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이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장거리 여행이 될 듯 싶다. 이번 여행을 그간 주위에 같이 있어줬던 사람들께 감사드리고, 우리 국도에 대해 애정을 갖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이번 후기를 써보겠다.
-사전 작전 회의
같이 여행하기로 한 경일, 진일과 함께 사전 작전회의를 빙자(?)한 몇번의 술자리를 통해 땅끝-돌산-거제도로 코스를 잡아보았다. 거제에서 외도를 가보기로 처음에 말이 나왔으나, 돈도 돈이고 남정네 셋이서 뭐하는건지.. 그리고 시간+코스상의 명분상의 이유로서 외도는 빼는걸로 했다. 나중에 각자 참-한 아가씨 한명 데리고 가는걸로 결론을 내려보고... 여행의 컨셉은 "찌질이 LIFE"로 잡아보았다. 대략 20만원 정도로 예산을 잡고 이 돈으로 모든걸 다 해결해보는거였는데, 의외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 차비만 해도 십여만원 정도 들어가는거 같고.. 예비 운전병 연수나 시켜줄 겸 아싸리 렌트카를 빌려 버려? 이런 생각에 결국 인터넷을 통해 AVIS에서 렌트카를 예약하게 되었다. 그것도 찌질이 컨셉에 맞는 작은차가 아닌,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중형 승용차인 SM520으로 낙찰을 보았다. 넓은 실내공간은 190cm의 거구인 진일이를 편안하게 태울 수 있으며, LPG를 먹어 기름값을 아낄 수 있다는 현실적이 이유는 "돈아깝다"라는 생각을 가시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렌트카를 빌리고 남은 돈으로 여행을 가는것은 상당한 압빡 요인이 되므로 이를 통해 "찌질이 LIFE"의 본래 정신을 살릴 수 있다고 대충 결론을 보는것으로 우리들 스스로 명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2004년 1월 7일 화요일.. "해남을 거쳐 돌산으로"
광주행 심야 고속버스를 타러 센트럴시티로 향했다. (전날)밤 11시가 약간 넘어서 도착했는데, 우리의 엘리 진일군은 맥도날드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계시더군. 조금 있다가 경일이가 도착하고 버스 구경을 하러 승차장으로 향했다. 조금 있다가 출발하는 차량이 현대자동차의 최신 최고급 차량인 "하이클래스"였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무효..!! 그래서 00:30분발 심야 우등고속으로 결정을 하고 표를 끊었다.
조금 일찍 승차장으로 향했다. 광주행 승차장에는 15분발 차량과 30분발 차량이 동시에 들어왔는데, 이런!! 30분발 차량은... 7~8년 정도는 되보이는 푹 썩은 현대 구형 퀸 차량... 시트도 무척이나 좁아보이고... 15분발 차량은 비교적 신형인 기아 그랜버드 썬샤인... 에라 모르겠다 하고 15분발 차량에 올라탔다. 차엔 몇명 타지도 않았고, 검표원은 30분 표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승차를 허락하였다.
평일 심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승객은 열명 남짓 된다. 서울-광주간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지... 마치 여관버스를 연상시키듯 모두 다 골아떨어진다. 동행한 진일,경일이도 역시... 하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이어지는 여행에 대한 설렘이라고 할까 군에 가기 전 마지막 여행이라는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까나...
4시가 약간 넘어서 광주 광천터미널 도착. 새벽시간이라 무척 빠르다. 새벽의 터미널은 무척이나 한산하다. 터미널 내 상가들도 모두 문을 내렸고, 대합실도 텅 비었다. 이후 속속들이 도착하는 서울발 심야버스들이 토해놓는 손님들로 잠시 북적댈 뿐... 택시기사들은 이 손님들을 태워가려고 호객에 열중이다. 이중.. "해남, 땅끝"을 외치는 한 기사가 있었다. 우리에게 접근하더니 1인당 만원씩에 태워주겠다고 하는데... 버스값과 똑같다. 손해보는것은 없지만, 다들 편하게 자면서 가고 싶다고 하여 단숨에 거절했다. 그렇지만 이 기사.. 우리가 해남행임을 눈치챈듯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후 무응답으로 일관...
