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죽음에서 살아남(2)
엡 2:1-10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설 교 >
은혜와 믿음
에베소서 2:1-10, 베드로전서 4:11 / 최응희 목사
오늘 본문에서는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인생이 무엇이며 왜 구원을 받아야 하며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며,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왜 구원을 받아야 하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1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서 죄에 물들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은 깨어지고, 그 영혼이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려면 하나님의 형상의 통로를 통해서 만나는 것인데 그 형상이 깨어짐으로서 하나님과 교제의 길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타락한 존재요, 그 영혼이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형상은 하나님을 비추어주고 하나님을 알수 있게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영성의 거울이 깨어졌습니다. 거울이 깨지면 거기에 비친 모습은 모두 왜곡된 모습으로 비추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잘못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치료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치료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마치 깨진 거울을 다시 온전히 붙여주시고자 당신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은혜를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은혜에 자리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2. 어떻게 구원받아야 하나?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2:8
① 그 은혜에 의하여 --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은혜 때문에' 이런 말씀입니다.
②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우리 죄를 다 담당하셨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은혜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폭포같은 비가 쏟아져도 뚜껑이 닫혀 있으면 물이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주시는 무한한 은혜이지만 믿음의 통로를 통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응답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해서 인간의 행위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주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아멘! 믿습니다!하고 그 은혜를 통째로 받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선물은 감사로 받는 것이지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받았다고 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공로를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저 감사일뿐입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8-9
3.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나님께서 십자가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을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모양이 달라져서도 아니요, 양심이 깨끗해져서도 아니요, 사는 모습이 달라져서도 아닙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너는 내 아들이다' 그렇게 받아주신 아버지처럼, 그냥 믿음하나 보시고 '너는 내 것이라' 인 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번에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분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입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신분이 달라졌으면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달라진 모습으로 사는 기준을 오늘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2:10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옛 사람은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이유는 선한 일을 하게 하심입니다.
무엇이 선한 일일까요? 베드로전서 4:1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일,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선한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하듯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이요, 그 선한 일을 하라고 우리를 허물과 죄로 죽은데서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만찬을 통해서 찌들고 때가 낀 내 영혼을 씻어내고, 근심 걱정으로 어두워진 영혼을 은혜의 빛으로 다시 밝히고, 상처받은 영혼, 질고로 인해 연약해진 육신을 치유 받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부름받은 성도 여러분, 오늘 성만찬을 통하여 다시 한번 거듭나는 은혜를 받고, 성령충만한 가운데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선물
엡 2:!-10 / 최응희 목사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말씀입니다. 선물이 빛이 나려면, 선물을 주는 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그 선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받는 사람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한 나라를 예비하셨고, 우리가 영혼의 존재이며, 본래대로는 짧은 육신의 인생과 함께 소멸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한 선물인지를 깨닫게 하는 선물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것이 선물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육신으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무슨 의미인지 알수 없는 말씀입니다. 들어도 별 감동이 없는 말씀입니다. 육신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믿고, 인간에게 영혼이 있음을 알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만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 그 선물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가 범죄함으로 인류에 죄가 들어오고 영혼이 죽게 됨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 같은 의미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허물은 불순종을 뜻하고, 죄는 근본적인 죄성을 뜻합니다.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상태를 세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합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2),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2), 육체와 욕심을 따르는 것(3)으로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고, 상식적으로 좋은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풍조이지요. 상식이란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행위나 생각들입니다. 모든 상식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성에 있어서만은 세상의 상식이란 탁락의 길과 거의 동등선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분별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풍조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무상한 세상의 유행과 풍조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라갔다는 말은 사탄을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공중권세라는 표현은 고대 세계관이 반영된 표현입니다. 땅에는 사람이 살고 하늘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는데, 그 사이인 공중은 사탄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근본 의미는 사탄이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영적인 통로를 가로막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탄이 하나님과 성도의 사이를 갈라놓고 유혹하고 불신을 집어넣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공중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육체와 욕심을 따라갔다는 것은 오염된 마음을 따라갔다는 뜻입니다. 육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육체를 조정하는 정신, 마음이 세상 풍조를 따르기 때문에 육체가 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영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육체의 편함과 욕심을 따라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죄와 허물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풍조와 공중권세 잡은 자와 육체와 욕심을 따라가서 결국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심판 받을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님 십자가를 통하여 건져주셨습니다. 물론 아직도 우리는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따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이미 신분이 달라졌음에도 아직 옛 버릇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우리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주시는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그 믿음에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8
① 그 은혜에 의하여 --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은혜 때문에'
구원은 내가 완전해졌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을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겉으로 모양이 달라져서도 아니요, 양심이 깨끗해져서도 아니요, 사는 모습이 달라져서도 아닙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너는 내 아들이다' 그렇게 받아주신 아버지처럼, 그냥 믿음하나 보시고 '너는 내 것이라' 인 쳐주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대번에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입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②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은혜를 깨닫고 거기에 응답하는 우리의 고백으로'
아무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우리 죄를 다 담당하셨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은혜의 능력이 미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폭포같은 비가 쏟아져도 뚜껑이 닫혀 있으면 물이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무한한 은혜이지만 무조건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응답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해서 인간의 행위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일은 주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아멘! 믿습니다! 하고 그 은혜를 통째로 받은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9
이런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어여뻐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맘 착해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오직 믿음으로만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믿음은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는 믿음입니다. 그 은혜를 인정하고 기쁨으로 참여하는 믿음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힘으로 차지할 수 없습니다. 지위로 얻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착한 일을 많이 해도 갖지 못합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십자가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끝에는 이런 말씀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2:10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지만 우리의 삶이나 행동은 온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비록 작은 것부터라도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도록 선한 일들을 이루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무슨 일이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하듯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선한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자기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게서 세상사는 기쁨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희생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할 때, 오히려 나의 삶의 기쁨이 충만해지고, 스스로의 생활도 생기가 가득해 집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도다 2:1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 2:10
이 두 말씀 기억하면서 믿음 안에서 힘있고 기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엡 2:1-10 / 이종철 목사
1. Before 그때에(1-3)
신앙을 갖게 되면 삶과 죽음의 정의가 바뀝니다. 전에는 육신이 살아 있는 것을 살았다 하고, 육신에서 호흡이 멈추는 것을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신앙 안에서는 하나님 없이 산 것을 죽었다고 하고,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게 된 것을 살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1절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라고 말씀하며, 5절에서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지금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성경의 증언은 그 중에 산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록 호흡은 하나 죽은 존재와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몇 개의 기준들이 있습니다. 2절에 말씀대로 ‘이 세상의 풍속을 좇는 자’는 죽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풍속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며 따르는 가치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최고입니다. 경쟁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1등이 최고며 주위 사람들은 경쟁의 대상으로만 보입니다. 쾌락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그만입니다. 윤리도 사랑도 없습니다. 만약 우리 삶을 이끌어 가는 축이 이런 세상의 풍속이라면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신앙은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 풍속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살아 있는 고기는 그 물을 거슬러 상류로, 상류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죽어 있는 것은 그대로 그 물결에 쓸려 내려가고 맙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는 자’ 또한 죽은 사람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우리 운명의 배후에서 마치 우리 운명을 주관하는 자처럼 보이는 존재를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우상이나 귀신을 두려워했습니다. 요즘도 사람들은 꿈이나 운명, 사주팔자나 어떤 귀신같은 존재를 두려워합니다. 장례식에서는 특히 더합니다. 예전에는 사진도 못 찍게 하고 귀신이 먹었다고 해서 음식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합리주의가 발달하면서 이런 초월적 세력이나 미신이 꺼림칙하기는 하나 두려워할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대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자리는 이제는 돈, 곧 맘몬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대는 돈이 신이 된 사회입니다. 주님도 산상수훈 말씀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 재물을 신과 같은 위치로 인정하였습니다. 참으로 돈은 신입니다. 이 부적만 가지고 있으면 든든합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려도 좋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찬양한 시편 23편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안락한 침실에 눕게 하시고
달콤한 술집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호주머니에 돈이 있음이라.
돈의 권세와 보호가 나를 안전케 하는도다.
돈이 원수를 만들고 나를 괴롭게 하니
내 머리에는 항상 돈 생각으로 근심의 잔이 넘치는 도다.
나의 평생에 욕심과 정욕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돈을 믿고 살다가 죽으리로다.
성경은 이렇듯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는 자의 삶은 죽은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자’도 죽은 사람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살고 자기 욕망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살면 행복할 것 같은데 결과는 허망합니다. 허전해서 더 많은 욕심으로 채우려하지만 더 허전해지고 맙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았던 자라고 할 때 저는 영화 ‘시민 케인’의 주인공이 생각납니다. ‘시민 케인’은 1950년 오손 웰즈 감독의 작품으로 지금도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영화사의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시민 케인은 시민답지 않게 대 부호로 살았습니다. 제너두라는 궁전을 방불케 하는 대저택에서 살았으며 그 평생 자기가 욕심하는 바는 다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이 인상적인데 이 시민 케인이 마지막 죽는 장면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가 마지막 죽으면서 한 말은 ‘로즈베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로즈베리가 누구인가를 추적하는 스토리로 전개됩니다. 그러면서 한 기자가 시민 케인의 일생을 더듬게 됩니다. 시민 케인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냈지만 많은 돈을 유산으로 상속받았습니다. 자신만만했고 돈도 있었던 시민 케인은 사업, 정치, 사랑, 대저택, 보물 수집으로 자기의 목적한 바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갑니다. 무한한 권력도 가지고 있어서 무명 배우를 일류 스타로 만들고, 그를 위해 대형 오페라 홀을 지어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시민 케인의 모습은 항상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입니다. 이 기자는 시민 케인의 일생을 추적하지만 끝내 이 로즈베리의 정체를 밝히지 못합니다. 로즈베리의 정체는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관객들에게만 알 수 있도록 크로즈업 되어 보여집니다. 로즈베리는 어떤 대단한 인물이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민 케인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눈썰매의 이름이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했기에 기자는 밝힐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시민 케인에게서 이 눈썰매라는 것은 자기가 다시 돌아가고픈 영혼의 향수와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그의 욕망이 그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지만, 그의 행복은 오히려 작은 추억 속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인생을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본질상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천성적으로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진노의 자녀라는 것은 심판을 말합니다. 심판은 무엇인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심판입니다. 인생은 본질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행복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태어나는 것이 원죄입니다. 시민 케인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케인이 죽는 장면부터 영화가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그에게는 살아 있는 삶이 없습니다. 자기 인생이 없습니다. 오직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상되는 과거만 있을 뿐입니다.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습니다. 오직 과거만 있고 죽음만이 지배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은 현재가 천국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에서 ‘앉히시니’는 시제가 단순과거형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회적 사건입니다. 결국 예수 믿는 그 시점부터 천국은 현재형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미래에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를 모신 바로 이곳이 천국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천국을 영원히 죽지 않는 곳이라고 정의합니다. 잘못된 정의 입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옥도 영원히 죽지 않는 곳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은 예수가 있느냐와 없느냐입니다.
T.S. 엘리어트의 <황무지>라는 시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쿠마 라는 곳에 점을 잘 치는 무녀가 있었습니다. 너무 점을 잘 쳐 신들이 상급으로 이 무녀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정합니다. 이 무녀는 영원히 살고 싶다고 자기 소원을 말합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져 이 무녀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녀가 소원을 잘 못 말했습니다. 영원히 살되 아름답게 살게 해달라고 간구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녀는 죽지는 않지만 늙어가면서 몸이 자꾸 말라들어 작아집니다. 결국은 조롱에 갇힐 정도로 작아집니다. 사람들이 점을 잘 치면서도 죽지도 않으니까 신기해서 이 무녀를 조롱박에 가두고 조롱합니다. 그 무녀를 놀리던 아이들이 무녀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너의 소원이 무어이냐고 묻자 무녀는 “죽고 싶어” 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영원히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원히 살되 아름답게 살아야 하며,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살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보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의미와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게 무어냐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있고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를 모시고 계십니까? 그러면 만족하십시오. 문제는 보물을 내 안에 모시고도 그 가치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마치 건강이 그런 것 같습니다. 건강은 잃고 난 연후에야 그 소중함을 압니다. 자기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제 발로 걸어가서 볼 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위대해 보입니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행복은 내 안에 있습니다.
2. After 그러나(4-7)
죽었던 우리를 살렸던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4절에서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였고, ‘그 큰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7절에서는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이라 하였습니다. 그냥 풍성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풍성한 은혜입니다. 왜 이런 고백이 나오느냐 하면 그 대가가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죽이고 우리가 받은 은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종교에 비해 쉽습니다. 모든 종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가가 요구됩니다. 회교는 선행의 종교입니다. 평생 동안 성지순례를 한 번은 해야 합니다. 마지막 날 심판받을 때에는 선행과 악행의 양을 저울에 달아 선행이 양이 많아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무하마드 알리는 회교를 믿었는데 항상 라이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 죄를 짓거나 악한 생각이 나면 라이터 불을 켜서 손에 대었다고 합니다. 지옥불은 이렇게 뜨겁다는 것을 체험하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힌두교나 불교는 고행을 합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평생 동안 손을 들고 다니거나 나무 위에서 땅으로 한 발자국도 내려오지 않는 수도사도 있습니다. 장자불와라고 하여 불교에서는 10년 동안 눕지도 않는 스님도 있고, 30년 동안 면벽한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깨달음을 얻어 구원에 이르는 사람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너무 쉽습니다. 말 한마디면 됩니다. 8절에 나온 대로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내가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과 구주로 고백하면 구원 받습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이해 하지 못하니까 8절과 9절에서 구원 받는 방법을 거듭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인하여’ 은혜는 값없이 주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우리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는 그 의미가 분명하지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물은 값없이 받지요. 9절에서는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다’ 8절과 9절은 철두철미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받는 은혜란 뜻입니다. 인간은 항상 내가(I) 무엇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도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외의 모든 종교는 I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I 종교가 아니라 J, 곧 Jesus 종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셨습니다. 5절과 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비록 믿음이라는 간단한 고백으로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가장 힘든 길이었습니다. 왜? 자기 아들을 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좋고 쉬운 것이지만 결코 값싼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비싸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지극히 풍성한 은혜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면 세상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방송국 기자가 찾아들고 과학자가 조사를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대단한 사건이 바로 지금 우리 심령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에 감격해 하고 있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은혜로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 그 크신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것은 다시 1절에서 3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죽은 존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본 사람입니다. 죽기 살기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한번이라도 몸부림을 쳤던 사람, 그 결과 죄 안 짓고 살기 정말 힘들군요 하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이 값없이 주시는 그 은혜의 귀중함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감히 죄를 지어라. 그리고 보다 더 씩씩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라”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은혜는 죄의 고통을 맛보았던 자만이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것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나 예수님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았습니다.” 하는 단순한 차원이 아닙니다. 이런 태도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싸구려 취급하게 만듭니다. 괴테가 쓴 『파우스트』에 보면 일생 동안 이런 저런 노력을 한 끝에 파우스트가 독백처럼 말하는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하는 고백하고, 갓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이 책 몇 권 읽고 “인생은 알 수 없구나!” 하는 고백이 그 무게가 같겠습니까?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을 깨달은 종교개혁자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확신을 갖기까지 루터는 로마의 스칼라산타 성당에 있는 28개의 빌라도 법정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이런 고통과 고민 끝에 얻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고백하고, 성경공부하다 교리적으로 깨달은 고백하고 그 무게가 같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그 의미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날로 새롭습니다. 해가 갈수록 예수의 은혜가 더 깊어져야 합니다. 은혜를 가볍게 받으니까 쉽게 흔들리고 인격의 변화가 없습니다. 날로 새롭고, 매년 깊어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표준새번역은 10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출발입니다. 예수 믿는 사건은 마치 길가에 구르는 돌 하나를 그 집으로 들여온 것과 같습니다. 이제 그 조각가가 정으로 쪼고 끌로 다듬으면서 작품을 만들어 갑니다.
대기만성이라고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자신입니다. 일이 아닙니다. 일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일이란 것은 우리를 빚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일에 성공했습니까? 성공한 일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을 통해서 자신감과 능력이 훨씬 자란 여러분이 하나님은 훨씬 더 자랑스럽습니다. 일에 실패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성공입니다. 실패를 통해서 우리 인격이 더 성숙했으니까요? 그러니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일을 통해서 아름다운 걸작으로 빚어 가십니다.
여기 작품으로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포이에마’입니다. 연상되는 단어가 없습니까? 네 ‘포우임(poem)’입니다. 시란 뜻입니다. 우리 노애리 자매가 자서전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시처럼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한 사람이든 각각의 인생은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시입니다. 일은 포기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라는 작품은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물질적 손해는 내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십시오. 마지막 날 하나님께 보여 드릴 작품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하여 이런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시의 몇 행을 써내려가고 있습니까? 고난의 시기입니까? 캄캄한 동굴입니까? 아니면 클라이막스입니까?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인생이라는 대서사시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엡 2:1-10 / 김삼환 목사
우리 인간은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엿새동안 창조하 셨습니다. 이 모든 창조하신 엿새 동안의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 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만물보다 또 더 귀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 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 만들어주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며 관리하며 또 우리 인간이 이 땅 위에 충만히 살면서 서로 사랑하며 좋은 일을 많이 서로 행하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라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끊어지게 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도 외국에서 여러 날 지나면서 국내에 무슨 좋은 소식이 없나, 뉴스가 없나 이렇게 들어보지마는 얼마 나 들어 보는 대로 걱정스러운 일들만 많이 생기고 불안하기 그지없고 아이구 큰일났구나 어떻게 하 지? 이런 염려스러운 마음만 앞서게 되었습니다. 여름이 되어서 온 국민들이 갈증을 느끼고 좀 시원한 굿 뉴스가 없을까, 좋은 소식이 없을까 하지마 는 이 세상에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굿 뉴스는 없습니다. 우리가 갈증을 풀만한 영혼을 시원하게 해 줄만한 선한 소식은 이 땅위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선한 사람이 이 땅위에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치우 쳐 무익하게 되고 악하게 되고 잘못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든 사 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남의 허물을 보고 우리의 눈은 남을 미워하 고 시기하는 눈이 되어있고 우리 마음은 부패하였고 우리의 발걸음은 악한 일에 빨리 달려가고 우리 의 손은 남을 해치는 일에 쓰여지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고 로마서 3장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 다. 사람이 제일 잘못되었습니다. 사람이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옛날에 어른들이 그런 말을 했어요.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귀신이 제일 무섭고 호랑이가 무섭고 짐승이 무서운 줄 알았는데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제 일 무섭다는 거예요. 아니 사람이 왜 무서울까? 밤길 걷다가 사람 만나면 제일 반갑지 왜 사람이 무섭 나?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나이가 들고 보니까 사람이 무섭단 말이 맞는 거예요. 여 러분, 인류 역사에 사자가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해 칩니까? 히틀러 하나만 하더라도 6백만을 죽였고요 폴 포트 정권도 3백만 죽인지가 몇 십 년 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 지상 위에서 몇 만 명, 몇 십만 명 죽이는 것이 한순간에도 얼마나 많이 일 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느 호랑이가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입니까?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입니 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잘 길러야 합니다. 사람을 기를 때는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자녀가 남을 해치지 않도록 만들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남편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무서운 세상인 것입니다. 사위를 위하여 기도해 야 됩니다. 딸을 위하여 기도해야 됩니다. 부모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왜? 무섭습니다. 한순간에 어떤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습니다. 사 람이 무서운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버림받아 우리 인간이 아름답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고 오히려 죄가 우리 안에 우 리 피, 혈관을 통하여 흐르면서 죄의 DNA가 우리 마음의 우리 몸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면서 우리 인간은 죄의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죄의 능력 아래 살게 된 것입니다. 죄의 유전자가 조상 대대로 흘 러 내려오고 있고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과 사상과 우리의 모든 이 세포들이 죄악으로 구성되어 있 습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많이 돈벌고 공부 많이 하면 좋은 일 할 것 같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 리 뭐 간단하게 연속극 하나만 보더라도 그 궁중에서 되어지는 일들이 너무 처참하고 악하고 무지무 지하게 포악한 일들 행하는 거, 순간 순간 모여서 그 대신들이 모여 가지고 날마다 하는 일이 음모나 하고 이런 일을 늘 행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높 다고 돈 있다고 성공했다고 출세했다고 좋은 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잘못 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기 전에는 우리 인간은 믿을 수 없습니다. 선할 수가 없 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욥기 서에 보면 표범의 색깔도 못 바꾸듯이 인간도 바 꿀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바꿀 수 없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 서 우리를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이 이 땅에 계신 33년 동안 인간을 새로 운 창조물로 만들어 새로운 피조물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데서 있게 만들었지마는 예수 그 리스도는 못쓰는 고물들을 가져다가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시계방과 같이 못쓰는 시계를 쓰도 록 만들어 주시고 병든 우리 인간을 치료하여 주시고 암이 퍼져 있는 우리 암을 하나님께서 예수의 보 혈의 능력으로 암의 진행을 막아주시고 이 모든 침투한 바이러스 죄악의 침투를 몰아내어서 우리를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전 것을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렇 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새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못쓰던 사람, 너희의 이방의 악 한 영들을 쫓아가고 불의를 쫓아가고 마귀의 종 된 여러분을 이제 완전히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새롭 게 만드셔서 병원에 가면 마취를 시켜놓고 수술 해 가지고 암 덩어리를 빼내버리고 하듯이 주님은 영 적으로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여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있고 고칠 수 있고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의 사랑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온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하나님의 자 녀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전에 하던 일 행하는 거, 똑같이 그전에 즐겁던 일 해보면 즐겁지가 않 고 그전에 가던 길 가보면 평안이 없고 그전에 좋아하던 거 보면 좋아하지 않고 그전의 모든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미래에 대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 고 멀리 바라보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 운 일을 위하여 이제 선한 일을, 그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열심히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로운 창조의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지음을 받았습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이 생명 이 삶을 허무한 데, 헛된 데, 죄악된 일에 쓰여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 2장 8절에도 너희가 그 은 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 라. 신약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과 같이 가장 귀한 요절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 원을 얻었습니다. 너희 행위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요 선물의 종교입니다. 내 공로 아닌,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 서 우리가 구원을 얻고 선한 일을 하게되고 천국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상에 비 하나 안 와도 잘사 는 나라, 번영했던 나라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나라가 이집트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여러분께서 도 많이 가보셨을 것입니다. 이집트는 적어도 약 3천 년 동안 강대국이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이 렇게 오랫동안 지배한 나라가 비 한 방울 안 오는 나라가 어떻게 그런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데 놀라운 것은 이 애굽은 신비한 나라입니다. 바로 비는 안 오지마는 강물이, 저 6천 킬로미터가 넘 게 흘러 내려오는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내려오는 이 강물이 바로 이집트 중심의 카이로까지 저 지중해 까지 알렉산드리아까지 그대로 강물이 흘러갑니다. 한강의 다섯 배 여섯 배 넘는 어마어마한 강물이 바로 이 이집트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 물을 이용해서 이 나라가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세계를 지배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집트는 이 강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지 비 와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 다. 이 이집트 그래서 이집트 전역은 100%가 사막인데 강물 좌우에만 이렇게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전부 강물 끌어다가 농사짓고 과일을 심어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거의 2천만 가까운 이 시 민들이 전부 비 와서 그 비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일 강 가지고 먹고사는 민족이 바로 이집트인 것입 니다.
