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사회문제는 급격한 인구 감소다. 인구 절벽 시대에서 제2의 손흥민, 제2의 김민재는 나올 수 있을까? 이제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변화해야 할 때다.
인구 절벽 시대, 축구선수도 사라진다?
대한민국은 현재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의 위기에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출생율은 0.7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며 계속 하락세에 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2017년생 어린이는 357,771명으로, 전체 출생아 수가 40만 명 밑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문을 닫는 학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국 축구 생태계 역시 인구 절벽 시대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학령 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잇단 폐교는 자연히 학교 축구부 수의 감소로 이어진다. 2023년 8월 기준 KFA에 등록된 선수는 전문 30,096명, 동호인 137,677명으로 예년보다 조금 늘어났지만, 학령 인구가 급락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몇 년 뒤의 등록 인구 감소는 예정된 수순이다.
한국 축구가 인구 절벽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저변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엘리트 중심 체육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독일, 영국, 미국 등 스포츠 강국들은 생활 체육을 바탕으로 뛰어난 기량의 선수를 발굴, 육성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가까운 일본 또한 오래 전에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 사이의 벽을 허물어 저변 확보에 힘썼다. JFA에 등록된 선수는 총 817,375명(2022년 기준)이다.
한국 축구의 얕은 저변을 생각했을 때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유럽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속속 생겨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손흥민과 이강인의 경우에는 유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소수의 뛰어난 선수들에게 기대 한국 축구의 장기적인 국제 경쟁력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기적의 연속을 바라는 것과 같다.
선수의 개별 성장과 자연스러운 경쟁이 동시에 장려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홀란드와 벨링엄이 나오려면?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축구에서는 10대 중후반부터 프로 무대에서 우수한 활약을 펼치는 선수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엘링 홀란드(맨체스터시티)는 15세에, 주드 벨링엄(레알마드리드)은 16세에 프로에 데뷔했다. 두 선수 모두 아직 20대 초반임에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경우에는 학제에 따라 리그와 대회가 구성된다. 초등(U-12), 중등(U-15), 고등(U-18) 축구가 각각 분리돼 운영된다. 사실상 같은 팀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어 FC서울과 오산고(FC서울 U-18), 오산중(FC서울U-15)은 등록 제도 상 다른 팀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선수 이동은 불가능하다. 또래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가 소위 ‘월반’을 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학제라는 칸막이는 역시 입시와 연결돼 있다. 입시를 위해 팀은 성적을 내야하고, 때문에 고학년 위주로 선수를 구성해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저학년 선수들은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셈이다. 단기 성과에 매몰된 축구에서는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할 선수의 성장이 뒷자리로 밀려난다. 이것은 한국 축구의 경쟁력이 정체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U-16 대표팀에 코치로 합류한 김현준 KFA 전임지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청소년기 중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는 시기는 16세~18세로 본다. 정작 이 시기에 경기 경험을 쌓는 선수는 많지 않다. 학제로 구분하고 운영하는 한국 축구의 실정이 그렇다. 예컨대 내가 지금 함께하고 있는 U-16 대표팀에서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고 치자. 이 선수가 학교에서는 고1이다. 학원 축구에서는 아무래도 선배들에게 출전 기회가 먼저 주어진다. 이 선수를 다시 대표팀에 소집해 경기를 뛰게 하면 기대했던 경기력이 나오지 않는다. 경기 체력, 감각, 게임 운영 능력을 다지기까지 또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대표팀 멤버들은 내년 U-17 아시안컵이나 U-17 월드컵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런 고민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현준 코치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유소년 코칭을 연수했다. ‘ONSIDE’를 통해 ‘뮌헨일지’를 연재하기도 한 그는 바이에른의 유소년 시스템을 관찰하고 직접 코칭을 경험하며 느낀 점을 공유해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에른의 육성 시스템은 연령별로 신체적, 정신적 발달 상황을 고려하고 반영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축구 진입 단계인 9세부터 11세까지(스타트 레벨)는 축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통합 프로그램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12세부터는 말 그대로 연령별로 나뉘어 운영된다. 각 연령별로 운영 원칙과 목표가 명확하다. 훈련 프로그램에도 공격, 수비, 전환 과정, 개인-파트&그룹, 테크닉, 멘탈리티, 피지컬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연령에 맞는 훈련과 실전이 이어진다. 연령별로 밀도 높은 훈련과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뛰어난 재능이나 축구 지능으로 두각을 보이는 선수는 한두 살 위의 팀으로 월반하는 일도 흔하다.