그런데 마침 경일이에게 한통의 문자가... 터미널 하차장에서 웬지 낯이 익은 한 소년이 보였는데, 버사동 염창훈님이었단다. 세상 참 좁다. 작년 5월 지리올림피아드때 만나뵈었는데, 여기 광주에서 그것도 새벽에 이렇게 만나볼줄이야... 얘기를 붙여보니 전국일주 시승 나왔다고 한다. 건너편 pc방에서 밤을 샌 후, 4시 30분에 출발하는 화흥포행을 타러 터미널로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4시 40분발 땅끝행을 탄다고 했다. 염창훈님은 일단 목포로 가신다고 하는데.. 나주에서 하차해서 우리 차로 갈아타서 해남까지 간다고 하신다. 아무튼 이리 이리 얘기를 나누고 먼저 차를 태워드리고.. 우리는 10분 뒤에 땅끝행 금호직행에 탑승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화흥포행은 4시 30분이 첫차이자 막차라고 한다.)
차량은 현대 에어로스페이스... 진일이가 의자에 앉으니까 꽉 끼어버린다. 우등 타고 오다가 45인승 시외버스를 타니 이거 참... ;; 하도 고통스러워 하길래 맨 뒷자리로 올려보내고... 나주에서 염창훈님이 타기로 했으나, 매표소 문을 안열어서 못탔다는 연락을 받고... 조우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아무튼 두시간 정도를 달려 땅끝에 도착했다. 아니 땅끝의 초입 정도 되는 갈두라는 마을까지...
땅끝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니 길이 두갈래로 나위어진다. 전망대 / 땅끝탑... 전망대는 말 그대로 전망 좋은곳에 설치된 전망대다. 산 꼭데기에 있고... 땅끝탑은 국토 최 남단이다... 정말 땅끝에 설치된 기념 탑이다. 전망대보다는 땅끝을 먼저 밟는것이 순서일듯 하여 땅끝탑으로 코스를 잡았다. 길은 무척 험하다. 해안이라 수월할 줄 알았으나, 굽이굽이 언덕길에 경사까지 상당하고, 아직 통이 트기 전이라 어둠까지 겹쳐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20여분을 걸어 땅끝탑 도착..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살짝 어둠에 잠긴 남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덧 동이 트기 시작한다. 탑과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전망대를 향해 올라간다. 마침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땅끝탑으로 몰려들고... 이에 우리는 더욱 속도를 내어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 앞에 높은 탑이 하나 보이기 시작한다. 땅끝 전망대다..!! 원래 천원씩 입장료를 받지만, 너무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매표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짜는 없는 법인지 엘리베이터가 꺼져있다. 총 10층이던데 돈 내기 싫으면 거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말인가?? 조금 기다리니 매표하는 직원이 등장하고, 표를 사니 엘리베이터를 켜준다... 해남 군청의 서비스 정신에 허를 내두르며.... 9층의 전망대로 올라가니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가 껴서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 흑일도 상공에 높히 떠오른 태양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감탄하며 셔터를 누르니라 정신이 없다.
땅끝 전망대를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해남 읍내로 향한다. 이번에도 금호고속 차량이 걸렸는데, 새벽에 무척 수월하게 왔던것에 비하면 길이 무척이나 복잡하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게 직행인지 완행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다. 산정리 읍내에 들어서자 손만 들면 버스를 세워준다. 마침 오늘이 장날인지 읍내 길은 무척이나 복잡하다. 새벽에 버스에서 잠을 못 잔 탓인지 이 버스에서 단숨에 골아 떨어진다. 어디서였나, 덜컹대는 부산함에 스르르 잠을 깨었고, 조금 더 달려 해남 터미널에서 하차했다.
허기를 채우고자 터미널 밖으로 향했다.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가 "기사식당"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허름한 간판과 다 낡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할머니 한분이 가게를 지키시는 전형적인 시골 밥집이다. 허름한 가게와는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차림새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할머니께서는 찌게에 반찬을 곁들인 아침 식사를 차려주신다고 한다. 이곳이 시골 밥집이라는것을 실감하며.... 조금 기다리니 식사가 나온다. 김치찌게에 각종 김치와 나물반찬으로 한 상 가득 채운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오며 허겁 지겁 먹기에 바쁘다.