기독교는 그렇습니다. 내 능력, 우리는 메마릅니다. 우리는 사막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오 늘 성가대에서 말한 대로 벌레만도 못한 우리 인간이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세상 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을 용서하 여 주옵소서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우리는 죄인이에요. 죄인이 선한 일 하나 했다 해서 선한 게 아니에요. 선한 일 해서 선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선하지 못해요. 호랑이가 집에다 날라 주었다 해서 그 호랑이가 착한 게 아니에요. 뱀이 옆에 있는 거 안 물어 죽였다 해서 뱀이 선한 게 아 니에요. 뱀은 뱀이에요. 호랑이는 호랑이예요. 범죄한 우리 인간은 죄인이지 악한 것이지 몇 가지 뭐 좋은 말하고 문화적으로 아름다운 일 했다 해서 우리 인간이 선한 게 아니에요. 이 선한 이 체질, 이 근본, DNA, 우리 인간을 바꾸어 놓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바꿔놓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 간은 ! 내가 아무리 선해도 내 공로로는 안 되는 거예요. 불교는 자기 선이에요. 불교에서는 자기 힘으 로 이루는 거예요. 기독교의 선은 내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들이는 거예 요. 강물처럼 내게 끌어들이는 거예요. 메마른 영혼에 끌어들이는 거예요. 당신의 보혈의 은혜를 끌어 들이는 거예요. 이 죄 된 이 몸에 나일 강을 끌어들이듯이 예수의 보혈을 끌어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보혈은 찬송에도 강 같다는 말이 많이 찬송가에 나오는 거예요. 예수님은 목마른 자들은 내 게로 나아오라. 나를 믿는 자는 너희 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자꾸 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님 은 더러워진 우리 인간을 씻을 수 있는 보혈의 샘이 되는 거예요. 보혈의 강이 되는 거예요.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한없이 있도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기독 교는 전체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이 창고를 그냥 트는 거예요. 수도꼭지를 트는 거예요. 위로부터 틀면 나일강의 물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이 무진장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성령도 은혜예요. 성령도 강 물이에요. 강물 같은 주의 성령이 내가 그 성령에 은혜를 받아서 거룩해지고 정결하게 되고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오고 강 같은 시원함이 오고 강 같은 은혜가 주어지는, 생명이 주어지는 거예요. 성령 도 교회도 어디에 비유해요? 교회도 강이에요. 다 강이에요. 모두가 강이에요. 여러분,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강같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성 령 강림함이라. 전부 강에 대한 말이 많죠.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자꾸 강, 바다에 비유하는 것은 기독교는 강이기 때문이에요. 교회가 뭐예요? 강이에요. 찬송가 한번 불러 봐요 245장 3절. 교회는 강이지 않습니까? 주의 보혈 흐르는 데 믿고 뛰어나와야 됩니다. 교회는 강이 에요. 강에 나오는 거예요. 이 메마른 땅이 강에 나오는 거예요. 이 얼마나 강의 은혜가 넘치지 않습니 까? 생명 샘이 흘러나와 모든 성도 마시니. 교회는 생명 샘이 흘러나오는 거예요. 모든 성도가 마시려 고 오는 거예요. 언제든지 솟아 나와 부족함이 없도다. 이 세상 물과 달라요. 천년 만년 가도 언제든 지 솟아 나오는 물. 이런 물이 흘러가니 목마를 자 누구냐 주의 은혜 풍성하여 넘치고도 넘친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생명샘이 강물같이 흐르는 교회로 나온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강을 떠나지 말기를 바랍니다. 강을 사모하고 강을 활용하고 기독교는 내 능력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강이 아닙니다. 사 람이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간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성전에 나와 예수 믿고 보혈의 은혜 받아 정결함을 입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강 같은 충만함이 내게 임하고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끊임없는 교회 믿음의 생활을 할 때 내 영육이 항상 강건해 지는 줄로 믿습니다. 이번 에 우리 터키 선교사 대회 방지일 목사님이 아흔 다섯인데 같이 가셨어요. 우리 총회장님도 하시고 제 가 모시고 간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저에게 오셨어요. 터키 선교사 대회 한다면서? 예, 합니다. 거기 나 가면 안돼? 목사님이야 내가 모시고 싶지마는 혹시 어떻게 무슨 일 나면 어떻게 해요? 젊은 사람 도 비행기 타기 어려운데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비행기 타면 다 나가떨어지는데 여기 터키가 어딘데 목사님 거기까지 가요, 아흔 다섯인데요. 여러분, 가서 시차 바뀌죠 거기 며칠동안 수련회를 어떻게 하신 단 말이에요? 가시겠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모시고 갔어요. 여러분, 끝도 없는 거예요. 그리고요 세미나 새벽기도 계속 참석하시고요 낮에도 다 참석하고, 여행 이요 몇 킬로 계속 같이 걸으시고요 젊은 사람들 다 못나오는데 목사님은 계속 나오시는 거예요. 목사 님의 ! 건강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지마는 특별히 중요한 것은 여의도에서 본인이 출석하시는 영등포 교회까지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걸어다니시는 거예요. 걸어가시는 데 3천 보래요. 오면 3천 보, 6천 보를 아침에 걷는 거예요. 95세가 되어도요 약 하나 뭐 이 건강 이런 거 그런 약 그런 운동 하 나 안 해도 이렇게 건강한 거예요. 걷는 것이 그렇게 좋은 거예요. 교회 열심히 일찍이 나와 걸어오면 얼마나 좋은데 이 문 앞에 갖다놓고 요래 들어오니까 그게 죽으려고 환장했지 그 어떻게 그렇게 걷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걸어야 건강하고 걸어야 몸이 강건해 지는 거예요. 교회는 믿고 나오면 영혼이 잘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부수적으로 얻는 것도 억 만 가지예요. 차 타고 올려고 하지말고 열심히 3- 4킬로미터 정도 되는 건 좀 걸어봐요. 주일날 한번만 걸으면, 골프장에도 가면 걸으러 골프 가거든 요. 골프장에 다른 목적이 아니에요. 네시간 다섯시간 그 뜨거운 태양볕에 다섯시간 네시간 걸으려고 가는데, 여러분 교회 오는 거 두시 간 걸어왔다가 두시간 걸어간다 그러면 골프 치는 거 벌써 25만원 벌고 들어가는 거예요. 찬송가에도 교회 걸어가세요 그랬지 차! 타고 가세요가 어딨어요? 열심히 걸어 봐요. 강건해 지는 줄로 믿습니 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교회 사랑하는 자가 잘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 충만하십시오. 보 혈의 은혜로 선한 사람 되셔서 이제 교회는 선한 사람이, 주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이 모여서 뭐하려고 요? 선한 일 하려고 모인 거예요. 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가서 많은 사람, 인류와 세계를 향 하여 선한 일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해 주신 거예요. 유교의 선은 삼강오륜이에요. 자기 들 끼리끼리 잘하는 거예요. 부모 자식, 남편 아내, 아내와 남편, 임금과 신하, 그리고 친구. 가장 가까 운 이 사람과 관계만 말하는 거예요. 남 정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유교는 끊임없는 당파를 만들고 끊 임없이 남 공격하는 거예요. 남을 정죄 하는 거예요. 쌍놈 만드는 거예요.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 아요. 기독교의 선은 가장 죄인, 약한 사람, 불쌍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고아, 이 세상에 죄인들을 찾아가 서 선한 일 해주는 것이 기독교예요. 우리끼리 아니에요. 우리 가정 아니에요. 이건 기독교의 선이 아 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나와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어디서든지 좋은 일이라 그러면 적극적으로 뛰어가서 내 부모 형제보다 더 사랑해주고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인 줄로 믿습 니다. 우리는 이런 선한 일을 ! 위하여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옛사 람에게서 건져주셔서 새사람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주신 강 같은 은혜를 받아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내 힘이 아닌 이 능력 으로 선한 일을 일생동안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선한 일 하도록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비행기를 활주로에 내리도록 잘 유도하듯이 성령은 우리의 삶을 유도합 니다. 캄캄한 밤하늘에도 비행기는 유도를 받아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관제탑의 지시를 따라 내려오 듯이 우리도 이 세상, 앞날 하나도 모르지마는 내 가는 목적지까지 그의 유도대로 따라가면 선한 일 에 부하고 선한일 행하다가 천국까지 다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천국에 누가 들어가 느냐? 선한 일 행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로마서 2장 7절에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고 했고 땅에서도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 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왜 은혜를 많이 주셨느냐? 선한 일 많이 ! 하라고 주셨다 라 고 고린도후서 9장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 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디 모데후서 6장 18절에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선한 일 행하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선한 일에 눈을 뜨게 하여 주시고 선한 마음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시고 선한 일 을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권고하여 주신다 라는 것입니다. 성가대 좀 해봐라. 찬양 들어보니 얼마나 좋으냐, 이거 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그걸 듣고 은혜만 받았는데 어떤 때 들어보면 야, 너도 할 수 있어. 그것은 성령이 그 마음 주시는 거예요. 야, 너도 교사 해봐. 너 도 할 수 있어. 헌금위원 얼마나 보기 좋냐. 저거야 땅 짚고 헤엄치기지. 가운 한 번 입고 끝나는데 너 해 봐라 해봐라. 이 마음을 누가 주시느냐? 성령이 주시는 거예요. 너도 안내 좀 해봐라 인물 좋쟎냐. 그 인물 놔뒀다 어디 써먹냐? 교회 안내하는 데 써먹어라. 성령이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런 기회를 그 런 ! 마음을 성령이 주시는 거예요. 날 우리에게 유도해 주시는 거예요. 성령이 감화 감동 주시고 가르 쳐주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마귀 방해가 없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 마음을 선 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쓰임 받도록 해주십니다. 이번에 미국에 클린턴 전대통령께서 회고록을 냈어 요. 회고록을 냈는데 중심이 뭐냐하면요 내가 정치적인 정적이 너무 많아 가지고 이 정적들하고 싸우 느라고 일생을 바쳤다 라는 거예요. 정치인들이 얼마나 서로 죽이고 살리잖아요. 그거하고 싸우는 데 는 내가 승리했다는 거예요.
결국 나는 이겼다 라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정적, 내 안에서 나를 넘어뜨리는 마귀와 싸움에 나는 실패했다 라는 거예요. 나는 그걸 몰랐다 라는 거예요. 미스 르 윈스키가 내 안에 역사 해오는 걸 내가 몰랐다 라는 거예요. 이 내 마음에 일어나는 내 마음의 적을 그 대로 두고 이 싸움에 이겼지마는 결국 나는 졌다 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 하고 인기 있고 출세해야 되지마는 자기와 싸움에 실패하면 안됩니다. 이 싸움에 실패하면 나도 실패 하고 이 싸움에 실패하면 두 가지가 무너져요. 가정과 내가 동시에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나 정치는 무너진다 해서 내 인생이 무너지거나 가정이 무너지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가장 중 요한, 내 영혼이 죽고 내 생명이 죽는 거예요.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지는 거예요. 우리 가정도 파괴를 당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영적 싸움에 승리하여 자기와의 싸움에 승리하고 성령 의 인도대로 살아야 나도 살고 내 가정도 살고 그리고 나아가서 주어진 이 사업과 직장에도 성공하는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성령은 우리를 모든 싸움에 이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정치적 인 정적도 물리치게 하시고 내 마음의 정적도 물리쳐주시고 내 영혼의 내 가정의 대적도 이길 수 있도 록 성령은 여러분을 끊임없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터키 선교사 대회에 재미있었던 간 증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튀니지에 선교사로 우리 한 분이 가 계신데 간증을 그렇게 하세요. 여기는 예 수 믿는 사람이 1%도 없습니다. 전 국민이 완전히 이슬람인데요 외국에 선교사도 한 명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NGO로 이제 학교하고 이런 거 봉사하러 들어가서 하는데 20년을 이곳에 있습니다. 외국에 서 만약에 성경이라든지 기독교 서적이라든지 특별히 설교 테잎같은 거 들어오면 강제추방이고 그 자 리에서 구속이라는 거예요. 법이 바로 구속이에요. 종교법으로 바로 구속되는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 지 모르는데요 우리 교회에서는 일년에 두 번씩 모든 선교사들에게 추석과 성탄절에는 선물을 보내드 립니다. 거기에 보내는 내용이 김, 오징어 두 축, 멸치 한 포, 라면, 고추장 이런 걸 묶어 가지고, 너무너무 이 런 걸 좋아해요. 제일! 먹고싶은 게 뭐냐, 오징어, 멸치 그리고 김하고 라면 먹고싶어 해요. 한국, 이번 에도 가기 전에 뭘 우리가 가져갔으면 좋겠냐고 하니까 한국 과자 먹고 싶대요. 다른 나라 과자보다 도 우리 과자 먹고싶대요. 여러분, 1년 가고 2년 가고 5년 되어도 여기 못 들어오고요 과자를 그렇게 먹고싶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과자를 많이 가져갔어요. 라면도 수십 박스 가져갔어요. 고추장 하고 김치하고 전부 가져갔어요. 왜? 너무너무 먹고싶어 하니까요. 사명을 가지고 있지마는 육인지 라 생각이 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이렇게 가져갔는데 이분들이 우리가 가니까요 우체국에 서 이걸 다 뜯어본대요. 끝까지 하나 남김없이 멸치도 다 털어 본대요. 봉지 속에 혹시 뭐 있을지 몰 라 싹 들어낸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이걸 뒤지려고 해보니 냄새가 천하에 이 오징어 냄새, 이 사 람들은 오징어 냄새하고 김 냄새하고 멸치하고 고추장 섞은 냄새가요 나자빠지는 거예요. 아무리 자 기들 참고 마스크를 해도. 설교 테잎이 어디있느냐? 제일 밑에 있는 거예요. 우리가 모르고 했지마는 우리가 하여튼 박스 제일 밑에다 설교 테잎 넣고 그 위에 오징어하고 이래! 올려놨는데 거기까지 내려 가지를 못하고 빨리 싸가라고. 그 이후로 10년 한번 보냈는데도 그 다음부터는 뜯는 법이 없고요 아 예 왔다고 먼저 연락온대요. 냄새나는 거 왔으니 빨리 가져가라고 그런대요. 우체국 안에도 못 놓는대 요 냄새가 나가지고. 그래서 우리가 그 이야길 듣고 성령님은 너무너무 역사 하신다는 거예요. 할렐루 야. 선교 누가 하는지 아세요? 성령이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위기 위기를 누가 보호해 주시느냐? 성 령이 이렇게 보호하여 주시는 거예요.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승리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어떤 도움을 받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꼭 기도해야 선한 일을 할 수 있어요. 매일 매일 기도해야 돼요. 주여 내가 선한 일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도 선한 삶 살 도록 도와주십시오. 죄악이 나를 주장하지 않도록 내 마음에 침투하지 않도록 어떤 악한 세력이라도 내게 역사하지 않도록 우리 가정에 역사하지 않도록 우리 자녀에게 역사하지 않게 주여 도와주시옵소 서. 내 오고 가는 길에 주여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늘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사람은 성공의 조건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이 잘 사는 건 두 가지 조건인데 하나는 태어나는 출생이 중요하고요, 어느 집에 출생하느냐, 어느 나라에 출생하느냐, 어느 부모에게 태어나느냐가 첫째로 중요하고, 두 번 째는 뭐가 중요하냐? 어떤 환경에서 사느냐가 중요해요. 아무리 잘 태어나도 나쁜 환경으로 들어가 면 나빠지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를 믿어 예수의 은혜로 택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 자녀로 태 어나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죄악 세상이라는 거예요. 금방 오염이 되고요 우리를 넘어뜨리고요 우 리가 보는 것이 전부 죄악이에요. 우리의 보는 것이 모두 마귀의 역사예요. 끊임없이 우리를 음란문화, 퇴폐문화, 술 문화, 도박문화들 이 우리를 유혹하는 거예요. 정욕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거예요. 이거 모두 제 잘났다 그러고 이 길로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새로운 피조물은 그 길로 가면 안 되는 거예 요. 그건 멸망의 길이에요. 클린턴같이 망하는 길이에요. 마귀의 꾀임에 빠지는 길이에요. 끝까지 성 령의 도우심으로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교회 나와서 말씀을 들어야 되고 은혜 를 받아야 되고 기도해야 되고, 왜?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에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새로운 피 조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탈무드의 격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탈무드의 격언에는 생선과 사 람은 사흘만 두면 냄새가 난다라는 거예요. 정말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싱싱한 생선도 사흘만 두면 냄새나듯이 제아무리 잘 믿는 사람도 사흘만 두면 영적으로 다 약해집니다. 착한 사람 어디 있어 요? 두면 그대로 똑같아지는 거예요. 아무리 운동 잘해도 며칠만 운동 안 해봐요, 아무리 한 분야에 전문가라도 며칠만 지나가 봐요. 그래 서 항상 깨어서 자기 분야를 끊임없이 연습하듯이 우리 모든 성도들은 깨어 기도하여서 내 마음이 오 염되지 않도록 주여 내 마음을 지켜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늘 충만하도록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여 오늘도 사명을 다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해가 지도록 사고 없게 하시고 넘어지 지 않게 하시고 악과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불의를 좇아가지 않도록! 나를 도와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젊을 때 내가 은혜 받았다, 어렸을 때 내가 착했다 공부 잘했다 그거 믿으면 안됩니다. 며칠 지나면 걔가 어떤 환경에 가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교회를 다녀 서 믿음의 환경으로 들어가면 나쁘게 출생해도 좋은 사람되지마는 아무리 좋게 출생해도 교회 떠나 서 세상으로 가봐요, 나라나 개인이나 가정이나 잘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제가 또 다녀오면서 충격 적인 엄청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던 가이드가 그런 말을 해요. 한국이 잘사는 것은 예수 믿어 잘 산다라는 거예요. 이분은 다 세계를 아는 분이고 공부 많이 한 분이고 그러 니까요 한국이 잘사는 거는 그 어려운데서 잘사는 거는 교회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고 자기 나라가 못되는 거는 이슬람 때문이라는 거예요. 지금 이 터키가 아주 이번에도 테러가 얼마나 일어나는데요.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그렇게 많은 곳에서 이 말 하는 것은 기적입니 다. 못살아납니다. 그 말하는 것은. 그런데 지성인이다 보니까 우리 있는 데 알려주는 거예요. 왜 그렇 습니까? 터키는 A.D320년에 콘스탄틴 황제가 너무 그 지역이 좋고 아름다워 가지고 로마에 있는 수도 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거예요. 지금 이스탄불로 수! 도를 옮긴 거예요. 여기 와서 옮긴 이 수도가 얼 마나 오래 왔느냐? 1453년까지 기독교로 1100년 동안 그 융성한 번영이 왔다고요. 세계를 지배하던 전 세계의 수도가 뉴욕이 아니고 이스탄불이었다고요. 터키 사람은 전쟁에 져본 일이 없답니다. 헬 라, 로마 다 거기가 중심지예요. 이런 나라가 이슬람이 들어와 가지고 불과 몇 년 안되어서 이 땅은 저주의 땅이 되어서 지금 1등 국 가도 아니고 2등 국가도 아니고 3등 국가도 아니에요. 그 좋은 땅 지하자원 엄청난 자원을 아무데도 쓸모없게 만들어서 조상들이 물려준 기독교 유적 가지고 팔아먹고 먹고살고 있는 거예요. 한심하잖아 요. 교회 떠나면 안 되는 거예요. 예수 떠나면 안 되는 거예요. 강을 떠나면 안 되는 거예요.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우리는 열심히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영적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늘 기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하나님의 강물을 끌어들이 면 들일수록 여러분의 삶은 번영해 질 줄로 믿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잘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교회 에 나와서 은혜를 받아들이십시오. 길이 열리고 눈이 열리고 삶의 축복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우리 모든 성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새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지 않도록 항상 성령 충만하게 하여 주시고 깨어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와 내 집에 복을 받고 이 나라가 백년만에 이 엄청난 복 을 받았는데 앞으로도 백년 천년 이 나라가 예수 잘 믿어 세계 1등 국가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 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영적 죽음에서 생명으로
엡 2:1-10 / 오창우 목사
예수믿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옆에 사람 한번 보시고 복 받은게 너무 기뻐서 웃으면서 인사합시다.
