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것은 정말 별안간 지상으로 떨어져버리는 빛과도 같았다.
내 인생에 예고 없이 떨어져 내린...
그래. 혜성.
찰나의 빛을 내며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는 그
혜성.
... 혜성 이였다.
내 나이 스무살.
혜성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내 단 하나의 별이 지상으로 추락하다 _
■ 광 · 년 · 이 ■ [부제 - 위대한 유산] - written by. 베르사유
13. 첫 만남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널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널 퍽 보고싶어 했던 것도 같다."
"...........상속자가 나타났다면서요? "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슬그머니 말을 돌려버린다.
"훗.....상속자가 나타났으니 네가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겠지.
내가 그 녀석 곁에서 빙빙 돌며 그렇게 힌트를 줘도 정작 그 상속자 놈은 자각을 못하더군.
그의 조부가 죽었다는 것 같은데... 이제 서야 드디어 만나게 되는 거였던 건가.
선호녀석이 좀 골려줬더니... 겁 먹구 얼마 전 저택으로 기어 들어갔어."
눈 앞에 그는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한 채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4번째 환생(還生)인데...이번엔 조금 더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이번 생은....제가.....그리고 선호가.... 스무 해를 넘길 수 있을까요? "
"........글쎄. 그 집을 버리고, 네 이름을 버리고, 과거의 너를 버리고 떠났으면서도...
완전히 네 인생을 살지 못하고 이렇게 되돌아 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뭘 더 말할 수 있겠어."
"그 집을 뛰쳐나와 제 발로 고아원엘 들어가 입양까지 됐지만...
이 곳을 볼 수 없는 바다 건너의 외국에서 살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하는 건 다 해보고 .... 그들처럼 살고 싶었지만...
마음속엔 언제나 그 집과....선호가 있었어요."
..........더는 듣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꽤 아깝겠다? 겨우 도망쳤는데 전부 수포로 돌아가서."
"8년이란 시간도 제겐 꽤 값졌어요. 온전한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였으나까."
"......그게 벌써 8년이나 지난 얘기인가.....? "
네........벌써........8년이나 지난 얘기입니다.
자그마치......8년 전.
[충재야...]
[........그렇게 부르지마.]
[....충재야.]
[이제 그거 내 이름 아니야. 나 양부모가 새 이름 지어줬어.
진이래. 양아버지 성 따서 전 진. 쿡... 붙여서 부르니까 꽤 웃기지?
그래두 뭐 박충재만 하겠어? 그거보단 덜 웃기잖아..]
[..............]
무척 추운 어느 겨울날 이였다.
나는 그 아이와 공유하고 있는 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다 말했다.
그 아이와 함께 짊어져야 할 운명이 싫어서..
우리가 함께 태어나고 자라고...지켜야 했던 그 집이 싫어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그 숙명이 버거워서...
그 아이와 함께 해야 할 그 모든 게 싫어서 나는 떠나고 싶다 말했다.
[.........세상은 변했어. 선호야.]
[하지만 우린 변할 수 없어.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누구를 위해서? ]
[...........]
[응? 누구를 위해서? 이 대단한 집을 위해서?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
왜 우리 부모가 했던 일을 우리가 대물림 해야하지? 우리가 왜?]
[....왜냐면.....왜냐면.....우리가 해야할 일이니까. 우리 운명이잖아.]
[하......선호야. 제발...]
내 지친 눈동자가 그 아이의 어깨를 쥐고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선호야. 제발.....응? 제발... 말했잖아. 세상은 이미 변했어.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치는 우린 그런 세상에 살고 있어.
우리의 부모세대가 살던 그런 주종(主從)관계 따위는 더 이상 없단 말이야.
우린 우리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아야 해...
이전 생도 그렇고..이 전전의 생도 그렇고...우린 온전히 우릴 위한 삶을 산 적이 있니?
그 빌어먹을 놈만 기다리다가....기다리다가....우리가 ......우리의 삶을 산 적이 있어?]
[그래도.....기다려야 해. 우린 기다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린 또 죽고 말꺼야...]
[............아니? 이제 '우리'가 아니야. 선호 너 혼자야.
난......더 이상 이렇게 살아 숨쉬는 거 의미 없어.
더 이상 그렇게.....죽을 순 없어.
이번 생만은.....내일 단 하루를 산다해도 내 인생을 살고 싶어.
정말.....사람답게.......인간답게 살고 싶어.]
[.................]
그렇게 나는 그 곳을 떠났다.
단 하루를 산다해도 사람답게......인간처럼 살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그렇게 떠났다.
작고...
쉽게 상처받고...
미련하도록 착하기만 한 그 녀석을 외면하고...
그 녀석에게 모든 짐을 지운 채로.....그렇게 떠나 버렸다.
그게 벌써 8년.
아니, 겨우 8년 만에 우리가 기다리던 자가 나타나 버렸다.
...........어쨌거나...
나 이 땅으로. 그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
*
"야."
"............"
"야- 야- 귀 먹었어?"
".............-_-+ 왜 부르십니까?"
"밥."
".......? 밥이 뭐 어쨌단 말씀입니까?"
"차려오라고."
"........하.. 기가 막혀..."
몸에 딱 달라붙는 흰 런닝에 회색 면트레이닝바지 차림으로 방안에서
기어나온 동완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게슴츠레 뜬 눈으로 말했다.
"너 여기 하수인 아니야? 죽일려고 위협해서 사람을 데려다 놨으면
밥을 맥여야 할 꺼 아냐. 아침 차려와."