늦은 끼니를 채우고 다시 터미널로 향한다. 순천행 차표를 끊고 홈으로 향하니 버스가 이미 들어와있다. 이쪽에서 흔하디 흔한 금호고속이 아닌 광우교통 차량이다. 강진, 보성을 거쳐 순천, 여수까지 가는 나름대로 장거리 버스던데... 이에 비해 차량은 매우 아담했다. 손님이 그만큼 없다는 얘기인건지... 중형버스인대우 BH090 차량이다. 오버항시트, 스윙도어 등 나름대로 고급옵션을 갖추고 보통 중형버스보다 한줄이 더 적은 29인승으로 시트 간격도 무척이나 넓어서 진일이도 고생하지 않고 넉넉하게 갈 수 있었다. 손님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시골 영감님들의 구수한 입담은 차 내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순천까지는 두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여행을 한다고 차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기사님께서는 "차가 째깐해서" 라며 멋적어 하신다.^^ 터미널을 나와 미리 예약해논 렌트카를 인수하러 조례동으로 향했다. 그 전에 은행에 볼 일이 있어서 국민은행을 찾으러 한참을 헤맸고.... 77번 버스를 타고 금당병원에서 내려 어렵지 않게 AVIS 렌트카 순천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사무실 앞에는 우리가 탈 차량인지 하얀색 SM520 한대가 대기중이었고.... 은행때문에 조금 늦긴 했지만, 차량 인수는 무리없이 이루어졌다. 차는 진일이 이름으로 빌렸고, 미리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해 두었다. SM520 LPG차량을 이틀 빌리는데 12만 얼마가 들었는데... 대략 비수기인지라 35% 할인한 가격이라고 한다. 결재를 마친 후, 스크레치, 연료량 체크 등 간단한 점검이 이루어진 후 차 키를 받을 수 있었다.
만 21세 생일이 지난 유일한 사람인 진일이 이름으로 예약하고 차를 인수했으나, 그 사람이 운전경험이 별로 없던 탓에 사무실을 벗어나자 마자 곧바로 운전기사 CHANGE~!! 그나마 실제 운전을 하는 내가 핸들을 잡았다. 차 내부 정리를 하고, 미리 준비해간 카팩으로 CDP를 사용할 수 있게 갖춰놓았다. 음악까지 준비 다 되었으니 만사 OK...!!
조례동 킴스클럽으로 향해서 간단한 장을 봤다. 1.6L짜리 OB 패트병 맥주를 두병 샀고, 각종 안주와 식사인 빵과 라면을 준비했다. 진일이는 "나쵸"를 찾았으나 이곳엔 없었고... 아님 우리가 못찾은건지.. 킴스클럽을 나와 공설운동장 옆 충전소에서 가스를 채우고... 가스차를 처음 몰아본 탓에 연료주입구 오픈 방법을 몰라 잠깐 헤맸고..;; 가스가 무척 저렴하긴 저렴하나보다. 탱크의 3/4 정도를 채웠는데 3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 가솔린차였으면 6만원 정도 나왔을건데... 충전소를 나와 배를 채울 겸 순천 시내로 향헸다가, 결국 까르푸에 있는 KFC에서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이거 맛난 음식의 본고장 전라도에서 뭐하는 짓거린지... -_-;;
차를 돌려 해룡 마산으로 향했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사시던곳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집은 세를 내줘서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그래서 우선 동네 가게집으로 갔다. 가게집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손자가 왔다며 정말 반갑다며 손을 붙잡으시던데... 마침 그 집에 새로 이사오셨다는 할머니와 같이 계신다고 하여 그분과 함께 집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장독대 하며... 할머니가 쓰셨던 주방... 어릴적부터 할머니 집을 찾을때 마다 뛰어 놀았던 그 잔디밭 하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이 비면서 집은 거의 흉가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런 집을 작은 아버지께서 훌쩍 길어버린 풀도 깎고 여기 저기 수리를 하여 간신히 정리하였고, 집을 비워두는것보다 다른 사람을 살게 하는게 나을거라는 결론에 이르러 세를 놓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아버지의 아버지 이상으로는 없으나, 어릴때부터 응석도 받아주며 누구보다도 나를 끔찍히 생각하셨던, 손자, 손녀 잘 되는거 바라보는것을 그나마 낙으로 삼으시며 평생 고생하며 쓸쓸히 살아오셨던 할머니에 대한 감정은 특별했던거 같다... 바로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그분이 계시던곳이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버리니....