"복 받으신 분입니다."
옆에 사람 인사하기 힘드시죠? 그냥 끄덕 하지마시구요. 뒷사람이고 옆에 사람한테 다시 인사합시다.
"복 받은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복받았다고 하는데 오늘 설교말씀을 듣게 되면 우리가 정말 복받았다는 생각을 확인하게 되실 것입니다. 아직 기본적이고 근복적이고 중요한 말씀을 오늘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세례받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오늘 세례받으시는 분들은 영적인 죽음에서 영적인 생명으로 변화되는 그런 예식에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세례라는 말은 말 그대로 씻을 (세)자에다 법에 따라 행하는 예인데...말 그대로 씻는 예식인데요 죄를 씻고 새사람이 되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을 거쳐서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이 예식이 가지는 의미는 영적인 일이지 육적인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의 일인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이다. 그 몸은 병으로 가누지를 못할 정도로 어렵지만 그 정신은 건강해서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헬렌켈러 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도 못보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육체적인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그 정신은 건강해서 많은 일들을 했던 것이에요. 이처럼 우리에게는 보이는 세계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영의 세계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를 믿을 때에 영의 세계에서 엄청난 일을 보자고 하는 것이다.
오늘 성경은 그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게는 영적인 죽음과 영적인 생명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죽는 다는 것은 슬픈 일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말씀 1절을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오늘 성경이 이렇게 말했어요.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과거의 영적상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허물은 잘못한 것이고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인데... 이것을 바로 영적으로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말이 맞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3장18절에도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미 심판을 받았어요. 다시 말하면 지옥에 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중간에 있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지옥에 가있는 것입니다.
눅 15장에 보면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좋은 아버지 밑에 두 아들이 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잘 순종을 하는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항을 합니다. 아버지 밑에 사는 것이 너무 갑갑하고 힘이 든다는 겁니다. 결국 이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세상에 가서 살게 됐습니다. 세상친구가 좋고 그들과 사는 것이 자유롭고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니까 친구도 떠나고 혼자만 남았습니다. 먹고 살 일이 막연하다는 겁니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돈이 있을 때는 그렇게 친구도 많은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내가 병이 드니까요. 그렇게 충성을 하던 회사도 나를 버리더랍니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더라구요. 세상은 능력위주로 사람을 만납니다. 능력이 없으면 외면당합니다. 그러니까 박찬호 선수가 비난을 받는 거에요. 인격이 나빠서 그런게 아니에요. 성품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실력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탕자가 남의 집의 머슴이 됐습니다. 그 고생이 심합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면목이 없어서 머슴으로 써 달라고 하니까 아버지는 그게 아니다.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죄를 묻지도 않으시고 용서를 하시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으십니다. 이것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아들을 보고 뭐라고 얘기를 합니까? 눅15장 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는 동안 탕자는 적어도 아버지께는 죽은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와 분리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와 분리된 이유는 첫째는 세상풍속이요, 둘째는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고, 셋째는 우리 안에 있는 육체적인 욕망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들은 세상풍속을 따르고, 사탄을 따르고, 육체를 따르기 때문에 자연히 하나님을 떠나고 바로 이런 상태가 하나님께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2-3절에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짓고 허물을 갖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성경을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다. 2절3절입니다. 읽을 때는 크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시-작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아-멘
여러분 "그때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그 가운데가 어떤데 입니까?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했습니다. 법을 어기는 죄와 잘못하는 허물, 과실 안에서 “이 세상풍조를 따르고” 세상이 언제나 기준이에요. 세상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여기에도 귀를 기울여요.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 모습입니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마치 가장 잘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그랬습니다. 공중권세를 잡은 자는 사탄이고, 악한 영이고, 철저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대적하는 자입니다. 이 마귀가 유혹을 해요.
세 번째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육체에서 원하는게 뭡니까? 갈5장19절에 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여러분 우리가 음행과 더러운 것은 안한다고 해도, 우상숭배는 안한다고 해도 시기와 분냄과 투기와..... 이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일이 된다는 거지요. 이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영적으로 죽게 하는 악한세력을 가진 영향력은 3가지가 있습니다. 2,3절에 나오는데...
첫째는 세상풍조속이요, 둘째는 마귀의 유혹이요, 셋째는 육체의 욕심이라는 겁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다?? 다시 말하면 지옥에 가있다는 말입니다. 노아의 홍수심판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에요. 큰일 아닙니까?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면 지금도 지옥이고 그때도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전도를 해야 합니다. 전에 우리들의 모습은 영적으로 죽은 모습이었다는 거에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이고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받고 안 받는 것은 본인의 문제죠?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두 번째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따라하십시다.
"영적인 생명!!! 영적인 생명!! 영적인 생명은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함으로 얻게 된 새 생명이다. 아-멘 "
4-5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아-멘
여러분 구원 받아 영적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크게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은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랬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겁니다. 따라해보세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누가 살림을 받았습니까? 누가 받았어요? 내-가 죽은자를 살리셨다는 애기입니다. 이것은 신분의 회복입니다. 영적으로 살리신 거에요. 여러분 그 옛날에 신분을 얘기 할 때에 양반의 자녀는 잘 났든 못났든 간에 양반입니다. 종의 자녀도 잘났든 못났든 간에 종입니다. 그렇죠?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 아담이 죄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아담의 후손들은 잘났든 못났든 간에 죄입니다. 그런데 이 죄인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계획, 구원의 계획에 의해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주셨는데 이 예수님을 믿는자는 구세주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양자가 됐습니다. 양자가 됐어요. 그래서 신분이 바뀌는 거에요. 과거에는 아담의 후손이었지만 지금은 예수그리스도의 후손이 되는겁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바뀌었어요. 예수님이 의인이기에 우리도 의인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은 죄인이 의인이 되고,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에요. 누구의 능력으로 됐어요?
하나님의 자녀로...사랑을 받을 수는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잖아요. 이 죽으신 분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어요? 없어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거 없어요. 예수님도 스스로 살아 나시지 못했어요. 누가 했어요? 하나님이 하셨어요. 어떻게 다시 살아나셨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신 거예요. 마찬가지로 죄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믿고 영접을 하면 그것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누구처럼? 예수님처럼 살아나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만난 순간 아버지의 아들로 회복이 된 것처럼 아담이 지은 죄와 허물로 하나님을 떠나 있던 우리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첫째는 우리를 살리셨어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셨어요. 신분의 변화가 생깁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또 함께 일으키사"라고 나와 있어요.
쓰러지는 것을 일으키는 거에요. 삶의 회복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설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붙들어주셔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을 한번 보세요.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니고 훈련받은 제자들인데 어떻게 됐는지 예수님을 팔아먹고 어떤 제자는 모른다고 부인을 하고 또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게되자 주님과 같이 죽겠다고 하는 기백은 간곳이 없고 다 던져 놓고 도망가고 마는 비겁자가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니까 사람들이 달라진 거에요. 전혀 새로운 사람들이 된 거에요. 예수를 위해 죽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도 무서워하지 않고 돈이 없고 가난하게 살아도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감사하며 새로운 인생들이 된겁니다. 성령의 역사이다. 이것은 우리를 쓰러진 자리에서 일으켜주시고 우리를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는거에요. 여러분 보세요. 내가 신앙의 경력이 있다고 해서 내가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타락하지 않는 줄 아세요?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의 지식이 지켜주는 것 아닙니다. 경력이 지켜주는 거 아닙니다. 직분이 지켜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성령님 밖에 없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깨달으셔야 해요.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새사람들이 된 것이다.적극적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며 전도하며 봉사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드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갈5장16절에 보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 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예수님의 삶을 살아라. 좋은 성품을 갖은자가 되는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어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된 겁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존재가 된 거라는 거에요. 이제는 지옥하고는 상관없는 천국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린학생이 선생님의 질문을 받았어요.
"애들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천국가지?" 선생님은 내심 '예수 믿어야 천국갑니다.'라는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이 아이가 하는 소리가
"죽으면 천국갑니다." 하고 했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으면 천국갑니다.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하늘나라를 경험하시기를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도 5장 17절에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이렇게 외치고 있잖아요. 우리는 영적인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감사하시기를,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이지 사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7-9절을 보면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여러분 이 모든 것은 내가 잘나서 한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랑할 수가 없어요.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신거에요. 하나님의 선물로 된 줄로 믿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믿는 사람에게는 “감사” 라고 하는 것이 늘 따라다녀야 합니다. 내가 영적인 생명 갖았다 그러면은 감사하고, 감사없는 그리스도는 있을 수가 없어요. 따라합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잊여서는 안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 우리는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몰아내고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죄의 노예가 되어 내 욕망대로 내 멋대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우리의 영이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잘 유지하고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유지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유지할 수 있어요? 선한 일을 하시면 됩니다. 10절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에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선한 일을 하며 살라는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 선한일이 뭡니까? 뭐가 선한 일이에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했어요.
"선한선생님이여!!"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가 나더라 선하다고 그러냐. 선하신분은 하나님뿐이 시니라. "
여러분 이 세상에 선한 것은 선한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이 선이에요. 마태복음에도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착한행실! 착한행실이 뭡니까? 빛은 하나님밖에 빛이 없어요. 이세상의 어떤 것도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빛입니다. 하나님만 선입니다.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얘기하는 겁니까? 여러분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세상 풍조 따른다고 그랬죠? 물론 세상에서 하는 얘기를 외면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세상 악이기 때문입니다. 선은 하나님만 선입니다. 그러면 선이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는 겁니다. 예수구원 받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성령안에서 충만을 받고 그리고 하늘나라 갈 소망을 갖으면서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것. 여러분 착한일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주요합니까? 쉬운말로 봉사하는게 중요합니까? 예배드리는 게 중요합니까? 분명히 대답하세요? 여러분 손주들 있으시죠? 같이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 떨어져 사는 사람도 있죠?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십니까? 손주들이 찾아와서 인사들이는게 좋으십니까? 일년, 십년이 지나도 쳐다도 안보고 인사도 안하고 기억도 안하고 그러다가 안해도 좋으니까 식구라는게 뭐에요? 여러분 에베소서 2장 마지막부분을 보면 "너희는 나그네가 아니고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거든요? "나그네는요, 나그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한 가족이에요. 가족은 저녁때가 되면 집에 돌아와서 나왔다고 확인하는 거에요. 그래서 마리아가 마르다 보다 낫다는 겁니다.
한 가족은 하나님께 늘 인사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5장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주님안에서 사는 것이 최고입니다. 이게 선한 일입니다. 그래서 선한 성품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본 것처럼, 우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예수믿는 사람은 성품이 좋아야 해요. 믿음이 좋은사람이 아닙니다. 성품이 좋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남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 실족하게 되면 연자맷돌 목에 매달고 물에 빠져 죽어라."
그랬더니 어떻게 실족하지 않죠? "용서해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하는 말이
"아이고 그거 믿음이 너무 없어서 안되겠네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화가 났어요.
"이 사람들이 겨자씨만한 믿음있어도 뽕나무에 뿌리채 뽑아서 바다에 던져도 던질수 있다."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종의 비유를 하시지 않아요? 종이 밭에 가서 일하고 왔다고 해서 사례하겠느냐? 아니다 종이 돌아와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종의 자세를 갖으란 말이에요. 조금만한거 하나만 갖였어도 그냥 목에 힘을 주고 그러면 안된다는 거에요. 선한 게 뭡니까?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시는 겁니다. 그분이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여러분 예배당에 오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쁘시게 하시는 일중의 하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족이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한마디로 하실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선한일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한 존 뉴튼 이분도 과거에는 노예상인이었어요.
존 뉴튼은 당시 지중해를 오가는 상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통해 나이 열한 살부터 선원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앙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일곱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폐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선원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성격도 거칠어지고 삐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난폭한 성격으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흑인들을 노예로 잡아오는 노예선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배 안에서 온갖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잔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1748년 3월 1일 그는 배 안에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는 오랫동안 그의 영혼 속에서 깊이 잠자고 있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입니다.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정리하고 그가 대적했던 바로 그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고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는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 교회에서 27년간을 사역 했습니다. 그런 중에 그가 회개한 지 29년 되는 1779년,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작사해 미국 민요 Amziging Grace곡에 붙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가에서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방황하던 자신을 건져 주신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안에서 사는 것처럼 큰 복이 없습니다. 오늘 성찬도 주님의 몸과 피를 마시면서 먹는 주님과 하나 되는 예식입니다. 예식을 통해서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구원관
엡 2:1-10 / 김태복 목사
오늘 본문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장의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인간들의 삶과 오신 후의 삶이 어떠한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말하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인간들의 삶과 예수님을 만난 다음의 삶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1-3절까지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옛사람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4-10절까지는 예수님을 믿은 새사람의 삶이 어떠해지는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옛사람의 삶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세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허물과 죄로 죽은 삶을 살게 됩니다.
1-2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먼저 명심할 것은 ‘죽었던’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분리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라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육신의 죽음입니다. 살아 있을 때는 육신과 영혼이 결합된 상태인데, 죽었다는 것은 육신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 즉 영혼이 떠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말합니다. 창조 시에는 하나님과 함께 살았으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아 분리되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 전등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든 산 전등들입니다. 왜 입니까? 밖에 전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스위치를 틀면 불이 환하게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선과 끊어지면 아무리 스위치를 틀어도 캄캄한 그대로입니다. 이런 전등을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가 영적으로 산 자들입니다.
세 번째로,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죽었다 하나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영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심판 이후에는 아무리 회개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둘째 사망을 당한 후에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가장 비참한 자들이 되고 맙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죽은 자들, 즉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의의 능력을 공급 받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공중 권세 잡은 자인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됨으로 불의의 능력을 공급 받기 시작함으로 허물과 죄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허물’은 무엇이고 ‘죄’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허물’의 뜻은 ‘넘어지다.’입니다. 즉 옳은 길, 좁은 길에서 넘어져 실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라는 ‘표적을 맞추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심인데, 범죄한 이후부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맞추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가 좋아하는 삶에 맞추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된 생활이란,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반역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2)불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세상 풍속을 쫓아 살게 됩니다.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그 가운데서’란 말을 주목하셔야 합니다. 이는 불순종의 아들들이란 말입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기주장, 자기 욕망을 따라 지내는 것입니다. 탕자가 왜 아버지에게 불순종하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육체적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불순종하고 아버지 집을 나온 후에 탕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순종하는 자들과 세상 풍속을 쫓아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풍속이란 세상의 타락된 풍속입니다. 부패된 인간성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죄악적인 풍속, 부패된 향락적 풍조를 말합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난 후에 세상의 술친구와 창기들과 함께 타락한 풍속 가운데 허랑방탕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3)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 풍속을 쫓아 살고 마귀를 따라 살고 욕심을 따라 자기중심, 자기만족만을 위해 살면서 죄된 생활을 한 결과 하나님으로 진노 받아 마땅한 자가 됨으로 결국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할 자가 되고만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없는 사람은 저주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죄를 즐기면서 살지만 결국은 결국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대상이 됨으로 지옥의 멸망만 기다릴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사십시오. 육신이 연약하여 죄를 짓거든 즉시 회개하십시오. 죄를 품고 살면 죄가 장성하여 영원한 사망을 낳게되는 것입니다. 재작년에 안식년 휴가로 교회에서 우리 부부를 보내주심으로 성장하는 미국교회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워싱톤에 있는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가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여성들은 다이아몬드 1캐럿이 달린 반지만 끼어도 얼마나 으시댑니까? 그런데 그 박물관이 소장한 다이아몬드는 무려 45캐럿이니 여성들이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보석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주의 보석라 불렀습니다. 이 다이몬드를 과거에 소유했던 사람들 가운데 페르샤 총독이 있었는데 도적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또한 페르샤 왕은 반란군에 의하여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 후에 프랑스 루이 14세 황제가 소유하게 되는데 단 한번 목에다 걸어본 다음에 천연두에 걸려 죽고 말았고, 루이 16세와 왕비 마이안트 마네트가 이 보석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얼마 안 가서 단두대 처형을 당합니다. 나중에 영국으로 넘어가 부자인 핼리 힐포푸라는 사람이 사드린 다음에 그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하고 집안이 망합니다. 나중에는 욕심이 나지마는 무서워서 이 보석을 가지려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박물관에 간 것입니다. 무슨 조화인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저주의 보석입니다.
우리가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너무나 즐겁게 하고 일시적으로 기쁘게 하지만, 그냥 가지고 있는 한 우리를 조만간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아래 있게 만듭니다. 빨리 이 보물 같은 것을 던져 버려야 합니다. 빨리 죄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해결합니까?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근본적인 죄가 해결 된 줄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저주와 진노가 없을 뿐 아니라 영원한 복락이 기다리고 있을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새사람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범죄의 삶을 사는 인생들은 그 결과 영원한 저주와 형벌을 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멸망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 드린 대로 인간의 죄를 구속하고 저들을 자기에게 돌이키시기 위해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히시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왜입니까? 4절에 보면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에 대해서 눅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다시피 한 후에 먼 나라로 떠난 후에, 아버지는 처음에는 시원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녀석은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고 귀가 엷어서 나쁜 사람들에게 속지나 않을까?’ ‘타향객지에서 병이나 들지 않았을까?’ 등 근심 염려로 인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동구 밖에 나가서 자식을 기다립니다.
