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세계지도/허청미-
달팽이 선생,
차를 타고 1시간쯤 달리면 그때부터
왜 하품이 나고 머리가 아플까요
급기야 구토까지 하고 나면,
나는 아주 우울합니다
달팽이 선생,
나는 코페르니쿠스를 꼭 만나야 해요
내가 코페르니쿠스와 악수 한 번 해보자는 것은
인류가 의심치 않는 地球球形說 때문인데
당신은 내 귓속에서 나의 중심을 수호해 주지 않으니
물레방아나 돌리는 작은 물줄기에 대해서
쳇바퀴나 굴리는 다람쥐 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중해쯤에서 툰드라쯤에서 고비사막쯤에서
수평선 혹은 지평선이 활처럼 휘는 것을 봤다면
경이로운 사실을 믿었을 텐데요
달팽이 선생,
오늘 열무 단을 풀어 다듬다가 알았는데요
벌레 먹은 무 잎에 점액질 얼룩이 당신의 지도라는 걸
이슬방울 둥근 것을 제일 먼저 목격했으리라는 걸
아침마다 동쪽 달마산을 오르는 해가
저녁때면 서녘 샛강으로 스미는 궁륭의 궤적이
얼룩 속에 숨은 당신의 세계지도라는 걸
쉽사리 누구의 說에 귀기우리지 않는
내 귓속에서 고질적으로 추를 흔들어대는
달팽이 선생,
열무 단 속에 오대양 육대주를 봤다 할까 봐요
이대로 앉아서 지구는 둥글다 동의할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