차를 돌려 산소도 올라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에 주무시고 계신다. 돌아가신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간다. 묘소에도 이제 풀도 많이 올랐고... 큰절 두번 올리면서, 이 손자 이제 군대간다고 인사를 드렸다. 잡초도 좀 뽑아주다가, 다시 인사를 드리고 내려왔다...
순천-여수간 17번 국도를 달렸다. 산업도로로 활용되는 도로라 일찍부터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고로 여느 국도 못지 않게 차들의 템포가 빠른 편이다. SM520.. 가스차라 못나갈꺼라는 편견이 앞섰으나 실제 핸들을 잡아보니 여느 가솔린차 못지 않게 잘 나간다. 적어도 아버지 차 이상인듯... 내차가 아니라는 생각이 앞서서인듯 나도 상당히 빠른 템포로 달린듯 하다. 군데 군데 설치된 과속 감시 카메라에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으며....
여수 시내를 지나 돌산대교를 건넜다. 돌산대교는 왕복2차로의 사장교로서, 수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그러고 보니 남해안에 유독 특이한 다리가 많다. 시장교인 진도대교, 돌산대교를 비롯해, 현수교인 남해대교 등등.. 새로 건설되는 거가대교(거제-가덕도-부산)도 사장교로 선설된다고 하는데... 다리를 건너자 마자 다리 아래로 내려와서 기념 사진을 찍었고....
다시 차에 올라 돌산도를 쭈욱 달렸다. 빠른 길인 국도를 버려두고 해안가 지방도로를 달렸다.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지 못해 그냥 달리고 또 달렸다. 돌산 읍내를 지나고 어느덧 도착한곳은 율림리... 향일함이 올려다 보이는 바닷가 마을이다. 이곳에서 아담한 민박집을 발견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를 세워 들어가보니 가격 역시 저렴하다. 비수기라서 그런건지... 집도 새로 지었고, 내부 구조도 여느 여관 못지 않게 잘 되어 있다. 각 방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을 정도니... 다만 근처에 PC방이 없어서 컴퓨터를 쓸 수 없다는것이 무척 아쉽다. 밤에 차를 끌고 돌산 읍내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편히 쉬자는 생각에 이 집에 묵기로 했다.
이곳에 둥지를 틀고 면식으로서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포근했던 낯과는 달리 밤은 무척 춥다. 거센 바닷바람까지 가세해서 체감 온도상으로 남극이 따로 없다. 노출을 높혀서 밤 바다를 찍어보니 색다른 사진이 연출된다. 한쪽 구석에 쳐박혀 있는 어선도 찍고.....
그런데, 민박집 옆에 웬 수양시설이 있다. 처음에는 무슨 연수원 정도 되는듯 싶었는데,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연수 겸 숙박시설이다. 인터넷 PC 사용 가능, 매점, 식당 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저건 아닐꺼야.. 아닐꺼야 라는 말을 반복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며.... 진작에 이 집으로 잡아봤으면, 인터넷을 쓸 수 있었을 수도... ;;
향일암이 어떤곳인지 직접 보려고 차를 타고 올가가봤다. 해안 절벽 위로 난 길이 무척 험하다. 통행하는 차들도 없다만, 어두운 밤이고 길이 험한 탓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제한속도 60이라는 표지판이 대단하게만 느껴질 정도이니... 마침 이곳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시내버스가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음주 수햏으로서 보람찬 하루를 마감한 후, 내일 일출을 기대하며 일찍 불을 끄는것으로 돌산도에서의 첫날밤을 흘려보냈다...
-2004년 1월 8일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아침 6시쯤 미리 맞춰논 핸드폰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벨소리는 경쾌한 새벽 닭소리... ;; 전날 사놓은 라면과 빵으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해결한 후, 키를 반납하고 짐을 꾸려서 우리의 애마 SM5에 승차했다. 동이 트기 직전의 새벽녘이라 약간 어둡다. 하지만 길에 차가 없어서 운전하기는 수월하다. 전날 미리 답사를 해놓아서 어렵지 않게 향일암까지 갈 수 있었다.