아니, 사람들을 여기 저기 보내서 수소문해 보기도 하고,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사방에 방문을 써 부쳐서 ‘빨리 돌아오라.’고 호소했을 것입니다. 동네 어구에 나와서 허구헌날 기다리다 보니 얼굴이 초췌해지고 모양새도 초라해집니다. 어느 때는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니, 그런 천하 불효막심한 놈을 저렇게 기다리다니. 그렇게 오냐오냐 키우니 그런 망난이가 나오는 것 아닌가?”
어느 때는 큰 아들이 와서 너무나 화를 냅니다. “아버지가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여 내가 동네에서 얼굴을 못 들겠습니다. 제발 망녕 그냥 부리시고 제발 집에 들어가셔요.” 그래도 아버지는 집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떠나간 아들을 기다립니다. 바로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화가 나서 아무리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해도 자식은 자기 분신과 같습니다.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의 사랑도 그렇다면, 본질상 사랑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지, 자기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돌아오라 애타게 부르게 계신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단 91회 총회가 명성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제가 1985년부터 21년째 총회를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 총회처럼 은혜로운 총회가 없었습니다.
목회로 성공하신 우리 노회 신일교회 이광선 목사님이 총회장이 되셔서 은혜롭게 진행한 탓도 있지만, 이번에 부총회장에 한 분만 출마하셔서 고질적인 병이었던 불법선거 모습도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예년과는 달리 밤마다 부흥사경회가 개최됨으로 적지 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밤늦게까지 소위 정치꾼이라는 분들이 너나없이 떠드는 소리를 듣다오면 기분이 대단히 언짢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년도 1907년 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낮에만 회의를 하고 밤에는 부흥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강사로는 부산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 소망교회 원로 곽선희 목사님 등이 수고하셨는데 마치 짜고서 말씀을 전한 것처럼 목회나 교회운영을 오직 예수님 중심으로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내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이 땅에 오셔서 갖은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젖어지는 것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아담으로 인한 범죄와 저주를 해결하시고자 높고 높은 버리시고 낮고 천한 땅에 연약한 육신을 입고 둘째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나라요, 아주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에 오셨습니다. 가난한 목수의 가정의 자녀로 오실 때 나실 곳이 없어서 냄새나는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일생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소외된 세리와 창기들 속에 사시면서 저들을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기 위해서 주무실 겨를이나 식사할 겨를이 없을 정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종교인들에게 의해서 말할 수 없는 반대와 핍박을 받으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심한 모독과 매, 가시관과 못 박힘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53장에 표현대로 갖은 곤욕을 당하셔도 입을 열지 않으셨고, 심한 매와 포악한 짓을 당해도, 때리면 맞으시고 못을 박으면 신음하시면서도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도 저를 향해 갖은 모욕과 욕설을 퍼 붇는 무리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떠오르며 ‘나는 예수님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목회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으로 회개하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죄인들이 살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담은 불순종함으로 이 세상에 불의가 들어오게 했지만, 둘째 아담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이 땅에 의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간 예수님이 하신 사역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 사실이 4-10절에 나옵니다. 4-7절까지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오고 8-10절에는 은혜에 대해서 해야 될 바른 자세가 나옵니다.
(1)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4-7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5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 “또 함께 일으키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하나님은 약속대로 3일 만에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구원 받은 성도는 죽음에서 부활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한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 가는 세계가 있고 죽은 후에 다시 사는 과정이 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죽는 사람이 있고 두 번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한번만 죽는데 그 죽음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 낙원으로 가는 것을 말하고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져서 흙으로 돌아가 잠자는 상태에 들어갔다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신령한 몸,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두 번 죽습니다. 육신과 영혼이 분리할 때 불신자는 그 영혼이 음부에 가고 육신 역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차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 후 최후 대심판 때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최종적으로 받고 유황불 못, 곧 지옥에 던짐을 입고 그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차 죽음이며 이후에는 지옥에서 영원토록 영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은 한번 죽지만 그 후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예수님 공중 재림 시에 공중으로 휴거하여 어린양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 후 예수님과 같이 천 년간 평화의 왕국에서 왕 노릇하게 되고, 그 다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즉 영원무궁한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게 되어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예수님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인생이 천지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 믿기 전 인생은 헛된 것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이 산 인생입니다.
아무리 호화롭게 살았다 해도 또 착하게 살았어도 나그네와 같이 잠깐 끝난 후에는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니 이 얼마나 헛되고 비참한 인생입니까? 그러나 예수 믿은 후의 인생은 새로운 피조물이며 중생된 자이며 하나님의 그 큰 사랑에 의하여 구원의 선물을 받아 나그네 인생을 마친 후에도 부활의 은총과 천년 왕국의 왕 노릇하는 영광과 예수님과 같이 천국의 찬란한 보좌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삶을 가지게 되니 얼마나 행복한 인생입니까?
(2)구원 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입니까?
8-10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의 선이지, 우리의 행위나 공로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행위나 공로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오직 은혜로 주시는 그 선물을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선물을 주는 데도 받지 않으면 주는 자에게 모독이나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로서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크신 사랑으로 예수님을 통해 구원 사업을 완성해 놓고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했으니 얼마나 쉽습니까?
탕자가 완전히 망한 후에 돼지울간 옆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채 잠을 청할 때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아버지요, 아버지가 누구를 통해서 전해준 편지일 것입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을 것입니다. “아들아, 너무나 힘들거든 집으로 돌아오라. 모든 것을 용서하고 아들로 받아들이마” 그러나 재산을 다 탕진했으니 면목이 없으니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눈물만 흘렸다면 결국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결심을 하고 모든 죄악된 생활을 버리고 아버지 집을 향해 나간 결과 아버지의 대환영을 받았고 아들로서 회복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문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애타게 부르시면서 “누구든지 믿고 들어오기만 하면 구원의 선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러한 구원의 선물을 믿지 못하고 거절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국에 앤드류 잭슨이라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번은 웰슨이라는 사형수를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의 죄는 다 용서 받고 이제 풀려나게 되었으니 나오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 사형수는 그 용서를 받아드리지 않고 특사를 거부함으로 할 수 없이 사형집행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은 믿는 자는 누구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간악한 살인강도나 음란한 여인이라도 믿고 회개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이 자리에 참석한 분 중에 이 구원의 선물을 받지 못한 분은 이 사실을 믿고 지금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그러나 믿고 받지 않는 자는 여전히 하나님의 저주 안에 있을 뿐입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 중에 대부분은 구원의 선물을 받은 분들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우리의 할 일은 무엇입니까? 10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 할 일은, 땅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총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한 뜻에서 어떤 희생도 감당하면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 더 큰 복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유명한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뮐러는 20세가 되기 전에는 방탕과 좀도둑질과 거짓말로 소위 청소년 범죄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1825년 11월 중순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그 날 베타라는 여인을 통해서 기독교 집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듣고 깨어졌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그 날 밤이야말로 내 생애의 전환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받은바 은혜 감사하기 위해 30세에 브리스톨에서 고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처음 고아원을 시작할 때 준비한 것이라곤 선물 받은 접시 세 개, 쟁반 스물여덟 개, 대야 세 개, 물병 하나, 컵 한 개, 소금 병 받침 세 개, 칼 네 개와 포크 네 개, 그리고 채소를 깎는 강판 한 개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무릎을 꿇는 기도를 통해서만 62년 동안 약 30억 원 이상이 그 고아원과 선교사들을 위해 보내지는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과거에 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존재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니, 이러한 은혜와 복을 우리 식구들과 이웃들에게 전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엡 2:1-10 / 박지온 목사
미국은 지금 까지 전 세계에 선교사의 80%를 보내고 그렇게 협력했던 후원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면서 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이 좀 뭔가 말이 안 맞다는 생각을 제 자신과 여러분들이 하게 되어 졌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예상했던 데로 미국은 선교지 중에 선교지다! 라는 것을 지난 몇 달 동안 확인했습니다. 미국은 교회도 있고 성경도 있지만 신학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신학자들이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돌아가는데 영적 문제를 해결하고 우상 세력과 싸우는 참된 전도의 비밀이 전혀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래서 지금 정확하게 말하면 전 세계에 가장 영적 문제가 심각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전 세계에 인종들이, 똑똑한 사람들이 미국에 다 모여 있습니다. 그들이 미국에 오면서 그냥 빈손으로 오지 않고 자기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상들을 다 가지고 미국에 들어 왔기 때문에 또 우상은 X-ray촬영해도 안 나옵니다. 입국심사에도 안 걸려요. 오히려 소중한 문화로 취급받아서 미국에서 귀하게 이것이 지금 받아들여지고 있고 심지어는 American 모슬렘! 미국식 모슬렘이 1000만 명이 넘습니다. 해 마다 20% 이상씩 증가되고 있고 교회는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해마다 급속하게 힘을 잃고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이런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강대국입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강대국을 통한 세계 복음화 계획을 가지고 시행하셨고 진행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강대국을 그냥 강대국이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강대국은 애굽이나 바벨론이나 로마가 그러했듯이 전세계 우상이 다 모여 있으면서도 가장 힘이 있는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나라에 세계를 살릴 수 있는 Remnant운동을 일으키시고 거기에 중요한 일꾼들을 보내셔서 세계를 복음화 하신 그런 하나님의 방법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미국에 가장 우리가 선교해야 할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졌고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그 사역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대학부터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다락방 대학이 세워지고 류 광 수 목사님을 총장으로 세우고 총장 자격이 없지만은 총장은 보통 박사 학위 받아서 최소한 박사 학위는 있어야 되는데 저분은 너무 바빠 가지고 박사 학위 받을 시간이 없으신 분인데, 그냥 총장이십니다. 미국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습니다. 대학 학장이 학위가 있는 분이 되는데... 그래서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이런 응답들을 주시고 Remnant를 구체적으로 불러 들여서 미국 살릴 수 있는 역사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이 응답을 주셨습니다.
사실 미국은 전세계에서 들고 들어온 우상과 함께 New age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나라입니다. New age가 여러분 아시는 데로 창세기 3장 5절입니다. 너희가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 마귀가 하나님이 계셔야 될 자리에 자기가 앉게 된다. New age운동은 그런 운동입니다. 그래서 신이, 하나님이 따로 없다. 네가 바로 신이다. 네 안에 하나님의 우주적인 역사를, 어마 어마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래서 그 New age 사상과 동양적인 우상문화 사상 이것이 전부 그대로 연결되어져서 미국은 지금 New age운동과 동양 우상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학가에 들어가 보니까 그것이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서부지역 대학들은 더욱더 심각합니다. 서부 지역은 대학을 이렇게 조사를 해 보니까? 대학 주변에 Mart 안에는 전부 예쁜 동양 우상들이 전부 이렇게 장식품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그 장식품들이 귀여운 모습으로 학생들 책상에 놓여지게 되는데 한 두 학생이 아닙니다. 무서운 우상인데, 사랑스럽고 귀여운 우상으로 처음부터 접근하게 되고 나중에 결국은 우상을 섬기게 되는 그런 역사로 진전이 되겠지 만은...
동성 연예자들이 많은 도시고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벤쿠버인데... 대단해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역사는 절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우상의 배후를 가지고 배경을 가지고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런 비밀들을 아는 자가 없어요. 우리 박 지 온 목사님 수년동안 미국에 왕래를 하셨고 저도 미국에 파송 받기 전에 한 5차례 미국에 사역을 하고 왔습니다 만은 갈 때마다 느껴졌고 이제는 그 쪽에서 사는 입장이 되어 졌습니다. 그래서 그걸 자세하게 살려 보니까? 그것은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최고의 우상국가 이면서 강대 국가였던 애굽에다가 요셉을 보내시고 모세를 그 곳에서 태어나게 하셔서 그 나라를 통해서 그 시대에 여호와 증거 하게 하셨고, 최대의 우상국가 바벨론에 다가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런 일꾼들을 파송하게 하셔서 그 나라를 통해서 세계를 살리시고, 로마에 사도 바울과 그리고 수십명의 중요한 일꾼들을 일으켜서 수백 수천의 말씀운동 사역자들을 통해서 로마를 살리시고 세계를 살리셨던 그 역사를 지금도 확실하게 회복하시기를 원하셔서 그 동안에 송현 교회에 근 10년 동안, 이 영적 운동, 말씀 운동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를 늘 협력했던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위해서 기도하고 후원하고 선교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위로 격려하고 그랬는데 제가 선교사 입장이 되어서 파송 받아 보니까, 제일 첫째 아쉬운 것이 저를 위해 기도 해 주는 분, 이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선교 현지에서 여러분 경험해 보면 실감합니다. 좀 전에 우리 박 목사님도 말씀 하셨는데 여기 있을 때보다 해외에 나가서 현자에 나가서 사역할 때 교인들이 기도 하는가 안 하는가 느낀다고... 이번에 특별히 교인들이 기도 많이 하신 것을 체험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저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 없이 갔어요.
제가 섬기던 동광 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도 있지만 제가 그 교회를 시작했고 12년 동안 교회를 섬겨왔던 담임 목사이기 때문에 제가 사면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후임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 하는데, 전임자를 후원하는 것은 목사님 목회에 일단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있겠다고 판단도 섰고 교회에 여러 가지 사정도 있고, 그래서 동광 교회의 파송과 후원을 안 받기로 했습니다. 교인들은 뭐 늘 저를 생각하고 기도를 했겠지만... 그래서 미국 파송 받은 이후에 동광 교회에 한 번도 안 갔습니다. 오늘도 이번에도 갈 계획이 없습니다. 다행이 후임자 목사님이 왔습니다만...
그러다 보니까 기도해줄 분이 없어요. 돈을 이렇게 선교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기도의 후원. 그거는 마음이 담겨져야 기도하지 그렇게는 안됩니다. 도와주는 것은 인정으로 도와 줄 수 있지만 기도하는 것은 인정으로 도와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명가지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송현 교회가 저를 이렇게 파송 하는 입장에서 후원하시는 이런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서 잠이 안 올 정도 참 감사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여러분들은 아마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크게 실감을 하지 못 하실 겁니다. 그 기도의 후원을 받는 선교사 입장은 굉장하게 실제로 실감을 합니다.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여러분 총을 쏘는 쪽 보다는 총을 맞는 쪽이 훨씬 실감이 나는데, 기도는 정확한 그대로 응답이 됩니다. 선교 현장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쪽 보다는 맞는 쪽에 훨씬 실감이 나는 정도로... 그렇게 비유가 될 정도로 저는 실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한 시간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목사님께 드릴 뿐 아니라 여러분들에게 진짜로 이제는 송현 교회 선교사다라고 생각을 하고, 저도 대구 사람입니다. 태생은 대구가 아니지만 대구에서 20년 살았으면 대구 사람으로 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송현 교회 선교사라 생각하시고 정말 이제 마음을 담아서 본격적으로 기도 안 하신 분들은 기도 많이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을 알고 주님이 하시는 전도에 비밀을 알고 난 다음에 들어간 미국은 어려운 전도 현장이 아니고 정말 되어지는 전도현장인 것을 체험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6개월 그러면 굉장히 짧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 하셨는데 보통 선교사들이 파송 받으면 첫 번째 같으면 보통 2, 3년 정도는 언어 연수하고 또 거기서 문화적인 적응을 하는 생활 적응을 하는 그런 시간으로 보내도록 규정이 되어 있어요. 보통 선교 단체에서는... 그래서 아무 것도 사역을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는... 그래서 사역 안 하는 게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 다락방 운동은 그게 아니고 초대 교회에 말씀운동이 그게 아니더라 구요. 보니까! 저도 작정을 했습니다.
저도 나이 많지도 않지만 또 젊은 학생도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 때 파송이 되면은 공부하고 이러면 당연히 언어도 될 것인데 저는 아예 미국 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 어중간한 나이에 가게 되어서 참 어떻게 될까? 그래서 대학에 반드시 등록을 해서 공부하면서 언어 연수를 해야 되겠다고 작정을 하고 갔는데 첫날부터 역사가 일어나 버렸어요.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다락방 역사가... 제가 지금 미국에서 다락방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락방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서 대구에서 처음 다락방 할 때에 아코디언 울러 매고 다락방 했던 그 모습 그대로 지금 다락방을 시작했습니다. 많이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문을 여시는데 어찌 하겠습니까?
거기에다가 전도 캠프 시대가 왔죠. 이래서 미국 전지역을 지금 순회하면서 전도 캠프를 하고 되고 하나님이 많은 열매와 축복의 역사들을 계속 허락하고 계십니다. 거기다가 지금 핵심 훈련을 미국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LA에서 8월 달부터 이미 핵심 모임을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우리가 핵심 모임을 하고 서울, 부산, 광주에서 모임을 하는 그 분위기가 그대로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늦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많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 신학원, 선교사 훈련원, 또 산업선교 모임 이런 것이 도시마다 이루어지는데 한국도 순회하면서 하기 어려운데 미국은 대륙입니다. 저녁에 비행기 타고 LA에서 밤에 출발을 하면 아침에 동부 쪽에 도착을 하는데 그런 대륙이기 때문에 참 굉장히 사역이 많다 싶은데, 하나님께서 많은 그 역사들을 계속 주시기 때문에 언어 연수받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통상적인 선교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사역을 감당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보통 보면요. 몇 년 같다 오면 얼굴이 바짝 마르고 얼굴이 새카맣고 말라리아 한번씩 걸리고 이렇게 와야 그게 선교사인데 너무 얼굴이 좋아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더 좋을 것입니다.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진짜 전도 선교 사역이 하나님의 준비하심 가운데서 회복되고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 미국이 준비해 놓으신 것으로 사역을 그 분이 직접 하시는 것으로 저는 보고 그런 인도를 받으려면 여러분들의 절대적인 기도의 후원이 필요한 줄 압니다. 그래서 아마 저를 여기에 세워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 응답을 받으시면 사실은 다 되죠. 날마다 내가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리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아니고 그 응답이 안 되면 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 신앙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메시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될 이유가 뭐냐? 마귀 메시지 안 받아야 되고 틀린 메시지 안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 안 만나도, 혼자 있어도 틀린 메시지가 우리 속에서 자꾸 나와요. 그래서 말씀 충만해야 됩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최고 응답 중에 생각과 마음에 응답을 받기를 원합니다.
불신자들도 틀린 생각을 하고 있고 기존 신자들도 틀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불신자들은 구원의 비밀을 첫째 모릅니다. 구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불신자들은 무슨 종교를 가지든지 착실하고 진실하면은 구원받는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여호와의 증인들도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대로 지키면 구원받는다.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생각이 틀렸어요. 유대인들도 바리새인들도 율법을 지켜서 행위로 구원받는다. 불교, 천주교도 지은 죄, 애군을 위해서 선을 행하면 구원받는다. 틀린 생각을 오래 동안 많은 사람이 체계적으로, 과학적으로, 지식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고상한 진리로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인 냥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다가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생각이 단체적인 불 신앙도 있더라 구요. 보니까! 집단적인 불 신앙! 그 중에 하나가 뭐냐? 산후 조리 잘못하면 못 아프다! 라는 것! 오늘 혹시 내가 산후 조리를 못 했고 우리 아이를 낳은 것이 산달이기 때문에 몸이 아프다. 이런 분들은 꼭 응답을 받고 치유 받기를 원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집사님 중에 한 분이 대구 동광 교회 집사님인데 사역을 아주 정확하게 하나님 인도 받고 잘하는 분입니다. 이분이 항상 힘들었던 부분이 몸이 아파요. 아기를 둘 낳았는데 항상 마음에 산후 조리 잘 못해서 내가 이렇게 아프다 생각을 하고 너무 그날 아파 가지고 하나님 내가 복음 사역하는데 이렇게 아파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마음에 감동을 주시기를 그러면 벌써 아기가, 아기가 아닙니다. 열 몇 살 된 아이인데 꼭 그 달만 되고, 그 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고통이... 그리스도 능력이 그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인가? 그 다음에 한 1년 아팠으면 됐지 뭐 또 계속 아파야 되느냐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게 우리 민족적인 불 신앙입니다. 그 다음에 단체적 불 신앙. 우리는 다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이래가지고는 그 분이 그렇지 않다. 이런 생각이 딱 들고 그리스도 능력은 그 그런 오랜 동안에 역사가 있고 산모 조리를 잘못해도 문제는 해결된다는 사실이 깨닫게 되어 졌을 때 그때부터 그 분은 그런 고통이 떠나갔어요. 그게 성경적 믿음이죠. 그리스도의 능력을 진짜로 아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그래서 이분이 적극적으로 그걸 그 다음부터는 안정을 하더라 구요.
