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희망 찾기
-유럽 선진농업을 돌아보며
하 금 수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선지 1시간 후 아산에 닿았다. 집을 떠날 때부터 가슴속에 무엇인가 새롭게 다가옴에 설렘을 느끼고 있었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으로 아산 버스터미널에서 인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에 범상치 않은 날씨로 눈과 비가 함께 내리고 있었다.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쳐 매서운 날씨 속에 눈보라가 치는데도 고속도로 위로 버스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인천 행 첫차를 타기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한 터라 졸음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졸음을 몸에 담기 위해서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머리를 의자에 기대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옆에 자리 있습니까?”
눈을 떠 보니 잘 생긴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아니,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모 변호사였다. 같은 세대를 사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대화도 잘 통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항까지 지루하지 않게 갔다. 공항에 도착할 무렵 문득 무엇인가 허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여권이었다. 외국에 나가려면 여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두르다 보니 여권을 집에다 놓고 온 것이었다. 다급해진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전화를 받고 서둘러 인천까지 여권을 가져다 주었고 나는 남편 덕분에 스위스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을 한 후 나는 이번 여행을 생각해 보았다. 이런 저런 일로 외국에 몇 번 나가 보았지만 이번은 성격이 조금 다르기에 더 기대가 되었다. 8박10일 간의 연수를 겸한 유럽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유럽의 선진 농업을 견학하며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한국방송공사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농촌 희망 찾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일행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많은 기대가 되었다.
스위스는 인천에서 취리히까지 비행기에 탑승한 소요 시간만 11시간이 넘는 머나먼 나라였다. 오후 2시에 출발하였는데 시차가 있어 스위스 경유하여 프랑스 니스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오후 6시 20분이었다. 도착하여 시선이 닿은 곳은 수백 년 된 건축물들 이었고 모두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 곳은 조그만 도시였다. 우리 일행은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노틀담 호텔에 짐을 풀고 하루를 정리했다.
공식 일정 첫날, 우리들은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망똥 축제에 참가했다. 우리들은 촬영 팀, 투어 팀으로 나눠졌다. 나는 촬영 팀에 속했고 망똥시 비오브 공원에서 열리는 황금열매 축제장에 갔다. 그 축제는 국제적인 행사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다채롭고 짜임새 있으면서도 광범위했다. 그 축제는 꼬드다쥐 공업 경제조합과 농민들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황금열매 행사 동안에는 130톤의 레몬과 오렌지를 사용하여 해마다 정해지는 테마에 따라, 황금열매로 장식되는 마차가 망똥시의 해변도로를 행진하고 있었다. 거인들의 행진, 오케스트라, 팡파레, 각국의 정통무용수 등 관광객들에게 볼거리가 풍성하였다. 이 축제 기간에 매년 40만 명의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했다. 나도 많은 인파속에 끼어 한국방송공사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행사진행과정을 꼼꼼히 지켜보았다.
같은 프랑스 하늘 아래 세계농업 박람회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식품, 과일 잼, 과일시럽등을 제작하여 판매까지 하는 알배망귄느씨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전시 행사장 옆 부스에서 직접 만든 가공 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정에서 소규모로 시설 투자하여 직접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하여 그들만의 고유 상품을 자랑하고 있었다. 연간소득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으나 여유 있는 그들의 표정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랑스 니스시의 백년 만에 찾아온 추위에다가 비는 내리고 추워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 노력하고 촬영에 흐트러짐 없이 임하는 일행들의 모습은 매우 진지했다.
이튿날 프랑스 생노랑뉘바 레몬 재배농가 죠셉판치씨 농가를 방문했다. 그 곳은 전형적인 시골 농촌마을 이었다. 노부부와 그의 아들부부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가정방문이라서 조심스러웠다. 그들의 문화, 풍습,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백년 만에 처음 있는 추위에 동사된 레몬 자연재해를 어떻게도 막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들과 담소를 나누며 마련해 준 다과와 와인을 마셨다. 지구촌 어디든 피부색은 달라도 시골마을 농가에 훈훈한 정은 우리나라와 같이 따뜻했다.
