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선 안된다 사44:6-24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하나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서 죽음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은 오직 영혼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죽음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런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는데 우리 인간만은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살아가는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인류의 조상으로 창조되었던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라면 누구든지 배웠건 못배웠건 부자든 가난하든 내일은 어떻게 살지? 또 죽고 나면 사후세계가 있는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아니면 지옥에 가나? 그래도 나는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죽음을 준비하였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확실히 말하는데 인류역사상 죽음이라는 사망권세를 이겼던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는 없다. 그분은 인류의 죄값으로 십자가위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인생들은 죽음을 이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부터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과 내세관을 갖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로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누가 죽음을 준비하는가? 누가 예수님을 믿는가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며 반대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란 사람들이 만든 우상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본다. 사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신이 아닌 피조물들을 마치 신처럼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혜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1.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고 누가 어리석은 사람인가 ?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피조물입니다. 식물들이나 동물들도 신비롭고 아름답다할지라도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자(창1:26).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또 만물의 영장으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의 가축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지배하라고 하셨습니다(창1:28).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위임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피조물도 사람위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한 이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 범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하니 피조물을 다스려야 할 존재가 오히려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도와 달라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서 신을 찾게 되었고 우상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죄는 사람을 어느 정도로 나약하게 했냐하면 땅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인간자신이 지배하여야 할 피조물에게 도와 달라고 복을 구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복을 비는 것이고 둥근 달을 향하여 복을 비는데 달은 커졌다 작아졌다 하니까 이왕이면 큰 달이 더 잘 도와 줄 것이라고 믿고 정월 대보름달이나 팔월 대보름달을 향하여 비는 것입니다. 나무도 어린 나무 보다는 크고 오래 된 고목나무가 자신을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크고 오래된 고목나무 앞에 제물을 놓고 복을 달라고 빕니다. 그래서 속이 빈 고목을 보고 사람들이 복을 빌어도 줄 복이 없어 속이 비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습니다. 피조물을 향해 복을 빌다가 이제는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 그 우상 앞에 복달라고 빕니다. 그 형상도 사람이나 짐승들뿐만 아니라 뱀, 용 같은 마귀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기도 합니다.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누리고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나니 이렇게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고 또 살아가면서 죄를 범했을 지라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아예 찾지도 않으면 그 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 잠깐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고 누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까? 그 결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헛된 우상을 만들어 그 우상 한데 복을 비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있어 온 일이라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현대인들이나 미개한 원시족들도 우상을 섬깁니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 속에는 아직도 많은 원시족들이 옷도 입지 않고 자신의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신을 찾고 우상을 섬깁니다. 무식해서 우상을 섬긴다고요? 최고의 학부를 나오고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전문직에서 연구하는 사람들도 우상을 섬기는 데는 제한이 없습니다. 최고의 영장인 사람이 죄로 인해 영안이 어두워지니까 인간은 자기만도 못한 우상을 만들어 그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빌고 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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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우상을 섬기는 종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을 해결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떻게 죽음을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영혼이 있으므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며 단 하루라도 단 일년이라도 더 살고 싶어 병원도 가고 약도 먹지 않겠는가? 인간만이 영혼이 있으므로 영원히 살고 싶어서 신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으므로 어느 종교를 택할지가 정말 중요하다. 남들이 다 믿는 다는 신을 무조건 생각없이 믿어도 되는가? 극소수가 믿어도 거기에 영생이 있다면 그런 종교를 택하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종교이다. 이 나라에서 뿌리내린 지가 워낙 오래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이기도 하다. 불교 교리는 죽은 자를 위하여서도 삼일제니 사십구제니 제사를 드리면 다음 세상에는 다른 모습으로 환생한다는 윤회설을 믿게 한다. 그래서 지식이 있는 사람도, 권력이 있는 사람도, 정치하는 사람들도 부처앞에 절을 하는데 아니 석가모니가 나를 위하여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단지 그는 인간은 왜 늙어서 병들어 죽는가를 보리수나무 밑에서 고민하였을 뿐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신도 아닌 석가모니를 신처럼 믿는다는 것이 너무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것은 허망하고 무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44:9) 새긴 형상을 만드는 자들은 다 헛되며 그들이 기뻐하는 것들은 유익을 끼치지 못하리니 그것들이 그들의 증인이로다 라고 하면서 우상 섬기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우상을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는 철로 연장을 만들어야 하고 목수는 그 만든 연장으로 백향목이나 편백나무나 상수리 나무를 줄로 재고 대패로 밀어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놓으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면서 당신은 내 신이니 나를 건지소서(사44:12-17)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상을 만든 나무는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 우선 땔감으로 사용도 하고 일부는 음식도 만드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나머지 나무로 신의 형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망치로 두들겨 만든 우상이든 나무로 만든 우상이든 어떤 우상이든지 그 우상이 인간의 기도를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그 우상 앞에 복을 빈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정말 이 우상이 나를 구원하는 신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니 따라서 하였다면 그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우상 앞에서 절하고 복을 빌었습니다. 