그런데 미국 가서 가만히 보니까, 그게 맞는 것 같아야 왜냐? 미국 여자들은 산후 조리를 안 해요. 미국에는 산후 조리원이 없더라 구요. 그래서 아! 미국 여자들은 튼튼해서 그런가? 아닌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봤어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여자들도 그렇게 안 하더라 구요. 아이를 낳고 나서 그 자리에서 어름을 부셔 먹고 그런 과격한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만은 거의 2, 3일 안에 활동 다 해요. 그렇다고 오늘 시어머님들은 꼭 이걸 그대로 또 적용하시면 안 됩니다 만은, 그것이 또 믿음이 가능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가능해야 가능한데...
그건 어떤 집단적인 불 신앙에 일종이 아닌가? 물론 여러 가지 의학적인 또 체질적인 그런 또 습성의 문제.. 또 체질이 좀 약하고 이런 경우는 한 달이 아니라 몇 달이라도 조리 해야 되겠지 만은 어쨌든 불 신앙이 상당히 있다. 그렇게 저는 봤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집단적인 사상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일 첫 번째 생각을 바로 할 수 있는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년동안 복음의 비밀을 계속 전도하는 가운에 어느덧 어느 날부터 세상을 보는 우리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없어서 망하고 있다. 처음에는 들었고 거기에 찬동하고 동의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보여지는 입장으로 그것이 가장 확실한 사실로 보여지게 된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 은혜입니다. 여러분...
이 지식은 세상이 창세기 3장으로 망하는 현장이라는 것을 아는 그런 비밀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로 안 돼요.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이 사실을 알려 주셨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고 해결책까지 주셨기 때문에 아담이 알았고 해답을 얻은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도 결국은 "이는 이를 알게 한 이가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이시니라." 그랬어요. 복음과 영적 비밀은 특별한 은혜 속에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냥 평범하게 교회 신앙생활 열심히 했던 지난날을 비추어 보면 지금은 특별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내가 한국에서 10년 동안 다락방 운동에 참여하고 그것만해도 저는 감지덕지! 정말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미국 땅에까지 와서 이 사역을 하게 된 건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영적 은혜를 깨닫는 은혜는 하나님이 주셔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다른 것은 몰라도 밥은 굶어도 좋습니다. 다른 것은 괜찮은데 이 은혜만은 떠나지 않게 해 달라고 물론 하나님 주시기를 원하시지 만은...
왜냐하면 어느 날 이 은혜 떠나버리니까, 사람들이 몇 년 동안 그렇게 영적 비밀을 말하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전혀 얼굴이 다른 얼굴이 되어 가지고 떠나가는 것을 저는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비밀과 이런 정확한 메시지와 이 축복된 사역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메시지와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송현 교회 성도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진짜입니다. 그래서 아울러 저는 이 교회에 선교사로 사역하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 모르는 것이 원죄입니다. 미국은 더 모르고 있어요. 원죄 때문에 생기는 자범 죄. 또 죄의 결과. 우상 숭배의 죄. 얼마나 무서운가 그걸 모르고 있어요. 그것은 죄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원죄의 영적 상태가 뭡니까? 오늘 본문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니까,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다 그랬어요. 죽은 시체가 무슨 말을 합니까? 죽은 시체가 무슨 판단 능력이 있습니까?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에 죽어있는 영혼들을 상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구원과 세계 복음화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약속입니다. 우리가 요청한 적도 없고 우리는 요청할 줄도 몰라요. 우리는...
그래서 이런 은혜를 주셨는데 은혜 위에 은혜라 그랬어요. 특별히 전부 약속으로 다 주셨어요. 예수 믿으면 구원받아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 받아요. 구원과 기도의 비밀도 약속입니다. 그런데 전도는 더더욱 약속입니다. 이것을 저는 현장에서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어요. 전도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닙니다. 약속으로 믿으면 되는구나. 이게 선교 현장에서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구원도 예수 믿어야 구원받지 만은, 전도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전도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라야 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생각들의 응답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것을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불신자들은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부분을 모르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망하지 만은, 기존 신자들도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는 이런 상태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도 대강 알고 또 그 계획을 알아도 체질화되어 있지 않고 그런 상태에서 무조건 응답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Remnant집회 전후로 해서 다락방 사역을 대대적으로 잘하는 교수 두 가정을 우리 집에서 같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4층에 있었고 한 사람은 1층에 있었는데, 한 분은 다락방 안 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한 분은 다락방 하는 교회에 출석하는 교수님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요. 한 사람은 다락방 안 하는 교회에 출석하는 데도 열매가 많을 뿐 아니라. 다락방 안 하는 교회 목사님이 인정을 해요. 당신이 하는 이것이 다락방인가? 초대 교회에 마가 다락방 운동입니다. 해라! 해라 정도가 아니고 정말 감사하면서 본인이 그 메시지 듣고 은혜 받고 교회는 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교단이 그러니까!
그래서 굉장히 인정받는 사역을 하고 있는데 한 분은 다락방 하는 교회 출석하는 교수인데도 목사님께 자꾸 이렇게 제재를 받고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저한테 막 목사님이 그럴 수 있냐? 이러더라 구요.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입장을 교인들보다는 조금 이해를 합니다. 제가 이래도 제가 목사 아들 목사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 목사도 봤고, 제가 또 목회 했고, 또 다락방 목회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안 받았구먼... 그래서 제가 굉장히 꾸중을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당신이... 성경도 안 봤냐? 위치 신분이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하나님 인도 정확하게 받으면 그런 소리 하지마라! 다락방 하겠다고 나서는 목사님 한 분이 얼마나 중요한 계획이 있는 줄 아느냐? 목사가 다락방 한다는 것은 보통 기적이 아니다.
요셉이 사실은 애굽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끌려갔다 그랬어요. 유학간 게 아니고 끌려갔어요. 그런데 신분은 노예이지만은 거기서 요셉 때문에 그 현장에 응답이 나타났고 보디발이 요셉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절대로 보디발이 그 집에서 보낼 사람이 아닙니다. 그 집에서 왜 떠났습니까? 쫓겨났어요. 하나님이 쫓아냈어요. 왜냐? 보디발이 그냥은 절대로 안 보낼 것이기 때문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될 희한한 사건을 터트려 가지고... 요셉 때문에 너무 복을 받았는데...
그게 성도의 기본적인 신앙의 선택입니다. 애굽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핑계가 필요합니까? 너무 응답이 많이 나타나서 문제이지. 잘하고 잘못하고가 없어요. 사람이 하면 잘하고 잘못하고 문제이지만은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역사가 아닙니다. 불신자가 봐도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고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데... 정확한 응답을 여러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정말 내 계획으로 붙잡는 이것이 되어야 되는데, 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사람 따라 좀 차이가 있겠지 만은 하나님이 복음을 이해하고 기도 응답의 비밀을 이해하고 여러분 체질까지 갱신되게 하시고 치유까지 하게 하셔서 세계 복음화에 가장 완벽하게 쓰실 준비를 지금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이건 이와 같은 축복의 비밀을 경제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렇게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 역사를 여러분들이 깊이 공부를 안 해도 교회사 책 한번만 읽어보세요. 세계 역사를 깊이 공부 안 해도 세계사 책 한 권쯤은 한번 읽어보세요. 확인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얼마나 축복된 자리에 앉아 있는가를 확인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사실은 대구 복음화가 언제 되겠냐? 대구 복음화, 세계 복음화 위해서 기도 한 것이 지금 하루, 이틀이 아닌데... 여러분 눈에 가면 갈수록 이게 지금 되기는커녕, 사기 당한 거 아니냐 지금? 그런 생각이 혹 들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응답을 잘 못 받고 있지 싶습니다. 기도응답 받으면 일단 눈부터 열립니다. "너는 내가 부르짖으라!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 그랬습니다. 못 봤던 것이 보여집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 하셔서, 성령은 우리가 이 땅에서 절대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조건만 가지고는 실패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은혜로 주신 것들이 있다, 그랬어요. 성령은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는 분이라, 그랬어요. 기도하면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게 하나님이 반드시 이 땅에서 실패해야 되는 이유를 그 조건을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을 기도하면 성령께서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이런 중요한 비밀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데, 대구 복음화는 하나님의 능력을 1초만에도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대구 복음화를 하루 만에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시기를 원하셨어요.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면 될 텐데 직접 안 하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 보좌에 주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상당히 멀게 느껴집니까? 주님이 이 땅에 도성 인선하셔서 성육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계셨을 때 그때 얼마나 좋았겠냐?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하더라 구요. 참 그때는 좋았겠다! 예수님 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그 분하고 같이 다니고 주님의 음성 그 고운 음성을 직접 듣고 곱기는 뭐가 고와요 주님 음성이...
성경에 보세요. 볼품없었다 그랬어요. 솔직히 말하면... 주님의 모습에 대해서 이사야서에 설명해 놓은 것 봐요. 마른 줄기 같고 흠모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고 그러니 예수님 사진은 다 틀린 거예요. 아예 그리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좋잖아요. 주님 좋은 분이라 생각을 하고, 하나님인데 좋다, 안 좋다! 그런 차원이겠습니까? 그분 만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여러분 주님을 한번 만나려고 그러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어떤 분이 통계를 내 보았는데, 예수님 한번 만나려면 지금 신청하면 손자 때 가능하더라 구요. 그러니 한 100년, 150년 살아야 가능한데, 그게 축복이 아닙니다.
지금은 성령으로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 모든 성도에게 동시에 성령으로 막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승천하신 주님이 보좌에서 직접 우리의 전도 사역과 방법을 진두 지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훨씬 우리에게 축복이라고 주님이 직접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그 분이 혼자 안 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시기를 원하셔서 이렇게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영적 비밀을 알게 하시고 전도의 전략, 주님이 역사 하시는 흐름을 알면 되거든요. 우리가 전략을 알고 우리가 전략을 펴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역사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훈련받았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라는 것을 미국에서 절실히,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 보니까 짧은 시간이지만은 뭐가 안됐다는 게 보여지는고 하면 메시지도 인터넷 통해서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전략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고 머리 좋은 분들이니까! 결정적인 게 뭐가 있냐 하면, 전도 행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거든요. 성령 인도 받는 부분 그래서 한국에서 시작된 운동이라서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우리 교포들마저도 조금 이렇게 깔보고 있어요. 조금 낮게 보고 있어요. 영적인 메시지 그것은 좋지만은 그 행정 그것은 엉터리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껍데기만 봐서 그렇죠 진짜 중요한 성령의 인도 받는 행정은 잘 못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성령인도 받는 전도 행정을 그대로 미국으로 건너가야 된다. 이 운동을 어쨌든 한국에서 시작했지 만은 미국에서 폭발해야 될 것이고 세계로 전파될 것이다. 믿습니다. 미국은 이 시대의 강대국이고 세계 최대의 우상국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하고 미국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 싶지만은 미국에 다 가서 여러분들이 사역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만큼 미국을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드물어요. 제대로 정확하게 영적으로 그걸 알고 정확하게 여기 앉아서 기도하면 다 됩니다. 제대로 기도해 주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특히 지금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가 Remnant사역이다. 유학생, 또 교포, 이민이 특징인데 우리 나라 교포들은 해외에 나가있는 교포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거의 다가 교회 다니고 있어요. 미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미국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동남아 가보세요. 불교나라인데도 교포들은 거의 교회에 갑니다. 이집트, 모슬렘 국가 가 보세요. 교포들은 교회에 거의 다니고 있어요.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나가면 전부 교회에 가요. 물론 그 중에는 김치 먹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또 쓸쓸해서 오는 사람도 있지만은 어쨌든 교회로 찾아와요. 여념도 없이...
그리고 유학생이 왜 그렇게 많은 지요. 우리 나라 지금 유학생이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벤쿠버 도시에 지난번에 가 봤는데 캐나다 아닙니까? 5만 명이나 와 있어요. 한국 유학생이... 그 도시 인구가 200만인데 5만 명이 한국 유학생입니다. 거기서 딱 느끼는 제가 마음에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유학을 안 하면 꼭 어디 낭패가 나는 것처럼 강박 관념을 가지고 온 것 같아요. 전부다! 공부하는 얼굴도 아닌데 보니까! 어쨌든 유학을 가야 된다. 이렇게 해 가지고 보스톤 같은 데도 몇만 명이나 돼요. 미국 안에만 해도 유학생이 수십만 명입니다.
그 뿐입니까, 전세계에 다 있습니다. 한국에 유학생이 다 나가있습니다. 쏟아붓는 돈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여러분!
이게 제가 비판하는 게 아니고 이게 하나님의 역사 아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지금! 벤쿠버 있는 학생들 숫자를 계산하고 돈을 계산해 봤어요. 1인당 한 달에 1,000불만 계산해도 5천만 불, 1년이면 6억불이다! 7천억이에요, 7천억! 그러면 7천억 되는 돈을 한국에서 한 도시에 쏟아 붓는데 전 세계에 쏟아 붓는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지금... 한국 사람들은 술도 많이 먹거든요. 술도 많이 먹지, 유학 비도 많이 쓰지, 이 뭐 돈이...
이건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 없이는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겉으로 보는 역사들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확실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때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이 준비한 이 멤버들과 이런 일꾼들을 통해서 한 이 시대에 분명히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의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역사 하실 줄로 믿고 저는 미국에서 그 일을 수종들 게 된 것을 하나님께 참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사가 보통 파송 받으면 한 몇 년 정도는 언어 연수를 해야 되는데 저는 언어 연수할 틈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데. 그것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 해 주시기 원합니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영어 하려면 일단 학교를 등록해서 공부를 해야 제대로 해요. 뭐 생활 영어야 그냥 하죠. 그러나 제대로 메시지 들고 사역하려면 이게 되어야 된다 말이에요. 제가 지금 나이는 많은 나이는 아니지 만은 그렇다고 젊은 청년도 아닙니다. 학생도 아니거든요. 20대 정도만 되어도 공부도 하겠는데...
지금도 공부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은 워낙 현장 Man이 되어 가지고 돌아다니다 보니까, 책보고 앉아 있지를 못하겠어요. 시간이 없고 그래도 영어 책을 열심히 봅니다. 그리고 방송도 듣고 신문도 읽고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그렇게 합니다. 비행기 타고 오면 잠자지 않습니다. 어쨌든지 그 자막을 보고 영문으로 된 영화도 보고 다 그렇게 듣고 합니다.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등록해서 공부할 시간이 있어야죠. 지금! 제가 붙잡는 것은 오직 사도행전 2장 방언의 역사 방언의 역사 말고는 지금 잡을 근거가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방언을 한번 체험했거든요. 필리핀에서 순회 선교사역 하다가 다락방 초기죠. 한번 갔는데 아주 그 오지에 가 가지고 거기는 그 지역만 쓰는 언어가 있어요. 그리고 통역이 안돼요. 통역이 안 되는 첫째이유가 그런 용어가 잘 없어요. 그러나 용어가 없어도 문제는 있어요. 불신자의 6가지 문제가 쫙 있는데 통역이 됩니까 4단계로 통역을 하는데 한글, 영어, 그 다음에 따날로그, 그 동네 말만해도... 됩니까? 그런데 그 현장 전도하려는 가슴에 얼마나 불이 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순간에 역사 해 가지고 그냥 막 나오는 데 나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날 주민들 전부 영접하고, 아하! 하나님이 전도 현장에 필요하시면 역사 하시는 구나. 그걸 한번 체험했기 때문에 그래도 그렇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붙잡을 건 그것밖에 없어요. 지금!
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 이후에 말이 쫙 흩어 졌는데 그러나 여러분 기도 해 주신다면 다른 사람보다는 좀 빨리 될 것이다. 생각을 하고, 왜냐하면 이 영어만 되면 얼마나 이 메시지 좋습니까! 지금 갈보리 채플 척 스미스 목사님 교회에 다락방 사역을 지금 접목을 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아무리 2단, 3단 그걸 투쟁해서는 안 돼요. 미국에서 사실적으로 역사가 일어나고 미국 교단들이 인정해 버리면 훨씬 수월해질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동안 갈보리 채플에서 우리 동삼 제일 교회도 오고 그랬는데, 한국인들만 왔어요. 한국인 담당 목사님들만 와 가지고 여기서 받아간 자료들은 절대 스미스 목사님한테 전달을 안 했어요. 딱 그대로 안에서 그렇게 하고 이단 소리 하니까! 아예 소개를 안 하고 그랬는데 직접 다이렉트로 지금 연결을 하려고 진행을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미국 각 교단에 이 운동이 소개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하여튼 남은 때에 주님께서 역사 하실 문제가 중요하게 남아 있는데... 요나가 니느웨 성을 공격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처음에 안 갔습니다. 안 간 이유가 뭐냐? 몰라서 안 갔습니다. 첫째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들려 지고 힘드는 일로 들려 지고 가기 싫은 일로 느껴졌어요. 이 요나에게 있어서 기존 잘못된 생각이 뭐냐 하면 선민 사상이 있었죠. 거기다가 전도의 비밀을 잘 몰랐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 그 일은 너무 힘드는 일로 알았단 말이죠. 그러니까 갈 생각도 없었죠. 그래서 니느웨 성이 무너졌는데 무너지기까지 과정을 보면 니느웨 성에 도착해서 외쳤는데 하루만에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대구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이 걸려서 지금 이렇게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요나가 니느웨 까지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다시스로 간다고 하고 배에 타고, 물에 빠지고, 고기 뱃속에 또 들어갔다가 나오고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 또 회개한다고 고함을 질러대고, 니느웨 성은 3일 동안 길을 걸어야 다 돌 수 있는 거리인데 하루 길을 걸으면서 외쳤는데 하루만에 싹 바뀌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도 430년 걸린 게 아닙니다. 그날 빠져나 온 것은 하루만에 빠져 나왔어요. 피 바르는 날 하루만에 나왔어요. 그것 깨닫기까지 이스라엘 백서들이 깨닫고 일제히 피 바르기까지 시간이 걸렸지. 준비는 하나님이 다 해 놓았는데 그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오해하고 쓰임 받을 수 있는 우리 쪽에 영한이 열리고 갱신되고, 치유되고, 그런 준비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오해를 하고 혹시 이 부분에 대한 불 신앙이 혹 있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달리 온 걸음들이 너무나 귀한 걸음인줄 아시고 이 송현 교회를 통해서 하실 역사들을 여러분들이 그림을 잘 그리시고 남은 시간 더 착실한 준비가 되기를 바라고 특히 전도 캠프 시대와 치유 시대입니다.
지금은 치유가 안 되면 전도 캠프가 안 되죠. 복음 전파의 메시지가 치유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인수한 아메리칸 대학에서는 치유 사역을 통해서 승부를 걸 생각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사실적인 복음의 해답과 가정 치유와 또 청소년 치유와 문제 해결 할 수 있는 그런 대학으로 승부를 걸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면은 지금 이길 방법이 없어요. 딴 게 없어요. 그냥 뭐 사람들을 끌어 모아 가지고 선전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은 선전이 통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굉장히 광범위 한 것처럼 보이지만은 중요한 역사는 금새 전역에 전파되는 나라입니다. 얼마나 밝은 나라인지 몰라요. 확실한 역사가 일어나면 금방 다 퍼져버립니다. 조용히 현장에서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사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사역을 위해서 파송을 하셨는데 저 혼자만 가지고는 결코 될 수 없는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위해서 수많은 전문 팀들을 미국에서 구상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이 일에 우리 송현 교회 좋은 학생들이 일에 참여를 해야 될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학을 오시기를 바랍니다. 성적이 안 되는 분들은 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지 말고 그 성적 좋고 안 좋고 그걸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공부를 못하던 사람도 잘 하게 되어 있어요.