프랑스에는 한국인이 현재 12,000여명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과수농가 죠셉판치댁은 1968년부터 레몬나무 1,000그루를 정부기술지원을 받아 재배하면서 89년부터 94년에는 매년 8~9톤씩 생산하여 지상낙원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후 인구가 늘고 소비량이 많아짐에 따라 내수 공급 물량이 부족하여 이웃 모나코, 스페인 과일이 수입됨에 따라 가격경쟁에서 밀려 수입이 떨어졌고 농업 생산자가 살기위해 만든 단체인 GI(경쟁이익단체) 농협을 통하지 않고 유통센터에 직접 판매하여 가격 안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현재에는 서 유럽에 위치한 프랑스가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지만, 인건비가 1,500달러인 반면 동유럽은 500달러여서 많은 인건비 차이가 있고, 칠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수입농산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농민단체인 농업회의소, 세계농산물 연구소 등에서 다양하고 안정성 있는 무농약, 자연 병충해에 견딜 수 있는 묘목을 공급해주고 기술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레몬 나무에 농약을 살포하지 않고 대신 전지기술을 통해 바람 통풍이 잘되고 공기가 맑고 신선한 곳에서 재배함으로써 껍질이 얇고 품질이 좋아 파리에 판매할 농산물 물량이 부족할 정도라고 한다. 그들은 ‘농민이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농업 생산자 농민이 살기위해 만든 조직 GI(경쟁이익단체)에 38년간 회원으로 참여하면서도 농협을 통하지 않고 유통센터에 직접 판매하여 고소득을 올린다고 말 하였다.
그들의 농협이 우리나라와 구조, 기능면에서 다르다고 답하였다. 레몬농장 1.5Ha를 경작하면서 부부가 농사짓는데 무리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낙천적이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찾을 수가 있었다. 또한, 사시사철 레몬 수확을 할 수 있는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단히 현지 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에 그라스 지역 바이오 채소농작 견학 일정이 취소됨에 따라 미모사를 재배하는 농장에 갔다.
마을에 들어서니 미모사 꽃이 군락지를 이루고 있었다. 높은 지대인데도 자연 훼손을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미모사 노란 꽃과 어우러져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우리나라 아카시아 나무의 꽃처럼 미모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굽이굽이 돌아 닿은 곳에 화려하지도 않은 농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삼대가 함께 모여 살면서 미모사 꽃을 이용하여 향수, 비누를 만들고 꽃을 말려, 직접 판매도 하고 수출도 하고 있었다. 그들은 GI회원이었다. 제작과정을 보니 우리가 가족농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촬영하고 있는 동안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가지고 갔다. 가격도 저렴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이 매우 친절했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들의 질문에 논리정연하고 성의 있게 답하는 그들은 어려서부터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말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서 인지 프랑스인 어느 누구를 만나도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가족이 하나 되어 열심히 일하고 타인에게 선한 미소를 선물할 줄 아는, 그 아름다운 마음씨와, 미소를 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음날 프랑스 니스에 있는 국립 농수산물 유통센터에 방문했다. 프랑스에는 총 18개의 크고 작은 유통센터가 있는데 그 곳은 파리에 위치한 국립 농수산물 유통센터 링지스 다음의 큰 규모로 니스 공항 근처의 면적 9백만 평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농수산물과 화훼전문 유통으로 연간 6,700억의 총 매출을 올린다고 하였다. 이미 우리가 갔을 때에는 경매가 끝난 후라 한가했다. 시설물을 둘러보고 관계자에게 필요한 자료만 받았다. 자동화된 시설이 우리나라와 비교되었고 친환경 농산물이라 그런지 겉모양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프랑스 그라스로 이동하여 아담하고 조용한 마을 오래된 작은 호텔에서 머물렀다. 저녁식사는 전통 프랑스식 연어 스테이크와 와인이었다. 피곤함을 잊으려 와인을 연거푸 몇 잔 마셨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한국에 두고 온 그리운 것들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다음날 그라스 농촌지역 농민 존속협회 소속 농장을 방문했다. 도․농 직거래 판매농장 이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여 생산자는 소비자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선한 유기농산물을 재배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소비자는 합리적인 가격을 생산자에게 정해주고 있었다. 과일, 채소, 육류, 가공식품을 일정한 양으로 분배하여 집에서 40km까지 배달해주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그들의 생업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하는데 필요한 선지원금 30%이상을 소비자가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속성제배를 원치 않으며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일정금액을 생산자에게 보상해 주며 계절에 맞지 않은 농산물은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생산자 한 가구당 소비자 240가구를 관리하고 있음으로 소득에는 안정적이었다. 점심시간에는 그들의 직접 재배해서 만든 농산물로 정성스레 만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언제나 식탁에는 와인이 곁들여져 있었다. 프랑스에도 2000년 후반부터 정부지원이 줄어 자생력이 없는 곳에는 경쟁력이 떨어짐을 알기에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오후에 액상프로방스로 출발 꽃길도로(미모소루트)를 통과 하여 피깔끼에르 살뤼농가에 도착하였고 여주인 미레이와 같이 우리나라 음식, 잡채와 불고기를 직접 만들어 그들과 나눠먹었다. 그와 함께 손수 준비해 준 그들의 전통 프랑스 음식을 대접 받았고 밤늦게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농가 역시 수백 년 된 집과 농장을 민박 할 수 있도록 개조되어 있었다. 내가 잠잔 곳은 예전 마구간이었는데 내 나라, 내 집, 내 사람들이 그리운 밤 이었다. 밤이 몹시 추웠다. 한기를 느껴서인지 아침 일찍 일어났다.