향일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로 동쪽으로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위에 위치해있다.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 차를 세워놓으니 한폭의 작품 사진이 따로 없다. 저 위 봉우리 중간에 있는 향일암까지는 도저히 못 올라갈거 같아서 그냥 이곳에서 일출을 맞기로 했다. 저 먼 바다 아래에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는 장엄한 광경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파도는 쏴 하는 소리를 내며 절벽을 강타하고, 태양빛은 그 물결과 한데 어우러져 빛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그림을 그려낸다.
절벽 아래쪽 바위 위에서는 한바탕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 태양만을 기다리며 밤새 빌고 빈것 같았지만, 무당, 고수 그 누구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일출굿의 그 멋진 광경에 홀린 나머지 나 역시도 절벽 아래로 내려간다. 펜스를 넘어 조심 조심 바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파도가 몰아치는 바위 곁에 쪼그려 앉아서 굿판과 바다를 찍고, 한편으로 내 발 바로 아래까지 바위를 강타하는 그 물결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일출을 맞이하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이번 목적지는 경상남도 거제!! 애초 말 나온것으로는 외도까지 가보기로 했지만, 시간상 그게 가능할련지 의문이다. 가는데까지만 가보기로 하고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차는 Rpm이 4000까지 올라가며 폭주를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경일, 진일이의 얼굴엔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순천IC에서 남해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평일 오전시간의 위력인지 유달리 한산하다. 평소같으면 공단으로 가는 트럭들로 가득 매워졌을건데... 섬진강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길도 뻥 뚫렸고, 직선으로 쭈욱 뻗은 길이 너무 좋아서 진일이에게 핸들을 맡겨봤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1년여 만에 처음으로 공도에서 몰아보는거라고 하는데, 의외로 어렵지 않게 잘 몬다. 고속도로라 길도 좋고 그저 밟으면 잘 나가서 그런지 진일이 얼굴엔 재미 있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천휴게소에서 못내 아쉬워하는 진일이와 교대한 후, 사천IC에서 빠져 나와 국도로 들어섰다. 한참 확장공사가 진행중인 33번 국도는 무척이나 험하다. 교통량도 많고, 혈기가 넘치는 경상도라 그런건지 차들도 무척이나 터프하다. 경상도 땅에서 "전남"번호판을 단 렌트카를 몰아서 그런건지, 의외로 주변을 경계하게 된다. 뒷차의 클락션 하나하나에 까지 예민해지는듯...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신 부모님의 유전자가 내 몸에도 있다는것을 증명하듯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이런것에데 예민해진다. 다른 차들에 견제당하지 않으려는듯 마치 레이스를 하듯 국도에서 속력을 높힌다. 일부 확장 개통된 4차선 구간에서는 고속도로에서도 내기 힘든 스피드를 뽑아내고...;;
한참을 달려 바다 휴게소라는곳에 당도했다. 제목이 바다이긴 했다만, 어디 바다가 보이는겨? 한참을 둘러보니 휴게소 뒷편으로 남해바다가 살짝 살짝 보인다.... ㅡ.ㅡ;; 다시 차를 몰아 통영 시내로 들어간 후, 간단히 장을 보러 롯데마트로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진일이가 그토록 찾던 "나쵸칩"을 찾을 수 있었고, 그냥 먹으면 밋밋하다고 하여 핫소스 한병도 같이 샀다. 장을 본 후, 마트 한쪽 구석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짜장과 탕수육을 주문했다... 짜장 한그릇에 3천원, 탕수육 小자가 5천원씩 받길래 무언가 특별할 줄 알았다만, 막상 음식을 바라보니 양은 너무나도 아담하고, 탕수육은 밀가루가 절반 이상이다... ㅜㅜ 대기업 전국 체인 슈퍼마켓에서도 이정도니.. 경상도 다른곳에서는 어쩔련지... ;;
다시 차를 몰아 거제도로 향했다. 4차선으로 확장 개통된 거제대교를 건너 거제 시청이 있는 신현읍으로 들어갔다. 주변에 삼성과 대우 조선소도 있고, 남해안 임해 공업지대의 중심지인듯 여느 지방읍보다 훨씬 화려하다. 멋들여 지은 빌라들과 아파트들은 이곳이 과연 읍급 도시인지 착각할 지경이고...