어떤 분들은 그러더라 구요. 자기는 우수한 대학을 나왔는데 Tople만 치면 안 된데! 하여튼 제가 볼 때는 저게 틀림없이 공부를 안 했다 싶은데 부족한 것, 어떡합니까? 그건 일단 가지 말라는 이야기겠죠. 유학생을 위한 시스템을 하나, 하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유학 기능 미션 홈 기능을 지금 체계적으로 준비를 하고 이미 준비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구체적인 기도 부탁할 내용들은 정리를 해서 목사님께도 드리고 부 목사님도 드렸습니다 만은, 앞으로 송현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본에서도 사실은 크게 진행 되었지만은 미국은 워낙 넓은 지역이고 또 남미 지역까지 다 커버 해 줍니다.
송현 교회를 통해서 미주 지역에 하나님의 큰 역사가 앞으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남은 동안도 더 큰 영광을 받으시고 여러분들이 세계복음화의 더 확실한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는 중에 부족한 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 하실 것을 여러분의 기도로 통해서 이루어 가시도록 계속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에게 율법 체질과 종교적인 체질과 인본주의 체질로 가득 채워져 있는 이들을 말씀과 또 복음과 기도와 치유의 비밀을 통해서 세계 복음화 할 수 있는 그릇들로 준비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지금 까지도 우리 자신도 놀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지 만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복음 세계 전도 사역의 체질들로 변화되게 하시고 이 교회에 그 동안 주셨던 증거들과 메시지들과 아름다운 축복의 훈련 과정들을 통해서 주님이 큰 영광을 받으시고 세우신 당회장 박지온 목사님과 당회원들과 모든 목사님들과 교역자들과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주시는 크고 작은 모든 응답들을 통해서 세계 복음화에 최고로 쓰여질 수 있는 역사들로 이어지게 하시고 주님이 큰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권세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지금은 우리를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위로 충만 교통하심이 모인 무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구원받으셨습니까?
엡 2:!-10 / 조재호 목사
스페인 속담에 "사월과 오월 두 달을 내게 주면 나머지 열 달을 모두 네게 주겠다"고 하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4월과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6년 6월에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세 사람이《청록집(靑鹿集)》시집을 펴내면서 후에 서정주 시인에 의해 청록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인 박목월님의 [사월의 노래]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둔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글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속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둔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둔다"는 싯귀처럼 사월은 부활과 생명의 달입니다. 그래서 4월 한 달 동안 우리의 생명인 신앙의 본질에 대하여 은혜의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은 [구원받으셨습니까]입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1. 죄 지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대통령도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하고, 말단 공무원도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거대한 기업을 거느린 재벌기업 CEO도 구원이 필요하고, 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도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도 구원이 필요하고, 유명 운동선수를 꿈꾸는 초보자도, 연예인 사진을 방에다 다닥다닥 붙여 놓은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원주의대 의사들이 방글라데시에 가서 현지인들 치료도 해주고 수술도 해주었습니다. 이번에 그곳에서 열 일곱 사람이나 백내장 수술로 환하게 보도록 해준 어느 안과 의사가 고백한 글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과 질병의 나라 방글라데시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녀오고 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일은 내가 주님을 영접했다는 일입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수술해 주면서 자신의 영적인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가 사랑과 헌신을 베푼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그 의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처럼 누구에게나 구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구원받기 전의 인간의 비참한 모습과 구원받고 난 다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모습은 아주 비참한 모습입니다. 첫째로는 허물과 죄로 죽은 모습이고 둘째로는 악한 영에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노예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하나님께 정죄 받고 진노 가운데 사는 모습입니다.
"오픈 도어스"라는 국제적인 기독교 선교단체가 해마다 국가별 기독교 박해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 발표에 의하면 기독교를 철저하게 박해하는 나라들로는 1위로 북한,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 3위는 베트남 4위는 라오스로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이런 나라를 보면 나라들의 형편과 백성들의 삶이 구차하고 생기가 없어 보입니다. 나라가 어둡고 백성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모습도 그렇고 구원받지 못한 나라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사는 인생은 전혀 다릅니다.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축복의 백성이 됩니다.
2. 하나님은 불쌍한 인간들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원은 좋으신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이란 그냥 대가 없이, 그냥 좋아서 주는 것입니다. 선물은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사랑이 없고 다른 속셈이 있으면 선물이 아니라 뇌물입니다. 선물은 사람의 기분을 봄 날씨 같이 화창하게 만들지만 뇌물은 찜찜하게 만듭니다. 선물은 받은 사람도 좋지만 주는 사람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임하신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 최대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구원은 죽은 다음에 비싼 옷 잘 입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어느 아파트에 사는 김집사 집에서 새 장에 새 한쌍을 키웠습니다. 어느 날 알을 낳더니 알을 품고 부화해서 어리고 예쁜 새끼 두 마리가 생겼습니다. 겨울이 되자 김집사는 새장을 겨울 동안 마루에 들여다 놓고 키웠습니다. 햇빛이 내리 쬐는 따뜻한 어느 겨울날, 새 장을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가 저녁때 깜빡잊고 그냥 베란다에 놓아 두었습니다. 밤새도록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었고 김집사가 아침에 일어나자 새장 생각이 나서 급히 나가보니 새끼는 없어지고 어미새만 웅크리고 죽어 있었습니다. 주인의 실수로 추운 날씨에 얼어죽은 것입니다. 얼어죽은 어미 새를 들춰보니 새끼들이 그 밑에 살아 있었습니다. 어미 새가 스스로를 희생해서 추위에 더 연약한 새끼를 살린 것입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죽음의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3. 구원의 소중함과 구원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구원으로 말미암는 감격과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나는 부모 때부터 믿었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교회에서 열심히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있지 않습니까? 법 없이도 착하게 사는 내가 구원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나에게 주신 구원은 부모와도 관계없고, 교회 다닌 기간과도 관계없고, 나의 헌신과도 관계없고, 나의 도덕적 선함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그냥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선물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평안이 없고 불안이 가득한 이 세상에 예수님만이 최고의 위로가 되어 주십니다. 희망을 찾지 못하고 낙심해 있는 인생에게 예수님만이 최고의 희망이 되십니다. 아픔과 슬픔이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만이 위로와 용기가 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으로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있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를 소개해야 합니다. 나의 구원을 간증해야 합니다.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보화를 감추어두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어야 합니다. 바로 나 때문에 교회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시인의 노래처럼 돌아온 4월에 우리 모두가 예수 생명의 등불을 밝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이루신 일들
엡 2:1-10 / 오정호 목사
과거 초등학교 시절, 매 학년이 바뀔 때마다 각 학급에서 가정환경조사를 했습니다. TV와 같은 가전제품이나 피아노, 신문구독여부, 주거형태, 가족사항 등을 조사했습니다. 우리는 어릴적 부터 나의 삶의 가치는 소유와 인간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자랐기 때문에 정작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는 자아정체성에 대해서는 올바른 정립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소유나 인간관계에 따라 우리 자신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이 결정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통해 내 자신의 가치와 행복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마이너스(-) 인생을 살라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과 축복을 자각하며 의미있고 풍요로운 플러스(+)의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믿으면 빼앗긴다는 생각을 자꾸 주입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오래 믿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영적신분과 축복을 잘못 인식하여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플러스(+)가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성입니다.
6.25때 어느 초등학교 학생이 자신의 학교가 폭격을 맞아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기뻐서 춤을 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자신의 나쁜 성적과 품행을 기록한 학적부가 모두 불타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삶이 깨끗이 불타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목적과 뜻을 분별하여 산다면 우리는 튼튼한 인생행복의 기초를 세울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은혜를 베푸셨음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우해주셨는가를 올바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기쁨과 역동성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모두 6장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Spiritual Possession). 1장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영적인 부요함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3절). 2장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영적인 지위(spiritual position)에 대해서 눈을 열어줍니다. 왜 우리는 영적인 지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분의 변화와 하늘의 복을 이미 주셨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우리는 항상 가난한 자처럼 영적 궁핍함을 느끼며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신령한 복과 영적인 지위를 어떻게 마음속에 자각할 수 있습니까?
1.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임을 인식해야 합니다(1-3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합니다(1절). 여기에서 '허물'이란 고의적인 위반을 의미하며, '죄'란 영적인 어리석음으로 인해 궤도를 이탈하여 하나님의 목표에 이르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또는 능동적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좌절하며 낙심함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 반항하고 불평하며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몸을 시신(屍身)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할 수 없는 존재였으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는 주님을 알기 전에 세상의 유행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육체의 충동과 욕심대로 마귀를 따름으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2-3절).
우리는 예수믿기 전에는 내 고집과 방식대로 사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악령에 끌려다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도 높이지 못하는 철저한 영적 무능력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골짜기가 깊다는 것은 산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인식하면 할수록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우해주셨는가에 대해 감격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의 하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4절).
바울은 4절을 '그러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습니다. 과거에는 죄의 수치와 영적 무력감 속에 마귀의 종노릇하며 살아왔지만 '그러나'의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영광의 자리에 앉혀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거룩한 반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이란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서 무엇인가를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어떤 행위나 특별한 일을 성취하기 전에 주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간구하기 전에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시고 멸망으로 치닫던 발걸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셨다는 것이 복음의 요체입니다.
3.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을 인식해야 합니다(6-7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5-8절).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 은혜입니다. 우리는 과거 저주아래 있는 죄인이었으나 이제 주님의 사랑을 받아 영원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심으로 모든 축복의 대상으로 우리를 높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자각한 만큼 우리는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과 '은혜'와 '자비'로 표현되는 놀라운 복들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셨습니다(4,7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루어주신 일들을 자각하고 기쁨과 감사와 헌신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10절).
우리는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는 사람만이 주를 위해 손을 높혀 찬양할 수 있고 감격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이고 당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자아정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에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고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놀라운 일들을 마음에 자각하며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알 수 없도다" 감격의 찬송을 하나님께 올립시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총으로 인해 진정한 인생의 행복자라는 자아정체감을 새롭게 하여 플러스(+) 인생으로 살아갑시다.
믿기 전과 믿은 후
엡 2:1-10 / 박조준 목사
이미 봉독한 말씀 중에서 5∼6절 말씀을 다시 받들어 읽겠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 께 하늘에 앉히시니. 오늘 이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려 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힌 바 되었다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의 영적인 지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 복이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영적인 축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영적인 위치를 소유하게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 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서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위치와 예수를 믿고나서 우리가 얻게 된 새로운 위치를 대조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만나기 이전의 우리의 삶과 예수를 만나고 난 후의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릅니까? 인류의 역사도 주전(主前)과 주후(主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3절에 보십시오. 너희의 허물 과 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 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예수를 만나기 전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흔히 많은 분들이 죄와 허물로 죽 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이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혹은 죄와 허물로 죽어 마땅한 우리 라고도 말하 는데 성경에서는 그런 말을 쓴 적도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다 고 말씀하고 있 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상태는 이미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무 슨 뜻입니까? 성경에서 죽음 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거의 예외 없이 분리 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몸에서 영혼이 떠나면 그것이 곧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인 죽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 죽음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런데 마귀가 와서 꾀어서 사람은 그만 마귀 의 꾀에 넘어 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그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런데 먹자마자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계속 살아서 자녀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불평하고 그 말씀을 불신할 때 불순종하여 그 열매를 따먹 게 되었습니다. 따먹었다는 말은 자의로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 열매를 먹는 그 순간,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피하게 되었고,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범한 죄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사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관 계가 끊어진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 1절에 보니까 우리에게 영적인 죽음이 무엇 때문에 찾아 왔는가를 말씀하 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허물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사람의 원죄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자범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허물 이 란 말은 본래 밟지 말아야 할 땅, 들어가지 않아야 할 땅에 들어가는 것 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 이 허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죄는 무엇입니까? 죄라는 단어는 화살로 명중시켜야 할 과녁이 있는데 화살이 그 중심부 를 맞추지 못하고 옆으로 빗나간 것 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맞춰야 할 목표와 과녁이 있는데 그것을 맞추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 그것이 죄입니다. 사도 요한은 죄를 가리켜 불법 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 그 법을 깨뜨리는 것이 죄입 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하라 는 것과 하지 말라 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라 고 하 신 것을 하지 못한 것,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고 하신 것을 한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 의 법을 깨뜨려버린 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 절되어 버렸고 그래서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이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으 로 죽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많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도 많고, 잘생 긴 사람도 많고, 건강한 사람도 많지만 그리스도 없이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은 영 적으로 죽어 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허물과 죄로 우리의 영이 죽어 있으면 영적으로 원수의 지 배를 받습니다.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원수는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 따르면 세 가지입니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했는데 세상이 원수의 하나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라고 했는데 마귀가 또 하나의 원수요, 육체의 욕심 이라고 했는데 육체가 또한 원수입니다. 세상 이라는 말은 세계 라는 말하고 다릅니다. 세상 이라고 하면 이 세상의 사람들을 의미할 수 도 있고, 이 세상의 어떤 흐름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세상 은 이 세상 의 그리스도인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악한 사조나 흐름을 통해서 대표되고 있는 이 세상 의 악한 체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 라 고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이 세상의 거센 흐름이, 잘못된 철학이, 그릇된 사조가 우리를 잘못된 데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은 말하자면 우리의 영적인 원수입니다. 그 러므로 성경은 야고보서 4장 4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됩니다. 이 세상도 지나갑니다. 그 정욕도 지나갑니다.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만이 영원히 거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 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 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원수 중에 또 다른 하나는 마귀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라고 말 했습니다. 마귀는 많은 악령들을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삶 속에 도덕적으로 잘못된 영향을 끼치며 영적인 파괴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주 무서운 존재입니다. 이 마귀가 얼마나 고단위의 전략을 가지 고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지 모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범죄하 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마귀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우리 주위를 뱅뱅 돌면서 기회를 노리 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 반석 이라고 칭찬까지 들었지만 오래 가지 아니해서 그만 마귀의 시험에 빠져 예수님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던 사 람,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며 장담한 베드로였지만 마귀의 위협 앞에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중에 성령 의 충만함을 받고 능력의 사람이 되어서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편지한 베드로전서 5장 8절 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우물우물하다가는 마귀에게 삼키웁니다. 시편 23편에도 원수 앞에 상을 베푸셨다 는 말이 나오는데 맹수는 목자를 따라 나선 양무리를 호 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무리에서 이탈하는 양을 덮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양 무리인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언제나 뭉쳐 있어야지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마귀가 삼켜 버리 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입니다. 우리 지식, 우리 경험, 우리 능력, 우리 열심 가지고는 도저히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있습 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영리하고 교활하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넉넉히 이길 것 을 믿습니다. 마귀를 대적해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또 다른 원수는 육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우리의 이 몸뚱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 니다. 본래 헬라어에는 육체를 말하는 단어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단순히 이 실체를 뜻하는 소마 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 있는 부패한 성품을 가리키는 살크스 라는 말입니다.
그 런데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인간의 부패한 성품을 가리키는 살크스 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신 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부패한 본성, 잘못된 경향 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장 18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 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의 육체를 정죄합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육체가 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 안에 잘못된 본성이 있습니다. 부패한 본성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자식에게 거짓말을 가르칩니까? 물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기가 막힐 정도로 거짓말을 잘 합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 윗의 고백을 부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했습니다. 인간 속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이 부패한 본성이 우리를 잘못 된 길로 계속 인도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잘못된 욕심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마귀와 육체, 이 세 가지 원수는 계속 우리에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4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 리를 거슬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 귀적이니 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 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깨어서 경성해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우리는 이 세 원수에게 일방적으로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을 거스를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물살을 거스를 힘이 없이 그냥 흘러 내려가는 죽 은 물고기처럼 무력한 자였습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그와 같은 우리의 상태를 우리가 연약할 때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무력할 때 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무력했습 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못된 것들을 즐기고 있 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원수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피 할 수 없었던 진노의 대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향해 행하시는 심판이 세 단계로 나오는데, 첫 단계는 일곱 인봉이, 다음 단계는 일곱 나팔이, 그 다음 단계에는 일곱 대접이 등장합니다. 인봉을 뗄 때마다 이 세상의 재앙이 점점 가속화됩니다. 이 역 사와 이 불의한 세상을 향해서 진노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진노의 생생한 그림을 우리는 요한계시 록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불의한 세상, 부정과 부패 속에서 빠져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난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3절 을 보세요. 전에는 이라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건은 낮과 밤처럼 아주 명백한 하나의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의 편지에서 제일 강한 의미 를 가지고 사용한 말이 전에는, 이제는 이라는 것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 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으로 바뀌어 버린 삶의 변 화, 이 변화에 대한 분명한 간증이 바울의 가슴을 일평생 뜨겁게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 간증 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전에는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자리 에 있었습니다.
만일에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성경이 끝났다면 이 얼마나 큰 비극이겠습니까? 그러나 4절부터 새로운 기쁜 소식이 들려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4절 처음에 그러나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원수의 지배 아래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는데,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들이 나옵니다. 긍휼 이라는 말은 사랑 이라는 말, 은혜 라는 말은 자비 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비슷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미는 조금씩 다릅니다. 이 말들은 하 나의 논리적인 의도를 갖고 정리한 말들이기 때문에 그 순서가 바뀌어도 안됩니다. 긍휼 은 어떤 사람이 마땅히 저주받아야 하는데 저주하지 않는 것 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를 쏟으시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는지 우리에게 부어야 할 진노를 붓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 아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분 이십 니다. 그 다음에 사랑 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 은 주로 아가페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아가페란 한마디로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셨다는 것 은 우리의 유익을 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 리를 저주하셔야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불쌍히 여겨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습 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유익을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호의를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입니다. 은혜 라는 말은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호의 입니다. 하나님 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자비 라는 말은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구체적인 행동 입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치면서 예수 님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구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이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구원받을 자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사람 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 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 다. 그랬다가 사흘만에 다시 사셔서 승천하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 를 믿는 순간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결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있는 것입니다. 육신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위치입 니다. 우리는 죽은 일도 없고 부활한 일도 없습니다. 승천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 에 앉은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내신 바 되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 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경험하신 역사적 경험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 그리스도의 경험을 우리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경험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영적인 위치는 하늘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빌 3: 20).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습니까? 이 엄청난 특권에 감사합 니까? 이 얼마나 놀라운 위치입니까? 더 이상 우리가 부러워할 지위가 없습니다. 이 놀라운 특권과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만 우리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이 땅에 있을까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습니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습니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믿기 전 에는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죽었습니다. 원수에게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믿은 후에는 소망을 갖게 되었고, 죽었던 우리가 살게 되었고, 원수의 지배에서 해방되어 새 사람의 길을 걷게 되었습 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이 축복을 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왜 거듭나야 하는가?