우리도 복을 줄 수 없는 무익한 우상에게 복을 달라는 허망한 짖을 많이 했으나 다행히 우상 섬기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늦게라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상을 섬기고 있을까? 하나님은 사람의 눈과 마음이 닫히면 사람이 어리석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44: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나니 그분께서 그들의 눈을 닫으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닫으사 그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과 눈을 열어 주셔야만 우상이 거짓이고 헛된 것임을 알게 되는데 우상 숭배자들은 마음이 어두워져서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어리석으므로 우상의 형상에 미혹되어서 불상도 큰 것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대구 팔공산 큰 바위에는 불상을 새겨논 것이 많다. 갓바위부처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 431 호)는 대구의 진산 팔공산(1,193m) 남동릉 허리께에 솟은 갓바위(冠峰·850m)정상에 있다. 산정의 암봉 즉 큰 바위 하나를 통으로 새긴 부처로 불상과 좌대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는 불상에게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만큼은 꼭 들어 준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하루에 수 백명이 이 갓바위 부처를 찾는다고 한다. 음력 초하루나 입시 때는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바위로 만들어진 불상이 무엇을 도와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잘되게 해 달라고 복을 비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영적무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영적무지한 자들이 가장 곤고한 자들이며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사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가 없으며 지식도 없고 명철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일부를 불로 태우고 또한 그것의 숯 위에서 빵을 굽기도 하며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그것의 나머지로 가증한 것을 만들리요? 내가 나무줄기에 엎드리요 하는 자가 없나니(사44:19)” 라고 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지식이나 이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의 형상에 미혹되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해 줍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잘 미혹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혹의 영에 빠져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들은 궁극적인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나의 오른 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말)하지도 못합니다. 자신이 거짓된 우상에 미혹되어 있으므로 자신들이 잘못됐다고 시인하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우상의 힘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악한 죄성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제일 계명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제이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4)”는 계명입니다. 계명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자에게는 질투하시므로 그들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섬기는 자는 결코 자신을 물론 후손들까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계 많은 나라들 가운데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 우상들이 많습니다.
천주교 역시 불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성당안에는 마리아상과 성인들의 우상이 즐비하게 있으며 문제 사안에 따라서 기도드리는 대상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로마 바티칸 성당에는 어느 성당들 보다 갖가지 우상들이 즐비하게 많이 있습니다. 성당내부에는 마리아 상을 비롯하여 태양신문양을 한 창문이며 성당밖에는 수많은 우상들 즉 성인들의 우상과 갖가지 뱀의 형상을 한 우상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본다면 아 여기가 우상의 본산지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천주교는 초대 기독교와 당시 로마의 태양신 종교가 합쳐지면서 카톨릭이란 종교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들의 직제인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신부 성모같은 호칭은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천주교인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카톨릭의 축제인 성탄절이나 부처님 오신 날에 공식적으로 추기경이나 스님들이 서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을 종교간의 화합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종교의 배후에는 사탄 즉 루시퍼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면 이상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다 우상앞에서는 서로 통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직 신을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나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하셨는데 그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계시다가 때가 되어 여자의 몸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갈라디아서 4장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인류의 소망이시며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망권세를 정복했다는 증거로 부활하셨습니다. 역사가들은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분의 탄생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해서 올해는 예수님 이 세상에 태어나신 지가 2023년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엔 다른 신이 없다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십니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그의 구속자인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신이시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외 다른 신은 거짓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거짓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우상들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당신의 형상에 따라 만드신 분이십니다. ‘태에서부터 너를 지었다’고 하셨습니다(사44:24).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의 범법들과 죄들을 빽빽한 구름을 지우듯 지웠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느니라(사44:22)”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빽빽한 구름 같이 안개같이 없어지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선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헛된 우상 앞에 도움을 구하지 말고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상 섬기는 허망한 자가 되지 말고 우리의 죄까지도 용서해 주시는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인류의 구세주이지만 누구나 다 알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야를 가까이서도 몰라봤는데 이방 멀리 살던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신가요?