 거죠?"
"허헛! 자네는 그분에 대해 꼭 열 한 번째를 물었네. 하지만 노부의 열 한 번째 대답 또한 마찬가지네."
매화문양의 사내는 쓴 웃음을 지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후훗, 그만두시지요. 주군의 막역지우이며 함자는 자륭극(紫隆極), 십 오 년 전 개세(蓋世)의 거사를 막후에서 주재, 주군의 등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건국일등공신으로 왕호를 하사받았으나 거절하고 후에 스스로 해란주에 들어간 신비의 인물, 그 답변은 이미 저도 완벽하게 외웠습니다."
흑포노인의 거대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피어났다.
"그렇네. 그것 뿐 일세. 열 한 번째 말하게 되는 것이지만 노부가 자네보다 더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석년에 그분의 존안을 먼 발치에서나마 한 번 뵈었다는 사실뿐이지."
십 오 년 전 개세의 거사라면 바로 대명 건국 이십 사 년 연왕이 폐위하고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가 등극하던 때의 그 파란만장하던 일대 변혁의 역사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바로 연왕반정(燕王反政)이다.
헌데 해란주로 스스로 들어갔다는 자륭극이라는 사내가 바로 연왕반정을 막후에서 주재한 연왕의 막역지우이며 또한 연왕조차도 정체를 모르는 신비의 인물이었단 말인가. 정녕 가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면, 상사께서는 그분이 주군의 천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매화문양의 사내의 칼끝같은 시선을 받자 흑포노인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하네! 주군께서 자대인을 중원으로 부르는 가장 큰 이유는 그분이 강호에 나옴으로써 대중원 무림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믿으시기 때문이지."
"상사. 저는 자대인께서 과연 그자를 제거할 수 있을지를 물었습니다."
"!"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은 노부도 모르네. 자대인께서 천고의 신비고수이기는 하나 그자 또한 오천 년 중원무림이 낳은 사상 최강의 초마인(超魔人)! 결코 확신할 수 없는 승부이지."
매화문양의 사내는 추궁하듯 집요하게 물음을 계속했다.
"하면 자대인께서 패한다는 말씀입니까?"
노인의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아니네. 비록 주군께서 자대인께 육 할의 승률을 걸고 계시지만 노부의 우견으로는 감히 오대 오로 놓고 싶네."
"오대 오! 더구나 주군께서 자대인에게 육 할을?"
"노부의 짐작일 뿐일세. 허나 분명 노부가 알고 있는 바로는 사상 최강의 초마인인 그자와 오대 오의 승률이라도 점칠 수 있는 인물은 천하에서 오로지 한 분, 자대인 밖에 없다네."
"그분이 그토록 대단한 분이십니까?"
매화문양의 사내의 칼끝같던 기세가 누그러졌다.
"허헛! 대단한 분이라는 건 이미 밝혀진 사실이 아닌가? 십 오 년 전의 대역사를 모습 한 번 드러내지 않은 채 이루어 내신 분이니."
자륭극이라는 사내가 사상 최강의 초마인과 오대 오의 승부를 논할 수 있다면 그는 곧 천하최고의 고수라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금의 황상 영락제가 자륭극이라는 사내를 불러 상대하려는 그자란 대체 누구이며, 또 황상이 친히 일개 무림인을 제거하려는 까닭은 무엇이란 말인가?
빗발이 더욱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대인이라... 나 천일매(千日梅)가 한 번쯤 겨루어 보고 싶은 인물이 또 한 명 늘었군요."
매화문양의 사내가 탄성을 터뜨리자 흑포노인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나왔다.
"허허헛, 겨루어 보고 싶다고 했나?"
"비웃는 것입니까?"
"허허헛, 비웃는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어 하는 것이네."
"상사! 저는."
흑포노인의 싸늘한 말이 천일매의 음성을 잘랐다.
"천일매! 하나 묻겠네. 자네는 관부십팔반무예(官府十八班武藝) 중 몇 가지를 연마했는가?"
"궁(弓), 노(弩), 추(鎚), 편(鞭), 극(戟), 박승(縛繩) 등 십 오 종을 십이 성까지 연마했고, 그 밖에도 필(筆), 부(斧), 월(鉞)의 셋은 구성 정도까지 연마했습니다만?"
천일매가 어리둥절하게 대답하자 흑포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
"허헛, 아까 자네의 광오한 말에 놀라 몇 년 전 주군의 말씀이 생각났네. 주군께서 말씀하시길 관부십팔반무예는 당시 약관의 자대인께서 대폭 수정을 가한 끝에 거의 창시하다시피 했다고 하셨네."
"과, 관부십팔반무예를 창시!"
천일매의 아연한 표정을 보며 흑포노인은 미소를 지울 줄을 몰랐다.
"허허, 자대인이 관부십팔반무예를 새롭게 창시할 때 자네와 노부는 겨우 십팔무예의 구결을 암기하고 있었지."
벙어리가 된 천일매에게서 시선을 뗀 흑포노인은 폭우 속의 밤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어 독백처럼 한 줄기 낮고 육중한 음성이 또박또박 어둠을 뚫고 울리기 시작했다.
"보게. 저 바다는 파도의 고요함과 해일의 거대함을 함께 갖고 있지. 아울러 그 속에는 모래와 염수, 그리고 수없이 많은 어류 등 온갖 것들을 포용하고 있네. 허나 저 바다가 얼마만큼의 힘을 갖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모래와 염수를 포용하고 있는 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분은 저 바다와 같은 인물이라네."