엡 2:1-10 / 김상복 목사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복음주의 연합회(EFA) 회의에 잘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작년 10월에 이 단체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처음 주관한 회의였는데, 아시아 교회 전체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를 축복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중국에는 예수 믿어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급속하게 늘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을 가진 국가입니다. 지난 번 중국에 갔더니 어떤 분이 "지금까지는 성령님께서 한국에서 일하셨는데 중국으로 이사가신 것 같다"고 제게 농담을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 회의에서 보니까 성령님께서 중국에서 절반의 일을 하시고 나머지 반은 인도에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인도는 원래 전도가 잘 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기독교가 전파된 지 2000년이나 된 인도는 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가장 긴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마태복음 한 권을 들고 인도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도마가 전한 기독교는 인도 남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특별히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하급에 속한 빈민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도 북부는 힌두교가 강하여 기독교인들이 많이 핍박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인도 복음주의 대표의 말을 들어보니, 요즘에 인도 북부에서 하루에 무려 10만 명이 예수를 믿기로 결신한다고 합니다. 제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의 말씀이 10년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인도 북부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목표를 정하고 지난 10년 동안 기도로 준비해 온 결과가 작년부터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초대 교회 때처럼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사와 이적들이 나타나고 있답니다. 저는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아시아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태국은 10년 전에 비해 기독교인의 숫자가 무려 10배나 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의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파키스탄, 네팔 등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보고를 들으면서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1세기에 아시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나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안타깝게도, 유럽의 교회는 점점 쇠퇴해 가고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들은 교회가 쇠퇴해 가고 가난한 나라는 교회가 왕성해지고 있으니,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한단 말입니까? 사람은 부해지면 하나님을 떠나고, 가난하면 잘 살아 보겠다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몸부림을 치니 교회가 부흥합니다. 우리는 "주여! 한국을 잘 살게 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되겠는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신명기에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8:12-17)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기도 제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 이 백성을 잘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백성에게 영적 부흥을 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민족에게 경제적 부흥과 함께 영적 부흥의 축복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아시아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든지 차별 없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도 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교회의 주일예배에 오시는 분은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영원한 새 생명을 얻기 원합니다. 모두 다 거듭나는 축복을 누리며 인생의 결정적 변화를 체험하시기 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거듭나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다섯 가지의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새 생명을 받아서 부활한 것입니다. 즉 영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가슴에 없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없거나, 하나님의 성령이 그 가슴에 없는 사람은, 육신은 살아있어도 영혼은 죽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영이 죽어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영혼이 다시 살아나야만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나는 것처럼, 영혼이 살아나는 길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 하였습니다. 은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 속에 영원한 생명을 넣어 주십니다.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2절) 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가 무엇입니까? "허물과 죄 가운데"입니다. 죄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삶입니다. 죄짓는 것을 평범한 일로 생각하며 죄 속에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그 영이 죽어 있습니다. 둘째, "이 세상 풍속을 좇고"(2절)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삶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습관과 사고방식대로 사는 사람은 그 영이 죽어 있습니다. 셋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2절) 라고 하였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마귀와 사탄의 영을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우상에게 절하고 악한 영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생활입니다. 창조주이신 참된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피조물을 두려워하며 그것들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3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정결한 영을 따라 살지 않고, 우리의 육체 속에 있는 죄성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죄를 즐기며 죄 안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by nature) 진노의 자녀"(3절)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인 것을 마음에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듭난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 거듭나서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과 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거듭나서 참 하나님을 섬기는 운동이 이 땅에서 왕성해지기를 원합니다.
거듭난 우리들은 어떤 은혜를 입었습니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4-7절).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나를 아시고 사랑하셨으며,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이 놀라운 은혜가 바로 나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거듭나야 하는 둘째 이유는, 인간이 영적으로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하였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란 부모로부터 생명을 한 번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영적인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영적인 일들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말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들의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영적인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당연히 영의 눈이 멀어 있고, 영의 귀가 닫혀 있으므로, 영적인 것들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것이 잘 이해되지 않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영이 죽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새 생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그분을 모셔들이면 성령께서 그 순간에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 주십니다.
인간이 거듭나야 하는 셋째 이유는, 부모에게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영향권 아래서 세상의 풍속을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마귀의 자녀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중에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영적인 눈이 떠지지 않아서 영적인 세계가 느껴지지 않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아직도 세상 풍속을 좇으며 죄와 욕정에 따라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여러분 속에 새 생명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넷째 이유는, 인간이 영적으로 자기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표범이 그 털에 난 점들을 스스로는 없앨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기로 작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로운 생명을 받은 순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인간은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절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오늘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여러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여서 새로 태어나는 축복이 꼭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새 생명을 얻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영적으로 왕성해져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축복된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죽었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영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 속에 새 생명과 새 능력이 생겨나야 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한 번 더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영적인 부활을 체험하고, 세상과 죄를 이기며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은혜를 아는 은혜
엡 2:!-10 / 김홍도 목사
은혜를 받았다, 은혜가 풍성하다는 등의 은혜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은혜가 무엇입니까? 의미는 대개 알고 있지만 그 뜻을 말하라면 분명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은혜(grace)란 말은 희랍어로 '카리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등의 뜻으로 쓰였지만 기독교에 들어와서는 대상자의 가치나 공적에 관계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쉬운 말로 말하면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은사(gift)란 말은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 가운데에 은혜란 말을 백여회 이상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신의 인사 첫마디도 은혜로 시작되었고 마지막 맺는 말도 은혜로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의 총화를 통털어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란 우리가 받을 가치나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과 사랑과 자비와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은 두 가지 은혜의 교리를 말하였는데 그중에 하나는 선행(先行)하는 은혜요, 다른 하나는 후행(後行)하는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선행하는 은혜란 회심전에 불가항력적으로 회심하도록 하시는 은혜이고 후행하는 은혜란 회심후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협력하는 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장로교의 창설자 죤·칼빈(John Calvin)도 이중의 은혜를 말했는데 하나는 죄인이 의롭게 되는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이 성화되는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가 죄사함 받고 의롭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하나요, 의인이 성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죄사함 받고 의롭게 먹고 입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일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백성과 은혜>
고린도후서 3장 5절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인 것을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그릇과 보배를 대조하여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은 무가치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만을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자기를 가리켜서 말하길 만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으며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0절에 보면 "내가 부득불 자랑하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은헤가 더 크게 나타남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사탄의 찌르는 가시를 준 것도 인간적인 것을 의지하거나 자랑하며 교만하지 않게 하고, 은혜만을 깊이 깨닫게 하고, 또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병을 위하여 세 번이나 기도드렸을 때 응답이 오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가 약할 때 그 때가 곧 강함이라"고 하셨는데 그는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기의 약함을 깊이 깨닫고 설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귀중히 여기시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아는 은혜를 받은 자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에베소서 2장 7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 8절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은 것도 영생을 소유한 것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된 것도 결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으시고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궁중에서 최고의 학문과 무술을 배운, 지식과 무용에도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연단받은 것은 인간의 지식이나 용맹 무술 등의 것은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귀중히 여기고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지팡이가 뱀이 된 것도 손을 품에 넣었더니 문둥이가 된 것도 육신은 건코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가르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도록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열하루면 들어갈 수 있는 땅을 40년동안 맴돌며 고생하게 하시고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게 하시고 메추리를 몰아다 먹이시고 또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갈함을 해소케 해 주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세상을 사랑하거나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 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깨달은 백성은 이 세상에서도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것과 같은 축복의 생활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에 보면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8장 11절 이하에 보면 40년동안 고생하면서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를 결국 또 잊어 버릴까 두렵다고 누누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리게 되지 않토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고 가난할 때는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도 건강이 회복되고 물질을 받아 편안해지면 기도하던 것도 그만두고 교회도 잘 안나오고 우쭐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에 떨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와 축복을 거두어 가시게 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8장 17-18절에 보면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제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을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은혜가 무엇보다 귀중한 은혜이며 이 은혜를 소유하는 한 온갖 귀중한 축복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 16장 15절에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주의 종들도 어렵고 가난할 때는 금식하고 기도하고 부르짖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명성을 주시면 그 다음에는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저 박태선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성령의 능력을 굉장히 받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가 감람 나무라고 그러다가 완전히 사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 가운데 보면, 주인이 일꾼을 찾아 다니다가 놀고 있는 사람들을 불리 들여 일을 시키고 일이 다 끝난 후에 아침에 온 자나 정오에 온 자나 저녁 때 온 자나 다같이 한 데나리온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온 자들이 불평하였습니다. 이 때 주인이 이르기를 내가 선하므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 하고 책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교훈은 역시 은혜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도 써 주지 않는 일꾼들은 아침에 온 자나 정오에 온 자나 저녁 때 와서 한시간 일한 자나 모두 주인의 은혜로 쓰임받고 1데나리온을 받은 것이지 결코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나 가치를 내세우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4-5절에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은 마른나무 지팡이 12개를 넣었는데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가진 권위나 능력도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지 막대기 같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놀랍게 부흥되고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지 결코 교역자나 교인들이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흥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부족과 결핍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은혜를 진정으로 깨달으면>
[①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시편 115편 1절에 보면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결핍과 부족을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②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자기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깊이 깨달은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③ 참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은혜를 받은 자만이 참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장 5절에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 하셨고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깊이 은혜를 깨달아야 겠습니다. 은혜를 진정 깨닫는 사람은 실족치 않고 또 은혜를 더 깊이 깨달을 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을 믿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왜 거듭나야 하는가?
엡 2:1-10 / 이원근 목사
아시아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든지 차별 없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도 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교회의 주일예배에 오시는 분은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영원한 새 생명을 얻기 원합니다. 모두 다 거듭나는 축복을 누리며 인생의 결정적 변화를 체험하시기 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거듭나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다섯 가지의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새 생명을 받아서 부활한 것입니다. 즉 영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가슴에 없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없거나, 하나님의 성령이 그 가슴에 없는 사람은, 육신은 살아있어도 영혼은 죽은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영이 죽어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영혼이 다시 살아나야만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나는 것처럼, 영혼이 살아나는 길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 하였습니다. 은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의 영혼 속에 영원한 생명을 넣어 주십니다.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2절) 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가 무엇입니까? "허물과 죄 가운데"입니다. 죄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삶입니다. 죄짓는 것을 평범한 일로 생각하며 죄 속에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그 영이 죽어 있습니다. 둘째, "이 세상 풍속을 좇고"(2절)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세상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삶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습관과 사고방식대로 사는 사람은 그 영이 죽어 있습니다. 셋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2절) 라고 하였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마귀와 사탄의 영을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우상에게 절하고 악한 영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생활입니다. 창조주이신 참된 하나님을 섬겨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피조물을 두려워하며 그것들에게 절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넷째,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3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정결한 영을 따라 살지 않고, 우리의 육체 속에 있는 죄성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죄를 즐기며 죄 안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by nature) 진노의 자녀"(3절)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인 것을 마음에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진노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듭난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 거듭나서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과 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거듭나서 참 하나님을 섬기는 운동이 이 땅에서 왕성해지기를 원합니다.
거듭난 우리들은 어떤 은혜를 입었습니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4-7절).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나를 아시고 사랑하셨으며,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이 놀라운 은혜가 바로 나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거듭나야 하는 둘째 이유는, 인간이 영적으로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하였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란 부모로부터 생명을 한 번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영적인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영적인 일들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말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들의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영적인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당연히 영의 눈이 멀어 있고, 영의 귀가 닫혀 있으므로, 영적인 것들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것이 잘 이해되지 않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영이 죽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새 생명이 들어가야 합니다. 새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그분을 모셔들이면 성령께서 그 순간에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 주십니다.
인간이 거듭나야 하는 셋째 이유는, 부모에게서 한 번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의 영향권 아래서 세상의 풍속을 따라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마귀의 자녀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중에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도 영적인 눈이 떠지지 않아서 영적인 세계가 느껴지지 않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아직도 세상 풍속을 좇으며 죄와 욕정에 따라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여러분 속에 새 생명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넷째 이유는, 인간이 영적으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표범이 그 털에 난 점들을 스스로는 없앨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기로 작성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로운 생명을 받은 순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인간은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절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오늘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여러분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여서 새로 태어나는 축복이 꼭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새 생명을 얻어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영적으로 왕성해져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를 받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축복된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죽었던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영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 속에 새 생명과 새 능력이 생겨나야 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한 번 더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영적인 부활을 체험하고, 세상과 죄를 이기며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엡 2:1-10 / 성흥모 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 중에 10절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어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는 말보다는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는 말씀이 훨씬 더 살아있고 생생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세상에 성홍모라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은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으니 정말 귀하고 값진 존재입니다. 저하고 똑같이 생기고 행동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성홍모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단 한 사람입니다. 작품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의 물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10절의 말씀을 흠정역에서는 "For we are his workmanship"이라고 하여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작품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귀한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하고 귀한 존재로 살아 가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싫어버리지 않으시고 나 모른다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아주 소중한 사람인 되었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하신 정신능력이나 우월성을 보면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만이 인격이 있습니다.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 지성과 정신력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만이 자유의지가 있어서 사랑하며, 선택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고, 문화를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만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과 교통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다른 동물이 아닌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전도서3:11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느니라"고 하십니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를 교훈 삼아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상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과거에 죽어 있었습니다. (1-3)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악령이라든지, 귀신, 사탄을 말하면 부정적인 믿음, 무서워서 믿어두려는 그런 부정적인 믿음이 싹트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주님을 말하고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여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는 조금만 이상해도 사탄의 역사로 간주하고 귀신들린 것처럼 말하니 교인들이 사탄의 종이 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합니다. 사탄은 분명히 있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탄의 역사라고 주장하다보면 교인들은 사탄 노이로제에 걸립니다. 조금만 아파도 귀신의 장난입니다. 우리는 그냥 피곤해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어보면 마치 자기는 귀신들린 것처럼 보여집니다. 감기에 걸리셨습니까? 감기라는 병을 가지고 다니는 귀신에 들렸기 때문에 감기를 앓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질병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잘 관리하는 사람도 고장날 수 있다면 조금 아픈 것은 지나가는 통과의례로 보면 됩니다. 병원에 다녀오고 약도 먹고 주사도 맞으면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두 귀신과 사탄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 궁극적인 문제로 들어가보면 불신자들은 사탄의 지배 하에 있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불순종의 사람들, 불신자들은 악한 영, 사탄의 조종을 받고,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는 중에 요한1서 3:8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 성령과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난 악한 영,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절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합니다. 지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지만, 우리 역시 전에는 악한 영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반드시 하고 마는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다보니 종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있어 주인과 종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을 보면 종에는 완전 자유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에게 속한 것, 시간도, 물질도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다 주인의 것입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으로 이런 불공평한 관계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전에는 우리도 죄의 종이었습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았습니다. 그가 하라면 해야 하고, 그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죄가 우리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죄짓는 것밖에 다른 것을 도무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만 쌓는 일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진노만 쌓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2. 하나님이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앉혀주셨습니다. (4-9)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들이 사탄의 종이 되었다고 하여도 우리 하나님은 구원하여 주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마침내 하나님이 살려주시고 인도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보증하시고, 완전히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사야 46:3-4에는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하나님은 큰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안아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업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따뜻하신 가슴으로 우리를 품어 주셨고, 업어주셨고 구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신 것입니까? 4절 말씀에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보셨습니다. 시편103:13-14에 하나님의 사랑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진흙같이 보시고,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린 자식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불쌍히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작은 딸이 먼저 출산하여 친정이라고 와 있습니다. 갓난아기를 위하여 불쌍히 여기는데, 한없이 불쌍히 여기고 돌봐주고 있습니다. 젖을 먹이고, 우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자리를 정리해주고 방안 온도를 맞추고 최선을 다합니다. 좀 설명하면 집안 일이 될 것 같아서 여러분의 귀한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보세요. 무한 사랑입니다. 정말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무한하시고 한없이 주고 또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이라고 하면 불쌍히 여기는 것, 동정과 자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시기 때문에 우리 민족을 구원하여 주실 것이요, 모든 헝크러진 문제들을 선하게 해결해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애가3:22-23)라고 예례미야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5-6절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허물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입니다. 여기에 "살리셨고"라는 말씀, "일으키사"라는 말씀,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세상에서도 좌절하지 않게 일으켜주시고, 하늘의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요,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 속에 앉히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진 신앙이란 과연 이런 확신의 말씀이라는 것을 심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님을 무덤에서 살리셨고,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혀주셨습니다. 이렇게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혀주시는 것은 우리 주님에게나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렇게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는 사람은 오늘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하여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궁하신 긍휼과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8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 번 창조하셨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죄로 죽었는데, 예수님을 대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시고 살려주시고 새롭게 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값을 치르지 않았는데, 값없이 구원을 선물하셨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니 값없이 오라고 하십니다. 돈 없이 오라고 하십니다.
로마서3:24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요한계시록 21:6에서도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값을 메길 수 없는 너무나 큰 가치여서 은혜로 주셨습니다. 아들을 내어주셨는데, 생명이란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값없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 선한 일만 하십시오. (10)
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존재가 되었으며,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면 무조건 선한 일만 하세요.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일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는데, 선행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선행을 위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악한 영이 하라는 대로 하여 죄악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 된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는데, 선한 일에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선하다는 말은 탁월하다, 우수하다, 좋다, 훌륭하다, 보다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선하다는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있는 일은 나다나엘이란 분이 친구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한 것은 구원의 역사, 곧 메시아가 가져오는 구원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메시아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리에서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은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의 나팔이 되고 한 영혼을 섬기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고 희생하는 것이 가장 선한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절망에 빠지는 것처럼 나쁜 것은 없습니다. 나는 어떤 존재냐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자녀가 거듭났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었는데,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된 것입니까?
어떤 물건이든지 얼마의 돈을 주고 샀느냐에 따라 물건의 가치를 따지는 것입니다. 1만원을 주고 샀으면 1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그 피를 흘리심으로 사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대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생성자 예수님의 가치만큼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있다면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정말 값진 존재입니다.
나는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일본 사람이 쓴 소설 중에 [아끼루]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그 뜻은 "산다"는 말입니다. 노벨상 수상 작품 후보로 들어 갔다가 상을 받지 못했지만 중요한 작품입니다. 그 소설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25년 동안이나 시청에 근무하던 어떤 사람, 아주 몸이 건강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위암입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6개월 산다고 선언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고민을 합니다.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물론 직장에도 가고 싶지 않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셔도 재미없고, 누구를 만나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는 아주 절망하고 삽니다. 그러다가 어떤 꽃 파는 불쌍한 어린애하고 앉아서 얘기를 합니다. 말동무가 됩니다. "나는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는 슬픈 얘기를 합니다. 이 철없는 어린애의 대답이 "그래도 6개월은 있잖아요" 합니다. 아, 그 말이 맞단 말입니다. 여기서 정신을 차립니다. "6개월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6개월은 있다" 이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용기를 얻어 가지고 6개월 동안 "내가 뭘 할까" 하며 그는 가능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귀중한 일을 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을 섬기면서 신실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선한 일만 하시다가 구원해주신 하나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인간관계
엡 2:1-10 / 조용기 목사
할렐루야~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오늘 행복합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나는 평안합니다. 나는 형통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나는 복받았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은 복받은 사람입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좋은 인간 관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자매, 친구, 이웃 등 모든 삶은 인간관계에 의해서 시작되고 인간관계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가 있을까요? 삶의 행복과 불행도 인간관계가 좌우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위간(A. E. Wiggan) 박사는 직장, 가정, 사회생활 등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왜 두드러지게 실패를 하는가. 그 결과 전문적인 지식이 모자라 실패한 사람들은 전체에서 불과 15%밖에 안 되었습니다. 교육이 부족해서 노하우가 없어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그는 인생에 실패했다. 그 사람들은 전체 15%밖에 안돼요. 나머지 85%의 사람들은 모두다 인간관계를 잘못했기 때문에 인생에 실패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미국의 카네기 재단에서는 5년 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 1만 명을 대상으로‘성공비결’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는데, 위간 박사와 동일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즉 85%의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잘했기 때문에 인생을 성공했다고 그렇게 결론이 나왔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경영자 수업(MBA) 과정에서 유수기업 CEO들 즉, 사장들을 대상으로 ‘성공의 주요 요건’을 조사했는데 여기서도 85%의 사람들이“원만한 인간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공감 능력”에 의해서 성공을 했다고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연구를 통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이렇게 앉아서 같이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는데 계속해서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살려면 옆에 있는 사람하고 인간관계가 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의해서 삶은 시작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 자매, 친구, 이웃 등 우리의 삶은 인간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설이 곧장 다가오는데 설이란 무엇입니까? 인간관계입니다. 오랫동안 안만났던 부모님, 형제, 자매가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주고 받느냐. 인간관계를 원만히 갖기 위한 것입니다. 받아 맛이 아니라 먹어 맛이 아니라 사랑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삶의 행복과 불행도 이와같은 인간관계가 좌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한 가정에서 부부간에 결혼해서 사는 것도 다른 여러 가지 행과 불행의 요건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인 것입니다.
<본론>
1. 이해하라
그러면 첫째로,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이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같이 인간관계를 가지고 살면 이해를 해야 되는데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굉장히 많아요. 상대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이해해야 되고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느껴야 돼요. 내 감정대로만 해서는 안되지요.