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 분께 경배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마태복음서2장에는 또 그들이 그 집에 들어가서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어린 아이를 보고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보물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고 기록 했습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 자들만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메시야(기름 부음 받은 자)'의 부류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 세 가지가 있는데 '황금'은 '왕'을 위한 것이고(왕상10:16-21) '유향'은 '제사장'을 위한 것이고(출 30:34-48) '몰약'은 '선지자'를 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만왕의 왕으로 오셨으며 인류의 죄를 용서하러 오신 대제사장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 선지자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이들 동방박사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까? 헤롯이나 다른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나 장로들이나 그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왜 그들은 이방인이었음에도 메시야 사상을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 의 '예물'을 보고 그들의 행한 바를 보면 잘 알 수 있으며 마태복음2: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를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그들은 박해자요 사탄 마귀의 예표인 헤롯을 피하라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더 재미있는 추측은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서 가만히 있었을까 라는 가정이다. 그들이 만난 헤롯, 헤롯의 부하들, 이스라엘의 서기관들과 관료들, 그리고 육신적으로는 아직 어린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요셉 등등에 대해 글로 적었든지 아니면 구전으로 알렸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후에 그들은 여러가지를 종합하여서 드디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을 보셨을 것이고(시53:2) 그래서 인도하셨을 것이다. 그들은 불편한 교통수단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를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였을 것이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메시야를 기다리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준비한 선물로 이미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또 동방박사들은 이미 전파된 메시야 사상을 들었고 찾아갔고 만났고 고향에서 전파하였을 것이다. 이방인들을 위한 '메시야 사상'에 대한 전파는 이미 적어도 B.C 750년 이전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이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왕래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메시야 사상의 연구가 동방박사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탄생한 장소까지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누구든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찾고자 하면 하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께로 가는 길로 인도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4.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곳인가
하나님을 대적한 사탄은 이 땅에서는 세상의 임금이며 인간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도록 마음을 주어서 믿게 한다는 것이다. 사탄은 창조주인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장(루시퍼)을 우두머리로 그를 따르던 천사들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탄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14:12-15) 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13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자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15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가리로다.
(겔28: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유:6) 또 자기들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 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는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신다는 말씀이다. 마귀는 거짓의 귀재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온갖 거짓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한 사람이라도 지옥으로 간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장례식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해마다 기일이 오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죽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효도는 살아 있는 부모에게 하는 예의이지 죽은 부모는 하고 싶지만 할 수 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인데 제사지내는 것이 마치 부모공경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다보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과 영이 분리되는데 육에서 분리된 영은 천국 아니면 지옥에 들어가므로 죽은 조상의 영들은 절대 이 지상의 자손들의 집에 올 수 없다. 성경은 죽은 조상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드리나니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라.
마귀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나쁜 생각을 넣어 주기도 하며 사람들의 심령을 사로잡아 번민케도 하고, 죄의 길로 유혹하거나 악으로 충동질하여 우리 자녀들을 범죄케도 하는 악의 영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찬송하며 살아가는 가정에는 마귀들도 들어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점치고 굿하며 우상숭배들로 마귀들을 불러들이는 가정에는 마귀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가정이 마귀의 악한 미혹과 심령적 지배로부터 지키기 위하여서도 예수님의 권세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마귀는 항상 삼킬 먹이를 찾는다고 기록된 것을 보십시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찿나니. 마귀를 대적하는 길은 오직 한가지 뿐입니다.
(약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진짜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주 곧 그의 구속자인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니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히1:10) 또 주여 주께서 처음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은 주의 손이 이루신 작품이니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가 되면 인류를 미혹하여 저주와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마귀를 잡아서 유황 불 못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계20:1-3)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 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계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우리 주위에서 활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수호천사들과 타락한 마귀들 뿐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정말 사후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래의 실화를 들어보면 사후의 세계가 믿어지게 될 것입니다.