나는 일찍 농장을 둘러보았다. 띄엄띄엄 있는 농가, 농경지, 넓은 초원에 한가롭게 염소, 사슴, 말이 한 우리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노닐고 있었다. 젖소를 키우고 우유를 생산하여 치즈까지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곰팡이가 날아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프랑스를 떠나, 니스 공항에서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여 모처럼 넓고 안락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5일째 되던 날 처음으로 한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으며 소주한잔도 곁들였다. 소주 한병이 25,000원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투어 팀에 합류했다. 투어 팀에 속한 일행들은 프랑스에서 마르세유 성당과 향수 박물관, 모나코 왕국등을 구경했다고 하였다. 유럽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날,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빛이 눈부신 날이었다. 촬영 팀들은 귀농인이 정착하여 사는 라마 농장으로 새벽에 떠났고 나와 투어팀일행들은 스위스의 알프스 융푸라우(성처녀를 가르키는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높이는 4,158m이다. 베른 알프스 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뤄져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철도로 3,454m이다. 이 철도는 1896년부터 1912년에 건설되어 최대경사 25도 아프티식 초원과 산허리를 뚫은 터널을 지나 설원까지 이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눈 덮인 산하, 동화 속에서나 그림엽서에서 볼 수 있는 스위스의 고풍스런 농가와 민박마을 괴암절벽의 폭포수는 눈이 부셔서 감탄의 언어가 하늘 높이 흩날리었다. 그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 가족들이 스키를 즐기는 그들만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운 마을은 고산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고산에 이르렀을 때 산소부족으로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졌으나 얼음 조각을 보면서 설원에 서 있을 때에는 히말라야의 정상을 등정한 기분이었다.
지구의 비밀을 발견한 원시시대의 밀림속의 한 소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7일째 되던 날 스위스에서 독일 가는 길은 버스로 국경을 넘었다. 아우토반,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통행료를 받는 곳이 없었다. 버스는 독일의 하이델브르크에 도착했다. 하이델브르크는 독일의 서남쪽에 위치하면서 짙은 녹색의 숲을 배경으로 고풍스런 옛 성들이, 낭만주의 중심이자 라인 강이 합류하는 넥카 강을 마주보고 서 있었으며 그 곳의 고성들은 수백 년을 이어온 도시의 역사 그 자체였다. 13세기경 처음 세워졌으며 카인 선제후의 성으로써 내려오면서 확장되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각 시대 양식이 혼합되어 있었다.
1693년(오클레앙)전쟁으로 성벽이 떨어져 나갔으나 성벽의 자취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교육도시, 예술가들이 예찬한 도시, 수많은 낭만을 탄생시킨 곳, 괴테가 마리안네폰 빌레마라라는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는 곳, 많은 동서 시집중에는 그 무렵 그 들의 뜨거운 사랑이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시인 마티슨이나 휠더린도 이 도시를 자랑스럽게 시로 표현했다. 시심을 불러 일으키고 시정이 넘치는 도시이며 유유히 흐르는 넥카강이 걸려있는 오래된 아름다운 거리, 석양이 비치는 고성의 녹색언덕, 붉은 벽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었다.