로마서 12장 15절로 16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대단한 명령이십니다. 즐거워 하는 자에게 가서 울면 안되고 우는 자에게 가서 하하하하 웃으면 모욕을 주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타대학에서 실행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좋지 않은 부부관계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부가 나이를 먹으면서 건강이 굉장히 중요한데 부부간에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면 그것이 나쁜 건강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히브리서 11장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당연히 눈에 보이는 그 자체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안보이는 것이 그 원인이 되어서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물질은 이 물질 자체로써 된 것이 아니라 안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럼 부부관계의 건강도 눈에 보이는 밥을 얼마나 먹느냐. 영향을 어떻게 섭취하느냐. 그런 것 보다도 그 배후에 안보이는 파워가 있어서 그것이 건강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안보이는 것이 무엇이냐. 연구팀은 15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아내들이 화가 났을 때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안으로 삭혔을 경우, 화를 낸 사람보다 심장병으로 쓰러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에게 불만이 있거든 그 자리에서 한바탕 하라고 그것을 속에 눌러 놓으면 남편은 끄덕 없는데 아내는 심장병으로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화를 풀어놓는 것이 좋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밤낮으로 큰소리하고 싸우면 안되고... 꼭 속에 있는 것 풀어 놓고 싶으면 풀어 놓고 또 남편 된 여러분 아내가 불평을 말하고 원망을 하거든 이해하고 동정해서 그것 들어주라는 것입니다. 들어주기 참 힘듭니다. 그래도 심장병 걸려서 쓰러지지 않게 하려면 들어주는 것이 좋아요. 안들어주고 심장병 걸리면 얼마나 돈이 날라간다고... 들어주는 것이 돈버는 것입니다. 반면, 아내가 남편과 상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독단적으로 일을 행했습니다. 은행 저금이라든지 주식이라든지 부동산 투자라든지 남편하고 의논도 하지 않고서 자기 독단적으로 해놓구선 나중에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대개 그런 아내를 거느린 남편이 기절초풍을 하고 심장병으로 쓰러진다는 것입니다. 나이 먹으면 심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심장이 중요하고 뇌일혈, 뇌병이 중요한데 그 부부관계가 좋지 못하면 눈에 안보이는 그 관계가 눈에 보이는 심장병이나 뇌졸증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실행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혼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연구한 결과 적대적인 인간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건강에 문제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미워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관계를 가진 공무원들이 병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공무원들 가슴에 통증을 느끼거나, 심장 마비를 느끼고 심장 질환에 걸리는 공무원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부부간에 관계가 나쁜 사람이 그렇게 걸리는데 한 34%가 일반 사람보다 많이 심장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먼저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와 오늘 조목사 거창스러운 소리하네. 여러분 나도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께 설교하는 것 여러분 들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날 들으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날 보고 설교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담대하게 여러분에게 설교하는데 우리 아내된 여러분, 남편 된 여러분 우리 함께 이해하고 동정하고 생각을 같이 해서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행복하게 한번 살아보십시다.
방송인인 이숙영 씨는 <맛있는 대화법>이라는 책에서 대화의 요령을 잘 설명하고 있어요. 특별히 저자는 방송인으로서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을 하니까 말을 많이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무엇보다도“잘 듣는 것이 최고의 대화”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을 잘하는 비결에 대해 “1, 2, 3의 법칙”을 강조하는데 1대 2대 3의 법칙이란, 하나를 이야기 했으면, 둘을 듣고, 셋은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라는 것입니다. 말은 하나만 하고 두 번은 듣고 세 번은 옳소. 옳치거리, 옳치거리~ 그렇게 맞장구를 치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말을 했을 때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은, 내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참 남의 말을 들어주기가 힘이 듭니다. 남의 말 이야기하는데 자기는 공중 쳐다보고 오른편 보고 왼편 보고 손톱 만지고... 이렇게 되면은 나하고 대화하러 온 사람에게 모욕을 가하는 것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뭐 어떻게 하느냐. 맞장구를 쳐줘야 돼요. 말하면 그래요~ 아, 그렇고 말고...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정말 수고했네요. 참 훌륭하네요. 참 좋으네요. 자꾸 맞장구를 쳐야 돼요. 별로 그렇지도 않아도 그렇게 맞장구를 쳐줘야 돼요. 우리가 맞장구를 쳐주면 대화는 더욱 깊은 유대와 공감의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 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요사이 설교집을 하나 읽고 굉장히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설교집 제목이 뭐냐면 “사랑의 배달부”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이 있는 핸드폰도 없고 전부 다 배달부가 갖다 나릅니다. 편지도 소식도 배달부가 갖다 나르는데 사랑의 배달부... 거기에 보니까 굉장히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분 오늘 찬송을 부르는데 제가 옛날에 안하는 짓 하는 것 봤지요? 옛날에는 조용히 앉아서 점잖게 불렀는데 이제는 손도 흔들고 이렇게 하고 그게 왜 그러느냐. 그 책을 읽고 난 다음 내가 변화 되었어요. 왜,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라고 했는데 그 책은 찬송은 곡조있는 설교다. 야~ 찬송이 설교다~ 그 이야기에 보면은 선교회에 갔는데 한 택시 기사가 한 2,3일 동안 집회 장소에 모시고 왔다갔다 하는데 굉장히 침울한 사람이에요. 아무말도 안해. 그러니까 아~ 이 사람은 영어를 모르는구나 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영어도 유창하게 잘하고 일본말도 잘하고 몽고말도 잘하고... 그런데 왜 말을 안했느냐. 아마 마누라하고 싸운 것 같아요. 안그러면 남자들이 아무 말도 안할턱이 없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부인하고 싸우면 술 안마시면 우울하니까 말 안하잖아요. 그런데 마지막날 막 웃고 교회 나오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러냐고 하니까 마지막날 찬송을 했어요. 찬송을 막 하니까 몽고말로 찬송을 하니까 이분이 찬송을 듣고 같이 찬송을 부르고 난 다음에 예수 믿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찬송이 설교가 되었어요 그분에게는... 곡조있는 기도가 될뿐 아니라 곡조있는 설교가 되었어요. 찬송에 있는 설교를 듣고 변화를 받았어요. 나는 그것 읽고 난 다음에 야~ 찬송을 우울하게 앉아서 들어서는 안되겠구나. 저도 늘 생각하기를 찬송이 조금만 길어지면 쓸데없이 너무나 찬송을 길게한다. 내가 설교를 해야 되는데 시간 다 빼앗아 먹는다. 찬송 좀 짧게 하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 그것 아니구나. 찬송이 곡조있는 설교구나. 성령께서 내 설교보다도 찬송까지 보태서 곡조있는 설교를 하니 듣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변화 되겠느냐. 그래 그 다음부터 나도 곡조있는 설교할 때 나도 따라서 춤도 추고 곡조에 붙여서 즐겁게 찬송해야 되겠다. 제가 1년 동안 읽은 책 중에 가장 감동을 입은 책이 사랑의 배달부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것을 읽고 있는데 내가 이 설교를 하나님이 하라고 하니까 이 설교하고 딱 궁합이 맞는다고...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하고 이해와 동정을 하자면 상대의 태도를 자세히 살펴서 그 태도에 우리가 합쳐줘야 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자리에 보려고 노력해야 되구요. 무슨 일할 때 내 생각만 하면 안돼요.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 하겠는가. 내 입장에서만 자꾸 내가 말하면 안되잖아요.
누가복음 6장 36절로 37절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이것 내 말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상대의 자리에 서보려고 노력하라는 그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의미가 깊은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은 겸손과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삶은 우리 인간의 삶을 다 이해하고 동정하고 품어서 우리를 대변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젊은 신학생들에게 늘 말할 때 “너희들이 강단에 서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이 세상에 죄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병들고 고통스럽고 실패하고 낭패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불안과 초조, 좌절과 절망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설교를 하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설교해라! 네가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말라. 너가 재미있다고 너 재미있는 식으로 하면 사람들이 너 얼마나 잘한다고 구경하러 오겠노? 사람들을 도와주는 설교를 하라.” 여러분 저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서 하나님 시간을 가지고 그 귀한 성도들의 시간을 빼앗는데 내가 하고 싶은말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의 그 필요한 것을 알아서 그것에 대한 해답을 말씀하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설교하는게 여러분 도움이 되지요? 경험이 적은 목사일수록 자기 소리를 자꾸 한다고... 그러나 경험이 많을수록 성도들이나 교회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말씀으로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구요. 대답은 여기에 있었는데 우리가 주의 종이 되는 것은 평신도보다 성경을 더 잘 알고 있고 많이 알고 있고 공부하기 때문에 대답은 성경에서 드려야지 인간의 생각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공감할 때 성공적인 인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상대의 마음의 생각과 형편을 이해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2. 동정하라
둘째로, 좋은 인간관계는 동정을 해야 돼요.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는 좋은 인간관계가 안되는 것입니다. 동정을 해야 돼요. 내 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바쁜 세계에 이기주의적인 세계에 사람들이 남의 말 안들으려고 해요. 자기말만 일방적으로 자꾸 하지요. 그리고 상대의 말을 듣는데도 방법이 있어요. 여러분, 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입은 하나를 주셨고 귀는 두 개나 주셨습니까? 입보다도 두배나 더 많이 들으라 그 말인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에게 말하는 것보다도 두배나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남편이 자기 아내 좋아할 것입니다. 대개 아내는 여성들은 말 잘하잖아요. 남편이 입열기도 전에 몇 배로 말을 하니까 정신이 아뜩해지고 말거든요. 제일 불안한 것은 집에 들어가서 부인이 원망, 불평, 탄식할 때 남편이 불안합니다. 마음에 공포심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집에 일찍이 안들어오려고 변명을 하고 오늘 뭐 일이 많은데 잔무가 많은데 특별한 손님을 만나는데... 그런 것 참말도 듣지만 내가 보기에는 90%가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집에 들어와서 부인하고 많은 시간 안가지고 빨리 자려고... 왜냐하면 부인의 말을 듣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배나 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말도 더디 하고 성도 더디 내고 듣는 것은 속히 귀를 기울여 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되도 않는 소리해도 들어줘야 해요. 사람들이 말을 듣는데는 약 17%의 사람들은 자기 선입관을 정해 놓고 판단하며 듣습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자기가 이미 딱 결정해 놓고 난 다음 말만하면 너 이것도 틀렸다. 저것도 틀렸다. 틀렸다. 입으로 말 안해도 이미 판단을 하고 들으니까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듣는 사람들이 17%나 되는데... 그 다음 대화를 하면 자꾸 질문을 해요. 그 사람 말하는데 자꾸 질문을 하니까 그 사람이 상대방이 자기 이야기를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람이 26%나 되는 것입니다. 상대 이야기의 맥을 끊어요. 계속 질문함으로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 조언하며 듣는다. 상대의 말에 간섭을 하고 조언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상대의 말을 잘 못 듣습니다. 자꾸 간섭을 합니다. 말을 하는데 말을 도와 주려고 해요. 약 35%의 사람들이 그렇게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2절로 3절에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 10장 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그러므로 말을 아끼라고 성경은 많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감정까지 동정하며 듣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대화하는 사람의 22% 사람인 것입니다. 말하는 것을 아 그래요?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이 탄식을 하고 좋아하면 같이 좋아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경청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상대와 대화를 하되 판단하지 말고, 질문하지 말고, 평가하지 말고, 조언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과 느낌을 동정하면서 듣고 결론은 하나님 말씀으로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결론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상대와 대화를 하고 결론 내리기를 원할 때는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은 이럴 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놀랍고 지혜로운 책이 어디 있나요?
동정은 마음 뿐 아니라 행동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대화를 할 때 우리가 마음에 동정함과 동시에 내가 실제로 도와줄 수 있으면 행동까지 따라서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짐을 함께 걸머져 주면 참된 동정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로 9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여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겸손하고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것은 동정을 말만 가지고 하지 말고 행동으로 동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생텍쥐베리가 쓴 <어린 왕자>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내가 얻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세계적인 CEO 즉, 사장들이 꼽는 분 중에, 유명한 제약업체인 화이자(Pfizer)의 사장 제프 킨들러 씨가 있습니다. 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을 얻는데 세계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가를 알아 보니,‘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습관’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듣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인 것입니다. 이것이 화이자를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박노환 씨는 <경청으로 시작하라>는 책에서“듣기는 의사소통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잘들어야 의사가 서로 소통을 한다는 것입니다. 경영 컨설턴트이자 리더십, 라이프 코치인 허병민 씨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인데, 이것은“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듣는 데서 나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귀가 너덜너덜하도록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들으라는 것입니까? 한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가장 들어줘야 되는데 참 미안하게도 우리가 잘 안들어 주기 때문에 그게 부부간에 언제나 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들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좋은 인간관계를 갖고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열 번, 백 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은 바로‘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좀처럼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동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머가 있어요. 어느 집에 부인이 남편이 담배를 많이 피워요. 늘 담배연기가 가득하고 남편 담배 안피우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부탁을 해도 남편이 들은체 만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 대문밖에 신문을 픽업하러 가서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담배를 많이 피우면 암에 걸린다. 그 기사가 걸렸기 때문에 부인이 뛸 듯이 좋아했습니다. 자기 말은 안 들어도 이러한 전문가가 신문에 이렇게 냈는데 얼마나 좋으냐. 그래서 남편에게 그 신문을 들고가서 “여보 오늘 신문에 크게 났는데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에 걸린다고 해 놓았어요.” 그러니까 그 남편이 “그래? 싸인펜 가지고 오세요.” 그 부인이 뛸 듯이 좋아했습니다. 금연이라고 싸인을 할 줄 알고... 그래서 싸인펜을 가지고 오니까 남편이 뭐라고 적냐하면 신문사절! 그리고 이것을 대문가에 붙이라고... 부인이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얼마나 다릅니까? 부인은 금연이라고 쓸줄 알았는데 남편은 이런 신문은 사절한다. 사람들이 서로 해석을 다르게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우리가 남의 신을 신고 보름 동안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하지 말게 하옵소서.”상대방의 신을 보름 동안 신고 다녀 보면은 발에 맞는지 안맞는지 알고 비난할 것이냐 안할 것이냐 마음에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어보지 않고 난 다음 상대방을 비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와 대화를 하되 판단하거나 질문, 평가, 조언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과 느낌을 동정하면서 듣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를 기울여서 동정을 하라.
3. 사랑하라
셋째, 좋은 인간관계는 사랑을 하라.
우리는 막연한 하나님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어떻게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셔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려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막연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뚜렷한 우리가 체험을 하고 알 수 있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죄인을 정죄치 않으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이다. 언제 하나님이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사랑하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았느냐? 우리는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은 죄인을 정죄치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졌지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이런 희생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 하나님은 사랑이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죄와 허물을 당장 심판치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덮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보면 알아요. 우리 예수님께서 죄인을 당장 심판하거나 그 자리에 정죄하지 않고 오래 참으시고 기회를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를 다 돌로써 쳐서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오래 참으시고 이 여자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집에 돌아가서 다시 죄를 짓지 말라.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로 5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여 영적으로 다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 죄를 다 청산하게 하고 사흘만에 부활하게 하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는 이 빚을 갚아야 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값없이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도 이웃에 이와같은 은혜를 베풀어야 되겠다. 하나님의 자녀와 같이 하나님께 배운대로 행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10절에 참 이 말씀은 너무 좋은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로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구원을 받았으니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으니 왜 구원해 주셨느냐. 우리도 이웃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베풀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는 우리도 하나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는 자식들이 아버지를 닮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는 닮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사랑의 자녀들이 되어서 이웃에 사랑을 베푸는 우리가 되어야 될 것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로 28절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요한일서 3장 17절로 18절에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부메랑이란 기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나무 무기인데 탁 던지면 공중의 새를 딱 맞춰서 새를 떨어뜨리고 부메랑은 휙 도로 내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난 다음 그것이 도로 내게로 돌아오는 것을 부메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미국 대사를 지낸 제임스 레이니 교수는 미국 에모리대학교의 켄들러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건강을 위해서 매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 고급 주택지를 지나가게 되는데 거기에 벤치에 노인 한 사람이 늘 앉아 있습니다. 아무도 대화를 하지 않아요. 이 레이니 박사가 가다오다 이 노인과 같이 이야기를 해주고 그 노인을 모시고 집에 데려다 주고 정원의 잔디도 깎아주고 그랬는데 얼마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아침에 지나가면서 보니까 노인이 없어요. 저녁에도 보니까 벤치에 안 앉아있고... 그래서 이상해서 물어 보니까 노인이 세상을 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이 세상을 떴으니 참 안됐다고 그 장례식 날짜를 알아서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가니까 그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이 누군지 몰랐어요. 2년 동안을 서로 대화를 했는데도 그 노인은 자기 신분을 안가르켜 줬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그 노인이 누구냐 코카콜라 회사 회장이라. 보통 부자가 아닌데 아마 고집이 셌던지 부인도 없고 자식들도 같이 안살고 혼자 외롭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 비서에게 유언장을 써서 레이너 박사에게 이분에게 유언장을 주라고 했는데 그 유서를 펼쳐 보니까 뭐라고 했느냐면 “당신은 2년 동안 내 집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준 친구였소. 나의 친구 레이니 고마웠소. 내가 당신에게...” 기절초풍할 만합니다. “25억 달러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드립니다. 받아서 쓰십시오.” 25억 달라면 우리 한국 돈으로 2조 5천만원입니까? 왔다갔다 친구해주고 이만한 돈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 레이너 박사는 한국에 대사로 있을 때도 저는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저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 제임스 레이니 교수는 그 돈을 자기가 쓰지 않고 대학에 기부하여 노인의 유산을 값지게 사용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에모리대학교는 급성장하며 남부의 유명한 대학이 되었고 에모리대학은 16년 간 이 레이너 박사를 총장으로 모셨습니다. 이게 부메랑입니다. 내가 심은데로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친구가 되어주었더니 그분은 돌아갈 때 그 모든 유산을 그에게 돌려 주었다. 부메랑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꼭 좋은 일을 많이 하십시오. 그 좋은 일이 여러분에게 돌아옵니다. 내가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남부의 어떤 자매님 한분이 암을 수술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암을 수술했는데 그 돈 전체가 5만불인가 돼요. 그 부인이 혼자 사는 과부인데 도저히 돈을 갚을 수가 없어요. 큰일났어요. 암은 수술을 잘했는데 갚을 도리가 없어요. 그런데 이제 병원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쪽지 하나가 왔어요. 아주머니의 병원값은 내가 다 갚았습니다. 기억 나시지요? 옛날 내가 학생시절에 너무 어렵고 가난해서 집집마다 물건을 판매하고 다녔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하루는 음식을 좀 얻어먹고 싶으나 부끄러워서 빵 달라는 말은 못하고 아주머니 집에 가서 물한컵 달라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내 배고픈 것을 보고 큰 컵에 우유를 잔뜩 담아서 나에게 주었습니다. 내가 그날 그 우유를 마시고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이 병원의 병원장으로 있습니다. 내가 우유 한컵의 값을 갚습니다. 부메랑, 내가 한 좋은 일이 내게로 돌아온다. 안돌아올 것 같지만 꼭 돌아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안보이는 과거의 일이 열매를 맺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메랑을 꼭 믿으십시오. 좋은 결실을 이 부메랑을 통해서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며 살면은 여러분 인생에 행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론>
인생은 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병중에 가장 나쁜 병이 외로움을 가진 고독의 병인 것입니다. 고독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희로애락을 인간관계에서 만들어 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안좋은 것은 또 그 때문에 기도도 하게 되고 회개도 하게 되고 오산리 기도원에도 가게 되고 좋게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난 늘 내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은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좋고 종국적으로는 다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것은 좋아서 선을 이루고 나쁜 것은 합동하여 유익을 얻기 때문에 좋고 결국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좋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꿈꾸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 문제의 숙제가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이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고 난 다음에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것처럼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성령이 운행하시는데 성령이 안보이잖아요. 여러분 안보이는 여러분의 가슴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생각이 안보이지요? 여러분의 꿈이 안보이지요? 여러분의 믿음이 안보이지요? 여러분의 말이 안보이지요? 성령은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여 여러분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가를 해결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 함께를 잘 할 수 있는 길이 이해와 동정과 사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도 이해와 동정과 사랑을 금년도에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열심히 하십시다. 결국 인생은 한번 밖에 못사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이 한번 밖에 못사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행복하게 살고 행복을 만들어 가면서 살아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면 행복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상대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합시다. 내 아내를 내 남편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합시다. 그렇게 되면 행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