신현읍 한쪽 언덕에 위치한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들어섰다. 멋진 게이트만으로 이곳의 위용을 추측하기에 충분했다. 입장권을 끊고 공원으로 들어서니 6.25 참전국 16개국의 국기가 펄럭인다. 마침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들이 관광차 몇차로 나눠서 이곳을 찾으셨는데, 그 옛날 군대시절 얘기로 서로를 자랑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입장권을 낸 후,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곳은 탱크 전시관이다. 탱크 모양의 건물 내로 들어가니 6.25 전쟁때 활약했던 탱크에 관한 전시물이 있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언덕의 사면을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야외에는 3.8도선을 넘는 북한군 탱크와 이를 막는 우리 국군의 전투 장면이 모형으로나마 재현되어 있었고, 이후 들어간 6.25 역사관에는 전쟁에 대한 전시물로 가득차 있었다. 전시관 바깥에 있는 끊어진 대동강 철교 건너는 피난민 행렬을 재현해 놓은 조형물은 전쟁의 참혹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기에 충분했다. 이후 포로 수용소의 개요와 그 생활과 포로들의 반란, 진압에 관련된 각종 전시물을 보며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 관한 생생한 기억들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6.25 전쟁 당시 거제도의 상당 부분은 포로수용소였다고 한다. 해안에 면한 골짜기 두개.. 즉, 산 능선으로만 세개에 달했다. 이곳은 지금은 신현읍 지역이다... 포로들은 배로 수송되어 이곳 수용소로 옮겨져왔고, 미군이 관리하는 수용소에서는 제네바 협약에서 규정한 최소한의 포로 규정만을 준수하며 매우 비참한 삶을 살았다. 열악한 시설과 복지수준이었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하며 "똥푸기"나 수용소 시설을 개선하는 각종 작업에 투입되었다. 포로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대부분이었지만, 전쟁 과정에서 잡혀온 민간인도 상당수였다. 이들은 친공과 반공으로 나뉘어 수용소 내부에서 세력을 형성하였고, 급기야는 친공 포로들은 반란을 일으켜 경비 미군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전 후, 이들은 포로처리 과정을 거쳐 남과 북, 그리고 제3국(인도)으로 돌려보내졌는데, 그 대부분이 지금 이곳에 남았다고 한다.... 그 처리 과정이라는게 남북 당국의 설득인데, 이 상황에서 갈등하는 한 포로의 모습이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보면 잘 묘사 되어 있다.
수용소를 나와 다시 차를 몰았다. 이번에는 왕복 2차선의 구 거제대교를 건너기로 했다. 새 다리가 나면서 기존의 다리는 숨어버린건지, 표지판만으로는 약간 찾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찾아 다리를 건널 수 있었고, 좀더 달려 다시 통영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를 지나 충무운하를 뛰어넘는 충무교 다리를 건너 미륵도로 건너갔고, 마리나 리조트가 있는곳인 도남동이라는곳에 도착하여 차를 세웠다. 콘도가 있으니 근처에 민박집이 있을거라는 계산이었는데, 그 계산은 정확히 맞아 떨어져 이번에도 반듯한 민박집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민박집은 골목 안쪽에 있었다. 위치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지은지 얼마 안된 새집이었고, 내부에 화장실, 냉장고, 싱크대, 식기 등이 완비된 완전 콘도형 민박집이었다. 비수기라 방값 또한 저렴해서 이집으로 하기로 주저 없이 결정했다.
PC방도 가보고, 먹거리도 살 겸 시내로 나가려고 했는데, 차 대신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따가 해저터널을 건너기 위해서고... 도남동 이곳이 통영 버스들 회차지점인지라, 버스는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었고, 20분 정도 더 가서 통영 시내로 갈 수 있었다. 시장 닭집에서 양념통닭 한마리를 맞춰놓고 그 시간동안 PC방에서 그간 하지 못했던 컴퓨터를 좀 했다... 닭을 찾은 후, 직접 걸어서 해저터널을 건너보기로 했다.