(1) 전형적인 육체 이탈의 경우
죽어 가는 사람들은 대개 그 직전에 기절하는데 통증이 없어지는 듯하며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가지만 방안에 있는 가족과 간호원이 분주히 움직이며 의사를 찿는 소리나 의사의 사망선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는 이미 육체 밖에 나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도 모두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그가 깨어난 후 그 방안에서 있었던 일과 대화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에서 이탈한 영혼은 자기가 죽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으며 자기 육체는 말하자면 속 빈 껍데기이며 마치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의 시신 같았다는 것이다. 이런 묘한 상태에 익숙해지면서 자기가 전혀 새로운 몸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새로운 몸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그는 허상이 아니며 예전처럼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육체에서의 분리는 어느 터널을 지나는 것 같거나 우주 로켓이 공중에서 분리되듯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밖에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 후 어느 광명자의 존재자, 또는 엄위한 존재자 앞에 서는 체험을 하고 그의 일생이 마치 심판에 대비하는 듯 순식간에 모조리 재현된다. 나쁜 경험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불의 호수를 느끼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 공포는 말로 형용할 수 없으며 생각하기도 싫다는 것이다. 영혼은 육체 밖으로 나가서도 존재하고 육체와 똑 같은 감각을 갖고 있는데 육체의 감각보다도 더 예민하다는 것 등이다.
사후 경험은 오래 전부터 전해온 ‘티베트의 사자(死者)의 책’과 매우 흡사하다. 영혼은 심판을 받고 그 사람에 합당한 운명을 따라야만 하는데, 그가 생전에 행한 일들과 언동까지도 하나도 남김없이 천사들과 심판자 앞에서 밝혀진다. 대낮처럼 청명한 빛 속에서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숨기고 감추었던 모든 일들이 사후에 들통 안 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즐거웠던 경험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그들은 얼마전까지 그렇게도 고통스러웠던 통증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고 쾌적한 기분으로 다시는 앓는 것이나 죽는 일도 없을 것 같았다는 것이다. 어떤 환자는 알 수 없는 흑암의 존재들에게 끌려가는 무서운 경험을 호소하지만, 어떤 사람은 빛의 천사 또는 사랑이 넘치는 존재에게 이끌려 황금길 수정같이 맑은 도로, 아름다운 동산과 같은 곳을 방문하는 경험을 말한다. 그리고 거룩한 빛의 존재자 앞에 섰다는 것이다.
(2) 무서운 지옥을 경험한 경우(오레곤의 기적)
토마스 웰치는 그의 소책자 ‘오레곤의 놀라운 기적’ 속에서 매우 희한한 경험을 기술하고 있다. 그는 당시 미국 오레곤 주의 어느 목재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웰치는 댐 위에 걸려 있는 교각을 건너가야 했다. 그 앞에 제재소가 있는데 교각은 댐의 수면에서 55피트나 높은 곳에 있었다. 나는 교각에서 발을 헛디뎌 수심 10피트의 연못 속에 떨어졌다. 마침 벌목장에서 통나무를 운반하는 화물 열차의 운전대에 앉았던 기관사가 삐죽 삐죽 나온 나무 끝에 부딪치면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내 시체 수색에 동원되어져서 1시간 만에 건져 올렸다. 그동안 나는 이승에선 이미 죽은 몸이었으나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생각나는 것은 교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졌다는 것뿐이다.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내가 불의 호수의 기슭에서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 계시록에 나온다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연못’ 바로 불의 호수’를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나 있던 1시간 동안에 내가 본 것, 일어난 것을 구석구석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이 육체 속에 살고 있는 동안에 배운 것 이상의 것을 육체에서 유리되어 있던 이 한 시간 동안에 배웠다. 나는 불타는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그곳에서 보았는데 그들 몰골한 광경과 곤혹과 낭패의 애처로운 표정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곳의 광경은 너무도 무서운 것이어서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도망칠 방법도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며 벗어날 구멍이 없는 감옥과 같은 곳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독백했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 이곳에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을 텐데...” 그러나 나는 지금 이런 곳에 와 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처럼 사후에 지옥문에 가까이 갔다 온 실화도 있다.