김현준 코치는 “월반 선수들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면서 “월반 선수들이 상위 레벨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자연스럽게 큰 폭의 성장을 보인다. 지난해 U-17 월드컵에 출전한 바이에른 선수가 네 명이었는데, 그들 모두 바이에른에서는 U-19팀 소속으로 뛰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독일 U-17 대표팀은 2023 U-17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소속팀에서부터 ‘월반’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경험을 살릴 수 있었다고 보는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U-19팀의 경우 성인 프로팀처럼 UEFA U-19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다. 조 편성도 프로팀과 똑같다. 연령별로 다른 나라, 다른 팀과 경기를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과 경쟁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 아래로도 연령별로 리그가 개최되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교류전, 친선대회 등이 연중 수시로 운영된다.
김 코치는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외부 팀과 접점이 많아진다. 우리로 따지면 베트남이나 태국, 우즈베키스탄, 일본의 학교팀과 끊임없이 만나고 경쟁하는 셈이다.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와 다른 리그 선수들의 특성과 스타일을 파악하게 된다. 지도자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몸으로 경쟁하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한다”라고 말했다.
축구 생태계의 진화를 기대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변화: 연령별 대회로 장기적 전환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한국에서 학제라는 칸막이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기대대로라면 초등과 중등, 또는 중등과 고등 간에 자유로운 선수 이동이 일어나면서 수준별 훈련과 경기가 가능해진다. 선수의 개별 성장을 독려하고 자연스러운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일찍 프로에 데뷔해 기량을 쌓을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과거 FC서울이 중학생 유망주들을 프로팀으로 스카우트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청용, 고요한, 고명진, 송진형 등이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나이에 프로 선수가 되었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0대에 프로 데뷔까지 신고했다. 이청용의 경우 후에 합류한 기성용과 함께 2000년대 한국 축구를 쌍끌이하는 대표 선수로 성장했다.
이들의 경우 프로팀에서 목적성을 갖고 진행한 프로젝트의 일원이었기에 ‘학제’라는 한계선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시사점은 갖는다. 선을 지우거나 완화하는 것만으로도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축구가 가야 할 방향도 분명해진다. KFA가 장기적 안목에서 시스템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KFA는 변화의 핵심이 유・청소년 선수 육성 시스템에 있다고 보고 있다.
KFA 대회기획팀 이상운 매니저는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날씨와 환경에 따라 밭에 관심을 기울이며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것이 KFA의 역할이다. 축구의 밭은 안정적인 저변이다”라며 저변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뭄에 콩 나듯 뛰어난 선수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한국 축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상운 매니저는 “넓고 깊은 저변 확대를 위해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더 많은 우수 선수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위해 모든 이해 당사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FA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선진화된 한국형 축구 생태계를 만들고자 유・청소년 리그 및 대회를 개선하는 방안을 계획 중에 있다. 장기적으로는 초-중-고로 구분하고 운영하는 학제별 대회 대신 연령별 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현실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당장 학원 축구는 물론 프로 산하 유스팀도 연령별로 운영할 만한 여력이 거의 없다. 연령별로 팀을 운영하려면 선수나 코칭스태프, 관리 담당 등 숫자 자체가 늘어난다. 곧 예산과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학제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 사회에서 연령별 대회를 도입하는 것은 환영받기 어려운 난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축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진화는 필연적이다. 현장에서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 시점이다. KFA는 태스크 포스를 구성해 정부 기관, 대한체육회, 선수, 지도자, 학부모, 언론 등 여러 이해관계자와 협업하고 대국민 공청회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3월호 ‘ISSUE 1’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 본문 내 사진은 참고 사진일 뿐 기사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습니다.
글=권태정, 배진경
사진=대한축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