통영 해저터널은 판데목, 충무운하 바닥 아래로 지나간다. 일제때인 지난 1930년대에 완공되었고, 터널의 노후화가 진행되고 대체 통로인 충무교 다리가 완공된 1967년에, 차량 통행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터널 윗쪽 바다인 판데목은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궤멸시킨곳이다. 원래 얕은 갯뻘로서 물이 빠지면 뻘이 들어나 배가 통행할 수 없었는데,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배를 뺄 수 있도록 처음 팠다고 하여 판데목이라고 부른다나? 이후 1930년대에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지금의 충무운하가 완성되었다. 터널의 입구는 돌을 붙인 출입문을 만들었지만, 그 뒷부분은 나무기둥에 지붕을 덮은 전형적인 일본식 건축 양식이라 조금 이색적이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약간의 음주를 즐기다가, 신선한 공기도 쏘일 겸 카메라를 들고 바닷다로 나왔다. 삼각대를 펼쳐 충무운하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고, 마리나 리조트쪽도 가보았다. 마리나 리조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앞 마당과 선창에는 요트들이 가득했다. 마침 초등학교 축구 선수들이 콘도에 숙박하고 있는거였는지, 앞 마당에서 한참 훈련하느라 바쁘다. 누구는 한가롭게 사진을 찍고 있고, 누구는 맨바닥에서 땅 뻘뻘 흘려가며 구르고 있고.... 묘 하다 ;;
다시 방에 들어와서 남은 술을 해치운 후, 내일을 기약하며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2004년 1월 9일 "전주를 거쳐 다시 서울로.."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날..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다. 렌트카 반납 관계로 순천을 거쳐야만 하며, 올라 가는 김에 전주도 들려 비빔밥을 먹기로 계획을 세웠다.
8시가 넘어 느즈막히 일어나서 끼니를 채우고 출발 준비를 하였다. 대충 정산을 해 보니 애초 계산해본것다 의외로 돈이 덜 들더군. 차를 빌렸지만, 숙박비와 먹거리를 저렴하게 해결해서 그런건가? 차에 몸을 싣고 다시 33번 국도로 내달렸다. 하늘에는 하나 둘 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와이퍼를 켜고 조금 긴장한 상태에서 차를 내 몬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하늘은 다시 맑아졌고, 핸들을 잡아보고 싶다는 진일이의 소망에 따라 휴게소에서 CHANGE...!! 천천히 달려서 광양IC까지 도착했고, IC를 빠져 나와 다시 내가 핸들을 잡고 순천으로 가서 차를 반납했다. 비가 온 탓인지 차는 무척 더러웠으나, 잔기스 하나 남기지 않고 제시간에 깨끗하게 차를 돌려줘서 추가 비용은 물지 않았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순천역으로 간 후, 미리 예약해논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열차는 새마을호에서 격하된 64석 열차... 80년대 새마을이었지... 시트 간격도 나름대로 넓고, 일반석임에도 불구하고 각 시트마다 암레스트가 설치되어있다. 실내는 우는 아이와 이래 저래 떠드는 사람들로 다소 시끄러웠고....
두시간여를 달려 전주역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 시외터미널로 갔다. 이곳에서 서울행 한진고속 차표를 사놓았다... 전주에서 서울까지는 다른 고속버스도 있지만, 한진이 요금이 3000원 정도 저렴하다. 이 차는 고속터미널이 아닌 시외터미널에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핸디캡을 저렴한 요금과 최신 차종의 투입으로 극복하였다...
터미널에서 조금 걸어 공설운동장 앞에 있는 한국관 도착... 한국관은 나즈막한 1층 건물에 위치해있고, 비교적 젋은 종업원들은 조금은 앳되고 껄렁껄렁한 티가 보이긴 하지만 제복을 입혀놓고 나름대로 정형화된 서비스를 선보여, 전국적으로도 어느 정도 이름난 비빔밥집의 체면을 살린다. 비빔밥은 돌솥비빔밥과 육회비빔밥이 있다. 경일이가 육회비빔밥을 주문했는데, 가격은 비싸지만 육회가 들어가서 좀더 색다른 맛을 낸다...
터미널 건너편 PC방에 잠시 들른 후, 5시 30분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였다. 차량은 그렇게 기대했던 현대 하이클래스 우등차량... 화려한 외관과는 달리 실내는 별다른 차이점을 못느낄 정도다. 껍데기만 조금더 꾸며놓고 차값만 올려받는다는 평을 들을만 하다...
광주 내려갔을 당시에는 무척이나 설레어서 심야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지만, 상경길은 달랐다. 여독이 누적되어 그런건지 정신 없이 골아떨어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휴게소.... 휴게소에서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다시 잔거 같다..
약 3시간 정도 걸려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고, 터미널 지하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567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군대 가기 전 마지막 여행인데 아직까지도 군대 간다는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