(3) 황홀한 천국을 경험한 경우
별안간 가슴의 통증에서 해방되면서 평화로운 기분이다. 자기 육체에서 이탈 후 두둥실 떠돌며 잠시 방안에서 머물다가 그 다음은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어느 보고에서도 공통되는 것 같다. 신앙이 두터운 그리스도인들은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고, 천상의 빛에 휩싸인 거룩한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드와이트 무디는 19세기말 미국과 유럽을 뒤흔든 세계적인 전도자이십니다1875년 시카고 빈민가에 교회를 설립했는데, 구두판매원 출신다운 쉽고 설득력있는 무디의 설교는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남북전쟁 때는 전쟁터에서도 설교했는데 많은 군인들이 무디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다고 한다. 기독교 사상 최대의 복음선교사의 한 사람이었던 무디는 1899년 12월 22일 금요일 아침 죽음이 임박했으며 그의 아들 윌은 복도 건너편에 아버지의 방에서 무디가 “대지가 물러간다 내 눈 앞에 하늘이 열려있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월은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갔다. 무디는 말하기를 “이것은 꿈이 아니다. 월 정말 아름답다. 정말 황홀하구나! 만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있다. 나는 가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무디는 의식을 잃어 갔다. 고통을 호소하지도 않고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의식이 끊어졌다. 주치의가 구명 노력을 하자 다시 살아나 자기가 이 세상 바깥에 갔다 왔노라고 말했다. 나는 천국의 문 앞에 갔는데 그곳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며 애들도 만났다고 말했다. 무디는 이렇게 말한 후 영원한 내세로 갈 신호를 받고, “무엇으로도 나를 더 이상 잡아둘 수 없다. 천국에 타고 갈 수레가 방안에 와 있다”고 말하며 천사는 번쩍이는 건물과 아름다운 나무가 있는 동화 같은 도시의 길 위에 나를 내려놓았다. 천국은 도처에 아름다운 빛이 가득했다. 그 빛은 불타는 듯 현란했으나 눈을 가려야 할 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다. 황홀한 그 자체였다. 이글은 무디목사가 잠시 죽었다가 깨어난 후 아들에게 한 말의 일부이다. 천국을 한번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천국을 직접 체험한바 있는 바울사도는 내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다음은 바울의 셋 째 하늘의 환상입니다.
(고후12:1-2;4))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4) 미국의 저명한 심장질환전문가 ‘모리스롤링스’박사의 기술
조지 워싱턴대학 의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후 지역병원의 심장질환 전문가인 모리스 롤링스 박사는 갑작스런 죽음에서 환자를 소생시키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심장 협회의 전국 교수단의 일원이다. 그는 특히 심장혈관질환의 전문의사이므로 간혹 죽었다가 살아난 환자들이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하였다. 어느 경우는 지옥에 관한 이야기이고 어느 경우는 천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신론자인 그는 간혹 혼란스러워 할 때도 있어서 그는 유대교의 율법과 탈무드, 회교도의 코란, 옛 인도의 성전 베다, 불교의 불경 등 많은 종교 책들을 열심히 비교하고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성경이 죽었다 살아난 환자들의 죽음 후의 경험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래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그는 연구가 끝난 이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성경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을 묘사한 그 책은 바로 기독교의 성경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만이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영혼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에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영혼은 마음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의 창조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인생을 말할 때 마라톤 경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은 출발할 때 제일 먼저 나가도 소용없습니다. 반환점을 제일 먼저 돌았어도 소용없습니다. 라스트 지점에 왔을 때 제일 먼저 통과하면 그가 면류관을 받듯이 인생도 일찍이 학교다닐 때 공부 잘했어도 천국가는 것과는 관계없으며 젊어서 돈많이 벌고 자식 잘 키웠어도 천국가는 것과는 관계없으며 마지막 인생 끝나가는 그 때에 예수님을 진실히 믿으면 그는 천국에 입성하는 것인데 사람은 자기의 마지막 때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니 그저 매일 매일 주님 잘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대부분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우상은 안 섬긴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맘몬신이나 정욕과 쾌락의 신에 잡힌다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대해 어느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은 너무 늦게 본 진실이다. 제때에 할 일을 경홀히 여기고 후회하는 곳이다. 여러분이여,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지옥은 분명히 있으며 분명한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사후에 가는 곳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적인 무지로 자신이 지금 지옥에 가는 일을 하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정말 불행한 인간이다.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