이때 천일매가 노를 젓다 말고 다급성을 터뜨렸다.
"배에 물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뭣?"
흑포노인은 급히 선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럴 리가 있는가? 이 모피선은 내수성이 가장 강한 해마(海馬)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거늘."
허나 노인의 눈빛은 이내 싸늘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배의 밑창으로부터 검은 해수가 번져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흑포노인의 시선이 바닥 어느 한 곳에 날카롭게 꽂혀졌다.
"칼자국이다."
천일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순간,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선수가 무엇인가와 세차게 부딪치며 거칠게 찢어졌다.
"앗! 상사, 저 푸른 빛 기물은?"
천일매는 급히 선수를 바라보며 경악성을 흘렸다. 배가 가로막힌 전방에는 흡사 새파랗게 빛나는 칼날이 횡으로 누워있는 듯한 기물체가 해면에 솟아 있었다.
흑포노인의 눈은 기물체를 발견하자마자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모피선을 중심으로 방원 백 장 가량의 해상에는 마치 검은 바다에 푸른 띠를 둘러놓은 듯 무엇인가 원을 형성한 채 악마의 이빨처럼 새파랗게 빛나고 있지 않은가.
"교살청망(鮫殺靑網)!"
흑포노인이 씹어뱉 듯 뇌까리자 천일매의 전신에 격렬한 파문이 일어났다.
- 교살청망!
일명 학살의 그물, 곧 학살마망(虐殺魔網)이라고 불려지는 바다 위의 죽음의 덫! 일단 표적을 가두면 수천 수만 마리의 거머리 떼가 달라붙 듯 조여들어 끝끝내 요절을 내고 만다는 그 지옥의 기병(寄兵)이 아닌가.
심해의 백색 마물(魔物)로서 백경(白鏡) 조차도 순식간에 수억 조각의 육편으로 난자되어 버린다는 푸른 빛 악마의 사선(死線)이 바로 이곳 흑해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모피선 위의 두 사람이 은은한 경악에 싸여 있을 때였다.
"많아, 아는 것이 너무 많아! 확실하게 죽어 줘야겠어."
돌연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곳에서 한 줄기 사이로운 음성이 터졌다. 동시에 번개가 산산조각으로 찢어지듯 한 줄기 불붙는 유성이 암천으로 치솟아 올라 주위를 대낮처럼 밝히는 것이 아닌가.
헌데 놀랍게도 천일매와 흑포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훗, 융광섬뢰(融光閃雷)!"
"허헛, 자네와 노부는 운이 좋군. 이 어두운 뱃길에 화기(火器)의 총아라는 융광섬뢰가 등대불이 되어 주니."
- 융광섬뢰.
육천마을 중 장인의 마을, 술예범의 초약전( 藥田)에서 제조해 낸 최첨단의 특수화기를 말함이 아닌가.
폭뢰(暴雷)로서 가공할 위력을 떨칠 뿐 아니라 화공에서 예광화전(曳光火箭)으로도 활용되는 다목적화기.
흑해의 두터운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이 빛이야말로 바로 그 융광섬뢰의 신광이었다.
그 빛 아래 교살청망은 더욱 새파랗게 형광을 발하며 그물의 장막을 치고 있었다.
헌데 모피선을 포위하고 있는 것은 그물의 장막만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착 달라붙은 가죽옷을 착용한 일천여 명의 청영(淸影)들이 다섯 자 크기의 소형 모피선에 올라선 채 그물의 장막 너머로 겹겹이 인의 장막과 대선단의 장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선단의 중앙에 서 있는 젊고 깡마른 장발의 사내가 예의 사이로운 음성을 터뜨렸다.
"정정해 주마. 융광섬뢰는 너희들의 길을 밝혀주는 등대불이 아니라 지옥으로 인도하는 유황의 불이란다."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가죽옷은 푸르죽죽한 뱀가죽을 벗겨 입은 듯 기분 나쁜 윤기를 발하고 있다. 뱀의 차가운 피와 상어의 잔인성을 합쳐놓은 듯한 음사한 사내였다.
그의 옆에 있던 사내가 말을 받았다.
"교인(鮫人)! 이해하고 들어주게. 관부의 높으신 금의위통령(錦衣衛統領) 나리와 동창(東廠)의 대영반(大英班)께서 세사에 마지막 남기는 말씀이신데."
한 마리 핏빛 고래를 연상케 하는 근육질의 체구를 가진 자였다. 헌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실로 충격적이지 않은가.
천일매와 상사라 불리운 두 사람이 바로 연왕의 측근으로 연왕반정의 선봉에서 대업을 완성하고 대명의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해 권력의 핵을 거머쥔 황금상사(黃金象士) 금간천력(金干天力) 사마우치(司馬愚痴)와 천일매 초보단미(初步斷眉) 은탄린(殷呑麟)이란 말인가?
하늘의 신력을 갖고 있는 황금코끼리, 황금상사 금간천력 사마우치!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상대의 눈썹을 쪼갠다는 천일매 초보단미 은탄린!
그들은 당금 대명관부에서 서열 일, 이 위를 다투는 초일류고수였다.
첫댓글 잘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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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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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