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 노래 한 곡, 일요법회 생중계] 진은영의 시 <서른살>, 이승철의 노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서른 살
진은영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진은영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2003)
[감상]
괘종시계는 1시에는 한 번, 2시에는 두 번, 3시에는 세 번, 12시에는 열두 번 울립니다. 그런데 매 30분마다 한번씩 울리기도 하지요.
시인은 서른 살을 그 괘종시계의 30분에 비유했습니다. 괘종시계는 1시 30분이건, 2시 30분이건, 12시 30분이건, 똑같이 한 번만 울립니다. 우리의 서른 살도 나의 몇 번째 생의 서른 살인지 알 수 없지요. 어쨌든 30년을 버틴 인생에게는 서른 살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서른 살이 되면 누구나 이제 나의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30분이 하루에 스물네 번이나 있듯이, 서른 살도 여러 번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서른 살은 매 생애마다 찾아옵니다. 생애는 시계가 똑같은 궤도를 계속 돌듯이 반복됩니다. 시인에게 서른 살은 그 생애의 딱 절반에 해당합니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한 나이가 바로 서른 살입니다. 서른 이전에는 대체로 부모님의 보호 아래서 살아갑니다. 학업을 마치고 20대 후반에 직장생활 초년을 보내게 되지요. 그리하여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되고, 혼인하여 분가를 하기도 하는 시기가 서른 무렵입니다.
궤종시계가 단 한번 울림으로써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함을 알려줍니다. 궤종시계는 말합니다. ‘그 동안 네가 지었던 악업을 종소리 한번으로 소멸시켜주겠다. 그러나 지금부터 짓는 악업은 죽을 때까지 소멸되지 않는다. 아니 죽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궤종시계의 단 한 번의 경고는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이어서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울려줍니다.
[노래 한 곡] 이승철의 노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https://youtu.be/Ciu6_C1dGF4
[일요법회 생중계] 금강정사 일요포살법회 - 법문 벽암지홍큰스님
https://youtu.be/p09-nKlvbWI