8일째 독일 팰버트(시) 해센(주)에 있는 쉐퍼스호프 공동체를 방문하여 쉐퍼스호프와 관련된 유기농 연구 센터와 교육시설, 풍차를 이용한 농업, 기술지원 시스템을 돌아보고 관련 책자를 챙겼다. 생산에서 판매하는 농가 마트는 우리나라의 소형마트 정도였는데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밀류, 채소, 과일, 빵, 초콜릿, 육류, 의류,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단위로 많은 독일인들이 붐볐다. 그 농가 마트 입구에는 denter(유기농 품질인증)라고 빨간색으로 표시된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에 독일 퀠렌 성당에 갔다. 높이 157m로 위용을 자랑하고 성당안의 건물 안 길이가 144m 폭 86m로서 1248년에 착공하여 1880년에 완성한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가톨릭 성당이었다. 외관도 훌륭하였지만 내부 재단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자아내는 빛의 신비는 압도적이었다. 13세기경 장장 630년이 걸려 지은 성당은 전쟁 시, 미국 군인들이 하늘에서 폭격하려고 내려다 보니,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여 차마 폭격을 하지 못하고 옆에다 폭격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는 일화도 있었다. 게르 십자가, 동방박사가 있어 유명해졌다는 퀠렌성당은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으나 매연 때문에 외벽색이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또한 풍화작용에 의해 조금씩 깎이고 있었으나 기초공사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어떻게 지었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아 안내인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이 미스테리라고 설명해 주었다. 퀠렌 성당 주변에는 여러 나라의 관광객을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명품가게와 백화점이 즐비했고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성당 주변에 있는 1860년대 찻집에 들어갔다. 피아노, 바이올린 두 연주자가 땀을 흘리며 연주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왈츠(다브뉴강의 잔물결), 집시의 바이올린 두곡을 신청하여 레몬차를 마시며 음악을 감상했다. 오랜만에 여유 있고, 행복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넓은 공간의 찻집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퇴직한 독일의 노인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9일째 되던 날 하이델베르크 향했다 하이델베르크 고성가도, 베른 강을 따라 내려 가면서 언덕위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성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산 사이를 지나면서 산 중턱에 색깔이 바랜 고성들이 솟아 있었다, 숲속의 호숫가에 호젓하게 서 있는 그 고성들에는 제각기 우아한 역사와 비밀스런 정성이 담겨져 있었다.
라인 강변을 버스로 한 시간 달리면서 아름다운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라인 강변이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점심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라인 강의 길이 1,300km를 사이에 두고 전쟁이 빈번히 발생하였는가 하면 라인강 폭포를 지나면서 운하를 이용하여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등의 6개 나라에 석탄을 팔아 독일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운하를 이용해서 석유를 운반함으로써 인력과 운반비가 절약되고 교통수단이 되어 교통체중을 덜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라인 강은 철저하게 수질 검사를 실시하여 강물이 깨끗하였다. 라인강의 포도농업은 독일 농업의 15%를 차지하고 포도주(모젤와인)는 독일 다부르강의 잔물결을 음악으로 세계에 전해지게 함으로써 매년 7월부터는 유명한 와인 축제가 열린다고 하였다.
여성농업인인 나는 유럽연수를 통해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선진국의 농업정책에서 사회, 교육, 문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나라 농업과 선진농업국의 차이점을 비교, 분석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농업은 살아남기 치열한 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아낌없는 기술 지원으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농업은 체계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우리나라와 달리 농가의 소득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특히 프랑스의 농업체계는 100년 만에 찾아 온 추운 기후에도 불구하고 망똥 축제[황금열매축제]를 통해 세계의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자국의 특별한 레몬과 오렌지를 알려 많은 소득을 올린 사례는 ‘우리나라의 농업의 길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수를 통해서 우리가 많은 새로운 경험과 문화를 접했지만 좀 더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선진농업의 사례를 배우고 응용하여 우리나라의 기후, 지형, 농업정책에 맞는 선진농업을 실천하기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해야 하겠다. 유럽의 농업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우리가 즉, 농업인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의 주체가 누구인가? 바로 우리 농민이다! 프랑스의 GI(경제이익단체)처럼 소비자가 믿고 신뢰 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실천하여 안정적이고 경쟁력있는 농업을 이끌어 가는데 주춧돌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위기의 한국농업이라 하지만 우리 농업인들이 포기 하지 않고 노력 하면길은, 미래의 대한민국의 농업은 희망이 있다.
지구촌 어디든 대지는, 어머니가 지킨다는 것, 지켜야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유럽 연수의 기회를 준 농림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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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수님, 특히 지구촌 오디든 대지는 어머니가 지킨 다는 대목에 가슴이 아립니다. 그러네요....... 문학기행때 안 와서 엎드려!를 시키려고 했더니 이렇게 큰 일을 하고 계셨다니...........
보람된 삶 애썼어요.
유럽을 다녀오시다니 어려우셨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알 수 있고 대안을 찾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영준님 산자락님 구행모님 목도리 님 글을 많이 쓰려 노력 하겠습니다
하선생님 좋은 여정이었군요. 부럽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