"지금 오후 1시입니다."
"그래? 그럼 점심 차려와."
".............."
"아. 얼른~ "
하면서 대청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서(古書)를 펼쳐보고 있던 선호의
옆구리를 엄지발가락으로 콕콕 찔러대는 동완,
그런 동완을 같잖다는 듯 아래위로 짧게 훑어보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화를 억누르고 억누르며 심호흡을 해보는 선호.
"너 오늘따라 얼굴이 더 허여멀겋다? 화장했냐?"
"....개인적인 모욕 금지. "
하며 옆눈으로 화악- 날카롭게 노려보자,
동완이 그 눈을 빤히 바라보다 피식 웃어버러더니
막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쾅-!!!
"...........?"
"............"
엄청난 광음과 함께 마당 오른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대문이 활짝 열여젖혀진다.
안쪽으로 활짝 열려진 대문 사이로 웬 발 하나가 쑥 들어온다.
동완과 선호가 아무 말 없이 대문으로 시선을 집중하자,
"이 놈의 집구석은 도대체가... 세상이 변해도 철거가 안되는구만."
"........지..진아!!!"
".......-_-???"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선호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한걸음에 마당으로 내달린다.
그 모습에 동완은 황당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본 이래 맨날 딱딱하게 할 말만 떠들고 싹 돌아서던 인형 같던 그가
저렇게 격양된 목소리로 저런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 보는지라 당황될 수밖에 없었다.
"이선호......오랜만이다. 혼자 많이 힘들었지? "
".....와줬구나. 와줄 꺼라고 믿었어. 고마워.... 고마워 진아."
"말했잖아. 네가 부르면......내가 어디 있든 네게 달려 갈 꺼라고."
-_- 뭐냐. 저건.
대문에서 웬 길쭉한 게 딱 졸부집 막내아들 같이 빼입은 녀석이 하나 들어오더니,
밀가루랑 껴안고 볼 쓰다듬고 이상하게 지글대는 눈빛을 교환 해대질 않나.
괜히...거슬린다. 거슬린다. 거슬린다.-_-
"뭐야. 지들이 무슨 이산 가족이야? ...아주 놀구들 있네."
".............."
...........?
내가 툭 말 한마디 내뱉자 밀가루가 고개를 획 돌리며 바로 눈을 찢어오고. ㅋㅋ..
그 딱 오렌지족에 양아치 섞어 놓은 거 같은 놈이 저벅저벅 내게로 다가온다.
"............."
"............"
뭐야. 뭘 야려대. 야리기를.
녀석을 위아래로 쓱쓱 대충 훑어 내리니..
맨들맨들한 천에 상아색의 짙은 남색 스트라이프가 사선으로 간 에버크롬비 셔츠에
다리에 쫙 붙을랑 말랑 하는....색이랑 바지라인을 보아하니 겐조같은데...?
".......뭐야. 너는."
거만하게 내리깐 눈 위엔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엔 루이비통 여행용 가방을, 나머지 아르마니 시계를 찬 손은 내 턱 끝을 가리키고 있다.
"꼭 같잖은 새끼들이 명품이라면 아주~ 쯔쯔. 온 몸을 도배를 했구만. 도배를 했어.
야. 명품도 명품 나름이지. 너...종류별로 이렇고 몸에 걸치고 다니면
차암~ 조잡스러 보인다는 거 혹시 아냐?"
".....훗. 그래도 지금 당신하고 있는 꼴 보단 덜 조잡스럽겠지."
-_-??? 뭐??? 당신???
아니 도대체가 이 집 놈들은 싸가지를 밥을 말아먹었나.
"너 몇 살이나 처먹었ㄴ........."
" ........당신이야? "
눈 앞에 서있던 그가 동완의 말을 탁 짜르며 그의 얼굴을 향해
긴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대며 말했다.
"당신이냐고 묻잖아. 귀 먹었어?"
동완의 귀에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억양으로- 취조하듯 묻는 그의 물음에
동완이 마당으로 퉤- 하고 가레침 한 방을 내깔린다-_-
"...........개새끼야. 어따대고 반말 지껄여. 너 몇 살이나 처먹었어? 뒤질래?"
"..........흠."
헝클어진 머리. 남루한 옷차림.
마룻바닥을 기어다니는 추한 자태-_-
상스러운 말버릇...
뭐 하나 진이의 눈에 제대로 박혀 보이는 구석이 없었다.
그가 동완을 내려다 보며 잔뜩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
슬쩍 뒤에 서 있는 선호를 돌아본다.
"정말.........이 작자야?"
"유감스럽지만. 정말......그 사람이야."
"...........이건 말도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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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베르/사유] ■ 광 · 년 · 이 ■ [부제 - 위대한 유산] - 013 -
베르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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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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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님,,,빨리 광년이와 함께 손에 손을잡고,,정답게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청설무희는....나는...광년이와 사유님을 기다릴거예요^-^..,, 광년아...부디 빨리 사유님과 함께 나타나렴...여러사람들이 기다리잖아^-^....
ㅋㅋㅋㅋㅋㅋ 진이오빠 이미지도 좋네요 ^ㅇ^)a 정혁군한테 하던 태도랑 사뭇 다르네요 ㅋㅋㅋ
바닥을 기어다니는 추한자태 ,ㅋㅋㅋ 앉아서 십분동안 웃었습니다아~ ㅋㅋ 사유님 글은 언제 봐도 베리 굿굿 입니다 사유님 홧팅!
하하.... 동완씨가 좀(;;) 망가져서 그런지 더 재밌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